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갈등/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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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2. 라코니아 현 VS 메시니아 현
3.1. 유럽 러시아(우랄산맥을 경계로 서부지역) VS 시베리아 혹은 북아시아 지역(우랄산맥을 경계로 동부지역)
3.2. 러시아 본토 VS 체첸, 다게스탄, 잉구시 등 북캅카스※
3.3. 러시아 본토 VS 칼리닌그라드
4.1. 홀란트 VS (서)프리슬란트※
4.2. 홀란트를 비롯한 개신교 5개주 VS 노르트브라반트+림뷔르흐주
4.3. 홀란트 북부 VS 홀란트 남부★
5.1. 구 동독 VS 구 서독
5.2. 바이에른 VS 독일의 나머지 지역
5.4. 프랑켄 지역 VS 그외 바이에른 지역
5.5. 동프리슬란트 VS 하노버를 위시한 나머지 현 니더작센 지역들
7.2. 바스크 VS 카스티야※
8.1. 남부 포르투갈 VS 북부 포르투갈
8.2. 포르투갈 본토 VS 마데이라 제도
9.1. 지역 전체
9.3. 이탈리아 본토 VS 시칠리아, 사르데냐 등 섬 지역
10.3. 잉글랜드 남부 vs 북부
10.4. 스코틀랜드 남부 vs 북부


1. 개요[편집]


  • ※표는 민족, 인종, 종교 간 갈등 사례다.
  • ★표는 제1도시 VS 제2도시와 제3도시, 예전 수도 VS 현재 수도와의 갈등이다.
  • 해외 사례는 이웃나라/한지붕 두가족 항목과도 관련이 깊다.


2. 그리스[편집]



2.1. 아테네 VS 테살로니키[편집]


그리스 제1의 도시이자 수도인 아테네와 그리스 제2의 도시이자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테살로니키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테살로니키를 포함한 북부 그리스의 경우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중심으로 한 독립전쟁에 앞서 봉기한 적이 있었지만, 남부 그리스 지방의 무관심으로 (+ 지리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인 트라키아와 너무 가까운 관계로) 오스만 제국에게 진압되어, 먼저 1827년에 독립했고 1832년에 국왕과 정부를 형성한 남부 그리스에 속한 그리스 왕국과 달리, 1912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그리스에 통합되었지만 그 후로도 극단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그리스 정부에 의해 한동안 튀르크인이라며 차별적 대우를 받은 역사가 있다.[1]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아테네에 모든 것이 쏠려있는 수도권 중심현상으로 다른 지방들이 소외되자, 그 지방도시들의 리더격으로 테살로니키 vs 아테네 구도가 형성된 것.


2.2. 라코니아 현 VS 메시니아 현[편집]


라코니아는 알다시피 고대 스파르타이고, 메시니아(고대 발음으로는 메세니아)는 이들이 고대에 정복해 주민들을 노예로 삼은 지역이다. 스파르타의 노예계급인 헤일로타이의 조상이 이 메세니아인들. 하지만 2500년이나 된 일로 여전히 적대감정에 있다는 건 조금 무리있는 해석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중세 이후 메시니아 지방에 이주해오기 시작한 알바니아계 유목민들이 이 지방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이웃한 스파르타인들과 민족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벌 의식까지 있어서 메시니아 지방, 특히 현청소재지인 칼라마타와 라코니아 현의 현청 소재지인 스파르타는 모두 세계적인 올리브 생산지라 서로의 올리브가 최고라며 싸운다.


3. 러시아[편집]



3.1. 유럽 러시아(우랄산맥을 경계로 서부지역) VS 시베리아 혹은 북아시아 지역(우랄산맥을 경계로 동부지역)[편집]


러시아의 경우 땅이 워낙 넓긴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지역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이 발전한 곳과 발전하지 않은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유럽 러시아(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는 유럽과 가깝기도 하고 대도시들이 몰려 있으며, 중심지도 유럽에 속하는 지역에 있다보니 이곳이 조금더 잘 산다. 하지만 시베리아, 우랄 지역 및 극동 지역에는 중심지와 거리가 멀거나 소도시 및 농촌 등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다보니 대표적인 도시 정도를 제외하면(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첼랴빈스크 등) 경제적으로는 확실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리고 몇몇 시베리아 출신 사람들은 시베리아 지역주의 운동이라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사람들도 약간 있다고 한다. 물론 그래봤자 극소수인데다가 많지 않아서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시베리아 지역주의는 19세기 때 나타났으며 역사적으로도 죄수들의 유배지이기도 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이 심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는 적백내전 때도 그 성격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특히 적백내전 때는 몇몇 백군들이 시베리아에서 분리 독립을 시도하려고 하기도 했었으나 결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지면서 1918년 분리독립은 실패로 끝났다. https://en.wikipedia.org/wiki/Siberian_regionalism. 유럽 러시아 VS 러시아령 북아시아 지역 주민들의 감정은 소련시절에도 달라진 점은 없었으며 이는 현대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 갈등의 핵심은 러시아의 경제구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러시아에 부를 안겨주는 지역은 시베리아인데, 정작 정치, 사회적 혜택은 서부 러시아가 온전히 받는다는 것이다. 말이 러시아 연방이지 사실상 서부 러시아가 동쪽 자치공화국을 식민지배하는 구조와 다를바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3.2. 러시아 본토 VS 체첸, 다게스탄, 잉구시 등 북캅카스※[편집]


소수민족 분리주의 및 러시아의 지역감정 중 최악으로 좋지 않은 곳. 체첸 등을 포함한 북캅카스의 여러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러시아 정교를 믿는 러시아인과 다르게 이슬람교를 믿어서 반러 감정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도 반러 항쟁이 루스 차르국 시절부터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북캅카스 지역은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못지 않게 대우가 안 좋았고 차별도 심했다. 지금은 치안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분쟁이 끝나지 않았고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다가 지금도 가끔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만큼 위험한 곳 중 하나이다.


