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린

최근 편집일시 :

명사(明史)

[ 본기(本紀) ]
1·2·3권 「태조기(高祖紀)」
4권 「공민제기(恭閔帝紀)」
5·6·7권 「성조기(成祖紀)」
주원장
주윤문
주체
8권 「인종기(仁宗紀)」
9권 「선종기(宣宗紀)」
10·11·12권 「영종·경제기(英宗景帝紀)」
주고치
주첨기
주기진 · 주기옥
13·14권 「헌종기(憲宗紀)」
15권 「효종기(孝宗紀)」
16권 「무종기(武宗紀)」
주견심
주우탱
주후조
17·18권 「세종기(世宗紀)」
19권 「목종기(穆宗紀)」
20·21권 「신종·광종기(神宗光宗紀)」
주후총
주재후
주익균 · 주상락
22권 「희종기(熹宗紀)」
23·24권 「장렬제기(莊烈帝紀)」
주유교
주유검
113·114권 「후비전(后妃傳)」
효자고황후 · 손귀비 · 이숙비 · 곽영비 · 효민양황후 · 인효문황후 · 소헌귀비 · 공헌현비 · 성효소황후 · 선묘현비 · 곽애 · 선묘현비 · 공양장황후 · 효장예황후
효숙황후 · 정혜경황후 · 오폐후 · 효정순황후 · 효목황후 기씨 · 효혜황후 · 공숙귀비 · 효강경황후 · 효정의황후 · 효결숙황후 · 장폐후 · 효열황후 · 효각황태후
효의장황후 · 효안황후 · 효정황후 · 효단현황후 · 효정황황후 · 공각귀비 · 효원정황후 · 효화황태후 · 효순황태후 · 이강비 · 효안황후 · 장유비 · 장열민황후
공숙귀비
※ 25권 ~ 99권은 志에 해당. 100권 ~ 112권은 表에 해당. 명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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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115권 「종실전(宗室傳)」
주표 · 주우원
116·117·118·119·120권 「제왕전(諸王傳)」
주상 · 주강 · 주숙 · 주정 · 주부 · 주재 · 주기 · 주단 · 주춘 · 주백 · 주계 · 주영(朱楧) · 주식 · 주전(朱㮵) · 주권 · 주폐 · 주혜 · 주모 · 주영(朱楹) · 주경(朱桱) · 주동 · 주이 · 주남 · 주웅영 · 주윤통 · 주윤견 · 주윤희 · 주문규(朱文奎) · 주문규(朱文圭) · 주고후 · 주고수 · 주첨용 · 주첨선 · 주첨점 · 주첨은 · 주첨오 · 주섬강 · 주첨개 · 주첨게 · 주첨연 · 주견린 · 주견순 · 주견주 · 주견택 · 주견준 · 주견치 · 주견패 · 주견제 · 주우극 · 주우륜 · 주우빈 · 주우휘 · 주우운 · 주우저 · 주우팽 · 주우순 · 주우추 · 주우해 · 주후위 · 주재기 · 주재수 · 주재로 · 주재려 · 주재궤 · 주재숙 · 주익익 · 주익령 · 주익류 · 주상서 · 주상순 · 주상치 · 주상호 · 주상윤 · 주상영 · 주상부 · 주유학 · 주유즙 · 주유모 · 주유허 · 주유전 · 주자연 · 주자육 · 주자경 · 주자랑 · 주자훤 · 주자형 · 주자소 · 주자환 · 주자찬
121권 「공주전(公主傳)」
태원장공주 · 조국장공주 · 임안공주 · 영국공주 · 숭녕공주 · 안경공주 · 여령공주 · 회경공주 · 대명공주 · 복청공주 · 수춘공주 · 남강공주 · 영가공주 · 함산공주 · 여양공주 · 보경공주 · 복성공주 · 경양공주 · 강도공주 · 남평군주 · 영안공주 · 영평공주 · 안성공주 · 함녕공주 · 상녕공주 · 가흥공주 · 경도공주 · 청하공주 · 진정공주 · 덕안공주 · 연평공주 · 덕경공주 · 순덕공주 · 상덕공주 · 중경공주 · 가선공주 · 순안공주 · 숭덕공주 · 광덕공주 · 의흥공주 · 융경공주 · 가상공주 · 고안공주 · 인화공주 · 영강공주 · 덕청공주 · 장태공주 · 선유공주 · 태강공주 · 영복공주 · 영순공주 · 장녕공주 · 선화공주 · 상안공주 · 사유공주 · 영안공주 · 귀선공주 · 가선공주 · 봉래공주 · 태화공주 · 수양공주 · 영령공주 · 서안공주 · 연경공주 · 영창공주 · 수녕공주 · 정락공주 · 운화공주 · 운몽공주 · 영구공주 · 선거공주 · 태순공주 · 향산공주 · 천대공주 · 회숙공주 · 영덕공주 · 수평공주 · 낙안공주 · 곤의공주 · 장평공주 · 소인공주
122권 「곽자흥등전(郭子興等傳)」
123권 「진우량등전(陳友諒等傳)」
124권 「확곽첩목아등전(擴廓帖木兒等傳)」
곽자흥 · 한림아
진우량 · 장사성 · 방국진 · 명옥진
확곽첩목아 · 진우정 · 파잡라와이밀
125권 「서달등전(徐達等傳)」
126권 「이문충등전(李文忠等傳)」
127권 「이선장등전(李善長等傳)」
서달 · 상우춘
이문충 · 등유 · 탕화 · 목영
이선장 · 왕광양
128권 「유기등전(劉基等傳)」
129권 「풍승등전(馮勝等傳)」
유기 · 송렴 · 엽침 · 장일
풍승 · 부우덕 · 요영충 · 양경 · 호미
130권 「오량등전(吳良等傳)」
오량 · 강무재 · 정덕흥 · 경병문 · 곽영 · 화운룡 · 한정 · 구성 · 장룡 · 오복 · 호해 · 장혁 · 화고 · 장전 · 하진
131권 「고시등전(顧時等傳)」
고시 · 오정 · 설현 · 곽흥 · 진덕 · 왕지 · 매사조 · 김조흥 · 당승종 · 육중형 · 비취 · 육취 · 정우춘 · 황빈 · 엽승
132권 「주량조등전(朱亮祖等傳)」
주량조 · 주덕흥 · 왕필 · 남옥 · 사성 · 이신
133권 「요영안등전(廖永安等傳)」
요영안 · 유통해 · 호대해 · 경재성 · 장덕승 · 조덕승 · 상세걸 · 모성 · 호심 · 손흥조 · 조량신 · 복영
134권 「하문휘등전(何文輝等傳)」
하문휘 · 엽왕 · 무대형 · 채천 · 왕명 · 영정 · 김흥왕 · 화무 · 정옥 · 곽운
135권 「진우등전(陳遇等傳)」
136권 「도안등전(陶安等傳)」
진우 · 엽태 · 범상 · 송사안 · 곽경상 · 양원호 · 원홍도 · 공극인
도안 · 첨동 · 주승 · 최량 · 도개 · 증로 · 임앙 · 이원명 · 악소봉
137권 「유삼오등전(劉三吾等傳)」
유삼오 · 안연 · 오백종 · 오침 · 계언량 · 송눌 · 조숙 · 이숙정 · 유숭 · 나복인 · 손여경
138권 「진수등전(陳修等傳)」
진수(陳修) · 양사의 · 주정 · 양정(楊靖) · 단안인 · 설상 · 당탁 · 개제
