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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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비슷한 중국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충칭시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충청북도를 묶어부르는 지명이다. 지리적으로 경기도와는 한남 - 금북정맥으로 구별되며 경상도와는 소백산맥으로, 전라도랑은 금강 - 차령산맥으로 구별된다.
대전광역시와 세종특별자치시는 충청도가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도 보이는데, 대전과 세종은 충청남도에서 분리 독립한 것이지 충청도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므로 각 도시는 여전히 충청도에 속하고 있다. 현재에 와서 충청도는 일정한 행정구역 단위가 아니며 단순히 조선시대 이전에 충청도라고 전통적으로 불렸던 지역을 통칭하는 지역 분류에 불과하므로 그 범위 역시 현대의 행정구역이 아닌 전통적 인식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2. 명칭[편집]
이 지역을 '충청'이라고 부르게 된 건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인 팔도 중 하나로 충청도가 설치된 것이 처음이다. '충청'이라는 이름은 충주와 청주의 앞 글자를 딴 것이며 이 두 도시는 오늘날에도 충청북도에 있다. 다만, 아래 조선 충청도 문단에서 보듯 이 이름은 상당히 변동이 많았다. 충주와 청주 외에도 공주, 홍주도 이름에 들어가 공홍도, 홍공도 등으로 불리곤 했다. 오늘날에는 가장 오래 썼던 '충청도'가 정착해서 쓰이고 있다.
다른 말로 호서(湖西)라고도 한다. 이때의 '호'는 대개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호강(湖江)이라고 불리던 금강이란 설이 있다.[2] 전라도/경상도의 별칭인 호남/영남과는 달리 현재에 와선 쓰는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빈도가 줄어 많이 쓰이지 않고 호서대학교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경기(京畿) 지역과 이 호서(湖西) 지방을 합쳐서 기호(畿湖) 지방이라고도 불렀다.
3. 역사[편집]
3.1. 원삼국시대[편집]
고대에는 충남 천안 청당동을 중심으로 한 명목상으로는 삼한 전체에서 가장 지위 높은 소국인 목지국이 번영하며 주변 세력을 영향권에 넣고 있었다. 충주, 진천 등 충북 일대는 다른 충청도 지역과는 달리 진한의 일부거나 진한과 가까울 거라는 얘기가 있었으나, 최근 고고학 발굴 결과에 의하면 충남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마한 거수국 계열의 유물만 나오고 있어 해당 학설은 크게 반박되었다. 그냥 충남과 마찬가지로 마한의 일부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래도거리상 천안과 가까웠던 이상 마한 목지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건 맞다. 그러다 246년 기리영 전투에서 격전 끝에 마한이 삼국시대 위나라에게 끝내 패배한 이래로 목지국 세력은 위신과 세력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으며, 그 이후 3세기 후반 백제 고이왕 시기에 목지국이 백제에게 점령당한 이래로는 광개토대왕이 4세기 말에 충청도에 나타나기 전까지, 백제 역사의 주무대가 된다.
3.2. 삼국시대[편집]
일단 3세기 중후반 옛 목지국 세력은 전성기에 비하면 어느 정도 위축된 게 고고학적으로 드러나지만, 백제에게 제압당했어도 어느 정도 번영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세기 중반 비류왕의 시대 때 청주 그리고 천안 성남면 용원리에 백제계 세력이 대두하면서 위세가 커지는 것과 비례하여 상대적으로 크게 쇠락하는 걸 보면, 백제가 저 두 지역에 의도적으로 직할 혹은 직접 제휴 세력을 심으면서 어쩔 수 없이 남겨놓은 천안의 옛 목지국 세력을 제압하는데 완전히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는 이 과정에서 진한에게 암묵적으로 지원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한 충북 일대의 마한 계열 소국들을 4세기 초중반 중에 완전 해체를 완료하여 복속하는데 성공하게 되는데, 신라 초기 백제와의 갈등 기사는 이 일과 관련 있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4세기 말 광개토대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강원도 서부를 지나 드디어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 깊은 곳까지 내려와 가야-왜-백제 연합군을 대파하면서 충청도에는 고구려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 시기에 백제가 꽤나 힘들게 얻었던 충주, 보은, 괴산, 영동, 대전 동부 등 적지 않은 충청도 지역이 고구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에 고구려의 속국이었던 신라가 눌지 마립간 당시 반란에 성공하여 5세기 중반에 보은, 괴산, 영동, 대전 동부를 고구려에게 빼앗으며 충청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적어도 4세기 말 이전까지 충청도 전체가 백제 영역이었으나, 광개토대왕 때부터 고구려가 진출해 5세기 중반까지 백제와 힘을 겨루던 이곳에 5세기 중반부터는 신라도 진출하여 6세기 중반 진흥왕 시대까지는 백제, 신라, 고구려 모두 오늘날 충청도 영역을 각기 찢어서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구도가 전개된다.
일단 475년까지는 그래도 백제가 청주, 세종, 대전 등은 유지하고 있었으나, 475년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시키고 남진하면서 고구려의 충청도 점유 영역은 더욱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 시기에 백제의 중심지는 충남으로 옮겨지지만 사실 충남마저 청주, 세종, 대전 일대까지 고구려가 점령한 상황이었다. 오늘날 공주 웅진성 유적으로부터 불과 20km도 안 되는 세종시 나성동, 새롬동 일대를 고구려가 점령해서 군사령부로 운영하고 있었으며, 다른 고구려 부대 주둔지는 대전 서부 월평동과 세종시 부강 일대에서도 꽤 오래 운영되고 있었다. 백제의 새로운 심장부인 웅진을 향해 거의 흡사 드릴마냥 웅진 북쪽, 정동쪽, 남동쪽에서 고구려군이 세 갈래로 찔러 들어오는 형세였는데[3] , 이후의 충청도는 한동안 충남에서 개로왕 시즌2를 찍으려고 덤비는 고구려와 역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충남의 백제가 사생결단하는 무대가 된다. 고구려가 신라보다는 백제에 대한 멸국 의지가 대단히 집요하고 진지했음이 보인다. 신라는 이 시기에 고구려에게 잃은 충청도 방면 영역은 대전 동부와 괴산 뿐이었고 나머지 보은, 영동 등은 고스란히 지켜냈기 때문이다.
일단 약 십수 년만에 백제 동성왕이 충남 일대와 청주는 어떻게든 고구려에게서 수복하여 한숨 돌리지만, 이 시기 즈음 고구려와 신라에게 넘어간 다른 충북 지역은 의자왕 때 선덕여왕의 신라에게서 빼앗은 괴산 외엔 백제가 망할 때까지도 영영 되찾지 못하게 된다. 한편 이후 신라 진흥왕이 고구려를 몰아내고 충청북도 대부분을 장악한 것에 더해 청주 문의면, 대전 동부 변두리까지 진출하면서, 충청도에서 삼국이 다투는 시기는 끝나고 신라와 백제 양대 세력이 다투는 시대로 바뀐다.
이 쟁패전은 660년 백제 멸망으로 일단 신라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충청도 전체는 백제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4세기 후반에 충북 일부를 빼앗긴 이래로 약 260여 년 만에 다시 한 나라 아래에 통합된다.
3.3. 통일신라 시대[편집]
통일신라 시기 9주 5소경으로 지금의 충남 지역은 대부분 지역이 웅주, 충북 지역은 대체로 한주와 상주의 일부였는데, 이는 삼국시대 때 웅주의 판도는 백제, 한주와 상주는 신라였던 데 이유가 있다.[4] 중요한 도시인 5소경 중 중원경(충주)과 서원경(청주) 2개가 있었는데 청주는 4세기 중반 백제 비류왕 때부터 백제가 목지국 잔여 세력을 더욱 억누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키워주면서 자리잡게 된 거점이었고, 충주는 고구려가 의외로 오랜 시점 경영하면서 성장시켰다가 진흥왕 때 신라가 접수해서 더욱 발전시킨 곳이었다.