3.3. 러시아 본토 VS 칼리닌그라드[편집]


칼리닌그라드는 본래 러시아로 대표되는 동슬라브 문화권이 아니었다. 고대에는 발트족이 살고 있었으며 이후에는 동방식민운동의 영향으로 독일인이 이주해오거나 발트족이 독일화되는 일이 일어나 독일문화권으로 완전히 편입되어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훗날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수많은 독일계 주민들이 학살 내지는 추방되고 그 빈자리를 러시아계 이주민들과 일부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이 메우게 되었다. 그렇게 소련 영토가 된 쾨니히스베르크는 처음에는 러시아식 발음인 쿄니크스베르크로 불리다가 나중에 미하일 칼리닌의 성을 딴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소련 영토일 당시에는 러시아 본토와 육로로 이어져 있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소련 해체의 영향으로 월경지가 됨에 따라 러시아 본토와의 육로가 막혀버리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 본토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무려 러시아계 주민들이 프로이센 왕국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러시아의 쌍두독수리와 달리 머리가 1개만 있음)을 쓰거나 지방 정부에서 이전 통치국이었던 독일 기업들의 해당지역에 대한 투자를 권유할 정도이다.


4. 네덜란드[편집]



4.1. 홀란트 VS (서)프리슬란트※[편집]


역사적으로 근간이 되는 민족이 달랐고(바타비족+프랑크족 vs 프리시족[2])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굉장히 적대적인 관계였다. 홀란드군에 대항해서 싸운 전설적인 영웅 흐뤼터 피어르의 무용담이 지금도 전해질 정도이다. 현대에도 프리슬란트는 독자적인 언어와 정체성을 유지하며 자신들을 홀란트인으로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4.2. 홀란트를 비롯한 개신교 5개주 VS 노르트브라반트+림뷔르흐주[편집]


밑의 독일 북부 VS 남부와 비슷한 사례. 전통적으로 노르트브라반트는 남쪽의 벨기에 브라반트와, 림뷔르흐는 남쪽의 벨기에 림뷔르흐와 하나였으나 독립전쟁 와중에 스페인에 굴복한 남쪽 절반과 달리 네덜란드 공화국이 이 지역을 그대로 통제하고 있었기에 네덜란드 공화국에 합류한 케이스다. 또 이 두 지역은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개신교화된 네덜란드 내 다른 지역과 달리 여전히 가톨릭이 우세한 곳이었고 때문에 타 지역들과 약간의 정서적 앙금이 있다.


4.3. 홀란트 북부 VS 홀란트 남부★[편집]


같은 홀란트지만 노르트홀란트와 자위트홀란트 간 감정도 은근히 심한 편으로 AFC 아약스 VS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이라는 두 도시 축구팀의 대결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북부는 상업적, 문화적 기능을 떠맡아오면서 자유분방하고 관용적인 분위기가 일찍 정착한 반면 로테르담, 헤이그, 델프트로 대표되는 남부 지역은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서 기능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종교분포에서도 노르트홀란트는 마르켄 섬을 제외하면 1970년대 이후 도시권과 농어촌을 막론하고 완전히 세속화된 반면 자위트홀란트는 여전히 도시, 농촌 막론하고 개신교가 20% 남짓 차지하며 네덜란드판 바이블벨트를 이루고 있는 지역들 중 하나로 통하고 있다.


5. 독일[편집]


파일:독일어 방언지도.png




독일어 방언 지도
2017년 독일 연방하원 선거 결과[3]
연방제이고 지역갈등이 있지만, 50개주 모두 서로 미국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미국과 달리 지역감정의 수위가 높은 편이다. 구 동독 vs 구 서독 갈등과 바이에른 vs 그 외가 가장 대표적이다. 특히 후자는 서로를 독일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이다. 갈등의 수위에 비해 분리독립을 향한 정치적인 움직임은 크지 않다.

5.1. 구 동독 VS 구 서독[편집]


1945년 동서 분단이 되었다가 1990년에 통일의 결실을 이루게 되었지만 통일 이후에도 구 동독의 풍습과 구 서독의 풍습간 충돌과 지역간 언어소통과 이념문제의 잔재 등으로 여전히 대부분 상호간의 괴리감과 불신감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동서 분단시절 남아있는 고질적인 사회주의 성향과 자본주의 성향이 충돌하기도 하여서 통일 이후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일부 옛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보고 공산당에 물든 XX들, 사회주의에 미쳤더니 민주주의도 모르는 바보들이라고 비하하고 옛 동독인들도 서독인들에게 자본주의와 돈에 빠져 환장한 것들이 뭘 알아, 부자놈들만 살찌웠던 자본주의 돼지들이라며 헐뜯고 비방하였을 정도였다. 옛 동독인들을 비하할 때는 오시(Ossi), 옛 서독인들을 비하할 때는 베시(Wessi)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남북한과 비슷하기에 남북한에 자주 비견된다. 그러나 동독은 철저한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돌격대를 만들어 무임금으로 사람을 굴리는 북한에서의 경험대로 노동권을 몰라 돈을 받지 않고 일하다가 그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된 탈북민도 존재할 지경이다. # 여성 인권, 복지도 동독이 더 낫다고 할 면이 있었다. 특히 사회주의 이념에 긍정적인 동독 출신 인사는 북한의 세습을 매우 싫어한다. # 북한은 주민이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돈을 주고 직장에서 빠져 나와 장사를 해서 간혹 많은 돈을 버는 경향이 있는데 김정은이 '비사회주의'라며 싫어하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모습이 있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탈북민은 북한에서 김일성 찬양하던 트라우마를 느껴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

근래에는 독일을 위한 대안지역기반이 구 동독이라 구 서독지역 사람들이 이를 근거로 구 동독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례도 자주 보인다.


5.2. 바이에른 VS 독일의 나머지 지역[편집]


독일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바이에른주로 대표되는 남부 독일과 북부 독일간의 지역감정이 꽤나 강하다.

