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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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고대
2.2. 중세
2.3. 근세
2.4. 근대
3. 양성 및 운용
4. 다른 병종과의 비교
4.1. 창병 VS 검병
4.2. 창병 VS 기병
5. 가상 매체에서의 창병



1. 개요[편집]



Spearman.

을 쓰는 병사, 정확히는 그 중에서도 창을 든 보병을 뜻한다.


2. 역사[편집]


고대부터 운용해오던 병과중 하나로 총의 정확성이 발달되도 총검을 달아 창병 대체가 가능하기 전까지 운용해왔다.

창병은 검이나 활과 달리 대량의 저숙련도 병력을 긴급히 무장하거나 저예산으로 많은 병력이 필요 할 경우 이 주요 무기가 되었으며, 길이가 긴 창의 경우 대규모로 밀집해서 전개하면 쓸만한 전투력을 가졌다.

상술하듯 최소한 검술을 배워야 하는데다가 창과 달리 철의 비중이 많이 들어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검병과 일단 손의 악력이 강해야하며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을 해야해서 시간이 많이드는 화살이라는 재고를 많이 비축해야해서 더 돈이 드는 궁병에 비하면 창병은 그냥 나무봉에 솜이나 천으로 감싸서 찌르기 훈련도 가능하고 창의 사거리만으로 적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으며 숙련도가 낮아도 그냥 창 들고 휘두르거나 그냥 대형 밀집을 짜서 전개하기만 해도 기병을 카운터 할 수 있었다.

장전에 시간이 걸리고 명중률이 떨어졌던 화승총 시절에는 장전하는 총포병들을 기병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창병이랑 복합운영을 많이하였다.


2.1. 고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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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호플리테스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창병의 대표 아이콘인 그리스의 호플리테스는 원래 한 손에 큰 방패, 다른 손에 2.5m가량의 창을 든 모양이었다. 이들은 중무장 보병으로 서로 방패를 들어 옆에 있는 동료를 방어해 주는 팔랑크스 대형을 형성했다. 이 대형이 먼저 무너지는 쪽이 도망치기 시작하면 대기하고 있던 소수의 기병들과 경보병들이 주력군과 함께 돌격해 쓸어버리는 것이 이 당시의 전투 패턴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스파르타에선 다른 폴리스 군인들이 진형 유지 훈련하느라 날 다 보내는 동안 진형 유지따윈 이미 처음 몇 년 만에 다 떼놓고 개인 무술이며 기동훈련, 제식에 임무형 지휘체계까지 훈련한 강군이었으며, 그래서 진형이 깨지면 그대로 패주하는 다른 그리스 병사들과 달리 이들은 일부러 진형을 해체하고 흩어졌다가 적이 추격하느라 길게 늘어지면 순식간에 재집결하는 식의 기동전술을 펼쳤다고 한다. 이게 가능했던 건 다른 폴리스들은 자기 생업에 종사하는 시민병으로서 1년에 십수일에서 30일 정도의 훈련을 받을 때 병영국가인 스파르타는 거의 1년 내내 군사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팔랑크스를 쓰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폴리스나 국가들의 팔랑크스나 별 다를 게 없었다. 이 점을 간파한 테베의 명장 에파미논다스는 이후 사선진을 창안해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정예군을 격파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테베에서 볼모 생활을 했던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아예 팔랑크스 자체를 개량해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를 창안해냈다.

이를 이피크라테스 개혁이라고도 칭하는데, 그 핵심은 방패를 가죽끈으로 팔뚝에 묶고[1] 사리사라고 불리는 길이 6.5m가량의 긴 창을 쓰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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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필리포스 2세가 개량한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는 이후 그리스 통일 전쟁에서 활약했고, 그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과 디아도코이 전쟁 때에도 주력군으로 쓰였다. 그러면서 팔랑기타이의 창은 점점 더 길어지고 중무장화가 진행되었는데, 창을 들고 측면을 노리는 기동을 요구하느니[3] 차라리 창의 길이를 늘리고 떡장을 입혀서 정면 힘싸움에서 승리하는 쪽을 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유연한 측면 기동은 보조 보병들과 기병의 몫이었고, 이를 잘 활용한 명장이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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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창병방진 단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당장 제철기술의 발달로 검의 성능이 일신되자 검이 주력인 로마군이 창을 주력으로 쓰던 그리스 문화권의 국가들을 전부 패배시키고 무릎을 꿇렸으며, 이 때부터 창은 보조무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전투를 뽑자면 키노스케팔라이 전투에서는 측면공격으로 무너뜨렸고 피드나 전투에서는 전면에 생긴 틈을 통해 무너뜨렸으며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는 아예 대놓고 정면에 싸움을 걸어 무너뜨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냐면 먼저 창병방진은 창의 밀도가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 앞 창날과 뒤 창날 간의 간격이 80cm~1m정도 되기 때문에 실력이 되는 검사들은 충분히 파고드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집단으로 뭉쳤을 때 창은 검보다 유기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120명 정도의 마니풀루스나 100명 정도의 백인대 단위, 정 뭐하면 8명 단위의 콘투베르니움으로도 흩어져서 싸울 수 있는 로마군에 비해 그리스의 팔랑크스들은 그러질 못했다.

