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혁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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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인민배우,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악장. 1951년 태어나고 2021년 사망했다

북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북한의 인민배우[1]조선국립교향악단의 콘서트마스터(악장)이며,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대립으로 캐나다로 망명한 뒤 국제 태권도 연맹(ITF)을 세워 세계적인 태권도 보급에 나섰던 최홍희[2]씨의 부인쪽 조카이다.

최기혁은 예술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8살때부터 바이올린 소리를 워낙에 좋아한 나머지, 부모님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어릴때부터 여러 바이올린 전문가의 주목을 받으며 재능있는 연주가로 성장하였다.[3]

1991년 중반에, 월북 음악인 이였던 당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악장인 리계성의 은퇴 이후에, 조선국립교향악단 악장 직책을 인계 받았으며,1992년부터 조선국립교향악단 일본 및 2000년 한국의 서울 공연을 비롯해 조선국립교향악단의 해외 공연에도 참가하여 높은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2005년에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악장으로 악단 단원들을 노련하게 이끌고 북한 관현악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공로가 인정되어 상임내각의 결정으로 공훈배우 직위를 수여받았다.

200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평양 방문때도 바이올린 독주를 맡기도 했으며, 이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일부 단원이 로린 마젤과 평양을 재방문 했을때에도, 모란봉 극장에서 실내악 협연과 공개 연습에도 참가한 것이 확인되었다.

최근 행적으로는 여러 악단이 출연하는 1만명 대공연에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함께 출연한 것이 확인되었고, 조선국립교향악단 창립 70주년 기념음악회에도 출연하였다.

2021년 2월 3일 사망, 부고는 따로 발표되지 않았으나 김정은이 화환을 보내주었으며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당의 품속에서 관록있는 예술창조집단의 바이올린연주가로 성장한 최기혁동지는 50여년간 교향련곡 《당에 드리는 노래》를 비롯한 수많은 시대의 명곡들을 훌륭히 형상창조함으로써 주체교향악발전에 공헌하였다."라고 그의 생애를 평가했다. 4월 17일,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고, 후임 악장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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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 후 인민배우 칭호 수여 [2] 2002년 평양서 사망[3] 북한에서 악기를 다루는 경우에는, 한국의 유일 소해금 연주자 박성진의 말을 인용하면 악기를 배우는 자의 체격이나 성품 등을 보고 교사가 지정해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기혁의 경우에는, 바이올린 소리와 바이올린 자체를 워낙 좋아했고, 이러한 능력을 알고 있는 부모님의 권유와 자신이 하고 싶다는 열정과 의지가 있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