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FC/일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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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일화 천마
SEONGNAM ILHWA CHUNMA
정식 명칭
성남 일화 천마 프로 축구단
영문 명칭
Seongnam Ilhwa Chunma Football Club
법인명
㈜통일스포츠
소속 리그
K리그 클래식
구단 형태
기업 구단
창단
1989년 3월 18일(35주년)
매각
2013년 12월 9일(10주년)
최종 경기
2013년 11월 27일, 광양축구전용구장, vs 전남 드래곤즈
구단명 변천
일화 천마 (1989~1995)
천안 일화 천마 (1996~1999)
성남 일화 천마 (2000~2013)
연고지 변천
서울특별시 (1989~1995)
충청남도 천안시 (1996~1999)
경기도 성남시 (2000~2013)
홈구장 변천
동대문운동장 (1989~1995 / 22,706석)
천안오룡경기장 (1996~1999 / 20,000석)
성남종합운동장 (2000~2004, 2009 / 21,149석)[1]
탄천종합운동장 (2005~2008, 2010~2013 / 16,867석)[2]
상징색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
웹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매각 당시 주요 인물
구단주
문국진
단장
박규남
감독
안익수
우승 기록
K리그1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7회)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2006
FA컵
파일:대한민국 FA컵 트로피.svg파일:대한민국 FA컵 트로피.svg
(2회)
1999, 2011
리그컵
(3회)
1992, 2002, 2004
슈퍼컵
(1회)
2002
AFC 챔피언스 리그
파일:ACL 트로피.svg파일:ACL 트로피.svg
(2회)
1995, 2010
아시안 슈퍼컵
(1회)
1996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회)
1996
A3 챔피언스컵
(1회)
2004
홍콩 구정컵
(1회)
2012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1회)
1999

1. 개요
2. 시즌별 일람
3. 역사
3.1. 일화 천마
3.2. 천안 일화 천마
3.3. 성남 일화 천마
3.4. 시민 구단 성남 FC로의 전환
4. 통일교와 일화 천마
5. 우승 엠블럼
6. 여담




1. 개요[편집]



파일:BZlPNOECQAAi84U.jpg




1989년 통일교 교주 문선명에 의해 창단된 축구단이다. K리그1 두 번의 3연패와 7회의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리그 최고의 명문팀이었으나, 구단에 큰 애착을 보인 구단주 문선명이 사망하면서 2013년 말 성남시에 인수되어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20년사


2. 시즌별 일람[편집]


성남 일화 천마
시즌별 일람
}}} ||
시즌
리그
FA컵
ACL
CWC
디비전
리그
순위
경기






승점
1989
1부
한국프로축구대회
5
40
6
21
13
44
52
-8
33
-
-
-
1990
한국프로축구대회
6
30
7
10
13
28
40
-12
24
-
-
-
1991
한국프로축구대회
5
40
13
11
16
56
63
-7
37
-
-
-
1992
한국프로축구대회
2
30
10
14
6
27
21
+6
34
-
-
-
1993
한국프로축구대회
1
30
18
0
12
35
23
+12
68
-
-
-
1994
코리안리그
1
30
15
9
6
42
30
+12
54
-
4강
-
1995
코리안리그
1
28
13
9
6
36
25
+11
48
-
우승
-
1996
한국프로축구대회
8
32
8
8
16
52
63
-11
32
8강
준우승
-
1997
한국프로축구대회
8
18
2
7
9
19
31
-12
13
준우승
-
-
1998
K-리그
10
18
5
0
13
17
32
-15
11
8강
-
-
1999
K-리그
10
27
10
0
17
34
44
-10
23
우승
-
-
2000
K-리그
3
29
19
0
10
47
38
+9
42
준우승
-
-
2001
K-리그
1
27
11
12
4
35
20
+15
45
8강
-
-
2002
K-리그
1
27
14
7
6
43
32
+11
49
4강
조별 리그
-
2003
K-리그
1
44
27
10
7
85
50
+35
91
16강
-
-
2004
K-리그
9
24
7
8
9
23
28
-5
29
32강
준우승
-
2005
K-리그
3
25
12
7
6
41
26
+15
43
16강
-
-
2006
K-리그
1
29
17
7
5
46
26
+20
49
32강
-
-
2007
K-리그
2
28
16
7
5
44
22
+22
55
16강
4강
-
2008
K-리그
5
27
15
6
6
46
23
+23
51
8강
-
-
2009
K-리그
2
33
16
7
10
44
38
+6
45
준우승
-
-
2010
K리그
4
30
14
9
7
49
28
+21
48
8강
우승
4위
2011
K리그
10
30
9
8
13
43
47
-4
35
우승
-
-
2012
K리그
12
44
14
10
20
47
56
-9
52
16강
16강
-
2013
K리그 클래식
8
38
17
9
12
51
42
+9
60
16강
-
-


