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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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종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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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 로고.svg 연기대상 대상
유동근
(1997년)

최수종
(1998년)


채시라
(1999년)
김영철
(2000년)

최수종
(2001년)


유동근
(2002년)
하지원
(2006년)

최수종
(2007년)


김혜자
(2008년)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34회
(1998년)


제35회
(1999년)


제36회
(2000년)

유동근
(용의 눈물)

최수종
(야망의 전설)


차인표
(왕초)


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유동근
최진실
(1998년)

최수종
(1999년)

김영애
(2000년)
하지원
(2007년)

최수종
(2008년)

김명민
(2009년)

파일:한국갤럽 CI.svg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
최진실
(2005년)[1]


최수종
(2007년)


김명민
(2008년)
매해마다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선정.[2]



최수종의 주요 설문조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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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갤럽 CI.svg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
최진실
(2005년)[1]


최수종
(2007년)


김명민
(2008년)
매해마다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선정.[2]







최수종
崔秀宗[훈음] | Choi Su-jong



출생
1962년 12월 28일[1] (61세)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해주 최씨 (海州 崔氏)
신체
174cm, 67kg, 270mm, B형[2]
가족
누나 최지원[3], 남동생, 매형 조하문, 조카 조태관
배우자 하희라(1993년 11월 20일 결혼 ~ 현재)[4]
장남 최민서(1999년 2월 27일생)
장녀 최윤서(2000년 3월 26일생)
학력
부산동광초등학교 (전학[5])
서울충무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배명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 / 학사)
칼빈대학교 (인문학 / 명예박사)
종교
개신교 (장로회)[6]
소속사
아센디오
데뷔
1987년 KBS1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7]
(데뷔일로부터 13468일, 36주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데뷔 전 스토리
3. 활동
3.1. 1990년대
3.2. 2000년대
3.3. 2010년대
3.4. 2020년대
4. 출연 작품
4.1. 영화
4.2. 드라마
4.2.1. 시청률의 제왕
4.3. 연극
4.4. 방송
4.5. 라디오
4.6. 음반
4.7. 비디오
4.8. 도서
4.9. 광고
4.10. 경력
4.11. 홍보대사
5. 영화에서의 최수종
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사채광고 출연 논란
6.2. 학력위조 사건
6.3. 병역 관련
7. 수상 경력
8. 여담
8.1. 배우로서
8.2. 사생활
8.3. 동안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여러 스팩트럼의 배역을 소화했으나 특히 사극에서 두각을 나타낸 연기자 중 한 명이다.

연기 외적으로는 60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동안 속성,[8] 애처가에 축구광 기믹도 있다.


2. 데뷔 전 스토리[편집]


최수종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고위 공무원으로, 어린 시절은 꽤 유복했다고 한다. 부모 사이도 화목했으며 아버지가 늘 집안일을 손수 하고[9] 어머니와 자주 포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둔 뒤 남미 국가인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번창하자 온 가족이 이민을 갔으나 당시 중학생이던 최수종은 학업 때문에 한국에 남았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10]을 가는 등 평탄하게 살았으나 아버지 사업이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졌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외국에서 50대 초에 사망하면서 최수종은 한동안 방황했고 한때 노숙자 생활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던 사람이 신문지를 주면서 덮고 자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저 사람은 나보다 나아보이지도 않는데 어떤 여유를 가진걸까 반성하고 정신차리고 일을 시작했다.# #

그 때부터 생업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여고생의 과외 알바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고생의 아버지가 KBS TV제작본부 김연진 예능국장[11]이었고 최수종의 외모를 눈여겨본 국장은 최수종에게 배우를 제의했다.그리고 그 데뷔작이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다.[12]

이 외에도 1979년 무렵부터 제일합섬의 학생복 엘리트의 모델로도 활약했고, 잡지 학생중앙의 표지 모델로도 발탁되었다.


3. 활동[편집]



3.1. 1990년대[편집]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했는데, 드라마 초반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당대 청춘 스타 최재성, 손창민이 주역이고 최수종은 조연A 정도였다. 그러나 드라마가 가면 갈수록 그의 배역이 자리를 잡아가다가 후반에 가선 이미연을 두고 손창민과 삼각관계의 모습을 보이면서 아예 드라마의 중심에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최재성, 손창민과 함께 당대의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거기다 KBS 일일 드라마 《서울뚝배기》의 주연을 맡아 도지원파트너로 대히트를 쳤다. 이로써 소녀들의 우상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냥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 연기력까지 보였다.

이후 주 무대를 MBC 쪽으로 전환, 배종옥, 이응경과 함께 연기한 '행복어사전'으로 눈길을 모았고, 또 한 번 배종옥과 연기하면서 음정희까지 곁들인 '도시인'에 출연해 발랄한 청년 스타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최진실과 연기한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질투에서 이런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이렇게 발랄하고 현대적인 청년 역으로 인기를 끌던 와중에 갑자기 노선을 전환해 《아들과 딸》에 출연했다. 부담스럽고 편파적인 어머니의 애정과 그 와중에 희생 당하는 누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1960-70년대를 살아가는 어느 우유부단한 젊은이 '이귀남' 역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이 드라마로 김희애는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최수종 역시 자신이 청춘스타 이미지로만 먹고 사는 연기자가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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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아들과 딸》에서 김희애와 함께 한 최수종.

파일럿》에서 다시 한 번 발랄한 현대 청년 스타일로 사랑을 받은 후, 몇 개의 드라마에 주연을 맡다가 주무대를 다시 KBS로 옮겼다. 일일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바람은 불어도'에서 재치 있는 막내 아들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그의 주가가 가장 상승했던 시점은 역대 TV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드라마[13]인 '첫사랑'(1996~1997)의 주연으로 나왔을 때이다. 이승연, 박상원, 배용준, 최지우 등과 함께 한 이 드라마에서 최수종은 첫사랑인 이승연과 끝내 맺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훈남 이미지를 극적인 연기로 풀어냈다. 최수종 본인은 아직까지도 이 작품을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으로 꼽고 있다.

게다가 일년 뒤에는 유동근, 채시라, 염정아 등과 함께 한 시대극 '야망의 전설'에서 혼신의 연기로 생애 첫 연기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14]

이렇게 데뷔 때부터 1990년대까지 최수종은 명랑한 청년 스타일과 가족과 시대 환경 속에서 고민하는 남자 스타일을 오가며 히트작을 양산한 연기자였다. 거기다 각종 토크 프로그램에도 출연, 드라마에서 써 먹은 명랑 청년 스타일의 캐릭터에 걸맞는 오도방정과 입담으로 주말 KBS, MBC 쇼 프로그램의 MC와 시청률을 보장하는 게스트로 활동하면서 당대의 예능을 주름잡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도 입담으로 시청률을 올리다 보니 아예 최수종이란 이름을 걸고 토크쇼도 진행했고, 이 토크쇼 역시 높은 시청률을 찍었다. 오늘날로 치면 유재석에서 좀 덜 독하고 좀 더 부담 없이 웃긴 스타일.[15] 특히 일밤에서 이경규와 같이 호흡을 맞추는 최수종의 모습은 최수종이 코미디언으로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3.2. 2000년대[편집]


30대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최수종은 두 번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그 역할이 KBS가 기획하던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주인공 왕건. 대하사극의 아이콘이 된 지금으로선 믿기지 않겠지만, 의외로 이 때 사람들의 반응은 "청춘 스타가 무슨 사극이냐?" "최수종이 사극을 한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수종이 왕건? 안 어울리겠는데?" 정도였다. 실제로 태조 왕건이 방송하기 전에 예고편에서 최수종이 왕건으로 나와서 수염을 붙이지 않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본 몇몇 시청자들이 웃기까지 했다.[16] 2000년 3월 3일 공사창립 27주년으로 방송된 '쇼 KBS 2000' 생방송에서 왕건 복장 차림으로 KBS홀 무대에서 선공개된 적이 있었다.

사실 최수종이 사극 연기를 한 게 태조 왕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데뷔 초기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에서 사도세자[17][18]철종 역을 한 적도 있고, 정보석, 염정아와 함께 한 드라마인 '야망'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젊은 선비 역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청춘 스타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데다가 상대적으로 사극 출연작이 많지 않았던 최수종의 사극 연기에 대한 우려는 컸었다.

그러나 최수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온유함 속에 강함이 숨겨져 있는 왕건 역할을 잘 소화하면서 중후한 이미지의 사극 배우, 일명 수종(宗)으로 다시 거듭나게 되었다.[19][20][21]

거기다 최수종은 왕건이란 이미지에 시청자가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도 즐기던 쇼 프로 게스트 출연을 왕건 방영 기간 동안 일절 하지 않을 정도로 공을 쏟았고, 그런 노력은 노력만큼 보답을 받았다. 그리고 태조 왕건 종영 후 가족오락관에 왕건팀이 나온 왕건 오락관, 출발 드림팀에 왕건 출연진이 나온 왕건 드림팀과 같은 예능 출연을 하기도 했다.[22]


파일:attachment/9af75109_5.jpg

태조 왕건》의 김영철과 최수종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는 거의 완전한 사극 전문 배우로 전환,《태양인 이제마》, 《해신》, 《대조영》 등 KBS의 대표 사극에서 모두 주연을 꿰찼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들어서 드라마를 본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는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 특히 왕이나 장군 전문인 줄 안다.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로 성공한 데에는 그의 체력과 운동 신경이 기여한 바가 컸다고 한다. 최수종은 연예인 축구단에서 센터 포워드를 도맡았을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으며,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체력도 발군이라는 게 중평이었다. 산에서 들에서 무거운 갑옷 입고 칼과 창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달려야 하는 사극 연기를 하려면 고도의 체력과 운동 신경을 갖춰야 하는데, 최수종은 그런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 능력 외에도 사극에서 최수종의 투입 빈도가 높아진 이유 중에는 동안 외모[23]도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대부분 사극의 주인공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는 시기가 중년 시기라서 기존 사극들은 주연 배우의 나이가 젊어봐야 30대인 상태였고, 이로 인해 청년기를 다룰 경우 젊은 배우를 따로 캐스팅해 청년기를 다룬 후 중년 시기로 점프해 시작하거나 해당 배우가 분칠하고 젊은 척을 해야 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는데 40대 후반 시절 최수종은 조금만 분칠하고 보정하면 30대 중반까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동안 외모를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주인공의 청년기부터 장년기까지를 한 배우로 표현할 수 있어 인물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도 면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24]


3.3. 2010년대[편집]


2010년에는 '전우'라는 한국전쟁 드라마에서 비교적 현대적인 배역으로 등장했다. 사실 전우도 시대극이지만 이 정도면 다시 연기 변신을 시도한 셈이다. 너무 사극에만 나와서 지겹다, 똑같은 연기만 한다 등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믹한 연기나 정극에서의 진지한 연기도 충분히 소화할 만한 역량이 있는 검증된 배우이기 때문에, 다시 역할을 전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25]

그러나 이렇게 장기간 사극을 하는 바람에 직업병이 생겼는데, 은연중에 말투가 자기도 모르게 사극화된다는 점이다. 이런 건 최수종 뿐만 아니라 최재성 등 대부분 사극 위주의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전우'의 다음 작품은 현대극인 '프레지던트'로 골랐으며, 절대선이 아니라 악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프레지던트는 매우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26] 2년 뒤인 2012년에는 광개토태왕의 후속작 대왕의 꿈김춘추 역으로 캐스팅되어 또 왕 역할을 맡았다.