139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전당 · 한의가 · 소기 · 풍견 · 여태소 · 이사로 · 엽백거 · 정사리 · 주경심 · 왕박 · 장형
140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위관 · 도후중 · 유사훤 · 왕종현 · 여문수 · 왕관 · 도동 · 노희 · 청문승
141권 「제태등전(齊泰等傳)」
제태 · 황자징 · 방효유 · 연자녕 · 유대방 · 탁경 · 진적 · 경청 · 호윤 · 왕도(王度)
142권 「철현등전(鐵鉉等傳)」
철현 · 포소 · 진성선 · 장병 · 송충 · 마선 · 구능 · 장륜(張倫) · 안백위 · 왕성 · 요선 · 진언회
143권 「왕간등전(王艮等傳)」
왕간 · 요승 · 주시수 · 정본립 · 황관 · 왕숙영 · 황월 · 왕량 · 진사현 · 정통 · 고외 · 고현녕 · 왕진(王璡) · 주진 · 우경선
144권 「성용등전(盛庸等傳)」
145권 「요광효등전(姚廣孝等傳)」
성용 · 평안 · 하복 · 고성
요광효 · 장옥 · 주능 · 구복 · 담연 · 왕진(王真) · 진형
146권 「장무등전(張武等傳)」
장무(張武) · 진규 · 맹선 · 정형 · 서충 · 곽량 · 조이 · 장신 · 서상 · 이준 · 손암 · 진욱 · 진현 · 장흥 · 진지 · 왕우
147권 「해진등전(解縉等傳)」
148권 「양사기등전(楊士奇等傳)」
149권 「건의등전(蹇義等傳)」
해진 · 황회 · 호광 · 김유자 · 호엄
양사기 · 양영 · 양부
건의 · 하원길
150권 「욱신등전(郁新等傳)」
욱신 · 조공 · 김충 · 이경 · 사규 · 고박 · 진수(陳壽) · 유계호 · 유진 · 양지 · 우겸(虞謙) · 여승 · 탕종
151권 「여상등전(茹瑺等傳)」
여상 · 엄진직 · 장담 · 왕둔 · 정사 · 곽자 · 여진 · 이지강 · 방빈 · 오중 · 유관
152권 「동륜등전(董倫等傳)」
동륜 · 의지 · 추제 · 주술 · 진제 · 왕영 · 전습례 · 주서(周敍) · 가잠 · 공공순
153권 「송례전(宋禮等傳)」
154권 「장보등전(張輔等傳)」
송례 · 진선 · 주침
장보 · 황복 · 유준(劉儁) · 여의 · 진흡 · 이빈 · 유승 · 양명 · 왕통
155권 「송성등전(宋晟等傳)」
송성 · 설록 · 유영 · 주영(朱榮) · 비환 · 담광 · 진회(陳懷) · 장귀 · 임례 · 조안 · 조보 · 유취
156권 「오윤성등전(吳允誠等傳)」
오윤성 · 설빈 · 오성(吳成) · 김충 · 이영 · 모승 · 초례 · 모충 · 화용 · 나병충
157권 「김순등전(金純等傳)」
김순 · 장본 · 곽돈 · 곽진 · 정진 · 시차 · 유중부 · 장봉 · 주선 · 양정(楊鼎) · 황호 · 호공진 · 진준 · 임악 · 반영 · 하시정
158권 「황종재등전(黃宗載等傳)」
황종재 · 고좌 · 단민 · 장창(章敞) · 오눌 · 위기 · 노목 · 경구주 · 헌예 · 황공소
159권 「웅개등전(熊概等傳)」
웅개 · 진일 · 이의 · 진일 · 이당 · 가전 · 왕우 · 최공 · 유자(劉孜) · 이간 · 원걸 · 팽의 · 모봉 · 하훈 · 고명 · 양계종
160권 「왕창등전(王彰等傳)」
왕창 · 위원(魏源) · 김렴 · 석박 · 나통 · 나기 · 장선 · 장붕 · 이유
161권 「주신등전(周新等傳)」
주신 · 이창기 · 진사계 · 응이평 · 임석 · 황종 · 진본심 · 팽욱 · 하시 · 황윤옥 · 양찬 · 유실 · 진선 · 하인 · 진장 · 장병 · 송단의
162권 「윤창륭등전(尹昌隆等傳)」
윤창륭 · 경통 · 대륜 · 진조 · 유구 · 진감 · 종동 · 장륜 · 요장 · 예경 · 양선(楊瑄)
163권 「이시면등전(李時勉等傳)」
164권 「추집등전(鄒緝等傳)」
이시면 · 진경종 · 유현(劉鉉) · 형양 · 임한 · 사탁 · 노탁
추집 · 익겸 · 황택 · 범제 · 요양 · 좌정 · 조개 · 유위 · 단우 · 장소 · 고요
165권 「도성등전(陶成等傳)」
166권 「한관등전(韓觀等傳)」
도성 · 진민 · 정선 · 왕득인 · 엽정 · 오기 · 모길 · 임금 · 곽서 · 강앙
한관 · 산운 · 소수 · 방영 · 이진 · 왕신 · 팽륜 · 구반 · 장우
167권 「조내등전(曹鼐等傳)」
168권 「진순등전(陳循等傳)」
조내 · 광야 · 왕좌 · 손상 · 원빈
진순 · 왕문 · 강연 · 진문 · 만안 · 유후 · 유길 · 윤직
169권 「고곡등전(高穀等傳)」
170권 「우겸전(于謙傳)」
171권 「왕기등전(王驥等傳)」
고곡 · 호영 · 왕직
우겸
왕기(王驥) · 서유정 · 양선(楊善) · 왕월
172권 「나형신등전(羅亨信等傳)」
나형신 · 후진 · 양녕 · 왕래 · 손원정 · 주감 · 양신민 · 장기 · 마근 · 정신 · 백규 · 장찬 · 공용 · 등정찬 · 왕식 · 유병
173권 「양홍등전(楊洪等傳)」
양녕 · 석정 · 곽등 · 주겸 · 손당 · 범광
174권 「사소등전(史昭等傳)」
사소 · 무개 · 허귀 · 주현 · 구신 · 왕새 · 노감 · 유녕 · 팽청 · 강한 · 안국 · 항웅
175권 「위청등전(衞靑等傳)」
위청 · 동흥 · 하홍 · 유옥 · 구월 · 신영 · 조웅 · 풍정 · 장준 · 양예
176권 「이현등전(李賢等傳)」
177권 「왕고등전(王翱等傳)」
이현 · 여원 · 악정 · 팽시 · 상로 · 유정지
왕고(王翱) · 연부 · 왕횡 · 이병 · 요기(姚夔) · 왕복 · 임총 · 엽성
178권 「항충등전(項忠等傳)」
179권 「나륜등전(羅倫等傳)」
항충 · 한옹 · 여자준 · 주영(朱英) · 진굉
나륜 · 장무 · 황중소 · 장창(莊昶) · 추지 · 서분
180권 「장녕등전(張寧等傳)」
장녕 · 왕휘 · 모홍 · 구홍 · 이삼 · 위원(魏元) · 강진 · 왕서(王瑞) · 이준 · 왕규 · 탕내 · 강관 · 강홍 · 조린 · 팽정 · 방반 · 여헌 · 엽신 · 호헌 · 장홍지 · 굴신 · 왕헌신
181권 「서부등전(徐溥等傳)」
182권 「왕서등전(王恕等傳)」
서부 · 구준 · 유건 · 사천 · 이동양 · 왕오 · 유충
왕서(王恕) · 마문승 · 유대하
183권 「하교신등전(何喬新等傳)」
하교신 · 팽소 · 주경(周經) · 경유 · 예악 · 민규 · 대산
184권 「주홍모등전(周洪謨等傳)」
주홍모 · 양수진 · 장원정 · 부한 · 장승 · 완성 · 부규 · 유춘 · 오엄 · 고청 · 유서
185권 「이민등전(李敏等傳)」
