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몰이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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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용어의 저명성
2. 21세기 이후의 친일몰이: 종북몰이와의 관련성
3. 피해 사례
3.1. 대한민국
3.2. 북한
3.3. 중국
3.3.2. 중화민국(대만)
4. 관련 문서


1. 개요


쇼비니즘에 입각하여, 인물이나 집단을 친일파, 매국노, 토착왜구 등으로 매도, 모함하는 행동을 뜻한다.
모함하는 범위도 다양해서, 단순히 '일본과 친밀한 자'를 뜻하기도 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뜻하기도 한다. 주로 인터넷에서 진보나 좌파만이 하는 것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좌우, 보수/진보를 떠나 상대를 매도할 때 쓰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고드윈의 법칙과 유사한 점이 많다. 여운형 등의 적극적인 독립운동가도 해방 전후 염려한 문제다.[1][2]
문제는 친일몰이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에 피해를 입은 나라 그 중에서 반일감정 더 나아가 혐일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대한민국, 북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약간 애매하다.)
한반도와 차이점이 비롯 중국 국민당의 역할이 더 컸지만 엄연한 일본에 대한 중일전쟁 승전국이기 때문에 과거 의도적으로 중국 공산당이 반일 감정을 조장하는 경우나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가 아닌 때는 그냥 그런 과거 큰 전쟁을 벌였던 이웃 국가 정도로 보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최근에 들어서는 국력 차이라든가 정치, 외교적으로 오히려 미국을 더 신경 쓰는 편.
여러모로 일본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적이 많은 동아시아권 특히 한반도에서는 국민 상당수에게 쉽게 먹혀든다는 점이 있다는 것에서 다른 원천봉쇄의 오류 단어들에 비해 위험성이 큰 편이다.
자세한 내용은 사례 참조.

1.1. 용어의 저명성


이 용어는 연합뉴스, 동아일보, YTN 등 언론에서 사용되는 게 확인된다. 이 세 언론은 나무위키:편집지침/등재 기준에서 제도권 언론사 및 방송사로 인정된 제도권 언론들이며, 존치 근거가 되었다.

“與 "친일몰이 도넘어" vs 野 "적반하장" 공방”, “여야가 20일 이른바 '친일 몰이'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대변인은 "광복된 지 70년이 다 된 대한민국에서 도를 넘은 친일 몰이가 막말 정치에 뒤섞이는 것만 해도 서글픈 일"”

연합뉴스 與 "친일몰이 도넘어" vs 野 "적반하장" 공방

“[횡설수설/고미석]엑소 리더에 대한 ‘친일파 몰이’”, “ ‘친일’의 여론몰이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무분별한 친일파 몰이가 단순히 상대를 짓밟기 위한 목적에서 자행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친일파 몰이가 제기한 근본 문제를 함께 고민해볼 시점이다”

동아일보 [횡설수설/고미석]엑소 리더에 대한 ‘친일파 몰이’

“여야는 이 과정에서 이른바 '친일몰이'를 두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

YTN 여, '문창극' 고심...야, 공세범위 확대[3]


2. 21세기 이후의 친일몰이: 종북몰이와의 관련성


좌우를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에 만연하던 전체주의 정서는 민주화 이후 우파의 국가주의, 좌파의 민족주의로 나누어졌다.[4] 우파의 국가주의적 세계관은 일본은 같은 자유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동료이며, 북한은 자유의 적으로 보는데 반면, 좌파의 민족주의 세계관은 일본은 한민족의 원수, 북한은 같은 한민족으로 보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상황이기에,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가 메인 컨텐츠가 된 21세기 현실 정치에서는 민족주의는 국가주의를 친일이라 비난하고, 국가주의는 민족주의를 종북이라 비난하게 된 것이다. 즉 친일몰이와 종북몰이는 서로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는 서양에서는 거의 똑같은 의미인 민족주의국가주의가 별개의 개념으로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내셔널리즘, 국가주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 문단 참고.

3. 피해 사례


  • 친일몰이가 사건사고로 문단 혹은 개별 문서에 등재된 경우만 예시로 등재합니다.