3.4. 후삼국시대[편집]
그러다 후삼국시대가 개막되자 충청도는 다시, 고려와 후백제가 힘싸움을 벌이는 각축장이 된다. 이때는 앞서 사비백제 VS 신라의 구도와는 달리, 백제가 충남을 고려에게 더 많이 내어준 반면 충북은 보다 많이 확보한 형세가 벌어졌다. 이 별로 길지 않은 반세기 정도 되는 분열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끝났고, 오늘날 충청도의 행정구역은 다시 한 국가 아래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특기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백제에게 일격을 당한 후 고구려에게도 큰 타격을 받아 크게 쇠락한 바 있던 천안 지역 호족들은 후삼국시대에는 왕건에게 줄을 섰으며, 이를 통해 고려에게서 큰 우대를 받아 다시 한반도 남부의 중심지 중 하나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목지국이 한때 마한, 그리고 삼한 전체의 종주국이었으나 백제에게 견제받아 쇠락한 후로 거의 오백 년 만의 부활이었다.
3.5. 고려시대[편집]
고려시대에는 초기 10도에서는 중원도~하남도였다. 이후 5도 양계 체제에서는 지금의 경기도 남부와 강원도 일부까지 합친 양광도[5] 가 충청도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3.6. 조선시대 이후[편집]
1395년(태조 4) 한양 천도로 인해 북부의 양주, 광주 일대가 경기로 편입되면서 '충청도'로 바뀌었다. 오늘날 충청도의 틀이 완성된 것은 조선시대 태종 대에 남은 북부 지역 일부를 마저 경기에 옮겨 붙이고, 대신 경상도 일부 지역(지금의 옥천, 보은, 영동)을 이관받으면서부터다.
조선왕조 내내 수시로 도의 이름이 바뀌었다. 도가 창제되도 난 이후의 조선왕조 516년 기간 동안 총 32회 개명당했다. 관련 기사 가장 유명한 건은 명종 때 문정왕후를 비방하는 벽보가 나붙은 '양재역 벽서사건'[6] 으로 이 때 충주는 현으로 강등되어 유신현이라 불리고 충청도는 잠시 홍주(현재의 홍성군)의 이름을 따서 18년간 '청홍도'가 되었다.
이 외에도 잦은 강등과 복권이 있어서 공주와 홍주까지 더해서 충공도[7] , 청공도(1년 공청도는 3회 28년) 공충도(4회 27년), 충홍도(3회, 5년 이하), 홍충도(1회, 1년), 공홍도(3회 30년) 등 4주의 6가지 조합이 다 나왔으며, 선후까지 합하면 안 나온 조합은 12개 조합 중 청충도, 홍공도 뿐이다. 대략 조선 역사에서 110년간은 충청도가 충청도가 아니었던 셈이며, 명종(청홍도), 광해군(공홍도), 인조(공청도), 순조(공충도, 공청도) 대에는 충청도를 쓰지 않은 기간이 더 길었다. 또 충청도가 온전히 그 이름을 보전했던 대는 인종, 선조, 경종, 헌종 정도다.
이렇게 이름이 자주 바뀐 것에 대해서는 우선 기호 지방으로 묶일 정도로 한양과 가깝다는 이유로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기 쉬웠던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중심지가 부재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조선시대 충청도내의 주요 도시였던 충주, 청주, 공주, 홍주가 전주[8] 나 경주, 평양이나 함흥[9] 과 같이 대체 불가할 정도로 도내에서 인구적/문화적 중심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네 도시 모두 6만 정도(영조 시기)의 거의 비슷한 인구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0] 실제로 평양시/역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선조 21년(1588년) 평양에서 발생한 존속 살해사건으로 평양의 강등과 평안도 개칭이 논의된 적이 있었는데 평안도는 충청도와 달리 평양을 대체할만한 중심지가 없어서 유야무야된 적이 있다.[11]
파란만장했던 도 명칭의 변천사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키백과 참고
3.7. 갑오개혁 이후[편집]
조선시대~해방 이후 동안 하위 행정구역의 변화에 대해서는 범위 문단 참고.
1895~1896년 약 1년간 시행된 23부제에서는 홍주부, 공주부, 충주부로 나뉘었다.[14] 이후 1년 만에 23부제를 철폐하고 시행된 13도제에서 동서로 나뉘어 동부는 충청북도, 서부는 충청남도로 나뉘었다.[15] 해방 이후 1989년에 대전광역시가, 2012년에는 세종특별자치시가 분리되어 별개의 광역자치단체가 되었다.
4. 인구[편집]
해방 직후에는 영호남에 비해 인구가 적은 지역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수도권과 가깝다는 점, 세종특별자치시의 개발 등으로 인해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영충호시대라는 말도 생겨났다. 즉 본래 영호남, 영호남 했지만 이제 충청도 인구가 호남을 넘었으니 영충호시대라는 것. 면적이 넓은 영남을 부울경와 대구경북으로 나눠서 본다면 2023년 3월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수도권[16] , 부울경[17] , 충청[18] , 호남[19] , 대구경북[20] , 강원[21] , 제주[22] 순이다.
비수도권의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충청도의 인구는 보합세를 이루고 증가하는 경우도 많아서 비수도권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충청도는 지방 중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어서 수도권과 함께 미래가 그나마 약간 덜 어둡다.
5. 범위[편집]
'충청도'라는 말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범위가 포함될 수 있다.
3의 경우 '충청남북도'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으며, 1은 '충청권',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중부권' 등으로 불러지기도 한다.[23]1. 충청남도 + 충청북도 + 대전광역시 + 세종특별자치시
1. 조선시대의 행정구역 충청도
오늘날 사람들이 막연한 범위로 사용하는 '충청도'는 1번의 충청도다.[24] 조선 충청도와 현행 행정구역인 충청남도 + 충청북도 + 대전광역시 + 세종특별자치시의 영역은 대동소이하나 수차례 변동이 있었다. 가령 안성은 조선 초기에는 충청도였다가 1413년 일찍이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같은 시기에 영동과 옥천은 본래 경상도였다가 반대로 충청도가 되었다. 논산, 서천, 보령 남동부 지역은 본래 전라도였다가 충청도로 들어왔다. 평택은 다소 복잡한데 조선시대에 지역 일부가 충청도와 경기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최종적으로 1914년 경기도 소속이 되었다.[25][26] 한편 금산은 줄곧 전라도 및 전라북도에 속해있었다가[27] 해방 이후 1963년에서야 충청남도로 편입되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한 1번을 기준으로 면적은 약 16,656.8km²이다. 의외로 대구광역시를 제외한 경상북도 자체 면적보다도 작다.
본 문서에서는 현행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한 1번을 중심으로 다룬다.
6. 특징[편집]
6.1. 지리[편집]
충청도는 중부지방에 속한 지역이다. 주로 일기예보는 충청도 자체를 중부지방으로 나누지만 가끔 남부지방으로 나눌 때도 있다.
대전, 청주, 세종 등은 대전권이라는 자체 생활권을 구성하고 있으며 계룡, 금산, 옥천 등 주변 시군들 역시 이들 지역 생활권에 속한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권 문서를 참고.
다만 생활권을 무시하고 지리적으로 나눌시 서북, 동북, 서남, 동남이 모두 7개 시군으로 나뉜다.[28]
옛부터 평야가 넓고 강이 흐른 덕에 토지가 비옥해서 부자가 많았다. 광천읍(홍성군)에서는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고, 강경읍(논산군, 현재 논산시)의 번영은 유명했다.