이민 · 가준 · 황불 · 장열 · 사종 · 증감 · 양경 · 서각 · 이개 · 황가 · 왕홍유 · 총란 · 오세충
186권 「한문등전(韓文等傳)」
한문 · 장부화 · 양수수 · 허진 · 옹태 · 진수(陳壽) · 번형 · 웅수 · 반번 · 호부 · 장태 · 장내 · 왕경(王璟) · 주흠
187권 「하감등전(何鑒等傳)」
하감 · 마중석 · 육완 · 홍종 · 진금(陳金) · 유간 · 주남 · 마호
188권 「유천등전(劉蒨等傳)」
유천 · 여충 · 조우 · 대선 · 육곤 · 장흠(蔣欽) · 주새 · 탕예경 · 허천석 · 장사륭 · 장문명 · 범로 · 장흠(張欽) · 주광 · 석천주
189권 「이문상등전(李文祥等傳)」
이문상 · 손반 · 호관 · 나교 · 엽쇠 · 대관 · 황공 · 육진 · 하양승 · 하준
190권 「양정화등전(楊廷和等傳)」
191권 「모징등전(毛澄等傳)」
양정화 · 양저 · 장면 · 모기 · 정이
모징 · 왕준(汪俊) · 오일붕 · 주희주 · 하맹춘 · 풍희 · 서문화 · 설혜
192권 「양신등전(楊愼等傳)」
양신 · 왕사 · 장충 · 유제 · 안반 · 장한경 · 장원 · 모옥 · 왕시가 · 정본공 · 장왈도 · 양회 · 장찬 · 곽남
193권 「비굉등전(費宏等傳)」
비굉 · 적란 · 이시 · 고정신 · 엄눌 · 이춘방 · 진이근 · 조정길 · 고의
194권 「교우등전(喬宇等傳)」
교우 · 손교 · 임준 · 김헌민 · 진금(秦金) · 조황 · 추문성 · 양재 · 유린 · 장요(蔣瑤) · 왕정상
195권 「왕수인전(王守仁傳)」
196권 「장총등전(張璁等傳)」
왕수인
장총 · 계악 · 방헌부 · 하언
197권 「석서등전(席書等傳)」
198권 「양일청등전(楊一淸等傳)」
석서 · 곽도 · 웅협 · 황종명 · 황관
양일청 · 왕경(王瓊) · 팽택 · 모백온 · 옹만달
199권 「이월등전(李鉞等傳)」
이월 · 왕헌 · 호세녕 · 이승훈 · 왕이기 · 범총 · 왕방서 · 정효
200권 「요막등전(姚鏌等傳)」
요막 · 장정 · 오문정 · 채천우 · 첨영 · 유천화 · 양수례 · 장악 · 곽종고 · 조시춘
201권 「도염등전(陶琰等傳)」
도염 · 왕진(王縝) · 이충사 · 오정거 · 방양영 · 왕광 · 왕월 · 서문 · 장방기 · 한방기 · 주금 · 오악
202권 「요기등전(廖紀等傳)」
요기(廖紀) · 왕시중 · 주기옹 · 당룡 · 왕고(王杲) · 주용 · 문연 · 유인 · 손응규 · 섭표 · 이묵 · 주연 · 가응춘 · 장영명 · 호송 · 조병연
203권 「정악등전(鄭岳等傳)」
정악 · 유옥 · 왕원석 · 구천서 · 당주 · 반진 · 이중 · 구양탁 · 도해 · 반훈 · 여경 · 구양중 · 주상(朱裳) · 진찰 · 손무 · 왕의(王儀) · 증균
204권 「진구주등전(陳九疇等傳)」
205권 「주환등전(朱紈等傳)」
진구주 · 적붕 · 손계로 · 증선 · 정여기 · 양수겸 · 상대절 · 해일귀 · 양선(楊選)
주환 · 장경 · 호종헌 · 조방보 · 이수 · 당순지
206권 「마록등전(馬錄等傳)」
마록 · 정계충 · 장규 · 정일붕 · 당추 · 두란 · 엽응총 · 해일귀 · 육찬 · 소경방 · 유세양 · 위양필
207권 「등계증등전(鄧繼曾等傳)」
등계증 · 주제 · 양언 · 유안 · 설간 · 양명(楊名) · 곽홍화 · 유세룡 · 장선 · 포절 · 사정천 · 왕여령 · 양사충
208권 「장근등전(張芹等傳)」
장근 · 왕응진 · 소명봉 · 제지란 · 원종유 · 허상경 · 고제 · 장교 · 여산 · 위상신 · 여관 · 팽여실 · 정자벽 · 척현 · 유회 · 전미 · 홍원 · 주사겸 · 안경
209권 「양최등전(楊最等傳)」
양최 · 풍은 · 양작 · 주이 · 유괴 · 심속 · 심연 · 양계성 · 양윤승
210권 「상교등전(桑喬等傳)」
상교 · 사유 · 하유백 · 서학시 · 여여진 · 왕종무 · 주면 · 조금 · 오시래 · 장충 · 동전책 · 추응룡 · 임윤
211권 「마영등전(馬永等傳)」
212권 「유대유등전(俞大猷等傳)」
마영 · 양진 · 왕효 · 주상문 · 마방 · 하경 · 심희의 · 석방헌
유대유 · 척계광 · 유현(劉顯) · 이석 · 장원훈
213권 「서개등전(徐階等傳)」
214권 「양박등전(楊博等傳)」
서계 · 고공 · 장거정
양박 · 마림 · 유례건 · 왕정(王廷) · 갈수례 · 근학안
215권 「왕치등전(王治等傳)」
왕치 · 구양일경 · 주홍조 · 첨앙비 · 낙문례 · 정이순 · 진오덕 · 왕문휘 · 유분용
216권 「오산등전(吳山等傳)」
오산 · 육수성 · 구경순 · 전일준 · 황봉상 · 여계등 · 풍기 · 왕도(王圖) · 옹정춘 · 유응추 · 당문헌 · 이등방 · 채의중 · 공내 · 나유의 · 요희맹 · 허사유 · 고석주
217권 「왕가병등전(王家屏等傳)」
218권 「신시행등전(申時行等傳)」
219권 「장사유등전(張四維等傳)」
왕가병 · 진우폐 · 심리 · 우신행 · 이정기 · 오도남
신시행 · 왕석작 · 심일관 · 방종철 · 심확
장사유 · 마자강 · 허국 · 조지고 · 장위 · 주갱
220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1권 「원홍유등전(袁洪愈等傳)」
원홍유 · 왕정첨 · 곽응빙 · 경정향 · 왕초 · 위시양 · 학걸 · 조참로 · 장맹남 · 이정 · 정빈
222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3권 「성응기등전(盛應期等傳)」
224권 「엄청등전(嚴清等傳)」
성응기 · 주형 · 반계순 · 만공 · 오계방 · 왕종목 · 유동성 · 서정명
엄청 · 송훈 · 육광조 · 손농 · 진유년 · 손비양 · 채국진 · 양시교
225권 「장한등전(張瀚等傳)」
226권 「해서등전(海瑞等傳)」
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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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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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璘 (Chén Lín, 천린)