분데스리가에서도 드러나고[4] 서로서로 아니꼽게 생각하는 듯. 타 지역과 달리, 바이에른 지방의 텔레비전에서는 바이에른 가(歌)를 먼저 연주한 뒤에 독일 국가를 연주한다.

그리고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 의하면, 바이에른 사람에게 독일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자기는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대답할 정도라고 한다. 이는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계기로 그를 지지한 북부 독일지역(프로테스탄트)과 가톨릭을 사수하는 남부 독일로 양분된 것에서 비롯된다. 중세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웃 영국이나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왕국으로 통일되어갔지만 독일은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틈을 이용하여 프랑스 등은 독일이 통일왕국으로 이루지 못하도록 개별 영주들의 주권을 모두 인정해 주는 바람에 독일은 수백개의 영방국가가 난립하게 되었다. 이후 북동부의 군사 강국으로 부상한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당시 독일에서 프로이센 다음으로 큰 나라[5]였던 바이에른 왕국은 통일 이후 완전 찬밥 신세가 되면서[6] 북부 독일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바이에른 주 사람에게 독일사람이냐고 물으면 자신은 독일 사람이 아니라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7]

2017년의 기사에 의하면 바이에른 주민의 3분의 1이 독립을 원한다고 한다. 격렬한 시위를 벌이면서 독립운동을 외치는 카탈루냐나 연방 혹은 국가의회 하원의석을 상당수 점하여 직간접적으로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스코틀랜드플란데런과는 달리 독립을 외치는 독립파정당이 연방의회에 없는 등 딱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 않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플란데런 vs 왈롱 같은 (정치적으로) 격한 지역감정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5.3. 바이에른 VS 바덴-뷔르템베르크[편집]


이 지역은 좀 사정이 특이한데 바이에른주는 독일에서도 상당히 경제력이 뛰어난 주로 유명하다. 게다가 한때 남부독일을 대표하는 왕국이었고 주가 된 역사를 따져도 바이에른이 바덴-뷔르템베르크보다도 앞서는 상황일 정도로 바이에른의 자존심은 강한 편. 반면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종교개혁 이래 독일 개신교의 남방한계선을 이루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모든 면에서 바이에른과 맞먹는 만큼 바이에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바이에른 대표로 BMW가 있다면 바덴-뷔르템베르크 대표로는 벤츠가 있다. 과거에는 프로이센으로 대표되는 북부와 오스트리아로 대표되는 남부의 극심한 대립이 있었고, 그 중간지점인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1848년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양 국가가 모두 몰락해버린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과 손잡았다 하면 망하기 일쑤라서, 한때는 같은 독일인이라고 했다가도 지금은 굉장히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5.4. 프랑켄 지역 VS 그외 바이에른 지역[편집]


프랑켄 지역은 본래 바이에른에 속하지 않았던 곳이나 바이에른 공국이 프랑켄 지역을 합병하면서 현재 독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바이에른에서는 바이에른 방언이 쓰이지만 프랑켄 지역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5.5. 동프리슬란트 VS 하노버를 위시한 나머지 현 니더작센 지역들[편집]


동프리슬란트의 경우 역사적으로 다른 북독일 지방과 달리 도시가 상대적으로 덜 발전해있어 깡촌으로 무시당하던 역사가 있었다. 여기에 언어적, 종교적으로도 주변과 매우 달라서[8] 더더욱 별종 취급을 당하곤 했다.[9]


6. 벨기에[편집]


플람스 공동체 VS 왈롱-브뤼셀 연방이 가장 유명하고 이외에 왈롱-벨기에 독일어 공동체와 왈롱-뤽상부르주 사이의 미묘한 지역감정이 존재하나 플람스 공동체 VS 왈롱-브뤼셀 연방에 비할 바가 못된다.


6.1. 플란데런 VS 왈롱(플람스 공동체 VS 왈롱-브뤼셀 연방)[편집]


파일:벨기에의 공동체 지도.svg
플란데런 운동, 왈롱 운동

이 갈등을 민족갈등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벨기에의 지역갈등은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소수의 상위계층이 플람스 방언 구사자들을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차별을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건국 초기부터 프랑스어 단일 공용어 정책을 밀다가 1840년에 플람스 운동이 일어났고, 1870년에는 네덜란드어화 될 것을 우려한 남부지역에서 왈롱 운동이 일어났다. 1898년에는 언어평등법이 만들어지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다가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플람스 운동이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모직물과 무역으로 번성하던 플랑드르(플란데런)가 산업 혁명을 계기로 급격히 추락하고, 석탄과 철광석 등이 몰려있던 왈로니가 발전하다가, 중공업이 몰락하며 왈로니가 추락하고, 반대로 플란데런은 금융과 관광업으로 다시 뜨는 복잡한 경제상황을 거치면서 양측의 대립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역감정의 사례들 중에서 당장 독립할지도 모를 곳을 꼽으면 단연 1순위에 오를 만한 지역. 현지 체감상으로는 서로 싫어하는 정도가 스페인보다 더 한듯하다. 실제로 연정 구성 실패로 몇달 간 무정부 상태가 된 적도 있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농담조로 이들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 3가지가 있는데, 브뤼셀(수도)[10], 왕실, 그리고 벨기에가 진 막대한 외채 때문이라고. 양쪽은 서로 결혼도 잘 안한다고 한다. (결혼 잘 안하는게 아니라 플란데런 사람과 왈롱인이 결혼하면 국제결혼으로 간주한다! 실제 자녀도 혼혈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대다수) 더 특이한건 언어권과 문화권이 달라서 벨기에 국내에서 서로 상대방 문화권으로 교환학생을 갈때 아예 에라스무스 지원을 받는다. 즉, 애초에 서로 독립된 지역/준국가 로 취급하는 상황.[11]
정치권에서의 지역갈등과 달리 개인간의 지역갈등은 언론에서 보이는 것 만큼 심하지는 않은 편이고 두 지역간 정치성향도 극단화 돼있지는 않다. 밖에서 보여지는 갈등과 내부에서 보는 모습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바이에른과 나머지 독일지역간의 갈등과는 대조적이다.