결국 이는 마케도니아 전쟁 당시에 로마군이 그리스군에게 과도한 기동을 강요받게 한 후 빈틈을 만들어 파고들어 돌파하는 것을 막지 못해 대패하는 원인이 된다.[4] 유일하게 이긴 게 피로스 전쟁인데 그 피로스마저도 출혈이 엄청났다. 애초에 중장보병 회전은 무조건 평야에서 일어났지 구릉지대나 산악지대에서 일어난 적이 거의 없단 것을 고려하면 무겁고 느린 마케돈식 팔랑크스는 날아다니는 로마의 레기온에게 매우 약했다. 이미 초창기 그리스식 팔랑크스를 운용해본 로마는 전열도 없이 빠르게 이동하는 켈트족과 삼니움족과의 싸움을 통해 팔랑크스가 가진 한계를 경험했다. 켈트족은 전열대형이라 해도 상당히 띄엄띄엄 있거나 아예 진열을 구성하지 않았기에 훨씬 유동성이 좋아 팔랑크스의 측후면을 노리기 쉬웠고 삼니움족은 뛰어난 게릴라전술로 절대 팔랑크스가 유리한 상황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다층으로 이루어진 이 대형은 전진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파괴력을 가졌지만 반대로 기동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정교한 전술을 발휘할 여지가 적었고, 이 탓에 고위 장교들도 대열에 끼어서 그냥 묵묵히 전진해야 했다고 한다. 이러한 대열은 빨리 움직이면 전열이 무너지므로 천천히 전진해야 했는데[5] 이는 이 전술의 최대 약점이었다. 이 때문에 팔랑크스는 측면과 후방에 대한 공격, 특히 무기를 들되 방패를 들지 않은 오른쪽에서 기병이나 경보병이 투사무기를 이용해 공격해오면 상당히 취약했다. 기원전 391년에 벌어진 레카이움 전투(Battle of Lechaeum)에서는 아테네군 경보병대가 스파르타군 왼편에 매복해있다가, 스파르타군 중보병대가 보급품을 호송하고 방향을 바꿔 돌아올 때 오른쪽이 노출되자 사정없이 공격하기 시작해서 투사 공격만으로 집요하게 추적하며 공격해 600명 중에 250명을 사살해내기도 했다.

팔랑크스에선 대대나 연대는 존재하지 않고 병사나 장교 할 것 없이 모두 한덩어리로 직사각형의 대열을 이루는 것이었다. 물론 편제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명목상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쓸려면 쓸 수 있었던 로마군과 달리 그리스의 팔랑크스는 쓸려해도 쓸 수 없었다. 적은 인력풀과 적은 훈련 시간만으로 쓸만한 병사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팔랑크스와 창의 문제점이며 한계이다.

그리스인 역사가 폴리비오스도 팔랑크스의 단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전장에서는 모든 전투의 시간, 장소, 상황이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이 모든 중요한 조건 하나하나에 따라 전투의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팔랑크스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특정한 상황에서만 무적이다. 팔랑크스에 유리한 시간, 장소, 상황에서 이에 대적하는 한 이 가공할 대형을 무너뜨릴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팔랑크스가 불리한 시간, 장소, 상황이라면 그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 팔랑크스를 유리하게 만드는 조건이 쉽게 사라지는 경우는 있어도, 팔랑크스를 불리하게 만드는 조건이 사라지는 법은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스인들의 이 유명한 전투대형이 로마인들이 대항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보다 왜 열등한지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준비한 계획은 5분만에 휴지조각이 된다는 후대의 명언처럼 전장은 변수와 싸우는 곳인데, 극도로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제 위력을 발휘하는 팔랑크스는 어찌 보면 없어지는 게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이후 지중해 세계 최강의 병종은 로마의 레기온이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창의 비중이 낮아졌다고 창이 완전히 강판당하지는 않았다. 창은 특화무기로서 자신의 장점에 해당하는 영역에서는 매우 강력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제국군도 팔랑크스들을 보조병으로 직접 편성하거나 동맹들에게서 지원받아 보조병으로 사용하였고 동로마제국군도 주력 중보병인 스쿠타토이들의 제 1선에는 창을 든 병사들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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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타티 또는 스쿠타토이(Skoutatoi). 제국 역사상 스쿠타토이로 불렸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기에 스쿠타티로 일컫는 게 때문에 보다 적합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차피 학계에서도 완전히 고정된 것도 아니고 여기는 학계도 아니니 맥락에만 맞으면 그만이므로 부르고 싶은대로 불러도 된다.

비잔티움 보병의 중추이며 명칭은 이들이 사용하는 타원형, 연 모양 대형 방패인 스쿠톤(Skouton)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스쿠톤은 각 부대마다 장식이 달랐다고 한다. 투구는 대체로 단순하고 위쪽이 뾰족한 철제로 목 보호대가 추가되는 정도였다. 린넨이나 양모 옷을 입은 위에 흉갑을 덧입고 그 위에 가죽이나 천으로 된 패드 등으로 고정시키는 게 보통의 갑옷이며 그 외에 하반신 보호를 위해 두꺼운 천을 받쳐입기도 한다. 대대의 앞열은 2~3m 정도의 장창과 대형 방패로 무장해서 후위를 보호하며 그 외에는 검과 방패로 무장한다. 검은 장검과 곡도를 쓰는데 장검은 전형적인 스파타지만 후기로 가면 가드 등이 중세형 장검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인다. 그 외에 검과 투창 또는 검과 활로 무장한 경보병인 프실로이를 포함해 대략 1000명 단위로 부대를 편성하였다. 보통 중보병 650명에 경보병 350명을 편성하였다고 한다.


2.2. 중세[편집]


그 후 시간이 흘러 로마가 무너진 뒤 동양수준은커녕 로마시대 정도의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나 충성도 따위도 아예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 체제가 된 유럽에서는 직업전사들이 주로 검을 썼고 강제 동원된 사람들은 주로 창을 썼다. 당시 문학이나 기록, 당시 분위기를 낸 소설 같은 것을 보면 자기네의 군세가 강하다는 증거로 긴 검과 강한 방패를 가진 전사가 몇 명인지를 드러내는 어구가 자주 보인다.

