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야구)

덤프버전 :

최경환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최경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9

LG 트윈스 등번호 17번
박준태
(1992.6.30.~1999)

최경환
(2000~2001)


이광우
(2002)
두산 베어스 등번호 51번
박찬협
(2000~2001)

최경환
(2002~2006.5.16.)


최준석
(2006.5.17.~2006)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0번
최준석
(2005~2006.5.16.)

최경환
(2006.5.17.~2006.7.27.)


이명우
(2006.7.28.~2006)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1번
이명우
(2006~2006.7.27.)

최경환
(2006.7.28.~2007)


안병학
(2008~2008.4.)
KIA 타이거즈 등번호 52번
손상정
(2006~2007)

최경환
(2008~2009)


김민철
(2010)
KIA 타이거즈 등번호 74번
야마시타
(2005)

최경환
(2010~2011)


김평호
(2012~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78번
한문연
(2011)

최경환
(2012~2013)


조웅천
(2014~2016)
NC 다이노스 등번호 97번
김건우
(2013)

최경환
(2014)


진종길
(2015~2017)
NC 다이노스 등번호 87번
홍지운
(2014)

최경환
(2015~2016)


김민호
(2017~2021)
두산 베어스 등번호 90번
류태현
(2016)

최경환
(2017~2018)


고영민
(2019~2023)
두산 베어스 등번호 95번
정기훈
(2018)

최경환
(2019~2020)


임태윤
(2021)




파일:2017061501001384700097741_20170615161818391.jpg

최경환
崔景煥 | Choi Kyung Hwan[1]

출생
1972년 5월 12일 (51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남부초 - 성남중 - 성남고 - 경희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2차 5라운드 (전체 41번, LG)
1995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CAL)
2000년 1차 지명 (LG)
소속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산하 마이너 (1995)
[ 펼치기 · 접기 ]
보이시 호크스 (1995) / A-
시더 래피드 커널스 (1995) / A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 (1997~1998)
[ 펼치기 · 접기 ]
사라소타 레드삭스 (1997~1998) / A
알고도네로스 데 우니온 라구나 (1999 임대)
LG 트윈스 (2000~2001)
두산 베어스 (2002~2006)
롯데 자이언츠 (2006~2007)
KIA 타이거즈 (2008~2009)
지도자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10)[2]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10~2011)[3]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12)[4]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12)[5]
SK 와이번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13)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14)
고양 다이노스 타격코치 (2015)
NC 다이노스 육성군 타격코치 (2016)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7)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18~2020)
해설위원
TBC dream FM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2021~2022)
등장곡
Santana - Smooth (Ft. Rob Thomas)[6]
응원가
KIA 시절 : 윤형주 - 꽃집 아가씨[가사][7]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8]
가족
배우자 박여원(1987년 1월 12일생, 2012년 ~ 현재)
장녀(2007년생)[9]
장남 최리환(2013년생)
차남 최리찬(2015년생)
삼남 최리호(2017년생)
사남 최리준(2018년생)
오남 최리엘(2023년생)
반려견 최리보(2022년생)
종교
개신교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해설위원 경력
5. 연도별 성적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前 프로야구 선수이자 前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두산 베어스의 코치이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TBC 드림FM 야구 해설위원을 역임했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913000023639.jpg

(출처: 포토로)

성남고[10]경희대를 거쳤는데, 아마추어 시절에는 꽤 이름있는 타자로 활약하며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1995년 LG 트윈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제의를 받고 1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으며 입단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팀에서 방출되어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 있었고, 이후 멕시칸 리그와 호주 리그를 전전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갔다. 다만 도중에 멕시칸 리그에서 뛰게 된 건 마이너리거 시절 미국 워킹비자 발급 문제로 인해 팀 합류가 불가능해지자, 자매 구단이었던 멕시칸 리그 구단에 임대 형식으로 합류해 시즌을 보내게 된 것.[11] 여담으로 멕시칸 리그에서 뛰던 시절, 2007년 한화 외국인 타자로 뛰다 간 제이콥 크루즈와 삼성에서 뛰던 나르시소 엘비라와 같은 팀에 있었다.

