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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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특례시
파일:창원시 CI.svg
창원시
昌原市
Changwo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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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소재지성산구 중앙대로 151 (용호동)
광역자치단체경상남도
하위 행정구역5일반구 2 6 47
면적749.19㎢
인구1,009,998명[1]
인구밀도1,350.38명/㎢
시장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홍남표 (초선)
시의회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7석[2]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18석[3]
도의원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16석[4]
국회의원
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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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5선)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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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윤 (재선)
마산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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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두 (초선)
마산회원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윤한홍 (재선)
진해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이달곤 (재선)
상징시화벚꽃
시목소나무
시조괭이갈매기
지역번호055-2**[5], 54*[A], 5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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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징
3. 역사
3.1. 특례시 지정
4. 지리
4.1. 지형
4.2. 기후
4.3. 뚜렷한 지역성
4.4. 인구
5. 교통
6. 경제
7. 관광
7.1. 관광지
7.2. 주요 행사
7.3. 특산물
7.3.1. 먹을거리
7.3.2. 가전제품 및 기계 설비류
8. 생활 문화
9. 정치
10. 군사
11. 하위 행정구역
12. 논란
12.1. 탈성매매여성 매입임대주택 지원 특혜 논란
13. 여담
14. 출신 인물
15. 관련 문서
16. 자매 도시
16.1. 국내
16.2. 해외
1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Plus Changwon, 창원특례시

플러스 창원, 동북아 중심도시 창원

경상남도의 시. 경상남도청 소재지이자 경상남도 최대도시로 비수도권에서 유일한 특례시다.[6][7] 한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8],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9]

창원시는 경상남도의 중심 도시로 경상남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다. 경상남도청[10], 경상남도의회, 창원지방법원, 창원지방검찰청, 경남지방경찰청, 경상남도교육청, 정부경남지방합동청사, 그 외 정부 부처 및 관계 기관들의 경상남도 청사가 상당 부분 창원시에 몰려 있다.[11]

현재의 창원시 영역은 일제강점기 이전의 창원부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1989년 부산에 편입된 천가면(현 가덕도동)이 사라진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다. '창원'이란 명칭은 조선 태종 때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쳐 부를 신설한 것에 기원하며 이후 조선시대까지는 줄곧 한동네였다. 이 두 지명은 현재도 일반구의 명칭인 의창구마산회원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914년 마산부 분리[12], 1955년 진해시가 분리[13]된 이후 2010년 7월 1일 다시 통합하기 전까지는 근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여러 개의 지자체로 나뉘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지역은 통합 이전부터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곳이다. 기존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 3개 시는 시내버스를 통합해서 운영했고, 오늘날 창원시의 주요 관문인 동마산IC를 비롯한 고속도로 출입구, 시외버스터미널 노선 또한 공유하는 등 교통, 문화, 인프라 부분에서 뿌리 깊게 연계, 협력하였고 지금도 인프라 상당 부분을 변함없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인구수 대비 상당히 큰 편이다. 2019년 기준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약 39조 86백만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5위,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1위에 해당되며[14] 대전광역시(약 43조 9백만), 광주광역시(약 41조 51백만)와도 비견되는 수준이다. 그만큼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공장들이 많이 상주해 있는 곳으로, 외국계 글로벌 기업 사업장도 다량 위치해 있다.

2. 상징[편집]


창원시의 CI
파일:창원시 CI.svg
{{{#000,#fff Dynamic Change, Changwon 1. Changwon의 'C'자를 이용한 사람모양의 3개의 날개를 가진 바람개비는 창원이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는 핵심도시가 될 것이라는 미래상에 대한 의지 표현 2. 바람개비 중심에서 손을 맞잡고 회전하는 사람의 모습은 서로 화합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하나 된 시민의 힘을 표현
3. 3개의 날개 컬러 포인트 중 파란색은 해양(성장, 희망), 주황색은 도시(열정, 창조), 녹색은 자연(생명, 균형)을 상징}}}

파일:마창진도시슬로건로고.jpg파일:창원시 CI(2010).svg
통합 이전 마산, 창원, 진해 도시브랜드 슬로건 로고2010년 7월 통합 직후 창원시 임시로고

창원시의 상징물
시화벚꽃: 번식이 강하고 화사한 모습과 매혹적인 향기는 열심히 사는 창원시민의 모습이다.
시조괭이갈매기: 창원시 마산만에서 오랜 세월동안 시민과 벗하여 왔으며, 예리한 관찰력과 부지런하고 협동심이 강한 것은 진취적 기상과 화합을 상징한다.
시목소나무: 소나무는 의와 깨끗한 절개를 상징하며, 이것은 곧 창원시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창원시의 도시브랜드 슬로건
파일:창원시 BI.svg

창원시의 마스코트
파일:창원시 마스코트 피우미.svg
{{{#000,#fff 창원시의 꿈과 희망의 메신저, 피우미 창원의 새로운 희망을 꽃 피우다"는 의미의 "피우미"는 시화인 "벚꽃"을 귀여운 아이의 모습으로 형상화
창원의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라잡이이자, 시민의 화합과 조화를 돕는 사랑의 메신저}}}

창원시민의 노래
1절
아름다운 창원 뿌리깊은 고장
가슴가슴 이어지는 두터운 인정
무학천주산 어깨동무 장복산 감아돌고
가고파 푸른물결 진해만 손잡았네

2절
사랑하는 도시 마주보는 이웃
거리거리 삶터마다 넘치는 열정
꽃피운 예술향기 희망을 노래하고
언제나 푸른청춘 세계를 감싸안았네

3절
살기좋은 누리 함께하는 마음
믿음으로 하나가 된 든든한 기상
동남공단 힘찬도전 번영을 약속하고
꿈이있는 녹색마을 우리 힘으로 키우네

후렴
이어가자 찬란한 창원의 역사
거룩하다 민주성지 위대한 함성
남도일등 행복시 우리네 창원
영원하라 길이 빛나라라
창원 문인 일동 작사 / 임긍수 작곡


3. 역사[편집]


파일:창원시 CI.svg 창원시 행정구역 변천사
창원부
(昌原府, 1908년)
마산부
(馬山府, 1910년)
창원군
(昌原郡, 1914년)
마산시
(馬山市, 1949년)
창원군
(昌原郡)
진해시
(鎭海市, 1955년)
마산시
(馬山市)
의창군/창원군
(義昌郡/昌原郡,
1980년~1990년/1991년~1994년)
창원시
(昌原市, 1980년)
진해시
(鎭海市, 1983년)
마산시
(馬山市, 1995년)
창원시
(昌原市, 1995년)
진해시
(鎭海市)
창원시
(昌原市, 2010년 7월 1일)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부터 한 지역이었으며, 일제의 정책에 의해 행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했다가 2010년 7월 1일 다시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됐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통합 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산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진해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특례시 지정[편집]


2022년, 창원특례시 출범 공식 영상
2022년 1월 13일, 특례시로 지정되었다.[15]


4. 지리[편집]



4.1. 지형[편집]


경상남도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김해시,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창녕군, 서쪽으로는 함안군, 진주시, 고성군에 접한다. 시의 중앙에는 마산만이, 남쪽에는 진해만이 있다.

