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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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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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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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4 Of Voices In My Dream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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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3집

The 3rd Masterpiece
2006.04.08

참여 앨범

S.101
2006.11.15

스페셜

The Precious History
2006.11.15

참여 앨범

Must Have Love
200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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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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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하
蔡東河|Chae Dong-Ha|チェ・ドンハ


파일:채동하.jpg

본명
최도식 (崔道植, Choi Do-Sik)
출생
1981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 강서구 내발산동
사망
2011년 5월 26일[1] (향년 29세)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장지
경기도 광주시 신현동 637-1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2cm, 68kg, A형
가족
어머니[2]
학력
발산초등학교 (졸업)
화곡중학교 (졸업)
명덕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 전문학사)
경희사이버대학교 (글로벌경영학 / 학사)
종교
기독교[3]
소속사
[ 펼치기 · 접기 ]
지패밀리엔터테인먼트 (2000년~2003년)
GM기획 (2003년~2008년)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 (2008년~2009년)
더블유에스엔터테인먼트 (2009년~2011년)

데뷔
2002년 11월 19일 채동하 1집 <Nature>
(데뷔일로부터 7801일째, 21주년)
경력
SG워너비 (2004년 1월 20일~2008년 5월 8일)
별명
별님, 동햄[4], 리다채, 채엄마
서명
파일:채동하 서명.png

1. 개요
2. 생애
2.1. 가수 활동
2.1.1. 첫 솔로 활동(2002)
2.1.2. SG워너비 (2004~2008)
2.1.3. SG워너비 탈퇴
2.1.4. 탈퇴 이후 활동 (2008~2011)
2.2. 사망
2.3. 사후
3. 보컬
4. 개인 활동
4.1. 개인 음반
4.2. 참여 음반
4.3. 음악방송 및 무대
4.4. 방송
4.5. 라디오
5. 출연작
5.1. 뮤지컬
5.2. 뮤직비디오
6. 여담



1. 개요[편집]



파일:채동하 프로필.jpg

SG워너비의 음악은 셋이라서 영원한 음악이 아닙니다. 대중을 향한, 대중을 위한 음악이기에 영원한 음악입니다.

앞으로도 SG워너비의 음악은 대중 안에서 살아 숨 쉬며 가요계에 큰일들을 해 나갈 것입니다.

공식적인 탈퇴 발표 4일 전인 1월 22일에 개인 팬카페에 채동하가 올린 글 中


시작은 미비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인간극장


대한민국가수.

200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대중적인 음악으로 전 연령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던 SG워너비의 전 리더이다. 그룹 탈퇴 이후 솔로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2011년 5월 26일 향년 29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 생애[편집]


1981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 강서구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살던 지역이 그린벨트에 묶여있었고 집은 흙으로 지어져서 일어나보면 염소가 문의 창호지를 뜯어먹고 있을 정도로 열악했다고 한다. #[5] 또한 6살 때 심실 중격 결손증(VSD)[6]으로 인해 수술을 받는 등 선천적으로 약한 몸 때문에 고생 많던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어릴때부터 작곡가가 되고 싶었으나 가수의 꿈도 컸다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댄스 그룹 AD ONE의 멤버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1학년이던 2000년 12월 24일, 기획사 관계자들과 작곡가들이 찾아와서 재학생들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친구가 오디션 보는걸 옆에서 지켜보던 중 한번 노래를 불러보라는 김형석의 말에 임창정의 '날 닮은 너'를 불렀는데, "내일부터 나와서 연습해라"라는 말과 함께 덥석 합격했다고. # 정작 본인은 그렇게 잘 부른 건 아닌 거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극찬을 받아 오히려 당황했었다고 한다.


2.1. 가수 활동[편집]




솔로 무대 모음

2.1.1. 첫 솔로 활동(2002)[편집]


김형석에게 발탁된 이후 지패밀리(G-Family) 엔터테인먼트[7]에서 약 2년간의 연습 기간을 거친 뒤[8], 2002년 'Gloomy Sunday'라는 타이틀곡으로 데뷔하였다. 첫 음악방송은 2002년 11월 21일의 뮤직뱅크, 실질적인 데뷔 무대는 2002년 12월 14일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다. 이후 후속곡 '차마'로 방송활동을 이어가던 중 소속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다음해 3월, 솔로 1집 활동을 마무리한다.

여담이지만 데뷔 앨범이 당시 음반 판매량 순위 차트에서 40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는 점과 무대 영상에 채동하를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신인치고는 꽤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소속사의 부도로 인해 얼마 활동하지 못 했다는 게 더욱 아쉬운 부분. 유튜브에 활동 영상이 몇 개 올라와있다.[9]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음반 CD의 결함으로 인해 2만장을 전량 리콜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

몇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치며 고대했던 데뷔였지만 소속사의 부도로 갑작스럽게 활동을 접게 되자, 대인기피증으로 한동안 집 밖에도 잘 안나가는 등 솔로 실패로 인해 상당히 힘들어 했었다고 한다. #


2.1.2. SG워너비 (2004~2008)[편집]


이후 김광수GM기획으로 회사를 옮겨 활동 준비를 하다가 김용준과 듀오로 활동하는 플랜으로 변경이 되고, 마침내 김진호까지 들어오면서 3인조 보컬그룹 SG워너비가 결성이 된다.


