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스텐 얀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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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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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카르스텐 얀커
Carsten Jancker

출생
1974년 8월 20일 (49세)
동독 그라베스뮐렌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신체
193cm / 체중 93kg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선수
TSG 비스마어 (1981~1986 / 유스)
FC 한자 로스토크 (1986~1991 / 유스)
1. FC 쾰른 (1991~1992 / 유스)
1. FC 쾰른 (1992~1995)
SK 라피트 빈 (1995~1996 / 임대)
FC 바이에른 뮌헨 (1996~2002)
우디네세 칼초 (2002~2004)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2004~2006)
상하이 선화 (2006)
SV 마테르스부르크 (2006~2009)
국가대표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4경기 10골 (독일 / 1998~2002)

1. 개요
2. 선수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4. 은퇴 이후
5. 여담



1. 개요[편집]


독일의 전 축구선수.

1990년대 후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독일의 스트라이커였지만 위르겐 클린스만, 올리버 비어호프와는 달리 국가대표팀에서의 임팩트가 워낙 떨어졌던데다 시대에 뒤쳐진 전통적인 타입의 선수다보니 인지도 면에서는 크게 떨어진다.[1] 그래도 90년대 후반 바이에른의 3연속 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우며 바이에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 당시 지오반니 에우베르와의 투톱은 유럽 어디에 내놓아도 꿇리지 않을 파괴력을 지녔었다.


2. 선수 시절[편집]


1992년 쾰른에서 데뷔한 얀커는 임대를 갔던 SK 라피트 빈에서 크게 성장했는데, 리그에서 27경기 7골, 유럽대항전에서는 7경기 6골이나 넣으며 팀을 UEFA 컵 위너스컵 결승까지 이끌었다. 파리 생제르맹 FC에게 결승에서 1대0으로 패했으나 얀커는 득점왕을 차지하며 여러 클럽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2.1. FC 바이에른 뮌헨[편집]



결국 96/97시즌을 앞두고 조반니 트라파토니의 바이에른에 합류했다. 첫 시즌 바이에른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2년간 빼앗겼던 마이스터샬레를 되찾아왔으나 얀커는 매우 부진했다. 그러나 97/98시즌부터 00/01 시즌까지는 매 시즌 두 자리수 골을 기록하며 완벽한 주전으로 발돋움한다. 특히 97/98 시즌을 앞두고 합류한 지오반니 에우베르와의 투톱은 유럽 최강 중 하나로 화력을 뽐냈고, 팀은 97/98시즌 포칼 우승, 98/99, 99/00, 00/01 시즌 3연속으로 분데스리가를 제패한데다 하이라이트로 2000/01 시즌, 유럽대항전 라이벌들을 차례로 꺾으며 25년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빅 이어를 들어올린다.

특히 얀커의 골들은 98/99시즌, 00/01 시즌 바이에른이 결승으로 진출함에 있어 레알 마드리드 CF전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전 등 중요한 순간마다 특유의 떡대 플레이로 꾸역꾸역 중요한 골들을 넣어주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발렌시아 CF와의 결승전에서는 1대0으로 밀리던 와중에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를 슈테판 에펜베르크가 성공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 결국 바이에른이 우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정통파 스트라이커다보니 플레이스타일이 매우 단순했고, 그를 이용할 수 있는 공격루트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00/01 시즌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중요한 순간마다 우겨넣으며 그 피지컬 플레이가 통했으나 2001년 여름 자신과는 정반대의 타입인 발기술을 갖춘 유망주 클라우디오 피사로가 영입되고 로케 산타 크루즈의 성장으로 경쟁자가 늘어나며 선발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게 되고, 01/02 시즌 에우베르가 리그에서만 17골을 몰아넣는 동안 얀커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게 된다. 그나마 독일 국가대표 소속으로는 월드컵을 앞두고 지역예선에서 꾸준히 득점을 했기에 어떻게 어떻게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는 승선했으나 본선에서도 8대0으로 대승을 거둔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의 골이 그의 유일한 득점이었고, 이후 클로제와 뇌빌, 슈나이더가 주전으로 낙점되며 벤치를 지키다 끝난다. 결국 2002 월드컵을 끝으로 다시는 국대에 소집되지 못한다.

바이에른에서의 6시즌간의 총 성적은 225경기 출전 79골 37 어시스트.
리그에서는 143경기 48골을 기록했다.


2.2. 이후[편집]


2002년 월드컵 이 후 세리에A의 우디네세로 이적을 한다. 사실 우디네세는 이미 얀커의 비슷한 타깃형 스트라이커인 올리버 비어호프가 대박을 쳐주었기 때문에 서로간의 윈원의 영입이 될 줄 알았으나 30경기에 달랑 2골만 넣는 최악의 폼으로[2] 우디네세 역대 최악의 영입이 되어버렸고 이 후 04/05시즌을 앞두고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자국리그에서 부활을 노렸으나 두 시즌간 리그 30경기에서 4골밖에 넣지 못할 정도로 부진했고,[3] 팀은 강등당했다. 특히 두 번째 시즌에는 전반기 5경기 출전 0골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거둔 끝에 재정 위기의 카이저슬라우턴은 고연봉 늙다리 선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1월 이적시장에서 중국 슈퍼리그로 쫓기듯 방출되었다. 중국에서의 6개월 생활도 적응 실패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나마 선수생활 말년은 오스트리아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마무리했다. 06/07 시즌에 SV 마테스부르크에 합류해 3시즌간 86경기 26골 12도움[4]을 기록했고, 08/09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클럽통산 426경기 133골 55도움
국가대항전 34경기 10골

도합 프로 통산 460경기 143골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형적인 독일스러운 공격수로, 193cm의 장신에 근육질 몸매로 이루어진 강력한 피지컬이 주무기였다. 비슷한 스타일의 독일 타겟맨인 올리버 비어호프가 커리어 대부분의 골을 머리로 넣었다면, 얀커는 (신장에 비하면) 헤더 골이 많지는 않았지만 큰 키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볼컨트롤 능력과 침투 능력을 지닌데다 오른발 슈팅 임팩트가 엄청나게 강력해서 말 그대로 어느 위치에서든 골을 넣을 능력이 있었다.


4. 은퇴 이후[편집]


은퇴 후 바로 지도자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지역 클럽 SC 노이지들 1919에서 유소년 감독 및 공격수 코치를 담당했고, 이후 자신의 프로 커리어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SK 라피트 빈에서 유소년 코치 등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는 오스트리아 리그의 클럽 SV 호른[5]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


5. 여담[편집]


경기 중 그의 거대한 물건을 노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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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한 FC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전성기 이후 저니맨생활을 하며 은퇴 직전 오스트리아에서의 몇 시즌을 빼면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보니 말 그대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2] 컵대회 포함해도 달랑 3골(..)[3] 그나마 DFB-포칼에서 3경기 7골을 몰아넣기는 했다.[4] 리그 76경기 21골[5] 여담으로 구단주가 한국에도 친숙한 일본인 축구선수혼다 케이스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