3.1. 대한민국


  • 이승만을 반대하는 국민들: 자세한 건 이승만/평가 참고. 50년대 중반부터 사용되었을만큼 역사가 길다.
    예시 난립과 폭주로 인해 접기 처리

    일인들이 물건을 제조해다가 거대한 액을 잠재로 수입시켜서 그 개정을 총 선거비용으로 친일자를 내세워서 정권을 도모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 물건에는 저의 부사산을 그려서 한편에는 일본섬과 한편에는 한국 반도를 그려서 이것이 다 저의 것이라고 표시(…)모든 친일 분자들을 일본에 모아다 보호해놓고 이 분자들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권요란을 선동하기를 마치 이전 이조 말년에 망명객들을 모아다놓고 남의 국모를 암살하며 침략하든 악습을 행하고 일인들의 야심을 우리가 더 말할 것 없이 보고 안 진 것이다.(보고 있는 않을 것이다.)

    이승만, 동아일보. 1954.5.14

    요즘 우리 국세에 위급한 문제는 소련이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계획과 중공이 한반도를 자기에세 부속시키고자해서 과거 사년동안 전쟁을 하였으며 즉 이북반도를 차지하고 이남을 마저 합병시키는 것이 그 사람들의 목적이고 또 일본이 친일하는 한인들과 반정부 한인들을 이용하여 다시 한반도를 병합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 때

    이승만, 경향신문 1954. 10. 21

    일본공산당들과 친일하는 한인들이 동경과 연락해서 민심을 선동하고 있으니 이것은 경찰이나 민간에서나 정부를 보호하며 반공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다 전적으로 이런 반역행동을 가진자를 조사보고 하여 중벌로 다스려야 될 것

    이승만, 동아일보. 1954. 12.10.

    한편으로 대통령에 나를 선출하고 부통령엔 반대당인 민주당 장면 박사를 선출한 사실만 보아도 그렇고 친일용공의 표수가 그렇게 많이 나왔다는 사실엔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민심의 소재를 측정하기다 곤란하다.

    이승만, 경향신문. 1956. 5. 27

    이어 이 대통령은 반정부신문들은 있는 소리 없는 소리로 정부하는 일을 헐어댄다고 전제한 다음 매우 격노한 어조로 "그렇다면 소련의 정부를 원하느냐? 중공의 정부를 원하느냐? 일본의 정부를 원하느냐?"하고 일갈

    이에 신문기자는,

    "각하의 말씀 매우 듣기 거부합니다. 한국판도내에 친일 친공하는 신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경향신문. 1956. 6. 28

    이 대통령, 여(與)조직부장들에 훈시.

    이 대통령은 이십육일하오 경회루에서 자유당각도 및 핵심당부 조직부장 이백삼십오명을 한희석중앙위부의장의 안내로 접견하고 "큰 성을 이루어서 모든 사람이 원하는 동시에 도달한 것을 믿고 바란다"고 말하였다. 이 대통령의 훈시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금은 어려운 때인데 각 지방에서 자유당의 지도자들이 이와 같이 모여서 내가 만노 보게 되니 감사하며 또 다같이 합동해서 각 지방에서 잘해난다고 하니 나로는 정성껏하며 나할 것을 힘껐 다 바쳐서 할 것이다. 앞으로 선거가 있을 것을 알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즉 공산당이나 친일하는 사람들이 각 방면으로 파괴시켜서 저희의 목적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는 이 어려운 때에 모든 사람들이 이와같이 잘해나가니 마음에 든든하게 생각되며 모두 충성과 충심에서 나오는 결정과 정신이 마음속과 뇌속에서부터 잇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 1959. 8. 2.

    이승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정책이 반공과 반일(방일이라고도 했음)인데, 반공·반일에 대한 담화를 상세히 분석한 연구도 아직 본 바가 없다. 이승만의 반공 담화는 치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중략) 반공의 논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반일의 논리도 비슷했다. 이승만과 이승만 정부는 일본의 새로운 군국주의자들이 공산국의 독재군대와 합작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는 학생, 주민을 동원해 반일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