정리하면 최수종은 삼국을 통일한 뒤 발해를 창건하고 청해진을 설치한 후 고려를 세우고 후삼국도 통일하며 거란군을 격퇴하고 조선을 구한 뒤 뒤주에 갇히기도 했으나 사상의학을 확립했으며 한국 전쟁에도 참전한 후 실미도에 끌려가 죽을 뻔할 위기를 넘기고 대한민국의 철강 산업 건설에 앞장서 그 지지기반으로 경선 끝에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27][28][29][30]

2012년 9월, 대조영 이후 오랜만에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에 출연했는데 이 때 불운이 많이 겹쳤다. 촬영 도중 낙마 사고를 당해서[31] 쇄골과 손에 골절상을 입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2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극은 별로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최수종의 부상으로 인한 캐릭터의 부재가 대왕의 꿈 드라마가 흥행이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주연 배우가 다쳐 누워있으니 주인공이 몇 주째 드라마에 나오지 않고 대신 목소리만 줄창 등장한다. 물론 부상을 입고 싶어서 입은 게 아니므로 최수종 탓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이 드라마는 다른 악재도 많았다. 심지어 최수종 뿐만 아니라 대왕의 꿈 전반부 주역이던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는 자택과 촬영장을 오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부득이하게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해당 배역은 홍은희가 대신 맡기도 했다. 최수종은 사실 후에 밝히길 6개월 이상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2주 만에 억지로 퇴원을 해서 촬영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아무튼 자신이 맡은 김춘추를 다룬 많은 역사 서적을 탐독하면서 배역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심지어 마지막 대사 리딩 연습 때에는 배역에 대한 몰입과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그만 울음을 터뜨렸을 정도라고. 여담이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수시로 사비를 털어가면서 연기자들에게 밥차를 불러 대접하는 등 출연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어 스태프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상기한 사극 네타가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덕에 2013년 8월 10일 SNL 코리아의 호스트로 출연했을 때 '사극왕 최수종'이란 제목의 디지털 숏컷에서 본인이 본인 역으로 메타 개그를 했는데[32] 본인이 맡았던 주요 배역들이 거의 다 나왔다. 안 나온 배역들도 중간에 최수종이 대본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조연> 파트에 다 적혀있었다.[33] 쌍커풀 메이커에서는 궁예 분장을 한 김민교가 "수종 네 이놈의 차기작은 퇴계 이황이니라." 하고 드립을 날리면서 1000원권 지폐와 최수종의 눈이 합성된 장면이 나오는데 싱크로율이 장난 아니다. 이러다가 퇴계 이황 드라마가 나온다면 캐스팅될지 모른다.

2010년대 들어선 사극 드라마에는 별로 출연하지 않고 있다. 장영실을 끝으로 정통 대하드라마의 맥이 끊겨서 출연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기도 하다.

2014년 TV조선 불꽃 속으로에선 포스코 박태준 회장을 모델로 한 박태형으로 분해 일제 시대와 6.25의 혼란을 이겨내고 제철소를 건설하는 기업가 역을 맡았다. 이 때 51세인데 30대 역을 맡았다.

2016년 KBS에서 한중합작으로 방영하는 임진왜란 1592에서 무려 이순신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오랜만의 사극 출연이지만 5부작이고 극 자체도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어 큰 반향은 없었다.

아무튼 사극으로 다져진 그의 입지는 KBS를 대표하는 드라마 배우이면서 방송사를 막론하고 많은 드라마 배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연기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막내 김일병(김민석 분)이 간호사 리예화(전수진 분)에게 우리말 어투가 아닌데 누나는 어디 출신이십니까?라고 묻자 예화가 '고려인'이라고 답하는데 고려요? 그거 최수종이 세웠다가 유동근한테 망한 나라 아닙니까? 그거 엄청 오래된 나란데 그나라 사람이 아직 살아있습니까?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우습게도 그 드라마에는 최수종의 조카(친누나의 아들)인 조태관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이자 예화의 남편인 다니엘 스펜서 역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2018년 동상이몽에 출연해서 잠깐 언급한 바에 의하면 붓글씨도 제법 잘 쓰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8년 9월 대왕의 꿈 이후 5년 만에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으로 복귀했다. 드라마 초반에는 안타까운 아버지 캐릭터라는 특성이 돋보였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최수종이 막장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부터 알아봤다.'라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34] 하지만 시청률의 제왕답게, 무려 49.4%를 찍은 대성공으로, 최수종의 위상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줬다.

그 후부터는 예능에도 출연이 늘었다. 동상이몽 2아는 형님에서 맹활약했다.


3.4. 2020년대[편집]


MBN 친한 예능에 고정 출연했다.

2020년 6월 25일, 대한민국 정부 주관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식 '영웅에게'에서 진행을 맡았으며,[35] 2021년 1월 2일 팽현숙, 동갑내기 최양락이 KBS2 살림하는 남자들에서 하차하고, 후임자로 캐스팅되어 2021년 1월 9일 아내 하희라와 함께 나레이션 담당으로 2022년 4월 30일까지 출연하였다. 이후 아내 하희라와 함께 '세컨 하우스'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2023년,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강감찬 역으로 7년 만에 사극에 복귀[36]하게 되었다. 태조 왕건에서 본인이 고려를 건국한 왕건 역할, 대조영에서 본인이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역할을 맡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본인이 건국한 나라를 멸망시킨 원수에 맞서서 본인이 건국한 또 다른 나라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게 된 재미있는 배우 개그가 성립된다. 또한 한산도 대첩이순신에 이어 귀주 대첩의 강감찬까지 맡아서 이제 살수 대첩을지문덕만 맡으면 한국사 3대첩을 이끈 명장을 모두 맡는 기록을 세울 수 있다. 또한 최영 장군만 앞으로 맡으면 전에 무열왕 역을 맡은 걸 문무왕으로 쳐줄 때,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함명을 다 거쳐간 배우가 된다. 최수종급 구축함


4. 출연 작품[편집]


"고종, 순종 다음 수종(秀宗)[37]"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극에서 맡은 배역들이 대부분 아니면 장군이다. 데뷔 초반부터 조선 시대 왕이나 왕자 역할을 많이 하다가 본격적으로 스타가 된 이후에는 현대극에 집중하고 사극에 출연하지 않았다. 흔히 우리가 아는 2000년의 태조 왕건부터 본격적으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조선 시대 왕보다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 왕 역할을 매우 많이 맡았다.[38] 그러나 어째서인지 특이하게도 SBS 드라마에는 단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다. 백제시대랑 고조선(다름 아닌 단군 왕검역)만 하면 한국사 완성이라는 드립도 있다.

4.1. 영화[편집]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88년
풀잎 사랑

주연
청춘 펀치
강혁
1990년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준형
슈퍼맨 일지매
동수
1991년
너에게로 또다시
영훈
별이 빛나는 밤에
영남
비개인 오후를 좋아하세요?

1992년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
양철수
1994년
키스도 못하는 남자
진정한
2012년
철가방 우수氏
김우수
2016년
순종
내레이션


4.2. 드라마[편집]


연도
방송사
방송명
배역
비고
1987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사랑이 꽃피는 나무
현우
주연, 데뷔작
1988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
사도세자

1989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조명하
조명하의 친구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사랑은 구름을 비로 내리고
오상민


진국

1990년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상훈
주연
조선왕조 오백년:대원군
철종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서울뚝배기
장만봉

1991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가족
영재

파일:MBC 로고(1986-2005).svg
행복어사전
서재필

도시인
최치원

1992년
질투
이영호
주연
춘원 이광수
방송국 PD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언제나 신혼
동철
1부작 단막극
1992년 ~ 1993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아들과 딸
이귀남

1993년
뜨거운 강
중수

파일럿
강민기
주연
1994년
야망
이인수
주연
마지막 연인
최영규

1995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바람은 불어도
황산해
주연
1996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프로젝트
형우

1996년 ~ 1997년
첫사랑
성찬혁
최고 시청률
1997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불꽃놀이
성태, 윤민호[39]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그대 나를 부를 때
강범수

드라마 스페셜 - 아직은 사랑할 시간


1998년
야망의 전설
이정태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


1999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아름다운 비밀
유민
2부작 단막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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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집
서원탁

1999년 ~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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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세요
박상현

2000년 ~ 2002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태조 왕건
왕건
주연[40]
2002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태양인 이제마
이제마
주연
2003년
저 푸른 초원위에
차태웅
2004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장미의 전쟁
박수철
2004년 ~ 2005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해신
장보고
2006년 ~ 2007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대조영
대조영
2008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전설의 고향 - 사진검의 저주
윤인
2010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전우
이현중
2010년 ~ 2011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프레지던트
장일준
2011년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 아들을 위하여
성호
2012년 ~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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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꿈
태종 무열왕
2013년
파일:MBC 로고.svg
잘났어 정말
중국집 배달원
특별출연
2014년
파일:TV CHOSUN 로고.svg
불꽃 속으로
박태형[41]
주연
2016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임진왜란 1592
이순신
2018년 ~ 2019년
파일:KBS 2TV 로고.svg
하나뿐인 내편
강수일(김영훈)[42]
2020년
파일:tvN 로고(2012-2021).svg
청춘기록
백화점 쇼핑 남
특별출연
2023년
파일:KBS 2TV 로고.svg
고려 거란 전쟁
강감찬
주연


4.2.1. 시청률의 제왕[편집]


연도
방송사
방송명
시청률
1992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질투
56.4%
아들과 딸
61.1%
1993년
파일럿
46.2%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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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불어도
55.8%
1996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첫사랑
65.8%
1998년
야망의 전설
50.2%
2000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태조 왕건
60.5%
2003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저 푸른 초원위에
31.1%
2004년
해신
31.7%
2006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대조영
36.8%
2018년
파일:KBS 2TV 로고.svg
하나뿐인 내편
49.4%
명실상부 대한민국 배우들 중 최고를 달리는 시청률의 제왕이다. 드라마 커리어로 최수종을 뛰어넘는 필모를 가진 배우는 없다고 보는 게 편하다.[43][44][45] 심지어 유튜브 및 OTT가 대세로 떠올라 전체적으로 드라마 시청률이 하향세였던 2018~2019년에 출연한 하나뿐인 내편은 50%에 육박하는 성적을 냈다.[46] 사실상 드라마 흥행 측면에서는 최수종을 넘는 배우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참고로 여기 나열된 시청률은 전부 최고 시청률만 모은 것이고, 중박 이상까지 나열하면 더욱 많아진다. 그의 데뷔작인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정확한 시청률은 알 수 없지만, 최수종에 언급에 의하면 그 당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작품이었다고 하고 '서울뚝배기'나 '행복어사전'도 시청률이 높았다고 한다. 대조영 이후의 작품들은 아쉬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세운 기록만 봐도 역대급에 해당된다. 태양인 이제마도 28% 정도이고 중박 이상의 작품까지 생각하면 더욱 많아진다.

워낙에 다양한 드라마를 히트시키다보니, 최수종의 상대역을 맡은 여배우들 사이에서 상대역이 최수종이라면 안심하고 출연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는 아예 시청률 10위까지 줄 세우는 게임을 했는데 합산 시청률이 530%라는 게 밝혀졌다.