결국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했고,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인해 귀국을 결정했다. 아버지는 그가 LG에서 첫 시즌을 보낸 후인 2000년 12월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2.1. LG 트윈스[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824163234831G.jpg


2000년 드래프트 당시 LG 트윈스는 서울 지역에서 변변한 유망주를 찾기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마침 당시 최경환이 귀국을 결정하자 1차 지명하여 입단시켰다.[12]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LG에서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LG 입단 첫 해에는 이광은 감독이 나름 기회를 많이 줬으나[13], 이광은이 경질된 후 후임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과 야구관이 맞지 않아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2001 시즌 후 방출되고 말았다.

2.2. 두산 베어스[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50920224919981.jpg


LG에서 결국 방출당한 뒤 선수 생활이 거의 끝날 뻔했지만 두산 베어스김인식 감독이 그를 부르면서 두산으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 갔고, 여기서 그의 반전이 시작되었다.

두산 입단 첫 해인 2002년, 주전 외야수로 자리잡아 126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4, 13홈런을 기록하면서 개인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후 2005년까지 두산의 외야 한 자리를 책임지며 정수근, 심재학 등이 FA로 이적해 공백이 생긴 외야진에서 주전으로 쏠쏠하게 활약을 펼쳤다. 특히 3할 가까운 컨택과 쏠쏠한 클러치 능력을 앞세워 화수분 야구가 펼쳐지기 전 두산에서 나름 쏠쏠한 활약을 보이면서 이름을 알렸다. 특히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적인 허슬 플레이가 인상적이라, 두산의 팀 컬러 중 하나인 '허슬두'의 원조격 선수였다.

2.3. 롯데 자이언츠[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70710092413009.jpg


2006년 5월 17일, 두산과 롯데 간 2:2 트레이드를 통해 이승준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로 건너갔다. 반대급부로 두산에 넘어온 선수들은 최준석김진수. 그러나 노쇠화가 찾아오며 롯데에서는 기대한 만큼 활약하지 못하면서 폭망했고, 결국 2007 시즌 종료 후 롯데에서 방출당했다.

2.4. KIA 타이거즈[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904051808593098.jpg


롯데에서 방출된 후 또다시 은퇴 위기에 몰렸으나, 입단 테스트를 받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고, KIA에서도 마찬가지로 두산 시절처럼 왼손 대타 요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이면서 2년 더 뛸 수 있었다. 2009년 9월 20일에는 무등 야구장에서 친정팀 LG 트윈스를 상대로 본인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최경환이 KIA 시절에서 남긴 족적은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2008년 저 유명한 윤길현의 욕설 파동의 당사자인 것이다. 만일 최경환이 아니라 다른 선수였다면 일이 커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가는 팀마다 허슬 플레이로 팬들의 인기를 사던 최경환이라 일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파일:/image/003/2009/10/24/NISI20091024_0001878956_web.jpg


그리고 2번째는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7회말 5:4로 1점 뒤진 상황에서 작렬한 3루타다.[14] 사실 최경환은 한국시리즈 엔트리 진입 자체도 불투명하다가 홍세완의 부상으로 인해 막판에야 합류가 결정되었는데, 이때 최경환이 때린 3루타를 기점으로 KIA는 7회말 김원섭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고,[15] 이후 9회말 나지완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2009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면서, 현역 마지막 시즌에 우승 반지를 껴보면서 선수생활을 나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3.1. KIA 타이거즈[편집]


은퇴 후 KIA 타이거즈의 코치 제의를 수락하면서 곧바로 KIA의 1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16]

하지만 지도자로의 평가는 좋지 못한 편. 연수도 가지 않았던 초보 코치가 처음부터 1군에서 메인 코치직을 맡다 보니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고, 더군다나 KIA 타선이 2010년 이후 물타선으로 회귀해버리면서 당시 타격 파트를 맡던 이건열 코치와 함께 세트로 욕을 먹었다. 결국 조범현이 물러나고 선동열이 새 감독으로 부임한 뒤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면서 해임되었다.

