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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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인훈(崔仁勳)
본관
전주 최씨#
출생
1936년 4월 13일, 함경북도 회령군
사망
2018년 7월 23일 (향년 82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명지병원
첫 작품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1959)
마지막 작품
바다의 편지 (2003)
제11회 동인문학상 수상
김승옥
(1965)

최인훈
웃음소리
(1966)


이청준
(1967)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추서[1]
1. 인물 소개
2. 작품 세계와 특징
3. 주요 작품
4. 여담
5. 관련 문서


1. 인물 소개


대한민국소설가극작가.
1936년 4월 13일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실제 출생년도는 1934년이라고 한다.) 아버지 최국성(崔國星)은 목재 상인이었으며, 집안은 제법 부유한 편이었다. 해방 이후 소련군이 북에 진주하게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부르주아로 지목되었고, 결국 다른 지방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그는 1947년 아버지를 따라 함경남도 원산시로 이주했으며, 자전소설인 <화두>의 내용에 따르면 원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의 경험이 후에 소설가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참고로 원산중학교에 입학할 때 월반을 해 바로 2학년부터 시작했다.
원산고등학교 재학 도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철수하는 국군을 따라 월남했으며, 피난민 수용소에서 1달 가량을 지내다가 친척이 있는 전라남도 목포로 이주함과 동시에 목포고등학교로 전학했다.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지만, 사법시험은 거의 준비하지 않고 문학 공부에 몰두한다. 이 때 시를 써서 추천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후에 그의 작품인 <광장>이나 <구운몽> 등에서 시나 노래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없지는 않았던 듯하다. <구운몽>에 등장하는 '해전'이라는 시는 따로 연구한 논문도 더러 있으며, 최인훈 자신이 그에 대한 해석을 쓰기도 했다.
자세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1957년에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2] 장교로 임관하여 군 복무를 했다. 군에서는 제법 오래 있었는데, 통역장교로 7년 간 근무하면서 1959년부터 문학 활동을 한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편소설 <광장> 역시 1960년작이다.
1959년에 <그레이 구락부[3] 전말기>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같은 해 <라울전>이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소설가가 된다. 그리고 1960년에는 <가면고>를 발표했으며, 대표작인 장편소설 <광장>이 10월에 발표된다. '1960년이 정치사적으로 4.19의 해라면 문학사적으로는 광장의 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4] <광장>이 당시 문학계에 가져다 준 충격은 대단했다. 이전까지 재능 있는 젊은 작가 정도였던 최인훈은 이 작품 하나만으로 유명 소설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구운몽>, <회색인>, <서유기>,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 <가면고>, <총독의 소리> 등을 발표했으며, 미국으로 떠나 극작가로 활동한다. 극작가로 활동하며 소설은 새로 발표하지 않았으나, '온달 설화'를 희곡으로 각색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이야기'를 희곡으로 각색한 <둥둥 낙랑둥>, '아기장수 설화'를 희곡으로 각색한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등의 희곡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한민국 설화의 희곡화 작업은 당시 1960-1970년대 대한민국 희곡계에서 퍼지고 있던 "전통의 현대화"에 부합하는 작업이었으며, 최인훈은 소설가로서 활동했던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활용하여, 대단히 문학적인 희곡 텍스트를 써내렸다. 이 정점에 가 있는 것이 앞서 언급한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인데, 관심이 있다면 참조하기 바란다.
미국에 머무는 기간 동안 소설은 단 한 작품도 발표하지 않은 대신 <광장>을 공들여 개작했으며, 세련된 순우리말을 사용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돌아온다. 본인은 이 때 미국으로 떠나 생활한 것을 일종의 도피였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이후의 인터뷰 내용 등을 보면 독재 정권 하에서 대한민국이 신음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자유롭게 살았다는 것을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1977년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1년 5월까지 재직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자전 소설인 <화두>를 발표했다.최근이라고 했지만 20년 전이다(...) 1994년에 발표되었으니까 최인훈이 한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느꼈던 감정들과 그 흐름을 따라 살았던 삶, 그리고 자기 작품들의 주제의식과 창작동기를 밝히고 있는 작품이다. 2012년에는 <바다의 편지>라는 선집을 내놓긴 했다.
여담이지만 일상 생활이 거의 베일에 싸여 있는 사람이다.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고, 예전에는 강의라도 나갔지만 정년퇴임 후 요즘은 그마저도 무소식이다. 특히 최인훈의 가족같은 경우는 언론에 공개된 적이 아예 없다시피한 수준. 서울예대에서 봤을 때는 평범한 교수님 A같은 느낌이었다 카더라.
2018년 6월에 근황이 전해졌는데,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암 발견이 늦어서 전신으로 암세포가 퍼졌다고 하며, 상당히 위중했다고 한다. 그 뒤 2018년 7월 23일 오전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했으며, 장례는 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 관련 기사
타계 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관련 기사