물론 직업전사들이 검만 쓴 게 아니고 보조무기로 창과 도끼 등을 상황에 따라 썼다. 직업전사들이라 개인 단위로도 강력한 무위를 내야 하는데다가 사람이 없는데 한 가지 역할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6] 한편 투사무기류들은 무기와 궁시, 탄약류의 확보부터 전문인력 유지, 병력배치와 진형유지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운용이 쉬운편은 아니었다.[7]

어쨌든 중세시대에도 비싼 장비와 훈련비를 부담 가능했던 기사나 전사들의 존재로 인해 창병의 입지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사슬갑옷트랜지셔널 아머의 등장으로 점점 유효타를 먹이기 힘들어졌기 때문. 창병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근접전 무기가 아니라 조준하고 찌르고 활이나 쇠뇌를 휘두르듯이 휘둘러 근접한 적에 저항하는 비소모성 원거리 무기에 가까워서 이들에게 근접전을 맡길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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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중세 후기 스위스 용병을 비롯한 장창 방진이 기사들을 상대로 훌륭한 전과를 거두면서 다시 창병이 전 유럽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때의 방진 구성에는 상당한 숙련도가 요구되었기 때문에 장창병의 경우 5년은 해야 쓸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10년 정도는 복무해야 고참병 소리를 들었다. 스웨덴에서는 전쟁이 많아지자 외국에서 군사 고문관들을 데려왔는데, 이들은 스웨덴군 창병들이 파이크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방진도 제대로 못 만든다며 혹평을 했다.[8] 다만 이것은 소속된 집단에 대한 소속감, 충성도가 높아야 하고 집단 상층부가 하층부에 대한 통제력과 영향력이 높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었으며, 그래서 이쪽 저쪽을 오가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전국시대 일본은 테르시오마냥 창병의 비율을 높게 유지하였다.


2.3. 근세[편집]


이후 총기가 등장한 후에도 창병은 계속 활용되었다. 초기 머스킷은 장전시간이 미친듯이 길었기 때문에 머스킷 사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동식 방벽 역할을 위해 창병의 입지가 이전 시대보다 더 올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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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으로 총병을 보조하는 테르시오 진형과 카라콜을 하는 기병의 모습

이렇게 테르시오의 등장으로 장창이 총병의 보조 병과로 전쟁 전면에 나오면서 다시 창병의 중요성이 올랐다. 중국의 기록이나 맘루크들의 전투경험에서도 드러나듯이 기병 자체를 척살하는 데에는 창은 효용이 매우 낮고(특히 중국기록에서 이것이 드러난다.) 오히려 검이나 다른 단병을 든 병사들이 효과적임이 드러났으나 돌진을 효과적으로 거부 방법은 단병들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어차피 총병들이 딜링을 넣어 적들을 꼬꾸라트리니 창병들은 고기방패가 되어 1차적인 접근거부만 해주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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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오른쪽 스코틀랜드 병사가 든 긴 창이 파이크이고, 왼쪽의 짧은 쪽이 잉글랜드에서 많이 썼던 폴암, 이다. 일단 저 그림에서 묘사된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창날 안쪽으로 파고들어온 을 든 병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1513년 플로든 전투에서는 위와 같이 잉글랜드의 빌과 스코틀랜드의 파이크가 맞붙었는데, 전장의 언덕 지형과 늪지대 때문에 파이크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총기의 득세로 이후 전장에는 파이크를 든 창병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후대에 'pike and shot'(총창진)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창의 전성시대를 열어졎혔다.

그리고 기병도 갑옷을 입어도 총에 어차피 뚫리는 판이니 비싼 전신 갑주 대신 중요부위만 방호하거나 아예 갑옷을 얇게 입기 시작했기에 창병에게 본격적으로 데미지를 입게 되어 창병은 총병과 함께 제 2의 전성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화약무기의 지속적인 발달로 창병의 보조가 없이도 총병만으로 충분한 저지력을 가지게 되었고 창병이 막아야하는 충격기병이 대부분 사라져 버리고 테르시오로 대표되던 방어력은 좋은데 돌격력이 애매한 장창기반의 밀집방진을 잡기 위해 사격전에 치중한 선형진(Line formation)이 나타나면서 장창 방진은 날이 갈수록 사거리와 위력이 강해지는 대포와 총으로 인하여 도태되게 되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총검이라는 희대의 발명품이 나오면서 굳이 창병을 투입하지 않아도 근접전과 대 기병 방진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창병은 옛날 병종으로 전락했다. 그 전부터 총기와 운용법의 발달로 총을 비롯한 원거리 무기로도 효과적인 방어를 한 사례가 있고[9] 점점 머스킷의 물량이 늘어나며 가격 면에서도 장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기병이 사라진 전장에서 창의 역할을 대부분 대신해줄 수 있는 총검의 개발로 전장에서 보병이 사용하는 전투용 창은 완전히 사라진다.


2.4. 근대[편집]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총검술은 세이버 검술의 방계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총검술이 아니라 자돌격(찌르기 돌격)과 거리벌리기만 있는 창술과 별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이들도 창으로 구분해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찌르기에만 모든 것을 건 스파이크식 총검은 아니었으므로 창이라고 보기엔 좀 난감하다는 주장도 있다.


