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훈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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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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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C_Dios_2020_KoreanSeries_Champions.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20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6번
이용주
(1998~2002)

지석훈
(2003~2007)


팀 해체
우리 / 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6번
팀 창단

지석훈
(2008)


권도영
(2009~2011)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9번
김지수
(2010)

지석훈
(2011)


김남형
(2012~2014)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6번
권도영
(2009~2011)

지석훈
(2012)


신현철
(2013)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8번
김상수
(2010~2012)

지석훈
(2013)


결번
NC 다이노스 등번호 4번
팀 창단

지석훈
(2013)


유영준
(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10번
이철우
(2012~2013)

지석훈
(2014~2021)


도태훈
(2022~)



지석훈
池碩訓 / Chi Seok-Hoon

생년월일
1984년 3월 17일 (38세)
출신지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가동초 - 휘문중 -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7_r2_250.png 휘문고
신체
181cm, 74kg
가족
아내, 1남 1녀
포지션
내야 유틸리티[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3년 2차 1라운드 (전체 6번, 현대)
소속팀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2003~2007)
파일:우리 히어로즈 엠블럼.png 파일:서울 히어로즈 엠블럼.png 파일:넥센 히어로즈 엠블럼.svg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08~2013)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2011~2018).svg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NC 다이노스 (2013~2021)
지도자
파일:강릉영동대학교 CI.jpg 강릉영동대학교 야구부 코치 (2021~)
응원가
넥센 히어로즈 시절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2]
NC 다이노스 시절
터보 - Twist King[3] (2013~2017)
몽키타이거 레이블 - 자작곡[4] (2018~2021)
종교
개신교
병역
파일:국군체육부대 부대마크.svg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9~2010)

1. 개요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4.1. 타격
4.2. 탁월한 수비력과 유틸리티 능력
4.2.1. 연도별 각 포지션 출장 기록[5]
5. 말말말
6. 여담
7.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편집]


현대 유니콘스,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NC 다이노스유틸리티 플레이어 내야수.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석훈/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지도자 경력[편집]


시즌 종료 후 NC에서 전력분석원 자리를 제시했으나, 본인은 현장 지도자직을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12월 말 인터뷰에 따르면 팀 옛 동료인 김종호가 있는 강릉영동대학교 야구부에서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인터뷰를 통해 NC 팬들에게 “팬분들 덕분에 9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추억을 쌓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응원해주신만큼 구단에 많은 도움을 드렸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떠나게 돼 아쉬울 따름입니다. 더 준비 잘해서 좋은 지도자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며 인사를 남겼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4.1. 타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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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일 역전 적시타 D-clip
잠실 야구장을 쉽게 넘길만한 펀치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 연습타격 시의 장타력은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타고투저 덕을 받아 2015 시즌 개인 최다인 11홈런을 기록했다.

허나 평균적인 공격력은 다소 부족하다고 평가받는다. 커리어하이를 찍은 2014년과 유일하게 규정타석을 채운 2015년에도 wRC+가 100을 넘지 못했고 뜬금포를 노릴 수 있는 장타력은 있지만 애초 타율이 낮기 때문에 장타율도 그만큼 낮다. 선구안도 좋지 않아 출루율도 낮기 때문에 전체적인 생산력이 좋지 못한 편이다. 게다가 발도 느리고, 페이크 번트 슬래시를 매우 잘 하는 타자지만 희생번트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작전수행 능력도 좋은 편이 아니다.[6]


4.2. 탁월한 수비력과 유틸리티 능력[편집]


그러나 지석훈이 1군에서 백업 선수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활용도가 높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지석훈은 2루수, 유격수, 3루수 수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대주자 기용이 잦은 NC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5년 모창민의 부진으로 주전 3루수가 됐으나, 2016년 박석민이 FA로 팀에 들어오게 되면서 얼마간 백업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팀내에서 내야 전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능력과 작전수행 능력 등은 감독이 경기를 운용을 하다 벽에 부딪혔을 때 ‘만능키’같은 역할을 했다.

내야 유틸리티 요원으로서 내야 어느 포지션을 맡겨도 수비력이 상당히 안정적이다. NC의 주전 내야수들이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빠져야 할 될 일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곧바로 그 자리를 무난하게 메울 수 있는 슈퍼 백업이라는 점과, 전술했듯이 전체적으로는 공격력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깜짝 홈런을 터뜨리는 장타력이 있기 때문에 하위타선에서 은근히 타점을 올리는 모습도 자주 나온다. 한 기사에서 언급한 빨간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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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9일 kt전 3루수 호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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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2일 한화전 3루수 호수비
}}}
2017년 8월 18일 한화전 유격수 호수비
}}}
2020년 8월 5일 한화전 2루수 호수비
2020년 한국시리즈 1차전 3루수 호수비

