지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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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티 공화국
جمهورية جيبوتي[아랍어]
République de Djibouti[프랑스어]
Jamhuuriyadda Jabuuti[소말리어]
Gabuutih Ummuuno[아파르어]
Republic of Djibouti
파일:지부티 국기.svg
파일:지부티 국장.svg
국기
국장
Unité, Égalité, Paix
통일, 평등, 평화

면적
23,200km2[1]
인구
1,002,197명(2021년) | 세계 159위
수도
지부티
최대도시
지부티(도시)
접경국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에티오피아, 파일:소말리아 국기.svg소말리아,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에리트레아
국가
지부티
(프랑스어:Djibouti)
공용어
아랍어, 프랑스어(공용어)
소말리어, 아파르어(국어)
정부 형태
단일국가, 일당제, 대통령중심제, 공화국
민주주의 지수
2.74점, 권위주의 (2022년)
(167개국 중 137위)
대통령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
총리
압둘카데르 카밀 모하메드
외교장관
마흐무드 알리 유수프
민족구성
소말리계 이사족 60%, 아파르족 35%
유럽인, 아랍인, 암하라인 5%
종교
이슬람교(국교), 기독교(소수)
화폐단위
지부티 프랑
UN가입년도
1977년 9월 20일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77년 12월 7일
북한: 1993년 6월 13일
교민 수
2명
여행경보
여행자제: 출국권고 지역 제외 모든 지역.
출국권고: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소말리아 국경 10km 이내 접경 지역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Djibouti_on_the_globe_%28Africa_centered%29.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j-map.png




1. 개요
2. 자연
3. 상징
3.1. 국가
4. 역사
5. 정세
6. 경제
7. 정치
8. 문화
8.1. 언어
8.2. 종교
9. 군사
10. 외교
11. 창작물에서


파일:external/i1187.photobucket.com/0049.jpg


1. 개요[편집]


홍해에 인접한 동아프리카의 국가이다. 국토 면적은 약 23,200㎢으로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주변국들에 비해 작은 편이다.

평면상의 지형은 쿠웨이트와 비슷하며, 수도는 국명과 같은 지부티로 이 곳에 지부티 인구의 60% 가량이 거주한다.

구글 지도엔 이상하게 주부티라고 나왔지만 수정되었는데, 수도는 여전히 주부티라고 표시되었으나 수도도 지부티로 변경 되었다.





2. 자연[편집]


홍해의 출입구인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예멘과 마주보고 있다. 수도 지부티의 경우 겨울 평균기온 26℃, 여름 평균기온 36℃로 매우 높은 기온에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으나 일부 산지대는 선선한 지역도 있다. 이런 높은 기온 때문에 홍해의 표면 수온도 30℃에 달한다.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최고기온이 71.5도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영토 중 일부는 해발고도가 해수면보다 낮은 상태다.[2] 이 때문에 지질학적으로 몇만 년이 지나면 흑해처럼 바닷물이 들어와 내륙 깊숙한 만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지부티에 위치한 지상 열곡대가 1988년 NHK-디스커버리 합작 다큐멘터리인 '지구대기행'에 등장한 적이 있고 많은 지질학자들이 자주 오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KBS를 통해 1989년 방영되었다.


3. 상징[편집]



3.1. 국가[편집]



지부티의 국가는 소말리어로 "Jabuuti(자부티)"라고 하며, 아덴 에미가 작사하고 압디 로벨이 작곡하였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해인 1977년에 국가로 채택되어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다.

소말리어 가사
아파르어 가사
한국어 해석
Hinjinne u sara kasa
Calankaan harraad iyo
Haydaar u mudateen (x2)
Hir cagaarku qariyayiyo
Habkay samadu tahayoo
Xiddig dhi igleh hoorshoo
Caddaan lagu hadheeyaay
Maxaa haybad kugu yaal (x4)
Soolisnuh inkih solaa
Simbiliiy kah ningicle
Bakaarat kah sugunne! (x2)
Bulci kaak qaran sido.
Way gubi kak anxar lusa!
Cutukti caxte caydu
Qidi wagri silaalo!
Faylay heebati kumuu (x4)
힘차게 일어나라! 우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기 위해
깃발엔 어떤 이의 값진 노고와
갈증과 극단의 고통도 함께 있으리라! (x2)
우리의 깃발, 그의 색상은 지구의 영원한 녹색을 뜻하며
파란 하늘, 하얀색, 평화의 색이로다
중앙의 붉은 별은 피를 뜻하는 것이다
오 우리들의 깃발이여, 이 얼마나 보기에 영광스러운가! (x4)



4. 역사[편집]




아파르족소말리인이 선주민족으로 거주하고 있었으며 홍해 건너편의 아라비아와 인접했기에 일찍이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됐다. 15세기에는 소말리아 서북부를 중심으로 한 아달 술탄국의 일부가 되었고 16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구도시인 타주라(Tadjourah)와 오보크(Obock)에 독자적으로 술탄을 옹립하고 있었다.

