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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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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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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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6대, 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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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FC
7대







최윤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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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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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7월
조성환
(인천 유나이티드 FC)

8월
최윤겸
(충북 청주 FC)


9월
박진섭
(부산 아이파크)





Chungbuk Cheongju FC

이름
최윤겸
崔允謙 | Choi Yun-Kyum
출생
1962년 4월 21일 (61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8cm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기술 위원[1]
학력
대전신흥초등학교
대전체육중학교
홍주고등학교
인천대학교
인천대학교 대학원
소속
선수
유공 코끼리 (1986~1992)
감독
부천 SK (2001 / 감독 대행)
부천 SK (2001~2002)
대전 시티즌 (2003~2007)
호앙아인 잘라이 FC (2011~2014)
강원 FC (2015~2017)
부산 아이파크 (2018)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9)[2]
충북 청주 FC (2023~ )
코치
유공 코끼리/부천 SK (1993~2001 / 트레이너)
차이쿠르 리제스포르 (2008)
트라브존스포르 (2008~2009)
기타
한국프로축구연맹 (2020~2022 / 기술 위원)
청주 FC (2022 / 총괄 디렉터)
국가대표
7경기 (대한민국 / 1987~1988)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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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경주 최씨[1]
가족
아내, 장남 최민석[2], 차남 최민호
서명
파일:최윤겸서명.png


1. 개요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2.2. 지도자
2.2.1. 부천 SK
2.2.2. 대전 시티즌
2.2.3. 외국 생활
2.2.4. 강원 FC
2.2.4.1. 2015 시즌
2.2.4.2. 2016시즌
2.2.4.3. 2017 시즌
2.2.5. 부산 아이파크
2.2.6. 제주 유나이티드
2.2.7. 충북 청주 FC
2.2.7.1. 총괄 디렉터
2.2.7.2. 감독
2.3. 기술위원
3. 지도자로서의 평가
4. 논란
4.1. 이영익 코치 폭행 논란
5.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차남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민호.


2. 축구인 생활[편집]



2.1. 선수[편집]


대전 출신으로 신흥초- 대전체육중 - 홍주고를 나온 후 서울 내 대학 입학을 타진하다 여러번 고배를 마신 뒤 1년 간 방황하다가 인천대학교 82학번이자 축구부 창단 멤버로 입학하며 선수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인천대에서 1학년부터 임창수 감독 아래 이종화와 함께 수비라인을 구성해 창단 2개월 만에 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 추계대회에선 아예 우승을 거머쥐는 이변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등 4년 내내 주역으로 활약했다. 또한 대학 선발 대표팀이나 국가대표 2군에 발탁되는 등 임창수, 차경복 감독 아래서 이종화, 구상범 등과 함께 활약하며 대학 무대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인천대를 졸업한 1986년, 지역 연고 구단인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프로 생활을 오직 유공에서만 보낸 유공의 원 클럽 맨이다.

유공에서 7시즌 동안 162경기에 출전해 5골 1도움을 기록하였다. 특히, 3년 차를 맞이한 1989년 시즌이 전성기였다. 1989년 유공에서 30경기 1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센터백 단짝인 조윤환과 함께 그 해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1992 시즌 이후 박성화 감독 아래 새롭게 리빌딩을 시도한 유공 코끼리는 최윤겸과 재계약을 꺼렸고, 그렇게 만 30세라는 이른 나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3]

국가대표로는 1987년 6월 이집트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였고, 통산 7경기에 출장하였다. A매치 데뷔전 날짜는 1987년 6월 10일이다. 당시 그 경기는 시위대 진압용 최루가스의 경기장 유입으로 인해 몰수무처리되었다. 잊을 수 없는 데뷔전이었던 셈이다. 이후 1988년 서울 올림픽 본선 엔트리에 포함되며, 미국전에도 출장했다.

2.2. 지도자[편집]



2.2.1. 부천 SK[편집]


은퇴 이후 1993년, 친정팀 유공 코끼리의 트레이너직을 맡으며 스태프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5년 부임한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 아래서 본격적인 1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조윤환, 하재훈과 더불어 니포축구를 직접적으로 전수받았다.

그러다 니폼니시를 이어 부천의 감독직을 역임하던 조윤환 감독이 2001년 여름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한 이후 코치직에서 감독 대행으로 승격했고, 부임 직후 8경기 무패 행진을 이끌며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이을용을 윙어로 포지션 변경시키며 남기일의 공격력을 배가시키는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용병술로 리그를 이끄는 젊은 감독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정식 감독으로서 본격적으로 팀을 이끄는 첫 해인 2002 시즌은 최윤겸에게 아픔으로 남은 해이다. 우선, 전임 감독인 조윤환 감독이 시즌 개막 이전부터 부천의 선수들을 전북으로 영입하려 시도했고, 결국 이용발, 전경준 등의 선수들을 빼낸 것은 물론, 김은철 코치 등 코칭스테프 마저 전북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2002 시즌 중반 구단으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당했는데, 그 이면에는 트나즈 트르판이란 국제적 명성을 가진 감독 선임을 위한 것이 밝혀지며 해임 후 구단의 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선수 시절부터 약 17년 넘게 헌신한 구단과 최악의 마무리를 맺고 말았다.