3. 양성 및 운용[편집]


창병 교육이 쉽다고는 해도 막상 제대로 된 창병을 양성하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제작이 가장 용이하고 저렴한 무기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기후나 상황에 따라서 그렇지 않다는 예시도 있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인 1625년 경기도 속오군에 화포수(火砲手) 3000명, 장창수(長槍手) 1000명, 대검수(大劍手) 1000명씩을 조직하기 위해 무기를 조달하려고 했는데, 10년 뒤인 1635년에도 창대로 쓸 목재 조달이 되질 않았다. 조총[10]이나 장검은 어떻게 조달이 되었는지 별 언급이 없지만 창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구굉이 장창 1000개를 만드려고 하는데 자루가 없어서 자루로 쓸 만한 나무를 구해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11] 이처럼 조선 후기의 경우 창대로 쓸 재료의 문제(아무 나무나 쓸 수 없다)와 제작 난이도 문제(가운데에 심에 쓸 목재와 주변부에 결합할 부품 등)로 인해 총보다도 가격이 비쌌다. 조선 기준 조총가격이 3.5석일 때 창대가격만 2석이었던 것. 물론 이 경우는 기후변화로 인한 식생의 변화, 전쟁용 창 제작 노하우의 단절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어쨌든 창이 마냥 저렴하고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무기만은 아니었던 것. 1m짜리 단창이면 몰라도 긴 장창을 만들 목재는 구하기 어렵다. 플라스틱이 나오기 전까지 인류는 다양한 목재를 구하려고 몸을 뒤틀어야 했다.

흔히 총알이 날아오든 포탄이 터지든 묵묵히 걸어가는 전열보병을 보고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하는데, 창병도 절대 진형을 흐트리면 안 되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화살이나 투창, 그 외의 투척무기들을 맞고 죽을지언정 절대 진형을 이탈해서는 안되었다. 타 병종과 달리 창병은 진형을 흐트리는 순간 그 존재가치가 거의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아시가루 창병들의 경우에는 아예 라인배틀을 연상시키는 진형전을 벌이는 것이 일상이었고, 먼저 사기가 떨어져 창병 전열이 무너지는 측에게 사무라이나 대도를 든 아시가루들이 돌격해들어가 전선 전체를 무너뜨렸다. 서유럽도 마찬가지로, 장창병의 2번째 전성기였던 르네상스 시대에도 서로 창대를 들이밀고 밀어붙이는 무자비한 라인전이 주 전투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단병기와 방패로 무장한 병사들, 소위 로델레로들이 창대 사이로 파고들어가 타격을 가하는 등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고대 호플리테스와 팔랑기타이들의 전투 양상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거라 추측된다.#

물론 개인 기예로 창술을 익힐 수는 있겠지만 척 봐도 창 들고 날뛰는 원맨쇼는 전장에서 창이 요구하는 포지션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익혀봤자 다른 무기들에게 취약한 점은 변함없다. 창의 주 공격수단인 찌르기는 아주 짧은 무기인 단검이 아닌이상 선딜과 후딜이 길어서 단독으로 했다가 실패하는 경우 미래가 없는, 난이도 높은 공격이었다. 이건 1kg 남짓이었던 레이피어들도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일본에서도 칼이 없으면 봉을 들고 봉이 없으면 주먹으로 싸우라 했다. 무로마치 시대의 주요 부상 원인 보병이 기병을 상대할 때의 팁

길고 좁은 곳은 교전에 필요한 면적이 적어서 좁은 곳에 대량의 병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창병들이 활약할 여지가 많은 곳인데도 창병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창병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근접전 무기가 아니라 조준하고 찌르고 활이나 쇠뇌를 휘두르듯이 휘둘러 근접한 적에 저항하는 비소모성 원거리 무기에 가까워서 이들에게 근접전을 맡길 수도 없었다.
  • 주로 4~5m되는 장창을 든 창병이 4~5열 이상 두툼하게 배치된다 하더라도 그 창병들이 일제히 공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속적으로 창을 전방으로 세운 진형에서도 보통 앞 창날과 뒤 창날 간에 0.8-1m 정도의 간격이 있어서 창날을 하나씩 피하거나 15~17세기마냥 창 밑으로 침투하거나 조선왕조실록이나 서양 양손검병 묘사화에서 나온 것 마냥 아예 검으로 창대를 잘라가며 파고드는 것이 가능했다.
    • 앞의 레기온 vs 팔랑크스의 경우 말고도 15세기말~17세기 중반까지 있었던 장창방진끼리의 싸움에서 란츠크네히트의 경우 투 핸디드 소드나 할버드를 든 병사를 앞쪽에 배치했고 검술자료들을 비롯해 당시 사료나 군대끼리 서로 싸우는 당시 그림을 봐도 서로 검 들고 싸우는 도펠죌트너 같은 검병들이 앞에서 현대의 전차마냥 백병전을 하며 장창방진을 무너뜨렸고 뒤에서 파이크병들이 현대의 보병마냥 뒤에서 지원 및 잔적 처리방식으로 싸웠었다.


4. 다른 병종과의 비교[편집]



4.1. 창병 VS 검병[편집]


창과 대비되는 검의 경우, 검술을 일정이상으로 익히기 위해서는 담대한 강단과 자기확신에서 나오는 패기가 필요하며 신체의 반응속도가 빨라야 했다. 그리고 군대는 빠른시간 내에 집단전에 쓸만한 병사들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군대에서 신병 양성에 허락된 시간만으로는 제식훈련과 체력단련, 충성과 복종심, 행군을 가르치는 데에도 빠듯하므로 전투기술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창과 밀집대형을 통해 일신의 무예가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무기의 리치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검술을 익힌다면 다른 무기와는 달리 냉병기끼리의 근접전투에서 다른 종류의 무기를 찾지 않고 싸울 수 있고 승률도 높지만 개개인마다 편차가 커서 지휘관들이 지휘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군대란 집단은 어느정도 기준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창병 무용론에서 로마 군단병이 글라디우스를 주력으로 하는 검병이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지만, 군단병의 경우 징집병이던 공화정 시기에도 농사를 제대로 못 지을 정도로 전장에 끌려다니며 수많은 실전경험을 쌓아대던 지중해 세계의 독보적 엘리트 부대인데다, 제정 시기에 들어서면 근위대가 16년, 군단병이 20년, 보조병이 25년이라는 엄청난 복무기간을 통해 고금을 통틀어 유례없는 정예병을 대규모로 운용한 군사국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마저도 글라디우스의 전성기이던 원수정 시기에도 보조병 보병대 혹은 포에데라티 등으로 창병을 지속적으로 충당했고, 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의 대규모 중기병을 맞아 싸워야했던 동방에서는 군단병들도 창이나 장창을 곧잘 사용했다.

