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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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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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5 준플레이오프 MVP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6번
김종희
(1996)

최영필
(1997~2001.6.15.)


소중형
(2002~2003)
한화 이글스 등번호 60번
김경남

최영필
(2001.6.16.~2003)


유영민
(2005)
한화 이글스 등번호 11번
고상천
(2003)

최영필
(2004~2010)


안영명
(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85번
구천서
(2000~2002)

최영필
(2012~2013)


세이케
(2014~2015)
KIA 타이거즈 등번호 19번
손동욱
(2013)

최영필
(2014~2017.6.8.)


이민우
(2017.9.8.~2017)
kt wiz 등번호 79번
김민재
(2014~2016)

최영필
(2018~2022)


이준수
(2023~)




최영필
崔映弼 | Choi Young-Pil

출생
1974년 5월 13일 (49세)
경기도 수원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신곡초 - 수원북중 - 유신고 - 경희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1차 지명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7~2001)
한화 이글스 (2001~2010)
서울 해치 (2011)[1]
SK 와이번스 (2012~2013)
KIA 타이거즈 (2014~2017)
지도자
kt wiz 잔류군 투수코치 (2018)
kt wiz 2군 투수코치 (2019~2020)
kt wiz 재활군 투수코치 (2021~2022)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야구부 감독 (2022~)
프런트
KIA 타이거즈 전력분석원 (2017)
가족
동생 최영완[2], 아들 최종현

1. 개요
3. 지도자 경력
4. 연도별 주요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젠 1이닝을 못 버티니 옷을 벗는 게 당연하다.

2017 시즌 중반, 은퇴를 선언하면서 남긴 말[3]

[4]

현대 유니콘스,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소속의 투수 및 전력분석원, kt wiz 코치. 現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야구부 감독.


2. 선수 경력[편집]


최영필의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편집]


KIA의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였다. 아쉽게도 아들하고 같이 그라운드에 뛰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은퇴한 후에도 KIA의 불펜은 활활 타오르면서 최영필은 연전연승을 기록 중이다. 특히 9월에 불펜들은 9회말 최다 점수차 역전패라든가 한 이닝 10실점등의 최절정을 찍고 있다.

결국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 최영필은 선수가 아닌 전력분석원으로서 덕아웃에 남아 그라운드에서 얼싸안고 춤을 추는 선수들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저 자리에 꼭 한 번은 서 보고 싶었는데..." 라고 말했다고.[5]

시즌이 끝나고 전력분석원으로 잔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고향팀 kt의 잔류군 투수코치로 가게 되었다. 아마도 현장에 좀 떨어진 전력분석원보다 잔류군이라도 일단 현장에 있는 코치직이 미래를 생각하면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KIA팬들의 반응은 아쉽지만 고향팀에서도 코치로 잘하라는 반응이다.

2019년에는 2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고 2021년에 다시 재활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이동했다.

2022년 6월 14일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게 되면서 kt를 떠났다.