4.3. 연극[편집]


연도
제목
배역
비고
2017년
하늘로 가지못한 선녀씨 이야기
종우



4.4. 방송[편집]


날짜
방송사
방송명
비고
1987년
1987년 ~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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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행진
MC
1991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
1992년
5월 5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1992 제10회 MBC 창작동요제
MC
1995년
3월 25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1995 KBS 슈퍼 탤런트 선발 대회
심사위원
8월 1일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TV는 사랑을 싣고

1997년
8월 18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김국진의 스타다큐
14회
1998년
10월 17일 ~ 2000년 3월 18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MC
1999년
1월 26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서세원쇼

11월 28일
출발 드림팀

2000년
5월 28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2000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스페셜 게스트
2002년
5월 31일 ~ 6월 30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2002 한일월드컵
개막전 프랑스 vs 세네갈 객원해설

최수종의 골든볼
MC
2003년
7월 20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비타민
4회
11월 4일 ~ 2004년 4월 27일
파일:SBS 로고.svg
최수종쇼
MC
2005년
2월 3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여유만만
315회
2007년
5월 11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여유만만

2008년
3월 24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여유만만

4월 28일 ~ 6월 2일
파일:SBS 로고.svg
더 스타쇼
MC[47]
5월 31일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다큐멘터리 3일
생존가능성 1%를 향한 사투 - 쓰촨성 대지진 119 구조대
내레이션
2009년
8월 16일 ~ 8월 30일[48]
파일:SBS 로고.svg
패밀리가 떴다
60회 ~ 61회
11월 30일
파일:MBC 로고(2005-2011).svg
2009 어린이에게 새생명을
특집 MC
2010년
6월 15일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여유만만

11월 30일
파일:MBC 로고(2005-2011).svg
2010 어린이에게 새생명을
특집 MC
2011년
4월 14일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2011 나눔더하기 대축제 - 어린이에게 희망을
특집 MC
5월 31일 ~ 2013년 4월 5일
아름다운 사람들
MC
6월 1일 ~ 11월 2일
낭만을 부탁해
MC
8월 29일
파일:MBC 로고(2005-2011).svg
기분 좋은 날
1250회
9월 13일
스타경매쇼
추석 특집
2012년
10월 31일
파일:SBS 로고.svg
좋은 아침
4003회
11월 19일
파일:MBC 로고.svg
기분 좋은 날
1522회
2013년
1월 28일
파일:SBS 로고.svg
좋은 아침
4061회
5월 4일 ~ 12월 18일
2013 희망TV SBS
특집
8월 10일
파일:tvN 로고(2012-2021).svg
SNL 코리아 시즌4
23회
8월 17일 ~ 12월 25일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위기의 아이들
내레이션
12월 19일 ~ 2014년 4월 3일
파일:MBC 로고.svg
글로벌 홈스테이 집으로
고정 출연
2015년
3월 12일 ~ 2017년 3월 11일
파일:채널A 로고.svg
잘 살아보세
고정 출연
6월 22일
파일:SBS 로고.svg
힐링캠프
189회
2018년
1월 29일 ~ 2020년 1월 13일
파일:SBS 로고.svg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
고정 출연
7월 25일
파일:MBC 로고.svg
라디오 스타
575회
9월 14일
파일:KBS 2TV 로고.svg
연예가 중계
1729회[49]
11월 2일
1736회[50]
2019년
1월 11일
파일:KBS 2TV 로고.svg
연예가 중계
1745회[51]
1월 27일 ~ 2월 3일
파일:SBS 로고.svg
미운 우리 새끼
123회 ~ 124회
3월 15일 ~ 3월 29일
파일:KBS 2TV 로고.svg
연예가 중계
1754회[52] ~ 1755회[53]
4월 13일
파일:JTBC 로고.svg
아는 형님
175회
8월 4일 ~ 8월 11일
파일:SBS 로고.svg
집사부일체
80회 ~ 81회
2020년
1월 7일 ~ 5월 2일
파일:MBN 로고.svg
친한 예능
고정 출연
6월 26일 ~ 8월 21일
파일:KBS 1TV 로고.svg
한국인의 노래
MC
8월 11일
파일:KBS 2TV 로고.svg
옥탑방의 문제아들
90회
8월 16일
파일:JTBC 로고.svg
1호가 될 순 없어
13회
8월 30일 ~ 9월 6일
파일:MBC 로고.svg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53회 ~ 54회
9월 9일
라디오 스타
685회
9월 27일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57회
10월 24일
파일:KBS 1TV 로고.svg
봉오동.청산리 승전 100년 <민족 영웅 홍범도 장군>
특집 출연
2021년
1월 9일 ~ 2022년 4월 30일
파일:KBS 2TV 로고.svg
살림하는 남자들
MC
5월 5일
파일:KBS 1TV 로고.svg
어린이는 사랑입니다
특집 MC
7월 27일
파일:SBS 로고.svg
신발 벗고 돌싱포맨
3회
2022년
6월 2일 ~ 8월 18일
파일:EBS 1TV 로고.svg
이것이 야생이다3 : 3%의 세상
MC
6월 4일
파일:MBC 로고.svg
전지적 참견 시점
202회[54]
11월 3일 ~ 2023년 1월 26일
파일:KBS 2TV 로고.svg
세컨 하우스
고정 출연
2023년
1월 21일 ~ 1월 23일
파일:SBS 로고.svg
설날 특집 낭만 여행 떠나보면 알 거야
특집 출연
3월 3일
파일:KBS 1TV 로고.svg
당신의 KBS 우리의 50년
특집 MC
6월 1일 ~ 8월 17일
파일:KBS 2TV 로고.svg
세컨 하우스 시즌2
고정 출연
11월 8일
파일:tvN 로고.svg
유 퀴즈 온 더 블럭
218회


4.5. 라디오[편집]


날짜
방송사
방송명
비고
1998년
1988년
파일:KBS CoolFM 로고.svg
최수종의 인기가요

1988년 ~ 1990년
파일:KBS HappyFM 로고.svg
밤을 잊은 그대에게

2017년
2월 6일 ~ 2018년 9월 30일
파일:KBS HappyFM 로고.svg
매일 그대와 최수종입니다
단독 DJ

4.6. 음반[편집]


날짜
앨범명
곡명
비고
1990년
10월
작지만 소중한 사랑이야기
하얀미소

1994년
8월 1일
키스도 못하는 남자 OST
키스도 못하는 남자
with 김혜선, 이상우
2009년
11월 24일
마음으로 전하는 사랑의 노래
주님말씀하시면 (Feat. 최수종)

아름다운 사랑 (Feat. 노아)

2010년
8월 9일
전우 Final Edition OST
친구여

2013년
2월 6일
최수종 하희라의 '예...사랑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with 하희라
내 진정 사모하는 (Feat. 곽윤찬)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Feat. 곽윤찬)


4.7. 비디오[편집]


날짜
도서명
출판사
비고
1999년
5월 22일
최수종의 IQ체조
SBS프로덕션



4.8. 도서[편집]


날짜
도서명
출판사
비고
1990년
9월 1일
너에게만 말해줄게
대흥

1991년
9월 1일
스타 낙서집
주변인의 길

2000년
3월 20일
최수종의 아빠일기
웅진출판
[55]


4.9. 광고[편집]


연도
기업명
브랜드명
비고
1988년
뱅뱅어페럴
뱅뱅

1989년
한국화이자
챕스틱

1990년
금강제화
랜드로바

일화
맥콜
[56]
롯데제과
롯데껌

롯데삼강
구구콘
오백원입니다 편
1991년
또 드십니다 편
나도 구구텔런트 편
광동제약
우황청심원

롯데칠성음료
펩시콜라

한국얀센
니조랄
쌍둥이 편
1992년
대화 편
고려제약
하벤

옥시레킷벤키저
옥시 파워크린
신혼일기 편
옥시 팅커벨
숲속의 요정 편
1993년
옥시 고밀도 파워크린
고밀도산소계세제 편
한국얀센
니조랄
장가간 남자 편
1995년
SPC삼립
초코러스

SPC삼립
누네띠네

1996년
KGC인삼공사
홍삼드링크

1997년
럭키 초이스
럭키 초이스
with 하희라
농심
신라면

포테토칩

대동황토방
대동황토방 아파트

1998년~1999년
서울신문
서울신문 퀸

1999년
hy
야쿠르트 에이스

몬데소리
몬데소리 한글만세

일동제약
아로나민 골드
아주머니 편
2000년
아로나민
일일 주부 편
2001년
최수종 가족 편
hy
야쿠르트 400

앤로이 인터네쇼날
가르시아

2006년
국가행정조직
국가보훈처

2006년~2007년
페리카나
페리카나 치킨

2008년
그린조이
그린조이

지식경제부
한국전자전

녹십자생명
녹십자생명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

2010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부

2011년
빙그레
아이스크림
with 하희라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2015년
청개구리
청개구리투자클럽

프리드라이프
프리드라이프

2016년
중고왕
중고왕
대전광역시 편
농심
신라면

2017년
예림임업
예림임업

2018년
포인트닉스
포인트 임플란트

2021년
양우건설
양우내안애
with 하희라 [57]


4.10. 경력[편집]


연도
경력
1996년
쟈칼연예인축구단 단원
1999년
한국이웃사랑회 친선대사
2002년
세계평화아동축제 아동평화대사
2003년
인천시민프로축구단 명예 부단장
2005년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
2010년
세계태권도대학교 설립위원회 이사장
2011년
전남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명예사회복지사
2012년
전남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2022년
제 25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


4.11. 홍보대사[편집]


연도
홍보대사
2001년
한국방문의 해 명예 홍보사절
2002년
굿네이버스 홍보대사
2004년
스위스 관광청 명예홍보대사
2005년
제2기 환경부 환경홍보사절
2007년
제1회 서울시장배 장애인IT예술제 홍보대사
한스타일 홍보대사
하트하트재단 홍보대사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 홍보대사
광주비엔날레 명예홍보대사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2009년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 홍보대사
제1회 서울국제사회복지영화제 홍보대사
대학로 페스티벌 D-Festa 홍보대사
2010년
공명선거 홍보대사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 줄이기 캠페인 홍보대사
국세청 명예홍보위원 겸 대한민국 세미래 캠페인 홍보대사
기독교 사회복지 EXPO 홍보대사
2011년
한우자조금 관리위원회 한우 홍보대사
F1 코리아 그랑프리 홍보대사
2013년
정전60주년기념사업 홍보대사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홍보대사


5. 영화에서의 최수종[편집]


주무대가 TV인 최수종이지만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다, 데뷔 초의 영화 몇 편은 흑역사 수준.

1990년 남기남 감독의 영화인 '슈퍼맨 일지매'에선 변신 히어로도 해 먹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선 얼굴 나오는 장면도 얼마 안되며 거의 복면쓴 스턴트맨이 연기를 다 한다.[58] 그러나 6백만원이라는 거액의 출연료를 건넨 이 영화 덕분에 최수종은 곰팡이 슬던 단칸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당시 최수종은 데뷔하자마자 청춘스타로 등극했지만 집안의 빚을 갚고 이민 가 있는 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돈을 벌어도 모으질 못 하던 상황이었다.


파일:attachment/choi.jpg

변신 히어로답게 뿔테안경을 쓰고 있는 최수종

다행히 같은해 1990년, 당대의 청춘스타이던 하희라와 같이 출연한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가 쏠쏠한 인기를 끌면서[59] 여러 청춘영화에 연속해서 주연을 맡는다. 이미연, 홍학표와 함께 한 '비 개인 오후를 좋아하세요'. 다시 하희라와 함께 찍으면서 김민종 변진섭까지 나온 '너에게로 또다시', 하희라와 함께 찍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이 시기의 영화들이다.(이렇게 하희라하고 계속 영화를 찍으며 함께 하다 보니 결국 최수종과 하희라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파일:attachment/secret.jpg

부부의 인연을 이어준 영화. 맨 오른쪽 사람은 이경영.

그러다 오연수와 함께 연기한, 치고 박는 신혼부부 이야기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가 좀 히트를 했고, 그 덕인지 몇 년 후에 김혜선과 신혼부부로 치고 박는 이야기인 《키스도 못하는 남자》를 찍었는데, 키스도 못하는 남자가 별 재미를 못 보기도 했고, 이후로는 정극 위주의 드라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영화를 찍지 않고 있다.