부산처럼 산이 많다. 구 창원 시가지는 정병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 팔용산, 천주산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 지형이며, 마산회원구 북쪽에는 무학산도 있다. 성주동 불모산에서 발원하는 남천이 서쪽으로 흘러 마산만으로 유입하는데 창원천, 안민천, 토월천 등 (구)창원시 남부의 하천 대부분이 남천으로 합류한다.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진해구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 마산은 무학산을 등에 지고 마산만을 맞대고 있으며, 진해구는 장복산을 등에 지고 진해만을 맞댄 형태. 특히 마산같은 경우 좀 평평하다 싶은 지역은 죄다 시가지 확장 중에 생긴 매립지들이다. 이 과정은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일제강점기부터 실시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해양신도시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지형 때문에 2003년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을 때 남마산 일대가 모조리 물바다가 되어버린 적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낙동강에 접한 의창구동읍대산면 지역에는 꽤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논농사가 흥해서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놨는데, 이것이 주남저수지이다. 하지만 근래엔 논농사보다는 지역 특산물로 떠오른 단감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지금의 주남저수지는 인간의 손을 벗어나 철새의 낙원으로 재탄생했다.


4.2. 기후[편집]


"따뜻한 남쪽바다"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지역이다. 인근의 부산과 매우 비슷한 기후특성을 보이지만, 동해/남해상에 접하고 있는 부산에 비해 창원은 마산만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부산보다는 좀 더 내륙분지적 특성이 강하다. 그래서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신 겨울에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기는 해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하지만 따뜻한 남쪽 해안지방답지 않게 의외로 눈이 일단 매년 한 번씩은 따박따박 오기는 온다, 얼마 안 와서 그렇다.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2년 7월 현재, 눈이 몇 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 있었던 것은 2015년 2월이 마지막이다.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하루이틀 만에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공군, 해군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 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 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 치면 서울에서는 이 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시에서는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에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16]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진해구 지역은 장복산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있고 남쪽으로 바다가 트여 있어 창원에서 가장 따뜻한 기후를 보이는데 이 때문인지 약 50년 동안 기록된 최대 적설량이 4cm이다.

바다에 바로 접해 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와 강풍 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m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 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과 2009년에는 7월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17]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 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36.7°C),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 가지만 창원은 거기보다는 최고기온은 조금 덜할지라도 해안가+분지+열섬으로 인해 최저기온이 그쪽 지역보다 높아 평균기온은 이들 지역과 맞먹는다.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정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 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4.3. 뚜렷한 지역성[편집]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했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됐으며,[18]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됐다.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마산+창원+함안이었고 창원시가 밀었던 모델이 마산+창원+진해였다. 당시 마산시의 생각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 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 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 동력을 얻을 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 등 미개발 지역이 남아 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다른 이점을 찾을 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 통합을 추진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됐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결정이 나지 못하고 기존 창원시청이 여전히 시청으로 기능하는 중이다. 한때는 구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 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 상태로 되돌아가자"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같은 날 통합 창원시의 시청사 입지를 조속히 선정하자는 결의안도 통과됐다.

물론 창원시는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 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당장 자진통합으로 중앙정부에서 받아먹은 추가 재정지원이 교부세만 연간 10% 수준인데 재분리한다고 하면 중앙정부가 가만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교부세 추가분을 반환한다고 하면 분담률을 두고 내분이 일어날 것이다. 어이없는 사실은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세 도시로 분리된, 원 상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런 모순된 결의안들이 통과된 이유는 구 마산, 구진해 측과 구 창원 측에서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통합시청사 소재지를 결정하기 위한 힘겨루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19대 총선 때는 시청사 소재지를 두고 후보들 간에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옛 창원 지역에서는 현 청사 리모델링을, 옛 마산 지역에서는 마산으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옛 진해 지역의 야권, 무소속 후보들은 진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해구에서 막판에 간신히 야권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꽤 큰 차이로 여당 후보에게 패한 것을 볼 때, 다시 나누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통합의 후유증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창원시의회에서 구 마산시 분리 건의안과 현 임시청사의 시청사 확정안이 동시에 통과됐다. # #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주영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되었다.#[19].

당연한 말이지만 통합을 한다고 지역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서울이나 부산, 대구, 인천처럼 주변 지역을 흡수하며 성장한 대도시들이 도시 안에서 옛 지역명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부산의 서면은 본래 동래군 서면, 대구의 칠곡은 본래 칠곡군에 속했던 지역. 그 외 구명은 대체로 과거의 지역명을 따른다. 다만, 고만고만한 동네를 서서히 흡수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지역을 단번에 통합한지라 이렇게 갈등이 심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삼여 통합으로 탄생한 여수시, 사천군삼천포시를 통합한 사천시가 있다.

문제는 마산 지역 중장년층이 마산이라는 지명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이 타 지역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데 있다. 발단은 원 창원 지역이 1973~1980년 사이에 마산시에 편입되어 있었던 데 있다. 즉 이 시기를 겪어봤던 마산 중장년층의 입장에서는 '새로 생긴 촌동네가 박혀 있던 마산 지명을 밀어냈다'고 인식[20]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역 통합에서 이리저리 치고받고 볶은 지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쪽의 명칭이 역사성이나 인지도에서 압도적이었던 데 반해[21] 마산은 창원에 비해 인지도 면에서도, 역사성 면에서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선 적도 있다 보니 계속해서 마산 지명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산은 창원에 맞서 자신들이 통합의 주체이자 중심이 되려고 시도하기도 했고 그랬으면 통합마산시가 출범할 수 있었으리라고 믿고 있지만 그러나 같은 마산에서도 청년층은 이미 유소년기부터 지역의 몰락을 봤다. 2019년 현재 만 30세인 1989년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산의 구 폐지를 겪었다. 즉 이들이 눈 뜨고 말 익힌 후로 알고 있는 마산의 모습은 1990년대에 이미 15만의 인구가 빠져나가고 한일합섬이 이전해 몰락해 버린 인구 30만 수준의 지방 중소도시일 뿐이다. 이들은 마창진 지역에서 창원시의 종주권을 받아들이며 살아오다보니 중장년층의 마산 바라기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사례처럼 지역 중장년층들의 마산 타령이 동네 망신만 시킨다면서 비판적인 입장이다[22].