3.2. SK 와이번스[편집]



파일:/image/076/2012/04/24/2012042401001839800165161.jpg


KIA에서 해임된 후 이만수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2년 시즌을 앞두고 SK 와이번스의 타격코치로 옮겼다. 하지만 윤길현과의 사건 때문에 처음부터 SK 팬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고, 역시나 타격 코칭에 있어서는 2012년 이후 SK 타선을 물방망이로 만든 주범으로 지목되며 정말로 최악이란 평을 들었다. 결국 시즌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인 5월 중 김경기 2군 코치와 보직을 맞바꿔 2군 타격코치로 내려갔다. 실제로 최정을 제외한 SK 타자 전원의 타격 성적이 2011년까지의 스탯과 비교했을 때 단순히 노쇠화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할 정도로 막장인 상태로 전락한 상태. 한편 2013 시즌을 앞두고 1군 타격보조코치로 보직을 바꿔 메인 타격코치로 영입된 맥스 베너블 타격코치를 보좌하는 형태로[17]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나, 여전히 문제점을 보완하지 못했고,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SK에서 해임되었다.

3.3. NC 다이노스[편집]



파일:/image/003/2013/11/12/NISI20131112_0008959719_web_59_20131112110602.jpg


그리고 2013년 11월 12일 부로 NC 다이노스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기존 김광림 코치와 함께 1군 타격 파트를 담당한다. 한편 과거 KIA와 SK 코치 시절 악평으로 인해 최경환 코치를 영입할 당시 기사의 댓글에는 비판글이 수두둑하게 달렸는데, 본인도 이 악플에 대해 답글을 달았다고 한다.

그 후 기사에 관련된 악플을 보고 본인도 각성한 탓인지, 물방망이 타격으로 욕을 먹었던 이전 구단의 코치 시절과 달리 2014년 NC의 타선은 점점 다시 불망망이를 제대로 피우며 코치로써의 평가가 상승했다. 기존 타격코치를 맡던 김광림 코치와 시너지가 나름 잘 맞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2015년에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2016년 시즌 종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NC 다이노스를 떠났다.

3.4. 두산 베어스[편집]


2017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11년 만에 두산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2017년 한 해는 1군 타격코치를 맡았고, 이후 인스트럭터 신분이었던 고토 코지가 1군 타격코치로 영입되면서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2020 시즌 후 두산과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4. 해설위원 경력[편집]


김태한의 후임으로 2021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중계하는 TBC 드림FM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어 해설가 커리어를 시작했다.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하이 톤인지라, 지금까지 TBC에서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평가는 호불호가 나뉘는데 해설위원이 바뀜과 함께 댓글을 닉네임과 함께 읽어주고.. 중계가 만담형식이 되었다. 쉴 틈 없이 재미있다는 평이 있는 반면 기존 중계에 익숙했던 사람은 중후한 톤의 해설위원이 아닌데다 중계에만 집중하지 않고 남의 닉넴과 댓글은 왜 읽어주냐며 짜증내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KNN 해설을 듣던 일부 롯데 팬들은 TBC는 팬들과 소통하는데 자신 방송사는 왜 소통을 하지 않냐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18] 결국 청취자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문제인 셈.

시그니처는 ¡Adiós, pelota![19] 라이온즈 선수가 홈런을 칠 때 나오는 일종의 시그니쳐 홈런 콜. 원래는 호세 피렐라를 위해 만들었으나 삼성의 모든 타자들이 홈런을 칠 때 사용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엑셀렌떼!, 부에나 폰체! 부에나 오호! 등 다양한 스페인어 콜이 있다.[20]

2023년부터는 두산 베어스에서 같이 코치를 맡았던 강동우에게 해설위원 자리를 넘겨줬다.


5. 연도별 성적[편집]



5.1. MiLB[편집]


  • 한 연도에 동일 구단 산하 여러 레벨의 기록이 존재할 경우, Rk → A- → A → A+ → AA → AAA 순으로 서술.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1995
보이시 호크스(A-)
21
67
.299
20
2
0
0
5
14
3
9
.328
.377
.705
시더 래피드 커널스(A)
36
123
.228
28
4
2
1
14
14
4
10
.317
.282
.599
1995 시즌 합계
57
190
.253
48
6
2
1
19
28
7
19
.316
.321
.63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1997
사라소타 레드삭스(A+)
85
228
.232
53
9
1
3
25
26
4
23
.320
.298
.618
1998
63
206
.271
49
10
1
4
23
25
7
20
.403
.337
.740
MiLB 통산
(4시즌)
205
599
.250
150
25
4
8
67
79
18
62
.346
.315
.661


