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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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2.1. 필요성
2.2. 시행방법
2.3. 효과
3. 결점
3.1. 후유증이 심각하다
3.2. 눈에 보이는 효과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시간이 의외로 길다
3.3.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3.4. 상대방 군대도 머리를 쓴다
3.5. 현지 주민들의 민심이 극도로 나빠진다
4. 초토화 전술
5. 활용 예
6. 대중문화 속의 청야전술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청야전술, 淸野戰術, Scorched Earth Tactics. 영어로는 초토화라는 뜻. 단어를 따로 풀어 해석하면 '그을린 땅' 정도가 된다.

전시 방어측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술. 견벽청야(堅壁淸野), 청야수성(淸野守城)라고도 불린다. 청야의 한자는 맑을 청() 들 야()로서 깨끗이 싹 비워버린 들판을 의미한다.

초토화 전술이나 청야 전술이나 서로 비슷한 뜻이지만 초토화 전술이란 말은 대체로 공격입장에서 쓰이고 수비의 입장에선 청야 전술이 적절하다. 보통 초토화의 경우 회생불가적인 의미가 있으나 청야는 해당 지역을 비워두는, 공백지화 시키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방어군이 후퇴하기 전에 적군의 손에 들어간다면 유용하게 쓰일 만한 모든 물자를 없애 버리면서, 적군에게 보급의 한계를 강요하는 전술이자 공세종말점을 적극 활용한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어원 예시

하지만 결점이 엄청나기 때문에 현대에는 1977년 제네바 협약 제 1 의정서 54번 문서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든 물, 식량, 농업시설 등 민간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를 파괴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또한 미국은 미국 헌법 선에서 수정 제3조로 청야 전술을 위헌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시민의 일방적인 희생과 재산 파괴가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전술이기 때문이다.


2. 상세[편집]



2.1. 필요성[편집]


고대전장현대에 비해서 전시에 보급이 훨씬 어려웠다. 생산력의 한계, 보관기술의 부재, 교통수단의 미비가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다. 이 때문에 군대의 보급에서 물자의 현지조달, 즉 약탈(혹은 현지확보)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손자의 손자병법 작전 편에 적에게서 노획한 물자는 아군 물자의 20배에 달하는 가치가 있다고 했다. 물자 획득 + 물자 수송비용 절감 + 적군의 물자 감소라는 삼중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까이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현지조달이 정상이었다.[1] 근대까지도 물자 보급을 스스로 100% 수행하는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수송작전을 병행하면서도 어지간하면 군대를 쪼개서 여러 지역으로 진출시키는 방법을 써서 해당지역에서 현지조달을 실시하여 보급하려고 하였다.


2.2. 시행방법[편집]


적군이 작전을 진행하려면 현지조달이 필수적이므로 이를 이용하여 자군의 보급물자를 비롯한 민가의 가옥, 우물, 수확이 가능한 식량 등 적군이 아군의 영지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물자들을 스스로 불태우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는것으로, 적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더라도 적군의 보급을 봉쇄하는 것이 가능했다. 즉, 너 주느니 차라리 다 불살라 버린다는 것.

우선 군량과 무기 같은 필수 전쟁 물자는 다른 거점으로 전부 옮기고, 만약 시간이나 인력이 여의치 않아 옮길 수 없으면 개의치 말고 확실하게 불태운다. 옷가지를 비롯한 모든 생활용품도 태우고 역시 집들도 모두 허문다.

장기전이 될 것 같고 당분간 주변 지역을 재탈환 하는게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일단 재복구에 엄청난 노력과 비용과 시간이 걸린다는 뒷 일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청야 전술의 강도를 높이게 된다.

일단 논과 밭을 뒤엎거나 불사르고, 더하여 강염기성 또는 강산성의 물질을 사용해서 토양도 철저하게 파투한다. 우물에는 우물물을 오염시킬만한 독을 포함한 오염물질을 밀어넣은 후 메워버리고 저수지의 둑을 붕괴시켜서 저수지를 마르게 만들고, 강의 상류에 인분이나 가축의 분뇨나 풀과 낙엽을 썩힌 거름 같은 오염원을 투입해서 식수를 고갈시킨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을 보복과 약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어시설이나 섬으로 대피시킨다.

그리고 청야 전술을 펼치지 않더라도 후퇴하면서 군수물자를 수거하고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적에게 물자와 설비를 그대로 내주는 것은 당연히 해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청야 전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간물자까지 모조리 파괴하는 극단적인 형태라는 것이다.


2.3. 효과[편집]


고대부터 정주민들이 쓰는 필살기 같은 전술로 이걸 사용하면 별다른 전투도 없이 상대방의 군대가 빠르게 죽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군대는 주둔지에 가만히 있어도 각종 보급을 필요로 하며 그 수량도 장난이 아닐 정도로 많은 상황이 보통인데 적국 영토까지 진격한 군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보급을 필요로 하니 그걸 충족하지 못하면 쉽게 죽어나가는 것이다.

더 무서운 점은 더 많은 물자를 미리 동원하고 제대로 수송하는 것 외에는 이에 대항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전근대의 군대들이 현지조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 및 수송과정에서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본국이나 물자 보급 창고 등에서 장거리 수송을 하는 이유가 있던 것이다. 당장 공성전에서 기초적인 청야 전술이라도 만나면 현지조달에만 의지할 경우 공성전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후퇴 과정에서 쓸 식량도 없어서 긴급후퇴도 어렵게 된다.

