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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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최낙권(崔洛權)
생몰
1923년 2월 10일 ~ 1947년 4월 3일
출생지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봉남리
사망지
충청남도 서천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최낙권은 1923년 2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봉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중인 1936년 3월에 동교생 구자훈·김해인(金海仁)·천영관 등과 함께 항일결사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했다. 이들은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 사용 금지, 신사참배 거부, 일인 교우 배척 등을 전개했고, 무궁화식수장려 및 미신타파 등 계몽활동을 펴면서 민족의식 고양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들이 졸업한 후 천영관이 1942년 6월경에 일제의 패망을 언급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명랑클럽 활동이 발각되고 말았고, 결국 최낙권은 동지들과 함께 체포된 뒤 1942년 9월에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12월 31일에 출옥하였다. 이후 서천군에서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47년 4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낙권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