3. 역사[편집]



3.1. 일화 천마[편집]



파일:일화 천마 엠블럼 (1989~1999).svg

일화 천마 시절 엠블럼
일화 천마는 통일교 산하 기업 일화를 모기업으로, 1989년 3월 18일서울특별시를 연고로 창단되었다.# 리그에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탄생한 서울 연고 축구단이었으며 동대문운동장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번갈아 사용했다.

창단 당시부터 대한민국의 월드컵 유치에 이바지하겠다며 서울에 15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축구전용경기장을 건설하겠다는 호언과 함께 막대한 투자를 예고했다. 박종환을 감독으로 선임하고, 유공 코끼리에서 김용세를 영입하며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소련 리그에서 올해의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한 사리체프와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출신 신태용과 이태홍을 영입하며 팀을 쌓아올렸고, 팀 내 간판이었던 적토마 고정운, 팽이 이상윤의 활약이 더해져,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리그 최초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당시 사리체프는 너무나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서, 다른 팀들도 골키퍼 포지션에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외국인 골키퍼의 활약이 국내 골키퍼의 성장에 장애물이 된다고 여겨, 골키퍼 포지션에 외국인 선수를 기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3.2. 천안 일화 천마[편집]



파일:일화 천마 엠블럼 (1989~1999).svg

천안 일화 천마 시절 엠블럼
1996년 일화 천마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서울 연고의 3구단(유공 코끼리, LG 치타스, 일화 천마)에게 서울 연고를 떠나 지방으로 새 연고지를 정하라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결국 일화 천마는 통일교 계열 선문대학교일화의 청주 공장이 있는 충청남도 천안시를 새로운 연고지로 정해 내려가게 됐다.

천안 일화 천마는 천안오룡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는데, 이 경기장은 조명탑이 없어서 해가 지고 나면 경기 진행이 불가능하여 제비뽑기를 시행했을 만큼 시설이 매우 열악했다. 이 때문에 천안시는 일화 천마 유치를 위해 천안오룡경기장을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전환할 것을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열악한 인프라와 함께 서울 연고 때와 달리 구단 성적이 전혀 나오질 않자, 구단 수뇌부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연고 이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안시는 천안오룡경기장의 부실한 시설을 개선하는 대신 1998년 12월 천안종합운동장 착공에 들어갔으나,# 이미 축구전용경기장에 대한 약속을 믿고 있다가 뒷통수를 맞은 구단 측은 천안시를 믿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연고 이전의 주된 원인은 인프라 문제였지만, 천안시에 대한 구단의 신뢰 상실도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천안시는 천안오룡경기장 대신 천안종합운동장이 건설 중이니 완공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 요청하며, 이듬해 조명탑 설치를 위한 예산까지 편성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떠나간 구단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당시 천안종합운동장이 건설 중이므로 조금만 기다리면 연고 이전 없이 인프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천안종합운동장은 조금만 기다리면 되기는 커녕 구단이 떠나고 한참 뒤인 2001년 7월에야 완공되었다.# 게다가 천안시는 천안오룡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리모델링 해주겠다는 약속도 일방적으로 저버렸기 때문에, 이미 구단의 신뢰를 상실한 상황이었다.