수도권과 인접한 위치 덕분에, 특히 충남 천안, 아산은 수도권과 바로 붙어있어서[29] 독자적인 도시권을 형성하며 교류가 수도권 쪽으로 압도적으로 많다.[30] 그리고 충남이나 충북의 수부도시인 대전이나 청주 또한 마찬가지로 수도권과의 교류가 많으며, 그 대신 경상도 전라도와의 교류가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충청도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지역색이 적으며, 인구 상당수는 충청도 토착민이나, 수도권,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출신이 섞어서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충청지역은 경부선 소속도 아니고 호남선 소속도 아닌 지역이라 두 노선이 나뉘는 지역[31] 이다.
충청도는 경부축[32] 이 가장 발달했는데 이쪽에 충청도 5대 도시[33] 가 있으며 이 다섯 도시의 인구 총합은 약 366만 명으로 충청도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2가 살고 있다.[34]
6.2. 동서로 위치한 충남/충북[편집]
충남/충북은 다른 도들(경상도, 전라도 등)과 다르게 충청남도/충청북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충청도의 좌·우도 분할도와도 거의 맞아 떨어진다.[35]
아무리 봐도 동서로 나눠놓은 것이지 남북으로 나눠놓지 않았음에도, 남북을 붙인 것은 다른 도를 남북으로 나눈 것과 맞추기 위해서이다. 혹은 구한말 충북의 수부도시인 충주시와 충남의 수부도시인 공주시의 위치 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20세기 후반에 대전광역시가 분리되고 도에 남은 최대 도시가 천안시와 청주시로 바뀐 오늘날에는 역설적으로 위도 관계가 역전된 탓에 이러한 수부 도시의 위치에 따른 구별도 잘 와닿지 않게 되었다.[36] 사실 충청도는 동서로 길기에 둘로 나누려면 동서로 나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충청남북도의 명칭을 충청동서도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곤 한다.
6.3. 사투리[편집]
8도 사투리 중 가장 부드럽다는 평가[37] 를 받는 충청 방언을 사용한다.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사투리가 다른 것처럼 충청북도와 충청남도 간에도 사투리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이 "기다(맞다, 그렇다)"의 사용 여부이다. 충청남도, 특히 충남 남부 지역에서는 표준어 "그래?"를 "그려?"내지 "기여?"로 쓰며, "그렇네", "맞네"를 "기네" 쓴다. 반면 충청북도의 경우엔 "그래?"를 "그려?"로 쓰는 것 이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사투리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매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투리가 충남 지역 사투리인데, 억양도 충북보다 세며, 어휘들도 충북에 비해선 풍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충청도 사투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단언 "~유", "~슈"일 텐데, 이는 표준어 "~요"에 해당하는 존대어이다. 또래나 친근한 사이에선 주로 "~겨", "~여", "~려(텨, 쳐), "~랴", "~햐", "~혀", "~겄", "~디", "~댜", "~께"와 같은 어휘를 쓴다.
현대의 충청도 젊은이들 사이에선 "~겨", "~여", "~겄", "~디" 정도의 어휘들만 쓰이며, 단어들은 대부분 표준어로 대체해서 쓴다.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에 비해 최근 몇 십 년 동안 외지인의 유입이 지속되면서 원래도 강하지 않았던 지역색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약해졌으며 그에 따라 사투리 사용률도 현저히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남한 내에서 유일하게 여러 지역과 인접해있다보니 방언연속체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역이기도 하다.[38] 각각의 권역으로 나눠보자면, 충북 북부 지역[39][40] 은 경기 방언, 충북 동북부 지역[41] 은 영동 방언, 충남 남부 지역[42] 과 충북 극일부[43] 는 서남 방언, 충남 동남부 지역[44] 과 충북 중남부 지역[45] 은 동남 방언 등 각각 인접한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인근 방언의 특징 일부를 사용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통상의 스테레오타입 충청도 사투리는 보통 내포권과 천안권 쪽 사투리에 가깝다.
더 자세한 내용은 충청 방언 참고.
충청도 사투리의 완곡어법도 유명하다. 교토식의 알아서 눈치보라는 식의 완곡어법과는 달리 풍자와 해학이 가미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것이 특징. 그래서인지 과거 유머집의 상당부분이 충청도식 완곡어법이었고, 코미디언도 충청도 출신이 많았다. 잘 모르더라도 예문 몇개 읽어보면 감이 확 오는데, 교토식은 자기 속내를 감추는 게 목적이라면 충청도식은 그냥 드립치는게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와닿는다.
6.4. 상업[편집]
충청도 대표 도시인 대전과 천안이 한화그룹의 연고지라서 그런지 한화 계열사인 갤러리아백화점이 충청도에서 초강세다.[46] 롯데, 신세계, 현대보다 갤러리아의 매출이 더 높다. 그나마 현대백화점 충청점이 충청도 2위 매출을 찍고 있으나[47] , 1위인 갤러리아 타임월드가 2배 차이로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3위 갤러리아 센터시티는 같은 천안 내 백화점인 4위 신세계 아라리오를 300억 차이로 앞서고 있는 실정이며, 롯데백화점의 유일 지점인 롯데백화점 대전점은 충청도에서 가장 부진하다. 물론 대전신세계 Art & Science 개점시 위 백화점 순위는 1칸씩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졌으며 개점 첫해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48]
유독 롯데 계열사가 힘을 쓰지 못하는 지역이기도 하다.[49][50][51] 롯데백화점은 물론이고, 롯데시네마나 롯데마트도 충청도에서는 매번 죽을 쑤고 있다. 천안시에는 롯데시네마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대전광역시는 CGV와 메가박스가 맹렬한 접전을 벌이고 있지만, 롯데시네마는 점차 손님이 끊기고 있다.[52] 그리고 대전, 천안 모두 롯데마트가 가장 집객력이 약하다.[53][54] 청주시나 내포권에서는 롯데마트의 비중이 좀 있는 편이지만, 최근에는 그나마도 홈플러스나 이마트에 뺏기고 있다.[55]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 엔제리너스 커피는 스타벅스와 투썸플레이스에, 롯데리아는 맥도날드와 버거킹에 밀리고 있다.
6.5. 특산물[편집]
복숭아[56] , 사과[57] , 고추[58] , 찹쌀 등의 주 산지이며 논산시의 딸기[59] , 강경읍의 젓갈, 금산군의 인삼, 광천읍의 김, 공주시의 밤, 보은군의 대추도 유명하다.
요리 중에서는 닭고기 요리가 발달한 편이다.
6.6. 종교[편집]
경상도가 불교 초강세, 전라도가 기독교[60] 초강세인 것과 달리 충청도는 특정 종교에 몰리는 현상은 약한 편이긴 하나 개신교가 약간 강세다. 전반적으로 충남은 전반적으로 개신교 강세, 충북은 불교 강세다.[61] 이는 충남이 전라도와 수도권의 영향이 강하고, 충북은 경북과 강원도의 영향이 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62]
충청도 전반적으로는 경기도 남부와 함께 가톨릭 교세가 강한 지역이다. 특히 가톨릭 성지가 다수 분포하고 경기도에 인접한 내포지방과 천안아산이 그러하다.[63][64][65]
충남과 충북 서부[66] 의 경우 기독교 중에서 가톨릭, 개신교 모두 강세지만, 지역별로 약간 차이는 있다. 내포권과 천안아산권은 가톨릭이 한국에 처음 들어온 지역이기도 하고[67] , 경기도 남부에 가까운 이유로 가톨릭이 우세이고, 대전권은 해방 이후 이북 출신 개신교 신자들이 많이 이주, 정착한데다 한국 최초로 개신교 연합단체가 세워진 지역이기도 하고,[68] 전북 북부에 가까운 이유로 개신교가 우세다.[69]
6.7. 교통[편집]
예로부터 수도권과 남부지방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지역인 만큼 교통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충청도에서 가장 큰 3대 도시 모두 경상도 방향으로 가는 경부축과 전라도 방향으로 가는 호남축이 분기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천안에서는 고속도로가, 청주에서는 고속철도가, 대전에서는 일반철도가 분기된다.