탁월한 연기력을 가졌지만, 시리즈로 기획된 드라마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인 만큼 굳이 영화계로 복귀하려는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 영화계에 오랜간만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철가방 우수氏 '라는 작품에 노 개런티로 컴백했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6.1. 사채광고 출연 논란[편집]


2006년 최수종은 과감한 외적 변화(?)를 시도한다. 바로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것.[60] 그러나 톱스타라는 사회적 위치와 기존의 모범적 이미지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 곧바로 시청자로부터 질타가 쏟아졌으며,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관련기사 이에 최수종은 반성한다는 사과문과 함께 해당 계약을 체결한 매니저를 해고함으로써 해당 사건을 마무리 지으나, 이후 터진 학력위조 사건과 겹쳐 한동안 방송 출연이 힘들게 됐었다.

6.2. 학력위조 사건[편집]


2007년 연예인 학력 위조 논란 때 최수종도 학력 위조 논란에 휩싸였다. 그동안 최수종은 대외적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61]를 졸업했다고 말하며 활동해 왔다. 여기에 대해 논란이 인 것. 사실 확인 결과 결론적으로 최수종은 외대 무역학과에 합격은 했으나 등록을 하지 않아 학교에 재학하지는 않았다.

학력 위조 열풍이 거셌던 2007년 당시, 이와는 무관할 듯 보였던 배우 최수종마저 학력 위조 사실이 드러나자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다니지도 않았던 학교임에도 학교 관련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여 그 학교 출신 마냥 행세를 해왔었기에 논란은 더욱 불거졌었다. 관련링크1 이른바 국민배우로 불리던 그였고, 대외적으로도 바른 생활 이미지만을 보여왔었기에 그 충격은 한층 더 깊었다.

이에 대해 본인은 의도적인 위조가 아닌 전달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1990년대부터 최수종 자신이 직접 여러 매체를 통해 해당 대학 재학 및 졸업 사실을 언급했으며, 1994년에는 동문 자격으로 외대 건학 40주년 기념행사에 진행을 맡기도 했다. # 또한 총 3권으로 발간된 본인의 자서전 모두에서 해당 대학 재학 및 졸업 사실을 기재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배우 최수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관련 링크2 또한 이후 주장한 유학 생활에 대한 언급도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의혹이 일었었다. 관련 링크3

그러나 이후, 해당 대학에 합격은 했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하지 못했다는 해명으로 사건의 포커스가 해당 대학 재학이나 졸업이 아닌 해당 대학 합격 유무로 옮겨가더니, 결국 해당 대학 측에서 합격 사실을 확인해 준 후로는 해당 사건은 더 이상의 해명 없이 유야무야 묻혀 버렸다. #한국외대, 최수종 합격사실 공식 확인

사실 학력 위조 연예인 중 제일 논란 없이 잠잠해졌는데, 이는 유명 대학일수록 졸업보다 입학이 압도적으로 어렵고 힘든 교육 시스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외대야 예나 지금이나 명문대학 중 하나지만 최수종이 입학할 시절의 대학 학사관리는 지금보다 더 널널한 편이었다. 따라서 최수종이 재정적 사정만 아니면 일단 들어가서 뭘 했든 졸업은 따 놓은 당상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더더욱 관심에서 멀어졌다.[62]

나중에는 해당 대학 측에서 최수종에게 명예 졸업장을 건네주어 동문으로 인정해주었다 카더라라는 루머도 돌았지만, 이는 학력위조 사건이 터지기 한참 전의 일이며 되려 최수종 본인이 명예졸업장을 고사했었다. 관련 링크4

이와 같이 큼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통에, 배우 최수종에 대한 도덕성은 막대한 상처를 입었으며 그로 인해 2010년 KBS 전우로 복귀할 때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 했다. 허나, 당시 최수종의 대처 방식 또한 그리 훌륭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앞선 대부 업체 광고 논란이나 학력 위조 사건의 책임을 자신이 아닌 모두 매니저 탓으로 돌려 비난을 키운 면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 관련링크5, 관련링크6 이는 2010년 이효리 표절 사건의 대처방식과 유사점을 보이기도 한다.

어느 정도 이미지에 흠이 가긴 했지만, 2000년대 후반 상당수 연예인들이 입학 자격이 없었음에도 명문대 출신임을 사칭하거나 분교 출신임을 알리지 않고 본교 출신 행세를 해온 사실이 발각되는 와중에 진짜로 명문대 입학 자격을 얻은 사실이 대학교 측에 의해 공식 확인되면서 오히려 "공부해서 명문대 합격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대중들에게 동정을 받은 면도 있다.

이후 최수종은 2008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여 현재는 대학 졸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6.3. 병역 관련[편집]


결론만 말하자면, 비판의 여지가 있는 위의 다른 논란들과 달리 병역에 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부족한 이해도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다.

생계곤란 사유로 병역이 면제[63]되었는데, 위의 학력 논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원인인 듯하다. 2004년 장혁, 송승헌, 한재석이 병역비리에 걸렸을 때 덩달아 논란이 되었는데, 어렵게 합격한 명문대를 포기해야 했을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고, 공소 시효도 지난 데다가 면제 사실이 밝혀졌을 당시에 이미 만 40세를 넘어버려서 민방위 대상조차 아니었기 때문에 큰 논란으로 번지진 않았다.

또한 상기의 연예인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할 게, 최수종이 징병 신체검사를 받았던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다. 이 때는 청년층의 인구 비율이 굉장히 높던 시절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자식 5명을 두는 것 정도는 기본이었다. 이러한 풍경은 90년대 IMF 전후까지 이어졌으나, 출산율이 2명 아래로 떨어진 세대들이 사회 활동을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는 사라졌다.

병역 자원은 넘쳤고, 거기에다가 군 복무 기간은 3년으로 지금에 비하면 현저히 길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거나 방위병으로 전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 군대를 가고 싶다면, 자원 입대를 하면 됐었다.[64] 1950년대생과 86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훈련소는 갔다왔어도, 군복무는 안 한 이들이 의외로 많다.[65]

그리고, 최수종보다 어린 정준하처럼 4대 독자라서[66], 박명수이윤석처럼 시력이 안 좋다는 이유, 최불암 시리즈 같은 유머 소재로 흔히 쓰인 평발 등등. 1970년와 80년대에는 현역 판정 비율이 40~50%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를 지니고 있었으면 병역 면제가 되거나 방위병으로 복무했으며 대학 등록도 못할 정도의 생계 문제면 면제 사유로 충분했다.[67]

따라서 다른 연예인들의 병역비리 논란과 달리 탈법적이거나 문제될 부분이 없으며, 여기에 딴지를 거는 사람도 적다. 비슷하게 생계 곤란으로 면제된 사람으론 리쌍, 배우 조정석이 있다. 오죽하면, 연예인 병역비리를 고발한 기사에서도 최수종은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지 못한 대중들의 착각이라고 후속 기사까지 냈을 정도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68]

7. 수상 경력[편집]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0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남자 인기상
서울뚝배기
1991년
4월 30일
제2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인기상

12월 28일
MBC 방송대상[69]
남자 우수연기상
춘사 나운규, 행복어사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남자 인기상
가족
1992년
12월 16일
MBC 방송대상[70]
남자 최우수연기상
질투, 아들과 딸
1993년
12월 30일
MBC 방송대상[71]
남자 최우수연기상
아들과 딸, 파일럿
1994년
3월 18일
제3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인기상
아들과 딸
1995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남자 인기상
바람은 불어도
1996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첫사랑
1997년
1997년
제10회 그리메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첫사랑
1998년
12월 6일
KMTV 가요대전
올해의 스타상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포토제닉상
야망의 전설
대상
1999년
1999년
올해의 명예 외대인상[72]

1999년
제11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73]
탤런트부문 출연자상
야망의 전설
4월 3일
제3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9월 3일
제26회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12월 9일
대한민국 최고 인기 연예대상
탤런트부문 남자연기상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남자 인기상
사람의 집, 사랑하세요
2000년
3월 8일
제1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남자 탤런트 부문 포토제닉상

2001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대상
태조 왕건
2002년
12월 28일
KBS 연예대상
특별상
자유선언 토요대작전 - 최수종의 골든볼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남자 인기상
태양인 이제마[74]
2003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특별상
저 푸른 초원 위에
2005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해신
2007년
12월 11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12월 31일
KBS 연기대상[75]
네티즌상
대조영
대상
2008년
9월 3일
제35회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대조영
10월 2일
제2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페스티벌[76]
남자 최우수연기상
2010년
3월 3일
납세자의 날
대통령 표창

2011년
10월 19일
가장 문학적인상
연예인부문

12월 2일
대한민국 휴먼대상
나눔인상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남자 연작·단막극상
KBS 드라마 스페셜 - 아들을 위하여
2012년
10월 25일
제1회 행복나눔인
보건복지부장관

2013년
3월 7일
국회대상
올해의 공로상

2014년
5월 31일
미스 아시아 퍼시픽 월드
슈퍼탤런트 서치 쇼 비즈 한류문화 탑 월드스타상

2018년
12월 17일
제23회 소비자의 날 KCA 문화연예 시상식
2018 관객이 뽑은 올해의 배우
하나뿐인 내편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with 진경)
남자 최우수연기상
2019년
4월 1일
제31회 한국PD대상
탤런트부문 출연자상
하나뿐인 내편
10월 2일
제12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연기대상
2021년
12월 25일
KBS 연예대상
공로상
살림하는 남자들
2023년
3월 3일
KBS
KBS를 빛낸 50인



8. 여담[편집]



8.1. 배우로서[편집]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극 레전드 배우로 유동근과 함께 꼽히는 경우가 많다. 특징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유동근은 조선 국왕을 여러 번 연기했고 최수종은 신라, 발해, 고려, 조선까지 여러 나라 왕을 골고루 맡은 편이라 역할은 또 안 겹치는 편.[77]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하는 선배, 성실한 후배로 존중하며 98년, 02년, 18년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사극 주역 경력 때문에 학원가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일부 강사들은 학생들 앞에서 농담삼아 역사왜곡의 첨병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 이처럼 고루 분포된 사극 배역들이 여러 보스들을 상대하는 와중에서도, 유독 거란과 상성이 좋지 않다. 대조영에서는 주인공 대조영 역을 맡아 거란 출신 설인귀, 이해고와 대립했고,[78] 태조 왕건에서는 그 유명한 만부교 사건을 일으킨 왕건 역을 맡았으며[79], 이제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아예 강감찬 역을 맡아 거란을 박살낼 예정이고, 히어로 갤러리에서 정복자 캉에 빗대어 정복자 최수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2018년 9월, 주말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주역으로 출연이 결정됨으로서 2011년 프레지던트 이후, 7년여 만에 현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고위층이 아닌 서민층의 아버지로 출연하게 되어[80]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더불어, 박상원과도 호흡을 한다는 것에 더더욱 주목되었다.

  • 사극 연기를 할 때는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현대 한국어에서는 잘 구분되지 않는 장단음을 일일이 체크해서 발음한다고 한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들은 임혁, 한인수 등의 사극 전문 선배 배우들에게 직접 물어본다고 한다.