이후 1862년부터 프랑스 제2제국이 지부티를 오보크 자치령(Territoire d'Obock)으로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프랑스 제3공화국 시기인 1883년 5월 20일 프랑스령 소말리 해안(Côte française des Somalis)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날 지부티의 대내외적인 국명이 프랑스어식 철자법을 따른 Djibouti인 것에서부터 프랑스의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지부티의 사갈로(Sagallo)라는 항구도시가 1889년 1월부터 2월까지 1개월동안 러시아 제국 주도의 신 모스크바(Новая Москва)라는 식민지로 개척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나치 독일괴뢰 정부비시 프랑스 치하에 들어갔다. 비시 프랑스 치하의 지부티는 이탈리아군과 함께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영국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지만 이탈리아는 1941년 모든 동아프리카 식민지를 영국군에 점령당하고 철수했으며 1942년 비시 프랑스령 지부티는 영국에 점령당한다. 1944년에는 영국이 지부티를 자유 프랑스에 반환했다. 종전 이후에도 지부티는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해 프랑스가 마지막까지 독립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지역이었고 실제로 프랑스령 해외식민지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독립했다. 1967년 6월 14일 프랑스령 아파르족·이사족 자치령(Territoire français des Afars et des Issas)[3]으로 또다시 개칭됐고 1977년 6월 27일 비로소 독립하게 됐지만 프랑스는 오늘날까지도 지부티에 계속 군대를 주둔시키며 홍해를 출입하는 국제 해운에 대해 통제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이런 탓에 이 나라의 정치, 군부의 권력층들은 프랑스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4]

지부티와 에리트레아는 영토 분쟁 중이다. 2008년 4월에 에리트레아가 침입했고 2008년 6월에 총격전이 일어나 서로 몇십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지부티에 주둔 중인 프랑스가 물자 및 의료지원을 해줬지만 직접 개입은 하지 않았다. 그 뒤 국제사회의 중재로 2010년 6월에 에리트레아가 점령지에서 물러났다.


5. 정세[편집]


프랑스군이 주둔하는 효과 탓인지 주변 국가들인 예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에 비하면 그나마 안정된 편이다.[5] 더불어 21세기 들어선 미군도 아덴 만 소말리아 해적 문제로 일부 주둔하고 있으며, 그 외 유럽국가들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군대도 이 곳에 주둔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는 자신의 삼촌이자 초대 대통령인 하산 굴레드 압티돈(1916~2006)에게서 1999년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이후 2005년 선거에선 공정한 선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후보들이 출마를 거부해 100%의 지지율로 당선되었고, 기존에 2선까지만 허용하던 헌법을 개정해 2011년 선거에도 출마, 비슷한 이유로 8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는 반정부적 성향을 지닌 인물을 임의로 수감하는가 하면, 다수의 언론사를 임의로 폐쇄하거나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 다른 독재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적긴 했지만 언론 탄압을 시행해 비판받기도 했다. 2023년 기준으로 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 중 162위로 에리트리아,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중국 등 언론의 자유가 없다시피한 국가들보다 아주 조금 나은 수준으로 매우 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대통령 선거를 수개월 앞두고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여파가 여기에도 불어닥쳤다. 프랑스미국은 홍해의 관문을 지키는 거점으로 활용하던 터라 지부티의 분위기를 우려했다. 한 달여 동안 계속되던 시위가 끝나고 정부 측이 최루탄까지 써가면서 강력히 진압한 탓에 그나마 안정(?)을 되찾았지만, 향후에도 정부에 대한 불신 여론은 언제든 나타날 여지가 있다.


6. 경제[편집]


동아프리카경제
[[에리트레아#경제|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에리트레아]]
[[지부티#경제|

파일:지부티 국기.svg

지부티]]
[[에티오피아#경제|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에티오피아]]
[[소말리아#경제|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소말리아]]
[[케냐#경제|

파일:케냐 국기.svg

케냐]]
[[탄자니아#경제|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탄자니아]]
[[세이셸#경제|

파일:세이셸 국기.svg

세이셸]]
[[코모로#경제|

파일:코모로 국기.svg

코모로]]


지부티의 주요 산업은 프랑스 및 여러 국가들의 주둔군과 관련된 파생 산업에서 나오며 그 외에는 항구를 이용한 수출입 산업이 있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어업, 농업 등의 1차산업이 역시 있다.