또한 검병들의 경우 특성상 다용도로 쓸 수 있는 특성으로 인해 기동전을 펼치며 싸워야 하고, 병과 특성상 무언가를 더 쥐어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보조무기까지 익히느라 오랜 양성기간이 필요했고 장병 개개인들의 소속된 집단에 대한 소속감, 충성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쉽게 양성이 되는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유럽은 소속감이나 충성도 따윈 개나 줘버린 상황이라 단순 직업전사들 중심의 전쟁이 아닌 대규모 인원의 전쟁이 된 이후부터는 복잡한 소부대의 전장이나 전역 내 기동보다는 병력 통제가 가능한 대부대들에 의한 기동과 전투를 했었고 이런 특성상 탈영병 발생 억제를 위해서라도 창병들을 많이 쓰게 되었다. 이 흐름은 전열보병까지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1대 1 싸움이라면 창병이 상당히 우세하지만 집단전의 경우에는 검병측이 방진을 파훼하고 백병전을 벌이는데 성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검병은 양성과 무장이 어렵고 창병은 이 부분에서 이점이 있어, 국가 전략 차원에서는 검병의 유용함을 알더라도 훈련 및 무장 문제,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병에 대한 저지력 문제로 인해 창병의 비중도 일정 이상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수많은 vs 놀이처럼, 검병과 창병은 그저 쓰임새가 다를 뿐이며 둘 다 상황에 따라 유용한 병종이라는게 진짜 결론일 것이다.


4.2. 창병 VS 기병[편집]


역사를 다룬 각종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들에서는 항상 창병이 기병에 보너스를 가져서 유리한 것으로 나오고, 실제로도 스위스 용병들의 장창 방진은 기사들을 상대하는데 유효한 전술이었다. 스위스 용병들은 그것을 입증했고 기병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다시금 장창이 각광받았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동족전에는 전차, 이민족전에는 기병에 대응해야했기 때문에 창의 전신인 이 보병대의 주무기로 사용되었고 창이 개발된 뒤로는 만병지왕이라고까지 칭하며 창을 애용하였다.[12] 임진왜란에서 오오타치를 휘두르는 숙련된 검병대를 만나기 전까지, 한족들이 수 천년을 피터지게 싸워온 주 적은 북방 유목민의 기병대임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으로 창이 대기병에 유용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장창 방진은 요구되는 조건이 매우 많은 숙련된 전술이었으며 따라서 창병은 기병에게서 항상 우위를 점하는것은 절대 아니였다. 아래의 두 개의 전투가 그것을 보여주는 예다. 두개의 전투 모두 다 프랑스와 플랑드르 사이에 있었던 전투다.

예로 1302년 7월 11일에 있었던 일명 황금박차 전투, 즉 플랑드르(오늘날 벨기에) 지역의 보병들(긴 창과 플레일-도리깨로 무장한)이 프랑스 기사들을 물리친 일은 국내에도 꽤 잘 알려져 있다.#[13]

하지만 이 황금박차 전투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플랑드르 보병들이 순수하게 스펙에서 프랑스 기사들보다 앞서서 이들을 정면으로 물리친 것이 아니라, 전투에 앞서 전장을 기병에게 불리한 늪지대로 설정하고 지형을 활용해 적의 우회로를 차단해두었으며 결정적으로 반란군이라고 얕본 프랑스군의 전술적 오판이 패배를 불렀다. 프랑스의 중무장 기사들은 늪지대에 빠져 기동력을 상실했기에 기동력을 상실한 기병들은 플랑도르 보병들에게 무참히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사전 작업이 없이 개활지에서 순수하게 긴 창이나 플레일로 무장한 플랑드르 보병들이 프랑스 기사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던 1382년 11월 27일 로세베크 전투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일어났다. 로세베크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는 약 1만 명(6,500명의 중무장병 2,000명의 장창병 1,200명의 석궁병과 궁병들)으로 구성되었고 적수인 플랑드르 군대는 거의 전원이 플레일과 장창으로 무장한 보병들 3~4만 명으로 구성되었다. 수적으로 플랑도르 군이 우세하였으나 프랑스군은 이전의 황금박차 전투를 잊지않았고, 무작정 기병을 돌진시키는것이 아닌 보병으로 적을 묶고 기병으로 상대의 측면을 공격했다. 결국 프랑스 기병의 측면공격을 견디지 못한 플랑도르 측면이 무너지면서 패주하였고 그 여파로 플랑도르군 후방이 붕괴하며 부대가 와해되었다. 이후로는 프랑스가 기세를 타서 몰아붙이는 상황이 이어졌고 플랑도르 군은 흩어진 군대를 수습하여 원형진으로 버텼으나 프랑스군이 이를 포위, 결국 프랑스 군대가 고작 100명이 전사한데 반해, 플랑드르 군대는 무려 27,500명이 전사하고 총사령관인 필립 반 아르테벨드가 프랑스 군대에 의해 살해되어 그 시체가 나무에 매달려 전시되는 참패로 이어졌다.

