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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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검(菖蒲劒)

1. 개요
2. 특징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조선시대에 제작된 도검이다. 휴대하기 좋게 짧고 손을 막아줄 코등이가 없으며 일직선의 형태로 되어있다. 일직선으로 된 모양새가 마치 창포잎을 연상시켜서 창포검으로 불렸다고 한다.


2. 특징[편집]


지팡이칼의 일종이며, 서양의 소드 스틱이나 일본의 시코미즈에 등의 소드 스틱 계열의 무기들이 그렇듯, 호신용 또는 암살용의 은닉 무기로써 주로 쓰였다. 또한, 죽장도 등과 함께 숨기기 쉽다는 연유로 조선 시대 범죄 조직검계가 항상 휴대하고 다니며 수시로 칼부림을 해대거나, 양반을 암살하는 데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육군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총 길이 107.3 cm의 창포검은 검신에 '보조의천금(寶釣宜千金-이 칼로-천금의 재물을 모으겠다.)'이라는 명문이 금입사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사도세자도 창포검을 애용했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일생 사랑하여 좌우에 떠나지 않는 것이 환도와 보검들이니, 생각 밖에도 그것들을 상장(상주가 짚는 지팡이) 모양같이 만들고, 그 속에 칼을 넣어 뚜껑을 맞추어 상장같이 해 가지고 다니시며 내게도 보이시기에 끔찍하고 놀랍게 여겼었다.

혜경궁 홍씨, 한중록


창포검은 당시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환도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전쟁용 도검이 아닌 호신용 도검이었으며, 그 운용방식도 베기보다는 찌르기 위주였다.[1] 그렇기에 단면이 편각도인 경우가 많았고, 종종 삼각도 형태를 띈 것도 존재했다고 한다. 또한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창포검의 구조 상, 강도를 강화하기 위해 날각을 크게 만드는 편이었다. 때문에 현대 한국에서 제조되는 베기를 위해 만들어진 삼각도와는 달리 오히려 베기에는 불리한 구조인 경우가 많았다.

이와 유사한 무기로 낙죽장도, 횃대검, 좌장검 등이 있다.[2] 일반 백성들이 대놓고 칼을 차고다니면 안되었던[3] 조선사회의 특성상 대부분 평범해 보이는 물건으로 위장한 은닉칼이었으며, 횃대검이 옷걸이용 횃대에 칼날을 숨겼기에 횃대검으로 불린것처럼 어디에 칼날을 달았냐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는 편이었다. 또한 이러한 자잘한 민간 호신용 칼들을 그냥 다 창포검으로 싸잡아부르는 용례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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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존속했던 초강대국로마제국의 주력 부대인 레기온들도 전투 방식은 단검글라디우스를 이용한 찌르기였다. 또한 칼로 밥을 먹고 사는 조폭들 대부분도 짧은 칼인 회칼을 이용한 찌르기를 구사한다.[2]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맹인 황정학이 사용하는 지팡이 검이 낙죽장도이며, 장금이의 꿈에서 민정호가 사용하는 검이 횃대검이다.[3] 조선초부터 임진왜란까지 200년간 전쟁이 없었고, 이후로도 병자호란 등의 굵직한 전쟁 빼고는 한반도사에서 전례없는 오랜 평화를 누리던 조선이었기에, 외세의 침략보단 반란의 위협이 더 신경쓰이는 시기였다. 그래서 짧은 단검인 장도조차 비록 적극적으로 단속하진 않았지만 보통의 양민들은 터부시하던 마당에 그보다 긴 칼을 대놓고 차고 다닌다면 반란분자, 도적으로 몰리기 충분했다. 일반 백성보단 덜했다 뿐이지 이는 양반, 특히 글로 먹고 사는 문반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점 민간사회에서 정식 도검이나 조총의 휴대가 많아져갔던것을 본다면 이 역시 그렇게까지 아주 철저하게 지켜지진 않은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