특히 이런 전술은 미리 쓰는 것이 아니라 적이 며칠에서 하루 정도 거리에 있을 때, 또는 첨병이 발견하더라도 본진이 그 소식을 알 땐 이미 도착한 직후인 정도의 거리에서 실시할 때 그 위력은 최고로 막강하다. "별다른 저항도 없길래 신나게 진격했는데, 정작 왔더니 황폐하더라."가 바로 이 작전의 포인트. 특히 겨울에 이 짓을 하면 정말 미친다. 눈으로 인해 보급이 어렵고, 가뜩이나 추운 겨울날 음식은 병사들의 건강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더군다나 기후문제까지 겹치면 춥거나 습한 경우 땔감도 신경 써야 한다. 연기나 불빛으로 인한 위치노출 우려가 있지만, 얼어죽거나 병이 걸리느니 불 때고 있는 게 낫다. 더군다나 퇴각하는 측에서 산이나 초원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면, 물론 바람이나 강우 문제를 고려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추적하는 쪽이 연기로 시야가 막히고 먹을 것과 땔감은 죄다 손상돼버리고 발은 묶이니 절대적으로 손해다.

전투지역이 더운 경우에도 전투식량 조리를 위한 땔감은 필수적이며 여기에 더해서 일반적인 전장보다 소모량이 더 많아지므로 식수와 염분 수급까지 신경써야 한다.

이런 걸 죄다 파괴하거나 쓸만한 게 없게 만들어버린 황무지가 된 도시를 무리해서 점거해봐야 득 될 게 없다. 이 상황은 도시도, 황야도 아닌 상태의 땅을 점령한 것이기 때문에 글자 뜻 그대로 계륵이다. 적이 속전속결을 위해 행군 속도를 엄청나게 높이는 강행군에 대응해 쓰면 더더욱 미친다. 강행하는 과정에서 낙오 및 부상등으로 병력은 크게 소모되는데 반대로 소득은 전혀 없으니. 더구나 상대가 지도도 제대로 없고 대군을 동원한 경우 엄청나게 치명적이다.

베르킨게토릭스도 청야 전술로 게르고비아 공방전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패주시켰는데 이후 청야 전술을 포기하고 야전을 걸었다가 참패했다. 이것은 자기 재산이 불타버리는 일을 당하는 휘하 부족들의 반발이 컸고, 근본적으로 부족연합이라는 체제의 한계상 베르킨게토릭스가 이 반발을 모두 눌러버릴만큼 권위가 크기 않았기 때문이다.

작전의 영역에서 아직까지도 일인자라 불릴 수 있는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마저 청야 전술에 결국 졌다. 카를 5세도 보급 문제 때문에 프랑스 원정에서 참혹한 실패를 겪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청야 전술에 대한 직접적인 즉시 대응책을 찾기 힘들다. 굳이 찾는다면 청야 전술을 시행하기도 전에 당시 시대상으로는 상상도 못할 수준의 미친 속도로 진격하여 속전속결로 상대방을 기습적으로 밟아서 단기전으로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책이다. 역사상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유목민족 특유의 빠른 기동력과 약탈생활을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야 전술을 펼치는 상대를 역관광시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몽골이다.

다만 이런 방식은 평상시에 유목을 해서 인생 자체가 정예 기병에 가까운 유목민이나 가능한데다가 유목민 특성상 공성전에 필요한 장비를 수급하기가 어려워서 약탈 정도라면 모를까 해당 지역을 완전하게 점령하는 것은 어려웠고 종종 약탈왔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병력만 소모하고 되돌아가는 일이 흔했다. 몽골 제국이 청야 전술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특별한 사례에도 동시에 들어가기도 하는게 다 이유가 있다.


3. 결점[편집]



3.1. 후유증이 심각하다[편집]


청야 전술이라는 전술 자체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버리는 것이 기본인 만큼 전후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뒷일 생각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나 하기로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적군을 물리친 다음 재탈환과 재건에 들어가는 시간, 비용, 인력이 엄청나게 소모되며 그 결과도 신통치가 않다.

그리고 자국의 역량이 충실하지 않으면 청야 전술 쓰다가 같이 굶어죽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심하면 공격군이 소모되기도 전에 방어군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항복해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땅이 넓거나 험준하고 돌파하기 힘든 지형이 있거나 해서 청야 전술을 시행할 시간을 벌어 줄만한 상황이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전술이기도 해서 방어자가 엄청나게 불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전술이다.

오로벌하 시기에도 서하의 양태후가 이를 시도해 북송군을 좌절시켰으나 북송군의 영락성 전투 패배 뒤 서하의 경제적 피해가 가중되기도 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어설프게 시도하다가 남한산성에서 쫄쫄 굶고 항복한 후 삼전도의 굴욕을 겪는다. 이 경우에는 전술을 펼칠 시간도 없이 한양까지 신속하게 청군이 진격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야 전술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상황에서 인조가 시도해야 할 건 청야 전술 따위가 아니라 다른 왕족들과 함께 최대한 남쪽으로 도망침으로써 병자호란을 장기화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것을 유목과 농경을 동시에 하던 만주족이 모를리가 없어서 급속전진을 했고 이전의 전란 수준의 진격속도만 생각하던 인조가 반응을 늦게 한데다가 선조처럼 사태를 알자마자 전속력으로 도주하는 것도 못해서 결국 남한산성에서 포위당하게 되었으며 청야 전술이라도 쓸 수 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청야 전술도 제대로 수행 못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당장 남한산성 외부에 있던 식량고에서 미처 성 안으로 식량을 운반하지 못해, 남한산성 안의 식량은 쌀 14,000여 섬, 간장 100여 독에 불과하였다. 군사 12,000여 명이 먹기에는 겨우 50여 일 분. 더구나 그해 병자년 겨울은 정말 추웠기 때문에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결국 포위된 지 고작 45일 만에 식량 결핍과 추위로 말미암아 성내의 장병은 방어할 기력을 거의 잃게 된다. 여기까지 가면 아군을 상대로 초토화 전술을 한 수준이다.