6.7.1. 철도[편집]
경부고속선, 호남고속선, 중부내륙선,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장항선, 충북선이 지나며 서해선이 개통할 예정이다.
충남 보령시, 부여군, 청양군, 공주시, 세종특별자치시를 연결하는 보령선도 추진 중이다.
6.7.1.1. 도시철도/광역전철[편집]
도시철도는 2006년에 개통한 대전 도시철도 1호선역 22개만이 다니고 있으며 2028년에 대전 2호선역 45개이 개통 예정이다.
향후 건설 계획이 있는 노선들 역시 대전 3, 4, 5호선으로 모두 대전에 한정되어있다.
광역철도는 2005년에 충남 천안시역 6개까지 연장 개통한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유일하며, 개통 당시에는 충청도 최초의 전철이었다. 이후 2008년에는 아산시역 5개까지 개통했다. 충남 논산시와 계룡시,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북 옥천군을 연결해줄 충청권 광역철도의 1단계 구간(계룡역 1개~대전역 12개)과 옥천지선(대전역 3개~옥천역 1개)이 2023년 12월 착공했고, 2026년 개통 예정이다. 2단계 구간(대전역 1개~세종역 4개)과 3단계 구간(계룡역 1개~논산역 5개)은 현재 추진 중에 있으며 이들 노선은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되었다.
향후 건설 계획이 있는 노선에는 대전 1호선을 세종을 거쳐 청주공항까지 연장하는 대전-세종-충북 광역철도[70] 가 계획되고 있으며, 충남 태안군, 서산시, 예산군, 공주시, 세종특별자치시, 대전광역시를 연결하는 충청내륙철도/서해안 내포철도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후보 노선으로 올라와있다. 게다가 수도권 내륙선이 본격화되고 있어서 진천, 청주와 수도권 간 교통이 편리하게 될 전망이다.
6.8. 생활권[편집]
대전이 충청도의 핵심도시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나, 모든 도시가 대전 생활권인 것은 아니다. 천안을 주축으로 한 충남 북부는 대전이 중심 도시가 아니며 수도권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는다. 청주는 아예 대전과 붙어 있음에도 대전의 입김이 거의 닿지 않는다. 반면 세종의 경우 인구가 점차 증가하며 자족도시의 기능을 확충하고 있지만 세종의 인구 증가세는 대다수가 대전에서 이주한 주민들이기에 여전히 대전의 입김을 많이 받고 있다.[71] 세종은 지역에 따라 대전, 청주, 천안 생활권을 다 보유하고 있다.
- 대전 생활권
- 청주 생활권
- 천안, 아산/내포 생활권[79]
- 천안/아산 생활권
- 내포 생활권
- 충주 생활권[82]
- 원주/제천 생활권[84]
6.9. 기타[편집]
조선시대에는 전국에서 양반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구한말의 자료에 따르자면 양반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충청도 출신이었다. 특히 충남은 더더욱 그러했는데, 인구비율을 고려하지 않아도 양반의 수가 가장 많았다. 원래 충청도는 다른 지역보다 인구가 적었는데, 인구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많았다면 인구비율을 고려한 양반 비율은 굉장히 높아진다. 무려 10가구 중 1가구(10.3%)가 양반이었다.[85] 여기에서 유래된 지역 별명이 '충청도 양반'. 다만, 통계자료의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보다는 조선 후기 권력을 잡은 서인,노론 가문들이 본관과는 별개로 갈수록 한양에 집중됐지만 충청도는 거리가 멀지 않고, 또 노론의 텃밭이 충청도이기도 해서 노론의 영수 송시열 같은 인물이 나오기도 했고, 또는 충청도는 말과 행동에 여유가 넘쳐서 마치 양반의 여유를 보는듯 하다고 하여 충청도 양반이라 했다는 썰이 있다.
사회복무연수센터로 갈 때 개별로만 입, 퇴교가 가능한 지역이다. 제주도에서 오는 입, 퇴교자들도 청주국제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병무청에서 전세버스를 제공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다.
2027 충청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2020년대 들어서 충청지방정부연합를 실현화하면서 2024년 7월 1일 출범 예정이다. 가칭 충청특별자치도를 통합추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전, 충남, 충북 모두 제일 높은 산이 각 도의 최동단 지역에 있다. 대전 최고봉인 식장산은 대전 동구에 있으며, 옥천군과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충남 최고봉인 서대산 역시 충남에서 동쪽 끝인 금산군에 위치해 있고, 식장산과 마찬가지로 일부가 옥천군에 걸쳐 있다. 충북 최고봉인 소백산도 충북에서 동쪽 끝인 단양군에 있으며, 경상북도 영주시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6.10. 지역 간 관계[편집]
2020년 현재 기준으로 보면 서울, 경기 지역에서 충청도 출신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 기준으로 송파구[86] , 양천구[87] , 강남구[88] 가 있으며, 서초구는 청주, 충주 출신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편이다. 또한 중랑구도 충청도 출신의 비율이 전라도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89] 그 외에 충청도 출신이 많은 지역으로는 영등포구[90] , 성북구[91] , 마포구[92] , 강서구[93] , 동작구[94] 등이 있다. 인천 지역은 충청도 출신이 가장 많고,[95][96] 전라도 출신이 그 다음이다. 그리고 경기도의 경우 고양시[97] , 구리시, 남양주시[98] , 안양시[99] , 부천시[100] , 하남시[101] , 성남시[102] , 용인시[103] , 수원시[104][105][106] , 오산시[107] , 안산시[108] , 화성시[109] , 평택시[110] 가 충청 출신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111][112] 사실상 경기도의 웬만한 대도시에는 다 충청도 출신 인구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7. 대학[편집]
국립대학으로는 종합대학인 공주대학교, 충남대학교, 충북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한국교통대학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밭대학교가 있다. 또한 교육대학인 청주교육대학교와 공주교육대학교가 있고 한국과학기술원과 공군사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그리고 경찰대학도 소재하고 있다.
사립대학으로는 충청북도 청주시에 청주대학교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한남대학교, 서구에 목원대학교 가 있다. 이외에도 대전대학교,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서원대학교 등의 사립대학이 있다.
충청도의 4년제 대학교 전체 정원은 대학 충남:25383명 충북:15859명 대전:18344명 세종:2657명 + 교육대학 충남:354명 충북 286명이며, 이는 전국 대학 정원의 약 11%이다.# 또한 4년제 대학 개수가 50여개에 달하는데, 이는 인구 대비 타 지방권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1970년대부터 대학 설립에 규제를 받아왔기 때문에 수도권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충청도에 대학설립이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영향으로 분교도 충청도에 4곳이나 개설되었다.[113]
대학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의외로 의학계열 학과 정원이 타 지방(전라도, 경상도)보다 적은데, 의과대학은 전체 3,050여 명의 정원 중 420여 명이 배정되어 있고[114] 치과대학은 전체 11곳 중 단국대 천안캠퍼스(70명) 1곳에 개설[115] 되어있으며 한의과대학은 전체 11곳 중 대전대(75명)와 세명대(40명) 2곳에 개설되어있다. 약학대학은 전체 37곳 중 4곳[116] 에 개설되어 있다. 수의과대학은 충남대학교와 충북대학교에 개설되어있다. 다만 인원은 적지만 수도권에서 가까운 이유로 입결 방어가 상당히 잘 되는 편에 속한다.[117][118]
로스쿨은 충북대학교와 충남대학교 2곳에 개설되어 있다.
