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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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첸어: Нохчийчоь[지역명]/Нохчий[민족명]
  • 러시아어: Чечня́[지역명]/Чеченцы[민족명]
  • 영어: Chechnya[지역명]/Chechen[민족명]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유전학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ㅊㅊ.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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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즈니의 체첸인 학생들

북동캅카스의 한 지역이자 이 지역에 전통적으로 거주해온 민족을 이르는 말로, 이 민족이 전통적으로 거주해왔던 지역은 대부분 러시아의 영토인 체첸 공화국에 속해 있으며 체첸 사태로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아 제국 땅이 된 후부터 독립을 추구하여 서로 갈등해 왔지만 21세기에는 분쟁에 많이 지쳐 있어 오히려 이젠 아무 국가든 좋으니 그냥 잘 살고 싶다는 여론이 강하다고 한다. 링크

대개 러시아 밖에서는 체첸 지역을 위험한 곳으로 간주하는 편인데 론리플래닛 러시아편에서도 체첸은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는 식으로 짧게 소개하는 데 그쳤으며 대한민국 외교부도 다른 러시아 지역(경보 없음)과 달리 3단계 출국권고로 지정했다.

그나마 2012년경부터 푸틴이 특별히 신경써서 초토화된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수도 그로즈니에 화려한 야경과 고층빌딩들이 건설되고 치안도 크게 개선됐다고 한다. 올림픽이 개최된 소치 등과 멀지 않으므로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웃 민족인 인구시인과는 같은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체첸인 남성과 여성의 평균 키는 각각 179.1cm, 168.2cm로 나타난다.[1]

소련 말기인 1989년에는 러시아 SFSR에 불과 898,999명이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전쟁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높고 중앙아시아로부터의 귀환 등으로 2002년에는 1,360,253명으로 증가했으며 2021년 인구조사에서는 1,674,854명[2]으로 러시아 연방에서 러시아인, 볼가 타타르인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이 되었다.


2. 역사[편집]


체첸인의 자칭은 노흐치(Нохчий)이며 체첸어를 사용한다. 대외적으로 불리는 '체첸'이라는 명칭은 러시아어로, 카바르다어 'Shashan'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 용어는 아랍어 문헌에서 처음 발견된다.

전체 인구는 200만인데 체첸 공화국을 포함한 러시아에 140만 명[3]이 살고 나머지 60만 명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이슬람화되기 전의 체첸인들은 자신의 역사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고학상의 유적으로 오래전부터 동북캅카스에 살았던 것이 증명되었다. 오늘날의 체첸과 인구시 두 민족은 모두 북동캅카스의 나흐족이 선조이며 아랍어 사료에는 서기 8세기부터 등장하고 러시아 사료에서는 체첸이라는 이름으로 1692년부터 등장한다.

8세기경 노흐치족은 튀르크계 유목민 하자르와 이란계 유목민 알란족의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하자르인과 알란인들이 몰락한 후에는 이웃 조지아 왕국의 영향을 받아 동방 정교회가 널리 전파되었다. 10세기 무렵 셀주크 제국이 카프카스로 지배영역을 넓히면서 튀르크족이 정착하는 듯 했으나 조지아 왕국이 쿠만 출신 용병들을 고용해 셀주크 제국을 캅카스에서 축출해내면서 토속 신앙에 기독교, 이슬람이 혼합된 문화를 가지며 살게 되었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침략했을 때는 조지아 왕국이 무너지는 와중에 노흐치족 전체가 전멸할 뻔 했으며 이때 민족 전체가 씨가 마를 뻔했던 것을 계기로 고도로 군사화된 사회로 변화했다.

18세기 러시아캅카스 지역을 지배하려고 하자 동부의 나흐족은 격렬히 저항한 반면 서부 나흐족은 러시아에 굴복하여 러시아인들은 이 두 집단을 각각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고 두 집단의 거주지의 이름을 따서 동부의 나흐족을 '체첸', 서부의 나흐족을 '인구시'라 구별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이 체첸을 침략할 때 상당수의 체첸인 난민들이 당시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하였는데 오스만 제국에서는 체첸인 난민들을 아나톨리아 반도 외에도 아랍인 거주 지역 각지에 주둔시켰다. 오늘날 요르단과 시리아, 이라크, 심지어 이집트에도 각각 수만여 명에서 수천여 명 상당에 이르는 체첸인 인구가 거주하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4]


3. 특징[편집]


대부분의 체첸인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오스만 제국다게스탄을 통해서 전해진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율법보다는 "녹찰라"라고 부르는 체첸 씨족의 자체 율법을 따르는 편이다.

체첸인들은 씨족 율법 녹찰라에 입각해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상무정신, 씨족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다. 러시아 제국에 대한 체첸의 저항은 무려 50년 동안 이어져 1861년에야 진압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체첸인들이 죽거나 난민이 되어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하면서 체첸인 인구가 급감했다. 코나할라(Къонахалла)라는 명예코드가 있으며 이를 아주 소중히 여긴다. 이러한 율법이나 코드들에는 씨족 구성원이 살해당하거나 모욕을 당하면 같은 씨족 구성원이 대신 피의 복수를 행하는 관습이 있는데[5] 피의 복수가 얽히고 설켜서 씨족 하나가 전멸당하는 일도 종종 생겼다고 하며 1917년에도 피의 복수로 몇 개 마을이 전멸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체첸의 씨족 습관은 체첸 마피아의 강력한 내부결속에도 아주 강한 영향을 끼쳤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간략하게나마 체첸인(그리고 같은 혈통인 인구시인)의 사회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험한 자연환경의 영향인지 사내아이들에게 총기 조립&사격, 운전을 조기교육시키는 모습과 부족 단위로 돌아가는 사회상(중재 위원회를 통해 부족 간의 복수를 막는 모습, 사병을 가지고 러시아 정부에 협력하여 치안 임무를 맡는 가문 등)을 볼 수 있다.