2023년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야구부 를 대학야구 리그에서 4강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여담으로 학생수가 적어 쉬지 않고 학생들이 경기에 나섰다고 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7
현대
34
101⅓
4
10
0
0
0.286
4.88
95
14
76
79
63
55
1.66
1998
11
17⅓
0
1
0
0
0.000
5.19
22
4
6
9
11
10
1.62
1999
40
88⅔
3
4
1
0
0.429
5.58
106
13
45
53
60
55
1.61
2000
7
10⅓
0
0
0
1
0.000
4.35
9
2
3
9
5
5
1.1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한화
20
67⅓
4
4
2
0
0.500
5.48
64
7
38
43
43
41
1.49
2002
14
22
0
0
1
0
0.000
7.77
31
3
16
21
20
19
2.05
2003
13
42
1
3
0
0
0.250
6.86
50
6
24
26
33
32
1.67
2004
14
37
0
3
1
0
0.000
4.14
39
5
12
27
18
17
1.30
2005
40
112
8
8
5
0
0.500
2.89
109
9
36
72
41
36
1.24
2006
30
38⅓
2
3
0
11
0.400
3.05
34
4
17
34
13
13
1.25
2007
33
99⅔
5
5
2
1
0.500
4.33
120
7
43
48
50
48
1.60
2008
36
85⅔
7
8
0
3
0.467
4.73
98
4
41
48
50
45
1.59
2009
13
20⅓
0
2
0
0
0.000
10.18
31
4
11
11
23
23
2.07
2010
21
54⅓
1
4
1
0
0.200
7.45
84
13
25
26
46
45
1.9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2
SK
46
53
2
1
0
5
0.667
4.58
52
7
12
40
27
27
1.17
2013
22
17⅓
0
0
1
3
0.000
6.23
24
2
9
11
15
12
1.8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KIA
40
53⅔
4
2
0
14
0.667
3.19
52
6
16
45
25
19
1.25
2015
59
63
5
2
0
10
0.714
2.86
57
8
10
51
23
20
1.03
2016
54
57⅓
4
3
2
10
0.571
3.61
74
6
11
54
26
23
1.43
2017
2
1⅓
0
0
0
0
0.000
20.25
5
0
1
1
3
3
4.51
KBO 통산
(20시즌)
549
1042
50
63
16
58
0.442
4.73
1156
124
452
708
595
548
1.51


5. 여담[편집]


  • 40세 이후 통산 WAR 2위다. 1위는 소숫점 세자리에서 근소 우위인 송진우. 3위 김용수와의 상당한 격차를 통해 이 2명이 얼마나 자기관리를 잘해왔는지 알아볼 수 있다. 다만 김용수는 마지막 해 100이닝 넘게 굴러놓고 은퇴해버린지라 40세를 넘기고 2년밖에 안 뛰었다.

  • 유독 에이원 글러브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한화 시절부터 쭉 에이원 글러브만 사용.


  • 한화 시절이었던 2005년 5월 21일[6]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고의로 빈볼을 던진 후, 심판이 퇴장을 선언하자 글러브를 냅다 집어던지고 쿨하게 걸어 나가는 장면을 연출해 필사마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참고로 빈볼을 맞은 상대는 진갑용이다. 진갑용은 2006년에 구대성의 투구에 맞았을 때 한참 선배인 구대성한테도 불만을 표시했는데[7] 정작 동갑내기인 최영필한테는 아무 소리도 못 했고 심판만 애절하게 쳐다 보았다. 최훈이 은퇴 다음날 그린 프로야구카툰 최영필 헌정편의 제목도 필사마였다.

  • 1997 시즌을 마치고 24살이란 나이에 일찍 결혼하여 아들을 두고 있다.[8] 그 아들과 같이 선수로 뛰는 것이 꿈인지라 한화, SK 구단에서 은퇴 후 코치로의 기용, 프런트 전직 제의 등을 제안했으나, 싹 다 거절하고 현역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아들인 최종현은 부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등판 기록이 적었던 터라(제물포고 통산 11⅔이닝) 2015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하위 라운드 지명 제의도 있었지만, 경희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영필이 2017년 은퇴하며 아들과 같이 그라운드에 뛰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 전술했듯 아들인 최종현도 야구선수였다. 최종현은 2018년 기준으로 경희대 4학년이며 아버지와 같이 프로에서 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물포고 시절 3년 통산 11 ⅔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한데다 대학 진학 후에도 1학년 때 9⅓이닝, 2학년 때 1⅔이닝, 3학년 때 1⅓이닝[9], 가장 중요한 4학년마저 사실상 공식전을 마감한 가운데[10] 0이닝 1볼넷 1사구에 그친 터라 사실상 지명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최영필이 은퇴하면서 이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실 최영필의 꿈은 아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지명되는 걸 가정하고 말한 것이었다고 한다. 대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덕분에 경기를 뛰는 목표가 있어 선수생활이 연장된 건 같다고 한다.은퇴 후 인터뷰 기사 그러나 최종현은 2019 드래프트에서도 결국 지명받지 못했다. 경희대가 전국체전에 경기도 대표로 나가지만 여기에서도 등판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이대로 선수 생활을 끝내게 될 듯 했으나 졸업 유예를 신청해 1년 더 대학에 남게 됐다. 그러나 신인 2차지명까지 한 대회(대학선수권)만을 남긴 시점까지 고작 2⅓이닝 투구에 그치면서 신인 지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 2014 시즌 후 그의 모교이기도 한 경희대학교에서 비시즌 기간 자율 훈련을 하는 사진이 찍히면서, KIA 팬들에게 베테랑의 표본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많은 나이에도 철저한 몸 관리를 보여 주는 모습에 칭송을 아끼지 않는 반응. 실제로 아들이 지명을 받지 못하고 경희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을 경희대학교 근처로 옮겼다고 한다.

