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바에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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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바에르가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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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2 MLB 올스타전 로고.png 파일:1993 MLB 올스타전 로고.png 파일:1995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92
1993
1995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3 ~ 199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2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로베르토 알로마
(토론토 블루제이스)

카를로스 바에르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척 노블락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Carlos_Baerga.jpg

카를로스 오베드 바에르가 오티스
Carlos Obed Baerga Ortiz

출생
1968년 11월 4일 (55세)
산후안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푸에르토리코 기.svg 푸에르토리코)
신체
180cm / 74kg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85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SD)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0~1996)
뉴욕 메츠 (1996~1998)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9)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9)
삼성 라이온즈 (2001)
보스턴 레드삭스 (2002)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3~2004)
워싱턴 내셔널스 (2005)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인디언스의 중심타자
2.2. 침체 그리고 한국행
2.3. 메이저리그 복귀
2.4. 연도별 성적
3. 은퇴 후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내야수. 전성기 때는 2루수였지만 선수 말년에는 1루수3루수로도 출장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인디언스의 중심타자[편집]


1985년 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한 바에르가는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해가다 1989년 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었다. 1990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데뷔해 3루수와 유격수를 맡았다. 주전 2루수로 자리잡은 1992년부터 바에르가의 포텐셜이 폭발하면서 로저스 혼스비 이후 70년만에 한 시즌 20홈런 200안타 100타점 이상을 기록한 2루수가 되었다. 이후로도 매서운 타격을 보이면서 1992년, 1993년, 1995년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1993년과 1994년에는 2년 연속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1993년에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좌우타석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견인했지만, 이 해 월드시리즈의 마지막 타자가 되면서 우승반지를 차지하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1996년 7월 말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 후 메츠에서도 주전 2루수 활동하다가 1998년 시즌 후 FA가 되었다.


2.2. 침체 그리고 한국행[편집]


1999년 초 바에르가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지만 무릎부상으로 정규시즌 시작 전에 방출되어 신시내티 레즈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방출되었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다시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클리블랜드로 다시 복귀했지만 트레이드 전에 비해 떨어진 기량으로 별다른 활약을 못했다.


2000년에는 아예 쉬다시피 했고, 2001년 독립리그 팀에 입단했다. 그러던 중 7월 삼성 라이온즈가 바에르가를 영입했다. 벤 리베라를 허리 부상으로 퇴출하기로 한 후 때마침 주전 2루수였던 정경배도 부상을 당했기 때문. 당시로서 바에르가의 영입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는데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데다 훌리오 프랑코처럼 나이가 든 후에 온 것도 아니고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이었다.[1]

물론 부상 때문에 한국에 오기 전에는 독립리그에서 활동했을 정도로 성적이 하락세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당시 한국야구 수준을 고려하면 맹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바에르가의 정규시즌 성적은 39경기 120타수 33안타 타율 .275 4홈런[2] 17타점 18득점으로 이름값에 비하면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이름값이 있는 선수인만큼 한국시리즈에서는 부활해주리라 기대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도 부진했다.

다만 바에르가의 한국 성적은 다소 감안해야 할 부분이 시즌중에 돌연 와서 굉장히 적은 131 타석만을 소화한 결과라는 점이다. 낯선 나라에 갑자기 와서 전혀 모르는 투수들을 상대로 기록한 성적인데 적응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좀 더 가지고 스프링캠프부터 함께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냈을 가능성이 꽤 높다. 실제로 한국리그를 거쳐 다시 메이저리그에 돌아가서도 몇 년간이나 뜨거운 성적을 유지했을 정도로 기량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은퇴시즌까지도 준수한 성적을 낸 야구 천재로 한국에서는 적응과 스몰샘플등 여러변수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바에르가가 실패하면서 살로몬 토레스, 발비노 갈베스, 훌리오 프랑코와 묶어[3] 삼성은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할 때 커리어만 보고 영입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여담으로 이 당시 바에르가는 MLBKBO에서 선수로 뛰고 있었을 때 모국 푸에르토리코에 윈터 리그 팀을 하나 소유하고 있던, 말 그대로 선수 겸 구단주였었다. 실제로 삼성 시절 잠깐 같이 뛴 투수 임창용2002년 말 포스팅을 통한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밝히고 ML 구단 쇼케이스를 위해 바에르가가 구단주로 있는 푸에르토리코 윈터리그의 팀에서 잠시 뛴 적이 있다.


