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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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遼)의 마지막 황제.
본명은 거란식으로는 야율아과(耶律阿果), 한자로는 야율연희(耶律延禧).
2. 생애[편집]
전 황제 도종의 손자로 아버지 야율준(순종(順宗)으로 추존)은 일찍 주살당한 탓에 그가 뒤를 이었다. 천조제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이것을 불쌍하게 생각한 할아버지 도종에 의해서 여동생 진진국장공주(秦晉國長公主)와 함께 길러져 양왕으로 책봉되었다. 일시적으로 조부 도종은 조카 야율순(耶律淳)[1] 을 황태자로 삼으려 하지만 신하들의 견제를 받아 천조제가 황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즉위한 천조제는 어리석은 성격이었으며 정무를 돌아보지 않고 가신의 간언에 대해서는 처벌로 다스리는 등 민심의 이반을 불렀다. 한편 그는 신하들과 함께 여진족 부락에 가서 요나라에 종속되어 있던 여진족 완안부의 추장 완안아골타(完顏阿骨打)에게 춤을 추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를 죽이려고 하다가 신하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1114년 완안아골타가 요나라 동북변을 공략할 때 친히 정벌에 나섰으나 패배하였다.[2] 1115년에 요나라에 종속되어 있던 완안아골타는 금나라를 건국하며 독립을 선포했고 이에 토벌군을 파견했지만 오히려 대패하여 요나라가 쇠퇴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1121년 북송, 금 연합군의 협공을 받자 서쪽으로 도망쳤으나 1125년 응주에서 금의 장수 낙색에게 붙잡혀 포로 신세로 전락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요는 멸망하고 말았다.[3] 그 후에는 금에 의해 해빈왕(海濱王. 바닷가에 사는 왕이라는 조롱의 의미)으로 봉해져서 만주로 유배당하고 조용히 지내다가 병으로 백두산에서 사망했다. 이후 천조제의 후손은 해릉양왕에 의해 주살되어 대가 끊겼다.
그의 재위기는 고려의 숙종, 예종, 인종 재위기와 겹친다.
3. 기타[편집]
- 대송선화유사에서는 해릉양왕 때인 1156년까지 살아 있었다고 주장한다. 80대 노인이 된 천조제는 정강의 변 때 금나라로 온 북송의 흠종과 함께 격구장으로 끌려와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는데, 야사이다.
- 이 사람의 재위기간에 고려의 여진 정벌이 있었다. 비록 요나라는 이미 이전부터 기울어가는 상황이긴 했지만 이 사람이 좀 더 명군이었다면 전성기를 맞이한 고려가 대대적으로 여진족을 토벌하려 했으니 만큼, 그걸 틈타 활약을 좀 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나라를 망하게 한 암군이나 같은 시기 남쪽에서 송휘종이라는 희대의 암군이 있었기에 천조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다. 대부분 대중매체에서는 먼치킨 금나라에 망한 평범한 군주로 평가한다.
4. 둘러보기(계보)[편집]
[1] 도종의 동생 야율화로알의 아들, 훗날 북요 선종[2] 이때 요나라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군대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국왕이었던 예종은 이를 개무시해버렸다. 사실 이 시점에서 당장 5년 전까지 고려는 국력을 총동원해 여진 정벌에 쏟아부었다가 실패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지가 있었다 해도 현실적으로 뭘 해줄 수도 없었다.[3] 그러나 거란족의 나라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황족 중 한 명이었던 야율대석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중앙아시아로 건너가 1124년 서요를 세웠기 때문.[4] 실제로는 북요의 선종 야율순이 야율휘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