아무튼 2010년 통합한 이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으나 기존 3개 시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뚜렷한 지역성을 보유하고 있다. 옛 마산시와 진해시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도시권이 형성되어 온 곳인지라 동 지역 급의 좁은 범위(예: 북마산, 신마산 등)에도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이고, 뒤늦게 도시로 출범한 옛 창원시는 창원공단의 조성으로 대규모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구성된 계획도시인 데다가 진해는 특히 군사도시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창원-진해 사이는 장복산으로, 창원-마산 사이는 팔룡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3개 시의 지역성이 모두 제각기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특히 일산신도시분당신도시의 사례처럼[23] 지역간 자부심 문제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의 주민들은 마창진 통합 이후에도 본인을 주로 "창원 사람"보다는 "마산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창원에 산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타 지역 사람이 물을 경우 창원에 산다고 대답을 하는 "마산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24].

반면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 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25]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26] 그러나 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27]와 회원현[28]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현재 창원시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 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2010년 중후반 광역시 승격을 노렸었다. 사실 창원의 광역시 승격 떡밥은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있었으나[29] 실현되지 못했고 안상수 시장 시절에 적극적으로 창원광역시 승격을 추진했으나 경상남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참고로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 시 규모가 큰 쪽이 작은 쪽을 흡수하는 형태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법률상으로는 기존 지자체를 모두 폐지한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지자체를 설치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 창원시도 마찬가지지만 창원 이전의 통합시인 여수시, 제주시, 서귀포시는 물론 이후의 통합시인 청주시 역시 각각 구 여수시, 구 제주시, 구 서귀포시, 구 청주시의 명칭만 잇고 있을 뿐 이들도 여천시여천군, 북제주군, 남제주군, 청원군과 마찬가지로 통폐합되어 사라진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는 기존 시군의 시장 및 군수, 통합시의 시장을 분리해서 설명하며 통합시장은 초대부터 시작하고 있다. 창원도 현재의 창원시와 통합 전 마산, 창원, 진해시를 분리해서 설명하며 시장도 통합 창원시 시장을 다시 초대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창원시의 난리버거지를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상황에서, 2000년대에 한 때 유력하게 제시되었던 도 폐지와 기초자치단체 광역화 논의는 그야말로 쏙 들어가버렸다. 나름대로 지역간 교류가 활발해 통합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던 창원이 이 지경이니, 아예 남남인 지자체를 묶어버리자는 도 폐지론은 지자체고 중앙정부고 민간학계고 간에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늘어난 인구를 근거로 광역시 승격까지 해달라고 난리를 치니 중앙정부로서는 이렇게 난감한 일도 없는 상황이다.

관습적 지명으로서 '창원'이라고만 하면 통합 이전의 창원시 영역만을 마산·진해와 구분해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통합 창원시 전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하니 문맥에 따라 잘 구분해야 한다[30].


4.4. 인구[편집]



4.4.1. 창원시[편집]


경상남도 창원시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410,362명 (마산시 154,600명 + 진해시 80,496명 + 창원군 175,266명)
1970년 450,719명 (마산시 190,768명 + 진해시 91,798명 + 창원군 168,153명)
1973년 창원군 창원면·상남면·웅남면 → 마산시 편입
1975년 570,977명 (마산시 371,597명 + 진해시 103,563명 + 창원군 95,817명)
1976년 마산시의 현 성산구·의창구 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설치
1980년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 창원시 승격 분리, 창원군 → 의창군으로 개칭
1980년 697,910명 (창원시 111,629명 + 마산시 386,496명 + 진해시 111,966명 + 의창군 87,819명)
1983년 의창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1985년 817,953명 (창원시 173,283명 + 마산시 448,498명 + 진해시 121,291명 + 의창군 74,881명)
1989년 의창군 천가면 → 부산광역시 편입
1990년 1,009,136명 (창원시 323,094명 + 마산시 493,673명 + 진해시 120,159명 + 의창군 72,210명)
1991년 의창군 → 창원군 명칭 환원
1995년 창원군 각 읍면 → 창원시와 마산시로 분할 편입
1995년 1,039,142명 (창원시 478,007명 + 마산시 431,419명 + 진해시 129,716명)
2000년 1,086,209명 (창원시 519,798명 + 마산시 432,620명 + 진해시 133,791명)
2005년 1,086,530명 (창원시 504,520명 + 마산시 425,018명 + 진해시 156,992명)
2010년 창원시 + 마산시 + 진해시 → 창원시로 통합
2010년 1,090,181명
2012년 5월 1,092,554명 (정점)
2015년 1,070,064명
2020년 1,036,738명
2023년 11월 1,009,998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0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읍면동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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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읍 61,805명
의창동 49,784명
사파동 46,069명
웅동2동 43,961명
북면 43,172명
월영동 42,014명
명곡동 40,154명
반송동 39,978명
가음정동 38,875명
중앙동 34,641명
양덕2동 30,570명
봉림동 30,137명
용지동 27,137명
상남동 26,940명
성주동 25,825명
팔룡동 25,746명
풍호동 25,227명
자은동 20,790명
동읍 19,125명
오동동 18,921명
석동 17,462명
석전동 16,535명
충무동 16,310명
교방동 15,947명
현동 13,857명
반월중앙동 13,837명
웅천동 12,990명
산호동 11,930명
진동면 11,926명
문화동 11,108명
경화동 10,824명
양덕1동 10,731명
회원1동 9,959명
회원2동 9,911명
덕산동 9,857명
자산동 9,807명
구암2동 9,110명
합성1동 8,969명
완월동 8,762명
구암1동 8,602명
이동 8,466명
여좌동 8,180명
웅동1동 7,896명
웅남동 7,428명
합성2동 7,365명
병암동 7,223명
합포동 6,989명
대산면 6,891명
회성동 5,586명
구산면 4,072명
진전면 3,758명
태백동 3,625명
진북면 3,248명
봉암동 3,050명
가포동 2,279명
2023년 5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5만 명, 각 행정동별 색깔은 각각 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진해구 지역임.