051019 APEC D-30 축하음악회

2004년 타이틀곡 'Timeless'을 앞세운 정규 1집 <Sg Wanna Be+>의 성공과 2집의 '죄와 벌', '살다가', 3집의 '내 사람' 등 연이은 히트로 SG워너비는 가요계 정상에 오르며 앨범 판매량 1위, 골든디스크 대상 3회[10], MKMF 대상 수상 등 그야말로 고공행진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팀의 맏형으로 리더와 센터를 맡고있던 채동하는 SG워너비의 얼굴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애절함이 묻어나는 특유의 음색과 잘생긴 외모로 큰 인기를 얻었다.

생각한 일들이 거짓말처럼 모두 다 이루어졌다. 그래서 불만도 많았다. 야속한 마음도,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이 내 눈에도 보이는 순간 결국엔 모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것이 행복했다. 그 기회를 준 것이 감사했다. SG워너비... 그 성공은 나에겐 생명이었다.

솔로 2집 <Essay> 中


2006년 3집 <The 3rd Masterpiece>으로 한창 활동 중이던 6월, 좌측성대마비로 고생하기도 했다. 전국투어를 막 시작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걱정이 컸으나 이후 다행히 완치했다.

2007년 12월 14일,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아리랑'으로 대상을 받으며 오열하였다. 시기상 이미 탈퇴를 결정한 이후이기 때문에, 단순히 감격의 눈물이 아니라 SG워너비로서 마지막임을 예감하고 여러 만감이 교차했던 것으로 보인다.


2.1.3. SG워너비 탈퇴[편집]


2008년 1월 2일 씨야이보람과 열애설이 기사화되었고, 곧이어 탈퇴설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1월 26일, 일본 포니캐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SG워너비에서의 탈퇴를 발표, 2008년 3월 27일 조영수의 <All star> 앨범 참여를 마지막으로 SG워너비를 탈퇴했다.[11]

팬카페 사랑방에 올라온 채동하의 글[12]
[ 글 보기 ]

채동하 입니다.

그동안 이곳에 글을 한번도 남긴적이 없네요.
올한해는 시작부터 힘들더니..참 말도 많고 어지러운 시간들이었어요.

제가 이제 sg워너비 에서 내려가려 합니다.
긴시간동안 저의 마음을 모두 전달할수는 없지만, 많은분들이 이제는 이해하실거 같아요.
미안하단말..죄송하단말은, 안할께요. 그럼 더 슬퍼지니까..

기사로는 저의 거취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저는 아직 아무런 계획도 갖고 있지않습니다.
사실 한 두달동안 여행도 다니고 쉬었어요. 그리고 조금더 쉴려구요...
이정도면 어디어디와 계약을 했겠다..아님 재계약을 했겠다..연기 하겠다 솔로하겠다...

하더라구요.. 사람들이.

미련한건진 모르겠지만..제가 그리 머리쓰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동안 쉬고싶을때 쉬지도 못했구 제때 끼니를 쳉겨먹어본 적도 없었던거 같아요.

배우와 가수...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을 져야하는 직업입니다.
제가 항상 후배들에게 하는말이에요.. 그냥 한번 해볼까? 하면 안된다고...
앞으로 제가 하고싶은일...책임 질수 있는일을 할것입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참..많이 아쉬울거 같습니다.
저 ...많이 그리울거 같아요.
하지만, 결정을 내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마음 이해해 주실거라 믿을께요.

지난 5년간 저희는 하루도 쉬지않고,앞만보며 달려왔어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노래를 만들까..어떻게 하면 더 많은분들이 기뻐할까..
무대위에서 저희의 노래를 들으며 웃음짓는 분들의 얼굴을 보면, 힘들것들이 싹 사라지곤했습니다..

매일 같은음악만 한다는비판도 있었지만, 가수에게 가장중요한건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대중을 위한 마음...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저도 그렇고...sg워너비도 그렇고.
새롭게 시작하는 3명의 어린 친구들을 많이 응원해 주세요.
앞으로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쁘게 노래 할수있도록...

항상 감사했습니다...정말 무대위에서 행복했습니다.
끝이 아니에요. sg워너비 음악안에 항상 저는 있을거에요.
그리고 여러분들과 같이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채동하 올림.


