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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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황계
친황교안계

형성
2019년
해체
2022년
수장
황교안
정치적 이념
보수주의
국민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우익대중주의
반공주의
경제적 이념
경제적 자유주의[1]
주요 정치인
김도읍
김선교
민경욱
최춘식
추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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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성향
3. 역사
3.1. 황교안의 정치입문 직후
3.2. 2020년
3.3. 2021년
3.4. 2022년
4. 주요 인사
4.2. 원외
4.2.1. 전직 국회의원
4.2.2. 그 외 정치인
5. 구성원
6. 같이보기



1. 개요[편집]


미래통합당 대표 황교안을 지지하거나, 또는 그의 사상·정책에 동조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이견의 여지가 있으나, 친박의 한 갈래나 잔류로 본다. 그러나 단식 투쟁 이후로 황교안으로의 구심력이 강해지면서, 기존의 친박-비박 또는 친이-친박 구도를 넘어서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예컨대 김태흠은 분명 친박이지만, 친황은 확실히 아닌(비황이나 반황에 가까우면 가까웠지) 모습을 보이고 있고, 반면 정미경은 18대 국회 때 처음 등원했으며, 탄핵정국에서 새누리당 분당을 통해 바른정당에 갔다가 복당했으므로 분명 친이-비박이지만 황교안이 단식투쟁 8일째로 실려나가자 흐름을 이어가겠다며 동조단식에 들어가는 등이나 이후 모습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상당한 친황적 모습을 보였다.# #

황교안은 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친이계로 분류되는 나경원과 호흡을 맞추었고, 2020년 총선 국면에서는 역시 친이계인 박형준과도 호흡을 맞추었다. 그 과정에서의 갈등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편이었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고 2020년 하반기부터는 황교안이 빠르게 몰락함으로써 그 존재감이나, 실체는 미비한 것으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적어도 2021년까지는 본인이 공천권을 쥐었던만큼 국힘 내부에 꽤나 영향력이 잔존해 있었는데 2022년 20대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룬 후에는 국힘의 강경파에서조차도 황교안의 말을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 이르면서 친황 출신들은 각자도생을 시작했고 친무와 비슷하게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


2. 성향[편집]


미래통합당의 대표적인 보수 계파였다. 소속 인물들은 보수주의가 기반이다.

경제관은 민부론에서 잘 드러난다. 친기업(내지 친부자), 반복지와 병원 영리화 및 일부 공기업 민영화 등 경제적 자유주의 기조이다.

안보와 대북관에 있어선 반공, 외교에서는 친미와 친 NATO 등 친서방 정책을 추구하는 편이다.

보수진영을 미래통합당으로 통합하는데 이끌었던 계파였다.


3. 역사[편집]



3.1. 황교안의 정치입문 직후[편집]


황교안이 법무장관이던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을 추진하였고, 이게 현실화되면서 황교안을 대권주자로 거론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즉 친황이라는 계파는 이 때부터 생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황교안보다 반기문, 김무성을 더 가능성 높게 판단하는 분위기가 짙었고, 여기에서 밀린 황교안을 특별히 "추종"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었다고 봐도 무관하다. 끽해봤자 지지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그러다가 반기문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지지층의 상당수가 황교안으로 이동했고, 한때 황교안이 전면으로 나선다는 설이 제기되면서 지지층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교안은 끝내 불출마했고, 궁극적으로 친박 내에서도 분열 양상을 보이면서 황교안을 추종하는 특별한 계파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친황"이라는 표현을 쓴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대신 출마한 홍준표가 당초 반기문, 황교안의 지지율을 크게 웃도는 24%를 득표하면서 홍준표와 친홍 쪽에 무게가 쏠리게 되었고, 황교안은 거의 파묻히다시피 했다.

하지만 제7회 지방선거의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패배로 홍준표는 당대표직을 내려놓게 되었으며, 친홍 또한 급속하게 몰락하게 되었다.