반면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최종 결전이었던 파르살루스 회전에서, 폼페이우스의 7천 기병대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던 카이사르의 최정예 트리아리들은 약 2천 가량의 소수 보병대임에도 군단병 특유의 중무장에 더불어 글라디우스 대신 창을[14] 활용해 폼페이우스의 7천 기병대를 되려 격퇴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즉 창이란 무기는 기본적으로 기병에 유리한것은 맞으나, 어디까지 운용하는것은 '인간'이므로 상대 기병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기병의 돌진을 정면에서 맞볼 담력, 달려드는 충격력을 버티는 정신력을 갖추지 못하면 사기가 떨어저 진형이 붕괴되며 패닉에 빠져 진형이 무너진 보병들은 결코 기병의 적수가 되지못한다. 즉, 일정 이상의 훈련과 실전경험, 죽창이나 막창이 아닌 제대로 된 창과 갑주를 갖춘 정예한 창병이라면 기병대에게도 무너지지 않고 되려 응집력과 견고함으로 돌격해온 기병을 한 끼 식사마냥 잡아먹어버리지만, 그렇지 못하고 농사짓던 아무개나 데려와 찌르기 훈련이나 간신히 시킨 저급한 민병대 창병은 기병을 상대할 수 없었다. 물론 이 정도의 막장 병사라면 창이 아니라 검을 들더라도 일반적으로 정예한 기병을 막을 수 없긴 매한가지긴 하다.

다만 게임에서는 그렇게되면 너도나도 기병만 운용하는 판이 되니 밸런스패치를 한 셈이다.


5. 가상 매체에서의 창병[편집]


역사나 판타지 계열에서 검병이나 궁병과 함께 기본적인 보병으로 등장한다. 대기병에게 강하다는 상성은 있긴 한데 가성비로 따지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극상성이 아닌 약상성인 게임의 경우 중무장한 기병과의 교환비를 보면 어째서 근세 이전까지 기병이 전장에서 그렇게 명성을 떨쳤는지 알 수 있다.

검병이나 궁병, 기병, 심지어 머스킷도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매우 많지만 다른 보병 병종에 비하면 1:1에서는 밀리는 창병이 주인공인 창작물은 거의없다. 요괴소년 호야아오츠키 우시오아나후세 정도. 실제 역사처럼 잘 쳐줘도 주인공에게 썰려 나가는 졸개거나 주인공의 주변을 꾸미는 배경 역할이 많다. 그나마 제 성능이 나오는 대규모 교전에서만 실제 역사처럼 가장 많은 등장 횟수를 보여준다. 역시 병풍 창병 계열 중 주인공급은 켈트 신화의 쿠 훌린 정도. 물론 최강으로 설정된 경우도 있긴 하나 대가가 너무 큰 편이니... 사실 창은 일반병들에게 지급되던 기본적인 무기이고 검이나 다른 무기들은 공략법만 알면 다른 무기들을 쉽게 이기고 몰라도 경험과 재능으로 커버 가능하다보니(반대로 없으면 폴암이나 들어야겠지만) 이야기꾼들에게는 그리 선호할만한 무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삼국지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장수가 창병으로 나오는데 이들은 말을 타고 싸우므로 엄밀히 말해서 창병이라기보다는 기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5.1. 도미네이션즈[편집]


여명 시대의 중장갑 보병으로 등장한다.


5.2. 문명 시리즈[편집]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는 시리즈 대대로 반만년 수행하여 전차건 전투기건 이기는 창병이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했다.[15] 시스템이 완전히 뜯어고쳐진 문명 5에서는 그나마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불균형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아래와 같이 이론상으로 창병이 탱크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남아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방법은 이전 시리즈들과는 달리 의외로 그럴듯한 편인데, 먼저 탱크(전투력 70)측은 늪지에시 허우적대고(습지지형 전투력-15%) 보급도 못 받아 연료가 다 떨어져 있으며(전략자원부족 전투력-50%) 사기도 바닥에다(불행1당 -2%으로 불행을 13으로 잡을 경우 -26%) 막 뽑아낸 신병인 반면(추가 전투력 보너스 없음. 총합 -91%. 페널티는 90%이상 받을 수 없다), 창병측은(전투력 11) 보급 충분하고 사기도 높으며 오랜 기간동안 복무한 베테랑에(평지지형보너스3단계 +45%) 지원군이 탱크를 포위중이고(측면공격보너스+50%, 인접유닛보너스+15%) 나폴레옹급 지휘관에게 지휘받는 상황(+15%. 총합 125%)에서 전투가 벌어질 경우 탱크의 전투력은 7, 창병의 전투력은 24.75가 되어 창병이 탱크를 한방에 잡을 수 있다.

다만 전반적인 창병 계열 유닛에 대한 대우 수준은 문명 3까지는 괜찮았지만 문명 4 이후로 쭉 영 좋지 않은데, 문명 5에서는 업그레이드 순서가 창병->장창병->창기병->대전차포->공격헬기. 그냥 무조건 대기병 특수부대 정도의 취급이다. 창병은 전사보다 강하지만 그 이후로부터는 쭉 일반 보병에 밀린다. 패치 전에는 심지어 대놓고 이기라고 있는 기병에게도 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버프되긴 했다. 문명 6에서는 그나마 전부 다 보병으로 나오지만 대전차병인 건 똑같다. 전반적으로 전투력이 동시대의 보병에게 밀린다. 물론 창병 유닛이 한 시대 앞선다면 검병 유닛을 이기지만...