체첸인들을 상징하는 동물은 늑대가 있는데 자신들을 '늑대'에 비유하며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1991년 조하르 두다예프가 독립을 선언한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의 국장에는 달빛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외로운 늑대가 그려져 있으며 국가에는 "우리는 밤에 태어나, 어머니 늑대가 길러줬다."는 구절이 첫 번째로 나온다. 왜 모든 동물 중에서 늑대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자세한 설명을 남겼다.

힘의 상징은 사자독수리지만,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공격한다. 늑대는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도전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힘의 부족함을 대담성과 용기, 지혜로 극복한다. 싸움에서 패하면, 두려움에 떨지 않고 고통에 움츠러들지 않은 채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6]


이들의 대표적인 요리로는 힝갈라시(체첸어로는 Хингалаш)[7]라는 전통 요리가 있는데 캅카스 등 서아시아 북부 일대, 러시아에서도 먹는다.

폭력과 종교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많아서 그런지 위키백과에는 반 체첸 정서라는 문서까지 있다. 체첸인이 폭력적이다, 아니다 같은 고정관념은 주로 러시아어권을 중심으로 퍼진 개념이고 19세기 이래 체첸인들이 대거 이주한 튀르키예에서는 딱히 체첸인들이 폭력적이라든지 하는 고정관념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안탈리아 같은 동유럽 관광객들이 많은 지역에는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싸움이 나면 힘조절 안 하고 풀파워로 사람 때리다가 사람 잡는다 등등 좀 안 좋은 소문이 퍼져 있다. 러시아인들이나 다른 소수민족 사이에서 같은 무슬림인데 타타르인들은 같이 지낼 수 있지만 체첸인은 같이 지내기 힘들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체첸인들이 유별난 듯하다. 어릴 적부터 체첸인이 많은 지역에 사는 러시아인이나 군복무할 때 체첸인과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저런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순혈주의를 고수하지만 막상 그렇게까지 순혈주의가 아닌데 테이프의 이름을 보면 안디계, 우크라이나계, 노가이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19세기에 러시아군이 온 후 그 중 일부는 체첸인과 동화되어 러시아계 체첸인도 일부 있지만 체첸인 전반이 자기 혈족에 러시아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체첸인끼리 서로를 모욕하는 방식이 너에게는 러시아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순혈주의적인 생각이 있는 듯하다. 다만 예외도 있는데 조하르 두다예프는 체첸인이지만 아내는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대체로 체첸인 남성이 외부인과 결혼하는 것은 그나마 괜찮게 보지만 체첸인 여성이 외부인과 결혼하는 것은 거의 금기시된다고 한다. 링크 이는 여타 가부장적인 성격의 보수성을 가진 소수민족 집단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8]

체첸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시리아, 아프간 등 전쟁터에 반정부 전투원으로 참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보통 고급 전력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 장비에도 신경쓰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보통 반군보다 무장 수준이 뛰어나다. 사실 체첸의 이슬람주의자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선 가주면 감사할 일이다. 언제든지 범죄자나 반군이 될 수 있어 골치아픈 이슬람 과격분자가 러시아를 자발적으로 떠나주는 데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알아서 지 목숨도 던져 주고 외국 전쟁터에서는 국내보다 눈치볼 게 없어서 시리아 정부군 지원을 해주는 특수부대의 작전과 공군의 공습으로 암살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체첸인 조직의 사진


4. 유전학[편집]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체첸인들은 유전적으로 유럽보다 서아시아 인종 그룹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며 Y염색체에서 이러한 특징이 매우 뚜렷하지만 mtDNA에선 캅카스 및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지녔는데 주로 이웃한 인구시인아바르인체르케스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서아시아 출신 남성을 주체로 한 이주가 활발하였으며 동시에 코카서스 인구 유전자 구조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9]

눈여겨볼 만한 것으로 체첸인을 포함한 바이나흐족[10] 남성들 사이에서 하플로그룹 J2a4b*(J2-M67)가 높은 빈도를 띄지만 이웃한 다게스탄 지역으로 가면 해당 하플로그룹이 매우 낮은 빈도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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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명] A B C [민족명] A B C [1] 남성은 러시아 연방 내 민족들 중에서 제일 크며 여성은 두번째로 크다.[2] 이 중 1,456,792명이 체첸 공화국에 거주한다.[3] 체첸 공화국 내 120만 명[4] 물론 정착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고 이렇게 체첸인들이 캅카스와 아나톨리아 너머 중동 각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체첸인들이 질병 혹은 기아 등으로 사망하였다. 특히 오늘날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의 티베리아스 호수 일대에 정착한 체첸인 난민들은 이웃 베두인들의 습격과 익숙하지 않은 기후로 인한 질병 때문에 전멸당했다고 한다.[5] 알바니아카눈과 비슷하다.[6] 당연하지만 사자와 독수리도 영역 다툼을 위해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대결한다. 그냥 체첸인의 기질을 표현하는 문구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7] 러시아어로는 ингалш(hingalsh). 아제르바이잔에서도 xəngəl이라고 불리는 비슷한 만두 요리가 있다.[8] 대표적으로 조선족들도 조선족 남성과 한족 여성의 결혼은 봐 주는 편이지만 한족 남성과 조선족 여성의 결혼은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9] Nasidze et al. 2003.[10] 체첸인, 인구시인, 바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