6.2.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 VS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편집]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벨기에의 영토가 되기로 했던 날은 고작 3만 3천명의 유권자 중 272명만 반대했다. 그러나, 벨기에 동부 지역은 상당수가 독일어 화자인 곳이었고 동화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때 이들은 독일의 편에 섰으나, 종전 후에는 벨기에에 남았다. 지금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주민의 정체성은 누구보다도 더 벨기에인이라고 한다. 국가 개혁을 거쳐 상당수의 권한이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로 이양됐지만 여전히 경제에 관련된 권한은 왈롱에 남아있기 때문에 Pro DG와 같은 지역주의 정당이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2024년부터는 다시 국가 개혁에 들어가는데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의 축소 혹은 해체가 주요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도 자치권 확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7. 스페인[편집]



7.1. 카스티야(마드리드 일대) VS 카탈루냐(바르셀로나 일대)※★[편집]


카탈루냐 지방에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19세기 초부터 섬유산업을 주축으로 하면서 근대공업이 발달하여 시민사회의 형성이 진행되었다. 이에 대하여, 카스티야 및 안달루시아의 두 지방에는 교회 ·지주 ·귀족의 지배하에 반봉건적 농촌사회가 유지되었고, 역대 정부의 권력기반이 되었다. 그 때문에 카탈루냐 산업이 필요로 하는 국내시장을 확보할 수 없는데다가 정부가 지주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관세장벽은 값싼 외국산 곡물의 수입을 막아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카탈루냐가 수출하는 공업제품에 대하여 보복관세를 부과하였다. 그렇게 되자 도시노동자의 생계비 상승과 실업률의 증가 등으로 카탈루냐의 산업가(産業家)와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반정부 · 반중앙집권의 기운이 조성되어 외교 ·군사 ·통화를 제외한 국가주권의 대폭적인 카탈루냐로의 이양에 의한 고도의 지방자치권 획득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연방공화정의 수립과 카탈루냐어의 공용화(公用化)를 요구하였으나,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1920년대 반정부운동은 아나키즘을 지도이념으로 삼은 카탈루냐의 노동운동의 영향으로 사회혁명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산업가층은 정부와 손을 잡기에 이르렀고, 1930년대 이후도 지방적 요인과 계급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대립구도를 형성하였다. 1977년에는 1938년 이래로 총통 프란시스코 프랑코에 의하여 박탈되었던 자치권이 회복되었다. 특히 프리메라 리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FC 바르셀로나 간의 클래식 더비엘 클라시코가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엘 클라시코 항목 참조. 스페인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우승하자 카탈루냐가 분리독립을 요구하여 분리 출전 떡밥이 나왔다.

이들이 서로를 비하하는 말도 있는데 카스티야는 카탈루냐를 가리켜 바르카(Barca, 쪽배)라고 하며 카탈루냐는 카스티야, 더 정확하게는 레알 마드리드를 가리켜 푸따 마드리드(puta Madrid, 창녀 마드리드) 혹은 메렝게(Merengue) 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자적 정체성을 지녔지만 카스티야어가 쓰이고, 스페인의 일부임을 주저하지 않는 남부 안달루시아는 카스티야 편을 들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가난한 남부지방의 대표주자인 안달루시아 입장에서는 부유한 카탈루냐와 바스크가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남부를 지원하기 싫다는 지역이기주의와 남부를 아랍 혼혈이라고 혐오하는 우생학의 발로 정도로 보고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정열과 농업으로 대표되는 남부와 차분함과 상업으로 대표되는 북부의 문화차이 역시 안달루시아와 카탈루냐의 대립을 부추긴다.

7.2. 바스크 VS 카스티야※[편집]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에 걸쳐 있는 바스크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터줏대감이다. 이들은 중세까지 나바라 왕국으로 독립국가를 유지했으며 언어도 독자적인 바스크어를 사용하고 있다.[12] 20세기 들어서는 스페인 내전에서 국민군에게 얻어터지고, 전후에 전개될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강압 통치에 반발, 망명 정부를 수립하고 꾸준히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6년에 스페인 정부와 영구 휴전을 체결했지만 1년만에 파기되었다. 일단은 1979년부터 자치중인 상태.


8. 포르투갈[편집]



8.1. 남부 포르투갈 VS 북부 포르투갈[편집]


