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코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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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 VD
짐 코벳
Jim Corb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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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에드워드 제임스 코벳
Edward James Corbett
출생
1875년 7월 25일
인도 제국 나이니탈
사망
1955년 4월 19일 (향년 79세)
케냐 식민지 니에리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직업
군인, 사냥꾼, 환경운동가, 작가
계급
육군 대령

1. 개요
2. 전설의 명포수
3. 사냥꾼이자 자연보호가
4. 그 외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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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본명은 에드워드 제임스 코벳(Edward James Corbett)이며 짐(Jim)은 별명. 영국령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령 케냐에서 생을 마친 군인이자 사냥꾼.

2. 전설의 명포수[편집]


9살의 나이에 엽총으로 표범을 사냥함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두각을 보였지만, 그가 위대한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것은 단순히 어린 나이에 맹수를 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10마리가 넘는 식인 맹수들을 처치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첫 식인맹수 사냥감이 바로 참파와트(Champawat)의 식인 암컷 벵골 호랑이인데[1], 이 호랑이는 무려 400명이 넘는 사람을 먹어치웠으며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아이였다고 한다. 결국 호환을 견디지 못해 군대까지 동원되었고[2], 네팔군의 추적을 피해 참파와트는 인도의 쿠마온 지방으로 넘어온다. 여기서도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었고, 인도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참파와트는 그 모든 조치를 비웃듯이 활개치고 다녔다. 수많은 사냥꾼들과 구르카 용병들까지도 이 교활한 호랑이에게 농락당했고, 결국 436명째 희생자까지 나오고 만다.[3] 호환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수백여 명의 인원을 동원함에도 이 영악한 호랑이는 잘만 피해다녔다.

이에 당시 영국 육군 보병 장교였던 코벳이 참파와트 사냥에 합류하게 된다. 코벳은 참파와트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참파와트가 몸길이 8피트(약 2.4미터)에 암컷이며 쇠냄새에 매우 민감해서 사냥꾼이 총을 들고 접근하면 쇠냄새를 맡고 귀신같이 도망가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벳이 한참 호랑이를 추적하고 있을 때 참파와트가 어린 소녀를 습격해서 끌고가는 사건이 발생했고, 코벳은 소녀의 핏자국을 추적해서 참파와트의 위치를 파악한 후 참파와트가 쇠냄새에 민감하다는 점을 역이용하기로 한다.

코벳은 지역 주민 수백여 명을 동원하여 소리를 내고 쇠 냄새를 풍기며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도록 해서 호랑이를 자극하고 달아나게 한다. 코벳은 진흙과 동물의 배설물로 온 몸을 덮어서 쇠냄새가 풍기는 것을 철저하게 막은 후 호랑이가 달아날 곳을 계산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대낮 정오 무렵에 쏴 죽였다.

번번이 사냥에 실패하던 식인 맹수를 처치한 그 공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는 한 푼의 현상금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지방 영주들이 고마워하며 준 현상금을 "희생자들의 유족을 도우라"며 기부했다고 한다. 회고록에 의하면 '그런 맹수로 절망에 빠진 이들을 돕는 게 먼저 생각할 일'이라고 뜻을 밝혔다. 그 후 그는 11마리의 식인 호랑이를 더 사살하였으며, 그 공으로 훈장도 받고 대령까지 진급하게 된다. 그의 총에 죽은 식인 호랑이들이 낸 희생자가 1,500명은 족히 되므로, 그 정도의 포상은 작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뭐 훈장도 받고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경제적으로 꽤 풍족하게 살았지만.

그가 상대한 여러 마리의 호랑이 가운데 짐 코벳이 유일하게 두려워한 건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살던 '파월가의 독신자'[4]란 수컷 호랑이라고 한다. 총 3번에 걸쳐 만났는데, 짐 코벳의 회고록에는 파월가의 독신자에 대한 평가가 경외와 공포로 가득하다.

