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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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등장인물
2.1. 조카(서술자)
2.2. 고모부
2.3. 고모
3. 해석
4. 그 외



1. 개요[편집]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기,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1]

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머, 말두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쎄…… 내 원!"

전문

채만식의 단편소설로, 동아일보에 1938년 3월 25일부터 30일까지 연재되었다. 치숙을 한자로 풀이하면 '어리석을 치()'에 '아저씨 숙()'을 쓰는데, 직역하면 어리석은 아저씨로서 작중에서는 고모부를 가리킨다.


2. 등장인물[편집]



2.1. 조카(서술자)[편집]


고모의 도움으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만의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갖고 있는데, 자신이 일하고 있는 상점에서 독립하여 장사를 해서 30년 동안 10만원[2]을 모으려는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빠진 고모부를 비판한다.

그리고 내지 여자한테 장가만 드는 게 아니라, 성명도 내지인 성명으로 갈고, 집도 내지인 집에서 살고, 옷도 내지 옷을 입고, 밥도 내지식으로 먹고, 아이들도 내지인 이름을 지어서 내지인 학교에 보내고… 자알~한다


또한 일본일본 문화를 동경하는 인물로, 일본 여자와 결혼하여 일본인처럼 살 생각을 하고 있다. 거기에 자국 이성 혐오의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인지, 조선 구식 여자는 순종적이지만 무식해서 싫고, 조선 신식 여자는 좀 배웠답시고 감히 남자에게 맞먹으려 들지만, 일본 여자들은 모두 예쁘고, 얌전하고, 상냥하고, 배웠어도 건방지지 않고 고분고분 복종하기 때문에, 일본 여자가 좋다고 한다.

전체적인 인물상은 친일주의에 빠진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인으로 묘사되는데, 이렇게 된 것은 본인이 당시 조선에 머물던 일본인들에게 그다지 나쁜 취급을 받아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당장 그가 일하는 가게의 일본인 사장만 해도 서술자를 아껴준다고 하고, 그에게 "일본 여자와 중매자리를 주선해주겠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이니, 당대 조선인치고는 꽤 좋은 취급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인과 일제 치하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이 덜하고, 더욱 친일에 빠지기 쉬웠다고 볼 수 있다. 당장 같은 시기를 다루는 문학 작품들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대하는지 보면…[3]

고모에게는 꽤 극진히 대한다. 서술자의 언급에 의하면, 고모는 남편에게 소박을 맞아 쫓겨난 이후로 시집이고 친정이고 폭 망해버렸다고 하는데, 말인즉슨 갈 데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서술자는 그런 고모를 위하여, 어린 나이에 발품까지 팔아서 챙겨가며 일자리까지 얻게 해주었다. 또한 치숙(고모부)를 비판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치숙이 고모에게 못나게 군다는 것이다. 초반부부터 서술자가 고모를 가엾이 여기는 내용이 등장한다. 남편에게 못난 취급을 받고 살면서도, 그런 나쁜 남편을 기어이 건사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술자도 사람인지라, 고모가 식량을 동냥하러 종종 찾아오는 것에 대해 '약간 성가시다'는 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2.2. 고모부[편집]


일본으로 유학을 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난 후,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감방생활 도중 병을 얻게 되어, 출소 후에는 방구석에 드러누워 앓는 신세가 된다.

멀쩡하던 시절에는 조강지처인 서술자의 고모를 냅두고 (신여성)을 두고 지들끼리 놀았는데, 당시 신식 자유연애 풍조가 슬슬 생겨나 구식 풍속과 충돌하면서 지식인 남성들에게 이런 일이 잦았다. 집안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정해주어 마음에도 없는 아내를 두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여성이나 대화가 통하는 신여성과 눈이 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모부가 징역살이를 마치고 출소하여 나와보니, 첩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고모부는 한참 두리번거리며 첩을 찾았으나, 그를 마중하러 나온 것은 본처뿐이었다. 감옥살이로 병을 얻어 일할 수 없게 된 고모부는 예전에 자신이 버렸던 본처에게 의탁하고, 본처는 그런 남편을 먹여살린다. "병이 나은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실 거예요?"라고 조카가 묻자 '그새 지내오던 대로...' 라고 사회주의를 동경하는 이념적 사상이 가장 우선인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물론 고모부는 본처에 대해 "고마운 사람이고 미안하다"는 감정은 분명히 드러내고 있지만, 거기서 멈췄다. 구체적인 행동을 원하는 조카의 질문에는 '바뻐서 원...' 이라고 회피할 뿐이다. 양심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인물인 건 변함없는 셈이다.

