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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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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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2 준플레이오프 MVP

LG 트윈스 등번호 32번
김상모
(1992~1993)

최동수
(1994~2010.7.27.)


윤상균
(2010.7.28.~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25번
여건욱
(2009~2010.7.)

최동수
(2010.7.28.~2010)


이영욱
(2011~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32번
박윤
(2010)

최동수
(2011)


김민식
(2012~2013)
LG 트윈스 등번호 32번
윤상균
(2010.7.28.~2011)

최동수
(2012~2013)


김선우
(2014)



파일:external/spnimage.edaily.co.kr/PP08062300015.jpg

최동수
崔東秀 | Choi Dong-soo

출생
1971년 9월 11일 (52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봉천초 - 강남중 - 광영고 - 중앙대[1]
포지션
포수1루수, 3루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2차 4라운드 (전체 30번,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4~2010)
SK 와이번스 (2010~2011)
LG 트윈스 (2012~2013)
지도자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코치 (2014~2018)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 (2019~ )
병역
방위병 (1994~1995)
등장곡
Linkin Park - 'What I've Done'
응원가
LG시절 : Queen - 'We will rock you'[2]
링크
SK시절:[3]
아틀란티스[4]

1. 개요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LG 트윈스의 내야수.

별명은 팔뚝옹[5], 동수옹, 도웃옹[6], 당겨쳐당 당수[7], 대기만성, 유땅선생[8], 로또 2호기[9]

빠따형과의 인터뷰


2. 선수 경력[편집]


최동수의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편집]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2013년 12월 30일 KBO에서 주관하는 프로야구 지도자 마스터스 시험에 합격해서 정식으로 지도자 자격을 취득, 2014년부터 LG 트윈스의 잔류군 담당 배터리 겸 타격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10] 한동안의 포수 경력 때문인지, 배터리코치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LG 팬들은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사실상 LG 2군 야수들의 타격을 총괄하게 된 김무관의 코칭 기술을 최동수가 스펀지처럼 흡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2018 시즌의 주변 평가와는 상반되게 2018년 10월 19일 새 단장으로 차명석 해설이 임명됨과 동시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팬들은 좀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

2019년에는 팀 선배였던 김영직 휘문고 감독의 부름을 받고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를 맡게 됐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성기에는 한때 클린업 트리오에도 배치되었을 만큼 준수한 타격을 자랑했다. 공포의 4번 타자라고 하기엔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6번이나 7번이라면 KBO 최고의 6번 타자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발군의 타격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장타력이 매우 좋은 선수였으며, 풀타임 출장 시 원래의 잠실에서 홈런 15개, 재박존이 설치된 잠실에서는 18~20개 정도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특히 클러치 능력이 매우 좋아서 타점 생산력도 준수했고 대타로서도 능력이 출중한 편이었다. 이후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4번으로 들어오면서 괜찮은 5번 타자로 클래스 체인지를 했었다.

장타력에 묻혔지만 선구안 역시 굉장히 좋은 축에 속한다. 낮은 타출갭 때문에 선구안이 좋지 않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풀스윙으로 당겨치는 타자임에도 한 시즌 100삼진은 커녕 단일시즌 최다 삼진이 부상으로 골골대며 20경기 정도를 결장한 2008년의 62개였다. 이 해 볼삼비 1:2를 찍은 걸 빼면 평균 4~50개의 삼진과 볼넷을 같이 기록하는 선수였고 통산 볼삼비가 1:1.5 언저리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선구안과 컨택은 그의 클러치에 날개를 달아주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발이 무척이나 느려서 2009 시즌에는 리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병살타를 자주 쳤으며, 빠른 공에는 강했지만 상대적으로 변화구에 약했다. 1루 수비는 포수 출신답게 포구는 뛰어났지만 수비 범위가 그리 넓지는 않아 그냥저냥 하는 수준이었고 나이가 꽤 되다 보니 체력 문제도 있었다. 쉬고 나오면 좋은 타격감을 보였지만 풀타임을 뛰기엔 무리였다.

실제로 보면 덩치도 매우 좋고 어깨빨과 굵고 아름다운 팔뚝에 웃음이 매력적이라서 이대형이나 심수창 보려고 잠실에서 게임 끝나고 기다리던 처자들이, 오히려 최동수 선수의 간지에 빠져서 우르르 몰려들어서 최동수 선수의 자태에 감탄했다고 한다.

아무튼 팔 힘이 엄청나게 센 선수라, 한 번은 대타로 나온 뒤 삼진을 당하자,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남자인가!!!(…)라는 의미가 담긴 듯한 배트 부러뜨리기를 시전했다. 실제로 보면 정말 놀랍다.[11]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LG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1995
군복무(방위)
1996
51
85
.200
17
5
0
2
6
9
0
6
.329
.253
1997
54
112
.223
25
5
2
7
21
14
0
15
.491
.310
1998
21
57
.158
9
1
0
0
5
6
0
2
.175
.186
1999
17
23
.217
5
2
0
0
4
2
0
2
.304
.280
2000
29
43
.256
11
1
1
2
7
5
0
3
.465
.304
2001
94
147
.293
43
9
0
6
31
17
1
22
.476
.380
2002
106
268
.243
65
13
0
4
31
28
3
26
.336
.306
2003
91
212
.259
55
11
0
2
26
12
1
24
.340
.331
2004
123
381
.257
98
22
0
15
57
49
1
25
.433
.300
2005
77
210
.319
67
17
0
6
36
20
1
17
.486
.368
2006
54
100
.190
19
2
0
1
13
5
0
8
.240
.245
2007
125
431
.306
132
23
0
12
58
49
1
53
.443
.378
2008
110
381
.265
101
15
0
14
62
32
0
40
.415
.331
2009
108
338
.296
100
16
1
13
65
43
1
38
.465
.360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0
SK
56
108
.204
22
2
0
3
13
13
0
10
.306
.265
2011
80
181
.304
55
8
0
2
30
16
0
13
.381
.345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LG
94
252
.278
70
8
0
1
37
20
0
29
.321
.346
2013
2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KBO 통산
(19시즌)
1293
3332
.268
894
160
4
90
502
340
9
333
.400
.331