일단 첫 만남부터가 드라마틱한데, 우타르프라데시 주가 1930년 독신자를 사냥하고자 그 일대의 숲을 모조리 벌목하게 되고, 살 곳을 잃은 독신자가 새로 이사한 곳이 집 근처의 숲이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짐 코벳은 독신자를 사냥하러 나선다. 어느 겨울 아침, 짐 코벳이 아침 흡연을 하며 주변 경관을 살피던 중, 자기 눈앞에 갑자기 독신자가 찾아왔다. 그는 코벳을 공격하지도 않고 근처 개울가에서 물만 마시면서 그냥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짐 코벳은 "내가 여태 만나본 호랑이 중에 가장 위엄있는 호랑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2번째 만남에서는 짐 코벳은 독신자를 사냥하기 위해 함정을 깔았지만, 이때 그 함정에 걸린 독신자의 카리스마와 덩치에 압도되어 평소답지 않게 눈 밑의 3cm 지점에 맞히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게 오히려 독신자의 성질을 건드린 바람에, 독신자는 당시 그 일대를 거의 초토화시켰다. 이 상황을 직접 목격한 짐은 총을 재장전할 엄두도 못했고, 그저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총을 든 손이 마비될 정도로 움직이지 못 하다가 후퇴해서 거리를 벌린 뒤 집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후퇴해서 목숨을 건졌다고...이튿날 하인 한 명과 함께 독신자를 추적하다가 웅크리고 있던 호랑이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독신자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 호랑이가 가고 난 후 그가 있던 자리에 가보니 피웅덩이가 있어서 독신자를 놓친 걸 깨닫게 되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에 근처 개울에서 다시 독신자를 만났는데, 이때는 정확하게 머리를 맞혔고 그제서야 독신자를 가까이서 대면하게 된다. 짐 코벳은 이때의 소감에 대해 "저 참혹한 상처! 그리고 저 끈질긴 생명력! 내가 쏜 짐승 앞에서 그토록 커다란 경의를 느껴본 것은 맹세코 그 때가 처음이었다."라며 자기 일생 최고의 숙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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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파월가(Powalgarh)의 독신자를 잡았을 때의 사진

또한 그는 식인 표범도 사살한 바 있다. 125명을 잡아먹은 루드라프라야그 표범이나 400명 이상의 사람을 잡아먹은 파나 식인 표범도 그의 총에 최후를 마쳤다. 루드라프라야그 표범을 잡은 자리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 식인 표범들이 입힌 피해까지 포함해 그가 사냥한 식인 동물들에게 죽은 피해자는 무려 2,000명이 넘는다.

이런 그의 업적 덕분에 그는 사두로 간주되었다. 다시 말해서 성인 급으로 추앙받았다는 소리다. 그가 마지막으로 식인 호랑이를 사냥했을 때,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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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세워진 그의 흉상.

이후 자신의 6번째 마지막 저서인 'Tree Tops'를 내고 심장 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에는 짐 코벳이 그동안 기록해 둔 야생동물 외에, 케냐 국립 공원에서 보내온 날들과, 엘리자베스 공주와 조지 6세의 죽음에 얽힌 사건 내용까지 세세히 나와있다.


3. 사냥꾼이자 자연보호가[편집]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가 명사냥꾼인 동시에 자연보호에 앞장선 인물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인도 최초의 국립공원도 만들었으며, 이 공원은 바로 쿠마온 지방에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다른 이름이 붙었지만 나중에는 그를 기념하여 짐 코벳 공원(Jim Corbett Park)으로 불리게 된다.

이게 위대한 이유는, 짐 코벳이 활동하던 시기는 자연 보호나 환경 보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식인 맹수들을 사냥하면서 이러한 괴물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고 환경 교란의 결과[5]가 결국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10년 전만 해도 하루 이틀이면 호랑이를 만나서 잡을 수 있었는데, 이젠 며칠을 가도 호랑이를 만나기 힘들다'라는 식의 경험을 통해서 야생동물의 개체 수의 감소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사냥꾼이기도 하다.

게다가, 당시의 사냥꾼들이 자연보다는 밀렵 활동과 돈벌이를 즐기는 것에만 초점을 둔 것[6]과 달리 짐 코벳은 왜 맹수들 중에서 식인행위를 하는 개체들이 생기는가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연구한 사냥꾼이었다. 실제로 짐 코벳은 참파와트 식인 호랑이를 사살한 후 사체를 확인해보면서, 해당 식인 호랑이가 늙어서 기력도 떨어진 데다 이빨까지 몇 개 나가버려서 야생에서의 정상적인 사냥을 하기 어려웠고 이로 인해 마을로 내려와 가축과 사람들을 해쳤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식인 맹수 하면 흔히 떠올리는 크고 강력한 무서운 이미지와 달리, 현실의 식인 맹수는 노환이나 질병으로 인해서 사냥 능력이 뒤떨어지는 개체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제대로 사냥을 못해 굶주리는 개체 중 일부가 인간에게 덤벼들고, 사람이 의외로 약하고 손쉬운 먹잇감이란 걸 깨닫는 순간 사람을 주식으로 노리는 식인 맹수로 흑화하는 것이다.