이 때다 싶었던 친박은 재기를 모색하게 되는데, 한때 바른정당 합류설까지 나돌았던 나경원이 친박의 지지를 받아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되었고, 이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황교안의 출마를 종용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황교안은 자유한국당 입당과 함께 당대표 도전을 선언했고, 결국 50%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친황이라는 계파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3.2. 2020년[편집]


2020년 그의 자유한국당 입당 약 1년만에 보수대통합 명목으로 미래통합당이 창당되었다.[2]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맞추어 김종인을 영입하려 했으나 불발되어 혼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자매정당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수정하면서 친황의 외연이 넓어질 가능성이 열렸다.[3] 또한 황교안이 처음에 친박 행보를 보이다가 친박/비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과 다르게 친박 초재선이 아닌 중진들은[4] 황교안 체제에서 거진 컷오프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서 치뤄진 선거임을 일정부분 감안하더라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헌정사에 기록될 만한 참패로 지리멸렬했고, 황교안 본인도 이낙연과의 차기 주자간 종로 대회전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를 당하며 선거 당일 미래통합당 대표직을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분간 구심점을 잃은 친황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황교안과 막역한 사이인 전광훈대한민국 전체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대사건을 저질러 황교안의 정치생명도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3.3. 2021년[편집]


2021년 재보궐선거 선거 이후 구 친박에 거의 흡수된 모양새다. 물론 대놓고 김종인 비대위를 비난한 친홍이나 안철수를 지지한 비황계 친박과 다르게 중립을 지켰지만 향후 정국을 본다면 입지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황교안은 김종인 비대위체제에 대해 "총선 패배의 책임은 모두 자신이 져야한다"며 간접적으로 지원하였으며 계파 의원들도 김종인 체제에 대해 거의 비판을 자제했다.

하지만 재보궐선거 결과 중도층 확장이 당선의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친박친홍 계파의 입지가 불안정해졌다. 국민의힘 당 내 주도권이 친유, 소장파, 친이 온건파 등 당 내 자유보수주의적인 중도우파 계열로 넘어간 상황 속에서 그나마 강성우파 계열의 명맥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념적 차이와 계파와는 다르게 황교안 측과 친밀한 것으로 알려진 박형준[5]의 부산시장 당선과 서동욱울산 남구청장 당선 또한 소득일 것이다.[6]

이런 상황 속에서 원내대표 경선은 딱히 친황이라고 할 후보도 없이 치루어졌다.

1차 전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으로 정미경이 당선되어 그래도 체면치레는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미경은 4위로 높은 순위는 아니었고, 원영섭은 8위로 낙선했다. 거기다가 정미경은 워낙 계파를 자주 바꾸는데다 원래는 친이여서 완벽한 친황으로 보긴 어렵다. 역시 2021년 재보선에 이어 강경보수 계파로써 입지를 확보한 정도였다.[7]

황교안이 정계에 복귀해 20대 대선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 출마했지만 황교안 캠프나 친황 인사들은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1차 컷오프를 통과한 후보 8인 중 하나이지만 지지율이나 후보적합도 조사에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결국 황교안은 2차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하며 대권 레이스에서 탈락했고, 황교안의 마이너한 정치계에서의 입지가 확인된 이상 향후 계파의 존속 가능성도 불투명한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 황교안은 부정선거라며 반발했고 같이 친박출신인 민경욱도 같이 2차 컷오프에서 이준석 일행에 의해 부정선거 당했다며 가짜뉴스급 주장을 퍼뜨렸다.


3.4. 2022년[편집]


사실상 계파가 공중분해 되어서 해체되었다.