  • 같은 선역 배우라고 하더라도 박상원이나 김동현처럼 억지로 선역을 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얼굴이 진짜 주인공 상이다. 박상원은 너무 특징 없이 밋밋한 인상 때문에 악역 연기자가 갖춰야 할 강렬한 임팩트가 없고, 김동현은 되려 악역에 더 가까운 얼굴로 선역을 해서 괴리감이 크지만 최수종은 진짜로 선역에 걸맞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얼굴이다.[81]

  • 현대극을 더 많이 하던 20대~30대 때는 가족식사 장면이 많았는데, 모든 촬영이 끝나고 나서 시간이 비면 소품인 음식을 다 먹기도 했고, 본인의 대사가 적어서 연결에 문제가 없는 장면이면 많이 먹은 적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절약정신 때문에 아까워서 먹었다고 하는데 의외로 소품음식이 맛있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촬영종료 후 버리는 게 아까웠다고. 20대 후반~30대 때는 예능 진행과 출연도 많이 했기에 촬영장 비화도 한번씩 방송에서 스스로 말하곤 했었고, 이 이야기는 90년대에 같이 연기한 배우가 최수종이 진행하던 방송에 출연하자 소품음식을 가장 잘 먹는다고 말하는 바람에 본인도 말했었다.

  • 드라마에서 늘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 극적으로 생존한다. 야망의 전설에서 사형을 당할 위기였는데 형인 유동근이 구해줬고 첫사랑에서는 군 복무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의식을 잃어 병원에 누워 있었지만 깨어나게 된다. 저 푸른 초원위에에서는 희귀에 걸리지만 수술해서 완치하게 되며, 태조 왕건대조영에서는 전쟁결투로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되고 전우에서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는다. 프레지던트에서는 총격을 당하게 되면서 생명에 위협을 받지만 경호원들의 경호로 살아남는다. 하지만 드라마 해신에서는 염문 역의 송일국에게 칼에 찔려 사망하면서 연기 데뷔 17년 만에 죽는 연기를 하게 된다. 대왕의 꿈에서도 병환으로 사망하고, 영화 철가방 우수씨에서는 중국집 배달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 1박 2일 시즌 4 완도 특집에서 사극 장면을 모아놓은 다음에 역사 인물을 맞히는 퀴즈를 한 적이 있었는데, 출연자(+시청자들) 모두 "똑같은 사람만 보여주고 누가 누구인지 고르라니 말이 되냐?"고 항의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해당 인물들을 연기한 사람이 모두 최수종이었기 때문이다. #[82]

  • 카리스마도 대단해서 드라마 전우 촬영 당시 최수종을 때려야 하는 신에서 그걸 맡은 후배 배우들이 속으로 죽을 맛이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 야망의 전설을 촬영했을 당시 폐소공포증이 생겨버려서 오랜 기간 동안 고생했다고 한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와야 할 정도였다고. 최수종이 상당한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1998년 연기대상 대상과 1999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으며 최수종 최고의 연기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야망의 전설은 대부분 인정하는 편이다.

  • 촬영장에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고 한다.[83] 인심 또한 후한 편이라 대왕의 꿈 한 화분 촬영 뒤, 회식 자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뜰 때까지 자기에게 사인 요청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고 한다.

  • 드라마에서 주로 선한 인물 역할을 맡은 편이다. 사실 한국 사극 자체가 주인공은 한없이 선하기만 한 영웅상을 그리는 경우가 많아서 최수종이 주인공을 주로 맡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크다. 즉 선역만 맡은 게 아니라 한국 사극의 고질병 때문에, 주인공을 맡다보니 저절로 선역 위주로 맡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한국 사극이 이런 클리셰에서 웬만하면 벗어나려는 추세다 보니 최근작에 가까운 대왕의 꿈의 김춘추는 양면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로 연기한 편이다.[84] 다만 악역을 아예 안 맡은 건 아닌데, 과거 1990년대 중반 KBS 주말 예능에서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최수종의 파우스트>란 코너에서 메피스토펠레스를 모델로 한 악마를 열연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절망에 빠진 인간들 앞에 홀연히 나타나 교묘하게 계약을 이끌어내고 마지막에 나락에 떨어트린다는 내용.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85] 다만 자기가 당하는 에피소드들도 나왔는데, 하나는 사고로 사망한 영혼을 타락시키려고 했지만, 그가 연인의 행복을 빌며 타락하지 않자 데꿀멍해버렸고, 최종화에서는 자신이 계약시킨 한 인간이 나락에 떨어진 끝에 자신의 후배 악마가 되는 장면이 있는데 홍경인이 너무 잘해 최수종은 짤려버리는 장면도 나온다.[86]

  • 본인도 자신이 계속 선역, 주인공 위주로 배역을 받다 보니 되려 이를 질려하고 있다. 그래서 악역, 그것도 사연이 있는 악역이 아니라 완전히 천하의 개쌍놈 역을 한 번쯤은 맡아보고 싶다고 한다.#

  • 대왕의 꿈을 촬영하다가 진짜로 생사를 오간 적이 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씬을 찍다가 말이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대형 사고가 났는데, 그 말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낙마한 최수종은 바닥을 막 뒹굴다가 하수구에 처박히면서 오른쪽 등 어깨뼈가 골절되는 중상까지 입었다가 겨우 살아났다.[87][88] 거의 죽다 살아났다는 말에 적합할 만큼인 사고를 당했음에도 최수종이 진짜 대단하고도 무서운 게, 등뼈가 아직 완치되지 않았는데도 수술한 지 2주 만에 퇴원해서[89] 그냥 아랑곳하지 않고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면서 촬영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사극을 촬영할 때 특유의 복식으로 끌어올리는 발성을 하다 보니, 대사를 할 때마다 온몸이 울려 통증이 극심하게 몰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극 중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언성을 높이는 장면에서는 대사 한마디하고 통증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쉬고 다시 한마디 하고를 반복했다. 다만 아쉽게도 드라마는 흥행에 실패했고, 이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최수종의 중도 부상으로 인한 연기 공백도 그중 주원인 중 하나가 돼버렸다. 즉, 이 당시 최수종에겐 정신적, 육체적으로써의 침체기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굉장히 힘들던 시기였다.

  • 여배우들 중에서는 채시라와 7번이나 같은 작품을 찍었으며, 아내인 하희라와 5번, 최진실/염정아/이승연과 3번, 김지수/이응경/오연수/이미연/이인혜/채정안과 2번의 작품을 함께 하였다.30년이 된 연기 인생 중에서도 현재까지 SBS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없다. 다만 2003-2004년 예능 최수종쇼의 MC를 맡은 적이 있으며 2018년 2월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 출연하는 등 예능 프로그램에는 나온 적이 있다. 데뷔는 KBS로 했으며 청춘 스타 시절에는 MBC에도 자주 출연했으나, 40세 이후로는 대부분 KBS 위주로 출연하고 있다.[91]


8.2. 사생활[편집]


  • 선하고 이쁘장했던 외모와 왜소해 보이는 체격[92]과 달리, 생각보다 한 주먹 한다고 한다. 권투를 배운 적도 있다고 하는데, 권투 꽤나 한다는 이계인수종이 싸움 잘한다며 이동준 같은 놈 아니면 수종이랑 붙으면 맞아 죽는다고 언급했다.[93][94] "사랑하세요"라는 주말 드라마에서 복싱 선수 역할을 맡을 당시 전 복싱선수이자 절친인 조성규에게 복싱을 배웠다. 그 외 발언으로는 해동검도의 창시자 겸 배우인 나한일의 말에 의하면 연예계에서 임성훈을 제외하면 주먹으로는 적수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95]

  • '생긴 것과 달리 실전 강자' 라는 최수종의 이미지 때문에 뜬금 없이 피해를 본 사람이 있으니 바로 최민수다. 워낙 터프가이 이미지가 강했던 최민수였기에 최민수를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최민수가 그런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주먹이 약하다는 소문이 많이 돌았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쎈 척하고 폼잡던 최민수가 진짜로 싸움 잘 하는 사람한테 잘못 걸려 된통 맞았다더라' 는 식의 루머도 많이 돌았는데 여기서 '진짜로 싸움 잘 하는 사람'에 자주 언급되던 연예인 중 하나가 바로 최수종이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 최수종의 싸움 실력이 알려진 터라 최민수와 달리 최수종의 전투력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맘에 들지 않는 최민수를 혼내주는 인물로 최수종이 자주 꼽현던 것으로 보인다. 최수종 본인은 이런 루머에 대해선 일절 언급한 바 없으며 피해자인 최민수는 여러 방송에서 직접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역사가 족히 2~30년은 넘어가는 아주 오래된 루머지만 그 긴 세월동안 딱히 믿을 만한 증언이나 증거는 전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카더라 수준의 뜬소문이었고 이제는 세월이 너무 지나갔기에 기억하는 사람도 많이 줄어들었다.

  • 싸움 뿐만 아니라 운동 신경이 좋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청소년 시절 축구선수를 해봤던지라 연예계에서 축구 잘하는 사람하면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96]. 그래서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해서 최수종의 골든볼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한국 연예인팀의 일원으로 일본 연예인들과 친선 축구 경기를 가진 적도 있다. 축구가 아니더라도 나한일의 말에 의하면 평소에 단련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고 한다. 운동신경이 탁월하다는 점도 그가 사극에서 장군 역으로 자주 캐스팅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과거 출발 드림팀이나 각종 예능 등에서 축구나 운동하는 모습들을 보면 예사 운동신경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다. 두산 베어스와의 서바이벌 영광의 탈출이란 대결을 했었는데 무술인 이상인과 도루왕 정수근과 함께 결승전까지 갔었고 3명중에 달리기가 제일 빨라서 우승은 기정사실이었지만 발목이 접지르는 바람에 기권했고 이상인은 정수근한테 패배하게 된다. 이때가 38세었으니 정말 말도 안되는 운동 능력의 소유자.

  • 축구 사랑으로는 단순한 팬을 넘어선 수준. 새벽 4시까지 촬영을 하고 돌아와 딱 1시간만 자고 바로 나가기 위해 축구복을 입고 잘 정도라고 한다. 뭉쳐야 찬다에 나가 58세라고 믿기지 않는 스피드와 탈압박 및 좋은 킥력을 보여주며 연예계 메시란 걸 증명했다. 연예인 축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97]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25년 정도 젊은 34세가 나왔다. 다만 운동신경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져서 양반다리는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극에서 양반다리가 필요할 때는 저고리로 감춘다고.

  • 평소에는 화를 거의 안 내는 성격이라고 하는데 축구할 때만 되면 승부욕이 강해져서 화를 자주 낸다고 한다. 얼마나 심한가 하면 아들과 함께 축구하는 중에도 시합이 잘 풀리지 않자 소리를 지를 정도이고, 친한 선배 연기자인 이덕화의 증언에 의하면 시합하다 지거나 다치면 짜증을 낸다고 한다. 하희라도 최수종이 평소에는 얌전한데, 축구할 때만 되면 거칠어져서 늘 다칠까봐 걱정이라고 한다.

  • 당연한 말이지만 호흡이 긴 대하 사극을 여러 번 해보았다는 점과 기본적으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탓에 우리나라 배우들 중에서도 승마 실력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는 소문도 있다. 또 붓글씨도 꽤 쓸 줄 안다고.

  •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고 한다. 해신 촬영 당시 어떤 후배 연기자가 2시간이나 지각을 하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섭게 꾸짖었다고 한다. 실제 라디오를 할 때도 10시 시작이라면 7시에 미리 나와있고 유퀴즈에 나온 바로는 분장차도 안 나온 시간대에 미리 가 있는 듯하다.