좀 더 자세한 내용이 2008년 2월에 엠넷에서 방송된 'SG워너비 도쿄스토리'에서 한 인터뷰에서 공개되었는데, 정확히는 2007년 추석 즈음에 재계약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조율 과정에서 추후 활동에 대한 의견 차이를 확인하고 내부적으로는 이미 SG워너비 탈퇴가 확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2008년 1월에는 이미 소속사와의 법적인 계약이 종료된 상태였으나 김광수 사장과 본인이 생각하는 SG워너비의 몫을 채우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마무리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2008년 5월까지 콘서트를 포함한 SG워너비의 스케줄을 함께 소화했다. #



▲ 080427 인기가요 - 보고싶어

한국에서 마지막 무대는 2008년 4월 27일의 인기가요 무대였지만[13], SG워너비로써의 마지막 공식 스케줄은 2008년 5월 8일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콘서트 <My Friend Forever>였다.[14] (엔딩 멘트) 팀을 탈퇴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하듯 탈퇴 이후 2008년 6월 15일에 열린 SG워너비 울산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사랑하길 정말 잘했어요) 6월 28일 서울콘서트에도 참여 예정이었으나 일정 상의 문제로 무산되었다.

탈퇴 이유에 대해선 2008년 SG워너비가 출연한 라디오 스타에서 멤버 김용준이 '꿈이 있어서 나갔다'라고 짤막하게 언급했고, 채동하 본인도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탈퇴를 결심했다 말한 바 있다. # 소속사는 SG워너비 활동에 전념하기를 바랬던 반면 채동하는 연기 활동을 원해서 팀을 나간걸로 한동안 알려졌었지만, 이건 순전히 회사언플이었다. 물론 SG워너비 스케줄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뮤지컬 공연을 취소한 사례도 과거에 있었으나, "연기자를 하려고 SG워너비를 나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 문제의 언플 때문에 '혼자 잘 되려고 팀을 나간다'라는 비난과 억측이 채동하에게 쏟아졌으며 이런 오해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였다. # 뮤지컬에 참여하게 되자 "드라마에 캐스팅되지 않으니 뮤지컬로 방향을 돌렸다"라는 반응이 있었을 정도이니 연기자 루머가 얼마나 파다했는지 증명하는 셈. #

당시 채동하는 SG워너비 탈퇴에 관한 여러 루머에 대해 "연기자 활동을 하기 위해 이적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못 박았다. SG워너비 시절부터 뮤지컬 활동과 연기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후에 인터뷰에서 털어놓길, 실제로 채동하는 탈퇴 이후 가수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다. SG워너비 활동시절의 살인적인 스케줄과 더불어 성적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기 때문에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고. 특히 다음 앨범의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다고 한다. [15]

너무나 쉬고 싶었지만, 본인 때문에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동생들까지 쉬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본인만 재계약을 포기하고 팀을 탈퇴했다고 한다.[16]


2.1.4. 탈퇴 이후 활동 (2008~2011)[편집]


2008년 9월 뮤지컬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켠' 역할을 맡아 열연했고, 이때 뮤지컬 무대에 서며 다시 마이크를 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 또한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OST 순애보를 부르는 등 활동을 조금씩 이어나갔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마침내 2009년, 솔로 2집 <Essay>의 컴백 소식이 알려졌다. 그러나 8월 29일 쇼케이스를 앞두고 연습하던 중 목 디스크 판정을 받고 성대결절까지 겹쳐 활동을 연기하게 됐다.[17] 당시 소속사 관계자는 채동하가 SG워너비 탈퇴 이후 "1년 4개월 만에 나오는 거라서 부담감을 많이 가졌다"며 "거의 신인처럼 트레이닝을 하면서 준비했는데 안타깝다"고 전했다.

2009년 11월에 늦게나마 컴백을 했는데, 컴백시기가 겨울로 미뤄지면서 타이틀곡이 원래 계획했던 미디엄템포 장르의 '너라서 사랑해'[18]에서 발라드 '어떻게 잊겠습니까(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로 변경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한 활동이었지만, 결국엔 목 디스크가 발목을 잡아 준비한만큼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다.

특이하게 이 앨범은 에세이 형식으로, 채동하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19]과 직접 쓴 짧은 글과 심정들이 적혀 있다. 10년 전부터 써오던 일기장에서 발췌한 내용이 많았는데, 어릴 적 이야기와 SG워너비의 리더로써 겪어야 했던 심적 부담감 등 다양한 얘기가 담겨 있다.

난 어려서부터 남들과 달랐다. 슈퍼맨, 에스퍼맨, 우주인, 난 이런 거랑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6살, 작은 몸에 새겨진 수술 자국… 슈퍼맨이 되는 순간이었다. 남들처럼 잘 뛰지도, 잘 놀지도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등을 토닥이며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나는 긴 숨을 이어갔다.

그런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노래다. 노래... 노래가 하고 싶다...

솔로 2집 <Essay> 中


2집 활동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약 두달 간 인도와 네팔에서 체류하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때 인도에서 본 한 장례식 풍경에서 화장 연기로 노랗게 물들은 하늘을 보고 마치 '바닐라 스카이'같다는 생각이 들어 즉석으로 노랫말을 지었던게 그 다음 타이틀곡의 유래. #

2010년 9월 발매한 미니앨범 <D day>는 채동하의 손길이 많이 간 앨범으로, 작사작곡에 이어 프로듀싱까지 도맡았다. # 수록곡'Vanilla Sky'에 대해서 채동하는 "발라드의 멜로디, 록의 리듬, 클래식의 과감함, BPM 147을 섞었다"고 표현했다. 또한 타이틀곡 하루가 미치고 역시 난이도가 높은 곡이었으나 음악방송등에 출연 완벽하게 소화하였다.[20] 역시나 그렇게 오래 활동하지는 않고 들어간 편이었으나, 그래도 2집 <Essay>보다는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여 채동하를 기다려온 수많은 팬들의 성원에 보답을 했다.