8. 정치[편집]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많이 했으며, 특히 정치나 선거 등과 관련해 충청도를 언급할 때 '수도권-전라도-경상도를 잇는 가운데'란 뜻으로 '중원(中原)'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중원은 충주시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경상도 vs 전라도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지역감정 부분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여겨진다.[119] 정치적으로나, 향토문화적으로나 두 지역에 비해 지역색이 옅고, 이로 인해 지역주의, 몰표로 욕먹는 경우는 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충청도 스테레오 타입으로 종종 묘사되는 "왔슈~?"식의 느긋한 성향 탓도 아예 없진 않겠지만, 충청도가 지리적으로 남한의 중앙에 가깝게 위치해있다보니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이고 향토민들도 이들과 어울리며 개방성이 높아져 지역색이 옅어졌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이는 수도권도 비슷한 경향이 있는데, 마침 충청도 북부는 수도권 전철과도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는 민주화 이후 2010년대 이전까진 캐스팅보트적이긴 해도 보수세가 살짝 우세한 중도 지역이었고, 덕분에 90년대~2000년대 특정시기까진 충청권 지역정당이 세를 뽐내던 시절도 있었으나[120] , 21세기 들어 대전광역시와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은 신도시가 들어서며 정치 성향이 점점 진보화되어갔고, 청주 주변이나 천안 등 충남 북부에도 인구가 늘어나면서 보수세가 약화되었다. 각 지역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치 얘기는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북도, 충청남도 등의 정치 문서 참고.
참고로 충청도는 14대 대선부터 20대 대선까지 대선 적중률 100%를 보여주었다.[121] 특히 충청북도는 광역자치단체로서는 유일하게 1987년 직선제 이후 모든 대선에서 적중한 지역이다.[122]
9. 충청도 지역을 본관으로 한 성씨[편집]
- 결성 장씨
- 공주 이씨
- 괴산 피씨
- 남포 백씨 - 본관인 남포는 북한의 남포시와는 관계없는 대천(현 보령시)의 하위지역이다.
- 단양 우씨 - 우(禹)씨의 유일한 본관이다.
- 단양 장씨
- 대흥 백씨
- 목천 마씨
- 목천 상씨 - 상(尙)씨의 유일한 본관이다.
- 부여 서씨
- 상당 백씨
- 신창 맹씨
- 신창 표씨
- 아산 장씨
- 옥천 육씨
- 옥천 전씨
- 온양 방씨 - 방(方)씨의 유일한 본관이다. 원래는 군위 방씨 등 다른 방씨들도 있었으나, 모두 온양 방씨로 합본되었다.
- 온양 정씨
- 은진 송씨
- 음성 채씨
- 임천 백씨
- 전의 김씨
- 전의 이씨
- 진천 김씨
- 진천 송씨
- 천안 전씨
- 청안 이씨
- 청주 곽씨
- 청주 경씨
- 청주 이씨
- 청주 정씨
- 청주 한씨
- 청풍 김씨
- 충주 석씨
- 충주 박씨
- 충주 지씨
- 충주 최씨
- 태안 박씨
- 한산 이씨
- 홍산 순씨
- 홍주 이씨
- 회덕 황씨
10.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편집]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11.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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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청도의 크기는 동티모르보다 크며, 쿠웨이트와 피지랑 비슷하고, 슬로베니아와 엘살바도르보단 약간 작은 편이다.[2] 호(湖)가 벽골제 또는 금강이라면 그 북쪽에 있는 충청도 지역이 왜 호북이 아니라 호서가 되었는지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방위 인식에서 서쪽이 북쪽과, 동쪽이 남쪽과 혼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압록강 남쪽 6개 주는 '강남6주'가 아닌 '강동6주'라 불렸다.[3] 그나마 천안만은 백제가 계속 사수에 성공하고 있었기에 북쪽 국경은 약간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으나 상황이 심각한 정동쪽은 상술했듯 10~20km, 그나마 약간 나은 남동쪽은 20~30km 이렇게 고구려군 진출선이 코앞이었다.[4] 참고로 정작 신라에서는 한주를 옛 고구려 지역으로 취급했다.[5] 양주와 광주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 지역은 현 행정구역으로는 모두 경기도이다.[6] 을사사화의 후속 사건으로 조작이라는 견해가 많다.[7] 충주+공주.[8] 다만 여기도 딱 1번 대체되어 광남도(光南道)로 불린 적이 있다. 광은 광주, 남은 남원에서 유래. 그 외에는 풍패지향이라는 이유로 대체되지 않았다.[9] 여기는 옆동네 영흥과 동시에 풍패지향이라 서로 계속 대체되었다.[10] 경주, 전주, 평양, 함흥 or 영흥은 전부 부(府) 단위의 행정구역인 반면에 충주, 청주, 공주, 홍주는 모두 목(牧) 단위의 행정구역이였다.[11] 평양은 단순히 평안도의 제1도시를 넘어서 조선의 제2도시였을만큼 위상이 높았었다.[12] 원주사람 유석이 충주에서 부친을 살해하려 했다.[13] 청주사람 박상한이 쓴 기우제문에 임금을 비난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구절이 있었다.[14] 충청도에서 4대 도시 중 남은 하나인 청주 일대는 공주부에 속했다.[15] 특이하게 남북이 아닌 동서로 나눈 것이 특징. 그렇다고 당시에 충청동도/충청서도로 붙일 노릇도 아니었다.[16] 26,004,431명[17] 7,690,513명[18] 5,549,834명[19] 5,006,555명[20] 4,952,198명[21] 1,533,719명[22] 677,031명[23] 다만 경기도, 강원도도 포함된 중부 지방과 헷갈려서 자주 쓰이는 건 아니다. [24] 일례로 대전광역시는 충북/충남에 속해있지 않지만 대전 사람들은 흔히 '충청도 사람'이라 불린다.[25] 진위현은 태조 때, 평택현은 연산군 때 경기도로 들어갔다. 이후 중종 대에 다시 충청도로 되었다가 진위군은 고종 대에 경기도가 되었다. 이후 충청도에 남아있던 평택군 일대가 진위군에 통합되면서 평택 일대가 모두 경기도 소속이 되었다(평택시/역사). 효종 때 김육이 충청도에도 대동법이 적용된 것을 감사하며 세운 비석이 평택에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26] 현재의 평택시의 대부분을 관할했던 진위군은 사실상 충청도에 속해 있고, 충청 방언을 제법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23부제 실시할 때에도 공주부에 유일무이하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충청도라 보는 학설이 상당히 우세하다.[27] 23부제 당시 잠시 공주부에 속한 적이 있다. 이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전라북도 소속이 되었다.[28] 서북지역은 천안, 아산, 당진, 서산, 태안, 홍성, 예산, 동북지역은 충주, 제천, 단양, 진천, 음성, 괴산, 증평, 서남지역은 공주, 논산, 계룡, 보령, 청양, 서천, 부여, 동남지역은 대전, 세종, 청주, 금산, 보은, 옥천, 영동이 속한다. 동서로 나뉜 특성상 대전, 세종, 금산을 제외하면 충남은 서부, 충북은 동부로 나뉜다고 보면 된다.[29] 참고로 충청도에서 천안아산 다음으로 수도권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은 내포권이다. 당진과 서산은 평택, 안산, 화성과 해상으로 약간 떨어져있고 저 멀리 인천으로 맞대어 있다.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바로 수도권으로 갈 수 있는데다 내포권 전역이 대전권보다 수도권 영향이 압도적이며, 마찬가지로 천안아산권이 대전보다 수원이 가깝다. 게다가 수도권 전철 서해선, 수도권 전철 1호선 홍성역 연장이 완료되고 내포신도시가 확장되어 인구가 급증하게 되면 내포권 중 서산/당진은 준수도권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내포신도시 배후도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30] 2017년 기준 전국 고속/시외버스 승하차량 1위가 천안 - 서울 경부 노선이며, 수도권 전철 1호선 또한 천안을 거쳐 아산 신창역까지 운행한다.