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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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 칠접선(斑竹 漆摺扇).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0호 선자장 엄재수 작품.


1. 칠접선이란?
2. 칠접선의 역사
3. 특징
4. 칠접선의 종류
4.1. 겉대 치장에 따른 구분
4.2. 속살에 따른 구분
4.3. 선두 모양에 따른 구분
4.4. 종이에 따른 구분
4.5. 기타
5. 구입
6. 관리 방법
7. 관련 문서




1. 칠접선이란?[편집]


칠접선()은 접었다 폈다 하는 쥘부채의 일종이다. 쥘부채는 대나무의 속살로 부채의 살을 만들고 한지를 붙여 접었다폈다 할 수 있게 만드는 접부채를 뜻한다. 칠접선은 이 쥘부채 속살에 옻칠을 한 것이다. 내구성, 방수성, 살균성의 특징을 가진 옻칠을 부채에 칠해 견고함을 더하고 여러 가지 부수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합죽선보다 훨씬 오래 전에 발생했으며 점점 그 모습이 화려해져 조선시대 후기에 절정을 이루었던 대표적인 부채다.



2. 칠접선의 역사[편집]



문헌에서 옻칠한 접부채에 대한 고려시대 기록은 없고, 한국에서 속살에 옻칠을 한 칠접선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시기는 태종실록 10년 경인 4월 26일이다. 기록에 의하면[1] 접부채에 전부 칠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속살 및 종이에 모두 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합죽선이 영정조 시대 이전 기록이 없는 것과는 달리 칠접선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등장한 오래 된 부채다.

쥘부채는 보통 대나무의 속살로 부채의 살을 만드는데, 대나무의 속살이 무른 탓에 부채의 살이 쪼개지기 쉬웠다.[2] 따라서 장인들은 옻칠을 부채의 속살에 올려 내구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살균성, 방수성 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옻칠은 당시에는 귀한 물품이어서 조정에서는 부채 속살에 옻칠한 부채 제작을 엄금하기도 하였다.

귀한 옻칠을 올린 만큼 겉대에도 다양한 치장을 하여 매부리바다거북(대모)의 등껍데기, 우각, 반죽 등의 화려한 재료를 덧대 부채 소유자를 과시했다.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영조정조시대에는 이 칠접선의 화려함이 극에 달하여 별의별 부채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가 국립박물관이 소장한 대모홍접선이다. 겉대를 매부리바다거북의 등껍데기로 전부 감싸고 속살에 옻칠을 하고 홍지를 붙인 사치품이다.[3]

일제 강점기에서 겨우 살아난 합죽선과는 달리 칠접선은 찾는 이도 적어지고 암울한 시대를 견디지 못해 그 맥이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칠접선이라는 단어는 문헌상에만 존재하는 유물이 될 뻔했다가, 무형문화재의 끈질긴 복원 노력으로 인해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



3. 특징[편집]


단순히 일반 접선에 속살 옻칠하였다고 하여 칠접선이 되는 게 아니다. 상기에 서술하였듯 당시에 귀한 옻칠로 속살에 칠하였기 때문에 겉대에도 그만큼의 화려함을 과시했다. 따라서 민선이나 딱선 같은 싸구려 접선에 옻칠한다 해서 칠접선이 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칠접선 유물 중 민선 같은 밋밋한 접선에 옻칠을 한 유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합죽선과 마찬가지로 부채 허리는 부풀어 오르다가 고리에서 좁아지고 다시 머리로 가서 넓어지는 곡선이 흐르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다만 합죽선은 대나무 겉껍질을 맞붙여 만드는 특성상 그 곡선의 폭이 크지 않은데, 칠접선은 속살 하나로 만드는지라 쉬운 변형이 가능해 울룩불룩할 정도의 극단적인 곡선을 가지는 작품도 존재한다. [4]

대나무 속살로 만드는 특성상 가벼우면서도 다루기 편해 정갈한 합죽선과는 달리 매우 실용적이면서도 화려했다.[5] 실제로 한 손으로 접었다 폈다 하기 매우 쉽다. 다만 이런 가벼움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속살이 많아 얇은 종이를 써야 하는 합죽선과는 달리 두꺼운 종이를 쓸 수 있는데, 이 위에 옻칠이나 기름칠을 바르면 종이의 섬유질이 끊어지지 않고 내구성이 견고해져 그만큼 종이를 오래 쓸 수 있다. [6] 종이가 견고해지면 더욱 접고 펴기 용이해진다.

