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프레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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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프레고시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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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유격수 골드 글러브
루이스 아파리시오
(볼티모어 오리올스)

짐 프레고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루이스 아파리시오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fregosi-obit-1-master1050.jpg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No. 11
제임스 루이스 "짐" 프레고시
James Louis "Jim" Fregosi

출생
1942년 4월 4일
사망
2014년 2월 14일 (향년 71세)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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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신체
185cm / 86kg
포지션
유격수, 1루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6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BOS)
소속팀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61~1971)
뉴욕 메츠 (1972~1973)
텍사스 레인저스 (1973~1977)
피츠버그 파이리츠 (1977~1978)
지도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감독 (1978~1981)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 (1986~1988)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 (1991~1996)
토론토 블루제이스 감독 (1999~2000)

1. 개요
2. 선수 생활
3. 감독 생활
4. 감독 성적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선수, 감독, 스카우트 등으로 야구계에서 활동했던 기간을 합치면 무려 53년이나 되는 인생이 온통 야구였던 사람.


2. 선수 생활[편집]


1960년에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한 프레고시는 1961년 확장 드래프트에서 신생팀인 에인절스의 지명을 받았다. 그 해 바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1963년에는 주전 유격수가 됐다. 1년 뒤인 1964년에는 올스타로 뽑히더니 1966년부터 5년 연속으로 올스타로 선정됐다. 1967년에는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고, 1968년에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13개의 3루타를 날렸다.

이렇듯 통산 타율 .265에 151홈런, 706타점을 기록하며 1726개의 안타를 날렸던 프레고시는 에인절스에서 뛰었던 11년 동안엔 명예의 전당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268, 115홈런, 546타점을 기록했고, 1408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5년 연속 포함, 6번이나 올스타로 뽑혔다. 별 것 아닌 기록처럼 보이지만 당시에 유격수가 이런 성적을 올린다는 건 엄청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인절스는 그의 등 번호 11번을 영구결번했다.

프레고시는 자신을 가장 유명하게 한 것은 메츠로의 트레이드였다고 말했었다. 1971시즌 후 프레고시는 4명의 선수와 트레이드되어 메츠의 유니폼을 입었다. 메츠는 그를 3루수로 기용했지만 첫 해 .232에 그쳤고, 이듬해에도 성적이 나아지지 않아 시즌 중 텍사스로 트레이드 됐다. 프레고시는 이 해부터 한 번도 100경기 이상 출장하지 못했다. 부상이 이유였다.

문제는 트레이드 상대 4명 중 1명이 놀란 라이언이었다는 것이다. 12라운드에 지명될만큼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라이언은 에인절스에서의 첫 시즌인 1972년부터 19승에 329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삼진왕에 오르더니 무려 7번이나 삼진 1위에 올랐다. 에인절스에서의 통산 성적은 138승 121패 3.07이었고, 2181.1이닝 동안 241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통산 5714개의 삼진을 잡아냈다는 거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프레고시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프레고시의 기록은 시대에 따른 조정 능력이 뛰어난 WAR 기록에서 더 돋보인다. 에인절스에서 전성기를 보냈더라도 .268의 타율과 .743의 OPS는 별 것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조정 OPS는 116이었고, 애너하임 스타디움(1965년까지는 다저 스타디움)은 타자에게 상당히 불리한 구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유격수였다. 에인절스에서 뛰는 동안 두 자릿수 홈런이 5번이어고, 1970년에는 22홈런에 82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볼넷을 많이 얻어내며 1969년에는 93볼넷을 기록하기도 했다. 에인절스에서의 출루율은 .340이었다. WAR로 보면 통산 48.7인데 에인절스에서의 11년(사실은 9년) 동안 45.9였다. 명예의 전당급으로 가고 있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올스타급이라는 5 이상만 5번이었고, 4.9, 4.3을 찍은 적도 있었다. 전성기 9년 동안 가장 낮았던 게 3.9다. 45.9를 기록할 당시의 프레고시의 나이가 29살이었는데 랄프 카이너(49.4), 짐 라이스(47.2), 마크 그레이스(46.1), 오마 비즈켈(45.4), 현역인 30세의 로빈슨 카노(45.2)와 조 마우어(44.3) 등과 비교하면 프레고시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 당시엔 WAR, OPS 등의 질적 평가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들이 각각의 성적에 고르게 반영되어 있었고, 당시 사람들도 프레고시가 탁월한 유격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비슷한 WAR(46.3)을 기록한 데일 머피처럼 탁월한 전성기를 보내고도 부상으로 선수 생활 후반기에 성적이 떨어져 동 시대의 경쟁자들에 비해 통산 성적에서 저평가된 사례다.[MLB] 올스타 유격수 짐 프레고시, 71세를 일기로 별세


3. 감독 생활[편집]


1978년부터는 에인절스(1978-1981)의 감독을 맡았고, 이후 시카고 화이트삭스(1986-1988), 필라델피아 필리스(1991-1996), 토론토 블루제이스(1999-2000) 감독을 역임했다.

1993년에는 필리스를 이끌고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시리즈에도 진출했다. 감독 통산 성적은 1,028승 1,094패.

4. 감독 성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78
LAA
116
62
54
.506
지구 2위
-
1979
162
88
74
.543
지구 1위
CS 탈락
1980
160
65
95
.406
지구 6위
-
1981
47
22
25
.468
지구 4위
중도 경질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86
CHW
96
45
51
.469
지구 5위
중도 취임
1987
162
77
85
.475
지구 5위
-
1988
161
71
90
.441
지구 5위
-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1
PHI
60
28
32
.467
지구 3위
-
1992
162
87
75
.537
지구 3위
-
1993
162
99
63
.611
지구 1위
WS 준우승
1994
162
74
88
.457
지구 5위
-
1995
162
85
77
.525
지구 3위
-
1996
64
26
38
.414
지구 5위
-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9
TOR
162
84
78
.519
지구 3위
-
2000
162
83
79
.512
지구 3위
-
총계
3078
1650
1428
.536
1WS 2CS 4DS ­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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