2.2.2. 대전 시티즌[편집]


파일:dk99.jpg

2003 시즌을 앞두고 고향 팀인 대전 시티즌과 1억 5000만원에 계약하며 대전의 3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최윤겸은 데뷔 첫해 장철우, 주승진, 김정수, 김성근으로 이루어진 포백라인과 이관우, 강정훈, 김영근으로 이루어진 중원 그리고 김은중, 공오균, 김종현의 공격진을 바탕으로한 중앙의 짜임새 있는 패스, 좌우 측면 돌파를 활용한 특유의 4-3-3 전술을 구사하며 대전의 2003시즌 K리그 6위라는 돌풍을 이끌었다. [4]

또한 최윤겸의 전반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 지치게 한 후 후반에 승부수를 던지는 축구를 펼치며 승리수를 늘려갔으며 강인한 체력, 강한 압박, 조직력을 바탕으로한 콤팩트 축구로 대전을 축구특별시로서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2006시즌에는 최윤겸 자신이 배웠었던 '니포축구'를 응용한 듯한 당시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3-3-2-2 전술을 내세웠다. 대전은 당시 주전급 선수들의 대거 이탈로 젊은 신인들로 과감히 선수단을 개혁했었으며, 김종현, 알리송 등 윙 포워드들의 부진과 맞물려 측면 공격의 강화를 위해 포백을 포기하고 주승진, 장철우를 미드필드로 올리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으나 간판스타었던 김은중 이후 이렇다 할 공격수를 찾지 못해 이러한 전술변화가 그리 큰 변화를 주지는 못했다는 평가였다.

대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이후 이영익 당시 코치를 폭행사건에 연루되면서 2007시즌 중반 대전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이영익과 함께 해임되며 씁쓸하게 대전 시티즌을 떠났다.

2.2.3. 외국 생활[편집]


파일:dsc1772.jpg

이후 2008년 연수 차원에서 터키로 건너가 터키 2부리그 소속의 차이쿠르 리제스포르로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고, 2008년 터키 쉬페르리그 소속의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연수를 받으며 코치 생활을 하였다. 이후 2011년, 베트남 V.리그 1 소속의 호앙아인 잘라이 FC의 감독으로 부임해 2014년까지 팀을 지휘하였다.

한편 2013년 대전의 유상철 감독의 후임 감독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과거 안좋은 사건에 휘말렸던 인물이라는 이유 등과 더불어 끝내 없었던 일이 되었다. 어차피 나중에 이영익 선임할 거였으면 차리리 이때 최윤겸이나 데려오지


2.2.4. 강원 FC[편집]


파일:20170814070300727tqwh.jpg


2.2.4.1. 2015 시즌[편집]

2014년 12월 15일, 강원 FC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7년만에 국내 무대로 복귀하게 되었다. #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2015시즌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2015시즌 강원은 서울 이랜드, 대구 같은 강팀을 상대로는 선전했음에도 하위권 팀들에는 고전하는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이며 시즌 초반 부진하며 '도깨비팀'이라 불리는 불명예를 얻었으며, 시즌 중반 지우, 헤난을 영입하며 공격력을 강화시키며 반등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2015년의 경우 최윤겸은 4-3-3- 포메이션과 4-2-3-1 포메이션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듯 하였지만, 상대에게 역습 찬스를 자주 내주며 실점이 잦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최윤겸은 미드필더를 세 명을 배치하거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을 배치하는 더블볼란치를 구성함과 동시에 측면을 잘 노릴수 있는 4-3-3을 사용하였고, 상대의 역습을 막기 위해 윙어는 가운데, 풀백을 전진시켜서 센터백 위에 8명의 선수로 구성된 세밀하면서도 숏패스를 기반으로 볼을 빼았을시 바로 압박해 상대 수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플레이를 주로 펼쳤다. 하지만 최윤겸만의 축구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며 강력한 승격후보였음에도 승격은 고사하고 승강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2.2.4.2. 2016시즌[편집]

2016시즌 개막후 2경기에서 연패를 당하긴 했지만 4월 9일 충주전부터 5월 8일 대전전까지 6연승을 거두며 강원 구단 최다 연승 기록을 갱신하며 '최윤겸 매직'을 발휘하였고, 7연승을 성공시켰었다.