NC 데이터 팀장이자 스카우트 팀장인 임선남은 인터뷰에서 2013 시즌 초반 불안한 NC의 내야 수비가 지석훈의 영입을 통해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외인투수인 해커, 찰리 등이 땅볼유도형 투수였는데 지석훈의 팀 합류로 수비가 안정화되다 보니 땅볼타구가 전부 아웃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신생팀으로서 야수 뎁스가 얕았던 NC 창단 초창기 내야 전 포지션을 종횡무진하며 손시헌과 함께 팀의 내야를 책임진 선수가 지석훈이였고 지석훈의 성공 이후 NC 덕아웃은 유틸리티 능력이 있는 선수들을 중용하게 된다. 지석훈의 계보를 잇는 선수로 이상호, 김태진 이 있으며[7] 이후에도 김찬형, 박준영, 최정원, 김주원 등의 유망주들을 계속해서 멀티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로 육성하고 있다.[8]


4.2.1. 연도별 각 포지션 출장 기록[9][편집]


연도
2루수
3루수
유격수
2004
2

3
2005

13
43
2006
12
14
27
2007
3

85
2008
4
8
1
2011
21
18
14
2012
16
28
11
2013
95
10
24
2014
47
25
62
2015
29
124
18
2016
58
38
56
2017
29
49
63
2018
19
23
35
2019
18
48
16
2020[10]
25
50
23
2021
15
5
12
통산
393
453
493


5. 말말말[편집]


어릴 땐 세상을 보는 눈이 부정적이었어요. 야구 잘했던 어린 시절만 생각하고 기회가 없는 것에 원망을 했죠. 백업으로 있으니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의 한마디에 쉽게 상처도 받았어요. 그러나 나이도 들고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투정을 부린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요.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를 하게 돼요. 제가 감독이어도, 구단 오너여도 제 타격 성적이면 시즌 후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좋은 지도자들 만난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기회를 안 준 게 아니라 지금까지 기회를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프로 데뷔 18년 만에 이렇게 한국시리즈 첫 안타와 첫 타점도 기록했잖아요. 제게도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하하.

2020년 11월,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프로 데뷔 18년 만에 한국시리즈 첫 안타와 첫 타점을 기록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겸손하게 답하며.

[이재국의 야구여행]'18년차 스페어'에게 온 선물…지석훈의 '할미꽃 인생'


내가 만약 주전이었으면 지금의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백업은 경기에 나가서 잘해야 본전이다. 한 걸음 뒤에 있다 보면, 주변에 또래가 없어지면 이전보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아쉬운 게 더 많아진다. 그렇게 버텨온 덕에 심장이 많이 단단해진 것 같다. 1500경기는 나가야 '많이 뛰었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인 문제가 겹칠 수도 있지만 다시 한 번 버텨보겠다.

2021년 5월 한 인터뷰에서 베테랑으로서 앞으로의 각오를 말하며.

[SW인터뷰] “백업으로 버틴 1200일,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6. 여담[편집]



  • 넥센 히어로즈 시절부터 팬들에게 노안이라는 얘기를 듣는 편이었는데,[11] 이에 대해 팬들은 반어적인 의미를 담아 미남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NC 이적 후 맹활약으로 별명이 우주미남, 진화하면 우주미남 지 'The Space' 석훈[12]. 원래 별명 중 하나였던 "서쿤"에서 착안해낸 마산닉쿤이나 '닉쿤보다 지석훈'이라는 응원 구호도 존재. 허나 본인은 그다지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 하다.

파일:석훈우주미남-2.jpg

  •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역전 결승 2루타를 친 2019년 9월 1일, 닉쿤 본인이 트윗으로 "닉쿤보다 지서쿤"을 인증해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13] 닉쿤의 태국 팬들은 구글 번역을 돌려도 당연히 알 수 없는 내용에 어리둥절해 했다는 후문.# 지석훈 본인도 지인이 카톡으로 전해줘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14]

파일:닉쿤보다.jpg

  • 언젠가부터 NC 팬들이 쿠니쿠니, 쿠니형 등의 애칭으로도 부르고 있는데, 이것이 밈이 되어 지석훈이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엔갤 등에서 'ㅋㄴㅋㄴ'로 도배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냥 시도때도 없이 소환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 2019년 6월 13일자 경기에서 SBS Sports 중계진을 통해 알려진 사실인데, 둘째 아들의 이름을 양의지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의지'로 지었다고 한다. 주변에 의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다 잘 풀려서 그렇게 짓게 되었다고.[15][16] 내 아들 이름은 지의지

  • 비디오머그에서 상술한 하이템플러 주루를 직접 재연했다.



  • 2019년 12월 28일, 2살 연상의 신부와 결혼식을 올렸다.# 위의 아들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속도위반이다.[17]

  • 과거 친정팀인 넥센전만 되면 펄펄 날아서# 히어로즈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18][19]