2011년 1월, V.O.S에서 탈퇴했던 전 리더 박지헌[21]과 '옴므듀엣'을 결성하고 '어제 같은데'라는 싱글을 발표하고 콘서트에서 라이브를 선보였다. # 원래부터 듀엣 활동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실수로 데모버전을 두 명 모두에게 보내게 되어 즉흥적으로 같이 하기로 한거라고. # 한국에서는 각종 행사로, 일본에서는 콘서트로 점점 활발하게 활동해 나가며 다시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2.2. 사망[편집]


2011년 5월 27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S아파트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22] 옷방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로 숨져 있었다고 전해지며,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타살은 아니라고 추정되었다. 유족의 뜻에 따라 5월 30일 부검을 실시했지만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종 사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23] 본인이 열심히 작업한 앨범이 건강 문제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냈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는 점 또한 채동하를 괴롭힌 것으로 추정된다.

5월 27일은 일본 도쿄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일본에서는 프로모션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귀국한 사실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아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까지도 일본 소속사는 채동하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를 찾아 매니저가 자택을 방문했지만 인기척이 없어 119에 신고, 구조대가 출동하여 베란다를 통해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한 상태였다. 주변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평소에는 짧은 외출에도 단정한 모습이었으나 자살 며칠 전부터는 초췌한 모습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며칠 전까지 매니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자신의 콘서트에 대한 홍보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연락이 닿지 않는 와중에도 콘서트 준비는 속행되었고, 공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서야 소식을 들은 일본 측 스태프들은 입장만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팬들에게 채동하의 자살 소식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전달해야 했다. 공연은 생전 SG워너비 활동과 일본에서의 활동을 담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상영했고, 관련 스태프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추도문을 낭독하는 등 추모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팬층이 거의 30~50대 여성이라 눈물바다가 되었지만 다행히 큰 소란은 없었고 조용히 공연은 막을 내렸다. 당시 기준으로 한달도 안 남은 채동하의 생일에 맞춘 미니앨범 쇼케이스와 팬클럽과 함께 하는 생일파티 등이 이뤄질 예정이었다는 소식과 팬카페에 며칠 전에 올라왔던 밝고 기대감 넘치는 글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며, 더욱이 그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기부, 봉사 등 각종 선행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24]

소속사에선 채동하의 추모 앨범이 계획되어 있었고, 생전에 작업했던 데모곡 '눈이 기억하는 사람'을 발표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잊혀진 것을 보면 오보일 가능성도 있고, 질문한 흔적만 있다. 답변에 의하면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채동하의 죽음에 대해 전 소속사 김광수 대표는 안타깝다며, 팀을 떠난 지 6개월 정도 지나 채동하가 찾아왔을 때 ‘언제 SG워너비로 다시 한번 뭉쳐보라’고 제안하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면서 ‘팀을 나가보니 소중함을 알겠더라’고 했다"고 전했다. # 이는 고인에 대한 예의는 갖다버린 언플이었고, 김광수의 만행을 아는 팬들을 그야말로 피꺼솟하게 만든 발언이었다.[25]

김진호는 소식을 듣고 빈소에서 가장 많이 오열하다 겨우 일어섰고 김용준 역시 매우 슬퍼하였으며 그의 장례식 때 그의 영정사진을 들고 발인까지 함께했으며 교체된 멤버라 평소 크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이석훈도 끝까지 그의 빈소에서 자리를 지켰다. 탈퇴 없이 4명이서 함께했다면 좋았을텐데 여러모로 슬프고 안타까운 부분이다.


2.3. 사후[편집]


돌아와줘 네가 살던 이곳 널 그리워하는 아픈 내 가슴 속

세상이 다 변해가도 많은 시간 지나도 언제나 널 기다릴게 사랑해

바람이 불어온다 네가 더 보고 싶다

SG워너비 <사랑법> 中


2011년 9월 SG워너비의 디지털 싱글 <사랑법>이 발매되었다.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발표일이 채동하의 사망일로부터 100일째 되는 날이었고, 작사가 안영민이 SNS를 통해 채동하에게 보내는듯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다만, 발매일 자체는 일주일 연기되었다.

2011년 SG워너비의 "THE LAST" 콘서트의 '아리랑' 무대에서 그의 음성이 나오기도 했다.[26]

2013년 김진호의 정규 1집에 채동하를 그리워하며 만든 '안개꽃'이 수록되었다. 흐릿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결실인 안개꽃을 사람의 인생에 비유했다.