4. 칠접선의 종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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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접선은 대나무 속살을 이용해 부채 속살을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올리므로, 대나무 겉껍질을 이용해 부채 속살을 만드는 합죽선이 아니다. 따라서 합죽 기법을 제외한 모든 기법이 전부 들어가므로 부채의 종류 또한 많고 화려하다.[7]


4.1. 겉대 치장에 따른 구분[편집]



  • 다절선(多節扇) - 겉대에 마디가 많은 부채. 죽절선이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마디 수가 많을 수록 고가로 치지만[8] 이것은 맹종죽이라고 하는 대나무의 일종으로 변죽을 만들면서 생긴 경향으로,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맹종죽은 마디가 많이 생기며, 매우 무른 성질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열을 가해 겉대를 굽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펴지려는 성질 때문에 오래 쓰면 부채의 변죽이 다시 직선으로 돌아가면서 모양이 흐트러지는 단점이 있다. 대체적으로 많이 생산되는 물건인 만큼, 장인에 따라 그 품질이 천차만별이며, 조악한 품질의 부채는 대나무의 결이 거꾸로 일어나 손에 찔리기도 한다. 다만 맹종죽보다 훨씬 견고한 분죽대로 치장했다면 유물처럼 오래 사용해도 흐트러지지 않고 정갈하다.[9] 다만 이 쪽은 마디 수가 적다는 취향 문제가 있기도 하다.

  • 반죽선(斑竹扇) - 전주의 특산품인 반죽(斑竹)으로 만든 부채. 이 대나무는 겉대가 마치 매부리바다거북의 등껍데기처럼 얼룩덜룩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에도 반죽이 있으나 그 무늬가 국산과는 다르다. 왕실에 진상한 특산품이라고 하며 현재 유물이 존재하며 만기요람에 해당 기록이 존재한다.[10]

  • 외각선(外角扇) - 겉대에 뿔을 사용한 부채. 보통은 소뿔을 이용하여 우각선(牛角扇)이라고도 한다. 한우의 뿔은 짧아서 쓰기 힘든 탓에 물소의 뿔을 쓰는데 조선시대에는 물소의 뿔이라는 재료가 워낙 희귀하다보니 아무나 쓰지 못했다. 주로 장군 등의 무신(武臣)이 썼다고 한다. 앞서 서술한 조선왕조실록의 정조실록에 해당 내용이 등장한다.

  • 내각선(內角扇) - 겉대 안쪽에 뿔 및 기타 재료를 덧댄 부채. 현재 유물이 존재한다. 이 내각은 선두까지 이어져 있어 겉대의 모양새를 잡아 주는 역할도 한다.

  • 나전선(螺鈿扇) - 겉대에 흑칠을 한 뒤 나전을 붙여 만든 부채. 유물이 존재하며 해당 유물에는 끊음 기법으로 수복다남자(壽福多男子)라고 씌여 있다.

  • 대모선(玳瑁扇) - 바다거북의 일종인 매부리바다거북의 등껍데기로 만든 부채. 국립중앙박물관에 대모홍접선(玳瑁紅摺扇)이라는 유물이 존재한다. 부채 중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며 주로 문신(文臣)들이 썼다고 하나, 매부리바다거북의 등껍데기가 워낙 귀한 재료라서 이것을 부채에 올리면 왕의 귀에 들어가는 모양이라 제대로 자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11]

  • 화각선(華角扇) - 겉대에 뿔을 사용하였으나 뿔 안 쪽에 정교하게 그림을 그렸다. 유물이 존재하나 해당 유물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으며, 재료 또한 진짜 소뿔이 아닌 플라스틱을 사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당시에는 플라스틱을 발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귀한 재료였을 것이다.

  • 어피선(魚皮扇) - 문헌에는 나오지 않지만 유물은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다소 기이한 부채. 최근 몇몇 선자장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제작했다. 가오리나 상어의 껍질로 만든 어피선은 굉장한 단단함을 자랑한다고 한다.


4.2. 속살에 따른 구분[편집]



  • 백접선(百摺扇) - 문헌에 등장하는 정확한 명칭은 오십죽백첩선(五十竹白貼扇)이며[12] 오십살백접선으로도 부른다. 왕의 직계만이 쓸 수 있었으며 살 수가 50개인 부채를 가리킨다. 말로만 전해진 전설 속의 부채였으나, 2015년 그 유물이 첫 공개된 바 있다. 처음에는 왕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돈 많은 양반들도 썼다고 하며, 공개된 유물은 왕이 신하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유물에서는 합죽선이 아닌 칠접선 형태로 남아 있다.


4.3. 선두 모양에 따른 구분[편집]



  • 어두선(魚頭扇) - 선두의 모양이 물고기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끝이 약간 뾰족하다.

  • 사두선(巳頭扇) - 선두의 모양이 뱀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어두선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선두의 끝이 약간 뭉실하다.

  • 승두선(僧頭扇) - 선두의 모양이 스님(중)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 승두선은 그 특유의 둥그런 모양 덕분에 펴지는 각도가 좁은 부채일 때 비교적 손이 편안하다고 한다.

  • 유환선 (有環扇) - 선두 사북에 고리가 있는 부채. 보통 부채는 고리가 달려 있고 여기에 선추를 달아 쓴다.

  • 무환선 (無環扇) - 선두 사북에 고리가 없는 부채.


4.4. 종이에 따른 구분[편집]



  • 유칠선(油漆扇) - 종이를 기름에 먹인 부채. 그냥 기름을 먹이는 게 아니라, 특수하게 제조한 가공유를 바른다. 그 기름 제조 비법은 이미 실전되었다.

  • 협변선(狹邊扇) - 부채를 폈을 때 종이가 펴지는 각도가 180도 미만인 것. 대체적으로 140도 이하를 협변선으로 친다.