3.3. 성남 일화 천마[편집]



파일: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2000-2005).svg


파일:성남 일화 천마 로고.svg

성남 일화 천마 시절 엠블럼
(2000~05)

성남 일화 천마 시절 엠블럼
(2006~13)




2000년, 일화 천마는 천안을 떠나 성남을 연고지로 새 터를 잡게 되었다. 조명탑이 없었던 천안오룡경기장과 달리 조명탑이 있는 성남종합운동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다.

일화 천마는 성남으로 연고를 이전한 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차경복 감독의 지휘 아래 또 다시 리그 3연패를 차지하며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특히 2003년 K리그 사상 단일 시즌 역대 최다 득점인 28득점을 기록한 득점왕 김도훈[3]을 비롯해 여러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훌륭한 스쿼드를 꾸렸다. K리그 올드 팬들 사이에서는 2003년 성남 일화 천마의 스쿼드를 K리그 역대 최강 스쿼드 중 하나로 꼽는다.

그러나 2004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1차전 원정의 불리함을 딛고 3-1로 승리했기에 2차전 홈에서 손쉬운 경기를 하며 우승할 거라 확신했으나, 2차전 홈에서 상대에게 0-5 완패하며 합계 점수 3-6으로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이 충격으로 리그 3연패를 달성한 차경복이 사임하고, 김학범이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5년 9월, 새 유니폼과 엠블럼을 공모하여,# 2006년 3월, '비상하는 천마, 비전과 미래'란 의미를 내포한 새 엠블럼을 발표하였다.#

2006년, K리그 최초의 7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2007년에는 정규 리그에서 1위를 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에게 패하며 안타깝게 우승을 빼앗겼다.

성남의 레전드 신태용이 감독을 맡은 2010년, 리그와 FA컵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두 번째 우승에 성공하면서 성공적인 시즌으로 마무리됐다.

2011년, 숙적 수원을 꺾고 두 번째 FA컵을 들어올렸다. 이에 고무되어 문선명이 구단에 많은 투자를 했으나, 이듬해 성적은 홍콩 구정컵 우승에 ACL 16강이 고작이었다. 팀 내 문제도 많아 신태용이 사퇴하고 많은 선수가 다른 팀으로 유출됐다.

2013년에는 구단 존속에 대한 구단 내외의 산만한 이야기 속에 부산안익수 감독을 데려와 전남과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리그 8위를 달성했다.

다만, 성남 일화 천마는 이러한 화려한 우승 이력이나 좋은 성적과 다르게 인기가 적은 구단이었다. 2012년 어린이날을 맞아 돌(Dole) 코리아에서 탄천종합운동장을 방문하는 관객 5,000명에게 선착순으로 과일을 증정하는 행사를 했다. 그리고 이날 관중수는 4,543명이었다. 그나마 이 관중수는 개막전 이후 최대 관중이었다. 그래서 다른 팀 팬들에게 인기없는 성남 일화 천마가 자꾸 우승해서 리그 인기가 떨어진다는 웃지 못할 소리를 듣기도 했다. 또한 성남의 주 경기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관리 상태가 안좋아 상대팀의 원성이 있기도 했다.[4]


3.4. 시민 구단 성남 FC로의 전환[편집]


2012년 9월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사망하면서, 성남 일화 천마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은 K리그 팬들이 우려했다. 축구에 애정을 쏟았던 문선명과 달리, 부인 한학자와 통일그룹의 실권을 쥔 4남 문국진은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문선명의 와병 이후, 통일교가 축구단 운영에서 손을 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이미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통일그룹은 수익성 성장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문선명 외 나머지 가족들은 축구단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축구단에서 손을 뗄 것이 거의 확실시 됐다. 심지어 4남은 야구에 관심이 많았고 그로 인하여 당시 넥센 히어로즈 관련되어서 구단 인수 설이 돌았다.

