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령 경부고속도로 연쇄추돌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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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고 내용
3. 사고 원인
4. 사고 이후
5. 여담



1. 개요[편집]


2000년 7월 14일 오후 2시 45분에 경부고속도로[1] 추풍령IC 부근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이다. 이 사고로 총 18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 당시 KBS 뉴스9 보도
  • 당시 MBC뉴스데스크 보도
  • 당시 뉴스 보도
  • 2014년 생존자 인터뷰[2]

2. 사고 내용[편집]


285명의 학생과 인솔교사 9명 등으로 구성된 부일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단이 7월 11일 7대의 전세버스를 이용해 3박 4일 일정으로 설악산통일전망대강원도 일대와 용인시 에버랜드 등을 둘러보는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던 길에 수학여행 버스 1대가 빗길 과속으로 빗길에 미끄러져 정차해 있던 5톤 트럭[3], 포텐샤 차량과[4] 충돌한 후 현대 마이티 트럭과 뒤따라오던 수학여행 버스 2대, 승용차 2대가 잇따라 추돌했다.

순식간에 8대의 차량이 좁은 2차선 도로상에 뒤엉켰고 기아 포텐샤 승용차에서 치솟은 불길이 삽시간에 옮겨붙어 버스 3대와 승용차 3대, 트럭 1대가 전소되는 등의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인명피해가 커졌다.[5] 이 사고로 인해 경부고속도로가 2시간 동안 전면 통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여 양방향으로 20km 이상의 정체 행렬이 이어졌으며 이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최초라고 한다.[6][7]

사망자 18명 중 14명은 3903호 한 곳에서만 나왔고, 모두 부일외고 학생들이었다.[8] 부상자들 중 상당수가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락한 버스에서는 불이 나지 않았으며, 학생들이 깨어진 창문 틈을 통해 빠져나와 사망자는 없었다.

사고 다음 날 부일외고는 임시 휴교령을 내리고 교내에서 합동 영결식을 거행했으며 분위기 수습을 위해 여름방학을 조기 실시하였다.[9]


3. 사고 원인[편집]


사고 당시 날씨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던 데다 S자 커브 내리막길 구간에서 차량들이 안전거리를 미확보한 채 과속을 일삼았던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사고 정황이 서술된 글

4. 사고 이후[편집]


일단 당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고갯길에서의 과속 단속이 대폭 강화되었다. 또한 예산 확보 문제로 차일피일 미루어졌던 추풍령 고갯길의 왕복 6차로 확장 및 선형개량 공사가 급속도로 추진되어 인근에 새로운 선형의 고갯길을 건설하고 사고 현장이었던 기존 고갯길 구간은 흔적을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철거되어 자취를 감추었다.위성 사진[10] 해당 구간은 2006년에 선형 개량이 이루어졌다.[11] 더불어 전세버스 운행과 관련된 안전 규정도 대폭 강화되어 2대 이상의 운행시 안전 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등 대열운행이 전면 금지되었으며, 버스 5대 이상 또는 200명 이상의 단체 이동시 주최측에서 요청할 경우 경찰의 호위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12]

사고 다음 해,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자 부산이나 마산, 창원 등 동부경남 지역과 수도권을 잇는 고속버스들의 운행경로가 바뀌었다.[13] 물론 인가상으로는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을 타는 걸로 유지되었지만, 추풍령 구간의 선형이 나쁜 데다 이 추돌사고가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버스 회사와 운전기사들은 추풍령 구간을 버리는 대신 남해고속도로를 탄 뒤 진주JC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를 이용해 대전에서 다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14] 그러다가 2004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인가도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간혹 천일여객 등 몇몇 회사는 추풍령 구간 확장 및 선형개량 후 김천JC에서 다시 경부고속도로로 운행하고 있는데, 이는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구간의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2017년 상주영천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인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고속버스들은 더 이상 추풍령을 넘지 않는다.[15] 그리고 대구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버스들도 경부고속도로 김천J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방향을 바꾼 뒤 선산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여주JC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혹시나 자신이 탄 버스가 추풍령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마산이나 진주에서 환승해서 최종목적지로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환승 노선을 이용할 경우 통영대전고속도로 이용 등을 통해 추풍령을 확실히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진주에서 환승할 경우 100% 추풍령을 피할 수 있었으며, 마산에서 환승해도[16] 웬만하면 추풍령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부내륙선 개통 전까지는 추풍령 피할 겸 요금할인 혜택 등을 보려고 진주에서 환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17] 이는 훗날 KTX 개통 등과 겹쳐 부산발 경부선 고속버스들은 고사 직전까지 갈 정도였다.

당시 사망자의 대부분이 독일어과 학생이라서 부일외국어고등학교의 독일어과는 이후 폐과되었다.

당시 학생들을 도와주다 숨진 이경민 군 등 6명이 의사자로 지정되었다.

5. 여담[편집]


당시 부산(에 있는) 외국어 고등학교가 사고를 당했다는 식으로 보도된 경우가 많아서 이름이 비슷한 부산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의 가족들이 "너희집 xxx 괜찮냐? 사고 났다던데" 같은 내용의 안부전화를 받기도 했다.