20대 대선이 끝나고 황교안의 활동이라고는 총선, 경선, 대선 모두 부정선거였다며 사전투표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것뿐인데, 웬만한 국민의힘 강경파도 이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정점식안철수에 의해 최고위원으로 지명되었다. 임명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4. 주요 인사[편집]



4.1. 원내 (제21대 국회의원)[편집]


강한 성향의 비박 성향을 가진 인사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황 전 대표가 아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재보궐선거에 창원 성산에 대표가 출마해야한다는 권유를 물리치고 강기윤에게 공천을 줬으며, 재보궐선거 패배 후 흔들리는 당협에 그대로 유지하도록 중앙차원에서 힘을 싣어주기도 했다.[8]

황교안 대표 2대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사무처 당직자 일괄 사퇴를 주도하여 사무총장, 여의도연구원장 등의 당 대표 지배력을 높였다. 총선 국면에선 불출마한 김도읍 의원의 재공천을 강력히 권유하고, 관철시킬 정도로 매우 가까운 사이이다. 단 김도읍 의원이 공천된 이유가 황교안과의 친분 외에도 동남권 신공항 등 지역구 관리를 잘한 것과 대체할 인물이 없어서 그런 면이 있기도 하다.

황교안 체제가 지방행보, 지방활성화에 적극적이어서 힘이 상당히 실렸던 지방자치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했고, 공관위가 용산 참사의 책임으로 컷오프시켰으나 대표-최고위 직권으로 다시 살아나 공천을 받은 인물이다. 친분이 깊은지 황 대표와 식사를 자주했다. 의원 본인의 블로그로 확인된다.

양평군수 출신으로, 친유계 소장파 정치인인 정병국이 사실상 컷오프 당한 자리를 차지했다. 황교안이 본인의 대권에 방해되는 정병국을 처낸 상황인 셈이다.[9]

황교안이 없는 상태에서 정병국과 경선을 하면 패배할 상황에서 황교안이 구출해준 셈이다. 양평군수 시절에도 정병국친유계에 합류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한 것에 대해 배신자라고 언급할 정도로 대표적인 친박계로 꼽힌다.

현재는 제21대 국회에 진출했지만, 총선에서 상대였던 최재관과 표차가 크지 않았어서 재선을 하기에는 입지가 불안정하다. 게다가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과 관련돼서 기소된 상태에 있는지라 의원직 상실까지 고려해야 될 상황에 쳐해져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때 정부 측 대리인으로 헌법재판소 심사에 참여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의 핵심보좌를 했던 인물로, 2019년 재보궐선거에서 황 대표 측의 강력한 푸쉬를 받고 공천, 당선을 이뤄냈다.

황교안이 창원지검장을 역임할 때 창원시장이었던 인물이다. 황 전 대표의 주된 검찰 커리어가 창원지검장이었던 만큼, 창원 인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임이 상당히 두터워서, 추경호가 사무처의 실세로 활약하며 황교안 체제에서의 사무총장은 바지로 평가받다가 박완수가 사무총장이 되고서야 사무총장의 권위가 돌아왔다는 평가가 있다. 또 홍준표와 사이가 굉장히 나빠서 홍준표 견제용 인사를 한 측면도 있기도 하다.

역시 주된 검찰 커리어가 창원지검장이라 황교안의 창원인맥으로 자주 언급되고, 황대표 체제에서의 검찰 출신 정치 등용문으로 핵심적이었던 우병우 사단 출신이다. 정점식 의원도 이 루트로 국회의원직을 달았다. 다만 이 그룹 중에서 성향은 가장 개혁적이어서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지역 터줏대감인 김영우의 불출마 이후 공천을 받은 인사이다. 친박 성향의 지역 정치인이다. 종북몰이, 백신 반대 운동 등으로 물의를 빚고 있으며, 대안 우파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웃 지역김선교와 비슷하다.

지역 터줏대감 이주영이 컷오프되고 황 대표 측의 적극적인 푸쉬로 공천을 따냈고, 박근혜 정부에서 공보국에서 일하면서 호흡을 맞췄었다. 유상범 의원과 마찬가지로 그룹 내에서 성향은 개혁적이어서 역시 비대위 체제를 적극 지지한다. 20대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원희룡 前 제주도지사를 지지했다.