    서중석박사 #

  • 역설적이게도 이승만 본인: 반민특위해산의 목적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경찰 테크노크라트 보전이라는 대의적 목적이든, 본인의 권력욕이든 간에 본인은 친일 행위를 한 적이 없고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음에도, 반민특위해산의 이유로 친일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 조국 수석의 이분법적 주장에 반대하는 국민들: 7월 20일에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조국은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 통제와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8년 대법원 판결[5]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다. # 이 발언은 극우 세력의 '우리 지지 안하면 빨갱이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조국 수석은 18일에도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 전쟁'이 발발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닌 '애국이냐 이적이냐'다"라고 적었다. 한 마디로 파시즘적 주장을 한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해 서울대 로스쿨 동료 교수들도 비판하고 있다. #
  • 북한 및 종북주의자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국민들: 문재인 대통령의 삼일절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 '빨갱이'란 단어를 일제가 만든 단어로 왜곡된 내용이 나와 논란이 됐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희생된 사람들이 없진 않으나, 빨갱이란 단어 자체는 일제가 만든 단어는 아니며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과 해방 후 반공보수로 갈아탄 친일부역자들 때문에 생긴 탓이 더 크다. 이 때문에 해당 발언 이후 오히려 색깔론을 조장하고 반북을 친일로 취급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자세한 내용은 빨갱이 친일 잔재설 문서 참조
  • 맹목적 반일감정과 불매운동에 반대하는 국민들
  • 북한 정권의 탄압을 피해 8.15 광복 직후~6.25 전쟁 사이의 시기에 월남한 북부 지방 주민들: 해방 직후 남한(대한민국) 지역에서 활동하던 좌파 세력은 당시에 월남해 온 북부 지방 주민들을 북한 정권의 친일파 청산을 피해 내려온 이들로 매도했다.[6] 그러나 이들 중에는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그와 정 반대인 민족주의 우파 성향의 사람들[7]도 많았으며 이들 중에는 자신들이 광복 전에 북한 지역에 세웠던 민족주의 성향의 학교나 기업을 남한 지역으로 옮긴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시가 오산고등학교숭실대학교[8].
>이승만박사가 대일외교 문제에 관하여 동일한 대통령후보자인 신익희씨를 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하고 선거전까지에 그회답을 들어야 하겠다는 요지의 견해를 발표
>
> 경향신문 1956. 4. 24. #
  • 김용하 교수[9], 수호, 근거없는 모함에 반대한 수호의 팬들: 다음 카페 여성시대에서 이들에 대해 모함한 적이 있다. 일부 회원들이 한 수준을 넘어서며 대다수의 회원이 모함하거나 모함을 지지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여성시대/사건 및 사고#s-3.1.2의 엑소멤버 수호 아버지 문단과 수호(EXO)#s-7문서의 수호 아버지 루머 문단 참조.
이 사건은 등재 기준 충족 근거로 쓰인 기사에서도 등장한다.
  • 일본제 도요타 캠리 차량 운전자 및 해당차량에 대한 운전 행위: 2018년 6월[10]에는 충북 진천군에서 일본제 도요타 캠리 차량을 몰던 한 여성 운전자가 자신이 가려던 길을 막던 한 남성으로 부터 '쪽바리', '친일파'라고 욕설을 들은 일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캠리 참조.
  • 반일 민족주의 내용을 다룬 영화 가운데, 비틀음, 부풀린 내용을 담거나 내용 자체가 재미없는 영화에 대한 비판: 자전차왕 엄복동의 비판 부분 참조.
  • 서울 대림동 여경 논란의 여경 비판 혹은 체력 기준 상향 요구: 서울 대림동 여경 논란과 관련해 전우용이 조선 총독부가 여경을 검토했다가 시행 않은 이유를 근거로 여경에게 남성과 동일한 기준 요구나 해당 여경 비판을 일본 군국 주의의 잔재라고 매도했다.
  • 이시언: 2019년 7월에 그가 지인의 초대를 받아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 것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을 본 일부 한국 네티즌들이 당시 일본의 통상보복으로 인해 일본 관련 불매운동이 한국 내에서 퍼지던 상황에서 그가 일본을 방문한 것을 보고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며 비난했다. 이를 본 이시언은 해당 글을 삭제했다.
  • 문창극: KBS의 왜곡 보도로 인해 친일이라는 오해를 받았고 국무총리 후보에서 사퇴하게 되었으나, 전체적인 강의의 맥락을 보니 별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토착왜구라는 비난을 받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반일을 비판하거나 심지어 정부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하라는 입장만 밝혀도 무조건 토착왜구라며 비난하는 경향이 있으며, 정부여당에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 세력을 친일 프레임을 씌워 몰아붙인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응해서 야당에서 친일 의혹이 있는 사람을 재산상속 소송[11]에서 변호했다는 이유로 토착왜구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을 들어 토착왜구를 이용한 친일몰이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에서 정적을 향한 공격방식이 되고 있다.
  • 유력 정치인 가족을 둘러싼 친일 논란: 2015년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의 가족을 둘러싼 친일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이는 보수 언론인 TV조선조차도 헤드라인으로 지라시라고 단언한 내용이다. 출처
    • 문재인 부친 논란: 당시 우리 아버지는 흥남시청에 농업계장을 하셨기 때문에라며 부친이 일제강점기 시절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친일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는데, 농업계장은 말단 공무원에 해당되므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재 기준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 안철수 조부 논란: 안철수의 할아버지가 조선총독부 산하 금융조합 직원이었으니 안철수는 친일파의 후손이란 주장인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측은 “구체적 증거 없이 금융조합 근무만으로 친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 박원순 부친 논란: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친이 일본 보국대 직원으로 7년 간 근무하면서 젊은이들을 징용 보냈다는 주장이 있으나, 박 시장 측은 “노무자로 징집돼 철도부역과 건설작업을 했다”고 반박했다.

