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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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희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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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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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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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FC
초대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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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만희
崔萬喜 | Choi Man-Hee

출생
1956년 8월 21일 (67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2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축구 경영인
학력
광주동성중학교 (졸업)
전남기계공업고등학교[1] (졸업)
중앙대학교 (학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2])
중앙대학교 대학원 (체육학[3] / 박사[4])
소속
감독
남강고등학교 (1980~1981)
풍생고등학교 (1982~1990)
숭실대학교 (1990~1991)
울산대학교 (1992~1994)
전북 현대 모터스 (1997~2001)
광주 FC (2011~2012)
코치
대한민국 U-16 대표팀 (1986)
남북 단일팀 (1991)
울산 현대 호랑이 (1991~1994)
전북 현대 다이노스 (1994~1996)
대한민국 대표팀 (1995~1996)
부산 아이콘스 (2002~2004 / 수석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2010 / 2군 감독)
행정
부산 아이콘스 (2002~2004 / 부단장)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 (2013~2014 / 센터장)
대한축구협회 (2014~2016 / 대외협력기획단장)
광주축구협회 (2021 / 회장)
경영
부산 아이파크 (2017~2018 / 대표이사)
광주 FC (2021 / 대표이사)

1. 개요
2. 경력
2.1. 선수
2.2. 지도자
2.3. 행정가
2.4. 경영인
2.4.1. 부산 아이파크 대표 이사
2.4.2. 광주 FC 대표 이사
3. 논란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축구 경영인.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광주 FC 감독을,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부산 아이파크 대표이사를, 2021년 광주 FC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2. 경력[편집]



2.1. 선수[편집]


광주동성중학교전남기계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어떻게 중앙대학교 축구부까지는 갔지만 현역 시절은 그걸로 끝이었다. 현역 시절은 미드필더, 수비수[5]을 오갔지만 정말 별 볼 일 없어서 청소년 대표도 한 번 못했고 아예 프로에 가지도 못한 채 선수 생활이 끝나버렸다.


2.2. 지도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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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는 빛을 못본 대신 지도자로 역량을 발휘해서 남강고등학교 감독을 시작으로 풍생고등학교 감독과 청소년 대표 코치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았고, 1991년에 드디어 프로 코치로 데뷔했다. 울산과 전북의 코치를 거쳐 1997년 전북 현대 모터스의 2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전북 감독으로는 말 그대로 무난한 수준이었다. 성적이 썩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2000년 전북 구단 역사상 최초의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과 최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다.

이후 감독까지 했는에도 부산 아이파크의 수석코치와 부단장을 역임했고 2005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2군팀 지도를 맡았다.

2010년 고향인 광주 FC가 창단하자 고향 출신으로 가장 많은 지도자 경력을 가진 것이 평가되어 팀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1 시즌에는 젊은 선수 위주의 팀을 이끌고 제법 선전하면서 16개 팀 중 11위를 기록했지만, 시즌 중 선수단이 대거 승부조작 사태에 연루되며 곤혹을 치뤘다.

2012 시즌에는 부족한 지원 속에 수비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서 고전 끝에 15위를 기록, 2부 리그로 강등당했고 결국 자진 사퇴했다.

강등이 확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박병모 단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열약한 지원에 대한 단장 및 수뇌부와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2.3. 행정가[편집]


2013년 파주 NFC 센터장에 임명되며 행정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14년 12월 대한축구협회장 직속으로 신설된 대외협력기획단장으로 임명되었다.


2.4. 경영인[편집]



2.4.1. 부산 아이파크 대표 이사[편집]


2016년 변명기 전 사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부산 아이파크의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

하지만 2017년2018년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지만 눈 앞에서 두차례나 모두 아쉽게 승격을 놓쳤고, 결국 2018시즌을 끝으로 승격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 이사직에서 사임하였다.

비록 승격은 못했지만 2018년 K리그의 발전과 리그 흥행에 큰 공헌을 한 구단에게 주는 상인 '팬 프렌들리 클럽상'을 수상할 정도로 팬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던 만큼 타 팀어떤 사장과는 다르게 감독 출신 사장 출신 치고는 구단 운영 능력은 어느정도 준수했다.


2.4.2. 광주 FC 대표 이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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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2일 광주 FC의 대표이사로 내정되면서 9년만에 광주 구단에 돌아왔으며, 이영무, 김호에 이어 K리그 3번째 팀 감독 출신 대표가 되었다.

광주 구단에 대해 쓴소리를 할줄 알고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팬들에게 지지를 받은 사람이었던 만큼, 최근 사무국장 문제로 소란스러웠던 광주의 상황에서는 적임 인사라는 평이다.

허나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후술할 논란이 일기도 했으며, 과거 최 대표가 소속되어 있던 구단들은 모두 강등된 만큼 자칭 강등의 '아이콘' '전도사'로 통하던 최만희를 대표이사로 영입할 때부터 축구인과 축구팬들은 의외의 사람을 앉혔다고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6][7]

일단 해당 논란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추후 밝혀졌다.

2021시즌을 앞두고는 김호영 감독을 선임했으나, 아쉽게 광주는 2부 리그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김호영 감독이 물러나면서 2022 시즌 이끌 후임 감독으로 오랜 시간 광주의 유소년 구단인 금호고등학교 축구부를 이끌어 온 최수용 감독을 낙점했으나 결렬되며 이정효 감독을 선임한 후 12월 31일을 끝으로 광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이정효 감독을 선임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우수한 결과로 드러났다.

광주는 구단은 1년간 구단을 위해 헌신해 준 최만희 전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며 고마움과 함께 건승을 기원했다.

