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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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외교관.


2. 생애[편집]


1939년 10월 7일, 평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으로 부임, 1969년 5월, 콩고 주재 3등 서기관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1980년 1월, 외교부 순회대사로 등장하였고, 1981년 6월, 농업과학원 과학심의원회 위원으로 등장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83년 3월, 외교부 국장을 지내면서 다시 외교 쪽 일을 맡는 것이 확인되었고 1986년 7월, 정무원 외교부 부부장 승진이 확인되었다. 1988년 7월, 조선유네스코민족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고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법제의원을 겸하였다.

1997년 9월, 조선유엔식량 및 농업기구민족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법제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2001년 5월, 조선유엔아동기금민족조정위원장을 지냈으며 2003년 9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법제위원에 재선되었다. 2005년 9월, 유엔 60차 총회에 북한 대표단장으로 참석하여 연설하였고 2007년 9월, 62차 총회에도 대표단장으로 다녀왔다. 김정일 시대에 가장 중요한 외교관 중 한명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다가 2008년 8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시리아 대사로 임명되면서 시리아로 부임하였고, 2008년 12월 레바논 대사, 2009년 6월, 요르단 대사를 겸하였다. 하지만 2011년 6월 23일, 개성과 시리아 쿠네이트라시의 친선관계 합의서 조인식에 등장한 이래로 북한 매체에서의 보도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7일, 장명호가 신임 시리아 대사로 임명되었고, 최수헌은 2014년 3월 5일, 시리아 수상 나디르 알 할키와 작별방문을 한 후 귀국하였다. 중간에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지 않은 점이나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도 탈락한 것을 보면 시리아 대사가 마지막 보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귀국 후 은퇴하였다.

이후 박성철의 생애를 기리는 소개편집물에 증인으로 나와서 과거 외교썰을 풀었다. 은퇴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3. 참고문헌[편집]


  • 2013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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