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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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後 審判
the Last Judgement

1. 기독교종말론 교리
1.1. 이슬람교의 최후의 심판
2. 1에 관해 묘사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성화
5. 일요일밤의 대행진의 코너


1. 기독교종말론 교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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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카잔에 있는 '하느님의 어머니 성당'에 있는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 성화. 심판주로 온 재림 예수 그리스도다니엘서 12장의 예언에 따라 사탄을 몰아내고 하느님의 명령을 받들어 믿는 자와 불신자를 가르고 심판을 집행할 대천사 미카엘이 그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 주변에는 성모 마리아세례자 요한[1], 천사들과 성인들, 마태오 복음서 19장 28절에 따라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을 심판할 12사도들이 그려져 있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32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마치 목자가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33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34 그 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37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1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러면 임금은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6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 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장 31~45절, 공동번역성서.


또 나는 크고 흰 옥좌와 거기에 앉으신 분을 보았다. 그런데 하늘과 땅도 그분 면전을 피하여 그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12 나는 죽은 자들이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모두 옥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책들이 펼쳐졌다. 이윽고 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다. 죽은 자들은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다.

13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놓았다. 그들은 각각 자기 행실대로 심판을 받았다.

14 그리고 죽음과 저승은 불못에 던져졌다. - 이 죽음이 둘째 죽음[2]

, 바로 불 못[3]이다.

15 누구나 이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이 불못에 던져졌다.

요한묵시록 20장 11~15절, <200주년 기념 가톨릭 성경>.


성경에 묘사된 기독교의 종말론 교리 중 하나로, 세상의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재림하여 세상의 시작부터의 전인류를 심판하여 그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한 자를 최종적으로 구원하고, 그를 믿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은 자를 영원히 멸한다는 교의.# 흔히 마지막 때, 재림의 때, 심판의 날, 진노의 날 이라고도 불린다.

기독교의 사도신경 중간에 나오는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가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의미하는 구절이다. 그야말로 부활 교리와 함께 기독교의 모든 교리를 아우르는 핵심 교리라고 할 만한데, 지금 세상의 종말과 기독교의 이상향인 새 하늘과 새 땅(지상에 이루어진 천국)을 이루기 위한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 날은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닥치므로,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고 있다가 심판 때에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다.

공심판(公審判)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사심판'(私審判)에 대조되는 개념화 방식이다. 흔히 개념화하는 죽은 후의 심판, 즉 사람이 일반적으로 죽고 나서 심판을 받아 천국/지옥(또는 연옥) 등에 간다 할 때의 그 심판은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므로 사심판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반면 마지막 때에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벌어지는 이 최후의 심판은 사심판과 대비되어 모든이들의 부활과 심판이기 때문에 공심판인 것이다. 성경과 사도신조 등 초기 기독교 교리 상 최후의 심판(공심판)이 지지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사심판은 중세 이후 형성된 신앙이다. 사실 가톨릭에서 사심판에 대한 공식적인 교리화는 이루어진 적이 없다. 다만 사심판은 교황 베네딕토 12세의 1336년 회칙 “찬양하올 하느님(Benedictus Deus)” 등에서 암시되어 있기에 사심판 신앙이 가톨릭 교리에 반드시 위배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심판을 받지 않은 이들만 최후에 공심판을 받게된다'느니 '사심판의 결정이 공심판에서 뒤집히니 못 뒤집히니' 등 두가지 다른 개념을 무리하게 획일화시키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공식적인 교리와 신자들의 신앙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4]

성경과 기독교 교리에 따른 최후의 심판의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은데, 먼저 마지막 때가 와서 대천사의 외침과 나팔소리와 함께[5]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재림하면 이 세상은 주님 진노의 불로 심판받아 모든 악한 것이 재앙으로 파괴되고[6]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가 부활했던 것처럼, 육신과 영혼이 합쳐져 부활하는 일이 일어난다.[7] 이 때 천국/지옥(또는 연옥)에 가 있던 영혼들이 지상에서 부활한 육신과 다시 합쳐지게 되어 최종적이고 영원한 심판을 다시 받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지상과 천국에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를 누리며 영생[8]을 얻게 되는 것.