황교안이 국무총리를 수행할 때 국무총리의 최측근 격인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국무총리와 국무조정실장의 관계는 현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가 국무총리 시절 자신의 밑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한 홍남기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천거한 것으로 요약될 정도로 요직 중의 요직이다.

황교안 대표 시절에도 사무처의 요직인 전략기획부총장을 역임했는데, 사무총장이었던 한선교는 바지사장으로 평가받고 추경호가 사무처의 실세라는 평이 많았다. 이후 역시 대표와 가까운 박완수가 사무총장이 되고나서야 사무총장의 권력이 되돌아왔을 정도.


4.2. 원외[편집]



4.2.1. 전직 국회의원[편집]


계파를 상당히 많이 옮긴 것치고는 황교안 체제에서 중용받았다. 21대 총선에서는 낙선. 최근에는 다시 유승민과 가까워졌다.

나경원 원내대표 퇴임 후 황교안 측에서 원내대표로 밀었던 인물이다.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심재철에 밀리고 총선에서도 낙선했지만, 탁월한 지역구 관리와 서울 험지에서 선전한 점 등이 고평가를 받아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는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친박출신 범친황으로 분류되었으나 20대 대선 경선에서는 홍준표를 지지했다.

이른바 민현주가 공천받은 것을 번복하면서 공천받은 호떡공천, 막장공천의 주인공. 황 대표 시절 내내 대변인직 라인에서 요직을 맡았으며, 황 대표 측이 꼭 공천을 줘야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민경욱은 부정선거론을 펼쳤고, 결국 인천 연수구 을 당협위원장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에는 본인 때문에 컷오프 된 민현주가 차지하게 되었다.[10]


4.2.2. 그 외 정치인[편집]


우병우 사단의 핵심인물이며, 황교안의 대학 후배로 대구고검장을 지냈고 황교안이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21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을 했다.

울산 남구청장이며,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 지역균형발전위 부위원장으로 김석기 의원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계파색은 약한 편.


5. 구성원[편집]


황교안은 2019년 1월에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2월 전당대회 이후 3월부터 당대표직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스스로의 지지기반이 튼튼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는 법조인 출신이라 당내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직과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관료 출신 인사들과도 접점이 생겼다.

황교안이 박근혜정부 시절 국무총리였던만큼 친황을 친박의 한 갈래로 보기도 하지만, 비박계 의원이 친황인 경우도 있어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원내대표 나경원부터가 친박의 지지를 받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뚜렷한 계파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거 미래통합당 당권파인 만큼 당 지도부의 어지간한 사람들을 친황으로 넣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구 총선 토론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비방해 물의를 빚은 차명진 전 의원도 한때 친황에 가까웠지만, 북한과의 정상회담 지지를 이유로 "황교안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후에는 친김문수계로 활동하고 있다고 쓰였는데 애초에 차명진은 김문수계였던 사람이었다.[11]

친박계였던 윤상현 의원은 친홍-친무 연합과 같이 행보를 하다가 친황으로 전향했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 황교안과 견원지간인 김무성[12]과 보수통합 모임에 참석하며 행동을 같이 하는 등 의원으로써 대표에 대한 립서비스를 한 것이지 계파로 들어갔다고 보긴 어렵다.[13]

친박 중진들을 날리는 과정에서 친박 중진 9인 중에서 조원진, 서청원, 홍문종은 2017~2019년에 이미 탈당했고 원유철, 정갑윤, 유기준[14]은 총선 불출마로 결론을 냈다. 황교안과 썩 껄끄럽던 정우택은 지역구를 옮겼는데 윤상현은 아예 낙천시켰다. 그런데 친박 신인 중 김선교민경욱, 이만희는 경선 없이 공천을 받았다.

