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치미카도 덴노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일본의 제83대 천황. 황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던 고토바 덴노의 아들이었다.
2. 생애[편집]
1198년, 4세의 나이에 천황으로 즉위했지만, 어렸기에 아버지 고토바 상황이 인세이(원정) 통치를 실시했다. 1210년에 이복동생인 모리나리에게 양위했는데, 이 사람이 준토쿠 덴노였다.
1221년, 고토바 상황이 가마쿠라 막부에 의해 유배되었는데, 군사를 모아 막부를 공격한 것(조큐의 난)이 그 이유였다.[1] 그리고 아우인 준토쿠 상황도 같은 죄명으로 유배되었다. 아버지와 동생이 유배되자 쓰치미카도 상황도 막부에게 자신을 유배시켜 달라고 하여 함께 유배되었다. 유배되었지만 혐의가 없었기에 큰 대우를 받았다.
1231년, 쓰치미카도 상황이 절에 출가했고, 11월에 붕어했다.
3. 기타[편집]
그가 유배길에 오르던 도중 스토쿠 덴노의 능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오부대승경》의 저주가 이루어졌다고 수근거린 소문을 떠올린 그는 비파를 연주해 스토쿠 덴노의 넋을 달래려고 했다. 그날 밤 스토쿠 덴노가 꿈에 나타나 교토에 있는 쓰치미카도 상황 일가의 안전을 약속했고, 그 말대로 쓰치미카도 상황의 아들이 가마쿠라 막부의 조력을 받아 고사가 덴노로 즉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4. 가족관계[편집]
- 중궁(中宮): 온메이몬인(陰明門院) 오오이시미카도(후지와라) 레이시(大炊御門(藤原)麗子) (1185-1243) - 오오이시미카도 요리자네(大炊御門頼実)의 딸
- 전시(典侍): 쓰치미카도(미나모토노) 토우시(土御門(源)通子) (?-1221) - 미나모토노 미사무네(源通宗)의 딸
- 황녀: 하루코(슌시) 여왕(春子 女王) (1210-1230)
- 황녀: 오기마치인(正親町院) 사토코(카쿠시) 내친왕(覚子 内親王) (1213-1285)
- 제4황자: 닌죠 법친왕(仁助 法親王) (1215-1262)
- 제5황자: 세이닌 법친왕(静仁 法親王)(1216-1296)
- 제7황자: 쿠니히토 친왕(邦仁 親王) -(고사가 덴노)
- 궁인(宮人): 미사쿠쇼시(美作掌侍) 타카시나씨(高階氏) - 타카나시노 나카스케(高階仲資)의 딸
- 제1황자: 토닌 법친왕(道仁法親王)(1209-1263)
- 궁인(宮人): 미나모토씨(源氏) - 미나모토노 사다미츠(源貞光)의 딸
- 황녀: 히데코(슈시) 여왕(秀子 女王)
- 궁인(宮人): 비쵸노 츠보네(尾張局)
- 제2황자: 손슈 법친왕(尊守法親王) (1210-1260)
- 궁인(宮人): 미나모토씨(源氏) - 승려 진에(尋恵)의 딸
- 제6황자: 손쇼 법친왕(尊助 法親王) (1217-1290)
- 궁인(宮人): 치부쿄노 츠보네(治部卿局) 후지와라씨(藤原氏) - 승려 데이쇼(定勝)의 딸
- 제3황자: 토엔 법친왕(道円 法親王) (1210-1240)
- 황녀: 노부코(신시) 여왕(信子 女王)
- 궁인(宮人): 다이쿠노 츠보네(大宮局) 미나모토씨(源氏) - 미나모토노 아리야스(源有雅)의 딸
- 황녀: 센카몬인(仙華門院) 아키코(긴시) 내친왕(曦子 内親王) (1224-1262)
- 궁인(宮人): 후지와라씨(藤原氏) - 승려 엔요(円誉)의 딸
- 제8황자 사이닌 법친왕(最仁 法親王) (1227-1295)
- 궁인(宮人): 쿠나이쿄노츠보네(宮内卿局) 후지와라씨(藤原氏) - 후지와라노 노리미츠(藤原範光)의 딸
- 황녀: 토모코(치시) 여왕(知子 女王)
- 궁인(宮人): 후지와라씨(藤原氏) - 승려 켄손(兼尊)의 딸
- 황자: 조닌(増仁)
- 궁인(宮人): 사쿄다이후노 츠보네(左京大夫局) 미나모토씨(源氏) - 승려 쇼엔(証遍)의 딸
- 황녀: 쿠도코(쥰시) 내친왕(諄子 内親王)(?-1260)
- 궁인(宮人): 단바노 츠보네(丹波局)
- 황녀: 고레코(젠시) 여왕(是子女王)
- 생모불명
- 황자: 카이손(懐尊)
- 황자: 세키에(寂恵)
[1] 막부를 공격한 고토바 상황의 병력은 패배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6 11:53:12에 나무위키 쓰치미카도 덴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