원칙대로라면 긴급상황에 대비해서 식량 창고가 반드시 성 안에 있어야 한다. 식량같은 무겁고 부피가 많이 나가는 품목을 유사시에 험준한 지형을 통과해서 성 안으로 제대로 들여놓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남한산성도 처음 축성될 때 성 안에 식량 창고가 있었다. 이렇게 잘 있던 식량 창고를 광주 목사 한명욱이 "험준한 산에 창고가 있으면 운반하는 백성들에게 민폐"라며 성 밖으로 끌어냈는데, 이것이 큰 실책이었다. 게다가 이것도 사실 운송을 담당한 상인과 야합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인조는 이런 걸 다시 재수정하지도 않았다.

본래 청군은 20일 정도 밖에 버틸 식량이 없었지만, 이 때 한강변에 떡하니 있는 식량 창고를 청군이 쉽게 노획한 후 제대로 활용해서 45일간 포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줬으며, 오히려 남한산성 내부가 식량 부족을 겪었다. 원칙대로만 했어도 단순히 남한산성이 농성전으로 버티는 시간만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청군이 사용가능한 군량미를 대폭 줄여서 청군을 보다 힘겹게 했을 것이다.

식량 창고를 성 밖으로 빼내는 미친 짓거리를 할 지경이니 날씨에 대비한 각종 방한구가 있을 턱이 없었고 결국 진눈깨비가 내리자 인조가 "저 하나 죽는건 몰라도 백성들과 군사들이 뭔 죄가 있어 죽어야 합니까. 제발 날이 개게 하여 우리 신민을 살려주십시오 하늘이시여!" 라고 울먹이며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리며 절해야 할 지경이었다. 아무런 대책도 안세웠고 도주도 못하는 무능한 국왕 그 자체였다.

무능하면 도망이라도 잘 가야 하는데 인조는 그걸 못했지만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중에서 적이 쳐들어오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국왕이 도주해서 승리한 전쟁이 바로 제2차 여요전쟁임진왜란이었다. 임진왜란의 경우 당시 일본이 조선과 같은 농경국가였고 조선 왕만 쫓아간 게 아니라 일일이 조선의 각 지역을 점령해가며 북진했으며 조선을 멸망시키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일본군도 조선 국왕을 잡아서 조기에 항복을 받음으로서 빠른 전쟁종결을 원했기에 진격속도가 보병치고는 상당히 빨랐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대응책이 먹힌 경우다. 제2차 여요전쟁은 요나라거란족은 청나라만주족과 같은 기마민족이었고, 제2차 여요전쟁 당시에도 고려를 자국의 조공국으로 삼는 게 목적이었지 고려를 병탄하려는 건 아니었으며 그에 따라 당시에 고려 각지를 일일이 점령하지 않고 고려 왕을 신속히 추격했다는 점에서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와 비슷했기 때문에 대응책이 먹혔다.

청야 전술을 제대로 했더라도 후유증을 포함한 청야 전술의 단점이 실제로 이루어진 게 여몽전쟁기간. 강제로 산성이나 섬으로 옮기는데 백성들이 반발했고 이로 인해 중앙에서 대장군을 직접 파견 이라 쓰고 진압이라 읽는다 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 재물을 불태우고 옮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제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비축해 놓은 식량까지 부족해 이동한 백성들의 80 ~ 90%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관리를 죽이고 몽골군에 자진 항복하는 경우도 많았다.


3.2. 눈에 보이는 효과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시간이 의외로 길다[편집]


기본적으로 청야 전술이 효과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청야 전술을 위해 물자를 수거하거나 파괴하는 시간 + 침공군의 식량과 물자가 떨어지는 시간이다. 따라서 이 전술을 사용하는 측의 경우에는 생고생하면서 자신의 물자를 수거하거나 개박살낸 후, 침공군의 물자와 식량이 없어질 때까지 적의 맹공을 견뎌야 하는 고생길이 보장된다. 만일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적의 공격에 성이 함락되거나 하면 그 때까지의 고생은 무용지물이 되며, 덤으로 굶주림에 시달린 적의 가혹한 보복에 시달리게 된다.

기본적으로 청야 전술은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적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는데 아군만 손해를 보는 일이 보통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성 밖 마을에 화재를 일으키면 끝나는 간단한 시행이 불가능하며 그렇게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조선인조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농성전을 실패한 이유도 남한산성 밖에 있는 식량저장고를 파괴하고 내부의 식량을 성 안으로 이동시키거나 최소한 완전하게 불살라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청야 전술을 제대로 하려면 평소에 계획을 잘 세워놓았다가 유사시에 신속하고 정확한 수행을 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방어전에 쓸 각종 식량과 물자도 방어진지나 성 내부로 모아서 적절하게 보관하고 필요에 따라서 분배하는 등의 각종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청야 전술은 준비하는 시간부터 방어군과 현지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시작한다. 일단 청야 전술을 시행하는 순간 자신의 재산이 박살나는 현지 주민들의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전장이 될 지역이므로 외부로부터의 정상적인 물자 이동이 끊어지기 시작하면서 공급은 점점 축소되는데 당장 먹을 식량과 필수품 및 장기전을 대비할 각종 식량과 물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요는 크게 증가하므로 상품의 공급가격은 심각하게 올라가며 상인들도 이득을 보려고 매점매석에 돌입하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도 힘들고 구입해도 막대한 비용을 들인 데 반해 품질이 떨어지는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청야 전술을 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방어진지나 성 밖에 있는 주요 기반시설이 파괴되기 시작하면 점점 상황은 악화된다. 식수가 부족해지고 거주할 곳도 좁은 방어진지나 성 내부로 한정되면서 점점 좁아지는데 불편하기까지 하면서 빨래도 제대로 못하기 시작하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여기에 더해서 침공하는 적이 얼마나 식량과 물자를 가지고 오는 지 제대로 알 수가 없으므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식량과 물자를 좀 더 많이 비축하는 한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배급은 양이 축소되고 질도 떨어지며 영양소 측면에서도 균형이 맞지 않아서 배급만으로 먹고 살면 영양부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는 사태가 생기기 쉽다. 건강한 사람도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데 각종 질병에 걸려서 이 필요한 경우같이 조건이 더 나쁜 경우에는 적이 나타나서 본격적으로 농성전에 돌입하기도 전에 약을 못구해서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청야 전술을 시행완료하고 적이 도착해서 전투가 시작될 시점에는 이미 그 동안의 고생으로 인해 방어군과 현지 주민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청야 전술은 준비 및 시행하는 순간부터 아군과 현지 주민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청야 전술을 준비 및 시행하는 기간도 청야 전술이 효과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산정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청야 전술이 효과를 보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늘어나기만 하지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특성을 가진다. 침공한 적 병력이 충분한 물자와 식량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방어 측이 견뎌야 할 시간이 늘어난다. 그리고 적이 증원군 파견이나 수송 등으로 현지가 아닌 곳에서 물자를 조달할 방법을 찾으면 청야 전술에 필요한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극단적으로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처럼 침공군이 목표를 포위한 상태에서 아예 눌러 앉아버리는데 성공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렇게 되면 청야 전술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답이 없을 정도로 크게 늘어나서 결국 수비군이 버티지 못한다.