달성군이 지역구인 경제관료 출신 추경호 의원이 친황의 대표격으로 일컬어지며, 황교안이 창원지방검찰청장 시절 창원시장이었던 박완수 의원,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박맹우 의원, 자유한국당 대변인 전희경 의원, 자유한국당 전 대변인인 민경욱 의원, 당대표 비서실장인 이헌승, 김도읍, 김명연 의원, 2019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정점식 의원[15], 김선교[16]가 있으며 원외 인사로는 정미경 최고위원, 윤갑근 변호사[17], 김형남 전 민주평화당 대변인, 심오택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당원 활동 없이 황교안의 직접 영입으로 여의도연구원장이 되었던 성동규 교수, 미래통합당 당무감사위원회 위원장 배규한 교수 등이다.

그 외에도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던 시절 법무부 고위간부로 있던 사람들도 범친황계로 볼 수 있는데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18],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19],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20][21], 국민수 전 서울고검장[22], 김현웅 전 법무부장관[23], 진경준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24], 정인창 전 부산지검장[25],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26], 황철규 전 부산고검장[27], 오광수 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28], 김영준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29], 한무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30], 정동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31] 등이 있다.

그 외에도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중간간부로 있던 사람들인 정수봉 전 광주지검 차장검사, 조상철 전 서울고검장, 유일준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김봉석 전 서울고검 검사, 장영섭 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전승수 전 광주고검 검사, 이태승 전 부천지청 차장검사, 최기식 전 서울고검 송무부장, 심우정 서울동부지검장, 백재명 부산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 이선욱 전 춘천지검 차장검사, 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조종태 광주고검장, 양요안 대구고검 검사, 이주형 울산지검장, 권순정 전주지검 차장검사, 이창수 대구지검 제2차장검사, 안범진 전 안산지청 차장검사, 박소영 광주고검 검사, 윤희식 전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 안성수 광주고검 검사, 정승면 전 대구고검 검사, 김철수 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전성원 전 부천지청장, 김한수 전 울산지검 차장검사, 이준식 서울고검 검사, 김대현 전 서울남부지검 형사2부장, 김신 울산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 이성규 서울고검 검사, 박철웅 대전고검 검사, 배용찬 서울고검 검사, 정희원 서울고검 검사, 한찬식 전 서울동부지검장, 안미영 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장, 신호철 전 대전고검 검사, 김지헌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김광수 전 부산지검 제1차장검사, 오인서 전 수원고검장, 전형근 전 인천지검 제1차장검사, 배용원 서울북부지검장, 김남우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오영신 전 서울남부지검 형사1부장, 주상용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 정진우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검사, 김태우 전 대전지검 특수부장, 나찬기 전 천안지청장, 이정환 안산지청장, 차경환 전 수원지검장, 김준연 전 의정부지검 차장검사, 강지식 서울고검 송무부장, 홍승욱 서울고검 검사, 김양수 부산고검 차장검사 등도 범친황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을 했던 고흥 전 인천지검장, 윤장석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범친황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황교안이 법무부장관 시절 정점식 당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과 통진당 해산TF를 총괄할 때 함께 한 김석우 서울고검 검사, 변필건 창원지검 인권보호관, 민기홍 전 인천지검 공안부장, 이희동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교수, 진동균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32], 신대경 대검찰청 공판1과장, 이혜은 서울중앙지검 공보담당관, 최대건 수원지검 공판부장도 범친황으로 분류된다.

또 황교안이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있을 때 휘하 공안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도 범친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박청수 전 정부법무공단 이사장[33], 서창희 변호사[34] 등도 범친황계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황교안이 성남지청장 시절 성남지청의 차장검사를 지낸 정성복 전 KT 부회장도 범친황이라고 볼 수 있다.