5.3.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의 창병[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창병(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4. 토탈 워 시리즈의 창병[편집]


대다수의 국가들이 보유한 병과로, 주로 전선 유지와 대기병전을 담당한다. 대개 파이크로 벽을 구성하는 장창병, 중간 정도의 창과 방패로 무장한 창병, 짧은 창으로 무장한 단창병이 있으며, 창병으로 보기는 좀 애매하지만 투창병도 있다.

창병과 장창병으로 나뉘는데, 둘 다 기본적으로 대기병 보너스를 가지고 있어서 기병에게는 강하지만 대보병 보너스를 받는 검보병에게는 밀리는 걸로 나온다. 다만 장창병은 길이를 이용해 정면에서 상대를 압박하는데는 좋으며, 정면 대결에서는 검방보병도 압도한다. 극고증 모드인 EB모드에서는 말 그대로 고기분쇄기[16]. 그러나 측면이나 후방을 공격당하거나, 혹은 RTW의 떡장 군단병이 비비기로 정면을 뚫어버리고[17] 근접전에 돌입하면 보조무기를 꺼내들기 때문에 허약하다. 따라서 전열싸움엔 강력하지만 측면이나 후방을 엄호해줄 병종을 필수로 동반하여야하며 PVP에서는 그만큼 쓰기 까다로운 점도 있다.

장창병은 미디블2: 토탈 워 기준 대기병전의 스페셜리스트로 장창을 들고 빽빽하게 장창벽을 구성한다. 이들이 대형을 유지하는 한 중기병이 아니라 중기병 할아버지가 와도 들이받는 순간 우수수 쓰러진다. 그러나 대형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부무장을 꺼내는 통에 오히려 전투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장창벽을 구성하기 때문에 기동성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고, 종종 유저들이 데이터를 건드려 보조무장을 삭제하는 경우도 있는 편. 그러면 무조건 장창만 들고 있어서 오히려 전투력이 오른다. 기본적으로 장창벽을 구성하면 측면 및 후방이 완전히 무력화되기 때문에 진형을 구성할 때 적이 후방이나 측방을 건드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패도 없기 때문에 갑옷까지 두둑히 갖춘 스코틀랜드의 귀족 장창병대쯤 되지 않으면 사격 병과에도 취약한 편. 가끔 수성전에서도 활약하는데, 성문 바로 뒤나 좁은 회랑에서 이들이 길을 틀어막고 있으면 돌파하기 상당히 곤란하다.

일반 창병은 장창병보다 유틸성이 좋다. 창과 방패로 무장하여 대기병용으로 좋지만 전문적으로 대기병전을 전담하는 장창병들에 비하면 좀 부족한 편. 장창병대는 기병이 들이받는 순간 죄다 거꾸러뜨리기 때문에 장창병대의 피해는 거의 없지만 일반 창병대는 일단 기병대의 돌격을 받아낸 후 돈좌된 기병들을 창으로 쑤셔서 낙마시키는 방식이라 일단 교전에 들어가면 꽤 희생이 나온다. 대신 반대급부로 대보병전이 다소 난감한 장창병들과는 달리 대보병용으로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 방패를 들었기 때문에 궁병대의 사격도 꽤나 잘 버티는 편. 그러나 대기병 능력에 비해 보병전에는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므로 전문 중보병과 교전하면 대개는 진다. 그러나 방어력이 높아 일방적으로 깨지지는 않고 꽤 오래 버텨주긴 한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중보병대와 교전을 시켰다 하더라도 보통 다른 대보병 부대를 불러올 때까지는 버텨준다. 방패를 들고 있는 데다 일부는 갑옷도 두텁게 갖추어 입고 있기 때문에 방어력이 뛰어나므로 모루의 역할을 맡는 데에 최적화 되어 있다. 완전 하급 병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급 병종도 아니기 때문에 가격과 유지비도 싼 편이다. 군단을 구성할 때 2~3부대씩 편성시키면 두고두고 만능으로 잘 써먹는다. 당연하지만 대부분 징집창병대 내지 창병민병대 계열보다는 전문 군인인 서전트 계열이 훨씬 잘 싸우므로 참고하자.[18] 그러나 창병민병대조차도 아래의 단창을 장비한 일반 민병대보다는 훨씬 나으니, 선택한 팩션에 서전트 계열이 없다면[19] 고려할 법한 선택이다.

창병민병대나 징집창병대의 갑옷 업그레이드를 모두 거치면 외형 상으로 중보병대와 차이가 없지만 스탯 상으로는 차이가 크다. 중보병대는 기본적으로 2단계 아머를 갖추고 있지만 다른 둘은 0단계로 아머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토탈 워: 미디블2의 시스템상 아머 업그레이드는 갑옷 수치를 무조건 1씩만 올려주기 때문에 풀업을 해도 3에 불과하다. 반면 중보병대는 기본으로 2단계 아머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5부터 시작한다. 1업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최대 6에 달하기 때문에 겨우 3밖에 되지 않는 창병민병대나 징집창병대보다는 훨씬 높다. 위에서 언급된 강한 민병대를 가진 팩션들은 그 민병대들이 1단계 아머를 가진 경우가 많다. 1단계 아머는 4의 방어력을 보장하므로 풀업을 거치면 중보병대와 같아지거나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중보병대가 아닌 그냥 창병대[20] 갑옷이 0단계라 창병민병대나 징집창병대와 공격력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

단창병은 주로 민병인 경우가 많아서 대기병용으로 쓸 수는 있지만 마갑까지 갖춘 후기형 중기병을 상대할 수는 없으므로 지나치게 신뢰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사기도 낮으며 고기방패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 대보병전에도 썩 좋지는 않다. 갑옷도 부족한 편이고.