1543년 ~ 1607년

1. 개요
2. 생애
2.1. 군복을 입고 공을 세우다
2.2. 정유년, 조선으로
2.3. 명으로 돌아간 후
3. 자손들
4. 대중 문화에서



1. 개요[편집]


명나라의 장수. 자는 조작(朝爵). 호는 용애(龍厓). 시호는 충강(忠康). 전공은 뛰어났으나 탐욕스러운 인물로 뒷말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에 원군으로 파견되어 이순신과 함께 싸운 인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2.1. 군복을 입고 공을 세우다[편집]


광동성 옹원현 사람으로 가정제 말에 지휘첨사가 되었으며, 영덕현의 도적을 토벌하는 데 참가하여 광동수비가 되었다. 도적 뇌원작을 평정하고 영동의 도적들을 물리쳤으며, 만력제 초에는 고요현의 도적 등승룡, 계양현의 도적 종월천 등을 평정했다. 문무를 겸비한 유능한 무장으로, 특히 남방 평정에서 많은 공훈을 세웠다.

여러 차례 승진해 도지휘첨사, 첨서광동도사에 임명되었으며, 이성립이 도적을 평정하기 위해 제양보를 공격했지만 패하자 그의 뒤를 이어 참전, 도적을 평정하고 조경 유격 장군, 고주 참장이 되었다. 남방의 묘족을 정벌해 부총병으로 옮겨 동안첨장사가 되었지만 그 곳에서 살아남은 자가 백성을 살해한 일이 일어나 책망을 받아 죄를 얻었으며, 주문달과 함께 석우, 청수의 여러 망루를 깨뜨려 36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용서를 받았다.

동안현이 평정되자 토목 공사를 일으켜 영채, 관성, 사당 등을 지었는데, 재물을 반출하는 것도 금지해 병졸들이 반란을 일으켜 주현을 약탈하자 나응학에게 탄핵받아 관직이 박탈되었다가 적을 사로잡으면서 죄가 사해져 낭산 부총병이 되었다. 모략이 있어 병사를 잘 부렸지만 탐욕이 심해 다시 탄핵을 받고 관직을 빼앗겼으며, 조정의 선비들은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겼지만 천거하지는 않았다.