이에 비해서 청야 전술이 효과를 보이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힘들고 어려우며, 성공하더라도 효과가 적다. 예를 들자면 침공군의 물자저장소를 습격한다든지, 적의 보급대를 공격한다든지, 적의 신경을 혼란하게 만들기 위해 자잘한 습격을 가하는 방법 등이 있는데, 적이 진짜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름대로 호위와 경계병력을 늘리는 등 대응방법을 실행하기 때문에 수비측의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숫자가 부족한 정예병력이 보급 부족상태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동을 한 끝에 정확하고 효율적인 공격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물론 질을 숫자로 메우기 위해 인해전술을 써서 민간인이나 민병대, 게릴라까지 동원할 수는 있으나, 이렇게 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더라도 아군측에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3.3.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편집]


청야 전술을 쓴 끝에 국력이 무너지고 경제가 개박살나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으니 일단 넘어가더라도, 청야 전술이 성공한 시점에서의 혼란도 만만치 않다. 특히 침공군이 붕괴하더라도 남아있는 패잔병이 큰 문제다. 일단 청야전술 초기라도 배고파서 화난 군인한테 아주 박살날 현지인은 죽기 싫으면 미리 피해야 된다. 약탈, 강간, 살인을 넘어 학살당할 수 있고, 심할 경우 적군들이 식인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패주중인 패잔병들이 수가 많아질 경우 막장 of 막장으로 가버릴 때가 있는데, 이때는 정말 눈에 띄면 끝장난다는 걸 역사가 보여준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혼란상황을 빠르게 수습하려면 방어군이 대규모로 출격해서 후퇴하는 적의 주력을 박살낸 후 여세를 몰아서 패잔병도 빠르게 소탕해야 한다는 것도 큰 문제다. 청야 전술이 효과가 제대로 나올 시간이라면 방어군쪽도 식량이 모자라고 방어전투에 지쳤고 무기와 장비도 많이 손상되었으며 쓸만한 병력까지 줄어든 상황인데 그런 것을 감수하고 공세에 들어가게 되므로 청야 전술 막판에 방어측이 승리하였으나 총계를 내보면 손실이 더 커지는 일도 다수 존재한다.

적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방어군도 극한상황에 일시적으로 몰리기도 한다. 아군이 청야 전술을 펼친 지역에 들어가므로 식량 부족, 식수 고갈, 거친 날씨를 겪는 것은 기본이며 여기에 적군 시체 같은 것에서 전염병이라도 퍼질 경우 진짜로 답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3.4. 상대방 군대도 머리를 쓴다[편집]


A군대와 B군대가 싸울 때 A군대가 청야 전술을 쓰는 것을 B군대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우회로가 있다면 피하는게 정상이지만, 그런 거 없는 일직선 도로라면 A군들이 청야 전술을 시도하기 전에 B군은 기습을 강행해서 타격을 주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야간에 기습적으로 강행군을 해서 적진 코앞까지 가거나, 공수부대를 투입하거나, 특수부대를 잠입시키는거나, 원거리 무기를 배치해서 피하는 데 급급하게 만드는 등 이로 인해 A군대들이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청야 전술을 펼치지 못하게 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과거 러시아 제국시기에 표트르 1세의 재위 초반에 표트르가 허수아비 차르였던 시절에 타타르족 정벌을 할때 1차 정벌은 실패했는데, 그 원인중 하나는 타타르족이 초원을 불태워버려 말먹일 풀이 없었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수년 후 2차 정벌을 시도했는데, 이때는 영리하게도 미리 선발대를 보내 초원에 불을 놓아 태우게 한 후, 본진이 도착했을 즈음엔 새로운 풀들이 자라있게 한 적도 있다. 실제로 화전(농업)이라 하는 농경의 한 방법이다. 하지만 2차 정벌 결과도 실패... 당시 실권자의 이러한 타타르족 정벌 실패와 더불어 갖가지 삽질로 인해 결국 표트르 1세가 권력을 찾게 되기는 한다.

