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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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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차제남은 1850년생이며 황해도 수안군 대천면 사창리 출신이다. 1919년 3월 1일 곡산의 천도교 신자 이경섭(李景燮)이 수안읍 천도교구장인 안봉하(安鳳河)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안봉하는 즉시 김영만(金永萬), 나찬홍, 최용식, 이영철(李永喆), 홍석정, 한청일 등 천도교 관계자들과 회합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그들은 3월 3일에 군내 각 면의 천도교인들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고 헌병의 퇴거를 요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면서 안봉하, 김영만, 나찬홍 등 대부분의 주동자들이 체포되었다. 하지만 체포를 모면한 인사들은 예정대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했다.
이때 차제남은 안봉하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전해들은 뒤 이 사실을 관내 교인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3월 3일 오전에 군중과 함께 수안 헌병분대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며 헌병분대의 퇴거를 요구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8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차제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