탐욕이 심했다는 평가는 최근에 중국 측과의 사료 검토 결과 그가 시행했던 토목공사 등의 사업들은 전몰한 군사들과 백성들을 위한 기간시설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른 기록에서도 조선에 참전했을 때 왕실에서 보내준 선물들을 대부분 거절하고 종이 정도만 받았다고 한다.

전략적 차원이기는 하지만 소극적으로 일관한 다른 명나라 장수들과 달리 진린은 왜적을 토벌하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력했고, 그로 인해 이순신도 그를 믿고 함께 작전에 나갈 수 있었다. 진린이 국내에서 이토록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것은 진린이 다른 명나라 장수들과 달리 이순신을 명나라에 천거까지 원했을 정도로 경애했기 때문에 그동안 이순신을 의심하고 시기했던 서인들의 행적들이 무안해지기 때문에 일부러 진린을 깎아내려 기술했다는 주장도 있다.

2.2. 정유년, 조선으로[편집]


1592년에 적에게 패한 일이 참작되어 관직이 회복되어 광동의 병사 5천명을 이끌고 조선을 구원했으며, 1593년 2월에 어왜총병관이 되어 마귀, 유정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병사 3천여 명, 전함 수백 척을 나누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해구에 포진시켰다. 어위 도총관 겸 전군도독부도독(前軍都督府都督)이 되어 수군 5천 명을 이끌고 명량해전 이후 이순신 함대에 합류하였다.

징비록에 의하면 류성룡을 비롯한 많은 조정의 대신들이 '충무공이 진린의 횡포[1]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고, 분명 명나라 군대와 갈등이 생길테니 패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라며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이순신은 진린이 온다는 말에 즉각 군대를 동원해 고기와 생선 등을 푸짐하게 차리고[2] 진린뿐 아니라 모든 명군의 장병들까지 배부르고 취하게 하여 인심을 샀고, 섬에 왜구가 왔다는 말에 그들을 격퇴한 후 수급 40개를 진린에게 모두 바쳐 더욱 관계를 돈독히 했다고 한다.[3]

이순신 장군과 만나기 전에 능력이 뛰어났지만 탐욕을 일삼는 장수였으며, 이순신 장군이 처음에 명 해군의 행패를 핑계로 본진에서 백성들과 함께 떠나려는 척을 해서 그에게서 명 해군의 지휘권까지 넘겨받는가 하면, 이후 진린에게 자신이 세운 공로를 전부 넘겨주는 식의 '채찍과 당근'을 병용하여 그를 마음으로 감복시켜 진심으로 존경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바로 옆에서 이순신의 지휘력과 인품을 직접 겪어서인지 처음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이던 진린이지만 점차 이순신에게 감복해나간다.[4]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하는가 하면 조선군 장수를 당시 깔보고 무시하던 다른 명군과 달리 이순신 장군을 이야(李爺) 혹은 노야(老爺)[5]라는 호칭으로 불렀으며, 자신이 탄 가마가 감히 이순신이 탄 가마보다 먼저 나가는 일이 없도록 했을 정도이다.[6] 이에 그치지않고 진린은 이순신에게 조선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 바에, 함께 명국으로 가서 황상을 모시며 부귀를 누려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이순신 장군에게 푹 빠져있던 명나라 사람 중 하나였다.[7][8]

게다가 조선 수군의 공적을 가로챘다고 하지만 이순신 입장에선 명성을 마구마구 쌓았다가 선조에게 죽을 뻔[9]한 이후로 오히려 공을 드러내길 꺼리게 됐기에 부담없이 자기 공적을 진린에게 퍼주다시피 넘겨주곤 했었다.[10]

그래도 만일을 위해 이순신은 장계를 올릴 때 아예 진린의 공을 적은 거짓 장계와 실제 공로를 적은 진짜 장계 두 개를 올려서 조정에서도 상황은 다 파악하고 있었고, 나중에 명나라에서 진린이 조선군의 전과를 뺏었다는 소문을 듣고 진상 조사를 할 때 진린이 공을 세운 내용의 가짜 장계를 보여주어 넘어갔다.# 일설에는 선조와 이순신 간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알고 이순신은 진린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기에 의도적으로 이순신의 공적을 깎아 이순신을 선조의 질투로부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보호하고 자신은 실리를 챙겼다고도 한다. 반면 명나라에는 이순신의 공적을 상세히 잘 보고했다고 한다. 이순신도 이런 진린의 의도를 잘 알았던 것 같다. 심지어 진린은 천문을 보고 이순신의 안위가 걱정되어 제갈무후의 고사를 따라 제단을 쌓아 명을 늘려보라고 간곡히 청하기도 했다. 물론 이순신은 자신의 재주와 충심이 무후만 못하니 아니함만 못하다고 주저하였다. 성현에 준하다고 평을 받는 제갈공명에 빗댈 정도이니 이순신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만하다.

노량 해전에서 명군은 왜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본토로 내쫓는다는 전략 목표를 달성했기에 전투 참여를 주저하였으나, 진린은 드물게 강경파에다가 그간 이순신에게 받은 것이 많았고 개인적인 존경심도 있었기에 왜군과 전투를 벌인다. 전면으로 돌격했기에 진린과 부장인 등자룡의 판옥선은 왜선에 포위되었고, 등자룡은 구출되기 전에 일본군이 공격해와 백병전에 휘말려서 싸우다가 전사한다.

적 왜선에 포위된 진린을 구하다가 이순신은 전사하게 되고 전투가 끝난 후 진린은 이에 사례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이순신은 전사하고 난 후였다. 이 때 이순신의 죽음을 알자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른께서 오셔서 나를 구해주었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라며 통곡했고, 육군과는 달리 이순신의 지휘 아래에서 꽤나 엄한 군율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명나라 수군 장졸들도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순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운구하여 고향 아산을 찾아가고, 그의 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했다.


2.3. 명으로 돌아간 후[편집]


명에 돌아가서는 임진왜란 때의 공적으로 도독동지, 지휘첨사에 임명되고 광동백(廣東伯)에 봉해졌으며, 1년 전인 1597년에 양응룡이 파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1598년에 호광 총병관에 임명되어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했으며, 이어서 피림을 토벌했다.