황교안이 창원지검장 시절부터 형성한 창원 인맥으로는 유상범 의원, 박완수 의원 등이 있고 이 외에도 창원지검 차장검사로 있던 한승철 전 대검 감찰부장[35], 창원지검 공안부장으로 있던 오자성 전 서울고검 공판부장, 창원지검 특수부장으로 있던 한동영 전 서울고검 검사도 범친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경우에도 황교안이 국무총리 시절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같이 일한 경우가 있으므로 범 친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5.1.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편집]


결국 황교안 대표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진영 사상 최악의 패배와 함께 사퇴한데다가 상당수의 인사들이 낙선하면서 계파의 존립이 불안하게 되었다. 21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인사는 박완수, 정점식, 이헌승, 김도읍, 김석기, 추경호 정도에 21대 총선에 신규로 들어온 인사로는 안병길, 최형두, 강민국, 유상범, 김선교, 최춘식 등이 있다. 이마저도 이 인원들 모두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높은 농촌 지역구나 영남 지역구 인사들이다.

물론 범친황이라고 볼 만한 인사들이 원내에 존재하지만 계파의 와해 가능성이 적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박완수, 정점식, 이헌승, 김도읍, 김석기, 곽상도, 추경호 외에는 대부분 초선이거나 당내 영향력이 적은 편이고, 친황계가 친박과 완전히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라서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6. 같이보기[편집]