6. 기타[편집]



  • 문서 상단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호준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야구 관계자들도 헷갈리는 듯. 기사 솩갤러들도 헷갈려 한다. 심지어 이호준의 딸도 최동수를 보고 "아빠!"하고 달려갔다는 일화도 있다.[12] 왠지 봉중근도 얼핏 닮은 듯하다…. 다만 이호준이 수염을 기르고부터는 닮았다는 인상을 받기는 어렵다.

파일:attachment/최동수/dongsu_with_juchan.jpg
기자의 능욕.jpg

  • 의외로 한참 어린 후배들하고 잘 지냈다고 한다. 심수창하고도 친하고, 심지어 띠동갑 후배인 이대형과 박경수하고도 같이 밥을 먹고 지낸 사이라고 한다.[13] 이는 최동수가 신인이었을 때, 최고참 선배가 무려 김용수와 김영직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웠었던 경험을 되살려[14] 본인은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선배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만 연차에 맞게 LG의 암흑기 시절에는 군기를 잡기도 했다고 한다. 풀 때는 풀어주고 할 때는 단합해서 하길 바랬다고 하는 걸 보아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해지는 성격인 듯.[15]

  • 스톡킹과 이대형의 술토브리그에서 직접 밝힌 내용인데, LG의 암흑기 당시 LG 선수단들이 훈련을 진짜 열심히 했는데도[16] 그만큼의 성과가 나오질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최동수 본인이 나가서 놀라고 지시했다고 한다.[17]

  • 아날로그 체질이다. 인터넷보다 종이신문을 선호한다.

  • 스톡킹에 출연해서 의외의 입담을 선보였다. 선수 시절 일화,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게 된 사연 등을 재미있게 풀었다.

  • 현재 LG 트윈스 내야수로 뛰고 있는 문보경이 어렸을때 그의 팬이었다.


7. 관련 문서[편집]



[1] 1990학번[2] 동~수~동~수~최동수!최동수!×2[3] (빰빰빰 빠바바밤) S!K! 최동수!×2[4] 빠밤 최! 빠밤 동! 빠밤 수! 한!방!x2[5] 힘이 가장 좋았던 20대 후반에는 벤치 프레스를 무려 200kg을 쳤다고 스톡킹에서 밝혔다.[6] 앞서 언급한 동수옹의 오타로 생긴 별명[7] 극단적인 당겨치기 버릇에서 생긴 별명.[8] 당겨쳐당 당수 별명과 연계된다. 유사별명으로 이 분의 별명인 2땅선생이 있다. 참고로 이 두 명은 2009년 병살타 순위 1위와 2위였다(…).[9] 정말 두 사람이 비슷하게 생겼다. 심지어 이호준의 딸이 두 팔을 벌린채 "아빠~"를 외치면서 뛰어갔는데 하필이면 최동수에게 안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10] 여담이지만 이 시험을 떨어지면 3년 간 지도자 시험 응시를 못 하는 데다가 덕아웃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늦게까지 선수 생활을 해서 적지 않은 나이에 초보 코치가 된 최동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붙어야 할 시험이기도 했다. 본인도 이 시험 대비한다고 힘들어했다고 한다.[11] 참고로 윤석민을 상대로 삼진을 당했을 때 배트를 부러뜨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표정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팔뚝힘+하체힘+분노 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부러뜨릴 수 있다고 한 건 덤.[12] 스톡킹에서 본인이 이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13] 모든 분야에서나 10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긴 하지만 군기가 있는 운동부에서는 말도 못할 정도다. 당연히 밥먹는것도 후배 쪽에서 꺼리거나 선배 눈치를 보는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후배들도 밥을 편하게 먹는 정도면 굉장히 잘 지낸 편이다. 보통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에게는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나이 차이가 비교적 적고 친한 선배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후배들이 최동수에게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후배들과 잘 지냈다.심수창의 말로는 최동수는 꼰대 느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14] 물론 이 분들이 인품이 영 별로이거나 군기를 잡는 편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선수들과 비교해도 굉장히 온화한 성격이었다. 다만 김용수•김영직 두 사람 모두 최동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커리어도 엄청난 대선수였던 지라 쉽게 다가가기 힘들어 했기 때문이라고 봄이 옳다.[15] 언제는 수원 경기에서 심수창이 교체된 후 글러브를 집어던진 적이 있었는데, 최동수가 이를 보고 엄청 혼냈다고 한다. 비록 심수창은 본인한테 너무 분한 나머지 글러브를 던진 것이었지만, 최동수는 그래도 선배들이 많은 곳에서 던지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는 생각으로 따끔한 얘기를 해준 것이다. 물론 최동수도 심수창의 마음을 이해 못한 것도 아니고 심수창도 당시를 회상하면서 충분히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16] 원정경기 가서도 놀지 않고 운동을 더했다고 한다.[17] 당시의 LG 선수단들은 놀기만 한다, 도련님처럼 꾸미기만 한다고 도련님 야구라고 욕먹었던 때인데, 열심히 하는데도 그런 소리를 들으니 너무 화가 나서 어차피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데 뭐 어떠냐는 심정으로 더 놀고 오라고 했다고..... 이대형 문서에 있는 매우 괴상한 패션도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생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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