적극적으로 일본 문화에 동화되려 하고 현실에 아첨하려는 조카를 비판한다.

2.3. 고모[편집]


고모부의 아내이자, 어린 시절의 서술자를 돌봐준 인물. 서술자도 그 은혜를 잊지 않아서, 고모가 식량 동냥하러 오는 것을 좀 귀찮아하면서도, 할 수 있는 만큼 고모를 도우려고 어린 나이부터 애써왔다.

남편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다른 여자(신여성)를 첩으로 들였고, 본처인 고모는 소박맞아 친정으로 쫓겨났다. 서술자는 그런 고모를 위해 일자리를 얻어주었고, 고모는 열심히 일하여 꼬박꼬박 돈을 모아 저축하여 살림살이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건강하던 시절에는 본처를 외면하고 첩을 끼고 즐기던 고모부는, 출소 후로 건강이 나빠지고 첩에게서 버림받자 다시 본처에게 들러붙어 돈이나 까먹고 수발이나 받는 입장으로 전락했다. 고모는 그런 남편에게 아무런 불평도 원망도 않고 극진히 모시고 있다.

서술자는 고모에게 일자리를 주선해주는 것은 물론, 재혼 자리도 제안한다. 자신이 일하는 가게의 사장이 주선해 준 일본인 남성으로, 조선인 아내를 맞이하고 싶어하며, 미츠코시 백화점 앞에서 바나나 다다키우리(떨이 노점)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가진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먹고는 산다고. 서술자는 고모의 사정이 좀 더 개선되게 해주려고 몇 번이고 중매 제안을 찔러주지만, 고모는 번번히 거절하고 남편에게만 충실하다.

서술자의 언급이나 행적으로 보아, 고모는 전형적인 구식 여성으로 보인다. 소위 현모양처, '시집갔으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야마토 나데시코, 서양판에선 '가정의 천사'로 대표되는, 남편이 무슨 짓을 해도 다 인내하고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는 여성이다.

3. 해석[편집]


표현에 있어서 <치숙>은 당대의 소설들과는 달리 비판받아야 할 대상의 입을 빌려 긍정적 인물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특이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는 작품이다.

한편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주인공과 고모부 둘 다 비판하는 작품'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고모부 역시 세상을 변화시킬 의지만 있을 뿐 실행하지는 못하고 당장 현실적인 밥벌이조차 하지 못하는 비판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채만식이 고모부인 치숙 또한 전적으로 긍정적 인물로 그리지는 않았다는 점이 근거가 된다. 사회 변혁을 이야기하면서 조강지처를 쫓아내고 도쿄로 가서 다른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든지(…), 정작 그렇게 내쳤던 본처에게는 출소 후에는 아무런 미안한 마음도 없이 다시 돌아와 얹혀 살고 있는 모습(…),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가도 돈을 벌어서 먹고 살려는 생각은 안 하고 끝내 사회주의 활동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 모습을 보면, 채만식은 그를 동정받아야 할, 혹은 올바름의 상징으로 그려내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오갈 데 없던 자신을 키워줬던 고모가 어려움에 처하자, 자기가 일하는 가게의 일본인 사장에게 얘기해서 거처와 일자리도 소개해줬다. 또한 고생하는 그녀를 안쓰럽게 여긴 일본인 사장이 안정적인 재혼 자리를 소개시켜 주려고 해도 거절하자, 답답해하는 모습도 보인다. 고모부를 디스하는 데는, 자기 고모를 고생만 시키는 고모부에 대한 원망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4] 오히려 이렇게 본다면, <치숙>은 일제에 순응하는 조카와 이상과 신념에만 매달려 정작 기초적인 삶도 꾸리지 못하는 지식인(치숙) 모두에 대한 비판을 다룬 소설이 된다.