옆나라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바스크, 카스티야의 갈등만큼은 아니어서 그렇지, 포르투갈 역시 수도 리스본이 위치한 남부 지역과 제2 도시 포르투가 위치한 북부 지역 간의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역감정의 구도는 옆 나라 스페인보다는 동쪽 먼 나라인 이탈리아[13]와 유사한 면이 있는데, 포르투중심의 포르투갈 북부의 경우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흑갈색의 머리에 수염이 긴 북아프리카인 외모와 흡사한 포르투갈인의 이미지와는 달리 켈트, 게르만형질이 강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많은 편인데, 리스본 중심의 남부와 리스본과 가까운 포르투갈 중부에 사는 사람들과의 외모가 차이가 보이는 편이라 포르투갈 북부 사람들이 남부 사람들 보고 무어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단 여기서 1차적으로 서로간 편견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포르투갈 북부의 경우 포르투갈 왕국의 기초가 확립된 포르투갈 백국이 이 지역에서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헤콩키스타로 무려 5세기에 걸쳐서 포르투갈 국토를 회복 하였고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세워졌으므로 이 곳이 원조라고 생각하며, 리스본중심의 포르투갈 남부의 경우 포르투갈이 본격적으로 역사적인 전성기를 맞이 했을 때 리스본 중심으로 돌아갔었고 지금까지 수도를 명백히 유지하므로 당연히 포르투갈의 중심은 남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포르투갈의 정통성을 가지고 2차적으로 싸우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으로 대항해시대부터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얻고 리스본이라는 도시를 발전을 하였고[14] 당연히 포르투갈의 경제는 수세기 동안 리스본으로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현대에서도 무역, 스타트업 및 국제 기업 유치 등 리스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포르투갈 내 1인당 지역 소득이도 가장 많고, 땅값은 당연히 포르투갈 전지역중 가장 비싸다. 그러면 여기서 포르투갈에서 그다음으로 포르투가 1인당 지역소득이 더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리스본 최남단 알가르브주가 리스본 다음으로 더 많다. 사실 포르투갈 북부 지역이 예전부터 인구도 많은 편이었고[15]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 경제규모가 큰 나라와 그나마 가까운 편이라 1차산업이 주였던 1960~1970년대 만해도 인구가 그나마 많은 포르투 중심의 포르투갈 북부에서 그나마 공장이 잘 돌아갔었고 도로, 교통, 항만 등 사회인프라 시설이 마련이 되어 있었으며, 5세기 이상 영국과의 동맹관계로 인해서 이미 무역과 상업이 발달했는데, 포르투 또한 해안 도시여서 수도인 리스본 못지 않게 이 부분에 관해서 인프라가 포르투갈 내에서 상당히 발전한 지역이였다. 그래서 한 때는 "포르투갈 남부에서 농사를 짓고 중부(코임브라)에서 교육받고 북부에서 일하고 리스본에 와서 돈을 쓴다." 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독재시절이 끝나고 포르투갈이 공식적으로 1986년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해외로 진출이 자유로워 지게 되자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북부대신 아예 해외로 나가기 시작하고, 공업과 상업위주로 발전했던 포르투 중심의 포르투갈 북부지역의 인건비가 거의 항상 동결이 되거나 오르는 속도가 포르투갈 남부지역에 비해서 더디게 되었다.[16] 그리고 포르투갈 경제가 90년대 이후 관광, 서비스업, 스타트업 등 3차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자 포르투갈 정부는 아예 리스본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하는 계획을 잡게 되었고[17] 지금도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도인 리스본에 집중적으로 해외법인을 허가해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포르투갈이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를 이용하여 러시아,튀르키예, 중국 등 유럽에 비자를 받아야 입국이 허가 되는 개발도상국 국가들 상대로 이민유치 사업을 하고 있으며[18] 타 유럽연합 회원국 상대로도 연중 200일 이상 일조량을 보이고 따듯한 기후의 포르투갈 남부에 부동산을 매매할 경우 세금을 면제해주는 혜택으로 은퇴이민을 유치하는데, 날씨가 흐리고 쌀쌀하고 겨울에는 밤이 긴 영국, 독일 등에서 자국보다 훨씬 저렴한 포르투갈의 부동산을 구매하여 남은 인생을 날씨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투자금을 땡길 수가 있는데, 포르투갈 북부는 연중 쌀쌀하고 흐리고 비오는 날이 많아 이들에게 매력적인 이민도시로 뽑히지 않는다.[19] 그래서 상대적으로 포르투갈 남부로 몰리게 되는데, 그 결과 포르투갈 남부가 북부보다 리스본을 제외하면 인구도 적고 인프라 시설도 부족[20]하지만 해외 투자금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많아 땅 값이 더 높으며, 상대적으로 높은 땅값을 이용하여, 부동산 임대, 토지매매, 호텔 및 숙박시설, 휴양시설, 리조트시설 등 사업이 활발한 편이며, 이를 토대로 남부지역의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경제상 지표로 봤을 때는 남부가 북부보다 경제적으로 우위라고 볼 수 있다.[21] 하지만 북부 사람들 입장에서는 남부 지역사람들을 무식한 졸부로 보고 남부사람들 입장에서는 북부 지역사람들을 무뚝뚝하고 일만하며, 똑똑한척이나 하지만 못사는 거지로 보는 편견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돈이 몰리는 곳에 사람이 몰린다고 북부지역 인구는 계속 줄고 있고 리스본은 계속 인구가 늘고 있어 북부지역 사람들도 리스본이 포르투갈내 부동 1위인 것은 인정하는 편이다.[22] 하지만 알렌테주 주, 알가르베 주 지역과 포르투갈령 섬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코임브라, 아베이루, 비제우, 레이리아 등이 있는 포르투갈 중부(Centro)의 경우 리스본과 가까운 지역은 남부쪽을 따라 가려고 하는 편이고 포르투와 가까운 지역은 북부지역을 따라 가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도 포르투갈의 남북갈등은 전반적으로 남부지역의 경제적인 우위로 인한 격차에 따른 갈등 빼고는 어느 지방출신이든 포르투갈인 그 자체로서 정체성을 잘 갖춘 편이다. 하나의 국가에 대한 소속감보다는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난 지방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는 동시에 자부심까지 갖춘 스페인보다는 프랑스처럼 하나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정체성과 자부심이 상당하다.


8.2. 포르투갈 본토 VS 마데이라 제도[편집]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외로 지역감정이 상당한 편이다. 과거 주제 무리뉴 감독이[23]마데이라 출신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두고 마데이라 출신이라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무리뉴가 독설가라는 것과 호날두의 인성 문제가 있다고 쳐도 마데이라 섬 전체를 가지고 저런 인터뷰를 했다는 건 지역감정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9. 이탈리아[편집]



9.1. 지역 전체[편집]


이탈리아는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후 중세를 거쳐 도시국가로 꾸준히 분열되어 왔었기에 이탈리아라는 한 집단체로서의 인식이 매우 적다. 오죽하면 이탈리아 통일의 일등공신 중 하나인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수상 카밀로 카보우르가 통일 이후 "이탈리아는 창조되었다. 이제는 이탈리아인을 창조할 차례다." 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 근데 그게 고작 백여 년 전이다! 중세에 중부 이탈리아에 교황령이 생기면서 북부와 남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단절된 역사가 오랜동안 지속되었다. 현재도 북부와 남부의 소득 격차가 매우 심하고[24] 축구의 열기가 매우 강하기때문에 지역감정이 매우 심하다. 어떤 이탈리아 만평에는 조각난 이탈리아 국기를 실로 겨우 꿰매놓은걸 가지고 현재의 이탈리아라고 묘사했을 정도.