통합 직후에는 수원시의 인구를 추월하여 잠시 동안 전국 기초자치단체 1위였으나, 다시 감소하여 1위 자리를 내주고 2010년대 수도권 집중화로 인하여 고양시용인시의 인구가 창원을 따돌리면서 현재는 특례시 중 인구 순위 4위이다.[31]그래도 여전히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1위를 유지하고 있다.[32]

2023년 11월 현재 창원시의 인구는 101만마저 붕괴하는 등 인구 감소세가 매우 심각하다. 이 같은 인구 감소 추세로는 특례시의 기준인 인구 100만의 붕괴가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창원시청에서도 이에 대해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추세로는 2025년 100만 인구가 무너지며 그 후로도 계속 줄어들 예정[33]이라 특례시 기준이 하향되지 않는 이상 특례시 박탈이 불가피하다.

인구 감소의 첫 번째 원인은 주요 산업인 조선, 기계, 자동차 산업의 불황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지역 내 일자리 감소가 크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여타 지방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집중 문제 때문이다. 일자리가 기형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막 학령 인구를 벗어난 다수의 20대들이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떠나는 추세는 창원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세 번째로는 비싼 집값을 피해 상대적으로 공동주택의 공실이 많아 저렴한 집값의 인근 지역 김해장유진영[34], 양산 등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4.4.2. 의창구, 성산구[편집]


파일:창원시 CI.svg 의창구 · 성산구 인구추이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동면[35], 북면, 대산면, 상남면, 웅남면
1966년 96,506명
1970년 88,692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 마산시 편입
창원면을 의창1동, 의창2동으로, 웅남면을 웅남1동, 웅남2동으로, 상남면을 상북동, 성주동, 용지동으로 전환
1975년 87,141명
1976년 9월 1일 舊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지역 → 경상남도 창원출장소 승격
1980년 4월 1일 경상남도 창원출장소 → 창원시 승격
1980년 149,520명
1985년 207,591명
1990년 357,794명
1995년 1월 1일 창원군 폐지로 동면, 북면, 대산면 → 창원시 동면, 북면, 대산면으로 조정[36]
1995년 481,694명
2000년 517,410명
2005년 499,705명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통합창원시 출범 성산구, 의창구
2010년 490,071명
2015년 490,108명
2020년 476,978명
2023년 9월 460,247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0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통합 이전 구 창원시는 원래 산으로 둘러싸인 깡촌이었다. 그러다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1974년, 인구 3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중화학 기계 공업도시로 계획되었고[37], 1983년부산에 있던 경남도청이 이전해오면서 예상했던 인구 30만 명을 훌쩍 뛰어넘어 2000년에 인구 정점을 찍었을 무렵에는 50만을 돌파하여 전국 10대 도시 안에 들 정도로 매우 큰 도시로 급성장하였다.[38]

그러나 외환 위기를 거치며 2000년대부터 인구 증가와 감소가 반복되는 상황이었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인구 감소세가 심각한 실정이다. 200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창원시는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보다도 집값이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산시는 아파트 수가 옛 창원시에 비해 적었고, 진해시는 군사도시로서 공동주택 개발이 고도 제한이 걸린 채 개발되다 보니 창원의 인구를 많이 흡수하지 못했고[39] 창원에서 유출된 인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층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부산 및 창원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김해시로 상당 부분 이동하여, 현재 옛 창원시 시가지 인구는 김해시 시가지 인구보다 못 미치는 실정이 되었다.

성산구의 경우 현대로템, LG전자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데다 상대적으로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가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 버티고 있지만, 의창구는 정주요건이 성산구에 비해 안 좋고 상대적으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아 그 감소세가 더욱 가파르기에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4.3.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편집]


파일:창원시 CI.svg 마산합포구 · 마산회원구 인구추이
경상남도 마산시 및 창원군 내서면,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
1966년 209,204명
1970년 239,973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구산면 일부[40], 내서면 일부[41] → 마산시 편입
창원면을 의창1동, 의창2동으로, 웅남면을 웅남1동, 웅남2동으로, 상남면을 상북동, 성주동, 용지동으로 전환
1975년 357,664명[42]
1980년 425,015명
1985년 485,052명
1989년 1월 1일 함안군 여항면 산서출장소 → 진전면 편입
1990년 7월 1일 마산시 회원구, 합포구 설치
1990년 531,374명
1995년 1월 1일 창원군 일부[43] → 마산시 합포구 일부[44], 회원구 내서면[45]
1995년 441,242명
2000년 434,371명
2000년 12월 31일 마산시 회원구, 합포구 폐지
2005년 428,069명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통합창원시 출범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2010년 411,602명
2015년 393,461명
2020년 367,005명
2023년 9월 359,258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0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마산시의 인구는 무역항구의 발달과 수출자유무역지역의 혜택으로 급증하기 시작했고 한때 경상남도 최대도시로 성장했고[46] 1990년 인구가 근 50만 명을 달성하면서 대도시 특례를 받을 수 있게 되어[47], 구제가 실시되며 합포구, 회원구로 분구되었다. 하지만 옛 창원시 지역이 계획도시로 지정되어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인프라를 보유한 마산은 창원에게 인구와 각종 시설이 빨려들어가[48] 1990년대부터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중반에는 옛 창원시에 인구가 밀려버렸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반에는 김해시[49]에도 밀려버렸다. 통합 이후 다시 부활하기는 했지만 인구 감소로 2001년 1월부로 구제가 폐지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의 IMF 이후 외국 기업 사업장 다량 철수, 한일합섬 부도 등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산업들이 대거 무너지며 발생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마산시는 이때까지만 해도 아파트가 많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양질의 새 아파트가 많았던 구 창원시 지역이나 김해시 장유로 하나둘씩 마산에서의 인구 유출이 일어날 시기였다.

2010년대에 들어서부터 북마산 노후 주택단지를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고, 한일합섬 터 및, 한국철강 부지가 초대형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며 인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인구 감소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문제로 남아 있다. 창원에서 양덕2동, 가포지구, 보금자리 주택 등으로 활발한 재개발 사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과거 기대를 많이 받았던 로봇랜드는 2009년부터 시작된 사업임에도 아직까지 잇다른 문제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며# 마산해양신도시 역시 2003년부터 개발계획이 수립됐지만 4번이나 민간사업자를 공모했음에도 실패하여 2019년 완공 이후 2023년 현재까지도 아직 텅빈 공터에 불과한 상태라 전망이 좋지 않다.