  • 아내인 하희라와는 한국 연예계에서도 가장 깨가 쏟아지는 잉꼬부부.[98] 기념일마다 언제나 다른 이벤트를 개최해준다.[99]그리고 아내인 하희라와 자식들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100] 인스타그램에서도 변함 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벤트의 황제답게 각종 기념일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그가 유일하게 하희라의 생일을 깜빡한 적이 있었으니, 2004년도에 중국에서 드라마 해신을 촬영할 때였다고 한다. 그 이후 하희라가 연극을 마치고 축하를 해줘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중국에 있었던지라 본인이 직접 축하해주지는 못하고, 친한 선배인 이덕화에게 축하 편지를 낭독하는 걸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덕화는 그 내용이 너무 닭살스러워서 본인이 다 읽지 못했다고 했다...중요한 건 낭독을 듣던 하희라는 울었다고. 이러한 애정 행각 덕분에 최수종과 교분이 있는 연기자 남편들은 "집에 들어가면 최수종 선배처럼 해달라고 해서 죽겠다."며 통사정을 할 정도라고 한다.[101][102] 오죽하면 최수종과 하희라가 같이 나오는 TV 회차를 본 한 네티즌이 대한민국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수종을 3,000명 복제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자, 그 말에 다른 네티즌이 그 3,000명의 복제품 최수종은 하희라만을 쫓아다닐 거라는 답변을 했다. 최수종 본인은 자신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성격이 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103]

  • 역시 연예계의 애처가로 익히 알려진 차인표는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도 애처가라는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최수종 선배의 스케일이 너무 커 자꾸 주눅들고 신애라의 눈치가 보인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이재룡 또한 예능에 출연하여 차인표와 비슷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104]

  • 2023년 2월 22일, 배우 최수종 하희라 측이 이혼을 언급한 가짜 뉴스에 강경 대응을 선포했다.#

  • 슬하에 1남 1녀가 있는데 딸 최윤서는 아내 하희라를 쏙 빼닮아 화제가 되었다.

  • 청춘 스타의 연애가 지금보다 더욱 금기시되던 시절 최수종과 하희라의 열애설은 오랫동안 카더라로 떠돌았고 둘이 결혼에 골인했을 때는 드디어 결혼했네 라는 반응이었다. 당시 하희라와 절친이었던 신애라는 두 사람이 사귀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하며, 아역배우였던 정태우도 당시 하희라랑 드라마를 함께 했었던 덕분에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 이덕화와는 세대와 나이를 초월했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최수종은 이덕화를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하며 이덕화 또한 최수종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희라가 유산을 4번이나 하는 아픔을 겪은 후에 다시 아이를 가졌을 때, 이덕화가 토종붕어 월척급 이상 100여마리를 잡아다가 고아서 먹게 해줘서 순산을 할 수 있었으며, 그 일을 겪은 후에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덕화와는 서로 가족같은 관계라고 칭할 정도이며, 심지어 아내인 하희라에게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더라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 이덕화와 배우로서는 대조영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원수 사이로 나온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21세기 들어서 한 다큐를 제외한 한국사극의 유이한 강감찬 역을 한 사이가 되었다.

  • 2000년대 들어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1990년대에는 코믹 댄스로 일세를 풍미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코믹 댄스=최수종으로 통할 정도.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 막춤을 춰 대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인 하희라가 춤추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하도 잔소리를 들어서인지 나중에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하)희라가 이미지 망가진다고 춤추지 말랬는데..."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춘다.


  • 과거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여 학창 시절 은사를 찾았지만 수소문 끝에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남자다운 이미지가 강하지만 동시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마음이 여린 부분이 많아서, 생각보다 쉽게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데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했을 때에는 자신이 영화에서 연기한 캐릭터 김우수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꾸 눈물이 터져 진행이 힘들고, 본인도 민망해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스승님이 돌아가셨다면 울음이 터질 만도 하다.

  • 대조영에서 자기의 아버지 역할이었던 임혁을 방영 이후에는 실제로도 아버지처럼 모신다고 한다.


  • 집사부일체 사부로 나와서 말하길, 자기 아이들에게 존댓말로 대화한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 전화통화로 아들과 존댓말로 통화하는 것을 보여줬다. 멤버들의 데꿀멍한 표정은 덤. 다만 이를 두고 부모는 자식에게 존댓말하면 같은 위치로 보기 때문에 보기 안 좋다 vs 반말 해대고 서로 어려워하는 자식-부모보다 훨씬 보기 좋다로 의견이 충돌하였다. 최수종은 자식들에게 존대를 하는 이유를 하희라가 4번의 유산을 거치고 어렵게 가진 자식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2020년 9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가족사진 촬영 대기 중인 자신과 딸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어머니 하희라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은 딸의 미모도 미모였지만, 딸과 함께 서있는데도 전혀 아버지처럼 보이지 않는 최수종의 동안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하희라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 부부 연기대상 1호이다. 참고로 2호 부부는 유동근 & 전인화 부부이다.

  • JTBC 관찰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의 개편 첫 방송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부부생활 가정생활전문가 선생님으로 학생 최양락을 괴롭게 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맞는 말이고 납득하게 되는 면이 있어, 출연진에게 공감을 샀다. 최양락과 티격태격하는 콘셉트였지만 둘이 조화를 잘 이루기도 했다. 여성 패널들의 호평 덕분인지 1호가 될 순 없어의 최초 2회 출연 게스트가 되었다.

  • 2021년 6월 12일, 오후 서울 근교 한 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친선 축구 경기 도중 오른팔 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러지는 다발성 골절로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인근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뒤, 남양주 소재 병원으로 옮겨 이튿날 오전 긴급 수술을 받았다. 6월 21일, 소속사 측에서는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녹화 현장에 깁스를 하고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촬영을 강행했으며 크게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현재 출연 중인 예능 활동은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고 해서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기로 했다. 통증이 오면 약을 조금 먹으면 된다. 문제 없다.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방송에서 '조금 다쳤어요' 할 수 있었는데 조금 민망하다."고 밝혔다.# 본인 인스타그램에 수술해 준 의사분들과 걱정해준 분들께 감사 인사를 하면서 아내 하희라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글을 올렸다.#

  • 서인석의 언급으로는 태조 왕건 시절에 왕을 상징하는 백마가 1마리밖에 없어서, 두 사람이 함께 돌아가면서 탑승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수종에게는 얌전하게 따르는 백마가 서인석이 타려고 하면 막 반항을 하면서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인석이 최수종에게 왜 그 녀석이 너한테는 말을 잘 듣는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어서 안 가르쳐준다고 했다고 한다. 이에 서인석이 간곡히 부탁을 하자, 아침에 와서 말을 만날때마다 큰 눈을 쳐다보면서 오늘도 우리 함께 고생하는데 날 좀 이쁘게 봐주라고~ 하면서 각설탕과 당근을 줬다고 한다. 그래서 최수종이 말한대로 따라했더니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결국에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 방송서 집 인테리어가 공개된 적이 있는데 모던한 인테리어로 화제가 됐다. #

8.3. 동안[편집]


  • 역시 탁월한 신체 관리를 꽤 잘하는 걸로 봐서도 동안이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기준 환갑을 지난 진갑으로 61세다. 이만기가 모 방송 프로에서 최수종에게 "민증 까자" 했다가 최수종이 자기보다 1살 많은 걸 알고 데꿀멍했다. # 훗날 뭉쳐야 찬다에서 최수종이 자신이 이끄는 일레븐FC를 대동하고 이만기랑 재회를 했는데, 최수종의 발언 중 이만기가 무심코 팔짱을 끼고 있는 걸 캐치하고 "만기야 팔짱 좀 풀어라." 라고 했고 이만기는 바로 팔짱을 풀고 급 공손 모드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심지어 우현보다도 연상이다. 몸무게는 30년 째 70kg 이하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JTBC 관찰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의 개편 첫 방송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최양락과 친구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며 최수종이 최양락에게 이름을 부르면 장인어른에게 하극상하는 사위같다면서, 코미디언 친구 최양락에게 대굴욕을 선사했다.


  • 1992년작 질투(드라마)에서 그는 최진실과 동갑내기 친구로 나온다. 하지만 당시 최진실은 24살, 최수종은 30살로, 실제로는 최수종 쪽이 6살 연상이었다. 게다가 이건 최진실의 친척오빠인 최재성(1964년생)보다도 최수종이 2살 연상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 둘이 나이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온다. 당시 최진실도 또래에 비해 상당한 동안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부분이다. 작중에서 최수종은 이응경보다 4살 어린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최수종 쪽이 이응경보다 4살 연상이다.

  •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배우로 데뷔했지만 30대에도 주로 20대 청년 역할을 맡았다.[105]

  • 동갑내기로는 최민식, 최민수, 손병호, 이혜영, 이혜숙, 김홍파, 최명길, 김청 등이 있으며, 노안 배우로 유명한 이재용보다 1살 연상, 김응수보다 1살 아래다.[106]

  • 본인이 상당한 동안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상대 여배우들은 대부분이 그보다 연하였다고 한다.

  • 최수종과 비슷한 60년대생 동안 배우를 꼽자면 한 살 위인 정보석과 3살 아래의 전인화, 4살 아래 김희애가 있다. 하지만 그 정보석도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백발이 조금씩 생기는 등으로 최수종 만큼은 젊어보이지는 않지만 정보석도 비슷한 나잇대를 생각하면 아직까지 잘생긴 외모를 유지해서 상당한 동안이다.[107]