그리고, 해당 지역이 진격로의 중간에 위치하고, 상대방 군대의 목표가 해당 지역을 지나서 수도 등의 중요 목적지로 향하는 것일 경우, 청야 전술을 쓴다는 것이 미리 알려지면 적군이 진격로를 아예 바꿔버려서 정작 적에게는 별 피해 없이 아군 물자만 손실을 보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혹은 적들이 빠른 이동속도를 가진 경우 청야를 하는 도중에 적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예시로 몽골군이 러시아를 침략해오자 러시아 제후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청야 전술로 적의 공격을 지연시킨 다음 혹독한 겨울인 동장군이 오면 몽골군이 자동철수할 것으로 계산하고 청야 전술을 사용하다. 그러나 몽골군은 유목민족의 특유 기동성으로 러시아 예측보다 빨리 러시아에 당도하였고, 러시아는 애꿎은 자국 영토만 초토화 시킨 채 정복당했다.

침공하는 국가가 국력이 강해서 소모전을 할 역량이 있고 상대방이 방어전을 잘 할 경우 전쟁의 방식을 좀 바꿔서 전면침공용으로는 좀 병력이 모자라지만 방어측이 청야 전술을 자주 쓰도록 할 수준으로는 강력한 소수의 군대를 다수 준비해서 침공을 교대로 함으로서 방어측의 경제상황을 파탄나게 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고구려-당 전쟁에서 당나라고구려를 상대로 640년대에 시도해보았으며 여몽전쟁 후기에 자랄타이가 고려 침공 전담장군으로 임명된 이후의 몽골의 침공은 개경환도와 고려국왕의 몽골 입조라는 본래 목적 달성에는 시원치 않았으나 고려가 청야 전술을 자주 써서 국력이 망하는 측면에서는 의도치는 않았으나 매우 성공적이었다.


3.5. 현지 주민들의 민심이 극도로 나빠진다[편집]


전근대에도 주민들 반발이 있었고 심하면 청야하러 온 관군이 적군과 싸우기도 전에 재산과 가족을 지키려는 백성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백성들이 청야 전술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전투가 끝난 후에 청야 전술로 파괴된 주민들의 재산 피해에 대해 국가가 인정해줄 확률도 적고 인정해줘도 국가가 배상해 줄 확률도 적을 뿐더러 배상한다고 해도 국가의 상황이 어려우니 수십년 뒤에 해준다던지 하는 꼼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것도 현대에 들어와서야 가능해진 일이고 전근대 시대에는 백성들이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당연하게 겪어야 할 희생정도로 생각해서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몇 년간 세금 감면 정도의 가벼운 조치를 시행하는 정도로 끝내기 때문에 결국 현지 주민이 대손해를 보고 끝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군과의 전투같은 격렬한 반항을 하지 않더라도 태업을 하거나 본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근처 숲 같은데다가 구덩이같은 것을 살짝 파놓고 식량이나 물자를 숨기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데 이런 물건을 적군이 나중에라도 찾아내기만 하면 청야 전술을 힘들게 시행한 것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전근대 시대에는 그나마 군대의 영향력이 강했는데도 이러했는데 현대전에서는 더더욱 옛말인 행위이다. 또한 인권이 발달하고, 전쟁범죄라는 개념이 생긴 현대에는 전후까지 민간인의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게 될 청야전술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예를 들면 북한은 남한의 물자를 뺏어 쓰는 전술을 구상해놨기에, 일단 북한군이 개전 시에 공세를 시작할 수 있을지 여부는 둘째치고 이에 대응해 청야 전술을 쓰면 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과거가 아니다. 극단적인 청야 전술은 현대에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파괴할 시설과 물자의 양은 둘째치고라도 일단 치워 날라야할 물자가 말도 안 되게 커지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이 이사할 때도 트럭을 동원한다는 걸 생각해보자. 그리고 청야 전술을 실시하면 이에 기겁한 주민이 있는가 한편 군의 통제를 벗어난 주민을 통해 이 사실이 빠르게 퍼져나갈 게 뻔하고 이에 반발할 주민들이 생길 것은 당연하다. 자신들의 재산과 터전이 불살라지는 걸 두고 볼 사람도 없다. 국민 전반에 대한민국이란 헌정 질서에 대한 소속감이 확고한 한국도 이런 걱정이 들 정도다. 현대 정권에 대한 불만과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에 대한 부정은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국가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발달 못 했고, 현지 주민들에게 집권 체제의 정통성 자체가 심각한 도전을 받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더더욱 반발이 클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던, '국군'이라기 보다 차라리 점령군 취급을 받는 관군이 와서 집, 재산, 삶의 터전, 고향 다 싸그리 버리고 불태운 다음 움직이라고 강제하는데 그 옆에서는 적군이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당신들을 억압하는 폭군, 지배 집단 누구누구지 이 나라의 인민들이 아니다. 우리가 쳐들어와도 당신들의 재산과 목숨은 일체 보장할 것이니 괴뢰군의 소개 명령을 거부하고 계속 생업에 종사하라."라고 삐라 뿌리거나 선전 방송을 하거나 SNS로 선동질을 해댄다면 주민들이 관군의 명령을 제대로 따를 리가 없다.

전쟁사에서 공격군의 지휘관들이 부하들에게 '점령지라고 해도 허가 없이 민간인을 약탈하거나 살해, 강간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라고 명령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이들이 선량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인 작전 수행에 꼭 필요한 게 이러한 민심 확보이기 때문이다.


4. 초토화 전술[편집]


청야 전술을 꼭 방어자만 쓰는 게 아니다. 영어로는 초토화와 동의어며 이는 공격자가 공격 전술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시대부터 있던 약탈, 습격이나 소규모 침공을 지속하면서 침공 지역을 공격군이 일부러 황폐화하는 게 초토화 전술의 시작이었다. 일단 이런 식의 침공이 지속되면 해당 지역의 경제력이 개판이 되버리므로 변경 지역부터 조금씩 방어가 불가능해진다. 동로마 제국테마 제도가 이런 경우를 막아내는 데에 일정 수준의 효과를 발휘했으나 악영향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정도로 초토화 전술은 효과적이었다.