4.4.4. 진해구[편집]


파일:창원시 CI.svg 진해구 인구추이
경상남도 진해시 및 창원군 웅천면, 웅동면
1966년 98,266명
1970년 106,358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웅천면 → 진해시 편입 및 웅천1동, 웅천2동 분동
1975년 111,097명
1980년 119,150명
1983년 2월 15일 창원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및 웅동1동, 웅동2동 분동
1985년 121,341명
1990년 120,212명
1995년 125,997명
2000년 127,578명
2005년 150,063명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통합창원시 출범 진해구
2010년 175,859명
2015년 185,733명
2020년 192,755명
2023년 9월 191,834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0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2022년까지는 창원에서 유일하게 인구수가 안정적으로 늘어나는 지역이었다. 해군 사령부가 있어서 군사시설이 많은 특성상 고도 제한이 있었기에 통합 직후에는 5개 구 중 가장 적었지만, 2015년에 마산합포구, 2020년에는 마산회원구의 인구수를 추월했다. 특히 여좌지구에의 첨단산업단지 조성 계획과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영향으로 창원시에서 인구수가 유일하게 늘어나는 지역이었다. 2022년을 기점으로 진해구도 인구 감소세로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경제자유구역의 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아파트 개발이 예정되어 있어 반등 가능성은 아직 존재한다.


5. 교통[편집]


파일:창원시 브랜드.png 창원시 교통체계
경상남도의 교통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교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경남의 중심 도시인 만큼 교통이 전반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지만 도로 교통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창원시 시내버스는 시내를 오가는 핵심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 중이며, 광역철도는 부전-마산 광역철도가 개통되면 들어오고, 그 이전에는 창원 도시철도가 계획되었다가 무산되었으나 2021년 들어 재추진되고 있다. 전국에서 최초로 고급간선급행버스체계(S-BRT)를 2023년 말 준공을 목표로 착공에 들어갔는데 추후 트램 전환을 염두에 두고 건설된다.

고속철도는 KTX마산역, 창원역, 창원중앙역 3개 역에 정차[50]할 정도로 정차 역사는 많지만, 문제는 경전선 KTX라 철도 이용 수요에 비해 운행 횟수가 현저히 적다. 수서평택고속철도(SRT)는 6년 간의 기나긴 요구 끝에 국토교통부에서 2023년 9월 왕복 2회(일 4회) 개통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창원의 철도 수요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기에 국토교통부에서는 현재 경부고속선이 포화상태라 2027년 평택-오송 간 고속선로 복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면 증편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6. 경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경제 성장사에서 울산광역시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며, 현재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 힘입어 기계 공업, 수출 산업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특히 외환 위기 당시 외화가 부족했던 국내에 많은 달러를 벌어다 준 마산자유무역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 마산항은 한때 한국 수출 산업의 메카였으며, 거제 조선소들에게 전달되는 선박 관련 엔진, 기계 설비 상당 부분이 창원시에서 생산된다.

현대자동차그룹(현대위아,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현대비앤지스틸), LG그룹(LG전자), 한화그룹(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그룹(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51]), 효성그룹(효성중공업)등 많은 재벌기업들이 창원에 공장을 갖고 있다.[52] 심지어는 정부, 정확히는 대한민국 육군에서도 초대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7. 관광[편집]



7.1. 관광지[편집]


용지호수공원창원시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호수로 창원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며 각종 예술제, 연등제, 음악회 등도 이곳에서 열린다. 호수의 음악분수가 예쁘다. 또 호수 내에서 8인승 보트도 탈 수 있으며, 여러 조형물 등이 있어 야경이 예쁜 곳으로도 꼽힌다.
창원 옥계마을옥계 마을에서는 잘 보기 힘든 해군부대와 풍호동과 창원해양공원이 보인다. 가끔 밤에 멸종위기종 수달을 볼 수 있다. 위치는 마산합포구 구산면 옥계리.
창원의 집200년 전, 순흥 안씨 5대조인 안두철 선생이 거주하던 조선시대 전통 한옥이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창원의 대표 카페 거리. 경남도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죽동마을 메타세콰이어 길동읍 죽동마을에 위치한 메타세콰이어 길. 도심 외에 있어 풍경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잦다.
창원실내체육관창원 LG 세이커스의 홈구장으로 농구 도시 창원시의 농구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창원축구센터경남 FC창원시청 축구단의 홈구장이다. 비록 창원시청은 세미프로인 내셔널리그-K3리그에 있어 관심도가 떨어지고 프로 팀인 경남은 K리그2에 있지만, 경남이 2018년 K리그1 준우승과 201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이루며 큰 명예를 얻어내면서 이전보다 많이 알려졌다. 축구 전용 구장이다 보니 가장 좋은 시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저도 콰이강의 다리저도연륙교. 주변에 카페들이 많으며 야경이 예뻐 사진찍기 좋은 장소이다.
안민고개성산구와 진해구를 잇는 장복산 자락의 고갯길로 진해 시가지 야경이 뛰어나다. 봄철에는 벚꽃 명소 중 하나이다.
마산 상상길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을 잇는 약 150m의 아름다운 거리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 있으며 많은 맛집들이 이곳에 위치한다.
마산 어시장230년의 전통을 가진 경남 최대의 어시장이다.
마산로봇랜드총 7천억의 사업비를 투자해 만들어진 로봇을 테마로 한 놀이공원이다.
창원 돝섬전국 최초의 해상 유원지. 동물원과 유희시설을 갖춘 명소였지만 현재는 위락 시설은 모두 제거되고 소규모의 휴양 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창원 NC 파크NC 다이노스의 홈구장으로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와 메이저리그 구장급 시설로 야구 시즌이면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야구장 건물에는 상점, 음식점, 야구 박물관, 카페 등이 위치해 있다. 구장 자체도 예쁘고, 주변 공원, 야구공 조형물, 메트로시티 등과 어우러져 사진 찍기에도 좋다. 야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주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꽉 차고 교통난이 심각하다.
창동예술촌창동은 과거에 경남의 명동으로 불리던 중심가다. 2000년을 전후로 쇠락의 길을 걷다가 창동예술촌을 주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창원시는 창동 일대 빈 점포를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고, 이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의 이름을 딴 문신예술골목, 마산 예술의 역사를 담은 마산예술흔적골목, 상점과 예술을 접목한 에꼴드창동골목이 차례로 생겨났다.
창원해양공원舊 진해해양공원. 높이 136m의 창원 솔라타워 외에 어류생태학습관, 해전사체험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 99m 짚트랙이 조성되었다.
해양드라마 세트장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있는 곳으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바닷가에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진해루해변공원 내에 있어 진해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귀산 카페거리마창대교와 바닷가를 바라보는 푸드트럭, 카페, 식당들이 즐비해 있다. 특히 인스타 핫플, 데이트 명소로 유명하다.
무학산, 장복산, 용추계곡&폭포, 성주사, 진동리유적, 진해우체국, 시티세븐, 문신미술관, 오동동거리, 경화시장, 주남저수지, 창원시 국제사격장