그리고 문선명이 사망하면서, 축구 팬들이 우려했던 일들이 하나씩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 10월 WK리그에 참가하던 충남 일화 천마가 해체되었고, 피스컵마저 폐지되면서 성남 일화 천마도 해체될지 모르는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한편 통일교가 축구판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구단을 다른 기업에서 인수하거나 성남시에서 인수하여 시민구단으로 전환시키면 어떤가 하는 이야기들이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런데 성남시에서는 성남 일화 천마의 위기설 한참 이전에 시민프로축구단 창단 모임이 발족됐고, 거기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해체된 성남시청 체육단을 재창단하며 축구단도 함께 창단하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전혀 다른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후 통일교가 성남 일화 천마의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성남시에서 2013년 6월까지 시민구단 창단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완료하기로 하였지만, 성남시에서 용역 결과를 공개하지 않자, 성남시가 성남 일화 천마를 인수하지 않고 자체 시민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불리한 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됐다.


파일:성남 연고이전 반대 규탄성명.jpg


파일:성남 연고이전 반대 규탄성명(2).jpg

성남 일화 천마 연고이전 반대 규탄성명


파일:성남 연고이전 반대 궐기대회.jpg


파일:성남 연고이전 반대 궐기대회(2).jpg


파일:성남 연고이전 반대 궐기대회(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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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성남 연고이전 반대 궐기대회(4).jpg

성남 일화 천마 연고이전 반대 궐기대회
그러던 2013년 8월 23일, 중앙일보에서 성남 일화 천마가 안산시로 연고지를 이전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통일그룹이 구단을 안산시에 매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안산시가 구단 운영자금을 지원할 스폰서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통일그룹과 안산시 간의 인수협상이 지지부진해졌다. 이에 성남을 사수하기 위해 목소리를 낼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한 성남 팬, 성남 지역 스포츠 관계자 그리고 K리그 각 구단의 팬들은 성남 연고이전 반대 및 성남시민축구단 창단 촉구 궐기대회를 열기 시작했다. 성남 팬과 성남 지역 스포츠 관계자, 각계 축구 팬들의 요구에 성남 연고 국회의원과 성남시의회가 동조하자, 다시 성남시에서 구단 인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3년 10월 2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성남 일화 천마 인수 및 시민구단화를 발표한다. 이로 인해 성남 일화 천마는 다행히 해체의 위기를 넘어 성남시에 인수되면서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


4. 통일교와 일화 천마[편집]


구단의 정식 명칭에 들어간 기업명 일화는 명목상의 모기업이었을 뿐, 구단의 법인명은 ㈜통일스포츠였다.[5]

성남이 통일교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특정 종교 단체들에게 비난을 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천안 연고 시절에도 종교 문제로 홀대 받았지만, 성남 연고로 이전한 후에는 성남이 개신교 신자 비율이 많은 도시였기 때문에 성남시 내 여러 교회에서 반대 성명을 냈다. 게다가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은 분당의 모 대형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던지라 교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남 일화 천마는 소속 선수 및 스태프들에게 어떠한 종교 행위도 강요하지 않았으며, 구단 내에도 통일교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신교 구단인 안산 할렐루야야말로 가장 종교구단스런 행보를 보였던 바가 있으니, 성남 일화 천마를 향한 맹목적 비난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성남을 맹비난하면서 안산 할렐루야를 K리그로 진출을 시킨다는 개신교계의 움직임은 당시 유니텔이나 넷츠고, 하이텔, 나우누리 등 국내축구 게시판의 축구 팬들에게 매우 비판을 받았다. 내로남불스러운 태도를 보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성남 일화 천마에 통일교 색깔이 전혀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구단 엠블럼의 원형 테두리 좌우 양쪽에 새겨진 표식은 통일교 엠블럼에서 따온 것이다. 이 표식은 성남의 엠블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 계열의 여러 단체 로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남 일화 천마가 종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통일교를 전면에 내세우며 포교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이는 나중에 등장한 안산 할렐루야와 비교해 보았을 때 명확하게 드러나는 차이점이다.

