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경(쇼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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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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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崔恩景 | Choi Eunkyung


파일:동계올림픽최은경1.png

출생
1984년 12월 26일 (39세)
대구직할시 수성구
(現 대구광역시 수성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구용지초등학교
덕화여자중학교
목일중학교
세화여자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000m, 1500m
신체
165cm, 58kg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3. 평가
4. 비한체대파 코치의 폭행의 피해자
5. 파벌
6. 수상 기록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여자 쇼트트랙 선수이다.


2. 선수 경력[편집]


덕화여자중학교 1학년 때 1998-99 시즌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이때 신설된 ISU의 나이 제한[1]에 걸려 대표팀을 나와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 목일중학교으로 전학했으며, 세화여자고등학교한국체육대학교에 진학했다.


2.1. 2001-02 시즌[편집]



2.1.1.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편집]


전이경을 이을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고, 솔트레이크 시티 준결승에서 세계신기록도 작성했다. 계주 금메달과 개인전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2.2. 2002-03 시즌[편집]



2.2.1.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편집]


1500m와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올랐다 3000m에서는 은메달을 따냈다.


2.2.2. 2003 세계선수권[편집]


자신의 커리어 첫번째 종합 우승에 도정했다. 당시 중국의 에이스 양양(A)와 피말리는 접전을 펼칠거라고 예상되었다. 한국 팬들은 그녀가 양양에 세계선수권 종합 7연패를 막아줄거라고 기대하였다. 양양(A)는 아시안 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한 이후로도 여전한 기량을 뽐내고 있는 중이있다. 결국 접전 끝에 최은경이 1500m 금메달과 1000m, 3000m 은메달로 자신의 첫번째 세계선수권 종합 금메달이자 한국 선수로는 1997 전이경 이후 6년 만에 한국 여자 선수로서 우승했다. 하지만 당시 양양A가 아시안 게임에서 당한 부상으로 정상적인 폼이 아니기는 했지만 큰 부상이 아닌 잔부상이었기 때문에 최은경의 우승은 매우 값졌다.


2.3. 2003-04 시즌[편집]



2.3.1. 월드컵 시리즈[편집]


월드컵 시리즈에서 전이경 이후 한국 여자 선수로는 두번째로 종합 우승을 하였다.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단일 대회 출전 종목 제한도 없었고 선수권 방식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지금의 월드컵 시리즈와는 다르게 비교적 가치도가 더 높았던 시절이었다.


2.3.2. 2004 세계선수권[편집]


1000m, 1500m, 3000m 계주에서 금메달 그리고 500m에서 동메달을 따며 종합 우승 2연패를 달성했다. 전이경 이후로 최초의 2연속 우승자가 되었다.


2.4. 2004-05 시즌[편집]


2005년에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이 전원 무단 이탈을 하는 일이 생겼는데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니 당시 여자부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성적을 강요하며 폭행을 일삼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당시 폭행에 당사지인 최광복 코치는 파면되고 김소희 코치는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


2.4.1. 2005 세계선수권[편집]


세계선수권 종합 3연패를 노렸으나 진선유라는 혜성처럼 등장한 거물급 선수에게 밀려 3연패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1000m 금메달과 3000m에서 동메달을 따며 종합 준우승을 차지 하였다. 하지만 이 준우승이 다음 시즌 파벌 싸움이 절정을 이루게 된 원인이 되고 만다. 아래 '파벌' 문단 참조.


2.5. 2005-06 시즌[편집]



2.5.1. 월드컵 시리즈[편집]


월드컵 시리즈에서 부상으로 인해 개인전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했으나 계주에 참가해 여자 대표팀이 메달을 따내는데 일조했다.


2.5.2.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편집]


올림픽에서는 월드컵때와는 다르게 비교적 회복된 모습을 보이며 큰 활약을 펼쳤다. 3000m 계주 금메달, 개인전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1000m에서도 2번째로 들어왔으나 양양(A)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어이없고 애매한 판정으로 실격당했다.


3. 평가[편집]


진선유에 가려 올림픽에서 콩라인에 머물렀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우리나라 여성 쇼트트랙 선수 중에선 전이경 다음으로 세계선수권 종합우승 경험도 2번이나 있으며, 전이경과 진선유 사이에서 우리나라 여자 국가대표의 에이스를 담당하던 선수였다. 2005 인스브루크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선 전관왕에 성공했고[2], 주종목인 1000m와 1500m 이외에도 한국의 취약 종목인 500m에서 준수한 실력을 갖췄던 선수다.