여기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미 죽어서(사심판을 받아서)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는 영혼들은 이미 확정된 자기 운명을 다시 받는 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을 표하기도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최후의 심판 이전까지는 육신이 없는 영혼만의 상태로 있다가 마지막 때, 최후의 심판 때가 오면 죽어 없어졌던 자신의 육신과 다시 합쳐져 새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활과 영원한 삶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

그리고 땅에서도 펼쳐진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부활한 새 몸을 입고 들어간 의로운 신자들은 육체가 있기에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영원한 불지옥에 떨어진 죄인들과 불신자들은 육체가 있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영원 형벌을 받는다. 최후의 심판으로 모든 불신자와 악인이 지옥으로 단죄되고, 기존의 세상이 멸망하며 공평한 질서와 정의가 구현되는 하느님 나라(이사야서 11장, 요한 묵시록 21장), 진정한 낙원이 영원한 삶을 얻게 된 신자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교회와 함께 하늘과 지상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것으로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끝나게 된다.

가톨릭의 유명한 성인전이자, 중세부터 성경 다음으로 신자들에게 많이 읽혔던 복자 보라기네 야코부스 대주교의 황금전설에는 최후의 심판에 벌어지게 될 장면이 상세히 적혀있다.

최후의 심판 자체에는 몇 가지 상황이 부수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첫째는 심판하시는 동안의 심판주가 행하시는 절차이다. 그분은 먼저 요사펫 계곡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그리고 선한 자는 오른편에, 악한 자는 왼편에 서게 함으로, 선악을 판결하실 것이다.(...중략) 그 다음 심판주는 친히, 긍휼의 일을 행하지 않은 악한 자들을 꾸짖으신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울게 된다. 마태오 복음서의 주석을 단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대인들은 통곡하리라, 죽은 자로 여겼던 그분이 이제 살아 계셔서 생명 주심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상처난 몸을 볼 때 그들의 범죄를 결코 부인할 수 없음을 깨달으리라.


이교도들도 슬피 통곡하리라. 철학자들의 이론에 스스로 현혹되어 십자가에 못박힌 신을 예배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며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으므로, 죄를 지었던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죄 때문에 통곡하리라. 하느님보다 세상을 더욱 사랑했으므로. 이단자들도 통곡하리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분을 단지 인간이라고 불렀고, 유대인들이 고난받게 하신 그분이 이제 보니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그리하여 지상에 있는 모든 민족들이 통곡하리라. 이제 더 이상 그분(하느님)을 반대할 힘도, 그의 존전을 피할 가능성도, 회개할 공간도, 그분을 만족시켜 드릴 시간도 더 이상 없기 때문이리라. 모든 것이 재앙이며,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단 하나 비탄뿐이로다.[9]


가톨릭의 레퀴엠 디에스 이레(진노의 날)는 최후의 심판 날을 묘사[10]하며 그 날에 주님께 신자들의 자비를 청하는 내용이다.

1.1. 이슬람교의 최후의 심판[편집]


이슬람교에서도 최후의 심판을 믿는다. 물론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는 교리상 개념은 크리스트교와 많이 다른편이다. 코란에 따르면 알라가 나팔소리와 함께 이 세상에 재림하면 모든 이들의 육신이 부활하고 알라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원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알라가 주신 계명을 잘 지키고 충실히 생활한 사람은 알 잔나[11]에 들어가 알라의 자비를 느끼며 행복을 누리고, 불신자들과 악인들은 지옥에 들어가 육체까지 더해져 더욱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는다.

예수(이사)도 등장하는데, 예수는 다른 예언자들과 함께 재림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이슬람으로 회유시키고 알라의 옆에서 최후의 심판을 지켜볼 것이라고 한다.


1.2.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최후의 심판[편집]


기독교 회복주의 교파이지만 최후의 심판에 관한 믿음이 기독교와는 약간 다르다. 일단 심판을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면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육신이 부활하고 심판을 받는다는 믿음은 기독교와 동일하다. 그러나 기독교와 달리 원죄에 대해 모든 인간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온 인류를 위한 대속의 은혜를 통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범법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게 되었다고 믿기에 원죄가 아닌 자신의 행위와 소망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믿는다.