이미 점령한 지역인데 멸망한 세력이 다시 부활 못하게 하려고 지금은 자신의 영토가 된 지역에 초토화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제3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가 고대 카르타고의 토양에 소금을 뿌려 다시 못 일어나도록 멸망시키려 한 사례가 알려져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정작 로마가 명확하게 소금을 뿌렸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멸망시킨 상대의 땅에 소금을 뿌리는 기록이 나오는 것은 구약성경 같은 중동 쪽 기록이다. 예를 들면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멸망시킨 뒤 그 성읍에 소금을 뿌린 일(사사기 9장 45절).

대(對)레지스탕스 전술로 공격자들이 쓰기도 한다. 레지스탕스는 전적으로 민간의 보급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경우 후방이 된 적지의 레지스탕스가 말라죽는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비유로 마오쩌둥이 민간인을 물, 게릴라를 물고기에 각각 비유한 예시가 있다. 덤으로 레지스탕스가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서 주변 지역을 약탈하게 되므로 현지 주민과 레지스탕스간의 관계가 최악으로 달려나가게 된다. 그래서 아군의 보급이 충분하면 레지스탕스를 제거하는 용도로 초토화 전술을 쓸 수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 경우가 대한제국 말기 일본군이 호남 지방의 의병을 몰살시킨 남한 대토벌 작전청산리 대첩 이후 간도참변. 두 작전의 결과로 의병과 만주 지역의 독립군들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사실상 소멸하거나, 시베리아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의 '남부군' 소탕작전에서 국군도 대 빨치산 전술로 현지 민간인 소개 및 봉쇄 이후 지속적으로 공군과 포병을 이용한 타격 및 토벌군 투입으로 꽤나 크게 성과를 낸 적이 있다.

이후의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잘 써먹었다. 이때는 민사작전을 포함한 대민지원 활동을 통해 그 형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고, 이는 혁혁한 전과를 알게 모르게 뒤에서 지원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때 이후 한국군은 각지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가면서 이 때에 배운 노하우들을 화려하게 사용했다.

여기에서 확대된 것이 총력전 상황에서 공격자가 방어자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꺾기 위해 산업, 경제 시설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RTS에서 적 진영에 들어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일꾼을 죽이고, 주요 테크 건물을 개발살내는 것과 비슷하다. 근대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이런 전술을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윌리엄 테쿰세 셔먼셔먼의 바다로의 행진으로 남부연맹의 주요 도시 및 산업 시설을 초토화시킨 것으로 꼽는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커티스 르메이의 중(重)폭격기를 이용한 전략 폭격으로도 발전한다.


5. 활용 예[편집]


대표적인 청야 전술의 활용 예는 다음과 같다.


이 외에도 청야 전술은 현대전에도 남아 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이 후퇴하며 쿠웨이트의 유전에 불을 지르고 간 것이 그 예다. 이는 방어자가 사용하는 청야 전술이라기보다는 공격자인 이라크군이 후퇴하며 쿠웨이트에 보복하는 것에 더 가깝다. 어쨌든 이 유전을 불태워서 이라크가 직접적으로 입는 피해는 없기 때문.

그러나 이 전술은 현대에 제네바 협약 위반이자 전쟁범죄로 넘어갈 수 있는 행위이다. 대표적으로 4.3 사건 당시 초토화 작전과 6.25 전쟁 당시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 청야 전술을 통한 공비 토벌 명목으로 저질러진 범죄이다. 그렇기에 민간인을 소개시키든 안하든 민간인의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야 전술은 제네바 협약 제 1 의정서에 의해 금지되었고, 미국, 이스라엘, 이란, 파키스탄과 같이 제 1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라도 작전지 민간인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는 청야 전술을 시도하면 미국이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국제적 비난을 받는다. 이 전술을 사용할 정도면 전쟁범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거나, 혹은 북한 수준으로 인권을 무시하는 국가 정도밖에 없다.


6. 대중문화 속의 청야전술[편집]


I will not be stopped. Not by you or the Confederates or the protoss or anyone! I will rule this sector or see it burnt to ashes around me.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어. 네놈이건, 연합이건, 프로토스건, 그 누구도! 코프룰루를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테다…

- 아크튜러스 멩스크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에서는 다르게 번역되었다.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어. 너희도, 연합도, 프로토스도, 그 누구도! 난 이 구역을 지배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겠다…로 번역되었는데, 스타2와 비교해서 원문과 더 가깝게 번역되었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아주 인상적으로 말하지만 사실 스타크래프트 1에선 조용한 어조로 말하는데다가 더군다나 말하는 도중에 부관이 말을 끊고 함대 준비 보고를 한다. 게다가 그 준비한 함대는 이온 포를 박살내고 멩스크를 떠났다.

해당 대사의 원천은 아돌프 히틀러가 프랑스에서 후퇴할 때 한 말인 "내가 파리를 소유할 수 없다면 차라리 불태워 버리겠다."라는 말을 비튼 것이다. 히틀러는 이 말을 한 뒤 파리 주둔군 사령관이던 육군 보병대장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에게 9번이나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고 알프레트 요들 장군을 통해 확인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콜티츠 장군은 이 명령을 씹고 영미 연합군에 항복했고, 뒤에 이 공을 인정받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이후 가석방되고 파리 시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본인도 전범혐의에서 나름 자유롭지 못함에도 말이다.

그리고 1차 리비아 내전에서 카다피도 이런 뉘앙스로 측근에게 말하였는데 리비아를 되찾지 못할 바에 차라리 리비아소말리아로 만들어버리겠다라고 말하였다.

Warhammer 40,000에서 인류제국이 행성 전체를 황폐화시키거나 파괴시키는 전략인 익스터미나투스도 청야전술의 일종이다.