하지만 최진호의 부상 이후 연승 리듬이 끊기고 오히려 패배를 거듭했으며, 기세를 다시 가다듬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2016년 9월 대구FC전을 통해 강원 감독 부임 이후 72번째 경기를 소화, 강원 구단 역사상 리그 최다 지휘 및 최장수 감독 타이틀을 얻게 되었으며, 9월 K리그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후 시즌 중반 마라냥, 루이스, 박희도 등의 네임벨류 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였고, 최윤겸은 세르징요, 박희도, 마라냥, 마테우스까지 총 5명의 공격자원이 쇄도하는 극강의 공경 축구를 구사하였다. 루이스를 꼭지점으로 그 밑에 세르징요와 오승범을 삼각형으로 세움과 동시에 측면 자원을 내려 세워 중원을 장악하고 찬스 상황 시 세르징요가 빠르게 루이스 옆으로 올라가면서 공격 2선에 순간적으로 마라냥-루이스-세르징요-박희도가 날개를 펼치게 되고, 마테우스가 문전으로 파고 들면서 공간을 만들면 이후 5명의 공격진들이 빠른 원터치 패스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를 뚫어내는 식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챌린지에서 4위로 마치며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아이파크부천 FC 1995와 맞붙은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을 거두었고 성남 FC와 승강전을 벌여 2무를 기록했으나, 2차전에서 얻은 선제 골에 힘입어(원정 다득점) 승격에 성공했다. 승강전에서 팀을 클래식으로 밀어올린 4번째 감독이 되었다.


2.2.4.3. 2017 시즌[편집]

승격이후 강원 FC의 폭풍 영입질 때문에 성적이 안 좋으면 감독 경질 위험이 커진다는 우려가 있다.

5월 중순까지 7위를 기록하면서 상위 스플릿 진출을 노리고있지만, 경직된 4-3-3 전술이나 엔트리 잘라내기+붙여놓기로 비판을 많이 듣고 있으며 또한 르엉 쑤언 쯔엉 미출전 문제로 베트남에서도 욕먹고 있다.

8월 13일 제주전 패배 이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클래식에 진출한 이후의 최윤겸을 논해보자면, 클래식에서 경질에 이르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결정적인 것은 수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초반부터 위태위태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한 바퀴 반쯤 돌며 다른 감독들이 내세운 파훼법에 속절없이 휘말린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추측된다.

챌린지 시절부터 피지컬이 좋은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들 대신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수비를 추구했던 최윤겸이였기에 상대 감독들이 건장한 원톱을 내세운 후 공중볼로 밀어붙이는 공격을 하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강원에서 최윤겸의 수비전술은 오밀조밀하게 상대를 위험지역 밖이나 측면으로 밀어내는 식의 수비가 많았지만 클래식에 올라온 이후 사실상 재창단에 가까운 팀구성으로 인해 조직력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더군다나 경기를 지배하길 원해서 앞쪽으로 빠른 템포로 공을 보내거나 돌파하는 대신 공을 안정적으로 점유하고 싶어서 뒤나 측면으로 돌리는 식의 축구를 했다. 이것도 상대방 감독들이 중원싸움을 지양하고, 내려앉은 상태에서 뒷공간을 주지 않고 방어하다 역습하는 축구를 선택하자 패스길을 잃어버리고 돌파도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측면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해도, 백종환이 부상을 당하고 신인인 박요한이 등장해서 처음에는 좋았으나 측면에서의 플레이가 몸에 익지 않았다는 것이 뽀록난 이후 힘을 잃어버렸다. 왼쪽의 정승용은 날로 기량이 늘고 있었지만 디에고는 풀백과의 협력플레이 같은 것을 전혀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디에고의 기용 역시 최윤겸의 발목을 잡은 부분이였다. 승격하던 시즌의 마테우스 같은 경우 최윤겸의 믿음을 바탕으로 엄청난 진보를 보여줬다. 초기 마테우스는 그저 저돌적으로 몸통박치기 하는 플레이밖에 모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꾸준한 선발 출장과 함께 실력이 일취월장해 훌륭한 원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디에고는 최윤겸이 정성을 들이고 꾸준히 기용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플레이가 전혀 되지 않았으며, 수비도 등한시했으며 무모한 돌파 역시 일삼았다. 그 결과 상대방 감독들이 디에고에 대한 파훼법을 찾아서 득점력을 봉쇄하고, 디에고의 수비의지 부족을 이용해 강원의 왼쪽 측면을 후벼버리자 곧바로 양날의 칼로 작용하면서 연패행진을 달리게 되었다. 또한, 꾸준히 강원에서 보여준 면모지만 본인의 주전술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고, 경기장 내에서도 전술변화에 대한 유연성이 떨어지며 지나치게 끝까지 보다가 교체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보는 경향은 챌린지 시절에는 잘 먹혔으나 클래식에서는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특히 전술을 카운터당하고 황진성이 부상당하자 그에 대한 대책을 짜낼 수 없었다.

2.2.5. 부산 아이파크[편집]


파일:262047_244039_1722.jpg

강원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잠시 야인으로 지내던 최윤겸은 2018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으나 거부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과거의 안좋은 사건 때문에 대전 시티즌 구단으로 돌아가기엔 부담이 컸을 듯 했다.

2017년 12월 11일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다시 한번 K리그 클래식 승격을 도전하게 되었다.

취임 이후 자신을 보좌할 코치로 과거 대전 시티즌 시절 지도했거나 호흡을 맞추었던 이승준, 안승인을 영입하였다.

