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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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대성당의 완공 상상화
1. 개요
2. 역대 천진암성지 신부
2.1. 역대 전담신부
2.2. 역대 부주임신부
2.3. 역대 보좌신부
3. 논란
3.1. 사유지 점거 및 건축법 위반
3.2. 불분명한 성지로서의 역사적 근거
3.3. 불교계와의 갈등
3.3.1. 반론



1. 개요[편집]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 성지에 세워질 천주교 대성당. 인근에는 가르멜 봉쇄수녀원이 있다.

천진암은 1779년 남인 계열 유학자 정약용, 이벽, 이승훈 등이 모여 천주교 서적을 읽던 장소로,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승훈은 178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세례성사를 받았다(세례명베드로).

1978년 천주교 수원교구 변기영 베드로 몬시뇰이 이곳에 100년에 걸쳐 세계 10대 성당에 들어가는 대성당을 짓겠다며 부지 35만 평을 매입하고 1985년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정초식은 1996년 6월 24일 거행되었다. 가로·세로 150 m, 높이 85 m의 초대형 건물로서 총 3만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을 예정이며, 건립지는 1,500억 원으로 예상하는데, 철저히 일반 신자들의 성금으로 충당된다. 한국 가톨릭 전래 300주년인 2079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천주교 신자 수가 급감 중인 상황이고 현재 미사 참석율도 10%도 안되는 절망적인 상황이라 과연 2079년까지 얼마나 많은 신자가 존재하고 있을지 의문이라는 비관스러운 지적이 많이 나온다.

사실 현행 건축법상으로는 이렇게 공기를 길게 잡는 것은 불법이라고, 당국에서는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한다. 그래도 어떻게 짓고 있는 모양이며 2012년 기준 기초 공사만 진행 중인데, 터를 일부러 수년 간 노출시켜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이다.


2. 역대 천진암성지 신부[편집]



2.1. 역대 전담신부[편집]


순서
이름 및 세례명
재임기간
비고
초대
변기영(베드로)
1975~2012.08
원로사목자
2대
김학렬(요한사도)
2012.08~2016.06
원로사목자
3대
김동원(비오)
2016.06~2019.06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원장
4대
송병선(요셉)
2019.06~2021.12
정남성당 주임
서리
윤민열(스테파노)
2021.12~2022.06
춘천교구 파견
5대
양형권(바오로)
2022.06~



2.2. 역대 부주임신부[편집]


순서
이름 및 세례명
재임기간
비고
초대
윤민열(스테파노)
2019.06~2021.12
춘천교구 파견
2대
김대한(발레리오)
2019.06~2020.06
능곡성당 주임
3대
이용인(프란치스코)
2020.06~2020.10
환속


2.3. 역대 보좌신부[편집]


순서
이름 및 세례명
재임기간
비고
초대
현영민(루도비코)
2019.12~2020.06
삼가동성당 주임
2대
김홍기(요셉)
2020.12~2021.12
벌말성당 보좌
3대
김창기(베드로)
2021.12~2022.12
서정동성당 보좌
4대
박기정(다윗)
2022.12 ~



3. 논란[편집]



3.1. 사유지 점거 및 건축법 위반[편집]


# 심지어 남의 무덤이 있는 땅과 국유지까지 불법으로 점거하고 개발하고 있다. 주민들의 통행을 막고 교단에 토지 기부를 강요하고 있는 작태는 사이비 종교를 연상케 한다. 심지어 천진암 측이 통행을 막았던 토지도 소유자가 따로 있었다.


3.2. 불분명한 성지로서의 역사적 근거[편집]


사실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천진암이 천주교 성지라는 역사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것. 상당수의 역사학자들은 '천진암 천주교 성지설'에 비판적이다. 이 문제는 가톨릭 계열 신문에서도 다뤘는데, 천진암에 대한 명백한 역사적 문헌 근거는 없다.