최후의 심판이 시작되면 낙원과 영옥(지옥)에 있던 이들이 나와 자신의 행실과 소망에 따라 심판을 받고 자신이 가게 될 왕국이 결정된다. 왕국은 해의 왕국, 달의 왕국, 별의 왕국이 있으며 해의 왕국의 주민만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면전을 보며 살 수 있는 특권을 얻는다. 어떤 왕국에서도 소속되지 못한 악인들은 사탄과 함께 지옥으로 내려가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2. 1에 관해 묘사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성화[편집]


파일:external/www.canvasreplicas.com/Last%20Judgment.jpg
최후의 심판

Il Giudizio Universale

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국가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제작
1536년-1541년
사조
르네상스
종류
벽화
기법
프레스코
크기
13.7m × 12m
소장
[[바티칸|
바티칸
display: none; display: 바티칸"
행정구
]]

시스티나 경당

1533년에 교황 클레멘스 7세의 명으로 시스티나 경당에 그려진 벽화로, 사코 디 로마를 비롯한 재난의 연속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1534년 교황의 사망으로 이 작업은 일단 중지되었으나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바오로 3세가 다시 이 작업을 의뢰함으로써 결국 1541년에 면적 완성되었다.

바티칸에서 제공하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사이트. 시스티나 경당을 파노라마 촬영한 것이나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을 보고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림에서 보았듯이 대부분의 인물이 나체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수의 모습이 기존의 성화와는 전혀 다르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등 과격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당연히 수많은 성직자들과 추기경들은 "이런 나체화는 성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탄원했다. 그나마 이 그림을 인정한 바오로 3세 생전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바오로 3세가 사망한 이후 소집된 1564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모두 가려져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져 결국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그림의 인물에 옷을 그려 가리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볼테라에게는 현대까지도 '기저귀 그리는 화가'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이 따라다닌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성화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체화로 그려졌지만 그림 실력에는 타고나서, 더 이상 태클 거는 성직자들은 없었다. 그런데 당시 교황의 의전담당관 '비아지오 다 체세나' 추기경은 누드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고 '나체들은 거룩한 장소에 적절하지 못하며 홍등가에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혹평을 한다. 하지만 교황청이 자신을 후원해주고 있기에 이러한 혹평을 대놓고 표현하지 못했던 미켈란젤로는 6년 반에 걸친 이 그림 제작 과정에서 복수한다. 4구역의 오른쪽 하단에 있는 카논의 배 부분[12]에 체세나 추기경을 '지옥의 수문장 미노스'로 그려넣은 것이다.

미노스의 귀는 당나귀 귀로 표현되었는데 당나귀의 귀는 보통 무지하다는 상징이고 성기마저 이 물고 있게 그려 인간의 성적 방종에 대한 하느님의 가혹한 심판을 보여준다. 일설에 의하면 체세나 추기경도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문란한 사생활을 보냈기에 이렇게 비꼬았다고 한다. 이런 미켈란젤로의 장난질에 체세나 추기경은 화가 나서, 당시 교황인 바오로 3세에게 자신의 얼굴을 빼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그나마 수도복을 입고 무덤에서 나오는 영혼을 돌보는 천사로 교황 자신을 표현했는데, 바오로 3세는 괜히 그림에 이래라 저래라 했다가 자기도 미켈란젤로의 심기를 건드려 작품에 망측한 꼴로 그려질까봐, "체세나 추기경님이 연옥에만 계셨어도 제가 어떻게 해보겠는데, 사람인 제가 지옥에서 추기경님을 구원하기란 불가능합니다."라며 슬그머니 발을 빼버린다.

축성식은 1541년 10월 31일. 일설에는 축성식 당일 성화를 본 바오로 3세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 심판의 날에 저의 죄를 묻지 말아주소서."라고 청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본인의 얼굴도 있다. 사도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살가죽의 얼굴이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다. 이는 미켈란젤로를 표시하는 장화 (그가 작업할 때마다 신던)를 살가죽이 신고 있어서 알 수 있다. 그 외의 다른 인물들과 그 위치는 여기를 참고하면 된다.

