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구텐베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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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정치인, 돌격대 및 친위대 지도자이다.
2. 초기 행적[편집]
에센에서 크루프 공장의 창고관리자의 아들로 태어난 구텐베르거는 상업학교 졸업 후 1921년부터 1년 반동안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1923년에 나치당에 입당해 동시에 돌격대에 가입했다. 뮌헨 폭동의 실패로 나치당이 금지된 후 에센에서 회사원이 된 구텐베르거는 나치당이 재건된 후인 1925년 12월 15일에 복당하며 돌격대에도 재입대했다. 에센지구 지도자로 1926년까지 활동한 구텐베르거는 연설을 잘 하기로 이름났었는데 이에 나치당 에센지구의 연설자가 되었다. 1929년 12월부터 1933년 9월까지 에센, 서 뒤스부르크, 베젤의 돌격대 지휘관을 역임한 그는 1932년 11월 24일에 프로이센 주의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33년 7월 31일의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구텐베르거는 1937년까지 돌격대의 각 여단장을 역임한 후 5월 1일에 뒤스부르크의 경찰서장으로 취임했다. 1939년 11월 14일에 에센 경찰서장으로 취임한 구텐베르거는 동시에 에센의 방공지도자로도 촉탁되었다.
3. 친위대 행적[편집]
1939년 10월 25일에 친위대로 전속한 구텐베르거는 1940년 6월 1일에 친위대 상급지구 서부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5월 1일에 친위대 서부지구 경찰지도자로도 임명된 구텐베르거는 1944년 8월에 공공보안위원으로 10월 1일에 제6군관구 전쟁포로 책임자가 되어 11월에 베어볼프 감찰관으로 임명된 후 1945년 3월 25일에는 연합국에 의해 임명된 아헨 시장 프란츠 오펜호프의 암살에 관여하기도 했다.
4. 전후 행적[편집]
1945년 3월 11일에 뒤셀도르프를 벗어난 구텐베르거는 5월 10일에 영국군에게 체포되어 1949년 10월 22일에 열린 함부르크의 영국군 재판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후 1953년 12월 11일에 석방되었다. 그 후 도매상으로 일하던 구텐베르거는 1961년 7월 8일에 에센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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