  • 워낙 자기관리를 잘해서 최수종이 자신의 나이보다 10살에서 많게는 15살정도 어려보인다. 그래도 나이는 많아져서 50대인 2010년대 들어서서 점점 나이가 든게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으며, 60대에 접어든 2020년대 들어서서는 흰머리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얼굴도 조금씩 노화가 와버려서 아무리 동안이라도 세월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 그래도 비슷한 연배의 일반인 남성들은 얼굴도 늙고, 손주도 생겨서 할아버지가 된 경우[108]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109] 여전히 상당한 동안이다.[110] 아직도 4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긴 한다.
[훈음] 빼어날 마루 [1] 프로필상의 생일은 12월 18일이지만, 최수종이 18일이 아닌 28일생이라는 팬들의 글이 몇 번 올라왔고, 최수종의 트위터 글을 옮기는 계정에 과거 최수종이 18일이 아니라 28일이라고 말한 글이 남아 있으며, 2020년에 28일로 지낸 것으로 보아 실제 생일은 12월 28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2] 키, 몸무게, 혈액형은 다음 프로필 기준이다.[3] 前 가수 조하문의 아내, 前 연기자. 유인촌과 상대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4] 출처[5] 어릴 때 집안 사정으로 부산으로 이사해서 살았다고 한다.[6] 2017년 11월 19일 자로 장로 장립을 받았다.[7] 정식데뷔 이전에는 광고모델로 활동해왔다.[8] 무려 씨름왕 이만기, 배우 우현보다 나이가 많다. 특히 이만기는 동반출연했던 여러 프로그램에서 최수종이 '만기!' 하고 부르자 이만기가 '예?' 하고 존대를 하여 다른 출연자들로 하여금 여러 번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9] 주말을 집안의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는 날로 정하여 주말이면 아버지가 최수종과 최수종의 남동생을 데리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10]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포트모건 칼리지(fortmorgan college)를 1년간 다님.[11] 직책은 드라마 장르의 제작 총괄 및 연출자.[12] 토론토 주사랑 교회에서 최수종이 직접 간증한 내용.[13] 최종회에서 시청률 65.8%를 찍었다. 25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다만 이것은 한 회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고 드라마 전체의 평균 시청률이 최고인 작품은 사랑이 뭐길래이다.[14] 이 때 전년도,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으로 대상을 수상하여 시상자로 나온 유동근의 시상 발표가 백미. "전년도에 제가 수상했죠. 이제 (극 중의) 동생이 탈 차례인가 봅니다. 대상!!~~" 참고로 백상예술대상도 1998년 최우수가 유동근, 1999년이 최수종이었다.[15] 사실 연기할 때만 그렇지 예능에서의 모습을 보면 최수종은 중년이 된 이후에도 발랄하고 장난끼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6] 재미있는 점은 20대 시절 출세작인 첫사랑에서 신숭겸의 무덤을 찾아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본인이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의 주군인 왕건으로 나오게 됐다.[17] 이 드라마가 방영하기 몇 달 전에 이미 KBS에서 한중록을 다룬 하늘아 하늘아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하희라였다.[18] 이 작품이 그의 첫 사극 연기였는데, 본인이 직접 이 당시의 사극 연기는 발연기였다고 인정했다.[19] 초기에는 궁예 역의 김영철이나 견훤 역의 서인석, 종간 역의 김갑수의 카리스마에 밀리는 감이 있었으나, 명백한 주연으로 등장하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폭풍간지였다. 다만 이 때는 최수종이 워낙 오랜만에 왕 역할을 맡다 보니 가래 끓는 소리가 거슬린다는 의견이 꽤 많았다. 이런 발성법의 문제는 차기 사극 출연작인 해신에서 상당 부분 해소된다.[20]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배우 주상욱이 있는데, 또한 현대극 위주로 활동하다가 2021년, 5년 만의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으로 출연하였는데, 캐스팅 사실이 알려졌을 때 이방원과는 거리감이 있고 너무 현대적으로 생겼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그도 1회 첫 장면부터 소름돋는 연기력으로 우려를 잠재웠으며, 감정에 약하고 미숙한 초반에서 점차 냉정하고 잔혹해져가는 모습을 잘 연기해내어 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며 맥이 끊어졌던 KBS 대하드라마의 부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정통사극 팬들은 물론,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을 맡은 유동근 또한 주상욱의 연기력을 극찬하며,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제 2의 최수종이라고 불렸다. 실제로 극 중 주상욱의 모습은 최수종과 상당히 흡사하다. 참고로 최수종과 주상욱 둘 다 장보고를 연기했었다.[21] 우연의 일치인지 최수종의 이름 한자 표기에 쓰는 종 자가 임금들에게 쓰는 마루 종(宗)자이기도 하다.[22] 참고로 이 드림팀 구성원은 최수종(왕건), 김영철(궁예), 김시원(수달), 김형일(신숭겸), 정태우(최응) 등으로 역대 최고령 팀이었다. 그 때문에 난이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자 중년들이 전부 탈락하고 정태우만 남아 분전하다가 결국 졌다.[23] 무려 최민수, 최민식과 동갑이다. 잘 살아보세에 출연했을 때는 이만기보다 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서 모두를 경악케 만들었다.[24] 다만 당대 사극에서는 웬만큼 비중 있는 역들은 실제 인물의 나이를 불문하고 중견급 이상의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에 딱히 최수종의 동안 외모만이 특별한 요소라고 볼 수는 없다. 당장 위에서 궁예 역을 맡은 김영철은 당시 40대 후반의 나이였음에도 아주 어린 시절 아역배우가 나온 걸 제외하고 궁예의 10대 시절부터 말년까지 죄다 커버했으며, 책고이자 정신적 지주인 종간 역의 김갑수도 역시 10대부터 말년까지 쭉 나왔다. 라이벌인 견훤 역의 서인석은 무려 50대 초반이었으나 마찬가지로 20대부터(사실 견훤은 14살부터 신라 군인으로 복무했으니 작 초반부 첫 등장 때는 더 어린 나이 설정이었을 수도 있다.) 말년까지 전부 맡았었다. 그리고 주연급을 제외하고도 2000년대 초반 사극들은 중견배우 위주로 기용하느라 역사 인물의 당시 나이 고증에는 좀 무신경한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태조 왕건에서 20~30대 정도였던 후삼국시대 신라 왕들을 중년~노년 배우가 연기한 것이다.[25] 본인은 악역을 맡고 싶어하기도 얘기했으며 실제로 1997년 MBC 납량특집 드라마 '불꽃놀이'에서는 1인 2역 쌍둥이로 한쪽은 선역, 한쪽은 악역으로 열연하기도 했다.[26] 최수종은 이에 꽤나 충격이 컸는지, KBS 대하드라마 광개토태왕의 담덕 역할을 고사했다.[27]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이와 비슷한 배우개그가 나왔었다.[28] 여기서 태조 왕건 시기 자신이 세운 나라의 황태자인 대광현이 데려온 발해 난민을 받아준 적이 있다.[29]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송강호가 있다. 송강호는 근현대사 영화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30] 실제로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서번트 적성에 맞게 최수종을 합성한 그림도 나올 정도였다, 그 외 사극에 자주 출연한 배우로 모든 서번트 적성을 맞출 수 있는 다른 배우들로는 유동근, 김영철, 송일국도 같이 언급되었다.[31] 이 사고로 최수종이 탄 말은 죽었다.[32] 사실 미 SNL 본편에서 인기 있었던 디지털 숏컷 앤디 샘버그의 '저주'편을 한국 SNL에서 거의 그대로 재활용해 만든 것. 세르지오의 저주 한글 자막판[33] 여담으로 이 대본에서 주연 역할로 단군이 나왔는데 실제로 최수종이 유일하게 한국사에서 담당한 적이 없었던 시기가 고조선 시기이긴 하다. 물론 그 이전에 애초에 한국 사극 중에 고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 자체가 별로 없었다는 게 흠이었다.[34] 캐릭터의 행보가 점점 발암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35] 한국전쟁 6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전우에서 주인공 이현중 역할을 맡았었다.[36] KBS 대하드라마 기준으로 보면, 대왕의 꿈 이후 10년 만에 대하드라마로 복귀한 셈이다. 임진왜란 1592는 KBS 다큐국에서 기획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이다.[37] 실제로 묘호에서 쓰는 종(宗)자를 쓴다. 다만 전통적인 시법에서 빼어날 수(秀) 글자를 쓰지는 않는다. 최수종 전용 시호[38] 왕건 이후 최수종이 맡은 조선시대 인물 배역은 태양인 이제마에서의 이제마와 임진왜란 1592에서의 이순신 역할이 전부다.[39] 1인 2역의 쌍둥이 역할.[40] 태조 왕건 후속으로 방영되었던 제국의 아침(태조왕건 처럼 이환경 작가가 맡았다.)에서도 왕건의 최후를 연기할 예정이었지만당시 기사 내용 어떻게 된 일인지 출연하지 않고 배우 이문수가 대신 맡았으며 대신 죽기 직전의 회상에서 잠깐 출연하였다.[41] 실존인물인 박태준 포스코 초대 회장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42] 모종의 이유로 신분세탁을 하는 역이라 이름이 두 개다. 후자가 본명이다.[43] 그나마 최수종과 시청률로 맞먹는 배우는 채시라, 최진실, 아내인 하희라 정도.[44] 참고로 최수종과 상대역으로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춰온 배우가 채시라이다. 무려 7편의 작품에서 같이 출연했는데, 단막극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1990)를 시작으로 아들과 딸(1991), 파일럿(1993), 야망의 전설(1998), 해신(2004)은 성공했고, 사람의 집(1999)도 25% 정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조선왕조 오백년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최소 중박이상 대부분 대박일 정도로 두 사람이 같이 나온 작품들은 망한 작품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사이도 좋고 연기자로서도 인정하는 편이라고 한다.[45] 최진실과도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1988)을 시작으로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1990), 질투(1992), 장미의 전쟁(2004)까지 4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최진실과도 상당히 친한 사이여서 최진실이 친근하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따를 정도였고 그녀가 이혼 이후 복귀하는 데 고초를 겪을 때 그녀를 추천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살하기 며칠 전에 거리에서 만나서 밥도 사줬다고 한다.[46] 하나뿐인 내편의 최고 시청률 49.4%를 넘는 KBS 주말드라마는 무려 20년 전인 야망의 전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이마저도 최수종 주연작이다. 야망의 전설이 방영되었던 1998년에는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았고 종편도 없었으며 케이블 TV는 막 태동기였다. 시대를 감안하면 2010년대 후반의 50% 시청률은 정말 엄청난 기록인 셈.[47] 하차했다.[48] 8월 23일 결방[49] 하나뿐인 내편[50] 스타들의 발자취 돋보기, 스타줌인 최수종[51] 하나뿐인 내편[52] 하나뿐인 내편 종방연 현장[53] LIVE 초대석[54] 조태관[55] 최수종의 아기 사랑을 담은 육아무크[56]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그가 통일교 계열사의 광고를 찍어줘서 개신교계 내부에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최수종은 당시 받은 모델료로 가족들을 단칸방에서 편한 곳으로 옮겨주려 했던 듯하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에 찔리게 되자 어머니의 충고로 전액을 기부하게 되었다고 한다.[57]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출연하는 광고이다.[58] 최수종의 스케줄이 워낙에 바빠서 남기남 감독이 하루 날을 잡고 클로즈업, 표정샷만 잔뜩 찍은 다음 뒷모습이나 복면쓴 장면은 대역을 활용해서 찍은 다음에 편집을 통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재빨리 영화를 만들다보니 최수종이 신기해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59] 방학 무렵에 개봉해 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얻었다.[60] 그 대부업체가 2015년 현재 한국계 일본인 성우 Pile이 출연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부업체와 같은 곳. 과거에는 미래저축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으나 현재는 일본 기업인 J TRUST가 인수하여 친애저축은행이 되었다. [61] 2005년에 국제통상학과로 학과명이 바뀌었다.[62] 그러나 21세기가 된 지금의 한국 대학들은 최수종 시절보다 학사 관리가 훨씬 엄격해졌기 때문에, 들어가기만 하면 졸업도 거의 자동으로 가능한 대학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소위 지잡대라고들 불리는 하위권 대학들은 졸업률이 낮아지면 대학평가에서 받는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자퇴나 범죄 등으로 인한 퇴학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히 공부를 안 해도 졸업을 못할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명문대들은 졸업률에 목 매지 않고 학사 관리를 엄격하게 해도 학생들이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졸업 요건도 과거보다 오히려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명문대에서는 공부에서 조금만 손 떼도 졸업이 멀어진다. 