비유적으로도 '청야 전술'이 사용되는데, 평론가 진중권은 한동안 활동을 쉬다가 다시 복귀하며 먼저 교수직부터 그만뒀는데, "일종의 청야 전술"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삭발 스타일을 고수하는 웹툰 작가 주호민은 삭발한 이유에 대해 "불이 나기 전에 불을 질러버렸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탈모 유전자의 공격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탈모인들이 많은데, 공격당할 머리카락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또 초창기 무규칙에 가까웠던 종합격투기 UFC에서 별로 붙잡힐 머리카락이 없던 호이스 그레이시가 꽁지머리를 하고 나온 키모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늘어져 전세를 역전시킨 적이 있으니, 격투기 선수가 삭발을 하는 것도 나름의 청야 전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여자들 싸움에서 머리카락 잡고 싸우는 클리셰가 많듯이 머리카락도 공격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평범한 여성과 삭발한 비구니가 싸우면 비구니가 유리할 수도 있다.


6.1. SF 소설 은하영웅전설[편집]


작전 입안자는 은하제국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은하영웅전설 1권에서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한 자유행성동맹군이 자신감이 올라 대규모 제국령 침공작전을 벌이자, 제국은 이에 대항해 우주구급 청야 전술을 실시한다. 동맹군이 점령할 만한 변방 행성들의 식량과 같은 물자들을 모조리 긁어내어 후방으로 빼돌린다. 당연히 주민들은 항의했으나 군대를 앞세워 강탈해 가는 걸 막을 수도 없고, 식량을 징발해 가는 제국군은 당신들 식량은 곧 몰려올 반란군 놈들이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며 설득한 후에 간다. 결국 군대는 철수하여 일부러 대량의 유인행성을 넘겨준 것.

끝내 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는 민중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임을 대의명분으로 삼던 동맹군은 점령지역 주민들을 먹여살리느라 죽어났다. 150년에 걸친 전쟁으로 국가 경제력이 매우 악화된 상태에서 원정나간 약 3000만 명인 아군의 보급도 미칠 노릇인데, 1억이 넘는 제국 신민들의 식량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얼마 못가서 각지에 분산 주둔한 모든 동맹함대의 정말 막대한 보급품 요청이 이제르론 요새로 들어왔다. 보급담당 알렉스 카젤느 소장은 기겁, 동맹 본국에서는 막대한 전비소모로 분노한 반전파가 국가를 말아먹는다고 주전파들을 비난했음에도 주전파들이 뭐라 반박도 못했다.

제국 현지에 주둔한 원정 함대들은 심각한 보급품 부족을 계속 호소한다. 자기들 쓸 물자를 주둔지의 주민들에게까지 나눠줘서였다. 원정군 총병력보다도 점령지 민중들이 많으니, 정작 동맹정부가 예정에도 없이 급하게 부랴부랴 보낸 보급선단이 갈 때까지도 버티기 간당간당했다. 그러자 부랴부랴 막대한 보급품을 지닌 대규모 수송함대를 보내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지휘하는 제국 별동함대가 모조리 격침, 물자는 다 박살난다. 끝내 이제르론 사령부는 "추가 보급이 갈 때까지 부족한 군보급품은 현지에서 징발하라."라는 막장 지시를 내린다. 굶어죽을 수는 없으니 각 함대가 주민들에게 나누어줬던 물자들을 다시 징발하는 해괴한 일이 일어나, 이 막장을 본 제국 주민들은 당연히 분노해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모든 물자를 날려먹은 동맹 함대는 물자 부족에 시달리다가 제국 함대의 반격 작전에 몰살했다. 끝내 자유행성동맹은 이 작전 1번에 수억명이 몇 년을 쓸 양의 보급물자와 다시는 못 돌이킬 약 2000만 명의 장병과 몇만 척에 달하는 함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 피해를 못 복구하고 멸망했다.

재밌는 점은 라인하르트는 동맹군이 점령한 행성을 탈환하자마자 그곳에 식량과 물자를 보급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때 식량과 물자를 자기 이름으로 보급하도록 해서 일석이조의 수확을 거두게 된다. 사실 청야 전술을 지시한 인물은 라인하르트 본인이므로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정작 그 사실은 숨기고 좋은 면만 부각시켜서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높이게 된 셈.

이와는 별개로 물자징발과 동맹군 점령 제국군 재탈환 시기에 있었던 거주민들의 재산권 손실이나 작중에서도 묘사되는 동맹군과의 분쟁에 따른 수많은 재산과 인명피해를 생각해보면, 도의적인 비난이나 책임까지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때마침 황제가 사망하고, 그 직후 계속해서 벌어진 권력투쟁 과정 속에서 이런 문제들이 더 이상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물자 보급을 재개한 것도 라인하르트 본인이므로 어느 정도는 만회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민중을 괴롭힌 건 사실이다. 물론 이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비상시라는 점도 있고 침략자는 어찌되었든 동맹 쪽이므로 동맹 점령 지역을 탈환하자마자 바로 물자를 보급하거나 본인이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는 점을 보면 어느 정도 찝찝한 일을 했다는 것을 본인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제국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고 수백년에 걸쳐 전제군주제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동맹군이 빠져나가고 재점령된 변방 행정의 신민들에게 다시 식량과 생활필수 장비들이 제공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라인하르트가 제국의 대권을 잡은 후에도 이 사건이 문제가 된 일이 없었다는 점에서 무난하게 안정화가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동맹군 도착이 늦어서 아사한 사람들도 많을텐데 안정화?

