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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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
Carlos Ghosn|كارلوس غصن|カルロス・ゴーン

파일:카를로스 곤.png

출생
1954년 3월 9일 (70세)
브라질 혼도니아 주 프로투벨류
국적
[[브라질|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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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레바논|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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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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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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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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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국적)
신체
170cm
학력
에콜 폴리테크니크(X1974)
에콜 데 민 드 파리
가족
할아버지 비샤라 곤
아버지 조르지 곤
어머니 호지 제타
전처 리타 코르다히
후처 캐롤 나하스
1녀 캐롤라인 곤
1남 앤서니 곤
2녀 나딘 곤
3녀 마야 곤
소속 기업
미쉐린 (1978~1996)
르노 (1996~2019)
닛산 (1999~2018)
미쓰비시 (2016~2018)
종교
기독교 (동방 가톨릭)
주요 상훈
KBE, 남수포장, 대십자상(이사벨 1세 훈장)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브라질에서 태어난 레바논프랑스인 기업인. 민족은 레바논계, 출신지는 브라질이다보니 프랑스, 브라질, 레바논 3개 국적을 가지고 있다.


2. 생애[편집]


원래 그의 가문은 동방 가톨릭 교회의 한 부류인 마론파를 믿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식민 통치를 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지자, 그의 할아버지는 13살 때 혈혈단신으로 브라질의 혼도니아로 이주했다. 그래도 가문 대대로 수완이 좋았는지 할아버지부터 당장 고무 무역, 농산물 도소매업, 여행 사업을 비롯해서 여러 기업을 거느렸고 4남 4녀를 두었다.

곤은 다이아몬드 무역업자로 일했던 조르지(Jorge)와 나이지리아 출생 레바논인인 제타[1] 사이에서 4명 중 유일한 아들로 태어난다. 2살 때 비위생적인 물을 마셨다가 질병에 걸리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했다가 질병이 나아지질 않자, 1960년 베이루트로 다시 이주했다.[2]

예수회 소속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71년부터 프랑스로 와서 학업을 이어나간다. 학력으로 보듯 수학물리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하나 그의 관심사는 사학, 지리학, 언어학이었다고 한다. 그랑제콜을 마치고 나서 경제학 박사 학위 과정을 밟으려고 했으나, 미쉐린 측에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일할 diplômes d'ingénieur 보유자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1978년부터 직장인의 길을 걸었다.

1990년부터 북미 지사 사장을 맡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1996년 당시 르노 회장이었던 루이스 슈웨체르[3]가 파워트레인 운영 및 제조 담당 부사장 자리를 제안하면서 18년 가까이 일한 미쉐린을 퇴사하고 르노로 이적한다. 한편 제너럴 모터스포드로부터 이적 제의가 있었으나 모두 거부하였다.

일본에서 평가는 양극화를 띠고 있다.[4] 닛산을 회생시키기 위해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닛산 전체 근로자의 15%인 2만여명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3백여개가 넘는 대리점을 폐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5]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동안 일본 내 기업 최고경영자의 연봉 중 가장 높은 금액 수준인 10억 엔대 연봉을 받게 되는데, 정리해고된 노동자들과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 곤이 최고경영자로 재임한 시절과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난 이후의 성과 및 주가를 비교해보면, 그만큼 받아가는 게 당연할 정도로 닛산은 순식간에 막장으로 변해버렸다. 닛산과 미쓰비시의 구조적 병폐가 그토록 심각했고, 카를로스 곤의 구조조정은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던 것.

프랑스에서도 일본처럼 입지가 좋은 편이 아니다. 2020년에 탈세 혐의로 프랑스 검찰이 체포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에, 프랑스로 갈 수 없는 처지다. 일본에서 극비탈출한 이후, 현재 가족들과 함께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다.


2.1. 체포와 도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카를로스 곤 구속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8년 11월 19일 "유가증권 보고서 허위기재와 특별배임 등"의 혐의로 일본 검찰에 의해 체포되어 구속됐다가 2019년 3월 10억엔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후 한 달여 만에 재구속된 뒤 추가 보석 청구 끝에 5억엔의 보석금을 내고 4월에 풀려나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2019년 12월 31일 일본을 극비리에 탈출하여 레바논으로 도주하였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의 보안 결함을 이용하였다.


3. 기타[편집]



  • 성씨는 '나뭇가지'를 뜻하는 아랍어 ghusn(구슨)에서 유래했으며, Ghosn(고슨)은 레바논 구어체 발음을 반영한 표기이다. 한편 프랑스어에서는 어말에서 sn 발음을 못하기 때문에 s를 묵음 처리해서 '곤'이라고 읽는데, 다른 비아랍권 사람들도 대부분 그의 성을 이렇게 읽는다. 출처

  • 가족으로는 1남(앤서니) 3녀(나딘, 캐럴라인, 마야)가 있다. 결혼을 2번 했다. 1984년에 당시 19살이던 레바논 출신의 리타와 결혼했으나, 2010년 이혼하고 2016년에 미국 시민권자면서 같은 레바논 출신인 캐럴[6]과 결혼했다. 한편 앞서 언급한 체포 사건이 전처의 폭로로부터 비롯했다는 주장이 있다.

  • 진한 눈썹을 가지고 있어 무척 매서운 인상이다.

  • 2020년 8월, 레바논에서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가 일어났는데, 카를로스 곤 본인과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그의 자택이 폭발 현장으로부터 5㎞ 떨어진 곳에 있어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 이후 조선일보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


4. 대중매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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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적 이름은 호지(Rose)지만 가족들은 모두 제타라 불렀다고 한다.[2] 그의 아버지는 레바논에서 신부를 살해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복역하다 1975년 브라질로 이주했다.[3]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그의 작은할아버지다. 아버지는 IMF 총재를 역임했던 피에르 폴 슈웨체르[4] 재계에서는 스타 경영자, 노동계에서는 프랑스에서 온 악마라고 하면서 각각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5] 일본은 지금도 전세계에서 종신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인데, 카를로스 곤은 이런 일본의 종신고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외국인이라 종신고용이 생소했을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최고경영자 입장에서 종신고용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을 것이다. 회생이란 명분을 내세워 구조조정을 밀어붙였으니 종신고용을 박살낸 셈.[6] 원래 성은 나하스, 전 남편 사이의 자식 셋이 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