재밌는 점은 성남의 주요 경기에서 통일교 신자들이 단체 관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03년 일본에서 치러진 A3 챔피언스컵에서 일본 내 통일교 신자들이 대거 입장하여 일본 클럽에 맞서 성남을 응원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 도쿄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 리그 조브 아한과의 결승전에는 총 2만여 명의 관중이 입장했는데, 관중석에는 노란 물결이 넘실거렸다. 이 관중들이 전부 한국에서 응원하러 간 성남 팬일리는 없으니, 일본에 있는 통일교 신자들이 그만큼 참석했다는 뜻이다.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 또한 통일교 관련 종교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각자의 종교에 대해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성남에서 선수로 뛴 신태용은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최성국은 골을 넣고 기도 세리머니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참고로 종교적인 축구 클럽이면서 더비가 유명한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셀틱 FC레인저스 FC가 있다. 이들의 더비를 올드펌 더비라고 부른다.# 애초에 축구 클럽에는 종교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유럽에서 축구단 창단의 가장 큰 갈래들은 교회 및 마스지드, 학교, 군대, 노동자 단체 등이다. 당장 "유나이티드"라는 팀명만 보더라도, 많은 팀들이 이합집산 하면서 본래의 색깔이 빠진 경우도 많다.[6]


5. 우승 엠블럼[편집]


우승 엠블럼 일람
연도
엠블럼
우승 엠블럼
우승 횟수
1989
파일:일화 천마 엠블럼 (1989~1999).svg


1990

1991

1992

1993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V1

1994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V2

1995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V3

1996

1997

1998

1999

2000
파일: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2000-2005).svg
파일: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3성).svg

2001
파일: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4성).svg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V4

2002
파일: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5성).svg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V5

2003
파일: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6성).svg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V6

2004

2005

2006
파일:성남 일화 천마 로고.svg
파일:성남 일화 천마 (7성) 엠블럼.svg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V7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6. 여담[편집]


  • 모기업 일화의 음료 맥콜이 프린팅된 유니폼은 한 때 선수 이름 대신 상표명을 표기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맥콜 팀의 삼정톤 선수 참 잘한다"는 드립은 이 무렵에 나온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성남 FC/유니폼 문서 참고.

  • 성남은 리그 성적은 매우 좋았지만, 관중은 그에 비해 너무 적었다. 이러한 저조한 인기는 무엇보다 구단의 저조한 마케팅 의식과 홍보 능력에 기인했다. 그리고 천안 연고에서 성남 연고로 이전할 당시, 프로축구단 유치를 추진하던 성남시에서 성남 개신교도들의 반대로 인해 갑자기 말을 바꾸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성남 연고 정착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화려한 우승 이력에도 불구하고 비인기팀으로 남게 됐다.

[1] 지금은 성남 FC의 보조 경기장으로 알려진 구장이지만, 성남종합운동장은 과거 한국 하키계의 성지였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 하키 국가대표팀이 은메달을 차지한 곳이어서 경기장을 축구장으로 개조할 당시 하키계의 반발이 심했다.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야구장으로 개조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사건은 성남시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어야 했는데, 축구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하여 대한체육회에서 축구계의 입지가 곤란해진 적이 있었다. 이 사달을 치러놓고 고작 4년만 사용한 후 탄천으로 주 경기장을 옮겼다는 것도 큰 문제가 됐다.[2] 파일:external/file2.instiz.net/d57c18544ab042b389c5fc156442df09.jpg
탄천종합운동장의 애칭은 탄천요새다. 16,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이지만, 골대 뒤에 가변석을 설치하면서 현재는 사실상 14,000여 명만 수용 가능하다.
[3] 이 기록은 2012년 데얀이 31득점을 기록하며 깨지고 만다.[4]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윤성효 감독은 성남과의 경기에서 패한 이유로 경기장의 잔디 상태를 첫 번째로 꼽았다가 윤잔디라는 별명을 얻었다.[5] 일화통일교(통일그룹) 산하의 자회사다.[6] 무언가 있어보인다는 이유로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쓰는 구단이 많기 때문에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의 대표적인 예로 제주 유나이티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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