  • 광변선(廣邊扇) - 부채를 폈을 때 종이가 펴지는 각도가 180도 이상인 것. 흔치는 않지만 가끔 보인다.


4.5. 기타[편집]



  • 대륜선(大輪扇) - 별선(別扇)의 일종으로 차바퀴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햇볕가리개 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최근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무형문화재들이 접부채에 대한 특징을 정리하는 중이다. 조선시대 말기 이전까지의 합죽선은 겉대에 마디대 치장을 하였고 속살에 옻칠한 칠접선은 겉대에 말아싸기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조선시대 말기로 가면서 이 기법들이 혼재되어 칠접선 기법이 합죽선에도 적용되곤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중인 갓피홍지합죽선이 그 좋은 예이다.


5. 구입[편집]



아쉽게도 칠접선은 무형문화재 유물 재현 작품으로만 나와 있어 구입이 용이하지 않으며 가격도 상당히 비싸다. 현재 엄재수 선자장이 제작 중이다.


6. 관리 방법[편집]



  • 비를 맞히지 않는다. 대나무와 종이로 이루어진 부채의 특성 상 당연한 것이다. 옻칠이 올라가 있어 합죽선보다는 견고하지만 그래도 비를 오래 맞히면 대나무 사이로 물기가 스며 들어가 부채가 상할 수 있다. 겉의 물기를 닦고 바로 수리를 맡기는 것이 좋다.

  • 차 안 같은 뜨겁고 밀폐된 공간에 두면 부채가 열기에 틀어질 수 있으므로 직사광선을 피해 보관한다.

  • 모든 접부채가 그렇지만 부채를 거꾸로 피면 속살에 금이 가거나 부러진다.

  • 부채는 주인의 손을 타는 물건이므로, 함부로 남에게 주지 않는다. 부채를 모르는 사람은 소리꾼들처럼 멋있게 편답시고 겉대 한쪽 끝을 잡고 땅바닥에 떨어뜨리듯 편다거나 부채를 거꾸로 펴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 부채를 거친 표면에 문지르거나 높은 곳에 올려놓지 않는다. 잘못하면 속살 옻칠이 전부 벗겨진다.

  • 함부로 개조하지 않는다. 칠접선 같은 작품 부채를 데려가는 사람들이 어쭙잖게 부채를 내 맘대로 해보겠답시고 종이에 이상한 칠을 올린다거나 고리를 바꾼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수리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으며, 작가의 허용치를 넘어서는 행위다.[13]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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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한 부채(漆扇)를 금하였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상언(上言)하기를, “전칠(全漆)은 이어대기 어려운 물건인데, 각전(各殿)에 해마다 바치는 접선(摺扇)에 모두 칠(漆)을 써서 국가의 용도를 허비하니, 금후로는 진상(進上) 이외에는 모두 백질(白質)을 사용하여 국가의 용도를 절약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2] 대나무 겉껍질을 두 개로 합쳐 만드는 합죽선은 겉껍질 특성 상 워낙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해 그런 문제가 별로 없었다.[3] 현재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중이라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는 없다.[4] 그런 유물들은 마치 근육질 남성처럼 마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5] 다만, 왕의 유물들 중에는 이게 쓸 수 있는 부채인가 싶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부채들도 존재한다. 그런 부채들은 대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거나 신하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인 경우가 많다. 또한 화려한 치장이 이것저것 들어가면 합죽선보다 훨씬 무거워지기도 한다.[6] 합죽선의 종이는 얇아서 그 위에 옻칠이나 기름칠을 바르면 1년 정도 못 되어 종이가 부러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바스라진다. [7] 무형문화재 최고급 작품 중 합죽선의 속살 위에 옻칠을 한 극악한 제작 난이도를 자랑하는 합죽칠선이라는 부채가 있다. 가격도 그에 걸맞는 어마무시함을 자랑한다. 유물이나 문헌에서는 발견된 적 없는 부채이므로 장인의 창작품에 가깝다. [8] 대략 20절 이상[9] 조선시대 다절선 유물의 겉대에는 맹종죽이 없고 전부 분죽대를 썼다.[10] 오십죽백반첩선(五十竹白斑貼扇), 사십죽백반첩선(五十竹白斑貼扇) 등으로 나오는데 여기의 반(斑)이라는 글자가 바로 반죽을 의미한다.[11]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39권, 영조 10년 9월 24일 병신 2번째기사, 이때에 홍치기가 대모(玳瑁)로 부채를 만들어 윤유(尹游)에게 선사하였으므로 서명형이 논핵하였는데, 사문하자 마침내 그런 사실이 없는 것으로 귀결(歸結)되었다. 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홍치기라는 사람이 정말 대모선을 만들지 않았는지, 대모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았는 지는 정확히 모르는 일.[12] 백첩의 백(白)은 종이가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 종이임을 의미한다. 일백 백(百)이 아니다.[13] 부채의 외관을 바꾸려는 경우는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종이에 글씨를 올리거나 선추를 바꾸는 것에 한정해야 작품이 손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