이 문제의 경우 채만식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예를 들어 레디메이드 인생을 보면 작가가 실용적이지 못한 인텔리에 대해 보내는 냉소를 읽어낼 수 있으며, '방구석의 무능한 인텔리'라는 인물상에서 두 작품은 매우 유사하다. 또한, 고모부에 대해 '학벌이 아깝지만 막노동이라도 하라'는 화자의 태도 역시 레디메이드 인생의 결말에서 창선을 인쇄소에 보내는 P의 모습과 겹치는 면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육체노동을 천하게 여기던 당시의 시대적 풍조와 비교할 때, 조카가 오히려 작가의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중에서 치숙의 행동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는 아내(본처, 고모)에 대한 행태 역시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혼하고 새로 결혼한 것'이니 근대적 관점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이는 도덕적으로 충분히 지탄받을 만한 일이다. 이 당시 이혼에 대한 인식은 현대처럼 '부부가 대등한 입장에서 갈라서는 것'이라기보다는 '남편이 아내를 쫓아내는 것'에 가까웠고, 이혼한 여자에 대해서도 '뭔가 잘못을 했거나 흠이 있어서 남편과 시가로부터 쫓겨났을 것이다'라고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었음을 생각하자.

무엇보다도 이 당시에는 과부나 이혼녀의 재혼 자체가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되지 않는 일이었고, 혼자 사는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삶을 영위하는 것 역시 아주 힘든 일이었다.[5] 이런 사회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조강지처(구식 여성)를 버리고 여학생(신여성)과 새로 결혼한 치숙의 행태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네 인생이 어찌 되든 내가 알 바 아니고, 어디 가서 죽든 말든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는 행태로까지 보일 만 하다.


4. 그 외[편집]


작중 조카가 일본 문물을 찬양하는 장면에서, 당시 일본에서 인기 있던 작가나 잡지[6] 등이 언급된다. <킹>[7]이라는 남성대상 잡지, 요시카와 에이지찬바라[8] 소설들, 당대 유명 일본 소설가 키쿠치 칸[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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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를 낮추어 부르던 말. 마르크스덕후? 교과서 등지에서는 간혹 막걸리로 순화된 경우가 있다.[2] 당시 물가로 10만원은 상당히 큰 돈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천석지기 지주가 될 땅을 살 수 있는 돈으로 꽤나 부자행세를 할 수 있을만한 수준의 액수다.[3] 그런데 사실 조선의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대하는 모습이 실제로도 천차만별이기는 했다. 딱 보기에 약삭빠르고 눈치도 있고 일 잘하는 직원을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냥 막 대하고 싫어할 이유도 없기도 하고... 저 시대 살던 사람들 중 자기가 일하던 집의 일본인 주인이 공부를 시켜줘서 어찌어찌 멀쩡한 직장을 얻어 살게 되었다던가, 오래 일하던 가게의 일본인 사장이 내보내며 가게를 차려줬다거나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채만식의 작품들은 풍자적인 문체에 가려져 그렇지 리얼리티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맨발의 겐에서도 주인공 겐의 가족은 조선인에게 호의적이어서 종전 전후로 도움을 주고받는데, 작가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했다. 실제로도 일본인에게 저런 대접을 받고 사는 조선인이 적지는 않았다는 이야기.[4] 달리 본다면 그만큼 '나'가 고모를 많이 생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애초에 은혜 입은 친척이라고 해도, 이렇게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자리도 찾아주고 하는 사람은 현실에도 그리 흔치 않다.[5] 이것보다도 훨씬 더 현대 시점에서 전개되는 작품인 여중생A라는 네이버 웹툰에서도, 이 작품의 치숙은 아무것도 아니게 보일 정도로 인간 말종인 남편 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정을 유지하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나온다. (이쪽도 <치숙>의 아내이자 서술자의 고모처럼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자기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생활비를 다 버는 사람이다.) 이런 유형의 여성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흔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와 달리 이혼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좀 더 수월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이혼에 관한 경제적 이유 외에도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산재하였다.[6] "조선 잡지는 사진도 망가도 없고 순 한문 투성이라 읽기 힘든데, 일본 잡지는 사진도 망가도 많이 들어가 있고 한자마다 읽는 법이 표시되어 있어서 읽기 쉽다"며 일본 잡지를 찬양한다.[7] 작중에서는 낑구. <キング>(King). 현재의 고단샤 계열이 1924년부터 1957년까지 발행했던 대중오락잡지. (일본어 위키피디아 정보). 고단샤에 의해 2000년대에 남성지로 반짝 나왔다가 2년만에 사라진 동명의 잡지와는 무관하다.[8] 작중에서는 <진찐바라바라>라고 표기된다.[9] 김종필이 이 작가의 연애소설을 보다가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