사고 이후에도 이런 안전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전세버스들의 대열 운행은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대열 운행으로 인한 사고가 2016년에 다시 일어났다. 경찰차가 호위하는 경우라도 시골 2차선에선 불가피한 현실. 인솔 교사나 학생들도 대열 운행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보단 지극히 당연히 여기고 있다.

사고 발생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70년 8월 21일에는 당시의 사고 현장 인근에서 고속버스가 추락하여 25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났었다. 여담이지만 이 사고는 경부고속도로 전구간 개통 이후 첫 교통사고였다(...).

2019년 방영된 tvN 드라마 블랙독 1화에 이 사건을 연상하는 사고가 나왔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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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방향, 경상북도 김천시충청북도 영동군의 경계지점[2] 이 인터뷰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주일 뒤에 나온 기사다.[3] 버스와 충돌하기 전에 과속으로 중앙분리대를 충돌한 상태였다. 이 참극의 원인이 된 차량은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와 마찬가지로 화재가 일어난 후 차량을 대피시켜 화재를 피했다.[4] 이 차량 역시 5톤 트럭을 발견하고 정차한 상태였다.[5] 맨 뒤에 따라오던 수학여행단 전세버스는 추돌을 피하려 오른쪽으로 재빨리 핸들을 꺾으면서 15m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으나 화재는 발생하지 않아 불행 중 다행히도 이 차량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6] 중부내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통영대전고속도로 등이 완공되지 않았던 시기(중부내륙고속도로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중앙고속도로는 영주까지 갓 개통, 통영대전고속도로도 함양-무주 구간이 개통되지 않았된 시절이었다.)라서 경부고속도로의 전면 통제로 인한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7] 물론 그 이전에도 1990년대 초반까지 노후된 아스콘 노면을 콘크리트로 재포장공사를 하면서 한쪽 방향이 통제되어 정체가 심했던 적도 있지만 양방향이 길게 정체가 이어지고 전면 통제된 건 그 당시가 최초라고 봐도 된다.[8] 몇몇 남학생들이 버스에서 탈출했지만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버스 안으로 들어가 친구들을 탈출시키고 있었는데 그 순간 버스가 폭발했다고 한다. 결국 해당 버스인 3903호에 탑승했던 남학생 10명 중 6명, 여학생 41명 중 7명이 사망했다.[9] 한편 이 사고의 여파로 이 시기 예정된 수학여행들이 학부모들과 교육관계자들의 우려로 인해 취소되었다. 때문에 당시 고1~2였던 83~84년생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여파로 수학여행이 취소된 당시 고1~2였던 97~98년생과 유사하다.[10] 추풍령 인근의 대전-김천간의 경부고속도로 옛 구간들은 인근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방도 등으로 대체되거나 도로로 활용되지 못해도 웬만하면 그냥 형태 보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독 추풍령 옛 고갯길이 완전히 철거된 것은 어찌 보면 한국도로공사 측에서는 정말 흔적을 지우고 싶을 정도로 흑역사로 여겼다는 뜻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던 대구 중앙로역의 사례와는 완전 정반대의 일이다. 다만 서울 방면의 경우 일부 노반은 4번 국도의 확장 노반으로 사용하였다. 지도를 보면 흔적이 아직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11] 참고로 해당 구간을 나란히 달리는 경부선 철도 역시 동일한 시기에 선형개량을 통해 급커브 구간의 직선화가 이루어져 개량 전 90~100km/h 남짓이던 운행속도가 선로최고속도인 135km/h까지 운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해당 구간의 선형개량은 철도 입장에서도 오랜 숙원사업이었는데 마침 고속도로의 선형개량이 결정되자 함께 추진된 것이다.[12] 이 시기 수학여행을 다닌 사람들 중엔 이런 호위를 받아본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시군 경계가 바뀔 때마다 해당 관할의 순찰차들이 따라붙는다.[13] 정확하게 말하면 운행하는 버스기사들이 마음대로 바꾸거나 운수회사에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를 이용하도록 지시한 것이다.[14] 진주에서 환승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옛날처럼 통영대전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해 수도권과 부산, 창원을 오갈 수 있다.[15] 다만, 명절에는 휴게소 환승이 불가능하므로 버스전용차로를 타려고 넘어가기도 한다. 부산과 다르게 구미, 대구행에서는 주말 전용차로 버프로 여전히 추풍령을 넘어가는 케이스가 많다.[16] 인천, 수원, 부천 방면이 여기에 해당된다. 주로 시외버스 부산서부-마산을 이용한 후 창원발 수도권 방면 노선으로 갈아탔다. 게다가 노포동터미널의 거지같은 접근성으로 인해 서부산 출발의 경우 사상터미널에서 출발, 마산에서 환승하여 이동하는 경우가 꽤 되었다.[17]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데 시외버스 부산서부-진주를 이용한 후 시외버스 서울남부-진주로 환승한다던지 등 (다만 진주IC에서 국도로 진출한 뒤 환승 후 3번 국도를 타고 단성IC까지 가서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부분이 있긴 했으나, 저 당시에도 3번 국도는 명석터널부터 원지까지는 고속화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원지를 경유하는 것 외에는 소요시간 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18] 여기서는 터널에서 멈춰선 차량을 피하다가 전복된 후 화재로 버스가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