부산에서 최윤겸은 중앙 수비수 출신답게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전술을 운용하며 작은 공간에서 강한 축구이자 전진 압박과 빠른 템포의 경기를 펼쳤으며 시즌 중반까지 다소 3~4위에서 고전하다가 중후반으로 넘어갈 수록 성남이 주춤해진 사이 상승세를 탔으며, 특히 시즌 막판 백3로 전환해 안정적인 수비를 갖추게되면서 최종 순위 3위를 확정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고, 대전 시티즌과의 플레이오프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FC 서울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1차전에서는 호물로가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선수 한명이 퇴장당하는 악재 속에 내리 3골을 허용, 3:1로 패하며 2차전에서 최소 3:0으로 이겨야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사흘 뒤 2차전에서는 김진규가 먼저 선제골을 넣고도 경기 막판에 박주영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결국 1:1 무승부로 끝났고, 이로써 승격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최윤겸은 최만희 사장과 함께 승격 실패의 책임을 지고 1년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최윤겸의 부산에서의 커리어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외국인 농사 실패였다.

기존에 있던 호물로를 제외하고 최윤겸이 영입한 알레망, 발로텔리, 발부르트, 맥도날드 전원이 부상 등의 이유로 제 몫을 해주지 못했으며, 팀의 성적에 있어 큰 역할인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이 부산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으며, 또한 골결정력이 높은 확실한 골잡이인 원톱의 부제 역시 상당히 아쉬움이 남았었다.


2.2.6. 제주 유나이티드[편집]


파일:commonTD9WG7OP.jpg

2019년 5월 제주 조성환 감독이 사임을 하면서 후임 감독으로 부임, 대략 17년만에 제주 유나이티드 구단에 복귀하게 되었다.

작은 공간에서 강한 전진 압박과 빠른 템포의 경기를 펼치는 스타일로, '감귤타카'로 불리는 구단 고유의 패싱 축구인 니폼니시 축구를 실현할 적임자라는 것이 선인 배경이라고 한다.

5월 4일 경남 FC전을 통해 제주 감독 복귀전을 치렀으며, 2:0 승리를 거두면서 제주의 첫 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첫 승리를 하고 난 뒤 인터뷰에서 "못하고 지면 욕도 먹고, 물병이나 쓰레기 던지는 것도 맞겠다. 그러니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달라."라고 인상적인 멘트를 하기도 했다. 이후 5백 같은 3백 버리고 포백 변환하면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지만, 이후 상승세를 이끌지 못하였는데 특히 불안한 수비를 개선하지 못하고 롱볼 위주의 축구만을 구사하면서 기존의 제주의 강점이었던 특유의 감귤타카는 오히려 실종되었으며, 임상협, 윤일록, 최규백을 비롯해 시즌 중반 전역해 팀에 합류한 윤빛가람 등 스타 선수들을 심심치 않게 보유했음에도 제주는 부진을 이어가며 리그 최다 실점을 기록했으며, 리그 9경기 무승의 늪에 빠지는 등 좀처럼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았으며, 결국 스플릿 B로 떨어지면서 인천, 경남과 같이 강등권 탈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10월 27일 11위 경남전에서 무승부를 거두면서 승점 5차이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잔류 확률이 크게 줄은 듯 했고, 이어 11월 2일 10위 인천전에서 2:0으로 이기면서 희망을 보는 듯 했지만, 11월 24일, 수원 삼성과의 리그 37라운드에서 4:2 역전패하며 남은 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리그 최하위를 확정지으며 강등을 피해가지는 못했고, 11월 30일 성남과의 리그 폐막전에서는 3:1로 패하며 실망스럽게 시즌을 마무리하였고, 이날 경기 종료 후 “한 없이 죄를 짓고 가는 기분이다.”라는 끝 인사를 남기며 사실상의 사퇴를 암시하기도 했다.

결국 모든 스케줄이 다 끝난 날인 12월 1일, 제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최윤겸 부임 이후에도 제주가 반등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일단 조성환 감독에 맞는 선수단이 이미 자리 잡은 상황에서 최윤겸 한 명이 뭔가를 크게 바꾸기에는 너무 때가 늦은 뒤었다는 것이다.

특히 강등권 팀들의 경우, 워낙 수비력이 좋지 못하니, 결국 득점에 의해서 성적이 판가름 나는 현실 속에 무고사를 가진 인천, 제리치를 가지고 있는 경남같은 다른 강등권 팀과 다르게 제주는 마땅한 골잡이를 보유하지 못했었다.[5]

제주의 스트라이커로는 마그노와 이근호, 오사구오나가 있었지만 이들 모두 폼이 엉망이었다. 마그노의 경우, 스피드가 윙만큼 빠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지컬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었고, 시즌 중반 임대로 데려온 이근호의 경우 공에 대한 '투지'와 같은 정신적인 부분, 다시말해 기본적인 부분이 부족하다. 오사구오나의 경우 헤더 자체는 가능하지만, 공을 연게하거나, 슛으로 잇지를 못하는 등 외국인 공격수로 기량 미달이었다. 이들 외적으로도 2019시즌 제주의 공격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렇다고 수비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애초에 최윤겸 감독은 정신적 부분을 확실히 잡아주는 유형으로서 이에 제주의 팬들은 최윤겸 감독이 제주를 투지가 있는 팀으로 만들기를 기대했지만, 투지가 통하려면 최소한의 전술적 완성도가 뒷받침되어야 했지만 최윤겸의 제주는 그러지 못했다.