  • 친박[36]
  • 친무
  • 친홍
  • 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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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교안이 주창한 민부론 문서 참고.[2] 이때 강성친박 태극기부대의 정치적 구심점인 조원진 의원, 홍문종 의원이 제외되면서 친황이라는 계파의 독자성이 강해졌다.[3] 김종인은 뒤늦게 영입되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4] 정우택, 김태흠 제외. 그나마도 정우택은 친황 윤갑근에게 자기 지역구에서 탈락당하고 옆 지역구로 강제로 지역구를 옮겨야 했다.[5] 박형준의 경우, 총선 직전의 중도확장 의도로 인하여 황교안 측의 요청을 받고 다시 복당하기도 했다.[6] 비슷하게는, 의령군수 선거에서는 친홍계인 오태완 후보가 당선된 것을 들 수 있다.[7] 친홍 역시 강경보수로 분류되는데, 친홍은 배현진 혼자 26.7%를 득표한 반면, 친황과 친박은 후보 모두를 합쳐 25.7%였다. 물론 최고위원 득표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기는 하다.[8] 창원시 성산구같은 접전성향에 지역조직이 강한 성향인 지역구는 거물의 바람보다는 지역조직세가 더 강하게 작용하므로 당연한 선택이기는 했다. 하지만 강기윤 본인의 논란때문에 담 총선에선 이재환에게 내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9] 정병국유승민, 홍준표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에 속하나, 차기 대권과 당권을 노릴 수 있는 중진이다. 게다가 유승민과 가까운 친유 핵심인사인데다, 상도동계, 친이 핵심 타이틀이 있어 황교안에게는 껄끄로운 존재일 수 밖에 없다.[10] 친유민현주와 같이 컷오프된 정병국의 사례는 오히려 홍준표, 김태호의 사례와 더 비슷하다. 황교안에게는 홍준표, 김태호와 더불어 정병국이 본인 대선가도에서는 껄끄러웠던 존재였다. 게다가 정병국친유계 핵심인데다 상도동계, 친이 출신 중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11] 차명진이 부천시 소사구에서 재선을 한 것도 김문수의 후광덕분이었고 김문수가 거의 잊혀지면서 독자행보를 하다가 다시 김문수가 극우행보를 펼치며 중앙정계를 기웃거리자 다시 자신이 모시던 김문수에게 되돌아간 쪽에 가깝다.[12]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칭적인 유승민황교안의 사이보다 김무성황교안의 사이는 더 험악하다. 친유가 엄청난 혜택을 본 것은 아니지만, 민현주, 정병국 컷오프 사건을 제외하면, 친유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합당 명분, 당내 중도화, 친박 5적 컷오프 명목으로 어느 정도 지분을 할당받기는 했다. 일례로 몇몇 인사들이 짤리긴 했다만 김웅, 유경준 등의 친유 인사 중 일부는 오히려 공천에서 혜택을 보기도 했다. 황교안새로운보수당을 합당하려는 이유도 보수세 확장 등이 있었다. 황교안과 반목을 반복한 친홍 인사도 계파 수장인 홍준표만 컷오프 당하고, 송언석, 배현진, 윤재옥 등 핵심인사는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친무계김학용, 황보승희나 일부를 제외하면 강석호, 박명재 등 거물들도 컷오프 당할 정도다. 21대 총선 이후 김무성김웅 당선자를 부산 사무실에 초청해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면서 극우 유튜버황교안을 동시에 비판하였다. 실제로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김무성이 출마하지 않으면 친무유승민, 오세훈, 원희룡, 홍준표 중 한 명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이 것도 황교안에게는 매우 불리한 것이다.[13] 윤상현김무성에 대해 욕설한 것 때문에 사이가 멀어진 것 아니냐는 의문도 있지만, 윤상현김무성에게 이 사항에 대해 사과했고, 김무성도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화해했다.[14] 물론 동생인 유경준이 공천받았지만, 유경준은 친유에 속한다. 사적으로는 유승민, 유기준, 유경준 모두 계파나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친한 편이다.[15]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는 검사 출신 정치인으로, 황교안이 창원지검장 시절 정점식이 창원지검 통영지청장이었다. 순수 친황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6] 친유계정병국이 컷오프 당할 뻔 했는 자리를 차지했다. 즉 황교안이 없는 상태에서 정병국과 경선을 하면 패배할 상황에서 황교안이 구출해준 셈이다. 유승민정병국이 가깝다는 걸 안 황교안이 대권에 방해되는 이 들을 쳐낸 셈이다. 다행히도 유승민 지역구인 동구 을은 친유계인 강대식이 공천되었지만, 정병국 지역구는 김선교가 가져간 셈이다.[17] 황교안의 대학 후배(성균관대) 이며 우병우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검사 출신 변호사이고 2019년 7월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18]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검찰국장과 법무부차관을 모두 거쳤다. 우병우 사단이기도 하다.[19]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기획조정실장과 법무부 법무실장을 했다. 다만 우병우가 워낙에 싫어해 우병우가 민정수석이 된 이후에는 한직을 전전해야 했다. 따라서 우병우 사단 멤버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유상범, 정점식, 윤갑근 등이 핵심멤버로 있는 친황계의 일원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20] 돈봉투 만찬 사건검찰청 내부 성추문에 연루된 그 사람 맞다. 직권남용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상고심에서 파기환송으로 풀려났고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에 변호사로 개업했다.[21]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인권국장, 기획조정실장, 검찰국장 등을 모두 했다. 우병우 사단이기도 하다.[22]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차관이었다.[23]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일때 역시 법무부차관으로 있었다.[24] 다만 이 사람은 넥슨 게이트에 걸려들면서 현재는 구속수감되어 있다. 본래 이 사람은 범 친이계 쪽에 가까웠다.[25]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실장을 했다.[26]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역시 법무실장을 했다.[27]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을 했다.[28]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을 했다.[29]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했다.[30]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했다.[31]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했다.[32] 윤석열 사단의 대표적 인물인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처남이기도 하며, 진형구 전 대전고검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검사 성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지금은 구속되어 있다.[33] 2013년 12월, 서울남부지검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함. 황교안이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시절에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이었다.[34] 황교안이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시절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었다.[35] 2010년 초에 스폰서 검사 사건에 연루되어 사표를 냈다.[36] 황교안이 성시경 인사 대표격 중 한 명이라 그런지 구 친박 정치인 상당수가 황교안 곁에 붙어있으면서 범 친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다만 황교안이 자유한국당 대표를 역임하며 당권을 잡은 후 시간이 경과하자 친박과 거리가 점차 벌어지면서 모든 친박이 친황은 아닌 상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