희대의 최고 사냥꾼이 자연보호 운동가라니 뭔가 이중적이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식인에 맛들린 맹수들은 인간을 주식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인육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위에 나온 것처럼 인간이 약하고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것을 안 이상, 힘들게 다른 먹잇감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저 식인 맹수들은 그저 자신들의 본능에 따라 사냥할 뿐이다. 그게 그저 인간일 뿐. 따라서 인명 피해는 지속적으로 늘어간다. 코벳이 죽인 식인 맹수들은 모두 100명 이상의 사람들을 해친 동물들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식인 맹수의 존재에 공포심을 느낀 사람들은, 참파와트 호랑이의 사례처럼 군대 수준의 무력을 동원해 근처에 살고 있는 맹수들의 씨를 말려버리게 된다. 식인 맹수는 대부분 늙고 힘이 빠져 다른 동물을 사냥할 능력을 잃어버린 개체인데, 이런 개체의 일탈 행위 때문에 식인을 하지 않는 다른 동족 개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새끼까지 몰살당하고, 결국 인간과 자연 모두 피해를 입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코벳의 식인맹수 사냥은, 문제가 되는 개체만을 정확히 골라내 제거하여 애꿎은 다른 맹수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음으로써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더불어 위 참파와트의 호랑이가 네팔군의 포위망도 유유히 뚫고 다닌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식인 맹수는 인간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도망가는 게 익숙하기 때문에 자연과 살아있는 동물의 생태에 깊은 지식과 관심을 가진 자연보호주의자가 식인 맹수를 상대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실제로 1981년 인도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 호랑이를 쏴죽인 것도 인도의 세계적인 호랑이 연구가인 무파니야트 싱 박사이다. 그도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호랑이를 마구 학살할 것을 막고자 스스로 나서 죽인 것이다. 이런 대규모 식인 맹수가 설치면 사람들이 애꿎은 새끼 맹수까지 마구 죽여버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도 사람을 여럿 잡아먹은 식인 사자를 두고, 사자 보호단체도 식인 사자만은 쏴죽이는 걸 막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호단체가 나서서 잡는 경우도 있는데 사람을 계속 노리게 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자들이 보이는대로 학살당하는 것을 막으려다가 식인 사자를 옹호한다는 억울한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사람들은 인간에게 위해를 끼치는 위협적인 동물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품고, 이는 쉽게 학살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영화 죠스로 인해 식인 동물로 이미지가 굳어진 백상아리들이나 상어들은 멸종 위기 종인데도 사람들이 잘 보호하려 들지 않는다.


4. 그 외[편집]


한때 케냐에 있던 무덤이 잠시 방치되기도 했지만, 짐 코벳 재단에서 정비하였다. 짐 코벳을 성자로 취급하는 인도에서는 짐 코벳이 기르던 사냥개 2마리인 로빈과 로지나의 무덤도 있으며 정기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그 첫 번째가 바로 <쿠마온의 식인 호랑이>이다. 이 책은 2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출판된 바 있다. 현재는 절판.

나중에 케냐에서 은퇴 생활을 하였는데, 이 때 영국엘리자베스 공주는 트리탑 호텔에 그를 초대했다. 근처에 야생동물이 많았기에 그는 잠도 안 자고 공주를 경호했는데, 그날 밤 공주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사망하고 엘리자베스 공주는 그 자리에서 왕위에 올랐다.

2004년 말레이호랑이로부터 독립된 아종으로 인정된 인도차이나호랑이(Panthera tigris corbetti)의 학명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1] 이름이 참파와트가 된 것은 '참파와트' 지역에서 주로 활동해서다.[2] 사실 수만에서 수백만 명의 인구 중 200명 정도의 희생이라면 비율상으로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호환을 당하는 지역 마을이나 도시의 인구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가 불과 몇 십명 정도의 피해라도 당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극도로 공포심이 확산되어 수천 명가량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실제 참파와트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지역은 사실상 사람들이 살지 않아 버림받은 지역이 되었고, 일대의 경제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괜히 군대까지 동원한 게 아니다. 제보당의 괴수 사건도 똑같아서 군대가 출동한 거였다. 조선이 과거 호환에 대항하여 착호갑사를 동원했던 것도 괜히 그런 게 아니다.[3] 현재까지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동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다.[4] 참고로 당시 인도에서 많은 트로피 헌터들이 노리던 개체로 코벳이 자신의 첫 저서인 <쿠마온의 식인 호랑이>에 이 개체에 관한 일화를 적었으나 사실 이 호랑이가 식인 호랑이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5] 서식지 파괴로 인한 먹이 부족, 사람들 거주지가 늘어나면서 가축을 더 노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람을 우연히 잡아먹고 사람 고기에 맛들린다든지 말이다.[6] 이로 인해 대중매체에서 나타나는 19세기 사냥꾼들은 돈독과 이익 그리고 재미로 동물과 원주민을 총살하는 존재로 그려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쥬만지의 악역인 밴 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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