본래 최윤겸 감독은 포백을 가동하면서 밸런스 있는 축구를 지향한다. 이는 강원과 부산에서의 감독생활에서도 동일했다. 하지만, 문제는 '강등권' 제주를 가지고 밸런스를 추구하는 일종의 '정공법'을 시도한 것이었다. 수비가 망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수비보강을 위한 전술적 움직임이 전무했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두 명의 중앙수비가 너무 쉽게 뚫렸다.

그러다 2019년 8월 30일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간만에 쓰리백을 뽑아들었지만, 이것이 수비력를 보강해주지는 못했다. 물론, 이날 경기에서 전반전은 제주가 워낙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윙백으로 출전한 박진포와 안현범이 오버래핑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오버래핑을 하더라도, 수원의 공격진 역시 부진하면서 공간이 열려도 실점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반전부터 최윤겸 감독이 안현범과 박진포를 과도하게 올린 게 실점의 빌미가 되었다. 안현범과 최규백 사이 공간이 열리면서 실점을 하고 만 것이고, 이는 결국 패배로 이어졌다.

즉, 수비는 본래 상대의 골을 막는 것인데, 최윤겸은 상대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하질 않았다는 것이다. 최윤겸 부임 후 수많은 경기에서 포백라인의 한계가 분명 보였다. 그런데 쓰리백을 기용하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는 등 수비에 있어서 고집을 좀처럼 버리지 못했다. 또한, 수원 삼성전에서는 분명 후반 들어서 수원은 측면 플레이를 늘려가면서 윙백과 중앙수비 사이 공간을 노렸는데도, 최윤겸은 꿋꿋이 윙백의 오버래핑을 부탁했다.

또한 무엇보다 최윤겸은 실패한 이적시장을 보냈는데 조용형, 오승훈, 임상협, 남준재, 윤일록 등 K리그에서 검증된 자원을 대거 영입했고, 외국인 선수 중에서도 부진하던 찌아구를 내보내고 오사구오나를 데려오며 공격적인 이적시장을 보냈지만, 울산 현대의 최소 실점을 이끌던 골키퍼 오승훈은 제주 유니폼을 입고 실수를 연발했으며, 인천 유나이티드와 잡음을 일으키며 영입했던 남준재는 초반에는 번뜩였지만 거기까지였으며, 기대를 모았던 오사구오나는 냉정히 수준 미달이었다.

마지막 기대였던 군 전역 선수들도 수렁에 빠진 팀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윤빛가람과 안현범은 뛰어난 개인 능력으로 클래스를 보여줬지만, 이미 무너진 팀을 홀로 살리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특히 가장 팬들이 비판이 거센 부분은 바로 아길라르에 대한 기용 부분이다. 2019 시즌을 앞두고 인천에서 제주로 이적한 아길라르는 제주의 새로운 '에이스'로 각광받던 선수였지만 최윤겸 감독은 아길라르가 수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길라르를 벤치에 앉혔고, 새로운 팀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아길라르는 교체로만 짧은 시간 경기장을 누볐다.

물론 아길라르는 공격적 패스를 즐겨하기 때문에 그만큼 패스미스도 잦으며, 이러한 아길라르의 패스미스가 상대의 역습으로 이어진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단점이 분명한 선수였다. 그러나 문제는 아길라르보다 더 좋은 패스를 주고 볼 키핑이 더 좋은 선수가 제주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2019년 8월 30일 수원 삼성전에서 이러한 문제가 단적으로 나타났는데 최윤겸은 처진 스트라이커의 자리에는 윤일록을 배치했고, 윤일록은 역습을 노리면서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수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윤일록의 드리블과 슈팅이 좋은 선수인데 그런 윤일록을 내려서 배치시킨다는 것은 낭비였고, 차라리 윙으로 기용해서 앞에 상대팀만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드리블이 유효했을 것이며, 그 자리에는 아길라르와 같이 키핑과 패스가 장점인 선수가 들어가야 했다.

또한 수원 삼성전의 경우, 수원 삼성의 중원이 결코 강하지 않았다. 제주의 중원을 책임진 이창민과 강윤성이 워낙 압박만을 했기에 김종우와 최성근의 활약이 대단한 것처럼 보였지만, 분명 김종우와 최성근 조합은 완벽하진 못했다. 김종우의 경우 몇번의 턴오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럴 때 아길라르를 기용하면 충분히 상대를 무너뜨릴 기회 한두 개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제주는 '아길라르가 애용하는 패스줄기를 수원의 안토니스가 그대로 따라하며' 실점을 내주고 패배하고 말았다.