1605년에는 신첨장관사로 옮겨 산묘를 토벌하는 것에 종군했으며, 광동성을 진무하고 관직을 마쳤다. 파주를 평정한 공으로 좌도독을 더하면서 지휘사에 임명되었으며, 1607년에 세상을 뜨자 묘족을 평정한 공으로 태자소보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강(忠康)을 받았다. 이순신이 조선의 태양과도 같은 성웅이었듯, 그와 뜻을 함께 한 진린도 망해가는 명을 온 몸으로 떠받치던 둘도 없는 충신이었다.


3. 자손들[편집]


그의 자손들 역시 충절을 지키며 외적과 끝까지 싸웠다. 진린의 아들 진구경(陳九經)은 이후 나라의 국운을 두고 애산에서 청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그리고 진구경의 아들 진영소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로서 임하다가 애산의 비보에 이어 명나라가 멸망하자 '원수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며 식솔들을 데리고 고금도를 거쳐 해남에 정착해 조선에 귀화했다. 그 후 후손들은 광동을 본관으로 하고 진린을 시조로 모시는 광동 진씨가 되었다. 즉, 진린의 직계 후손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이런 식으로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현재 해남에 정착한 진씨의 집성촌을 황조리라 하며, 진린을 모시는 사당인 황조별묘(黃朝別廟)도 있다. 2013년 3월에 한국 후손이 광동으로 가서 중국에 남은 후손들과 같이 제례를 올리는 등의 교류가 이어저 오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진린과 이순신의 관계를 통해 광동 진씨는 이순신의 가문인 덕수 이씨와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4. 대중 문화에서[편집]



4.1.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편집]


국정환이 배역을 맡았다.


4.2. 역사에의 초대 임진왜란[편집]


배우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매체들과 달리 (해당 작품의 다른 명나라 측 인물들도 마찬가지지만) 고증에 맞지 않게 청나라 관복에 가까운 형태의 복장으로 나온다.


4.3. 불멸의 이순신[편집]


불멸의 이순신에서 등장하며, 김하균이 배역을 맡았다.

왜교성 전투부터 시작하는 1~4화와 후반부의 내용이 미묘하게 다르다. 고니시의 수급 2천 두 제안을 받고 어차피 이긴 전쟁이니 길을 열어주자고 하지만 통제사는 거부. 그러자 진중에 돌아와서 이순신을 영웅이라 찬양하며 그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등자룡은 어차피 조선이 이긴 전쟁이고 이순신의 공이 크니 무슨 걱정이냐 하지만 진린은 이순신이 왕과 조정의 음해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더니 전쟁이 끝나도 이순신이 난처한 입장이 될 것을 예견하고 그때 내가 이순신의 손을 잡아줄 거라 말한다. 이후 유정의 모함으로 선전관이 와서 수군 지휘권을 유정에게 넘기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국왕이 이순신을 버리려 하니 그가 외롭겠다며 탐탁지 않아 하지만 결국 조선을 구하는 것은 이순신이 될 거라 믿는다. 노량 해전이 일어나는 부분도 후반부와는 다르다. 후반에는 노량에서 전투가 일어나게 판을 깔아주고 전투 때 나대용을 수로향도로 앞세워 참전한다. 여기서는 이순신이 이미 명 수군의 피해가 크다며 그냥 왜교로 유인만 해달라고 하지만 이순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진린이 그냥 전장(관음포)으로 이동해 참전한다.[11]

극중 후반부에는 합류 이전 유정이 이순신을 극찬하자 못마땅해 했으며 합류하자마자 대명의 도독에게 무례하다며 접견나온 군관한테 행동 대장(?) 등자룡이 대신해서. 싸대기를 날리더니 환영회에서 이순신이 직접 따라준 술잔을 이순신 얼굴에다 뿌려버리는 등 온갖 진상과 갑질을 부리는데, 당연하지만 이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너무나 과장된 태도다. 전술했듯 진린은 결코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이 아니라는 최근 조사결과도 나오고 있는 실정으며, 더군다나 그가 이순신을 욕보인 불량한 위인이라면 지금까지도 이순신의 덕수이씨 집안과 오랜 교분을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도리어 진린은 명나라 장수들 중 누구보다도 이순신을 인정했던 인물이다.

환영회를 끝내고 돌아와 등자룡에게 이순신이 보통 놈이 아니며 유정이 쩔쩔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말하며 12척 함대를 1년도 안 지나서 80척 함대로 만들어낸 것이 엄청난 일이라 환영회에 나온 음식들도 이순신으로서는 최대한 땡긴 것이란 걸 간파했다. 알면서 왜 그랬냐는 질문에는 이순신을 한번 떠보고 그래도 지휘권이 자신에게 있으니 기선 제압을 위해 그랬다고 한다.[12]

후일 절이도 해전에서는 이순신 함대가 왜군을 없애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왜교성 전투에서는 처음에 안 나가겠다고 뻐기다가 칼을 들이대는 이순신을 보고 유정에게 작전을 중지하자고 했는데 유정이 이를 거부하자 유정이 혼자 공을 세우는 것을 경계하여 결국 출전한다. 이후 일본군에게 매수된 유정이 작전을 어길 테니 뒤에서 지켜보라는 전서구를 보냈는데, 이를 유정 혼자서 공을 세우려는 것으로 오해하고서 이순신의 신호를 무시하고 개돌했다가 큰 피해(군사 2천+30척 전선)를 보고 조선 수군에 의해 구출된다. 이때 황세득이 자기 때문에 죽을 자리로 뛰어드는 걸 보고 등자룡과 함께 매우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후 유정이 패전의 책임을 이순신에게 떠넘기는 장계를 올렸다면서 얘기하자 닥치라는 강언까지 하면서 이순신은 끝까지 분전하였고 내 생명을 구했다며 커버하지만, 유정은 황제가 진린 때문에 피해본 걸 알면 또 다시 파직될 거라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넘어간다. 이때 유정이 어차피 전쟁은 끝났고 길만 열어주면 철군하겠다는 일본군에게서 땡길 걸 땡기면서 본국에서 공을 크게 보이게 하자며 실리를 강조하자 매우 탐탁지 않아 하면서 처다본다.