4. 비한체대파 코치의 폭행의 피해자[편집]



당시의 한체대와 비 한체대의 파벌갈등은 어느 한쪽의 문제라 단순히 단정하거나 개개의 한 사건으로 모든 것을 판단 내리기에는 상당히 복잡하게 이어져있다. 단, 이시기 선수들을 폭행했거나 구타를 방조했던 일련의사건들은 한체대 비한체대라는 파벌 갈등이라는 프레임당시 선수들이 폭행 사건들의 피해자라는 본질이 묻혀버린다.

그리고 선수들은 맞아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계속 해야만 했다. 파벌, 한체대, 비한체대 이러한 프레임을 떠나 구타, 폭행 이런것과 자신의 구타사건들에 대한 폭로는 인간으로서 폭행 당하기 싫다는 가장 기본적인 존엄성이다. 선수들에 대한 폭행의 정당성을 파벌이라는 프레임으로 무마되는것은 선수들이 계속 폭행을 당하면서 스포츠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은경은 한체대 파벌의 가해자라고만 언급이 되어 있기에 그녀가 비한체대파 코치 폭행의 피해자였고, 한체대 코치 박세우의 의 진선유 집단 견제 이전에 먼저 최광복 코치의 구타 사건이 먼저였다. 이점을 정확히 명시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

가장 최초로 폭로한 사람은 변천사 이며, 가장 심하게 폭행 당한 사람은 최은경이다.

출처 : 손석희와 변천사의 jtbc 보도 기사 국제뉴스

2004년 당시 여자 쇼트트랙 에이스인 최은경(한체대)과 여수연(중앙대), 변천사, 허희빈(이상 신목고), 강윤미(과천고), 진선유(광문고) 등 주축선수 6명은 저녁 훈련이 끝난 뒤 태릉선수촌을 이탈했다.

당시 이탈 사건에 참가했던 한 선수는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운동한 날이 없다. 손으로 머리를 맞는 것은 다반사였고 심지어 아이스하키 채와 쇠로 된 로그게이지, 신발 등으로 팔뚝과 엉덩이, 빰을 가리지 않고 때렸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그는 “지난 10월7일 아침 훈련 때 최은경 선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탔는 데도 C 코치는 시간이 뒤졌다며 스케이트날 집으로 엉덩이를 마구 때리더니 엎드려 뻗쳐를 시켰고 쓰러지는 선수의 목덜미를 잡고 계속 때리기도 했었다”면서 “이런 폭력은 수도 없이 행해졌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선수도 “훈련장에서는 물론이고 지난달 해외 전지훈련을 했던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와 국제대회(월드컵)가 열리는 외국에서도 구타는 끊이지 않았다”며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너무나 소중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스케이트를 제일 혐오하게 됐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선수들은 계속된 폭력에 팔목이나 엉덩이에 피멍이 들기 일쑤였고 한 선수는 머리채를 잡히거나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털이 한 움큼 빠지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

당시 진술서에는 정확히 최은경이라는 이름이 확인된다. 그리고, 코치들은 비한체대 최광복, 김소희 였다. 최광복은 이 사건이후에도 2005년 강릉시청 실업팀 감독을 하였으며, 국가대표팀 코치를 연이어 맡았다. 최광복의 학교는 광문고등학교 단국대이다. 이후 코치진은 한체대 코치인 박세우 전재목으로 변경되었다.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진선유 여자대표팀 선수 6명, 선수촌 무단 이탈 사건 (SBS 뉴스)

2004년 11월 10일, 여자 선수 6명 비한체대 최광복, 김소희 코치의 구타 상황 자술서 공개 (동아일보)

2004년 11월 15일, 박세우 (한체대), 전재목 (단국대) 로 여자 쇼트트랙 팀 교체 (SBS 뉴스)



파일:6932903.1.jpg

5. 파벌[편집]



허나 이 선수도 파벌 논란에서 빠질수 없는데 한체대파의 에이스로 여러 특혜를 받았고 그에 따른 구설수들도 많았다. 2003 세계선수권에서 양양(A)의 7연패를 저지하며 우승했지만 비한체대파의 조해리[3]가 희생하여 노골적인 팀플레이를 해줬다. 비한체대파의 대표 선수 진선유에게 당시 여자대표팀의 한체대 코치들이 2005 세계선수권에서 최은경과 강윤미를 돕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진선유의 도움으로 개인종합 2위를 하게 되나 팀플을 강요당한 진선유는 심판들에게 경고를 받았다.