사실 이탈리아 동질 정체성이 없던 것은 아니고 결국 민족주의가 발흥해 19세기에 이탈리아 통일을 이룩하기는 했으나, 도시국가로 갈라져있던 세월이 워낙 길다보니 민족주의의 중심지 북부에서도 지역끼리 이질감과 지역감정이 심한 편에 속했고[25] 통일 당시 전근대적인 면모가 많았던 남부를 근대 국가로 제대로 흡수하는 데에 실패해 지금도 그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역으로 이런 상황을 타개하겠다며 20세기 중반에는 강압적으로 민족주의와 국가 의식을 불어넣으려 한 이탈리아 파시즘이 발흥하기도 했다.


9.2. 북이탈리아 VS 남이탈리아 VS 로마[편집]


통일 이전 북이탈리아는 피렌체, 제노바, 밀라노, 볼로냐, 베네치아 등등의 수많은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던 반면 남이탈리아는 나폴리와 양 시칠리아 왕국 등 통합된 역사가 길어 서로간에 유대감이 적고, 북이탈리아가 발달된 상공업으로 남이탈리아보다 부유해 경제적인 갈등도 극심하다.[26] 2010년대에 오성운동과 함께 이탈리아 정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동맹도 원래는 북부 지역의 독립을 목표로 했던 정당이다. 더 황당한 건 이런 남북간 지역 감정을 중부에 위치한 수도 로마에서는 별개의 일이라며 무시하고 있다. 이탈리아 남북의 지역감정은 한국으로 치면 남북한 사이의 지역감정보다 크고, 오히려 조선족과 남한사람들의 지역감정보다 더 심한 수준이라 봐야 하다. 반감이 한국인들이 추측하는 것보다 더 심하며, 마치 생물학적으로 다른 민족을 대하듯 생각한다.


9.3. 이탈리아 본토 VS 시칠리아, 사르데냐 등 섬 지역[편집]


심지어 이탈리아는 같은 이탈리아 본국 안에서 남부, 북부끼리 갈등이 있는것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 본토 지역과 시칠리아, 사르데냐 등 섬 지역과도 갈등이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 남부 본토 지역은 그나마 개발이 되는 등 나은데 반해 시칠리아, 사르데냐는 늦게 개발되거나 아직도 경제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낙후된 마을들이 있을 정도로 본토와 차이가 극심하다.특히 시칠리아의 경우 시칠리아가 마피아라는 단어의 원조이니만큼 폭력적이거나 무식하다는 이미지가 본토 지방에 있어, 시칠리아를 싫어하는 본토 이탈리아인들의 반시칠리아 감성에 일조한다.[27]


10. 영국[편집]


구성국간 갈등과 잉글랜드 남북부 갈등이 가장 유명하다.


10.1. 잉글랜드 VS 스코틀랜드 VS 웨일스 VS 북아일랜드[편집]


각 지방사람들 모두가 다른 지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잉글랜드가 침략자 앵글로색슨족이 주류이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콘월은 선주민 켈트족이기 때문이다. 대영제국 시기를 거쳐 하나의 나라라는 유대감이 생겨났지만, 현대에 와서는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이후, 제조업이 집중되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경제적 몰락으로 수도권이자 밀집지역인 잉글랜드에 대한 반목감이 증대되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사이는 좋은 편. 잉글랜드는 내부에서도 북쪽-남쪽 지역간 지역감정이 있고, 북쪽이 남쪽을 싫어하는 이유는 스코틀랜드와 마찬가지로 상대적 낙후 수준에 대한 불만이 크다. 남북갈등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대처 시기 석탄 산업 정리. 사실 네 지방 모두 동군연합이라면 모를까 서로를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의 개념으로 묶어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중 가장 존재감이 약한 웨일스도 독립할까? 라는 여론이 주기적으로 나온다.

이에 더해 런던이나 대도시 내에서는 우편번호를 가지고 차별하는 일종의 소지역주의가 존재한다. 몇 십년 전만 해도 구직자들은 좋은 우편번호 동네의 주소지를 얻기 위해 사투를 벌였을 정도. 이건 정확히 말해 집값의 차이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으로 현대 영국의 대부분의 지역주의는 돈의 분배에 대한 문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28]

북아일랜드의 가톨릭 교도들과 아일랜드 출신은 80년대 까지만 하여도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보이면 경찰에 연행되었으며 취업, 결혼 등에도 차별을 겪었다. 이는 정확히 보자면 지역감정이라기 보다는, 인종차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0.2. 잉글랜드 VS 콘월[편집]


콘월 역시 잉글랜드와 별개의 지역감정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콘월을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처럼 잉글랜드와 별개의 지역체로 구분하려는 콘월 독립운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10.3. 잉글랜드 남부 vs 북부[편집]






칠왕국 지도
잉글랜드 간에도 남북 간 격차 및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이를 영국에서는 The North-South divide라 한다. 수도권(런던)이 있는 남부 지역과 공업지대가 밀집한 북부 지역은 언어[29], 문화, 소득수준 면에서 차이가 존재한다.[30]

역사적으로는 잉글랜드 북부의 대부분은 칠왕국노섬브리아에 속했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토니 블레어 내각 시절 그레이터 런던 의회 신설 주민투표 가결 이후 이 지역에 속하는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의회 신설 주민투표를 시도했다가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이 되어 이후 계획을 무기한 연기한 적도 있었다.

10.4. 스코틀랜드 남부 vs 북부[편집]


같은 스코틀랜드이긴 하지만 잉글랜드의 언어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온 스코틀랜드 남부지역(로우랜드)와 게일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고 남부에 비해 스코틀랜드 고유 문화가 더 짙게 남아있는 북부지역(하일랜드) 간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11. 프랑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역갈등/유럽/프랑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튀르키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역갈등/유럽/튀르키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덴마크[편집]




13.1. 셸란 섬 VS 유틀란트 반도[편집]


수도 코펜하겐이 위치한 셸란 섬과 본토 지역인 유틀란트 반도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존재한다.