주요 자원인 아길라르를 수비를 이유로 배척했음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고 리그에서 최다 실점을 기록하는 등 공격도 수비도 제대로 되지 않는 어정쩡한 팀이 되어버렸고, 이에 팬들은 현실적으로 아길라르를 안 쓴다고 제주 수비가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굳이 아길라르 기용하지 않아도 팀의 수비력이 안 좋아서 실점이 잦은데, 이왕 이런거 차라리 그냥 아길라르를 기용해서 아예 공격적인 전술로 바꿀만할 것도 같은데 여전히 아길라르 기용에 있어서는 이러한 고집을 버리지 않으면서 비난을 받아야만 했고, 결국 최윤겸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시즌 막판부터 아길라르를 중용했고, 아길라르는 최근 3경기에서 1골 2도움 기록하는 등 분투하며 능력을 입증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었다. 작년 인천이 그랬듯이 아길라르를 꾸준히 믿고 기용했으면 강등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팬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점 이외에도 최윤겸은 정말 대책 없는 선수 교체를 선보였었다.

하위권 강등권팀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선제골 실점'인데, 이는 전술 뿐 아니라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강등권팀들에게는 '교체'가 정말 중요하다. 교체가 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자동심장재세동기'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윤겸은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교체문제 역시 8월 30일 수원 삼성 전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우선, 오사구오나의 풀타임 출전이 그 첫번째 문제였다. 제주는 전반전에는 크로스가 몇 없었지만, 후반전에는 나쁘지 않은 크로스들을 많이 올렸다. 그런데 오사구오나는 그 크로스들을 모두 날렸다. 연계조차 시키지 못했다. 그랬다면 차라리 수비수를 올리고 오사구오나를 뺐어야 했다. 경기 마지막 오승훈의 헤더도전이 더 위협적이었던 걸 감안하면, 차라리 오승훈을 올렸어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근호의 교체 역시 의문이었다. 애초에 수원이 안토니스를 투입하면서 제주는 중원부터 완전히 먹히기 시작했다. 권순형이 버티기엔 수원의 기세가 셌다. 이때 중원의 강윤성을 빼고 이근호를 투입한다는 건, "중원 장악하십시오"라고 친절히 길을 내어주는 것과 같았다. 아길라르의 교체는 타이밍의 문제였다. 제주의 전반전 공격의 유일한 가능성은 센스있는 마그노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랬다면, 마그노를 뺐어야 한다. 오사구오나는 공중볼이 전반전동안 안왔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마그노는 정말 아니었다.

애초에 최윤겸이 부임하고 나서 제주는 지금까지의 모든 강등팀이 했던 행동들을 모두 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2.7. 충북 청주 FC[편집]



2.2.7.1. 총괄 디렉터[편집]

제주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기술위원을 활동했으나, 2023년 K리그2에 참가하는 청주 FC 사령탑에 내정되며 프로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청주는 긴급 감독선발위원회를 구성한 뒤 협의를 통해 최 위원을 초대 감독으로 선정했다고 6월 27일 밝혔으며, 최윤겸도 감독선발위원회와 협의 과정에서 프로화 이후 초대 감독직을 수락했다.[6]

2022년 7월부터 잔여 시즌까지 팀의 총괄 디렉터를 맡아 2023년도 K리그 참가를 위한 선수단 구성과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고 2023시즌부터 감독 역할을 할 예정이다.#

2.2.7.2. 감독[편집]

2023년 본격적으로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서울 이랜드와의 홈 개막전에서 3:2 승리를 거두머 청주의 프로화 이후 첫 승을 기록했다.

2023년 4월 18일 아산과의 충청 더비 홈경기에서 자신의 감독으로서 프로 통산 400번째 경기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충북청주 감독으로 부임하고서는, 초반 부진을 털어내고 특유의 리더쉽으로 신생팀 답지 않은 저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2023년 7월 23일 충북청주FC와 서울이랜드 와의 경기에서, 전반 29분 김원균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2:1 역전승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레전드급 명경기다.

마지막 패배가 5월 마지막 경기였고 6월부터 8월까지 12경기 7승 5무라는, 신생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성적을 내며 돌풍을 이어갔고, 성과를 인정받아 8월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친정팀 부산 아이파크와의 리그 최종전에서는 1:0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막판 조르지의 극적인 동점골로 부산의 리그 우승과 다이렉트 승격을 저지하였다.[7]

경기 종료 후 2023 시즌 10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들은 내년에 같이 가기 힘들 거 같다고 밝히며 선수단 쇄신을 예고했다.

비록 리그 8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에 진입은 못헸지만 마지막 라운드까지 승격 플레이오프 티켓에 도전하는 등 청주의 프로 무대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2.3. 기술위원[편집]


제주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으로 부임하였다.

프로연맹이 2020년부터 기존 경기위원회를 기술위원회로 확대 개편하면서 리그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조치로 기존의 경기 운영 및 관리 업무에서 기술적인 분야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면서 연맹 기술위원회는 경기감독관그룹(MCG), 시설개선그룹(FDG) 그리고 기술연구그룹(TSG)으로 나눠졌는데, TSG에 합류했다고 한다.#

2021년 10월 24일 K리그 스플릿 돌입전 마지막 경기인 성남FC와 울산 현대전에서 경기 기록관으로 추가시간에 잠깐 화면에 비춰졌다.