로마 2에 들어서면서 검병은 공격적/창병은 방어적으로 확실한 특징이 잡히기 시작했다. 물론 로마의 군단병 계열이나 그리스의 정예 호플리테스처럼 공방 완전체의 괴물들도 있긴 하나 극히 예외적이고, 일반적인 검병은 라인 유지 능력보단 돌격 후 백병전에, 창병은 자리 잡고 지역방어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워해머와 삼국에 이르러 이러한 경향은 절정에 달해, 검병대는 돌격력이 더욱 높아지고 몇몇은 대보병 보너스까지 받아 보병 백병전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 반면, 창병대는 기병 돌격 방어/반사 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돌격해온 기병대를 역으로 육편으로 다져버리는데 특화되어 우주방어의 진수를 보여주게 된다. 워해머의 경우엔 강력한 괴수 유닛을 검병대가 감당하기 어려워서, 삼국의 경우 기병대가 너무 막강해서 검병보단 창병의 입지가 높다. 물론 창병의 입지가 높다 하지만 막상 검병대와 근접전에 들어가면 잘해야 버티기, 여차하면 시원하게 갈려나가므로 기병이 받쳐주고 궁병이 보조해줘야 제 위력을 발휘한다.

투창병은 말 그대로 창을 던지는 병과로 궁병대보다 사거리가 짧지만 공격력은 조금 더 좋은 경우가 많다. 코끼리 부대를 상대하기 좋다. 이들은 궁병에 비해 아군 오사가 적고, 장애물을 어느정도 넘겨서 던질 수 있다는걸 이용해 일반 창병, 중보병의 바로 뒤에서 화력 지원을 하는 용도로 쓴다. 기본적으로는 사격 병과로 취급되지만 근접전 능력도 없지는 않다. 들고 있는 투창용 창으로 교전하는데, 대부분 방패가 없고 갑옷도 부실하므로 농민병 수준의 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과와 근접전을 벌이면 거의 무조건 진다. 그러나 일단 창은 창이라 대기병 보너스는 조금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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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핏 보면 한 손에 창, 한 손에 방패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저리 긴 창을 한손으로 드냐는 얘기가 나오곤 하는데, 당연하지만 한 손으론 못 든다. 그래서 방패를 팔뚝에 묶고 창을 두 손으로 잡는 것.[2] 마케도니아 페제타이로이(Pezhetairoi)의 팔랑크스. 그림에 묘사된 병사들은 가로 16줄 세로 16줄에 총 256명으로, 사리사 보병의 기본 부대 단위인 신타그마 하나가 전부 그려져 있다.[3] 창 자체의 한계이기도 했다.[4] 이 때 팔랑크스가 레기온에게 마그네시아, 피드나, 키노스케팔라이, 테르모필라이 같은 회전에서 져서 그냥 망했다.[5] 아무리 빨라봤자 빨리 걷는 속도 정도밖에 안 된다.[6] 이 통제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심해져서 나중에는 비인간적인 전열보병시대의 가혹행위로 그 이름을 떨쳤으며 현재도 똥군기를 비롯해 각종 부조리와 악습으로 내려오게 된다.[7] 당장 사료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현지에서도 있는지도 제대로 몰라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8] 그래서 보다 못한 조선에서는 사수들에게도 검을 쥐어줘서 근접전을 수행하게 한 적이 있다.[9] 파비아 전투처럼 스페인 아르퀘부스의 사격에 기병공격이 막힌 사례가 있다.[10] 조선군에서는 조총수들이 화포까지 맡은 듯하다.[11] 경기도의 참나무는 너무 무거워 들 수도 없어서 가시나무나 종가시 나무를 써야 하는데 그럴만한 나무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식물의 특성상, 같은 품종이라 해도 자라는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좋은 목재가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게 더 문제.[12] 물론 창병은 방진 구성이 핵심이고 개인전 능력이 떨어져 잘 훈련된 검병 (예: 임진왜란 시기의 일본군 등) 에게는 맥을 못 추는 경우가 많아 만병지왕이라는 평은 다소 과장일지 모르나, 그만큼 중국에서 많은 애착을 가지고 이용했다는 점으로 보면 될 것이다.[13] 왜냐하면 이 사실이 국내에 출간된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인 무기와 방어구 서양편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14] 투창인 필룸을 창처럼 활용하였다는 설도 있고, 그냥 창을 사용했다고도 하는 등 다양하나 일단 창을 사용하였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실 로마의 필룸은 투창임에도 무게와 내구성이 강하다보니 창 처럼 사용할 수 있기도 했다.[15] 사실 '이긴다'라기보단 '이길 수 있다'라는 개념이다. 전투가 확률싸움이기 때문에, 근소하게나마 창병이 탱크를 격파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 하지만 얼핏 봐서는 창병이 전차를 이긴다는 걸 상상할 수도 없는데다, 실제로 게임 중 유리한 상황에서 그놈의 확률 때문에 패배하여 큰 손실을 입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 대표 격으로 두고두고 회자된다.[16] 다만 EB모드가 극고증을 추구하긴 하지만 EB의 팔랑크스는 실제 역사보다 너무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건 덜렁이 가에사타이 같은 검방보병도 같지만...[17] 물론 정면에서 검방보병이 장창병을 뚫어버리는건 RTW의 로마 근위대 정도로, 스탯이 어마무시하게 차이나는 경우에 한하며 다른 시리즈나 RTW2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18] 창병 민병대가 서전트보다 좋은 팩션도 존재한다.[19] 예를 들자면 잉글랜드는 단판 전투에서는 서전트가 있지만 정작 캠페인에서는 서전트가 나오지 않는다.[20] 중보병대는 Armored Sergeants이고 창병대는 그냥 Sergeant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