[31] 고속철도는 오송역, 고속도로는 천안에서 나뉘고, 일반철도는 대전에서 나뉜다. 대전지역은 심지어 서울경부(대전복합 출발)행 고속버스와 서울호남(유성 출발)행 버스가 같이 있으며, 청주는 고속버스는 경부선, 시외버스는 호남선이다. 공주시는 철도는 호남선인데 고속버스는 서울경부이며 반대로 충주시는 고속버스가 호남선이다. 같은 충남, 충북끼리여도 호남선과 경부선이 뒤죽박죽 얽혀있는곳이 바로 충청도다. 예전에는 대전청사행 고속버스 노선은 호남선과 경부선으로 나뉘어있었다가 지금은 전부 경부선이다. 그리고 천안은 예전에 천안삼거리라는 거리가 있었는데 그 거리는 서울에서 영/호남 지역으로 가는 갈림길이었다. 한 지역에 버스는 경부선인데 철도는 호남선, 혹은 그 반대이거나 대전이나 청주처럼 고속/시외버스 둘다 경부/호남선인것 처럼 완전히 복잡하다. 애초에 충청도라는 지역은 영호남 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라. 충청도가 가장 내세울만한 특징은 교통의 요충지이다. 충남 서해안 지역은 호남선이며 천안아산, 대전복합, 공주 행 노선은 경부선이다. 당장 고속터미널에 가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경부선(경상도)&영동선(강원도), 센트럴시티터미널은 호남선(전라도)으로 확실히 구분되어있다. 이는 철도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역은 경부선, 용산역은 호남선, 청량리역은 영동선. 제주도는 지역 전체가 섬이라 예외.[32] 경부선, 경부고속선,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인근 지역[33] 대전, 청주, 천안, 세종, 아산[34] 2022년 8월 기준. 대전 145만, 청주 85만, 천안 66만, 세종 38만, 아산 33만.[35] 참고로 조선시대의 좌ㆍ우도 개념은 북쪽을 위쪽으로 하여 그려지는 지도상에서 보았을 때가 아니라, 임금이 계신 서울(한성부)에서 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이로 인해 서울 이남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는 동쪽이 좌도가 되고 서쪽이 우도가 된다.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때와는 반대가 되는 것. 대신 서울 이북인 황해도, 평안도는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때와 마찬가지로 동쪽이 우도, 서쪽이 좌도가 된다. 참고로 함경도는 현재와 같이 좌우가 아닌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36] 특히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선 등 국가 주요 간선교통망은 천안-청주-대전 순으로 통과하기에 더 그렇다.[37] 전통적으로는 서울 위주의 경기 방언, 그중에서도 옛 서울말을 꼽는 경우도 있다.[38] 이러한 이유로 간혹 충청도 사투리가 없는 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투리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투리는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을 의미한다. 상술한 것처럼 많은 사투리가 조금씩 섞인 것은 사실이지만, 충청도 지역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특징이 존재하므로 충분히 독자적인 사투리로 분류 할 수 있다.[39] 충북 충주, 진천, 음성, 증평, 괴산 지역은 그나마 경기 방언에 준한다.[40] 다만, 천안, 아산, 경기도 평택 전 지역은 천안 방언으로 묶인다. 억양이나 사투리 빈도가 충북 북부에 비하여 제법 강하기 때문이다.[41] 제천시, 단양군[42] 대전광역시 서구, 유성구, 중구 일부와 세종특별자치시·공주시·보령시·논산시·금산군·서천군·부여군·청양군[43] 영동군 학산면, 용화면[44] 대전광역시 동구, 대덕구, 중구 일부[45] 괴산군 동남부(속리산과 가까운 지역), 증평군, 청주시,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46] 한화 이글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화 이글스 편집샵은 갤러리아, 그것도 센터시티나 타임월드에만 개장한다.[47] 여긴 한화나 신세계의 세력권에서 조금 밀려나있는 충청북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20년에 현대백화점에서도 대전에 프리미엄 아울렛 형태로 진출을 하긴 했으나 롯데를 찍어누르는데는 성공했지만 갤러리아를 이기지는 못했고, 신세계가 들어오면서 다시 밀렸으며, 결정적으로 2022년에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사고가 일어나 9개월간 영업을 못 하면서 체면을 못 펴고 있다. [48] 게다가 2022년부터는 총매출도 신세계가 우위다. 천안에서 369억 차이로 갤러리아에게 지지만 대전에서 1,277억 차이로 이기기 때문. 2022년 기준 신세계의 충청도 내 총 매출은 1조 1,693억, 갤러리아는 1조 777억이다. 그래도 갤러리아가 신세계 들어올것에 대비해 리모델링을 하며 맞설 준비를 했기에 경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49] 특히 천안이 이런 경향이 가장 강하다. 롯데마트 세력도 가장 약하다.[50] 반대로 부울경은 롯데 계열사의 텃밭이다. 이는 신격호 회장이 울산 출신으로 부산, 울산 등지에서 사업을 시작한 영향이 크다.[51] 충청도는 CJ, 신세계그룹 등 범삼성가 계열사나 한화 계열사가 상업적으로 흥하는 지역이다. 다만 충주시, 제천시 등 한화와의 연결고리가 약한 충북 북동부 지역에서는 한화 계열사가 전혀 힘을 못 쓴다. 사실 한화 자체가 천안과 대전을 거점으로 성장한 만큼 충청북도보다는 충청남도쪽과의 연계성이 더 강하고 스스로의 정체성도 충청남도에 두고 있기도 하다.[52] 현재 롯데시네마는 전부 서구에 몰려있으며, 그나마 동구 가오동에 있던 지점은 CGV로 전환되었다. 월평동, 관저동, 둔산동, 탄방동 등 나름 번화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이 노후화되어 서구 주민들은 대부분 CGV나 메가박스로 영화를 보러 간다. 만년동, 월평 2,3동 주민들은 메가박스 대전신세계로, 월평1동과 갈마1,2동은 메가박스 유성온천으로, 둔산 1,2,3동과 탄방동, 괴정동, 내동, 가장동 주민들은 CGV 탄방이나 메가박스 대전탄방으로, 변동, 도마동 주민들은 CGV 대전으로, 가수원동, 관저동 주민들은 CGV 대전이나 CGV 대전가수원으로 원정 영화관람을 하러 간다.[53] 대전에 롯데마트는 유성구에 몰려있으며, 특수한 입지의 대덕테크노밸리점을 제외한 나머지 지점은 점유율을 홈플러스와 이마트에 내주는 실정이다. 천안은 성정점을 제외한 천안아산점과 쌍용점을 폐점했다. 롯데마트 쌍용점 근처에 이마트 쌍용점이, 롯데마트 천안아산점 근처에 이마트 펜타포트점과 이마트 트레이더스 홈세일클럽 천안아산점이 있어 이마트가 롯데마트의 수요를 많이 뺏었기 때문.[54] 참고로 천안은 이마트 초강세, 대전은 홈플러스 초강세였으나 대전에서도 이마트와 맞붙은 홈플러스 점포는 전부 이마트한테 밀려서 폐점, 철거되고 이마트의 세력이 강해지고있다.[55] 다만 한화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충주에서는 충주공용버스터미널 버프에 힘입어 롯데마트가 나름 선전하는 중.[56] 감곡면, 조치원읍, 충주시가 복숭아로 유명하다.[57] 충주시가 전국 지자체 중 사과 생산량 5위 안에 든다.[58] 음성군이 전국 고추 생산량 1위이며, 청양군은 청양고추의 원조는 아니지만 청양고추가 많이 재배되는 편이다.[59] 전국 딸기 생산량의 15%이나 차지하는 압도적인 1위이다.[60] 전북은 개신교 강세 지역, 광주/전남은 가톨릭 강세 지역이다. 다만 전남 동부는 예외로 개신교가 가톨릭을 훨씬 압도한다.[61] 다만 충북도 종파를 무시하고 하나로 본다면 개신교+천주교를 합산한게 불교를 앞지른다. 불교 우세임에도 개신교와 경합 추세인 상태이기 때문에 비교적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충남, 충북 모두 크리스트교 강세라고 보면 된다. 주로 음성, 증평, 진천, 청주, 충주에선 기독교가 강세고, 괴산, 단양, 보은, 영동, 옥천, 제천에선 불교가 강세다.[62] 다만 부여군은 충남이지만 불교세가 강하다. 