21시즌 최후의 경기인 대전 하나 시티즌강원 FC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모습을 비췄는데 한때 두 팀 모두 감독을 맡았었던지라 두 팬들은 묘한 반응을 보였다.[8]

3. 지도자로서의 평가[편집]


전형적인 B급 감독의 길을 걷고 있는 지도자이다.

지도력은 있으나,[9] 주로 하부 리그나 하위권 팀 감독을 맡아서 한끝 모자란 모습을 보이거나, 끝이 안 좋았고, K리그1에서 나름 상위권에 속하던 제주 유나이티드에서는 구시대 지도자의 한계를 드러내며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10]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철학을 가장 잘 계승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선수들을 존중하고, 미드필드 플레이를 중심으로 삼는 축구를 추구한다. 전술은 보통 부천 SK와 대전을 이끌었던 당시 썼던 4-1-4-1을 선호하지만 강원에선 4-3-34-2-3-1을 혼용했다.

강원에서의 첫 시즌인 2015 시즌엔 본인이 선호하는 4-1-4-1을 썼으나 역습을 자주 내주어 실점이 늘어났고 이에 해결책으로 미드필더 셋을 두거나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을 배치하는 더블 볼란치를 뒀고, 장점인 측면을 잘 살릴 수 있는 전술인 4-3-3을 쓰게 된 것이다. 또한 역공을 막기 위해서 윙어를 가운데, 풀백을 전진시켜서 센터백 위에 8명으로 구성된 오밀조밀한 존을 구축하여 역습을 방지하고 그가 추구하는 숏 패스를 기반으로 하는 토탈 사커를 구현, 빌드업과 침투와 패스의 세밀함을 바탕으로 좁은 지역에 많은 숫자를 가담시키고 뺐기면 바로 압박을 가해 상대의 수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전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2019년 제주에서는 최윤겸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축구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구시대 감독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는데, 현대축구에선 같은 미드필더라도 홀딩 미드필더와 박투박 미드필더의 구분이 더욱더 커지고 있고,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예 다른 포메이션이라고도 이야기 될 정도인데도 문제는 최윤겸은 포지션의 구분도 없이 같은 중앙 미드필더라고 그냥 아무데다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래의 폭행 사건 때문에 불같은 성격의 지도자라고 오해하기 쉬우나 온화하고 후덕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전술 외적으로 최윤겸 감독과 이전에 함께 해본 대부분의 선수들은 “감독님이 화를 내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전적으로 선수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좋은 분”이라고 언급한 만큼 온건파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응집력과 카리스마가 부족해 강경하고 선수단을 휘어잡는 능력은 다소 부족하며, 2019시즌의 제주같은 급한 불을 끄고 선수단을 휘어 잡아야 하는 팀 입장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지도자라고 평가받는다.

청주 FC 감독으로 복귀한 후에는 좋은 지도력으로 신생팀 청주로 승격 플레이오프 경쟁을 하고 있어서 청주 팬들의 평가가 좋다.

4. 논란[편집]



4.1. 이영익 코치 폭행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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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관계는 2개의 짤방으로 요약 가능하다.

본래 두 사람은 평소 형, 동생으로 지낼만큼 친분이 있는 사이였으나 2006년부터 최윤겸 감독과 이영익 코치의 불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11] 당시 구단 직원의 말로는 이영익이 술자리에서 언젠가 대전 시티즌의 감독이 되고 싶다고 언급을 했었는데, 이게 이영익이 구단사장과 함께 서로 짜고 최윤겸 감독을 몰아내서 감독이 되려 한다고 크게 와전이 되고, 바로 최윤겸의 귀에 들어가면서 둘은 심히 갈등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영익 코치가 최윤겸 감독에게 항명하였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돌았고 그 외의 각종 악성 루머까지 돌면서 둘의 갈등은 점차 고조되어 결국 폭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이영익 코치의 집에서 둘은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격하게 논쟁을 벌이다가 최윤겸 감독이 순간 흥분한 나머지 맥주캔으로 이영익 코치에게 폭행을 가하여 이영익 코치는 결국 중상을 입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최윤겸 감독은 대전의 감독직에서 사임하였으나 9일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영익 코치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화해하면서 대전 구단은 최 감독에게는 6개월 감봉, 이 코치에게는 주의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둘의 화해는 사실상 쇼윈도식이였고, 사건 이후 휴가 중이던 이영익 코치는 폭행 사건을 목격한 자신의 아내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최윤겸 감독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고소하는 사태로까지 번진 것이였고, 이에 대전 구단은 최윤겸 감독과 이영익 코치를 함께 해임시켰다.

그 뒤 동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80시간의 축구교실 운영 사회봉사 판결을 받았다. #

한편, 2016년 대전 시티즌 감독 취임식에서 이영익은 과거 폭행 사건 문제에 있어서는 최윤겸 감독과 오해를 어느 정도 풀고 화해를 했다고 말했었다.


5. 이야깃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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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로는 두 아들이 있다. 첫째 아들은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엘리트이고, 둘째 아들은 그 유명한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민호이다. 민호 역시 아빠의 영향으로 어릴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지만, 최윤겸의 반대로 축구선수의 길을 가지는 못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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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에 당시 샤이니의 일본인팬들이 단체로 본인이 감독으로 있던 강원 FC의 연간회원권을 구매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 2023시즌 K리그 최고령 감독이다.