13.2. 그린란드 VS 본토[편집]




14. 노르웨이[편집]



14.1. 오슬로 VS 베르겐[편집]


수도인 오슬로와 제2 대도시인 베르겐 사이에 경쟁의식이 있다.


15. 북마케도니아[편집]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와 인접한 북마케도니아의 동남부 지역은 전체적으로 남슬라브 계열의 마케도니아인들이 더 많지만 알바니아와 인접한 서부 지역은 알바니아인들이 더 많으며 2001년에는 슬라브계 동부와 알바니아계 서부 지방의 갈등이 무력충돌로 폭발하기까지 했다.

16. 불가리아[편집]


수도이자 제1 도시인 소피아와 제2도시인 플로브디프 간의 경쟁의식이 존재하고 있다.


17. 세르비아[편집]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세르비아 중남부 본토 지역과 달리, 헝가리와 인접한 보이보디나 자치주 등 세르비아의 북부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세르비아로 복속되었기에 수도 베오그라드와 크라구예바츠, 니시 등 세르비아 중남부 지역에서 사는 세르비아 국민들은 보이보디나 지역의 세르비아인들을 변방 야만인 취급을 하거나 오스트리아나 헝가리인에 동화된 유사 남슬라브계로 취급한다.[31]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보이보디나 등 북부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중남부 본토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분리되어 살아오던 시기가 길어서 그런지 이 두 지역의 세르비아인들 사이에도 지역 전통문화와 정서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18. 체코[편집]


셋다 체코의 영토이지만 수도 프라하 등 주요도시들과 유동인구, 공업 산업단지, 이외 정치, 사회적인 주도권들이 대거 서부 보헤미아 지역에 몰려있다 보니 모라비아와 실레시아 등 동부 지역에서는 보헤미아만 체코냐며 볼맨소리들이 많다고 한다. 그나마 모라비아는 브르노나 즐린 같은 주요도시들도 있고 어느 정도 잘 사는 편이지만, 체코의 3개 지역들중 영토 면적이 작고 지역경제가 가난한 실레시아는 사정이 좋지 못하다.

19. 폴란드[편집]


  • 수도 바르샤바 등 동남부 지역 VS 서부, 동북부 지역
둘다 폴란드의 영토이지만 수도 바르샤바와 우치, 크라쿠프 등 유서깊은 주요도시와 서슬라브계 폴란드인 역대 왕조의 오래된 유적지들이 대거 몰려있고 역사적으로도 원 폴란드 영역이었던 동남부 지역과는 달리, 독일리투아니아,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접한 브로츠와프올슈틴 등 서부 지역과 동북부 지역은 본래는 독일 영토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폴란드 땅으로 합병된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지역 간의 정서 차이가 존재하며 총선과 대선에서 각 여야 정당들의 득표율도 동남부 지역과 동북부, 서부 지역마다 다르게 나올 정도다.


20. 루마니아[편집]


현재 모두 루마니아의 영토이지만 트란실바니아 등 북서부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아 헝가리나 오스트리아 등 유럽 기독교 문명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현재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와 최대 항구도시 콘스탄차가 위치한 왈라키아와 도브로제아 등 남동부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문화적으로 튀르키예 등 중동 이슬람권의 영향을 받는 등 문화적, 정서적 차이로 인한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21. 헝가리[편집]


모두 헝가리의 영토이지만 자국의 대표적인 명물과 인구의 대부분이 전부 다 수도인 부다페스트 쪽에 편중되어 있고, 헝가리 정부에서도 자국 관광 홍보를 할때 대부분 부다페스트를 띄우다 보니 보니 여타 헝가리 지역에서 사는 헝가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야 부다페스트만 우리나라냐?' 라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부다페스트 공화국



22. 크로아티아[편집]


모두 크로아티아의 영토지만 아드리아 해를 맞댄 서남부 연안 지역과 수도 자그레브가 위치한 북부 내륙 지역 간의 지역 갈등이 존재한다. 특히 북부 내륙 지역의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서남부 연안 지역을 그저 여름철에 놀러가는 해수욕장 내지는 돈 나오는 현금인출기로 생각하며, 남부 해안 지역 사람들은 반대로 우리가 더 내륙 북부 지역보다 잘 사는데, 북부 내륙 지방 사람들이 우리 동네 관광 홍보 용도로 이용해먹고 우리네들이 뼈 빠지게 관광업, 어업으로 벌어들이는 돈들 다 갈취해먹는다며 아니꼬워하기도 한다. 게다가 같은 크로아티아면서도 내륙 지역과 해안 지역 모두 지역 전통문화와 음식문화도 다르고[32] 지방 간의 정서적 차이도 존재한다고 한다.