2. 작품 세계와 특징


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이데올로기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언제나 사랑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랑은 최후에는 승리한다는 Boy meets Girl 식의 전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현실의 힘겨운 상황 앞에서 사랑이라는 위대한 이상을 좇아 투신한다는 전개가 많은 편이다. 당장 대표작인 <광장>에서만 보더라도, 주인공 이명준이 어머니로 표상되는 원초의 광장, 사랑의 광장인 바다투신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다만 이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아쉬운 부분은, 이명준이나 <회색인>의 주인공 등이 가진 연애관이나 여성관이 60년대 지식인이 가질 법한 관점이다 보니 요즘 보기에는 고전적이거나 심지어는 마초스럽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5]. 이는 최인훈이 속한 세대를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면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에서 주인공의 여성관이 이렇다는 것은 조금 묘한 부분이 있다. 더군다나 최인훈이 소위 진보적인 작가라는 점 때문에 더욱 그렇다.
<광장> 때문에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다룬 작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전면적인 주제로서 부각되는 작품은 <광장> 뿐이라 해도 좋다[6]. 최인훈 자신은 이데올로기보다는 민족의 현실[7]에 관심이 많은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상황의 하나로서 그의 관심을 끌었을 따름이다. 실제로도, 최인훈은 <태풍>처럼 연장된 식민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거의 대체역사소설에 가까운 작품을 쓰기도 했다. <광장> 역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을 폭로하고 그보다 더 본질적인 개인과 집단의 관계 문제와 삶의 실존적 문제를 다루는 소설에 가깝다. 이명준의 삶은 국가주의에 대한 혐오에서 출발해 국가를 넘어서는 비전을 찾으려는 인식론적 모험이며, 이데올로기는 어디까지나 그 배경이 되는 요소일 뿐이다.
고전 문학이나 다른 문학 작품들을 패러디한 작품이 많으며, 대표적으로 <구운몽>, <서유기>, <크리스마스 캐럴> 등이 있다. 또 실험적인 기법을 자주 사용하며, 앞에서 언급된 <구운몽>같은 경우는 꿈과 현실이 모호한 특유의 환상소설적인 기법으로 현실 문제를 비판하여 시대를 앞서 간 작품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보르헤스가 떴을 때는 평론가들이 극찬을 했는데 최인훈은 실험적 기법 때문에 욕만 들어먹었다.[8] 욕만 들어 먹은 건 아니다. 좋은 평가도 많이 받았지만 하필이면 발표 시기가 딱.......
대중적으로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희곡 분야에서도 중요한 사람이다. 소설 창작에 한계를 느껴 오직 '희곡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희곡 창작을 시작했다고 하며, 기본적으로 무대에서 상연되는 연극의 대본으로서의 희곡이 아닌 순수한 문학으로서의 희곡[9]에 접근하고자 한 작가로 알려져 있으나 2009년에 본인의 희곡을 무대에 올렸다. 소설에서 패러디 기법을 많이 사용했던 것처럼, 희곡 역시 심청전이나 온달전 등 고전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들을 썼으며, 이를 미국에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2003 수능에서는 최인훈의 희곡 중 하나인 "둥둥 낙랑둥"이 허를 찌르면서 출제됐다. 제목만 보아도 무언가가 생각난다.
말년에는 작품 활동이 뜸한데, <바다의 편지>라는 에세이 겸 소설집 이후로는 별 다른 소식이 없다. 사실 한국 문단 자체가 나이 많은 기성 문인이 신작을 발표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환경이다. 더군다나 사상가로서도 인정을 받는 사람인 만큼, 별다른 목적 의식 없이 여러 글들을 써서 내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오히려 활발히 활동하는 편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본인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2009년에는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은퇴란 없다"고 말했다.
전술했듯이 1977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예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로는 은퇴한 뒤 명예교수 직함을 썼다.
제자 류인호의 회고에 따르면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선언한 헌법재판소 2016헌나1 결정문의 유명한 문장,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문장을 두고 우리 현대사 최고의 명문장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3. 주요 작품



4. 여담



5. 관련 문서



[1] 1999년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2] 이후 2017년 2월 24일 명예 졸업했다.[3] 클럽의 일본어식 음차 표현이다. 일반적으로는 자주 쓰이지 않는 단어지만, 일본어 세대 작가들은 구락부라는 말을 많이 쓴다.[4] 평론가 김현의 말이다.[5]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어서, 광장의 서사를 마초이즘으로부터의 인식 전환 과정으로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단순히 마초적이기만 한 작가는 아닌 셈.[6] 다만 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민족주의(+맑시즘, 자유주의 등)vs일본 파시즘같은 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 본다면 더 있기는 하다.[7] 이렇게 서술해버리면 의미가 굉장히 애매해진다. 최인훈의 민족 현실에 대한 관심은 후기(탈)식민주의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가지는 책임감에 가깝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그의 자유주의적 사상에 반하는 냉전 체제와 독재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확장된다. 분명한 것은 최인훈이 민족주의적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태풍만 읽어 보더라도 오히려 민족주의 논리로부터의 탈피를 더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기본적으로 좌파적 헤겔리언인 최인훈에게 민족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것은 결례일 터이다. 차라리 민중주의자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8] 보르헤스의 소설이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알려져 있다면, 최인훈은 구운몽을 '추상적 리얼리즘'의 작품이라 했으며,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환상적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인다.[9] 이런 유형의 희곡을 '레제 드라마'라고 부른다. 무대 상연을 본목적으로 하지 않고, 문학성에 비중을 두어서 읽히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 시나리오 역시 각색이나 촬영용이 아닌 순수하게 읽기 위한 목적으로 쓴 거라면 '레제 시나리오'라고 부른다.[10] 낙랑공주가 쌍둥이라는 설정인데 내용이 막장드라마 뺨 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