계속 언급되는 곳은 경기도 여주시에 있던 사찰인 주어사이다. 천진암도 불교 암자였긴 하지만 주체가 된 인물은 권철신(암브로시오)[1]이며, 묘비명을 남긴 정약용은 이 시기에는 세례성사를 받는 등 천주교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2]이 시기를 다룬 정약용의 글은 충분히 신뢰할 만한 자료인데, 여기서 정약용 등이 천주교를 소개 받았다고 알 수 있는 명백한 근거가 없다.

그나마 천진암이나 주어사에서 한국 천주교가 태동했다고 알 수 있는 자료는 천주교 측 샤를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와 다블뤼 주교의 《조선에 복음이 들어온 것에 관한 회상록》이라는 책인데 여기서 정약용의 '조선복음전래사'를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천진암에서 이벽, 정약용, 이승훈 등이 천주교 서적을 읽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복음전래사' 자체가 현존하지 않는 등 몇몇 문제가 얽혀있어서 신뢰성 면에서 여전히 설왕설래하는 중이다.


3.3. 불교계와의 갈등[편집]


불교 사찰이었던 천진암, 주어사를 천주교에서 성지화하려고 하는 데다가 심지어 일부 불교 유물들이 절두산 성지 성당에 들어가 있는 등의 이유로 불교 쪽도 이쪽에 대해서 말이 많다. 불교계 신문 관련 기사 애초에 저 불교 신문 글에서도 천진암 이야기가 많다. 종교 갈등과 한국 가톨릭의 역할- 천진암 성지 사업과 관련하여 -(불교포커스)

엄연히 천진암도 주어사도 모두 불교 사찰이고 불교의 성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에서는 가톨릭 성지로서의 위치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이 점에 대해서 가톨릭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

숨어든 곳이 왜 불교 사찰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숭유억불 기조를 유지한 조선시대에는 지방 양반들이 절에 가서 약탈하거나 물건 혹은 이런저런 편의를 강요해도 사찰에서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찰에 대해 조금만 정중한 대우를 취하면, 승려들의 도움으로 외부에서는 쉬쉬하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양명학이나 서학에 관심있던 자들은 모두 절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신유박해 때 이 절들도 폐허가 된다.

불교TV에서는 2021년 11월 29일과 11월 30일 천주교의 역사 지우기 - 천진암과 주어사! 누구의 성지인가? 라는 방송을 했다. 2022년 들어서는 정청래 사찰 통행세 발언 논란과 엮여 조계종이 반발하는 단초가 되었다.


3.3.1. 반론[편집]


천진암 터는 엄연히 천주교가 돈을 들여 구매한 사유지이며, 매입 당시는 폐사된 지 오래였다. 가톨릭 교계가 오래된 사찰을 밀고 성당을 건설한 게 아니라, 사찰이 사라지고 남은 (당연히 문화재 지정이고 뭐고 없는) 빈 땅을 구매한 것이다. 이는 이전에 그 존재를 몰랐던 문화재가 발굴되고 말고와는 핀트가 다른 문제다. 남의 종교가 구매한 사유지에 "우리 것도 넣어라"라면서 '부탁'을 넘어 천주교에게 '항의'를 하는 건 무리한 요구이거니와, 천진암이 천주교를 도와주다가 몰락했다는 불교측의 주장 등은 추측의 영역이며, 역사적 근거가 없는 헛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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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36~1801.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2] 이후 정약용은 교황이 제사 금지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가톨릭 신앙을 버린다. 실제로 당시 양반들 중 가톨릭에 흥미를 가졌던 이들 가운데, 제사 금지 때문에 포기한 사례가 넘친다. 이 때문에 세례를 받았더라도 가톨릭을 종교로 받아들인 것이 맞긴 하냐는 소리가 나온다. 반면 제사 금지를 받아들인 초기 신자들은 진산 사건 등 박해를 받았고, 평민 신자도 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