[1] 오랫동안 그리스 북부 총독부가 설치되었고, 지금은 기능을 정지했지만, 아직도 정부조직도상에는 명목상이나마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테살로니키에도 소수의 튀르크계 무슬림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테살로니키는 무려 튀르키예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고향일뿐더러 그의 생가까지 남아있다.[2] 프리시족은 원래 신성로마제국에 복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던 민족이었으나 기어이 복속되어 각각 동서북으로 쪼개졌다. 그래서 독일 북부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북프리슬란트라는 곳도 있다. 또한 프리슬란트어는 영어와 같은 앵글로프라지아어군에 속하여 네덜란드어가 속한 저지 프랑크어군과는 약간 다르다.[3] 하늘색 지역이 작센이다.[4] 바이에른 뮌헨 VS 함부르크 SV라든가 바이에른 뮌헨 VS 베르더 브레멘 등.[5] 바이에른 왕국독일 연방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다음 세번째 강국이었지만 통일을 위한 주도권 전쟁에서 패한 오스트리아 제국은 아예 독일 통일에서 제외되었고, 독일 제국으로 통일되었던 국가 중에서는 바이에른 왕국이 두번째 강국이었다.[6] 통일 후 모든 국가 시스템이 프로이센의 것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황제, 수상도 모두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차지했고 바이에른 왕국은 완전히 배제되었다.[7] 반대로 옛 프로이센 왕국 지역인 브란덴부르크, 작센안할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등에 사는 사람도 바이에른 사람을 독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바이에른의 문화에 대한 동영상을 나머지 독일지역 사람에게 보여주면 화를 내기도 한다. 또한 BMW를 독일의 자동차 회사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BMW 차량 연쇄 화재 사고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독일에 관한 문제가 아닌 바이에른에 관한문제인 것 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안전하다.[8] 표준독일어 사용지역인 하노버와 달리 아직도 저지독일어(Platdüütsk) 방언을 쉽게 들을수 있고, 종교적으로는 네덜란드 국경을 접한 특성때문에 독일 개혁교회(Evangelisch-Reformierte Kirche)의 실질적 지주 역할을 맡는 교회가 레어(Leer)에 있다.[9] 다만 이와 별개로 동프리슬란트에 관한 지역드립은 생각보다 늦게 생겨난 것이다.[10] 정확히 두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며 언어도 두 언어를 섞어 쓴다.[11] 우려와는 달리 실제로 분리독립이 이뤄질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적어도 분리독립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려면 브뤼셀을 흔들어야 하는데, 브뤼셀은 지역의회의 대다수가 프랑스어권 정당으로 이뤄진데다가 원내에 진입한 네덜란드어권 정당도 대부분이 비독립파이기 때문이다. 즉, 브뤼셀 때문에 독립을 못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다.[12] 이 바스크어는 어느 어족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고립어다. 확실한 건 인도유럽어족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거다.[13] 단. 지역간 인종적인 분포에 따른 편견에 관련해서만 그렇다. 이탈리아 또한 스페인처럼 하나의 국가개념보다 지방의 자체 문화를 더 중요시 하는 편이다.[14] 중,근대 시절만해도 리스본은 엄연한 유럽에서 인구 규모나 인지도로 유명한 국제도시였다.[15] 현재도 리스본 수도권 광역지역이 280만명 이고 포르투갈 북부주(North Region) 전체가 360만 정도이다.[16] 사실 포르투갈은 의약산업,신발,의류산업,낙농업,비금속제조와 더불어 코르크제조 산업이 발전한 국가인데, 이중에서 특히 코르크산업은 세계적으로 돋보이는 국가이다. 이를 생산하는 공장 역시 포르투갈 북부에 집약이 되어있는 편이다. 그러나 코르크를 제외하고 포르투갈 내에서 생산되는 경,중공업 제품들은 세계적인 인정받는 고부가가치 제품이 제조업 선진국인 독일, 일본, 대한민국 등에 비해서 미약한지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에 비해서는 인건비가 높으나 제조업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예 관광, 부동산 임대, 토지임대 및 매매, 리조트, 휴양시설 및 호텔 숙박시설, 관광 등 서비스업 위주로 포르투갈 경제가 돌아가게 되며, 이는 경제적으로 봤을 때 포르투갈 북부가 남부에 비해서 1인당 생활수준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17] 현재는 포르투갈 내에서 질좋은 일자리를 찾기위해선 리스본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18] 대신 포르투갈 정부에서 제시한 조건을 충족해야 시민권을 준다. 그래서 저 언급한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이 골든비자와 시민권을 받고 유럽연합 국가를 좀 더 자유롭게 이동해서 투자, 사업, 여행, 자녀교육 등 이유로 많이 들어오는데, 그중에서 포르투갈이 타 유럽보다 조건이 덜 까다로운 편이다.[19] 포르투 북부와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은 한 여름의 평균기온이 20도 정도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폭염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은 지역들 중 하나이며, 영국, 아일랜드 처럼 비도 많이오고 바람불고 흐린날이 많은 편이다. 차이점은 저 두 섬나라보다 평균기온이 조금 높은정도 이다.[20] 리스본은 포르투갈내 부동 원탑이다[21] 리스본 제외해도 남부가 우위이다.[22] 그나마 정신승리 하는 것은 북부지역 사람들 외모가 남부지역 사람들보다 통상적으로 켈트, 게르만 형질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서 자신들이 더 백인같고 유럽인 같다고 주장하는 것 뿐이다.[23] 포르투갈의 축구감독으로 한국에서는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예전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24] 전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와 가장 못 사는 동네가 한 나라 안에 공존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일본급으로 잘 사는 곳과 우크라이나급으로 못 사는 곳이 붙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탈리아 항목 참조.[25] 북부 도시국가들은 한 도시 안에서도 배타적인 귀족 가문들끼리 서로 암투를 벌인 역사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중근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사회상을 모티브로 따와 창작된 연극이다.[26] 당장 밀라노는 소득수준이 스웨덴 급이지만, 나폴리체코만도 못하다. 그야말로 한 나라 안에 있는 거 맞나 싶을 정도.[27] 시칠리아가 시작일뿐 다른 유럽 조폭도 마피아라 부르는 만큼, 당연히 마피아는 이탈리아 본토 기반 조직도 엄청 많다. 그냥 그 모든 것을 시칠리아탓을 하는 것뿐.[28] 돈의 분배 문제로 생긴 지역감정은 세계 어느나라나 마찬가지. 한국에서도 강남번호판(전국번호 생기기 전의 서울 52 또는 55)으로 차 번호판을 달던가 강남 주민등록번호로 신생아 주민등록번호 만들기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29]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 방언과 동남 방언 간의 격차와 비슷한 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국식 발음은 잉글랜드 남동부 방언이다.[30] 잉글랜드 성공회도 잉글랜드 남부지역은 캔터베리 관구, 잉글랜드 북부지역은 요크 관구 관할이다.[31] 특히 보이보디나 지역들 중 헝가리 국경과 가까운 최북부 지역은 헝가리인들의 비율이 높으며, 오스트리아인·체코인·슬로바키아인도 일부 존재한다.[32] 북부 크로아티아 지역은 주로 돼지, 닭고기 등 육류와 밀가루를 많이 즐겨먹는데 반해, 바다와 인접한 남부 크로아티아 지역은 해산물들을 많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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