  • 동생과 아들 모두 경희대학교 동문이다.

  • 위의 몸 관리 덕에 2016년도 체력 테스트에서는 유일하게 면제 판정을 받았다. 즉 테스트를 따로 안 해도 된다는 판정을 받은 것.[11]

  • 2014 시즌을 끝으로 류택현송지만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진갑용, 이병규와 함께 KBO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가 되었다. 이들 1974년생 선수들의 생일 순서는 진갑용>최영필>이병규진갑용이 최고령 선수이고, 최영필은 진갑용보다 불과 5일 젊은 차고령 선수였는데 진갑용이 2015년 8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이후 2017년 6월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최고령 선수였다.

  • 최영필이 만약 고교 졸업 후 바로 지역연고 프로지명을 받았다면 입단했을 팀은 바로 1993년의 태평양 돌핀스이다. 2011년 이숭용이 은퇴하며 태평양 출신은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언뜻 보면 신화의 신혜성을 닮았기도 하다. 장동건과 닮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팬들 사이에서 나온다.

  • 불펜으로 전천후 활약을 하는 덕에 전영록의 노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를 패러디해서 "불펜을 쓰려면 영필로 쓰세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 노장 선수들이 많아 벤치 클리어링 최강 치트키로 불리던 한화 이글스 시절 당시 재밌는 사진들을 남겼다.최영필 커피타던 시절[12]


6. 관련 문서[편집]


[1] FA 선언 이후 프로 공백기간 동안 몸 담았다.[2] 동생도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다. 포지션 역시 투수였으며, 이쪽은 좌완투수다. 드라마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으로 유명한 배우 최영완과 동명이인이다.[3] 최영필을 넘어 대한민국 야구를 상징하는 명언 중 하나로, 이 발언은 1이닝을 버티지 못하는 불펜 투수들을 비판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발언이다. 골자는 40대 선수도 1이닝 막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는데 젊은 선수들이 1이닝을 못 막아서야 되겠냐는 것.[4] 다만 본인은 투수코치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 때 했던 말에 대해 '자신의 상황에서야 당연했던 말이나 유망주들에겐 아니다'라는 뉘앙스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5] 전술했듯 현대 유니콘스 시절 2번의 한국시리즈 모두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우승반지를 끼지 못했고, 올해 여름에 KIA에서 은퇴하지 않았더라면 부족한 불펜진 보완을 위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어 그토록 고대하던 우승반지를 끼고 은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6] 정확히 6년 전인 1999년 이 날에도 구대성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하고 글러브를 냅다 집어던진 일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상대팀 또한 삼성이었다.[7] 고의가 아니었는데 왜 성질내냐고 마운드에서 1루에 있는 진갑용에게 화를 내면서 이야기했고 진갑용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8] 운동선수들은 대체로 일찍 결혼하는편이다.[9] 이때 땜빵선발이라는 기회를 받았는데 1회부터 두들겨맞으면서 2회에 강판당하고 말았다.[10] 경희대는 전국대학야구선수권과 대통령기에서 모두 조기 탈락했고 주말리그(U-리그)에서 부진해 2차지명을 앞두고 열린 대학야구 U-리그 왕중왕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11] 사실 면제라기보단 감독 동의하에 경희대 야구부원들과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테스트를 받지 못한 것.[12] 참고로 윷놀이 짤에서 2조 선수 중 가장 어린 선수는 김해님이지만, 어차피 김해님이 빠른75라서 74인 최영필과 동기라 막내인 것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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