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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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최기준
2. 영암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기준



1.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최기준[편집]


성명
최기준(崔基俊)
생몰
1894년 ~ 1920년 11월 9일
출생지
미상
사망지
중국 지린성 혼춘현 판석구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최기준은 1894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수 없다. 그는 중국 지린성 혼춘현 판석구에서 모험대(冒險隊) 분대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우두산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1920년 11월 9일에 참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최기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영암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기준[편집]


파일:최기준.jpg
성명
최기준(崔琪焌)
본관
낭주 최씨[1]#
생몰
1896년 1월 7일 ~ 1957년 3월 1일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2]
사망지
전라남도 영암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최기준은 1896년 1월 7일 전라남도 영암군 서면 서구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0일 군서면 서굼리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다. 그는 영암읍의 유지인 조극환·정학순과 서구림의 박규상·최한오(崔漢五)·조병식(曺秉植) 등과 함께 영암 장날인 4월 10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했다.

이에 구림리의 문죽정(問竹亭)을 임시 연락본부로 정하고, 당시 군서면 면서기인 김재홍(金在洪)·최민섭(崔旻燮)이 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하여 태극기 50여매, 독립선언서 6백여매, 독립가(獨立歌) 1백여매를 등사하여 보통학교 학생인 김봉근(金奉根)·김영언(金永彦)·유인봉(柳寅奉)·이종구(李鍾謳)·이지봉(李枝奉)·천병권(千秉權)·진봉재(陳奉才)·박종련(朴鍾連)·채동팔(蔡東八) 등에게 배포토록 하였다.

4월 10일 오전 9시, 그는 조병식 등과 함께 구림 보통학교 교정에서 비상나팔을 불어, 보통학교 학생과 주민들을 불러모은 다음,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때 보통학교 직원들이 이를 만류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3백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와 보통학교 사이를 행진하였다.

얼마 후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영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3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최기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21세 기(琪) 기(基) 항렬.[2] 인근의 동구림리와 함께 낭주 최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