3. 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의 에피소드[편집]


최후의 심판(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문서 참고.


4. 가면라이더 아마존즈의 극장판[편집]


가면라이더 아마존즈 THE MOVIE 최후의 심판 문서 참조.


5. 일요일밤의 대행진의 코너[편집]


일밤의 전신인 일요일밤의 대행진을 구성하는 코너 중 하나.

성우 김현직하느님으로 등장해서 목소리 출연만 하는 코너로 이 코너에서는 김현직만 유일하게 고정 게스트이며 나머지 게스트들은 매 회마다 변경된다. 내용인 즉 하느님이 뒤가 구린 범죄자들에게 나타나서 추궁하고 범죄자들은 그것을 변명으로 일관하며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하느님이 그 범죄자의 행적을 보여준다. 그 범죄자의 행적을 다 보여준 후 하느님은 범죄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내리는데 형벌을 내리는 장면은 주로 CG를 이용해서 화면을 뒤틀거나 깨거나 하는 방법이다.

14분 00초부터 최후의 심판이 시작된다.

나중에 이 코너가 '죄와 벌'로 사실상 이름만 변경되었는데 하느님이 직접 벌을 주지 않고 병조야, 판결을 내리거라.라고 말하면 코메디언 김병조가 말하는 멘트에 따라 처벌이 결정된다. 이때 김병조가 주로 내리는 멘트는 "나가놀아라~", "지구를 떠나거라~" 등이 유명했다.


6. 던전 앤 파이터크루세이더(던전 앤 파이터)/남자직업군이 사용하는 진 각성[편집]


크루세이더(던전 앤 파이터)/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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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좌에 앉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편에 성모 마리아세례자 요한이 있는 성화를 데에시스(deesis, 간절한 기도)라고 한다. 정교회의 전통적인 성화 구도이다.[2] 왜 '둘째' 죽음이냐 하면, 죄인이 이승에서 한번 죽고 최후의 심판 날에 부활한 뒤 다시 불지옥의 영원한 멸망 형벌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영원한 지옥 형벌을 둘째 죽음으로 묘사한 것.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둘째 죽음의 형벌을 면한다(=천국의 구성원이 된다)는 구절이 요한묵시록에 적혀 있다.[3]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불바다'로 번역.[4] 사심판 신앙은, 사실, 엄밀한 신학적 기반보다는 필요에 따른 면이 없지않아 있다. 당장 부모님을 잃은 자녀들에게 '부모님께서 지상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잘 살았으니 이제 천국에서 복을 누리실 것이다' 혹은 (천국에 가시기 객관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연옥에 계시니 천국에 가시도록 함께 기도하자' 라고 위로하는 데 더할나위없이 적합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5] 성경 데살로니카 1서 4장 16절.[6] 신약성경 베드로1서 3장 12절[7] 여기서, 재림 때까지 살아있는 의인과 신자들은 부활한 새 몸으로 변화되어 구원받을 것이라 본다. 단 여기에 대해서는 휴거 같은 과정 없이, 불신자들과 신자들이 함께 부활해 곧바로 자기 행실대로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가톨릭정교회 및 일부 개신교파의 의견과 의인과 구원받은 기독교 신자들의 부활과 휴거먼저 일어날 것이고, 악인과 불신자들의 부활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통치하는 천년왕국 이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전천년주의 개신교 교파도 있는 등 다소 교파간 의견차이가 있다.[8] 어떠한 폭력이나 고통도, 죄악도 없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극도로 행복한 낙원의 영원한 삶.[9] 보라기네의 야코부스, <황금전설>, 31p.[10] 죽은 이들의 부활, 주님이 타락한 세상에 내리는 진노의 재앙, 최후의 심판 등.[11] 쿠란에서 천국은 알라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12] 위 그림에서는 오른쪽 맨 아래 구석, 바티칸 사이트에서는 오른쪽 문 바로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