  • 2016년 어버이날5월 8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후 선수들이 최윤겸에게 큰절을 했고 최윤겸도 맞절을 했다.

  • K리그 클래식 미디어데이에서 K리그 홍보대사로 임명된 러블리즈서지수가 좋아하는 감독이 최윤겸 감독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근데 어떻게 알았을까? 민호를 알아가려는 빅 픽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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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속 트레이닝복은 17년도에 부산 아이파크 지급 된 선수용 자켓인데, 자신의 사이즈가 없어 유소년 선수 자켓을 잠깐 빌려입고 찍었다는 웃픈 이야기가 있다.[13]

  •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천주교 인천교구 한국순교성인성당의 축구 동호회인 미카엘 FC에 가끔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묵주팔찌 또한 차고 다녔으며 천주교 신자이다.[14]

  • 대전 출신이고 과거 대전 구단을 이끌고 성과를 냈던 탓에 항상 대전 구단이 감독을 바꿀 때마다 꾸준히 신임 감독 후보로 거론 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2018년 김호 대표 이사가 새로 부임했을때 바로 최윤겸에게 감독 제의를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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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8월 20일 업데이트된 에이핑크 오하영 유튜브를 통해 근황이 밝혀졌으며 기술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음이 알려졌다.[2] 시즌 도중 부임.[3] 당시 프로 축구계는 선수의 이적 권한이 상당히 제한될 만큼 구단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렇다.[4] 이는 2022년 지금까지도 대전의 역대 최고 성적이다.[5] 박경훈 감독시절 후기부터 나온 현상이다. 박경훈 감독 초기, 중기에는 김은중, 나타나에우 산투스, 자일, 페드로, 서동현 등의 좋은 스트라이커 자원이 있었지만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뚜렷한 스트라이커가 없는대신 여러 선수들로 득점 루트 다변화를 노리는 노선으로 바꿨고 조성환 감독 시절에 절정에 이르렀다. 두 자리수 득점을 올린 선수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걸 기록한 히카르두 로페스, 마르셀루 토스카누, 마그노 모두 최전방 공격수와는 거리가 먼 유형의 선수들이다. 훗날 남기일 부임 후 주민규가 자리잡기 전까지 이 상황이 계속되었다.[6] 이번 감독선발위원회는 남기영 전 고등연맹 회장 대행을 위원장으로 청주대학교 감독이자 최윤겸의 제자인 이관우 감독과 청주시축구발전위원회 임영삼 위원장, 서원대학교 신진호 레저스포츠학부 교수, 충북청주FC 간부 2명으로 구성됐다고 한다.[7] 부산은 이게 스노우볼이 되어서 승강 플레이오프에 가서 수원 FC 상대로 1차전을 2-1로 역전승했으나, 2차전에서 86분까지 1-1로 비기던걸 극적으로 막판에 실점당해서 연장까지 간 뒤, 연장에서 3골씩이나 먹혀서 총합 5-2로 패배하여서 1부 승격에 실패하였다.[8] 참고로 이날 경기는 아들 민호도 직관했다.[9] B급 감독이면 실력 없는 감독이라 오해하기 쉬운데 애초에 지도력이 있으니까 매번 프로팀에서 감독으로 선임해주는거다.[10] 사실 니폼니시 아래 길러진 지도자들 대부분이 이렇다. 일단 전부 실력이 없진 않아 2부 리그까진 괜찮은데 1부에선 어딘가 아쉬운 커리어들이다. 2019년 시점까지 1부리그 우승을 노리는 구단을 맡아본 감독은 울산 감독을 역임한 윤정환 정도인데 막강한 자금력과 스쿼드를 살리는데 실패하고 낙마했다. 그 다음은 제주에서 리그 준우승까지 해본 조성환과 2구단으로 승격을 달성한 남기일인데 전자는 재임 기간이 길어지면서 매너리즘을 극복 못하고 무너졌고, 후자는 그래도 최윤겸이 강등시킨 팀을 한 시즌만에 승격으로 이끌고 이런 팀을 1부리그 3위까지 끌려올렸다. 니폼니시의 제자는 아니지만 조덕제 감독의 경우 수원FC 시절 리그 최종전까지 버티기는 했지만 강등을 막지는 못했고 부산의 경우 최윤겸이 실패한 승격을 성공시키기는 했는데 1부리그에서 부진에 빠지면서 자진 사퇴했다.[11]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12] 사실 민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빠가 '축구를 할 거면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 등 완강히 반대하였다고 한다. 최윤겸은 아들이 힘든 축구선수의 길을 걷지 않길 바랬고, 체격도 너무 호리호리해서 크게 다칠까봐 걱정했다고... 실제로 민호는 샤이니 데뷔초에 굉장히 마른 체형이었다. 지금의 근육은 본인이 운동해서 키운 것.[13] 코칭스태프는 색이 진한 회색이다.[14] 참고로 둘째아들은 무종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