3.2. 북한


  • 조만식: 독립 운동가. 친일 몰이를 북한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잘 나타내는 예시중 하나. 소련과 비타협적 좌익들에게 친일파로 몰려 현 북한에서 친일파라 모함당한 채 평가를 받고 있다.
  • 대한민국: 북한의 대표적인 선전선동 중에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고 부정하는 것이 있고, 실제로 대한민국의 모든 부정부패와 악습은 친일반민족행위자때문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조만식과 함께 북한에서도 친일 몰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을 잘 나타내는 또다른 예시.
  • 김일성 정권에 협조적이지 않은 독립운동가들
  • 빨치산파(김일성파)가 아닌 좌익 계열 인사들(ex. 박헌영 )

3.3. 중국



3.3.1. 중국 공산당



3.3.2. 중화민국(대만)


파일:external/blog-imgs-44.fc2.com/20100224123926d04.jpg 파일:external/www.newtaiwan.com.tw/571-38-2b.jpg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28f49a08.jpg
국민당군은 진압 과정에서 수상한 사람에게 표준 중국어로 말을 걸었고 대답하지 못하면 친일파로 간주해 학살했다. 2.28 사건 문서 참고.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국부천대 당사자장제스 본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국민 상대로 학살까지 벌였다는 점으로 인해 대만 본성인들의 상당수가 "외성인이나 일본인이나 사실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4. 관련 문서



[1] 일본이 망한 후 친일파를 처단한다며 무고한 이에 대한 폭력이 벌어질 가능성을 염두했고 이를 방지하려고 했다.[2] 이는 빨갱이, 종북몰이에서도 유효한데 우파집단에서 상대방과 입장차이가 있을경우 자기들끼리 종북, 빨갱이몰이를 하기도 한다. 자기 불리하면 어느상황에서나 쓸수 있는 원천봉쇄의 오류 단어들의 공통점이고, 또한 이러한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 집단과 대상이 되는 집단이 있다는것도 알아둬야한다.[3] 후에 문창극의 강연 내용이 문제가 없었으며 KBS에서 악의적으로 강연 내용을 편집한 것으로 드러났다.[4] 뉴라이트는 민족주의를 부정하지만, 국가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5] 청구권 문제는 사실 법조인들 및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갈린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전원합의체 13명 법관 중 2명은 소수의견(반대의견)을 냈다. 조국의 주장대로라면 소수의견 낸 법관들은 친일파가 된다.[6] 소설 태백산맥과 같이 이 시대를 다룬 소설들을 읽다보면 해당 진영의 인물들이 이러한 식으로 월남한 이들을 혐오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7] 특히 이러한 성향의 이들 중 이 지역의 천도교, 개신교 신자들[8] 심지어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에 대놓고 신사참배를 거부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막은 해당 문서 참조.[9] 수호(EXO)의 아버지[10] 사건의 폭로는 3개월 후인 그해 9월에야 이뤄졌다.[11] 재산환수 소송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