여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영향도 크고, 각종 불교 유적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강세인 전북과는 맞닿아 있지만, 교류는 거의 없었다. 또한 부여 인근의 공주, 청양도 불교세가 어느정도 되는 편이며, 금산군도 불교세가 강하다. 금산군은 옥천, 영동과 접해있고 충남 내에서 경상도와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63] 충남 서북부인 내포지방은 조선시대부터 가톨릭 교세가 강했다. 그리고 90년대에서 00년대 초반 천안아산이 급성장하면서 내포지방 주민들이 인접한 천안으로 많이 이주한 이유로 천안이나 아산의 가톨릭 교세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일단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충청남도 당진 출신, 두 번째 한국인 가톨릭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충청남도 홍성 출신이다.[64] 다만 대전은 예외. 대전은 인구수 기준으로는 개신교와 불교가 경합세이지만, 사회적 영향력에서 개신교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가톨릭은 전반적으로 불교보다도 영향력이 약하다. 이는 대전광역시에 경상도, 전북 출신 이주민들이 많은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경상도는 불교가, 전북은 개신교가 초강세인 지역이다.[65] 여담으로 충청도는 천주교 관구가 분리되어 있는 지역인데, 대전, 세종(부강면 제외), 충남 지역은 대전교구, 충북(제천, 단양 제외) 지역은 청주교구 소속인데, 대전교구는 수도권, 강원도와 같이 서울관구 관할, 청주교구는 경상도와 같이 대구관구 소속이다. 참고로 제천, 단양은 원주교구 소속이다. 만약 대전교구와 청주교구중 하나가 대교구로 바뀐다면 충청도 전역이 하나의 관구가 될 수도 있으며, 도별로 관구를 맞추기 위해 청주교구가 원주교구 소속인 제천, 단양을 편입시킬 수도 있다.[66] 충주시와 청주시는 수도권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라 기독교세도 만만치 않다. 충주시는 개신교, 청주시는 가톨릭이 상대적 우세다.[67] 이쪽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가톨릭 강세 지역이었다. 이는 중국과 교역하는 항구가 아산만, 즉 아산, 당진 지역에 분포하여 중국에서 자연스럽게 가톨릭이 전파된 영향도 있고, 무엇보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당진 출신으로 내포-천안권을 중심으로 포교가 이루어졌다.[68] 1949년 기독교연합봉사회, 1952년 대전시기독교연합회.[69] 세종특별자치시나 청주시는 예외. 이들 지역은 개신교보다는 가톨릭 우세 지역이다. 논산시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경합세이며 불교세도 약하지 않다.[70] 수도권 전철 1,3,4호선처럼 도시철도와 광역철도가 직결되는것이다.[71] 세종이 인구 40만에 육박하는 중견급 도시이지만 자체적인 도시권을 형성하지 못한 채 대전에 종속되는 이유는 신도시 지역이 대전과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세종시 자체는 청주와 천안과도 맞닿아 있지만 여기는 읍면 지역이라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72]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그 인근 지역(금남면, 장군면, 연기면) 등 세종시 전체 인구의 4분의 3이 해당[73] 특히 옥천의 경우엔 대전과 가까운 서부 지역에 전체 인구의 70%가 몰려있다. 물론 보은이나 상주와 가까운 청성면, 청산면 등 대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지역도 있다.[74] 다만 청양은 대전과 거리가 멀어서 내포권의 영향도 받는다.[75] 부여도 청양처럼 대전과 거리가 멀지만, 대전권에 속하는 인근 지역인 공주나 논산으로 가기도 한다. 의외로 인접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와의 교류는 거의 없다.[76] 김천과 가까운 4개면(황간면, 추풍령면, 매곡면, 상촌면)제외[77] 충주권에 해당하는 북부 지역 제외.[78] 조치원읍, 연동면, 부강면 등 청주시와 접한 일부 지역 해당[79] 세종과 청양을 제외하면 모두 서해선, 장항선 영향권에 있다.[80] 천안시와 접한 소정면, 전의면, 전동면 지역이 해당[81]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와 가까운 장항읍 지역 제외[82] 충주시 자체가 충북 내에서 지역 중심 도시가 되기엔 도시 규모가 작지만, 그렇다고 주변 도시에 종속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독자적인 생활권을 가지고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중부내륙선 개통 이후에는 수도권과 더 가까워지고있다.[83] 충주와 가까운 북부지역(불정면, 감물면, 장연면, 연풍면)만 해당[84] 제천시는 주변 단양군, 영월군과 독자적인 생활권을 형성하며 충주나 도내 다른 도시보다는 강원도 원주와 교류가 많다.[85] 2위는 충북으로 전체 가구 중에서 4.5%, 3위는 경북으로 3.8%, 4위는 서울로 2.2%, 5위는 전북으로 1.0%의 비중을 차지했다.[86] 송파구 인구의 약 34~35% 정도가 충청도 출신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한다. 즉 송파구는 영등포구와 더불어 서울에서 충청도 출신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그래서 대전대학교 한방 병원이 이로 인해 생겼다고 충청향우회 송파구지회에서 알려주었다. 송파구 전체 인구로 보면 약 35~36%를 차지하는 경상도 출신이 좀 더 많지만 충청향우회의 영향력은 영남향우회와 맞먹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편. 이 지역은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천안시, 아산시, 홍성군, 당진시, 서천군, 논산시, 공주시 출신이 굉장히 많으며, 충청북도는 충주시, 청주시 출신이 상당한 편이다. 특히 충주시 출신은 서초구와 더불어 서울 2위에 해당될 정도로 상당히 많은 편이다. 당연히 괴산군, 음성군, 제천시, 영동군, 옥천군, 진천군, 보은군 출신 또한 상당한 편이다. 충북 출신이 서울 중랑구, 경기 남양주시와 더불어 상당히 많이 거주한다는 게 특징이다.[87] 양천구 전체 인구의 약 32%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송파구, 영등포구 다음으로 서울에서 충청도 출신이 많으며, 특히 충남 북부 출신이 많다. 물론 청주시, 충주시, 영동군 출신 또한 상당한 편이다.[88] 강남구에도 충청도 출신이 다른 구에 비해서는 제법 많은 편에 속한다. 적어도 강남구 전체 인구의 30% 이상 된다. 특히 천안시, 충주시(서초구 못지않게 많이 거주함), 연기군(현재의 세종시), 청주시, 공주시, 아산시, 대전광역시 출신이 강남구 관내에 굉장히 많이 거주한다. 더불어 21대 정순균 구청장을 제외한 역대 민선 강남구청장들도 모두 충청권 출신이다.[89] 특히 지리적 위치 특성상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등 충북 북부 출신이 많다. 전체 인구의 약 28~29% 정도 추산되고 있다. 물론 중랑구에서 출신지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약 32~33%를 차지하는 강원도 출신. 춘천으로 나가는 46번 국도 구선과 강릉으로 나가는 6번 국도가 통과하는 강원도의 관문 지역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참고로 중랑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원도 출신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원주시 출신이 춘천시 출신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 춘천 출신은 서울 상위 4위. 그 외에 강릉시, 동해시, 속초시 출신들도 꽤 많이 거주한다.[90] 지금은 송파구에 살짝 밀린 감이 있지만 이전에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충청도 출신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현재도 32~33% 정도. 특히 경부선 영등포역이 자리한 지역 특성상 경부선 연선지역인 대전, 청주, 천안 출신이 많다.