2013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김진호가 고인이 된 채동하에 대해 "여자친구처럼 세심한 부분까지도 날 걱정 해 주던 형이었다. 그런 형의 죽음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특히 형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내게 크나큰 충격이었다."라고 인터뷰했다.

2013년 10월 12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첫 출연한 김진호를 통해 잊혀가는 줄만 알았던 채동하가 다시 기억되게 된다. 이날 김진호는 추모 특집으로 채동하를 추모하며 SG워너비의 히트곡 '살다가'를 열창했다. # "우린 마지못해 웃는 거겠지, 우린 마지못해 살아가겠지" 파트에서 채동하의 음성이 나오면서 감동이 더해졌다. 노래 후주 부분에 무대 뒤 화면에서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채동하가 김진호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를 기억하던 팬들에 큰 슬픔을 안겼다. 김진호는 최종적으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방송이 끝난 후에도 각종 음원 차트 상위권에 '살다가'가 랭크되고 '채동하'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겨지게 되었다.



▲ 추모연가, 김진호 - 살다가

그리워서 더 보고 싶은, 보고 싶어서 더 슬픈 절규

불후의 명곡에서 김진호가 '살다가'를 열창한 뒤에 나온 자막.

함께 출연한 다비치 강민경은 "채동하는 자신과 이해리에게 조언도 많이 해주고 잘 챙겨준 동시에 가장 많이 혼내기도 했던 선배였다."고 회고했다. 영상 9:00부터

2021년 4월 17일부터 SG워너비놀면 뭐하니?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SG워너비의 대표곡들이 음원차트를 석권하자 덩달아 채동하도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회자되었다.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Timeless'가 수록된 정규 1집의 앨범 커버가 채동하의 옆모습이어서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에 멤버들에게 선물을 주는듯 해서,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애틋함을 안겨주었다. 5월 21일 김진호가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신호 같다"고 이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

2021년 7월 28일 SG워너비가 출연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김진호에게 다시 언급되었다. '시공을 초월해 남긴 메시지' 코너에서 김진호가 말하길 SG워너비는 언제나 자신의 가족이며 김용준, 이석훈, 채동하 모두에게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해주고 싶다며 팬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언급

3. 보컬[편집]






역대 노래 채동하 파트 모음
애드립 모음

살아 생전 가창력을 살펴보면, 굉장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Gloomy Sunday'로 데뷔하던 1집 때부터 김형석 작곡가가 말하길, 박효신조성모의 장점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극찬했다. 작곡가도 조성모의 여러 히트곡을 썼던 이경섭 작곡가가 1집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을 정도이다.

SG워너비에서 상당히 비중이 큰 보컬이었다. 특히 채동하 보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애절한 음색은 2004~2007년 SG워너비의 정체성이었던 절절한 노래들을 잘 드러낸 요소이기도 하다.

김진호가 워낙 파트가 많고 폭발적인 애드립을 자랑하기에 팬이 아닌 사람들은 채동하의 실력을 잘 모르고 넘어갈 수 있으나, 저음부터 고음까지 아우르는 넓은 음역대, 감미로운 음색, 안정적인 발성, 훌륭한 성량, 애절한 감정표현 등 모든 면에서 상당히 뛰어났다. 저음에서는 허스키한 쇳소리, 고음에서는 맑고 고우면서 힘 있는 미성이 특징. 컨디션이 안 좋을때 라이브 무대를 보면 저음은 불안한데 오히려 고음은 안정적일 때도 있다. '어제 같은데'에선 진성으로 3옥타브 미(E5)까지 올라간다. # 라이브에선 한 키 낮췄다. 그 외의 음역은 고음/노래 목록/한국에서 확인 가능.

SG워너비의 메인보컬과 대표하는 목소리는 김진호였으나 채동하가 후렴을 맡거나 라이브 파트를 기존과 다르게 배분하여 후렴을 맡는 곡들도 제법 있다. 채동하가 탈퇴한 뒤, 채동하의 살인적인 고음 파트를 맡을 사람이 없어 더 이상 라이브로 들을 수 없는 곡들이 있는 것만 봐도 채동하가 차지했던 팀내에서의 비중을 잘 알 수 있다.[27]

다만 선천적으로 앓던 천식 등 컨디션에 따른 기복도 좀 심했던 편이라, 몸이 안 좋을 때는 음정이 불안해지던 게 단점. 여기에 전성기 SG워너비는 워낙 콘서트와 행사 등에서 굴려지며 혹사 당한 것도 한몫했다. 채동하가 콘서트 도중 무대 위에서 쓰러진게 한두번이 아니라는 팬들의 증언을 찾아볼 수 있다.[28] 또 하나의 특징은 약간 새는 듯한 발음. 쉽게 생각하면 노홍철의 같이 바람이 조금씩 새는 느낌의 쇳소리가 난다. 이는 청취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서 사람에 따라 듣는 맛을 더해준다는 의견도 있고, 거슬린다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가수가 공개되지 않은 OST에서 들리는 쇳소리로 채동하가 OST에 참여했음을 팬들이 스스로 알아낼 정도로 꽤 뚜렷한 특징이다.