7.2. 주요 행사[편집]




7.3. 특산물[편집]



7.3.1. 먹을거리[편집]



창원향토문화백과에 따르면 이외에도 국화, 수박(대산면), 고구마(평촌), 멜론이 있다고 한다. 지리적 표시제에는 마산합포구 진동면의 진동 미더덕이 등록되어 있다. 창원시는 야자수가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온난한 지역이다. 부산과 마찬가지로 눈 보기가 힘들 정도로 따뜻한 지역이기에 고구마가 한국에 제일 처음 도입되었을 때도 기후가 맞는 곳을 찾아 현 진해구(옛이름 웅천)에서 실험 재배했을 정도다. 그래서 아열대 과일도 잘 자랄 수 있다.


7.3.2. 가전제품 및 기계 설비류[편집]


이 항목들은 디지털창원문화대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기계공업이 흥한 창원의 특성 때문인 듯.


8. 생활 문화[편집]


구 창원은 계획도시답게 넓은 도로, 인도 및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으며, 공공 자전거 서비스를 전국 최초로 실시하였다. 창원시 공공 자전거 서비스는 누비자 참조. 도심 곳곳에 공원 등 녹지도 많아 좋은 외관을 자랑한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관이 11개 점이 있으며 롯데백화점 창원점,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시티세븐 등 백화점 및 쇼핑몰 5개 점, 이마트, 홈플러스, 농협 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가 15개 점이 있다. 창고형 대형마트의 경우 2022년 현재 롯데마트 맥스 창원중앙점 1개가 있으며 차후 2025년 완공 예정인 스타필드와 더불어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이 추가적으로 생길 예정이다.

하지만 진해 지역은 여러 가지 개발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직 구 창원과 마산에 비하면 부족하다.[55]


8.1. 교육, 문화 시설, 의료 기관[편집]





8.2. 스포츠[편집]









프로스포츠 구단으로는 농구의 창원 LG 세이커스를 시작으로 축구의 경남 FC와 야구의 NC 다이노스, 핸드볼의 경남개발공사 여자 핸드볼단두산 핸드볼단이 있다. 그 중 경남 FC는 엄밀히 따지면 창원시의 연고 구단은 아닌 경상남도 전체가 연고지이지만 주 경기장으로 창원축구센터를 사용한다. 또한 세미프로 축구팀으로는 3부리그 K3리그에 참가하는 창원시청 축구단이 있다.


8.3. 방송 수신 환경[편집]


KBS창원, MBC경남 창원방송, 창원극동방송 등 창원에 위치한 대부분 방송사들이 불모산에 송신소 및 중계소를 두고 있다. 양산을 제외한 동부경남 지역을 가청권으로 하나, FM 라디오의 경우 동부경남과 인접한 서부산[56], 양산[57], 진주, 청도[58] 일부에서도 수신 가능하다.

예외로 부산불교방송 중계소는 천주산에 있는데, 산 정상 대신 정렬대로 도로변에 송신 시설이 있어서 중계소 고도가 200m가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출력도 낮아 창원시를 온전히 커버하지 못할 정도로 가청권역이 상당히 좁다. 일례로 창원의 외곽 지역 중 하나인 의창구 대산면에서는 부산 주파수로 수신하는 것이 유리하다.

위치에 따라 부산 황령산, 진주 장군대산, 거창 감악산 전파가 추가적으로 잡히기도 한다.


9. 정치[편집]







10. 군사[편집]


진해구는 한국 해군의 최대 거점도시로 유명하다. 구한말에 일본 해군이 주둔할 만큼 입지가 그 정도로 좋아서 해방 직후부터 해군의 핵심이자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해군의 핵심 주둔지인 진해 해군기지에는 매번 입대 철마다 전국 여러 각지에서 오는 해군 신병들을 교육하여 수병으로 만드는 해군기초군사교육단, 해군의 각종 보급들을 담당하는 해군군수사령부, 해군 뿐만 아니라 해병대의 장교를 양성하는 4년제 특수대학인 해군사관학교진해기지사령부가 있다. 과거 해군작전사령부도 진해에 있었으나 부산으로 이전. 이러한 이유로 진해구 예비군은 해군에서 담당하며, 예비군훈련장은 행암동 끝쪽에 있다.

진해기지사령부 안에는 국방부해양경찰청 소속의 모든 선박들을 정비하는 해군정비창이 있어 각 함대 수리창에서 정비가 안 되는 함정들은 모두 진해로 온다. 해군 및 육군의 헬기 정비창도 풍호동에 위치해 있고 육, 해군의 헬기부대를 운용하는 진해비행장도 마련되어 있다.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위산업체들이 몰려 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 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국방부 청사가 제 1순위 폭격지역으로 지목되고, 다음 순위 폭격 지역으로 창원 군수공장 단지가 지목받기도 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완파되고 말 경우 스타크래프트에서 아군 본진 군수공장 단지가 날아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소련나치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 너머로 옮겨 독일 국방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도시이다.

전군 지상 공통 장비에 대한 창정비 지원을 하는 육군종합정비창동읍에 주둔한다. 그와 함께 국방과학연구소의 기동시험장 역시 창원 동읍에 있다. 경상남도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는 제39보병사단 사령부도 창원에 존재했었으나, 2015년 5월부로 함안군 군북면으로 이전했다. 그래도 함안은 창원 바로 옆이라 그렇게 멀지는 않다.

창원대로가 10km 넘는 길이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유사시 활주로 대용으로 쓰려고 만든 설계다. 계획도시답게 다른 주요 도로가 꼬박꼬박 중앙 분리대를 끼고 있는 와중에도 기본이 왕복 10차선인 대로에 중앙 분리대가 없었던 것이 그 증거. 2010년 즈음부터 중앙 분리대를 깔기 시작하며 활주로 기능은 상실했으나, 본 목적이 전시 상황의 비상 활주로 역할인 만큼 창원시는 계룡시 못지않은 비상용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예비군훈련장은 구 창원 지역은 반계동에, 구 마산 지역은 내서읍 삼계리에 있으며 둘 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11. 하위 행정구역[편집]





12. 논란[편집]



12.1. 탈성매매여성 매입임대주택 지원 특혜 논란[편집]


연합뉴스 http://web.archive.org/web/20210510123243/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12381089
2020년부터 창원시는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를 탈성매매화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에게 지원금을 주고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해 근린공원을 조성하는 정책을 펼쳐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 이후 창원시가 한국토지주택공사 경남 본부와 계약해 탈성매매 여성에게 매입임대주택을 4년간 지원한다는 협약을 맺자,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 일반 시민을 도외시하고 탈성매매 여성에게 먼저 주택을 임대하는 특혜라는 반발을 사게 되었다.