이후로는 일본이 길을 열어달라며 수급과 보물들을 보내자 요시라가 이순신에게 말을 전할 기회를 열어주고서는 스스로도 이순신에게 좋게 끝내자는 식으로 길을 열라고 하지만 이순신은 계속 거부했고, 나중에는 일본이 수급 2,000두를 주기로 했는데 절반을 통제사에게 주겠다며 회유했지만 통제사가 끝까지 거부하자 연합함대의 장으로 길을 열라 명하지만 이것도 거절. 그러자 진린은 이순신을 아둔한 자가 아닌 장수 중의 장수로 생각하기로 하고[13] 받을 걸 이미 다 받아놓고서 고니시에게 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통보한다. 이미 이순신에게 마음이 가는 와중에 이순신이 새로 뽑은 판옥선 2척을 주면서 잘해보자고 하자[14] 이에 감복하여 이순신의 뜻대로 하기로 하였다. 유정에게 판옥선을 선물받았다고 밝혔다.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판옥선까지 받은 마당에 뒤로 뺄 수 없으며 심기일전하여 왜군을 섬멸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선언하며 유정이 그 동안 뇌물로 받은 수급 등으로 전공을 위조한 것을 비꼬며[15] 자신은 전장에서 떳떳하게 전공을 세우겠다며 훈련을 하러 간다. 진린이 마음가짐을 새로 한 것은 좋았는데 유정은 이 때문에 일본에게서 땡길 걸 못 땡기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선 조정에 또 다시 이순신을 모함하여[16] 선전관이 내려오게 만든다. 노량해전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이 찾아와 일본 함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거짓정보를 흘려달라고[17] 부탁하며 판옥선을 주며 설파한 의미를 주지시키자 한번 해보자고 하며 정보를 흘려[18] 노량에서 전투가 일어나도록 판을 깔아준다. 이때 이순신의 계획을 듣고 유정의 협조 없이 우리끼리만 싸우는 거냐며 자기는 당연히 참전한다는 투로 굴었다. 노량에서는 선물받은 판옥선에 부관(수로향도)으로 나대용을[19] 끼고 나와서 이순신과 목숨을 나눌 것이라 선언하고서 관음포로 출격한다. 이순신과 본대가 일본함대를 관음포로 몰고오자 위엄 있게 등장하여 전투한다. 할 거 하다가 이순신이 쓰러지자 걱정하는 듯 좋지 못한 표정을 짓고서 극중에서 퇴장.[20]

이 드라마에서는 명군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면서 진린 또한 그런 기조가 있지만 작중 내용을 보면 적어도 사리분별은 하고 사건의 전개를 파악하는 능력은 있다. 갈수록 이순신에 대한 태도는 호의적으로 변하고 유정처럼 자기랑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고 음해하지도 않는다. 이순신이 자기에게 칼을 들이댔지만 자신을 구해주자 이순신탓으로 하자는 유정에게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냥 넘어간 것/수급은 받았지만 길은 안 열어준 것/판옥선을 받은 후 해달라는 걸 다 해주는 것/하급 군관인 나대용에게 외관상이나마 부탁을 한 것 등을 보면 양면성이 공존하지만 결국 이순신의 사람이 되는 인물이다. 사족으로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유정과 대등한, 양호 바로 다음 급의 천장인 진린이 조정에서 내려온 선전관을 황제의 권위를 업고 있는 천장의 권위로 찍어눌렀다면 선전관이나 조정이 어찌하지 못하였을 텐데 극 전개를 위해서인지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진린이 조선의 선전관을 어찌하지 못한 건 고증에 맞는게 당시 명나라 조정은 파견장수들에게 조선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기에 그런 점이 있으며 선전관 파견은 엄밀히 말하면 조선의 내정으로 진린이 천장의 권위로 선전관을 찍어내린다면 이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게 되는 것으로 실제로 명나라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한 건 경리 양호가 선조에게 이순신의 품계를 올려달라는 압박이 유일했다.

유정이 도움이라고는 안 되면서 초치고 음해만 해대고, 양호는 개념인이지만 비중이 극히 적고 마귀 등은 나오지도 않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크게 도움이 된 개념 있는 명나라 장수라 할 수 있다.


4.4. 칼의 노래[편집]


칼의 노래에서는 부패한 명 수군 제독으로 등장하는데,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거대한 체구의 인물로 묘사된다. 주연에서 사슴 다리를 통째로 뜯어먹으며 생마늘을 으득으득 씹어먹고 공훈을 세우는 것에 집착하여 전투 중 바다에 떨어진 수급에 욕심을 부리는 면모를 보인다. 충무공과의 첫 만남에서도 천병(天兵)이 천자의 곡식을 먹는 것은 민망한 일이라며 조선 수군에게 군량을 부담시키고 싣고 온 곡식은 횡령하려는 모습을 보이나 충무공이 여러 방면으로 잘 어르고 달래가며 길들인 이후에는 충무공을 중국에서 높은 벼슬을 하며 큰 판을 주물러야 할 사람이라며 치켜세우고 크고 작은 일들에 대체적으로 원만히 협력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노량해전 때에 왜군들에게 뇌물을 받아 활로를 터준 것으로 묘사되고 이것 때문에 충무공이 베어버릴까 고민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4.5. 임진록2[편집]


임진록2에서는 명의 화승총 영웅으로 나온다. 이는 수군 영웅들이 모두 원거리 무기를 쓰기 때문. 다른 장수들마냥 그냥저냥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성능은 딱 거기까지만이고 종합적인 능력은 별거 없다. 나중에 이순신이 조선의 반격에서 멋진 스킬까지 들고나온 반면 이 양반은 그런것도 없었다.

그 외에 조반에서 추가된 기술 기공신포는 본래 진린이 사용하던 기술이었으나, 정식 버전으로 오면서 이순신의 기술로 변경했다. 그리고 시나리오 진행시 임진록 2 조선 시나리오 8장에서 잠깐 언급된 것을 빼면 직접 스토리 진행(브리핑)에 나온 적이 없다.