SG워너비 3집부터 음원과 라이브의 차이가 더 커지는데, 이는 음반 프로듀싱 단계에서 김진호의 두꺼운 목소리를 부각시키기위해 다른 두 멤버의 파트를 줄이고 미성을 강조하도록 디렉팅했기 때문이다. 즉, 라이브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음원보다 힘차고 파워풀한 목소리가 채동하 본연 스타일에 가깝다. 대표곡인 3집 '내 사람' (후렴구 모음), 4집 '아리랑'의 고음 파트만 들어봐도 라이브와 차이가 크다. 다만 SG워너비를 탈퇴하고 발매한 솔로 2집에서도 미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SG워너비 시절부터 프로듀싱을 맡은 조영수의 영향으로 본인이 가수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두드러지게 프로듀싱한 것이다.

저음부터 3옥타브가 넘어가는 고음까지 소화 가능하며, 록 스타일의 곡도 잘 소화하곤 했다. 본인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서 콘서트 개인 무대에서 록 장르의 노래들을 즐겨 불렀다. SG워너비 2집 콘서트에서부터 '어린사랑'을 록 버전으로 편곡해 무대를 한 적도 있고, 2.5집 콘서트에선 크라잉넛의 '독립군가'를, 4집 콘서트 중에서는 본 조비의 'Complicated'와 'I am'을 불렀다.

현재 김민수와 함께 가장 안타까운 천재 가수로 알려졌으며 살아서 현재 SG워너비 멤버들과 함께했다면 더더욱 좋았을거란 의견이 대다수이다.[29][30]

4. 개인 활동[편집]



4.1. 개인 음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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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앨범명
활동곡
MV
2002년
11월 21일
Na-Ture
{{{-3

정규 1집

Gloomy Sunday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차마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09년
11월 10일
Essay
{{{-3

정규 2집

너라서 사랑해

어떻게 잊겠습니까[부제]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0년
9월 16일
D day
{{{-3

EP

Vanilla Sky

하루가 미치고
파일:유튜브 아이콘.svg[31]
2011년
1월 14일
어제 같은데
{{{-3

디지털 싱글

어제 같은데



4.2. 참여 음반[편집]


날짜
앨범명
곡명
2006년
7월 31일
<오버 더 레인보우 OST>
또 다른 나
2007년
11월 9일
<인순이는 예쁘다 OST>
언제까지나
2008년
11월 4일
소지섭 <미련한 사랑>
미련한 사랑
6월 10일
<달콤한 나의 도시 OST>
순애보
2009년
5월 26일
<시티홀 OST>
웃어봐 (Feat. Amen)
2010년
4월 20일
<세자매 OST>
사랑이 말하죠


4.3. 음악방송 및 무대[편집]


날짜
방송사
방송명
활동곡
영상
2002년 ~ 2003년
11월 23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음악캠프
Gloomy Sunday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1월 24일
파일:SBS 로고.svg
인기가요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2월 7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음악캠프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2월 14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음악캠프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윤도현의 러브레터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2월 28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음악캠프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월 9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뮤직뱅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월 11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음악캠프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월 30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뮤직뱅크
차마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월 13일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월 27일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0년
9월 16일
파일:엠넷 로고.svg
엠 카운트다운
하루가 미치고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9월 18일
파일:MBC 로고(2005-2011).svg
음악중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9월 24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뮤직뱅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9월 26일
파일:SBS 로고.svg
인기가요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0월 14일
파일:엠넷 로고.svg
엠 카운트다운
Vanilla Sky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0월 29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뮤직뱅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0월 30일
파일:MBC 로고(2005-2011).svg
음악중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4.4. 방송[편집]


날짜
방송사
방송명
회차
영상
2003년
1월 16일
파일:엠넷 로고(1995-2005).svg
핫라인 스쿨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월 21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스타 집현전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3월 1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강호동의 천생연분
18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3월 8일
19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08년
9월 13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스타 골든벨
추석특집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9월 26일
파일:Mbcdrama.png
삼색녀 토크쇼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09년
4월 24일
파일:MBC 로고(2005-2011).svg
김혜수의 W
184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1월 28일
파일:SBS 로고.svg
김정은의 초콜릿
80회
SBS VOD
2010년
7월 2일
파일:MBC 로고(2005-2011).svg
김혜수의 W
241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0월 10일
파일:SBS 로고.svg
도전 1000곡
116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0월 17일
117회
10월 23일
파일:MBC 로고(2005-2011).svg
세바퀴
75회
MBC VOD


4.5. 라디오[편집]


날짜
방송사
방송명
영상
2008년
9월 1일
파일:mbc-fm4u.png
두시의 데이트 박명수입니다

2009년
11월 13일
파일:KBS CoolFM 로고.svg
메이비의 볼륨을 높여요

11월 19일
파일:mbc-fm4u.png
김범수와 꿈꾸는 라디오

11월 20일
파일:mbc-fm.png
박경림의 별이 빛나는 밤에

11월 25일
파일:mbc-fm4u.png
태연의 친한친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1월 30일
파일:1077.png
스윗소로우의 텐텐클럽