파벌 싸움의 절정을 이룬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의 사달의 원인이 된 선수이기도 하다. 당시 최은경은 부상에 시달리며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던 시점으로 치열한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할 보장이 없었다. 그러자 빙상연맹의 중추를 쥐고있던 한체대 쪽에서 전 시즌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자에게만 주는 국가대표 1차 선발전 면제권을 1-3위에게 모두 주도록 규정을 바꿔버린다.[4] 바뀐 규정으로 예비 국가대표 8명 중에서 3명(비한체대-진선유/한체대-강윤미, 최은경)이 자동선발 되나, 진선유는 부합리한 규정이라고 반발하며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 참가하여 1위로 선발되었다. 전년도 세계선수권 우승자가 국가대표 선발전을 뛰는데 2-3위는 자동선발되는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름 태릉선수촌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1차 선발전 2위를 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던 조해리가 갑자기 퇴촌한 것이다. 퇴촌 당시 여러 잡음이 있었는데 조해리는 자살사이트에 가입할 정도로 우울증에 걸렸으며, 2차 선발전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진선유를 제외하고 모두 한체대파로 채워지게 된다.[5]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계주 금메달 이후 세리머니에서 한체대-강윤미, 전다혜, 최은경/비한체대-변천사, 진선유가 갈린 모습이 TV에 전부 중계되었다. 특히 1000m 개인전 출전에 대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2005-06 시즌 월드컵에서 변천사가 출전하여 1000m 개인전 출전권을 따왔다. 그리고 당시 변천사는 스무살로 전성기의 나이었고 실력 또한 우위라고 평가되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최은경이 출전했다. 변천사와 그녀의 부모님은 올림픽 이후 아쉬움과 억울함을 토로했다. 변천사는 한체대 입학예정자였지만 여자대표팀 코치가 한체대 선수들에게 "중국선수들에게 져도 괜찮지만 진선유를 우승시키면 안 된다."라는 지시와 파벌의 진상을 언론에 폭로라고 비한체대쪽으로 옮긴 선수로 차별을 받었을 거라고 대부분의 빙상팬이 추측한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로 참가한 변천사는 여자 1000m 경기 후 트위터에 박승희심석희를 축하하며 "1000m에 출전했다는 자체가 부럽다."라는 글을 남겼다.[6]


6. 수상 기록[편집]


대회



올림픽
2
2
0
세계선수권
8
2
2
세계 팀선수권
5
1
0
아시안 게임
2
1
0
유니버시아드
5
0
0
합계
22
6
2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02 솔트레이크시티
3000m 계주
금메달
2006 토리노
3000m 계주
은메달
2002 솔트레이크시티
1500m
은메달
2006 토리노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1위
2002 몬트리올
3000m S.F.
금메달
2002 몬트리올
3000m 계주
금메달
2003 바르샤바
종합
금메달
2003 바르샤바
1500m
금메달
2004 예테보리
3000m 계주
금메달
2004 예테보리
종합
금메달
2004 예테보리
1000m
금메달
2004 예테보리
1500m
금메달
2005 베이징
1000m
은메달
2003 바르샤바
1000m
2위
2003 바르샤바
3000m S.F.
은메달
2005 베이징
종합
동메달
2004 예테보리
500m
3위
2005 베이징
3000m S.F.
동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2 밀워키
단체전
금메달
2003 소피아
단체전
금메달
2004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체전
금메달
2005 춘천
단체전
금메달
2006 몬트리올
단체전
은메달
2001 노베야마
단체전
파일:아시안 게임 로고.sv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3 아오모리
3000m 계주
금메달
2003 아오모리
1000m
은메달
2003 아오모리
3000m
파일:FISU 로고.svg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3000m 계주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500m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1000m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1500m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3000m

[1]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전년도의 7월 1일까지 만 15세를 넘겨야 한다.[2] 사실 유니버시아드가 무게감이 있는 대회는 전혀 아니지만 전관왕을 했을시에는 화제가 되는 편이다. 2년 뒤에는 남자 대표팀에서 성시백이 전관왕에 성공했다.[3] 고려대학교에 진학했으며 비한체대파 모지수 코치의 애제자이다.[4] 당시 선발전 방식은 4월 1차 선발전에서 8명을 선발하고 여름 동안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한 뒤 9월에 2차 선발전을 치루어 5명을 선발하는 방식이었다.[5] 변천사는 부당한 파벌싸움에 반발한 선수이고 결국 한체대를 자퇴하게 되지만 당시 한체대 입학예정자였다.[6] 공교롭게도 심석희는 선배 최은경처럼 비슷한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출신이면서 여자 3000m 계주 2연패를 달성하고, 개인전 1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다만 최은경은 1500m 은메달 2개를, 심석희는 1500m 은메달 1개와 1000m 동메달 1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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