창원시는 성매매 특별법 중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이하 성매매피해자보호법)에 근거해 시행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입장이나, 국민들은 대한민국 국군 자가격리 장병 부실 식사 제공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똥별똥군기에 고통받는 일반 병사나 의식주에 어려움을 겪는 고아 등의 진짜 사회적 약자부터 먼저 도우는 것이 맞다는 싸늘한 반응이다. 무엇보다 혜택을 받아 기록이 남거나 낙인이 찍히게 되어 취업과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성매매 여성 사이에서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제도다.


13. 여담[편집]


구 창원시 지역의 경우 법정동 구획이 굉장히 이상하다. 여느 시들처럼 시 승격 이전에 쓰던 법정리들이 일단 계승되었는데, 산지는 남겨두고 딱 개발 구획 한정으로 새로운 법정동을 마치 포토샵 레이어 쓰듯 덮어썼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 있는 미개발된 언덕이나 시가지 둘레의 산지에 한해서 법정리 시절부터 있던 법정동이 남아 있고 개발된 지역은 네모반듯한 법정동이 만들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월경지나 땅거스러미 등이 난무한다. 관련 글 한국에서 가장 늦은 날짜에 열린 축구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그날이 성탄절이었다.


14. 출신 인물[편집]





15. 관련 문서[편집]



16. 자매 도시[편집]



16.1. 국내[편집]




16.2. 해외[편집]


범례
(☆)마산시로부터 계승
(★)진해시로부터 계승


17. 둘러보기[편집]






