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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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親庭
1.1. 운동선수의 과거 소속 팀
2. 親政
3. 親征
3.1. 사례


1. 親庭[편집]


아내의 본가.

결혼여자가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자란 집. 남편 입장에서는 처가라는 표현을 쓴다.


1.1. 운동선수의 과거 소속 팀[편집]


현대에는 위의 의미가 확장되어 운동선수가 FA트레이드, 이적 등으로 인해 떠난, 자신의 전 소속팀을 친정 또는 친정팀이라 부른다.

고향팀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고향팀은 '선수 입장에서 자신의 고향연고지로 삼고 있는 팀'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둘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유는 당연히 겹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선수입장에서 아무래도 자신의 집과 가까우니까 또는 고향에 위치하고 있으니 애착이 많이 가니까[1],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고 많이 접해본 팀이니까[2] 프로 커리어의 시작을 고향팀으로 원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3]

또한 팀의 프런트에서도 고향이 연고지인 선수를 뽑고 잘하기까지 하면 인기가 늘어나니[4] 그런 선수들을 뽑는 경우가 많다.

축구에서는 타 팀으로 이적한 선수가 친정팀을 상대로 득점을 했을시 세레모니를 자제하는 편이다. 물론 몇몇 예외는 있는데 당연히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

반대로 FA, 트레이드, 방출 등으로 소속팀을 옮긴 선수가 전 소속팀과의 경기 도중 실책 등으로 친정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5]를 하거나, 오히려 친정팀 상대로 맹활약을 할 때[6]에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 친정사랑이라고 부른다.


2. 親政[편집]


친히 정치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나라를 직접 다스리는 것.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임금이 나라를 직접 다스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친정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나, 주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거나 허수아비로 즉위하여 한동안 태후권신섭정을 행하다가, 임금이 성년이 되어 권력을 돌려받거나 정변 등으로 권력을 되찾아와서 직접 정치를 하게 되면 친정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대통령이 장차관이나 여당의 의견을 따르기보다 직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여 운영하는 것을 친정 체제라고 하기도 한다.


3. 親征[편집]


친히 정벌한다는 뜻으로, 군주국가원수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서는 것.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리처드 1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영락제, 광개토대왕, 왕건 등이 대표적 사례.

근대 이전에는 군주의 친정이 흔히 있는 일이었다. 특히 창업군주나 정복 군주들은 친정이, 즉 내정보다는 전쟁이 본업이나 마찬가지라 재위 기간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내는 군주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사에서도 전쟁이 잦았던 삼국시대까지는 친정 능력임금의 기본 덕목이었다. 유능한 장수에 지휘를 맡기는 일도 많았지만, 왕이 굳이 나가서 지휘한 기록도 상당히 많고 고국원왕이나 성왕(백제)은 결국 그러다 전사했다. 신라에서 유독 3명 여왕의 재위기간에 주변국의 공격이나 내부 반란에 크게 시달린 것도 친정을 할 수 없는[7] 여자가 임금에 올랐으니 신라를 흔들기 좋은 시기라고 봐서라는 설도 있을 정도.

정치적인 면에서도 친정은 군주의 덕목이자 왕권 강화의 일환이기도 하였으며,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끈다는 것은 병사들에게 사기면에서도 큰 영향을 줬다.

언뜻 생각하기엔 '그냥 유능한 장수에게 맡기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선택이다. 패전해도 문제지만, 이겨서 공훈을 세운 총사령관은 기존 권력에게 잠재적 위험요소이기 때문이고, 극단적으로는 전쟁 시작도 전에 아예 사령부 전체가 반란군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게다가 반란을 경계한답시고 군대를 쪼개 수도 방위에 남겨두면, 당연히 작전의 성공률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반면 군주가 친정을 하면 군공을 독점할 수 있고, 수도 방위는 최소한으로 남긴 채 온 나라를 긁어모아 대외원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군주의 친정은 국가의 총력을 기울인 전쟁을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지어 양진영이 모두 친정일 경우 그 무게감은 더욱 엄청나져서 말 그대로 양국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전투가 되곤 한다. 아래 사례들을 보면, 패전한 쪽은 정말로 나라가 망하거나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문장에 예시된 인물들 처럼 군주 본인이 최고의 장수, 지휘관이어서 직접 군을 전투를 지휘 하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정치적 의미까지 염두에 두고 군주가 참전하되 실제 작전 입안이나 전투 지휘는 직업군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더 많다.