라인하르트가 전쟁 중에 범한 가장 큰 실책은 제국령 침공작전 당시의 청야작전이 아닌 립슈타트 전역 말기에 벌어진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지만 라인하르트 역시 도의적인 책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은하영웅전설의 묘사가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전쟁상을 따와 미래 전쟁이라기엔 허술한 면이 있는데 이 전술도 상당히 어색하다. 현대 사회의 생산성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당장 2차 대전 중 미 해군이 전투식량 1억 명분을 과잉 공급해서 남아도는 식량을 처리하기 힘들어 난리가 났다거나, 베를린 봉쇄 당시 미 공군이 항공수송만으로 대도시에 물자수급을 해줬다는 사례를 생각해보자. 3000만 명의 대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군대가 있는데 1억 명분의 식량 정도로 골치를 썩였다는 건 굉장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은영전의 주력병력은 군장 싸매고 다니는 보병들이 아닌 우주선들이다. 상식적으로 배에는 승무원들이 몇 달치 먹을 식량과 보급물자 정도는 간단히 싣고 다닐 수 있다.

이 부분은 작중의 묘사에서 인구 숫자만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다. 제국령 침공작전은 상당히 큰 규모의 작전으로, 동맹군은 수십 개 행성을 점령했으니 그 인구를 먹여살릴 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내용은 부자연스럽지 않다. 문제는 그 수십 개의 행성에 사는 제국인이 고작 1억밖에 안 된다고 서술한 부분이다. 지구라는 행성 하나의 인구만 해도 2011년에 이미 70억을 돌파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렇다보니 수십 개 행성의 인구를 먹여살리는 문제가 고작 1억 명을 먹여살리는 문제로 말도 안 되게 축소되었는데, 동맹군 병력은 작전 규모에 걸맞는 3000만 명이라는 대군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어색해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설정을 바꾸어서 수십 개 행성에 수백억, 수천억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해도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수천억 명이 먹을 식량과 물자라면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양이 될 것인데, 그걸 무슨 수로 제국군이 간단히 압수해갈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생된 작품인 은하영웅전설/애니메이션에서는 설정집 등을 통해 은하영웅전설/함선에서 자유행성동맹군의 우주함선들은 장거리 원정을 온 은하제국군(은하영웅전설)을 자국 영토에서 요격하는 방식의 전투를 하며 경제력도 약하기 때문에 우주함선들이 작고 항속거리가 짧은데 화력만 그럭저럭 올린 요격기같은 특성을 가져서 일반적인 전투에서도 며칠 정도의 시간만 지나면 미사일도 떨어지고 빔포의 에너지원도 고갈되는 수준의 빈약한 보급능력을 가지므로 장거리 원정인 제국령 침공작전을 할 때 간신히 자신들만의 보급만 어떻게든 가능한 수준이므로 자신들보다 3배 수준인 제국 민간인을 먹여살릴 자금도 없고 수단도 없어서 망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미국은 혼자서 극초강대국이라서 위에 언급한 것이 가능했던 것이고 미국의 상대방이었던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의 개판같은 보급상황을 보면 동맹군이 왜 저 모양인지 이해가 가능하다. 심지어 대영제국무기대여법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 없었으면 답이 없던 상황이었다. 애초에 자유행성동맹 자체가 은하제국에 비해 사실상 많은 면에서 밀리는 국가라서 한계가 명확했던 것이다.


6.2. 게임 삼국지10의 전술[편집]


삼국지10에서 이런 전술로 멍청한 인공지능을 관광보낼 수 있다. 사용이 가능한 경우는 대체로 상대 세력이 거대 세력이고 자기 세력은 약소하지만 도시 하나를 뺐을 정도의 전력은 있고 전선이 도시 하나 정도로 적은 경우. 먼저 적의 최전방 도시 하나를 공격해 뺏은 후 그 도시의 모든 금과 군량과 병력을 아군의 후방으로 수송해 텅 빈 도시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 곧 적이 도시를 공격해 오는데, 병력도 뭣도 없는 그 도시는 곧바로 함락된다. 그럼 컴퓨터는 아니 여긴 물자가 없네 하고 자신들의 후방 도시에서 그 도시로 물자를 수송해온다. 그럼 다시 그 도시를 공격해 함락시킨 후 물자를 빼돌리고 도로 비워준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 결국 적의 총물자를 거의 다 빼돌리는 게 가능해진다. 현실의 청야 전술과의 차이점은 아군이 점점 더 부유해진다는 점.

이런 전술은 삼국지10에서는 물자를 수송하면 그 즉시 물자가 텔레포트해버리는 삼국지10의 오버테크놀로지때문이고 물자 수송도 수송부대가 직접 옮겨야 하는 삼국지 9삼국지11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6.3. 안드로이드: 넷러너[편집]


코퍼레이션 중 웨이랜드 진영의 카드들 중에 '초토화(Scotched Earth)'라는 이벤트 카드가 있는데, 태그가 걸린 러너에게 4 육체 피해를 주는 무시무시한 효과이다. 이 문서에 나와 있는 청야 전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름 그대로 러너가 있는 곳을 초토화시켜 죽이는 카드인 셈. 웨이랜드의 상징이자 웨이랜드의 경영 철학을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 카드인 동시에, 육체 피해를 줄여주는 Plascrete Carapace라는 중립 카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카드의 존재는 러너 유저들에게 그야말로 공포나 다름없었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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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에 잘 알려진 사례로 임진왜란 당시 원군으로 파병된 명나라군의 현지조달(을 명목삼은 약탈)을 들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상업이 발달하지 않은 데다 도로마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서, 명나라군이 소유한 은을 식량으로 바꿀 수가 없었던데다 명나라가 의주까지 싣고 온 식량들을 평양 이남으로 수송하는데 실패하여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즉, 보급의 측면에서 물자수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략적 후퇴가 용인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현지조달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고, 고대의 전장은 이런 불가피한 상황이 당연하리만큼 높은 빈도로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