  •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2022년 기준 히어로즈 프랜차이즈 역사상 '마지막 18번 등번호'를 단 선수이다. 지석훈의 이적 이후 계속 18번은 공번이었던 것. 이에 대한 이유는 현재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7.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3
현대
1군 기록 없음
2004
5
1
1.000
1
0
1
0
2
1
0
1.000
3.000
2005
61
106
.179
19
3
0
2
8
10
0
.209
.264
2006
51
53
.208
11
2
0
1
9
10
0
.323
.302
2007
89
203
.182
37
6
1
2
17
22
0
.268
.25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8
우리
12
9
.000
0
0
0
0
0
1
0
.100
.000
2009
히어로즈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0
넥센
2011
52
109
.220
24
6
1
2
8
9
1
.301
.349
2012
61
104
.173
18
4
1
1
11
11
1
.271
.26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13
넥센 / NC[20]
105
309
.220
68
21
2
3
35
25
2
.302
.330
2014
NC
114
212
.274
58
14
4
6
34
26
1
.340
.462
2015
137
415
.267
111
15
0
11
46
53
4
.328
.383
2016
141
351
.219
77
14
0
9
54
34
0
.278
.336
2017
121
268
.239
64
16
0
6
24
29
1
.318
.366
2018
67
94
.181
17
2
0
1
8
9
1
.238
.234
2019
76
149
.228
34
9
0
2
15
15
0
.299
.329
2020
87
121
.207
25
8
0
1
12
22
1
.300
.298
2021
28
34
.147
5
1
0
0
2
6
0
.302
.176
KBO 통산
(16시즌)
1179
2504
.225
564
120
10
47
283
277
12
.298
.337

[1]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유격수 - 3루수 - 2루수 순으로 많이 봤으나 사실 셋 다 엇비슷해서 큰 차이는 없다.[2] 넥! 센! 히어로즈 지석훈~ 워어어 안타 지석훈~ 넥센 히어로즈 지석훈 워어~ 안! 타! 지석훈~ x2[3] 빠바바 NC 지석훈~ 다이노스 NC 지석훈~ 라랄랄랄 랄랄랄랄라~ 라라라라 소릴 높여봐~ 지석훈 날려버려~[4] N~C NC NC 지~석훈~ 안~타 안타 치는 NC 석훈~ N~C NC NC 지~석훈~ 안타! 안타! 지석훈(x2)[5] KBO 기록실 기준. 기존은 스탯티즈 기준이었는데, 아는 야구팬들은 알다시피 스탯티즈의 기록은 불완전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특히 수비와 주루부분에 있어서.[6] 2016년 한국시리즈 번트 2병살이 대표적이다.[7] 허나 두 명 모두 공교롭게도 그 활용성을 인정받아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KIA 타이거즈로 떠났다.[8] 이후 2021 시즌 중반 김찬형 마저 SSG로 떠났고 2021년 후반기부터는 박준영이 유격수/3루수, 김주원이 유격수/2루수, 최정원이 주전 2루수 기회를 부여받으며 활약하고 있다.[9] KBO 기록실 기준. 기존은 스탯티즈 기준이었는데, 아는 야구팬들은 알다시피 스탯티즈의 기록은 불완전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특히 수비와 주루부분에 있어서.[10] 데뷔 이후 처음으로 1루수로도 1경기 출전했다. [11] 일각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흡사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도 평한다.[12] NC 다이노스 공식 페이스북에서 친 드립이다.[13] 평소에 2PM 멤버들이 트위터에서 본인들 이름을 서치해서 팬들한테 답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경로로 닉쿤에게도 전해졌다고 추정된다. NC 팬들 사이에 널리 쓰이는 밈이라 멤버들의 검색 키워드에 걸린 듯.[14] 이날 상대 투수가 양의지를 거르고 지석훈을 상대했던 것을 보고 NC 팬들은 양거지라는 별명도 만들었다.#[15] 2020년 3월 엔튜브 영상에서 지석훈의 입으로 직접 비하인드가 전해졌다. 처음엔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난 반으로 시작했는데, 그 얘기를 부인에게 했는데 생각보다 진지해졌고 결국 그대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들 이름 부르기가 너무 어색했지만 지금은 많이 적응했다고.[16] 양의지엔튜브 영상에서 직접 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본인의 학창시절 김의지라는 동창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변호사가 되었다면서 '의지'라는 이름이 잘 되는 이름인 것 같다고 지석훈에게 부추겼다고 한다.[17] 나성범을 비롯해서 박석민, 모창민, 이상호, 김태군, 최금강 등 NC에는 유독 혼전임신을 했던 동료들이 많다. 실제로는 운동선수들 중에서 이러한 케이스가 꽤 많은 편인데, 나성범도 이런 경우였지만 스프링캠프 등 활동기간이 겹치는 문제로 인해 혼인신고를 먼저 한 뒤에 식 자체는 시즌 종료 후에 늦게 치르는 케이스를 자주 볼 수 있다.[18] 커리어 통산 타율이 0.230도 안되는데 대 넥센전 타율만 3할대 후반. 이정도면 키나쌩도 역적 수준이다.[19] 지석훈의 자리를 꿰찬 내외야 백업 유틸리티로 김지수나 유재신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공격에서는 미흡해서 지석훈만 못했다. 물론 넥센도 현대시절부터 꾸준히 지석훈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그때는 본인이 못해 기회를 못받았으니 할말은 없지만. 2019 시즌 기준 유재신이 트레이드로 기아로 내려가면서 내야 유틸리리 자리엔 김지수 혼자 남게 되었다.[20] 2013년 4월 18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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