2.3. 메이저리그 복귀[편집]


2002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한 바에르가는 지명타자와 대타로 주로 활약했고, 2003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된 후 .343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1년 재계약을 맺었고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지만 메이저리그에서만 활동했다. 시즌 후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푸에르토리코 대표팀 선수로 참가하지만 2006년 시즌을 앞두고 팀을 구하지 못하면서 은퇴했다.


2.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0
CLE
108
312
.260
81
17
2
7
47
81
0
1991
158
593
.288
171
28
2
11
69
80
3
1992
161
657
(2위)
.312
205
(2위)
32
1
20
105
92
10
1993
154
624
(5위)
.321
(5위)
200
(공동 2위)
28
6
21
114
105
15
1994
103
442
.333
139
32
2
19
80
81
8
1995
135
557
.314
175
(5위)
28
2
15
90
87
11
1996
100
424
.267
113
25
0
10
55
54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6
NYM
26
83
.193
16
3
0
2
11
5
0
1997
133
467
.281
131
25
1
9
52
53
2
1998
147
511
.266
136
27
1
7
53
46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9
SD
33
80
.250
20
1
0
2
5
6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9
CLE
22
57
.228
13
0
0
1
5
4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1
삼성
39
120
.275
33
3
2
4
17
18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2
BOS
73
182
.286
52
11
0
2
19
17
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3
ARI
105
207
.343
71
13
0
4
49
31
1
2004
79
85
.235
20
2
0
2
11
6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5
WSH
93
158
.253
40
7
0
2
19
18
0
MLB 통산(14시즌)
1630
5439
.291
1583
279
17
134
774
731
59
KBO 통산(1시즌)
39
120
.275
33
3
2
4
17
18
0


3. 은퇴 후[편집]


은퇴 후 방송해설자로 일했고 2013년 2월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푸에르토리코 대표팀 코치로 참가했다. 2014년 1월 푸에르토리코 로베르토 클레멘테 프로야구 리그의 인디오스 데 마야구에스의 감독을 맡게 되었으며, 2016년 월드 시리즈 2차전에서는 시구자로 클리블랜드 팬들에게 모습을 다시 드러내게 되었다.


4. 여담[편집]


  • 의외로 메이저리그의 허용타자 기질이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1993년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노히트 노런을 달성할 당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바로 바에르가를 상대로 잡아냈고, 1995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바에르가의 플라이 아웃으로 만들어졌기에 애틀란타의 우승 영상이 나올 때마다 지겹게 나오곤 한다.


5. 관련 문서[편집]


[1] 1968년생으로 2001년 당시 33세(한국나이 34세)였고, 당시 현역이었던 장종훈, 김경기, 김동수와 동갑이었다. 물론 내야수 치고는 (2루수나 유격수의 경우 보통 35세 전후로 노쇠화가 찾아오며 수비 범위가 급격히 좁아진다) 나이가 좀 많은 편이긴 했다.[2] 4홈런 중 유독 1개의 홈런은 인상깊은 홈런이었다. 8월 17일 대구 한화전에서 훗날 한화 이글스 감독이 되는 한용덕을 상대로 이승엽, 매니 마르티네스에 이어 홈런을 쳤고 뒤이어 나온 마해영도 홈런을 치면서 당시 사상 최초였던 4타자 연속 홈런 기록을 함께 쓰기도 했다. 2020년 10월 22일 롯데 자이언츠가 문학 SK전에서 이대호-이병규-안치홍-한동희의 4타자 연속 홈런이 터지면서 바에르가의 이름이 다시 신문기사로 등장하게 됐다.[3] 프랑코는 부진해서 재계약 포기를 한 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1년만 활동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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