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선수 경력/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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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페넌트레이스
2.1. 4월
2.2. 5월
2.3. 6월
2.4. 7월
2.5. 9월
3. 포스트시즌
3.1. 준플레이오프
3.2. 플레이오프
3.3. 한국시리즈
4. 총평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최정의 2011년 활동을 정리한 문서.


2. 페넌트레이스[편집]



2.1. 4월[편집]


2011년부터 계속 간직해 오던 거포의 로망을 향한 미련을 못버리고[1] 타격폼을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벤치마킹해서 바꿔버렸는데 시즌 극초반에 25타수 3안타, 타율 0.120으로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며 팬들에게 죽어라 욕을 먹었다.

그러다 4월 13일 한화와의 주중 2차전 경기 전 김성근 감독과의 1시간 30분 단독 면담을 나눈 후 그날 호수비와 더불어 5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대폭발했고, 다음 날인 4월 14일에는 0-0으로 팽팽하던 4회말 1사 1루와 2루 상황에서 한화 선발 류현진의 초구를 맞춰 시즌 첫 홈런을 3점홈런으로 장식해 결승점을 뽑아낸 데 이어, 추가로 1타점을 더하며 팀의 5-1 승리를 견인하면서 경기 MVP에 등극.


2.2. 5월[편집]


4월은 그럭저럭 지나갔으나 5월이 되면서 완전히 폼이 무너져 버리면서 거하게 삽질을 해 타율이 2할 초반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 솩갤러들에게 로또와 함께 공격맥을 끊는 잉여로 취급되며 잦정이라고 불렸다.


2.3. 6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11년/6월/17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1년 6월 17일 잠실 LG전에서는 9회말 포수로 출장했다! 포수 자원이 다 떨어지자[2] 김성근 감독이 포수 경험이 있던 최정에게 포수를 맡긴 것. 2006년 6월 13일 두산전 이후 약 5년만에 포수 마스크를 다시 쓰게 되었다. 9회말 등판한 정우람과 함께 1이닝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으며 승리에 일조했다.

전체적인 타격감의 기복이 심해졌지만 5월 말부터 다시 타격감이 살아나면서 3할에 복귀했고, 6월 28일부터 4게임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유신의 별이란 극존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야구천재의 줄임말인 '야천'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런데 최정을 제외한 나머지 타자들이 전부 부진하다 못해 죽어버리다시피 못하면서 팀은 7연패하며 3위로 추락했다.


2.4. 7월[편집]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는 구속 147km를 찍으며 타자 스피드왕(!)이 되었다. 2위에 오른 유한준이 140km였기 때문에[3]이러다 최정 때문에 타자 스피드왕 콘테스트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을 샀다. 사실 제구를 생각 하지 않고 높게 공을 던졌기 때문에 더 많은 구속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하겠다.


2.5. 9월[편집]


목동 넥센전을 뛴 이후 사구를 맞은 부상이 악화되어 결국 9월 9일에 1군 말소. 거기다 입원까지 하고 있는 듯하다.

9월 28일 다시 1군에 올라왔다. 그리고 9월 30일 문학 삼성전에서 홈런을 하나 추가해 드디어 통산 100홈런, 시즌 20홈런 달성에 성공했다.

최정은 2011년 팀 내에서 가장 많은 20홈런을 기록했다.


3. 포스트시즌[편집]



3.1. 준플레이오프[편집]


10월 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지던 7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3루수 번트병살타를 쳤다. 윤석민이 번트를 못대게 하려고 던진 몸쪽의 높은 쪽 공을 피하려다가 그게 옆으로 튀고 전진 수비하던 3루수 박기남이 그걸 잡아 그대로 2루에 던져서 병살이 된 것. 사실 최정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이만수 감독대행의 작전 미스라고 봐야 할 게, 최정 정도의 타자라면 그 타석에서 비록 실패하더라도 차라리 강공으로 가게 하지 번트를 시키는것은 이후를 생각하면 잘못된 처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날 최정은 선발 3루수 겸 3번타자로 출장하여 6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여 2011년 준플레이오프 1~2차전 도합 10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5:1로 졌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1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선발 3루수 겸 3번타자로 출장하여 또 다시 2연타석 사구를 맞고 출루하는 등 2타수 무안타 2사구(死球)를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2:0으로 이겼다.

10월 12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선발 3루수 겸 3번타자로 출장하여 결승타 포함, 3타수 2안타 1볼넷 1희생플라이 4타점 1득점으로 팀의 스코어 8:1 승리와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최정은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5타수 2안타 1볼넷 2사구 1희생플라이 4타점 2득점, 타율 .133, 장타율 .200, 출루율 .26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3.2. 플레이오프[편집]


10월 15일 오후 2시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손아섭을 무서운 선수로 지목한 반면 강민호를 X맨으로 지목했다.#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4타수 5안타 5볼넷 3사구 1도루 6득점 타율 .357, 장타율 .429, 출루율 .591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3.3. 한국시리즈[편집]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9타수 7안타 2볼넷 타율 .368, 장타율 .526, 출루율 .429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타격에서는 꾸준히 활약했지만 결정적인 주루 미스와 주루사를 수차례 당하여 팀의 찬스나 득점 연결을 끊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4] 결국 팀 공격 자체가 난맥에 빠져 시리즈를 1승 4패로 삼성에게 넘겨주는 한 원인이 되었다.

최정은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 48타수 14안타 8볼넷 5사구(死球)[5] 1희생플라이 1도루 4타점 8득점 타율 .292, 장타율 .396, 출루율 .435를 기록했다.


4. 총평[편집]


지난 시즌에 이어 팀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올라섰다해도 과언이 아닌 시즌으로 이제 7시즌만을 보냈기에 앞으로의 발자취를 기대하게 했다. 2011년 3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MBC SPORTS+에서 선정하는 카스포인트 집계 결과 SK 선수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인 타자부문 3위를 기록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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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 시즌 전에 김재현은 최정에게 "3할 타자가 되고 싶니? 30홈런 타자가 되고 싶니? 목표를 선택해라"라는 조언을 해준 바 있다.[2] SK는 9회 초에 이미 포수 정상호와 최경철을 대타 기용을 하면서 다 써버렸고 백업을 볼 수 있는 최동수마저 교체되어 더 이상 쓸 수 있는 포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006년에 포수를 본 경력이 있는 최정을 포수로 올리게 된 것이다.[3] 유한준은 존 안에 집어넣었다.[4] 사실 본인의 미스플레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삼성 수비진의 활약이 워낙 대단했던 것이 컸다. 2차전에서 이영욱의 보살로 인한 홈 태그 아웃, 5차전에서 차우찬의 견제로 인한 견제사 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단, 4차전에서 7회말 무사 1,3루에서 안치용의 3루 땅볼 때 협살당한 건 명백한 본헤드 플레이였다. 동점을 만들고자 한 생각이 너무 강해서 3루 강습 타구 때 무모하게 홈으로 질주하려다 협살에 걸린 것. 더구나 삼성 수비진의 기민한 협살 플레이로 인해 나머지 주자들이 진루할 틈도 주지 못했다. 그 다음은 최동수의 병살타로 이닝 종료….[5] 2011년 포스트시즌을 치룬 전 선수들 중 제일 많다. 역시 사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