대체적으로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매우 좋은 편으로,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여 1인당 GDP가 3000달러에 도달했다. 그러나 실업률이 높고 빈부격차가 심하다. 또한 무역으로 먹고살다보니 세금이 낮은데 이 때문에 세수가 적어 예산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7. 정치[편집]




지부티의 정치 정보
민주주의지수
2.74점
2021년, 세계 139위
언론자유지수
35.75점
2022년, 세계 164위[6]
부패인식지수
30점
2021년, 세계 128위


8. 문화[편집]


지부티는 홍해의 좁은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고, 이웃 국가로부터 이민자와 피난자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고 개방적이어서, 독립 전에는 홍해에 있는 프랑스의 홍콩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해적이 설치고 다녀서 홍콩[7]이라고 불린 영향이 크다. 수에즈 운하 건설 이후로 홍해가 유럽의 역외 무역의 중심이 되면서 무역밀도가 수십배 이상 엄청나게 높아졌기 때문에, 그야말로 노략질(해상 강도)이 큰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이나 프랑스 해군들한테 토벌될 리스크를 지고서도 그 부근 바다에서 해적들이 미친듯이 설치는 것이다.

이웃나라 소말리아가 워낙 막장인 나라라서 소말리아가 각종 스포츠 국제대회에 출전할 때 홈 구장을 빌려준다. 즉, 소말리아의 홈 경기는 지부티에서 한다는 얘기.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지부티에서도 축구가 인기인 스포츠지만, 2023년 7월 기준 FIFA 랭킹은 191위로 아프리카, 나아가 세계구급 꼴찌다.(...) 지부티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1988 서울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후세인 아메드 살레가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8.1. 언어[편집]


공용어는 아랍어프랑스어이다. 아랍어는 종교적인 이유로 그리고 아랍인들이 주민의 2%를 차지하기 때문에, 프랑스어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프랑코포니 회원국에 속해 있다. 하지만 정작 주민의 95%가 소말리인아파르인이어서 이들의 제1언어인 소말리어아파르어는 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8.2. 종교[편집]


이슬람이 국교이지만 무슬림에 대한 개종&전도 시도를 제외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2013년 기준으로 이슬람 94%, 기독교 6%이다. 기독교도는 대부분 에티오피아계와 (프랑스 등) 유럽계이며(이사족, 아파르족 출신 기독교도는 이들 민족 인구의 2%정도), 덕분에 종파도 에티오피아 정교가톨릭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예멘 등에서 넘어온 이슬람권 난민들도 많은 편이다. 또 지부티의 난민 캠프 이전에 지부티 사람들이 반대하기도 하는 등 어떤 점에선 선진국보다 더 난민을 살갑게 대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9. 군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부티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외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부티/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창작물에서[편집]


  • 온라인 FPS 아바의 스콜피온 맵의 배경이다.
  • 스웨덴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알란 칼손 패거리의 첫번째 희생자 볼트가 살해되어 아디스아바바수출되다가 바다에 버려졌고, 그의 여권과 지갑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인 선원이 자살폭탄 테러로 분쇄된 곳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볼트가 사망한 곳은 공식적으로는 지부티다.
  • 재독 작가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1946)에서, 주인공 미륵이 독일로 망명하기 위해 탄 기선이 두 번째로 정박한 곳이 지부티다. 서술자는 작품 속에서 '이 항구는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8]라고 황폐한 모습의 지부티 항을 언급. 두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언급이지만, 시내에 있는 인도인 학교부터 사막 가운데 있는 원주민 마을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영화 이탈자(1990)에서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이었던 주인공 리용(장클로드 반담)이 파견나가있던 나라가 지부티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00:19:42에 나무위키 지부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아랍어] [프랑스어] 'dj'는 외래어의 d͡ʒ 발음(영어의 j 발음)을 표기하는 이중 자음이다.[소말리어] [아파르어] [1] 광주광역시+전라남도+경상남도의 면적과 비슷하다.[2]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마리아나 해구가 해저에서 깊은 곳이라면 지부티의 해발고도가 낮은 곳은 육상에서 아주 깊은 곳으로 보면된다.[3] '이사'는 소말리족 중 지부티 지역에 거주하는 이사(Issa) 부족을 가리킨다.[4] 사실 이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 니제르, 가봉, 튀니지, 모로코, 말리, 베냉 같은 다른 아프리카의 나라들도 마찬가지다.[5] 에티오피아의 경우 2018년 취임한 아비 아흐메드 총리가 민주화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소말리아, 예멘, 에리트레아보다는 정치가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6] 작년까지만 해도 21.38점이였고, 순위는 무려 180개국 중 176위였다. 이는(2021년 기준) 베트남보다 낮은 수준이고, 중국과는 거의 비슷했던 수준이다. 그나마 점수가 14점 넘게 올라서 12계단이나 오른 것이다.[7] 홍콩 앞바다도 아시아에서 해적들이 설치고 다니는 동네로 매우 유명했다. 아시아 가본 적 없는 유럽인들도 해적하면 떠올릴만큼의 인지도였으니.[8] 정규화 역, 서울:범우사, 1991,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