[1] 2023년 11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2] 창원시 가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김우진, 권성현
창원시 나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김혜란, 구점득
창원시 다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안상우
창원시 라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강창석
창원시 마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이정희
창원시 바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김경수, 성보빈
창원시 사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김영록
창원시 아선거구 (마산합포구 구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현동, 가포동): 이천수, 김이근
창원시 자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홍용채, 서영권
창원시 차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박선애, 정길상
창원시 카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남재욱
창원시 타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황점복
창원시 파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박승엽, 손태화
창원시 하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이해련
창원시 거선거구 (진해구 경화동, 병암동, 석동): 김헌일
창원시 너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최정훈
창원시 더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한상석
비례대표: 김미나, 박강우, 김수혜
[3] 창원시 가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최은하
창원시 나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김묘정
창원시 다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김남수
창원시 라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박해정
창원시 마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김경희
창원시 바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한은정
창원시 사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백승규
창원시 자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이원주
창원시 차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전홍표
창원시 카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이우완
창원시 타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서명일
창원시 파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문순규
창원시 하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김상현
창원시 거선거구 (진해구 경화동, 병암동, 석동): 정순욱
창원시 너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이종화
창원시 더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심영석
비례대표: 오은옥, 진형익
[4] 창원시 제1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서민호 (초선)
창원시 제2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백태현 (초선)
창원시 제3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박해영 (재선)
창원시 제4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박준 (재선)
창원시 제5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이찬호 (초선)
창원시 제6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이재두 (초선)
창원시 제7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박남용 (초선)
창원시 제8선거구 (마산합포구 구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현동, 가포동): 강용범 (재선)
창원시 제9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정규헌 (초선)
창원시 제10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정쌍학 (초선)
창원시 제11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진상락 (초선)
창원시 제12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이장우 (초선)
창원시 제13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조영명 (초선)
창원시 제14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경화동, 병암동, 석동): 박동철 (초선)
창원시 제15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박춘덕 (초선)
창원시 제16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이치우 (초선)
[5] 舊 0551 사용 지역(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추가 국번은 055-60* 국번.[A] A B 舊 0553 사용 지역(진해구).[6] 전국 특례시 4곳 중 3곳은 경기도에 몰려 있으니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임을 알 수 있다.[7] 또한 용인시와 더불어 둘뿐인 도농복합시인 특례시이다.[8]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기초자치단체인 수원시보다도 일반구가 1개 더 많다.[9]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 이후 '하' 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10] 원래 경상남도청은 진주에 먼저 들어섰으나 일제강점기부산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되고 경상남도에서 분리되면서 도청을 이전해야 되는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때 마산과 진주가 도청 유치를 놓고 서로 다투었으나 이전지는 이 둘이 아니라 창원으로 결정되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사림동으로 확정되었는데, 구 마산시 지역은 시내버스 탑승만으로 경상남도청에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진주시에서는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을 달려야 한다. 다만 2015년 홍준표 前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자리에 경상남도청 서부청사를 개청하면서 도청의 일부 기능이 진주시로 환원되기는 했다.[11] 창원은 수원과 더불어 21세기 이전에 도청을 물려받은 지역이며 이는 기존 도청 소재지였던 서울과 부산의 분리 승격이 다른 광역시들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다. 한참 급격한 경제 성장기에 수도권 집중도 지금만큼 심하지도 않았기에 도청을 비롯한 도내 주요 관공서들을 받아낸 창원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반면 창원도정이 시작되었던 1983년 당시 대구는 경상북도에서 분리독립한 지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며 광주, 대전은 각각 전라남도 광주시, 충청남도 대전시로 여전히 도 산하에 있었기 때문에 도청을 이전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후 21세기에 들어와서야 경상북도, 충청남도, 전라남도도 비로소 관내로 도청을 이전했지만 이때는 지역 균형 발전 분위기가 매우 강해진 탓에 도내 주요 도시와는 동떨어진 지역, 거기에 두 개의 지역 경계에 도청 신도시를 갖다 박는 관행이 생겨버렸고 이는 주변 인프라 부족, 도청을 유치한 두 지역 간의 갈등 초래 및 수도권 집중도의 심화까지 겹쳐 도청을 받아내도 제대로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2] 1910년 창원부가 마산부로 개칭, 1914년 개항장 일대만 마산부로 남기고 나머지 지역은 창원군으로 분리됨.[13] 창원군 진해읍이 승격.[14] 창원보다 더 순위가 높은 기초자치단체인 화성시(약 74조 53백만), 서울 강남구(약 71조 85백만), 서울 중구(약 53조 82백만), 성남시(약 44조 8백만)는 모두 수도권이다.[15] 그러나 창원시 인구가 감소하면서 특례시 지위를 상실 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법 시행령 118조는 해당 인구 인정기준을 근거로 전년도 인구가 2년 연속해서 100만 명 미만이면 특례시 지위를 박탈하도록 규정한다.[16]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17] 이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였기 때문이다. 연 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 개씩 통과하는 1987, 1995, 1998, 2002, 2009, 2011년에는 많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연도도 있다.[18]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19] 재분리의 필요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기존 지자체의 통합을 유도하는 방침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기도 하니 성사될 리가 만무하다.[20] 고양시-일산신도시의 사례와 비슷한데 고양군 일산읍 시절이나, 일산신도시 초창기에 입주한 주민들은 고양시 전체를 일산이라고 부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마산이 창원보다 먼저 개발된 것 처럼, 고양시 일대도 일산신도시가 먼저 개발되고 덕양구 화정동이 그 다음에 개발되었다. 최초에는 원릉(원당+능곡)과 더불어 일산시로의 분리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을 정도이니.[21] 이미 도농 통합 직전에 군명을 시 지명과 맞춰 환원한 지역은 별 문제가 없었고, 군산-옥구, 포항-영일, 순천-승주, 울산-울주는 시 지명이 군 지명의 인지도를 압도했기 때문에, 익산-이리, 평택-송탄, 남양주-미금, 여수-여천, 청주-청원, 광양-동광양, 정읍-정주, 경주-월성, 사천-삼천포, 거제-장승포, 통영-충무는 전자의 역사성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지명에 합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경군-점촌시, 아산군-온양시, 구미시-선산군의 경우처럼 통합시 명칭을 놓고 갈등이 있었던 사례도 없었던 건 아니고, 일산시·원당시·고양시 분할승격 대신 고양시로 통합된 고양군의 사례처럼 승격 이후에도 고양vs일산 대표지명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22] 분당신도시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무조건적인 독립시 타령이 지역 망신이라며 자성론이 있다.[23] 성남시/고양시에 산다고 하지 않고, 분당구/일산동구·서구에 산다고 한다.[24] 반대로 창원보다는 마산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토대로, "마산에 산다"고 하는 "창원 사람"들도 간혹 있다.[25]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26]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27] 현 창원시 의창구[28] 현 창원시 마산회원구[29] 기사에 따르면 재정재립도나 인구수를 기준으로 할 때 울산과 창원이 우선적인 직할시 승격대상으로 거론된 것으로 나온다. 다만 정부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하면 전주를 우선적으로 승격시키고 나머지는 추가적으로 검토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30] 비슷한 경우로 '성남'의 경우 성남 본시가지만을 일컬을 때도 있고, 분당신도시판교신도시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31]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자연적 감소와 수도권 이주로 인한 사회적 감소가 겹치면서 아주 빠른 시일내에 화성시에게 역전 당할 것이 확정적인 상황이다.[32]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인구 2위인 청주시와는 약 16만 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인구가 소폭 증가하는 청주시와는 달리, 창원은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 인구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33] 추세가 더 가팔라져서 이제는 22대 총선 전후로 100만 붕괴가 사실상 확실시 되고 있다.[34] 2000년대 들어서는 김해시가 전략적으로 장유신도시, 진영신도시를 개발하며 창원시 인구를 상당 부분 흡수하였다.[35]동읍[36] 인구는 이전부터 합산하여 계산중이었음.[37] 창원대로 문서만 보아도 이렇게 직각형 식으로 드넓게 개발된 도시는 2020년대인 현재까지만 보아도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다.[38] 그러나 대동제의 첫 시범 대상으로 지정된 탓에 통합 이전까지는 분구를 하지 못했다.[39] 이후 고도 제한이 해제되어 공동주택이 다량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베드타운 역할이 강화되고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등 산업 시설이 들어서면서 옛 진해시 영역을 차지하는 진해구의 인구수가 늘어나게 된다.[40] 예곡·우산·현동·덕동리[41] 구암·합성·회성·두척리[42] 위의 의창구, 성산구 인구추이에서의 마산시 편입지 인구 제외[43] 내서면,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44]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45] 인구는 이전부터 합산하여 계산중이었음.[46]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 1963년~1990년. 이 즈음에 마산시는 전국 7대 도시 중 한 곳이었다.[47] 특례시가 된 게 아니다. 특례시란 말은 2022년 1월 13일부터 시행된 지방자치법 이전까지는 법적으로 존재하는 명칭이 아니었다.[48] 한국은행 경남지역본부, 각종 관공서 및 금융기관 경남지부, KBS 방송국은 원래 마산에 있었다가 창원으로 이전했다. MBC 역시 창원으로 이전하려 했다가 마산의 필사적인 회유로 간신히 남았다.[49] 같은 시기 김해시의 인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2010년에는 대도시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인 50만을 돌파하였다. 김해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계기는 장유신도시가 첫 신호탄이었다.[50] 이용객 숫자는 창원중앙역마산역창원역 이용객수를 다 합친 숫자보다도 훨씬 더 많지만 필수정차역은 마산역이고 창원중앙역 쪽이 빈도가 더 많기는 해도 창원역과 더불어 선택적으로 정차한다. 원래는 창원역의 위치가 창원 구도심에 위치해 있고, 마산역과의 거리가 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애매한 위치의 역이라 창원중앙역 개통 후 창원역을 폐지하거나 일반열차만 정차시키려 했으나 지역민의 반발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질로 무산되었다.[51] 현대중공업에 인수[52] 이제는 외국계 기업이지만 삼성중공업 건설기계사업부도 있었다.[53] 마산항제1부두선 선로는 흙이 덮인 화단으로 쓰였다.[54] 원래는 한독맥주 공장이었으나 1976년에 금융 관련 사건으로 인해 도산하면서 이듬해에 조선맥주가 인수했다.[55] 애초에 당연한 것이 창원하고 마산은 인구가 각각 46만,36만이지만 진해는 인구 19만 정도의 도시이기 때문에 그렇다.[56] 황령산보다 송신소 고도가 높으며 동쪽은 높은 산이 있고 서쪽은 평야 지형인 특성상 창원 방송이 잘 들린다. 다만 만덕, 주례 등은 부산 전파가 잘 잡힌다.[57] 본시가지, 동면 서부, 물금, 원동, 상북, 하북 남부 등 꽤 넓은 지역을 커버한다.[58] 청도읍(읍내 이남 한정)에서 양호하게 수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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