그러나 최만희 전 대표의 사퇴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국민일보는 최근 광주 서포터 연합체 빛고을의 성명을 인용해 최수용 감독 선임 과정에서 광주광역시의 외압 의혹을 보도했다.

즉, 시가 최만희 전 대표 권한을 무시하고 외압을 행사했고, 선임을 묵살했다는 의미이며 구단 내부 비리 의혹을 받았던 프런트와 갈등까지 거론하며 이러한 것들을 유력한 최만희 전 대표 사퇴 이유로 보았다.

하지만 이후 최만희는 '스포탈코리아'와 통화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억측을 부정했는데,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시에서 압력은 전혀 없었다. 밖에서 와전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시에서 함부로 압력을 넣을 상황이 안 된다”라며 광주시의 압력설을 정면 반박했고, 유력한 후보였던 최수용 감독 선임 실패 관련해서 “우리가 먼저 선임을 했다. 금호고와 상반된 입장과 계약 기간, 시간 문제가 있어 실패한 것뿐이다. 시에서 반대하지 않았다”라며 덧붙였다.

이어 그는 “아내의 병간호할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강등 당했기에 남아 있는 건 예의가 아니다. 감독만 책임질 수 없다. 더 좋은 분께서 대표이사로 오셔서 팀을 발전 시켜야 한다. 팬들에게 죄송하다”라며 자신의 개인사와 책임감을 강조했다.#

참고로 최만희는 광주축구협회장직도 겸임하고 있었는데, 비록 광주 구단 대표이사직은 내려놓아도 광주축구협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한다 했지만 내려두고 광주광역시와의 연은 끝났다.


3. 논란[편집]


광주 FC 대표 이사 부임 이후 구단 쇄신을 위해 임명한 사람이 오자마자 관용차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 추후 밝혀졌다.

1월 14일 광주광역시청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 그동안 광주FC 대표이사에게 제네시스 승용차가 제공되었는데, 신임 대표이사가 기존에 SUV를 타고 있었고, 자택과의 거리가 먼 점을 고려해 승용차 대신 SUV로 교체가 가능한지에 대해 FC사무국에 문의하였고, FC사무국은 광주시에 제네시스 GV80 차량을 임차하겠다는 의견 제시.

○ 이에, 광주시는 2022년 11월까지 계약이 되어있는 기존의 차량계약을 해지 시 850여 만원의 위약금이 발생하는 점, 신규차량 계약 시 월 이용료 상승 등을 고려해 기존의 차량을 이용하는 방안을 제시하였고 대표이사가 시민구단의 이미지에 맞게 흔쾌히 이를 받아들임.

즉, 최만희 대표이사는 제네시스를 콕 찝어서 변경을 요구한 적도 없고, 오히려 상위 클래스로의 변경을 요구한건 광주 FC 사무국 쪽이었다. 그냥 최 대표이사가 이전부터 타던 차가 SUV라 같은 차종은 안되겠나 문의했다가 어렵다고 하길래 그려러니 넘어간 것으로, 애초에 처음부터 악의적인 편파 보도이자 언론플레이인 셈.

광주 서포터즈인 빛고을에 의하면, 사무국장 및 사무국의 비리직원들이 자신들을 자를 인사권이 있는 사람인 최만희 대표이사가 인사권 발동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사무국 대상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제 발로 사임하게 하기 위해 아는 기자들을 동원해 온갖 폄하 기사와 가족들의 뒷조사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4.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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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광주 감독 재임 당시 중국 상하이 전지훈련 중 열린 팀 내 장기자랑 행사에서 셔플댄스를 추며 선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선수단과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직접 장기자랑을 제안하고 상금 1000달러(약 110만원)를 내놓았으며, 인순이의 히트곡 '거위의 꿈'을 부렀는데, 노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선수들에게 무대의상까지 빌렸던 것이라고 한다.#

  • 1982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어 1998년 동 대학원에서 체육행정관리 및 교과과정 전공으로 체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축구 감독으로서는 최은택에 이어 두 번째 박사 학위 취득자다.

  • 감독과 대표 이사 시절로서 광주 FC의 강등을 모두 경험했다.

  • 2012년 감독 재임 시절 때 박경훈의 제주 유나이티드를 이긴 후 한 인터뷰가 압권으로 바로 방울뱀을 비빔밥에 비벼 먹었다(....)#단체로 죽고싶나[8]당연히 자기 팀 팬들에게도 선수들 다 죽일 셈이냐고 원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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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광주공업고등학교[2] 석사 학위 논문: 早起蹴球會(조기축구회) 運營實態(운영실태)에 關(관)한 調査硏究(조사연구) : 서울市內(시내) 早起蹴球會員(조기축구회원)의 反應(반응)을 中心(중심)으로(1982).[3] 체육행정관리 및 교과과정 전공[4] 박사 학위 논문: 한국 축구지도자를 위한 교육과정 모형 개발(1998).[5] 기사[6] 하지만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정보력이나 수준도 의문이다. 일단 기사에 따르면 최만희가 역임했던 부산도 강등됐다고 나오는데, 최만희는 부산이 강등 된 후에 대표 이사로 부임했고, 두번째 강등됐던 해에는 이미 사퇴한 뒤었다. 그리고 부산 대표 이사 시절에는 성적 외적으로 안정적인 구단 운영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던 만큼, 이 기사 역시 그다지 믿을만한 기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7] 또한 기사 중간에 지휘봉을 지위봉이라고 적고, "생쇼"라는 은어까지 쓰인 것을 보면 이 기사를 쓴 기자역시도 그다지 높은 수준의 기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8] 박경훈은 방울뱀 축구를, 최만희는 비빔밥 축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