12월 1일
최화정의 파워타임

12월 2일
파일:KBS CoolFM 로고.svg
서경석의 뮤직쇼

파일:mbc-fm.png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

12월 3일
파일:KBS CoolFM 로고.svg
슈퍼주니어의 키스 더 라디오

12월 4일
파일:mbc-fm4u.png
김범수와 꿈꾸는 라디오

12월 5일
파일:KBS CoolFM 로고.svg
메이비의 볼륨을 높여요

12월 9일
파일:1077.png
최화정의 파워타임

12월 16일

2010년
9월 30일
파일:1077.png
두시탈출 컬투쇼

10월 1일
파일:KBS CoolFM 로고.svg
슈퍼주니어의 키스 더 라디오



5. 출연작[편집]



5.1. 뮤지컬[편집]


날짜
제목
배역
2007년
11월 ~ 2008년 1월
풋루스

2008년
9월 ~ 10월
안녕, 프란체스카



5.2. 뮤직비디오[편집]


연도
아티스트
곡명
링크
2007년
SG워너비
첫눈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08년
김종욱
그대만이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6.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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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세 생일을 28일 남기고 사망했다.[2] 본인이 어렸을 때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의 2020년대 근황은 현재 알려지지 않고 있다.[3] 부모님은 불교집안이며, 사망 전 자주 교류하던 스님과 문자를 하던 중 '부처님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숨졌다.[4] 김진호가 '동하햄 밥먹었셈?'이라 문자를 보냈는데, 이 방언인걸 모른 채동하가 '내가 햄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았지?'라고 답장하고 '얘가 내가 햄으로 보이나'(...)라고 생각했다고. 이 일화에서 유래되어 SG워너비 팬들은 이름 앞 글자와 '햄'을 붙여서 멤버들을 부른다. '형님'의 사투리 '행님'의 변형으로 추정. 정작 채동하와 김용준, 김진호는 서울 토박이이고 이석훈이 유일하게 경상북도에서 출생했으나 성장은 수도권인 인천광역시에서 했다.[5] 강서구에서 90년대 후반까지 농촌마을로 남아있었던 곳으로는 오곡동과 과해동이 있다. 현재는 마을은 사라졌지만 농지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또 인터뷰 당시인 2009년은 아직 오곡동과 과해동 일대에 옛 모습이 그럭저럭 남아있을 때 였다.[6] Ventricular Septal Defect, 심실 판막에 구멍이 있어서 피가 역류해 숨을 못 쉬는 병이다.[7] 당시 유재석, 이휘재, 송은이, 김한석, 정준하 등 유명 예능인들이 대거 소속된 기획사였다. #[8] 박선주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걸로 알려져있다.[9] 2002년 11월 23일에 MBC 음악캠프에서 캠프 뉴페이스로 데뷔한 영상까지 있다. 12월 7일에 37위로 진입. 12월 말에 부른 것도 있고 정장을 입고 부른 것도 있다. 엠넷 영상도 있다. '차마'는 2003년 2월 13일에 들어서야, 라이브 무대가 나왔다.[10] 2005년 대상, 2006년 음원대상, 2007년 음반대상[11] 2008년 4월에 발매된 SG워너비 5집의 <보고 싶어>에도 채동하의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 곡은 2008년 1월 일본에서 콘서트 부록으로 발매된 스페셜 싱글에 먼저 수록되었던 곡에 이석훈의 목소리를 추가 녹음하여 수록된 곡이다. 완전 신곡으로는 <하나의 꽃>이 SG워너비 소속으로의 마지막 곡.[12] 2008년 4월 24일에 올라왔다. # [13] 영상을 보면 SG워너비 멤버들 모두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도 힘들어 한다. 이때 너무 많이 울어서 녹화를 여러번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날 무대의 가장 잔인한 점은, '보고싶어' 무대가 끝난 직후 이석훈을 포함한 3명이 부르는 '라라라'의 사전녹화 영상이 이어서 나온다. '라라라'가 하필 밝은 분위기의 웃으면서 부르는 노래라서 직전 무대와 더 대비가 된다. 팬들이나 멤버들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어그로 끄는데에만 혈안인 회사였던 셈.[14] 2008년 4월에 이석훈이 SG워너비의 새 멤버로 영입되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약 1개월간 SG워너비는 4명이기도 했던 것. <My Friend Forever>는 전반부에는 이석훈의 SG워너비가 5집 수록곡들을 불렀고, 후반부에는 채동하의 솔로 무대 이후에 채동하의 SG워너비가 콘서트를 마무리했다.[15] SG워너비는 데뷔부터 엄청난 성공가도를 달려 2~3년차에 최전성기를 일찍 맞이한데다, 가요계의 트렌드가 아이돌 그룹 위주의 시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세웠던 기록을 넘어서기조차 어려운 시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몰이창법이 가요계를 망친다는 비판을 최전선에서 받았기 때문에 본인들도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던걸로 보여진다. 