4.6. 기타[편집]







  • 마늘을 무척 좋아했다. 이는 기록에서 이순신과 조선군 장수들이 진린과 명나라 장수들을 대접하는 연회에서 알수 있는데 마늘을 좋아하여 구운 통마늘을 한번에 함줌씩 먹었다고 한다.
[1] 충무공을 만나기 이전에는 조선 관리를 폭행하고 그의 목에 밧줄을 묶고 말에 매달아 질질 끌고가서 거의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2] 충무공의 군대는 조정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국빈급 인사임에도 스스로 챙겨야만 했던 것.[3] 당시 조선에서 왜구의 수급은 돈으로도 보상을 얻을 수 있을 뿐더러, 일정 이상 되면 노비조차 양반까지 될 수 있으며 장수의 경우 전공의 증거가 되어 승진에 도움이 되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괜히 조선인 시체의 수급으로 구라치려다 귀고리 자국 때문에 들통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게 아니다. 평소 충무공이 수급을 얻으려다 적을 놓친다며 수급 얻으려 하는 걸 말렸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바다 전투의 특성상 수급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린의 마음을 사고자 단단히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순신이 마냥 꼿꼿하기만 한 꼰대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는 처세술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걸 자기 보신 같은 데는 전혀 안 쓰고 오로지 더 많은 일본군을 죽이고 더 확실한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만 발휘한 괴인이었음을 증명하는 일화다. 이순신의 경우 과거 덕수 이씨 종친이자 무관 인사권을 갖고 있던 병조판서 율곡 이이가 자신을 보자고 하는데도, 사적으로 만나면 인사 청탁으로 보일 수 있으니 만남을 거부했다는 일화나, 감독관인 서익이 동헌 내 목재를 요구하는데도 규정을 들어 반대했다가 인사 불이익을 당한 일화 등이 있다. 결국, 이순신은 그냥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 심리에 정통하고 처세술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오직 국가와 공익을 위해서만 쓰고 개인적 이익에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명확하다. 충무공은 역시 단군 이래 다시 없을 진정한 괴인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4] 그가 탐욕스러웠단는 평가는 최근의 연구를 통해 상반된 해석이 나오고 있으므로 좀 더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개인의 능력으로 출세한 인물이라 사람을 평가하는 눈이 더 엄격했을 것이다. 진린은 이순신과 특히 많은 교분을 쌓은 인물로 이순신을 제갈량에 비유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5] 손윗사람을 표현할때 라오예(老爺)라고 한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어르신' 정도로 높여 부른 것이다. 이보다 높은 존칭은 尊,賢이 들어가는 존칭이 많으나, 사실 진린이 이순신보다 2살 많은데 저런 표현했다는 자체가 충분히 높여준 것이며, 진린의 성정과 공적을 보았을 때 그 정도 예를 보였다는 점에서 대단한 호의라 할 수 있다. [6] 이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전할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로 진린이 이순신에게 얼마나 존경을 표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건 당시 동아시아 정치 관계 상 엄청난 일이다. 뭘 해도 황제국명나라조선은 명시적으로 사대주의, 즉 명나라의 제후국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명나라 황제의 대리인 자격으로 참전한 진린이 제후국 조선이순신한테 의전 선순위를 내준 것인데, 진린이 진심으로 이순신한테 감복해서 가능했던 일이다.[7] 당시 명군은 조선을 제후국이라 하여 신하들은 물론 왕인 선조까지 무시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의 명성과 업적이 임진년부터 자자했고, 특히나 조선수군이 궤멸된 상황에서 울돌목에서 기적의 승리를 일구었으니 이순신에 대한 명군의 평가는 칭찬 일색이었다. 경리 양호를 비롯하여, 군문 형개와 같은 고위직은 물론 진린과 같은 일선에서 싸우는 명군 장수들에게도 이순신은 누구와 달리 인정을 받았고, 이 점이 더더욱 이 누군가가 이순신을 질투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8] 현대 기준으로 봐도 외교 결례다. 미해군 제7함대 사령관이 한국 대통령을 쌩까고 한국군 해군 장성한테 두 손으로 공손히 악수하고 Sir라고 높여 부르며 시민권 추천과 함께 미해군으로 스카웃하려고 시도한 모양새이니. 선조가 현대의 대통령이었다고 해도 꼬투리를 잡아서 보직해임하고 싶었을 것이다. 말만 안 했을뿐 일국의 국가원수더러 사실상 "좆까"라고 선언한거나 마찬가지였으며, 명나라 본국에서도 진린이 이순신의 공적을 상세히 보고하며 칭찬하는 상황이어서 아무도 의전관계 막나가는 진린을 제지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런 의전관계 결례도 그 상대가 이순신이었다는 점 하나만으로 용납된것. 또 선조가 명국한테 찍힌 것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선조는 이순신과 한편이었던 진린까지 깎아내리는 옹졸함까지 보였다.[9] 당시 선조는 이순신이 난세의 영웅이나 구국의 명장으로 추앙받는 걸 극도로 경계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징계나 편애 등을 자주 했다.[10] 물론 이것과는 별개로 자기 부하들의 공훈은 꼬박꼬박 챙겨줬다.[11] 이때 이순신을 조선 최고의 장수로 띄워주면서 자기도 명나라 최고의 장수라며 자찬한다.[12] 등자룡은 이순신이 작정하고 진린을 능멸했다고 했지만 진린은 오히려 작정은 내가 했다고 한다.[13] 진린이 아둔한 자vs장수 중의 장수인가로 고민할 때 등자룡은 이순신이 과거 황제의 명마저 거부하고 왜를 공격+진린에게 칼을 들이댄 것을 얘기하며 무슨 장수 중의 장수냐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데도 이를 신경쓰지 않는다.[14] 전장에서 무기를 나누는 것의 의미(=목숨을 나누는 것)를 설파.[15] 이때 유정이 지난 왜교성 전투에서 수급 2천두를 뇌물로 받고 공격하는 척만 하여 자신이 죽을 뻔했음을 언급하며 극딜을 넣는다.[16] 이순신은 피해를 봤지만 그래도 적선 수십척을 부쉈다고 했는데 유정은 자기들이 졌다면서 이순신 탓을 했다.[17] 이순신이 일본군 사자와 자주 만난 것을 알고 있다고 하자 뻘쭘해한다.[18] 이때 리얼하게 행동하는 양 보이기 위해서 수급 1,000 두를 주면 전투에서 빠져주겠다고 하여 수급을 받는다.[19] 무려 나대용에게 수로향도가 되어 안내해달라고 부탁을 한다.[20] 위에는 노량에서 진린이 포위되어 이를 구하다가 이순신이 전사했다고 되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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