5.2. KBO[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0
LG
95
142
.246
35
4
1
3
13
12
1
9
.288
.352
.640
2001
12
12
.000
0
0
0
0
0
2
0
0
.000
.0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2
두산
126
369
.274
101
18
1
13
47
69
15
32
.330
.434
.764
2003
115
313
.297
93
16
2
4
28
44
10
21
.337
.399
.736
2004
126
436
.278
121
16
4
5
58
49
14
38
.331
.367
.698
2005
102
332
.262
87
17
2
3
38
41
11
38
.333
.352
.68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6
두산/롯데
86
196
.209
41
6
0
2
11
14
2
14
.262
.270
.532
2007
롯데
36
74
.216
16
5
1
0
6
3
0
9
.301
.311
.61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8
KIA
65
127
.291
37
10
1
1
15
18
2
13
.355
.409
.764
2009
47
74
.243
18
3
0
1
6
14
4
10
.329
.324
.653
KBO 통산
(10시즌)
810
2075
.265
549
95
12
32
222
266
59
184
.322
.368
.690


6. 여담[편집]


  • 마이너리그 생활을 오래 했고, 이후 멕시칸 리그까지 거쳐서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다고 한다.[21][22] 야구 중계 중 스페인어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은퇴 후 가장 애정이 있는 팀으로는 곧바로 KIA 타이거즈를 꼽았다. 아무래도 우승과 별 인연이 없었다가 마지막에 우승을 한번 경험해 보고 은퇴한 것도 있고,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의 임팩트를 잊지 못해 KIA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 자기관리에 철저해서, 술과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 서울 출신이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잠시 살았었던 포항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 삼성 라이온즈 팬이 되어 어린이 회원에도 가입했다고 한다. 선수 시절에는 삼성과 접점이 없었음에도, 이러한 요인 때문인지 2021년부터 2022년까지 TBC의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어 삼성 라이온즈 중계를 전담하였다.

  • 가수 이세준과는 성남고등학교 동창이다.

  • 5남 1녀를 둔 다둥이 아빠다. 앞선 2006년, 전처와 결혼해 딸을 얻었으나 이혼했다. 이후 2012년 경 15세 연하의 박여원[23]재혼해 슬하에 네 아이를 뒀다. KBS 2TV 예능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6회에 가족 모두 출연했고기사 영상, 채널A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에도 아내와 출연하였다. 그러나 2022년 2월 19일, 아내 박여원이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했는데, 최경환의 주식 중독 때문에 별거 중이라고 밝혔다.[24] 하지만 이후 어찌어찌 부부관계를 회복했는지 2022년, 다섯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23년 출생으로, 무려 5남 1녀의 아버지.

  • 2020년 12월 두산 시절 후배였던 박명환이 진행하는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입담을 보였다.상편 하편 마이너리그와 멕시칸 리그에서 뛰던 시절과 당시 애로사항, 그리고 2008년 윤길현과의 욕설 사건 등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썰을 풀었고 3연전 기간동안 있었던 KIA 타이거즈의 위협구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다. 동시에 영어와 스페인어 실력을 뽐내면서 아직 기량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 장남 최리환 군도 대를 이어 야구를 하고 있다.

  • 2023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야구 레슨장을 오픈했다.#

7. 관련 문서[편집]