[91] 의외겠지만 영남 다음으로 충청도 출신의 비율이 높다. 약 28%. 특히 충북 북부 출신과 대전, 청주, 천안 등 경부선 연선 출신이 많으며 특히 정릉동과 하월곡동, 장위동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92] 대전, 천안 및 내포지방 출신이 많다.[93] 양천구와 비슷하게 구 관내 인구의 30% 정도로 추산된다. 충남 서북부(내포) 출신이 많다.[94] 특히 대전, 천안, 아산, 내포지방 출신이 많다. 약 30%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특히 사당동에 상당히 많이 거주한다.[95] 인천 인구의 충청도 출신 또는 연고지가 30% 정도 된다고 한다. 특히, 서산, 홍성, 당진, 예산, 태안 등 내포지방(충청남도 서북부 서해안) 연고자가 많다. 그다음이 천안아산 출신 인구. 원인천에 특히 충청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부평권도 충청도 출신 인구가 많다. 그래서인지 옆동네인 부천시 역시 충청도 출신 인구 비중이 높다. 다만 인천이나 부천에는 대전권 출신과 충청북도 출신은 매우 적은 편이다.[96] 그때문인지 랜더스필드 경기때 원정팬들의 숫자도 많은 편인데 한화 이글스 경기에서 제일 많은 관중들을 자랑한다.[97] 주로 내포와 천안, 대전, 충북 북부 출신이 많다. 물론 고양시 전체 인구로 따지면 가장 많은 것은 37% 정도를 차지하는 전라도 출신. 인접한 마포구와 은평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리적 특성상 당연한 결과이다. 참고로 은평구 역시 서울에서 전라도 출신이 상당히 많은 지역 중 하나다.[98] 충청도 출신이 남양주시 인구의 33~34% 정도를 차지한다. 구리시 또한 약 27% 정도 된다. 이 지역은 지리적 특성상 충주, 제천, 단양 등 충북 북부 연고자가 많다. 가장 교류가 많은 중랑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 특성상 비율이나 연고지 구성이 상당히 비슷하다. 다만, 남양주시의 경우 대전광역시, 천안시, 아산시, 서천군, 홍성군 등 충남 출신도 제법 많다. 이 지역은 경기 북부 및 동북부 지역에 한정해서 충청 출신 최다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99] 안양시 인구의 32% 정도가 충청도 출신이며 대부분이 내포와 천안아산, 대전 출신이라고 한다. 다만 충북 출신은 매우 적은 편이다. 인접한 군포시와 의왕시도 마찬가지로 충청도 출신 인구가 꽤 많이 거주한다.[100] 강서구, 양천구, 인천광역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리적 특성상 내포, 천안아산, 기타 서해안지역 출신 인구가 많다.[101] 중부고속도로 영향으로 충북 출신 인구가 많다.[102] 전체 인구의 약 33% 정도 된다. 특히 충남 중남부(대전, 공주, 논산, 부여, 청양, 세종 등) 출신과 청주, 충주 출신이 많다. 특히 분당구에는 충주, 천안, 대전, 청주 출신이 상당히 많이 거주한다.[103] 충북에서 가까운 이유로 충북과 대전 출신 인구가 많다.[104] 의외겠지만 수도권에서 인천만큼이나 충청도 출신의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35% 정도가 충청도 출신 인구다. 다만 수원은 전라도 출신 인구도 많아 정확히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합세에 가깝다.[105] 경부선 및 경부고속도로의 연선으로 인하여 천안, 아산 출신도 많고, 대전, 청주 출신이 수원에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공주, 세종 출신도 꽤 있는 편. 내포지방 출신도 의외로 많은데, 서해안고속도로가 직접 통과하지는 않지만 비봉IC에서 수원이 가깝다. 그래서인지 권선구 서부, 장안구 서부에는 당진, 홍성, 예산, 서산 출신 인구가 많다. 그리고 의외로 천안아산과 내포는 대전보다 수원이 더 가깝다(!). 홍성, 예산, 아산에서 수원까지는 장항선으로 수원까지 직통이지만, 대전까지 가려면 무조건 천안역에서 환승하거나 장항선 남부순환선으로 한참 돌아가야 한다.[106] 다만 수원에 거주하는 충청도 출신 인구를 보면 충북 출신은 그 수가 많지 않은 편이며, 그나마도 거의 충북 출신이 많이 사는 용인과 가까운 영통구 광교신도시에 몰려 있다. 한 가지 특기할 사항으로는 인천에는 대전 출신 인구가 거의 없는데, 수원은 대전권 출신 인구가 꽤 많이 거주한다는 것.[107] 의외겠지만 수도권에서 인천만큼이나 충청도 출신의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35% 정도가 충청도 출신 인구다. 다만 오산은 전라도 출신 인구도 많아 정확히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합세에 가깝다.[108] 전라도 출신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긴 하지만 안산에도 주변 다른 지역에 비해 충청도 출신이 꽤 많이 거주한다. 특히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지역 특성상 내포지방과 천안아산 출신 인구가 많으며, 수원시, 안양시와 가까워서인지 의외로 대전 출신자들도 많이 거주한다.[109] 특히 동탄신도시에는 천안아산과 내포 주민들이 많이 거주한다.[110] 화성, 평택에서 서해대교만 건너면 바로 당진이다. 또한 아산만방조제 및 45번 국도를 통해 아산과, 1번 국도, 1호선 전철을 통해 천안과도 연결된다. 이 때문인지 평택에는 충청도 출신, 특히 천안, 아산, 당진, 예산 출신이 35% 이상 상당히 많이 거주하며, 천안과 아산 다음으로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의 교세가 강하다.[111] 과거 평택은 충청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평택시의 전 지역은 충청 방언을 사용한다. 실제로 평택시 소사동에 대동법 시행 기념비가 있는 것은 이는 평택시가 과거에 충청도에 명백히 속해 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물론 평택시는 일제강점기 행정구역이 개편되었을 1914년부터는 경기도 진위군이었다. 그렇지만 평택시가 충청도의 문화나 역사나 사람들의 풍습을 지니고 있거나 그에 준하는 문화가 완전히 똑같거나 상당수 일치한다고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23부였을 때에도 평택만은 공주부에 속해 있었다. 그렇기에 충청남도와 한 가족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다고 평택, 진위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언급해 주기도 했다.[112] 안성, 용인, 이천, 여주는 23부였을 때에는 충주부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충청북도 출신이 많다.[113] 건국대 충주캠퍼스, 고려대 서창캠퍼스, 홍익대 조치원캠퍼스, 단국대 천안캠퍼스. 현재는 건국대 글로컬캠퍼스와 고려대 세종캠퍼스 2곳만 존재한다. 단국대는 본분교통합을 했고 홍익대는 분교에서 이원화캠퍼스로 공시 변경되었다.[114] 충주시 - 건국대 글로컬, 청주시 - 충북대, 천안시 - 순천향대, 단국대, 대전광역시 - 을지대, 충남대, 건양대[115] 다만 천안캠퍼스일 뿐 소속은 단국대학교이기 때문에 충청권 학생들이 지역인재 전형으로 지원 가능한 치과대학은 없다.[116] 고려대 세종캠퍼스, 단국대 천안캠퍼스, 충남대학교, 충북대학교[117] 보통 의과대학 입결은 인서울 > 경기 > 충청 > 강원 > 부울경 > 호남 = 대경권 > 제주도 순이다.[118] 참고로 최근 5년간 충청권 의대 평균 입결은 순천향 > 을지 > 충남 = 단국 > 충북 > 건양 = 건국글로컬 순.[119] 물론 충청대망론에서도 알 수 있듯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거지 충청도 지역주의도 특히 구세대 중심으로 어느정도는 남아있다.[120] 좀 더 정확하겐 충남 지역에서 세를 뽐냈다. 충북은 이때도 지역색이 옅어 캐스팅보트 성격이 강했다.[121] 다만 각 광역자치단체 별로 보면 14대부터 19대까지는 대전, 충남, 충북, 세종(18대 대선부터) 모두 같은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승리하여 어긋낫다.[122] 구 대전, 세종 지역도 포함하던 충남 지역은 13대 대선 때 김종필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적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