실제로 4집 쇼케이스에선 채동하가 "겉모습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기도. #[16] 채동하가 김용준과 김진호보다 계약 기간이 먼저 끝났는데, 계약 기간이 달랐던 건 2002~2003년 솔로 활동을 하다가 GM기획으로 이적했기 때문.[17] 목 디스크는 SG워너비 활동때 전국투어를 하다가 공연 도중 부상을 당한게 원인이었다. # 교통사고로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겪으며 또 한번 다치기도 했다고.[18] SG워너비 시절 무수히 많은 히트곡을 써냈던 조영수의 작품이다. 조영수가 채동하를 아껴 노래 1곡의 값으로 2곡을 선물해줬다는 비하인드가 있다. 조영수와 작업했던 이유는 굳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는 'SG워너비의 채동하'를 지우고 싶지 않았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걸 살리고 싶었다고. #[19] '15년 전 오늘', '마음도 사랑도 눈물도'.[20] SG워너비 활동 당시 굉장히 바쁜 스케줄때문에 목이 항상 혹사되어 있었으나 이 시기엔 많이 회복해서 그런지 데뷔 이후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다.[21] 2016년 1월 재결합하여 다시 V.O.S로 활동 중이다.[22] 발견된 날은 5월 27일이나 사망 추정 시각은 5월 26일 저녁이다. 그래서 유골함에도 사망 날짜가 2011년 5월 26일로 되어있다.[23] 2009년 7월 9일, 생애 첫 매니저이자 본인에게 너무 소중한 매니저였던 매니저 장모 씨가 자살로 숨졌던 일도 큰 영향이 되었던 것 같다.# <Essay>에 실린 수필에서 "심장의 절반이 날아간 듯 하다."고 언급했다.[24] 채동하는 SG워너비 탈퇴 이후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네팔에 여러 번 방문하여 현지에서 밀알학교 건축 현장에서,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해서 봉사하였으며, 특히 2009년에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네팔 아이들, 그리고 국내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학습 용품을 기부하고, 독거노인들을 위해 쌀을 보내는 등 선행을 해오기도 하였다.[25] 애초에 김광수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소속 연예인들과 사이가 좋은 것처럼 자신과 소속 연예인들의 관계를 미화하면서 실상은 소속 연예인들을 돈 버는 기계로 여기며 마구 부려먹은 간사하고도 비인간적인 인물이다. 심지어 이 사람에게는 정신적 피해는 물론 물리적 피해까지 안겨 주었다. [26] 10월 8일 콘서트 영상(3분 9초), 10월 9일 콘서트 영상(2분 53초) 다만 이후 콘서트 일정부터는 유족 측의 요청으로 채동하의 목소리가 무대에 포함되지 않았다.[27] 클라이막스 화음 부분에서 채동하가 고음 파트를 담당하던 '은(恩)'이 이 대표적. 최근 들어 라이브 무대가 희귀한 '죄와벌'도 채동하가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데,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애초에 죄와벌은 2005년 활동 때에도 한 키(반음)를 낮춰 불렀고, 활동 이후엔 라이브 무대가 많이 없던 곡이다. 2015년 이후로는 키를 확 낮춰서 불렀다가, 이후 2023년 콘서트에서는 멤버별 음역대에 맞게 파트를 재분배하여 2005년 당시의 -1Key 그대로 잘 소화해냈다.[28] 콘서트 개인 무대 도중 쓰러지는 모습이 인간극장에서 그대로 나온다. 대기실 바닥에 한참을 누워있을 정도로 힘들어하다가 팬들의 앵콜소리를 듣고 다시 무대 위로 뛰어나간다. 23분 32초[29] 만약 채동하가 현재까지도 살아서 4인체제 SG워너비로써 함께했다면 가창력이 꽤나 상승한 김용준과 함께 고음 파트를 맡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석훈과 겹치지 않고 조화로울 수도 있었을텐데 그 놈의 소속사때문에 안타깝다고 팬들이 많이 언급한다.[30] 2020년대에 방송 놀면 뭐하니를 통해 sg워너비로 대표되는 2000년대 중•후반의 발라드가 대중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큰 이슈가 되었는데, 이때 놀면 뭐하니에서 sg워너비가 불렀던 곡들은 대다수가 채동하 시절인 1집~4집 사이의 곡들이다. 만약 채동하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분명히 같이 노래했을 것이고 이후의 활동에도 함께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더걸스나 카라, 터보 등의 예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거의 그룹들이 오랜 공백기를 거치고 활동을 다시 재개할 때는 대부분 탈퇴한 전 멤버가 재합류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부제]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두번째[31] 뮤직비디오 내용이 상당히 우울하기 때문에 보기 전 주의를 요한다.[32] 구글 및 유튜브를 통해 찾아보면 당시에 4명이 같이 찍은 영상 및 캡쳐 사진이 있다.[33] 명목 상은 전 멤버이지만 팬들이나 대중들은 채동하는 영원한 SG 워너비 제 1의 멤버로 기억되고 있다. 애초에 저런 문제를 낸 것부터 생각이 없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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