[1] 마이너 리그 등록명은 Ray Choi.[2] ~4월 27일[3] 4월 28일~[4] ~5월 29일[5] 5월 30일~[6] 나중에 두산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게 된 호르헤 칸투의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다.[가사] KIA의 멋쟁이 최경환! 그렇게 멋질수가 없어요! KIA의 허슬경환! KIA의 허슬경환! KIA의 허슬경환 최!경!환![7] 나중에 두산에서 양의지의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다.[8] 최경환의 야구할래? - TBC 해설위원 시절 유튜브를 시작했으며, 일상생활을 올리거나 야구를 하고 있는 장남 최리환 군의 영상을 업로드하곤 한다.[9] 이혼한 전처 소생의 자녀로,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던 시절 태어났다. 현재도 전처에게 양육비를 주고 있다는 걸 봐서는 전처가 양육권을 가져간 걸로 보인다.#[10] 고교 동기생 강병규과는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을 들을 만큼 절친이다.[11]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이 당시를 술회하길, 이러한 처지 덕에 당시 연봉을 마이너리그 구단, 그리고 임대 형식으로 간 멕시칸리그 구단 양쪽에서 모두 받았다고 한다.[12] 이와 비슷하게 7년 후 2007년 드래프트에서도 두산이 빠르게 이용찬임태훈을 잡아버려 서울권에 마땅한 유망주가 없어 고민하던 와중에, 봉중근이 귀국을 선언하며 LG가 봉중근을 1차지명으로 영입하게 된다.[13] 좌익수 김재현, 중견수 이병규는 고정인 가운데 투수에서 타자로 다시 되돌아온 심재학이 현대로 트레이드 되면서 빈 자리가 된 우익수 자리를 두고 한화에서 트레이드된 최익성과 경쟁을 했다. 여기에 우익수 외국인 타자 브렌트 쿡슨이 잠시 대체영입으로 왔다가 부상으로 퇴출되기도 했으며 다른 경쟁자로는 박연수도 있었다.[14] 이게 선수로서 생애 마지막 안타다.[15] 정작 최경환 본인은 김원섭의 안타가 나오기 전에 이용규의 내야 땅볼 때 홈으로 들어오려다가 런다운에 걸려 아웃됐다. 다만 이는 병살타를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홈으로 쇄도했을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은퇴 후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당시 3루 코치의 지시로 병살 아웃을 막기 위해 그런 거라고 밝혔다.[16] 기존 1군 타격코치를 맡았던 황병일 코치가 2009년 한국시리즈 종료 후 수석코치로 승격했다.[17] 베너블 코치가 외국인 코치다 보니 기존 한국인 선수들과 의사소통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영어가 능통한 최경환 코치를 1군으로 올려 가교 역할을 하게끔 한 걸로 보인다.[18] 6월 4일 키움전에서 롯데팬이 TBC중계창에 이런 불만을 표시해서 중계에 나가기도 했다.[19] 최경환이 아디오스 벨로따!로 발음한다.[20] 2022년에는 홈런을 칠 때 스페인어로 홈런이라는 뜻의 빠라 까이에를 외쳤다.[21] 실제로 윤길현과 빈볼 시비가 있었던 SK와의 3연전 도중, SK의 외국인 투수였던 케니 레이번이 그가 영어를 못 하는 줄 알고 아웃되고 들어가는 그의 뒤에서 영어로 욕을 했다가, 이를 들은 최경환에게 영어로 항의를 들었다. 실제로 최경환의 격렬한 항의에 레이번은 같이 크게 반응하지 않고 약간 대화만 나누며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정황상 최경환이 영어를 알아듣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욕을 했다가, 알아듣는 순간 잘못된 걸 안 듯. 참고로 레이번은 전년도인 2007 시즌 중 이대호에게 빈볼성 투구를 던져 항의를 받자 뭐가 문제냐고 같이 항의하며 맞설 정도로 다혈질적인 선수였다. 이대호보다 덩치도 훨씬 왜소한 최경환이 항의하는데도 얌전히 대응했다는 건, 레이번 본인이 찔리는 게 있었는 듯.[22] 또한 보스턴 마이너리그 시절 룸메이트였던 투수 조진호가 미국에서 적응을 못해 팀내 선수단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등 힘들었을때, 조진호가 사실은 깡패 출신인데 개심하고 야구를 시작했으니 건드리지 마라며 적절한 거짓말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23] 걸그룹 연습생 출신이다.[24] 야구 레슨장을 개업하기 위해 아내 명의로 대출을 내서 최경환에게 자금을 마련해 줬는데, 최경환이 지인에게 좋은 정보를 들었다면서 이 돈을 주식에 투자해 조금 더 불리자고 주장해 결국 주식투자를 했다가 주식 가격이 떨어져 손해를 봤다. 이후에도 그 지인이 또 연락을 해 기존에 넣어둔 주식을 빼고 다른 종목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또 돈을 날렸다고 한다. 더군다나 전처와 전처 소생 자녀에게 양육비를 주고 있었는데 양육비 지급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양육비로 지급한 금액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금액의 2배가 넘었다며 남편이 자신을 속였다고 밝혔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9 00:49:19에 나무위키 최경환(야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