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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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수납하는 가구, bookshelf, 冊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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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수납하는 가구, bookshelf, 冊欌 [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ookshelf.jpg

을 꽂는 수납공간. 책꽂이 또는 서가(書架)[1]라고 불리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책의 형태란 지속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책장 역시 책의 형태애 맞추어 변화되었다. 춘추전국시대, 혹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죽간이나 파피루스 등 원통형 두루마리 책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현대의 책장처럼 넓은 직육면체 공간보다는 좁고 긴 공간으로 분할하여 하나의 공간마다 별개의 책을 집어넣을 수 있는 형태가 선호되었다. 책이 쉽게 움직이거나 빠지지 않도록, 사선으로 분할하여 마름모꼴의 형태를 잡는 경우도 매우 많았다.

이후 종이의 발명과 제책기술의 발달로 현대의 도서와 별반 차이가 없는 형태의 물건들이 만들어지자 비로소 책을 세워서, 혹은 눕혀서 보관할 수 있도록 직육면체 공간을 확보하는 책장들이 등장하게 된다. 조선시대 책장 유물의 경우 대부분 책을 세워두기보다는 눕혀서 차곡차곡 쌓아두는 형태가 많았다. 책을 쉽게 찾기도, 꺼내기도 불편하지만 단단한 책뚜껑이 없는 제책방식 상 세워두면 책이 쉽게 파손될 우려가 있었다. 유럽에서는 이 역시 초기에는 보편적인 가구는 아니었고, 책이 사치품 역할을 하듯 책장 역시 그 사치품을 보관하는 데 걸맞게 화려하게 제작되는 일이 많았다. 이 시대에는 책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세워서 보관해도 파손되지 않도록 표지를 두텁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2]

산업혁명 이후 철 제품 생산이 쉬워진 이후에는 목재가 아니라 철을 이용한 책장 역시 대량으로 생산된다. 철은 얇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어서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책을 수납할 수 있었고, 프레임의 조합을 통해 수납공간 변형 역시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살풍경한 외형으로 인해 일반 가정에서 가구로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고, 대부분 공공 장소(도서관 등)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사용하곤 한다.

현대에는 책상과 결합된 작은 책꽂이도 보편화되어 있다. 큰 책장과 비교해 자주 사용할 필요가 있는 자료나 책자들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데에 큰 도움을 준다. 이 역시 책상과 세트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면 부피가 작고 간단한 형태의 철제, 혹은 플라스틱제 책꽂이가 널리 사용된다.

책 이외에도 다른것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피규어라던지

여러 작품에서 이것 뒤에 무엇인가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금고라던가, 혹은 비밀의 방이라던지. 대개 책꽃이의 책을 건드려서 쿠쿠쿵하는 효과음과 함께 책장이 움직이면서 비밀의 장소/물건이 드러나는듯하다.

사무실이나 가정 등에서 이웃의 소음이 자꾸 벽에서 들릴 경우, 벽 앞에 책장을 놓으면 어느 정도 방음 효과가 있다. 물론 방음 항목에서 보듯 책장 하나만으론 소리 차단이 완벽하지 않고 천장과 문 등의 방음이 동시에 필요하지만, 따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간활용과 동시에 소음차단벽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조금 게으른 사람들은 집에서 책장의 책을 엉망으로 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로로 가지런히 꽂혀 있어야 할 책이 다른 책들의 위로 가로로 얹혀 있다거나 책의 아래위도 구분하지 않거나 종류 및 번호까지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은 것이다. 매사에 꼼꼼하게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눈에서 암이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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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에서 사용한다. 간체자로 书架(shūjià)라 한다.[2] 종이+목판인쇄라는 기술로 인해 동아시아에서는 책이 그리 희귀하거나 드문 물건이 아니었다. 괜히 가죽까지 써서 엄중하게 지킬 이유가 없었다. 반면 양피지+필사를 위주로 한 서양권에서는 한권 한권이 매우 귀중한 물건이었고, 그 내용 또한 성경 등을 위주로 제작했기 때문에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 현대식 제책의 근원으로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을 칭송하지만, 이 역시 종이의 전래와 대량생산기술 도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