군주의 친정은 장점 못지 않게 단점도 크다. 전세가 불리해져 왕이 도망가거나(다리우스 3세) 살해당할(성왕)경우 충분히 버틸 수 있었던 상황이라도 병사들이 모두 무너지는 양날의 검과 같았다. 더군다나 전쟁 와중에 왕이 전사하거나(해럴드 2세, 리처드 3세, 세바스티앙 1세) 사로잡히는 일(장 2세, 정통제, 무함마드 샤)이라도 벌어진다면 왕조가 망하거나 흔들릴 판이니 근대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다. 군주들 중에는 지휘관으로서 능력이 우수한 군주도 있지만 전쟁과는 맞지 않는 군주들도 있으며, 친정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국가존속 수단이 아니고서야 기본적으로 군주의 덕목은 국가를 견실하게 운영하는 능력이 우선이기도 하니까.

한국사에서는 조선 개국 초기인 1402년 발생한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태종 이방원이 친정한 사례가 마지막이다. 조선만으로 따지면 처음이자 마지막 국왕의 친정이다. 이는 조사의의 난을 일으킨 조사의 배후에 건국자이자 부왕인 태조 이성계가 있었기 때문에, 친정을 하지 않고 그냥 신하들만 보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서도 있다. 세자 시절 광해군임진왜란 때 직접 군을 이끈 적이 있기는 하다.

세계사에서는 프랑스 제2제국나폴레옹 3세보불전쟁에 친정한 사례가 전통적 의미의 친정으로서는 마지막일 것이다. 나폴레옹 3세는 이 전쟁의 스당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에 패배하여 포로가 되고, 이로서 프랑스 제2제국은 멸망한다.

재미있게도 미국 대통령도 친정을 한 적이 있다. 조지 워싱턴이 그 주인공으로 독립전쟁을 끝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임기를 수행할 때 벌어진 위스키 반란에 친히 토벌군을 이끌고 반란을 진압한 적이 있었다.

20세기 이후 국가의 체계가 고도화 되면서부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국가원수의 친정, 즉 전체 전쟁의 지도를 넘어서 개별 전투에 까지 참여한다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국가원수가 전쟁을 직접 지도하는 경우도 20세기 이후로는 극히 드문데, 1차 대전에서 알베르 1세벨기에군 지휘, 2차 대전에서 히틀러독일군 지휘, 2차대전과 국공내전에서 장제스국민당군 지휘 등의 예를 들 수 있고, 21세기에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압둘라 2세요르단군 지휘가 있다


3.1. 사례[편집]


한 쪽만이 친정이었던 사례는 매우 많아서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렵기에, 양진영이 모두 친정이었던 사례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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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착에서는 한대화의 경우가 딱 알맞다. 고향팀의 감독까지 지냈으니까 다만, 한대화의 친정팀은 한화 이글스가 아니다. 대전 연고 시절의 OB 베어스에서 데뷔하여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를 거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커리어를 마감했다.[2] 양준혁이 매우 좋은 예시다.[3] 하지만 KBO 리그의 경우 2023년 이후로는 전면 드래프트의 재도입으로 프로 커리어의 시작을 고향팀에서 시작하기가 어려워졌다.[4] 이대호가 좋은 예시이다.[5] 병살타, 수비실책 , 자책골 등.[6] 홈런이나 호수비, 결승골 등.[7] 실제로 여왕들은 친정 기록이 전혀 없다. 반면 전후로 진평왕은 친정을 했고, 김춘추도 젊을 때는 전장을 김유신에 맡겼지만 오히려 나이들어 왕에 오른 뒤에는 친정을 여러 번 했다.[8] 룸 술탄국의 술탄[9] 이후 모로코 술탄은 같이 참전한 마르완의 동생인 아흐마드 알 만수르가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