다만 대학원은 (의전원, 치전원, 한전원, 법전원을 제외하고는) 학부와 반대로 입학이 쉽고 졸업이 어렵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 한국에서 학력을 학부 학벌 기준으로 판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해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도 학부로 학벌을 가른다. 특히 아이비리그나 유명 주립대들은 학부 출신들끼리 동문회를 만들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다.[63] 복무중에 가정형편으로 전역하는 경우는 의가사 전역이라고 한다. 흔히, 의병전역도 의가사전역으로 잘못 말하는데 의병전역은 병을 얻어 전역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64] 이는 후속 세대인 70년대~80년대 초반 세대까지 적용되었다. 2000년 한국 영화인 청춘에서도 "나도 할 거 없으면 그냥 군대나 갈까?" 하는 김래원의 말에 김정현이 "죽고 싶냐?"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65] 게다가 86세대는 그 검정 고무신이기영의 또래 세대이다. 따라서 스무살이 되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들이 많았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던 시절도 아니였다. 이들이 20대일 때에는 제5공화국 시대였던지라 마음만 먹으면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막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에도 돈이나 권력있는 집안에서 해외유학이나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서 의도적으로 패스트푸드를 잔뜩 먹어 비만이 되거나 뇌물을 주는 등의 행위로 의도적으로 군대를 빼는 경우는 많았고, 중산층 이하 가정이라도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학력이 뒤떨어지거나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감방에 가는 등의 사유가 있으면 군대를 뺄수는 있지만, 일반 중산층 가정에서 이랬다가는 대기업 직장이나 고위급 공무원같은데 자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큰 행위였다. [66] 1990년대 초반까지는 부모 두 명이 모두 60세 이상이거나 아니면 아버님이 사망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든가 아버지도 외아들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면 6개월만 방위병으로 복무하면 되었고, 정준하 같이 3대 독자 이상이면 아예 합법적으로 군면제가 가능했다.[67] 부 선망 독자는 6개월 방위였고, 생계 곤란과 고졸 미만 두 가지는 하나씩이면 방위병이지만 이에 부선망 독자 포함 조건 두 가지 이상이 겹치면 면제가 가능했다. 최수종은 누나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여자는 성인이라도 공무원 같은 확실한 직업이 있는 게 아니면 부양할 경제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사기업은 물론이고, 공기업, 심지어는 정년 보장이 당연시되는 직업인 교사나 공무원이라고 해도 결혼을 하고 임신하면 여자는 당연히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호주제가 있던 시절이라 그나마 시집을 갔다면 완전히 가족에서 빠진다.[68] 그렇게 치면 4대 독자인 정준하도 조사 받고 그래야 한다. 시대적 차이이니 이건 이해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솔직히 유승준, MC몽, 석현준, 일부 정치인이나 기업인 자제들 등처럼 법적인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69]MBC 연기대상.[70]MBC 연기대상.[71]MBC 연기대상.[72] 공식 수상 기록으로 여러 사이트에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있으나 위에서 상술했듯이 본인이 거절했다.[73]한국PD대상.[74] 1990, 1991, 1995, 1999 이어 다섯 번째 인기상 수상이다.[75] 1998, 2001 이어 세번째 연기대상 수상이다.[76]코리아 드라마 어워즈.[77] 다만 태조 왕건 이전에 맡은 배역은 하나같이 비운의 세자인 사도세자, 또 그 후손인 철종을 맡는 등, 큰 재미를 못 봤지만, 이순신 역을 맡으며 최수종이 조선시대에 기를 못 폈다는 징크스를 깼다. 거기에다 왕은 아니지만 해상왕도 해봤고 대한민국 대통령 역할도 한 번 맡았다. 참고로 그 유동근과 함께 사극에 출연한 적은 아직까지는 없지만, 시대극인 야망의 전설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형제 연기를 보여주었던 적이 있다.[78] 그래도 이 때에는 거란 자체는 우방에 가까웠다.[79] 태조 왕건은 후삼국이 통일된 시점에서 종영되었기에 만부교 사건은 드라마상에 나오지 않았다.[80] 딸 역할은 유이가 맡는다고.[81] 다만 처음 태조 왕건에 캐스팅되었을 때는 왕과 어울리는 얼굴이 아니라고 비난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명실상부 왕의 얼굴. 유퀴즈 출연 당시 소개 영상에서도 왕의 관상으로 나온다.[82] 여담으로 해당 영상에서 1번은 왕건, 2번은 장보고, 3번은 대조영, 4번은 이순신, 5번은 김춘추이다. 해당 문제가 '장보고는 누구인지'이기 때문에 답은 2번인데...[83] 발성 자체로만 보면 호불호는 있다. 흔히 연극이나 사극 연기하면 떠오르는 굵고 울림이 큰 발성이 아니라 다소 쥐어짜내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 그래도 최수종의 톤이 사극에 제일 어울린다는 의견도 많다.[84] 작가 성향부터가 전작인 무인시대부터 해서 한국 사극 치곤 일방적인 주인공 선역 연출을 피하는 편이었다.[85]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당시 터보로 활동하던 김종국이 주연으로 나온 에피소드에서는 김종국이 미국에 가고 싶다고 최수종과 계약했는데 김종국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고 전 무심코 쓴 장기 기증 신청서대로 그의 심장은 미국으로 보내져 환자에게 이식된다.[86] 정확히는 실직한 인간으로 나온 홍경인에게 접근해 소원대로 여러 일들을 하게 해주나 하는 일들마다 얼마 못 가 해고당하며 더는 할 것이 없어지자 자기 목적을 성취하려고 했는데 홍경인이 의미심장하게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말을 하더니만 화면이 전환되어 똑같이 실직에 좌절하는 인간에게 접근하는 악마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면서 능숙하게 일을 해내자 상관으로 추정되는 악마의 목소리가 "저 친구가 더 일을 잘하니 이제 자네는 필요없네."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해고해버리자 최수종은 그동안 시종일관 유지하던 사악한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며 "아니, 제가 이 나이에 지금 와서 또 무슨 일을 하라고...!"라 절규하는데, 이는 이 때 당시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정리해고가 사회이슈로 떠오르던 시절이어서 적절하게 사회풍자도 겸하는 내용이었다.[87] 촬영장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충격이 섞였던 말잇못이었다.[88] 불행 중 다행으로, 뼈가 5cm 정도 척추 옆으로 안 닿은 덕에 하반신 마비는 면했지만, 웬만한 교통사고에도 잘 안 부러진다던 견갑골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89] 원래는 6개월 이상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촬영을 진행하기 위해 일찍 퇴원 수속을 밟은 것이었다.[90] 결국 최수종은 그대 나를 부를 때에 선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91] 사실 SBS 개국 초창기와 1997년도에 드라마 캐스팅이 되었었는데 개국 초창기에는 <머나먼 쏭바강>이라는 드라마의 황일천 병장으로 출연하기로 했으나 결국 최수종은 MBC와의 인간적인 의리를 지키기 위해 출연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장미의 눈물>이 방영되기 전 당시 제목은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전도유망한 변호사이자 정계 진출의 야심을 품는 민기범 역할로 캐스팅이 확정적이었는데 이 당시에도 최수종이 KBS와의 계약분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포기하자[90] 정보석이 대신 캐스팅되었으며 제목도 장미의 눈물로 변경됐다.[92] 얼굴만 보고 작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이를 고려하면 절대 작은 키가 아니다. 최수종과 비슷한 연배인 1980년 징병신체검사(대상 1961년생) 기준 평균 신장은 168cm였다. 사실 병역판정검사 결과 2018년 20대 청년의 평균 키가 173.6cm이기 때문에 최수종은 시대를 넘어서 현재 젊은이 평균 키와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93] 전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겸 배우인 이동준은 연예인 싸움 순위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최상위권에 언급되기로 유명하다. 이동준은 어정쩡한 태권도 선수가 아니라 중량급에서 세계선수권 3연패를 한 투기종목 엘리트 스포츠인의 정점급인 인물이기에 어지간해서는 비교 대상이 있을 수가 없다. 나이가 이제 많아서 전성기만은 못하겠지만, 이동준하고 비교하려면 강호동 정도는 돼야 하는 게 사실이다. 이동준 본인은 이계인에 대해서는 자기보다는 아니지만 나이에 비하면 싸움 좀 한다고 평가했다.[94] 참고로 이계인과 최수종 둘 다 권투를 좋아하기에 권투도장에서 처음 만나서 친해졌다고 한다.[95] 물론 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고 립서비스 성격이 강하다. 당장 연예인 중에서 진짜 주먹 실력으로만 나열한다면 줄리엔 강, 마동석, 강호동, 김영호, 김종국, 박남현 등등등 최수종보다 확실하게 우위에 있을 법한 사람은 많다.[96] 그 때문에 박수홍최용수가 작당해서 몰래카메라로 골려먹은 적도 있다.[97] 부단장이 신숭겸 역할을 맡았던 김형일이다.[98] 다만 최수종이 워낙 아내에게 충실하고 부부 관계가 좋아 가정이 매우 안정적이어서 그렇지 연애 중인 커플이나 신혼부부처럼 달달한 건 아니고 여느 평범한 중년부부들과 같은 소소한 면모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99] 출연했던 잘 살아보세라는 예능에서 밝히길 아내에게 잘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희라의 4번의 유산 때문이라고 한다. 하희라는 결혼하며 제대로 프로포즈를 못 받았는데 최수종이 이 점이 마음에 걸려서 더 그러는 것 같다고도 밝혔다.[100] 반면에 하희라는 반말을 쓴다. 다만 최수종 역시 부인과 결혼한지 상당히 오래되어 다른 부부들처럼 서로 간의 친밀함이 있는 만큼 꼬박꼬박 윗사람한테 하듯이 존댓말을 쓰는 것은 아니고 반말도 은근슬쩍 많이 하며 하희라 역시 존댓말도 간혹 하기 때문에 의외로 부부 두 사람이 서로 사용하는 존댓말과 반말의 비율은 비슷하다.[101] 실제로 최수종이 최근에 출연한 예능 토크쇼 영상의 리플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내용이다.[102] 일례로 하희라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어느 일반인 부부의 일화를 들려줬는데, 아내 쪽이 남편한테 최수종 본받아보란 식으로 바가지를 긁었는데 이 때 남편 왈 "네가 하희라냐?"[103] 이런 애처가적인 면모 때문에 선배 연기자인 강남길의 트라우마를 본의 아니게 자극한 적이 있다. 둘이 같이 나온 예능에서 최수종이 깜짝 이벤트를 하희라에게 선보이자 강남길은 대본까지 찢으며 '저건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내며 무대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강남길의 전처의 불륜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104] 이재룡은 평소에도 최수종과 절친이라 그의 스케일을 폭로하기도 하며, 차인표의 경우에는 아내인 신애라가 하희라와 절친이다. 여담으로 애처가 3인방은 파일럿에서 호흡을 맞추었다.[105] 요즘 30대면 청년이라 해도 1990년대에 30대는 중년기에 진입한 아저씨였다. 그 당시에 청년 역할을 맡았다면 상당히 동안인 셈.[106] 세계까지 넒히면 주성치, 양조위, 톰 크루즈, 랄프 파인즈, 짐 캐리 등도 있으며, 그중 톰 크루즈도 절대동안으로 유명한 배우지만, 이도 2020년대 들어서서 노화가 약간 진행되었다.[107] 사실 정보석과 최수종은 조금 이미지가 다른데, 젊었을 때 정보석은 훤칠한 키에 마른 몸매와 선이 가는 날카로운 외모로 차가운 이미지의 꽃미남이었다. 반면 최수종은 키는 작지만 군살 없고 단단해보이는 몸에 소년같은 인상의 미남이었다. 정보석은 나이가 들면서 백발이나 넓어지는 이마가 적나라하게 보이지만 얼굴 자체가 워낙 미형이라 미노년의 이미지로 가고 있는데, 최수종은 비슷한 나이인데도 거의 미스테리할 정도로 몸매랑 헤어라인이 그대로기 때문에 활기찬 소년스러운 이미지가 있는 것.[108] 실제로 1살 위인 정보석과 2살 위인 오세훈은 손주가 있는 할아버지다.[109] 물론 2020년대 기준 현재의 60대 자체가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60대에 비해 중년급으로 젊어진 나이인 것 또한 사실이긴하다. 과거의 50대가 현재에 60대이긴 하다. 당장 최수종이랑 동년배들이 30대만 해도 40대 같이 보였다.[110] 사실 인간인 이상 세월이 흐르는데 나이 든 티가 안 나는 건 불가능하다. 위에 동갑으로 언급된 배우들 중 나이 든 티 안 나기로 유명한 양조위도 예전에 비하면 늙었다. 엄밀히 말해 '제 나이를 찾는다'는 표현은 틀린게 워낙 나이가 많다보니 동안이라고 쳐도 아저씨 티가 나는 것이지 여전히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건 맞기 때문이다. 40대 동안인 강동원, 한예슬, 한고은, 김희철, 김윤아, 김희선, 백지영, 은지원도 20대 외모에 비해서는 나이 든 티가 나며, 환갑을 맞이한 황신혜도 이제는 5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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