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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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연방공화국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과달루페 빅토리아
비센테 게레로
호세 마리아 보카네그라
아나스타시오 부스타만테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메호르 무스키스
마누엘 고메스 페드라사
발렌틴 고메스 파리아스
산타 안나
제9대



미겔 바라간




중앙집권공화국

제10대
제11대
제12대
제13대
호세 후스토 코로
니콜라스 브라보
프란시스코 에체베리아
발렌틴 카날리소
제14대
제15대


호세 호아킨 데 에레라
마리아노 파레데스



제2연방공화국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호세 마리아노 살라스
페드로 마리아 데 아나야
마누엘 데 라 페냐
마리아노 아리스타
제20대
제21대
제22대
제23대
후안 바우티스타 세바요스
마누엘 마리아 롬바르디니
마르틴 카레라
로물로 디아스 데 라 베가
제24대
제25대
제26대
제27대
후안 알바레스
이그나시오 코몬포르트
베니토 후아레스
펠릭스 마리아 술로아가
제28대
제29대
제30대

마누엘 로블레스 페수엘라
미겔 미라몬
호세 이그나시오 파본


합중국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세바스티안 데 테하다
호세 마리아 이글레시아스
포르피리오 디아스
후안 네포무세노 멘데스
제35대
제36대
제37대
제38대
마누엘 곤살레스 플로레스
프란시스코 레온 데 라 바라
프란시스코 마데로
페드로 라스쿠라인
제39대
제40대
제41대
제42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프란시스코 카르바할
에우랄리오 구티에레스
로케 곤살레스 가르사
제43대
제44대
제45대
제46대
프란시스코 라고스 차사로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
알바로 오브레곤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
에밀리오 포르테스 힐
파스쿠알 오르티스 루비오
아벨라르도 L. 로드리게스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라사로 카르데나스
마누엘 아빌라 카마초
미겔 알레만 발데스
아돌포 루이스 코르티네스
제55대
제56대
제57대
제58대
아돌포 로페스 마테오스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
루이스 에체베리아
호세 로페스 포르티요
제59대
제60대
제61대
제62대
미겔 데 라 마드리드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에르네스토 세디요
비센테 폭스
제63대
제64대
제65대

펠리페 칼데론
엔리케 페냐 니에토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아즈텍 · 제1제국 · 제2제국





한국인 [ 펼치기 · 접기 ]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1960년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대한민국

1963년
12월 5일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

1967년
6월 23일

육영수
영부인
대한민국

1979년
12월 7일

최규하
대통령
대한민국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1979년
12월 7일

홍기
영부인
대한민국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전두환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이순자
영부인
대한민국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김옥숙
영부인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손명순
영부인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이희호
영부인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권양숙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김윤옥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
독일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빌헬미네 뤼브케
영부인
독일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
2월 1일
2월 7일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7일
틍쿠 인탄 자하라
왕비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시리낏 끼띠야콘
왕비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5일
장제스
총통
중화민국

1968년
5월 10일
5월 18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반티에우
총통
남베트남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티마이아인
제1부인
남베트남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하마니 디오리
대통령
니제르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아이샤 디오리
영부인
니제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
엘살바도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영부인
엘살바도르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오마르 봉고
대통령
가봉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조세핀 봉고
영부인
가봉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세네갈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영부인
세네갈

1980년

5월 11일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

1980년

5월 14일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1981년

6월 25일
수하르토
대통령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5일
시티 하티나
영부인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9일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1년

6월 29일
틍쿠 아프잔
왕비
말레이시아

1981년

7월 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1981년

7월 6일
이멜다 마르코스
영부인
필리핀

1981년

10월 13일
로드리고 카라소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1년

10월 13일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영부인
코스타리카

1982년

5월 10일
사무엘 도
국가원수
라이베리아

1982년

6월 7일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
자이르

1982년

6월 7일
보비 라다와
영부인
자이르

1982년

8월 25일
압두 디우프
대통령
세네갈

1982년

12월 21일
케난 에브렌
대통령
터키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대통령
수단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영부인
수단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1세
국왕
요르단

1983년

9월 10일
누르
왕비
요르단

1984년

4월 9일
하사날 볼키아
국왕
브루나이

1984년

4월 21일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카타르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
감비아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치렐 자와라
영부인
감비아

1985년

5월 17일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대통령
파키스탄

1985년

5월 20일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6년
9월 4일
4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국왕
영국

1986년
9월 4일
4월 16일
보두앵
국왕
벨기에

1987년

4월 7일
아메드 압달라
대통령
코모로

1988년

11월 3일
이스칸다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8년

11월 3일
자나리아
왕비
말레이시아

1989년
11월 3일
11월 20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서독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다니엘 미테랑
영부인
프랑스

1990년

6월 21일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대통령
파라과이

1990년

11월 5일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
헝가리

1991년

9월 13일
아즐란 샤
국왕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13일
투안쿠 바이눈
왕비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25일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
멕시코

1992년

8월 13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
과테말라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피델 발데즈 라모스
대통령
필리핀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이멜리타 마르띠네즈 라모스
영부인
필리핀

1994년
11월 7일
11월 21일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대통령
칠레

1994년
12월 5일
12월 9일
레흐 바웬사
대통령
폴란드

1995년
2월 7일
2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1995년
2월 21일
3월 6일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
독일

1995년
3월 28일
4월 3일
젤류 미테프 젤레프
대통령
불가리아

1995년
6월 26일
7월 7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
9월 26일
9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아르헨티나

1996년
7월 23일
9월 4일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
과테말라

1996년
7월 23일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
브라질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스페인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왕비
스페인

1996년

11월 26일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국왕
말레이시아

1996년
12월 10일
12월 15일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우크라이나

2000년
2월 22일
3월 3일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
이탈리아

2000년
2월 22일
3월 6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프랑스

2006년

3월 12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알제리

2007년

3월 26일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2007년

3월 28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카타르

2009년

5월 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카자흐스탄

2009년

11월 12일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페루

2012년

5월 30일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스웨덴

2012년

11월 21일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아랍에미리트
2018년
10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2019년


하랄 5세
국왕
노르웨이

2021년

6월 14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스트리아
2021년

6월 16일
펠리페 6세
국왕
스페인

2021년

6월 16일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
스페인
2021년

8월 25일
이반 두케
대통령
콜롬비아

2021년

9월 21일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
슬로베니아




멕시코 합중국 제60대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고르타리[1]
Carlos Salinas de Gortari

파일:데고르타리.jpg
출생
1948년 4월 3일 (75세)
멕시코 멕시코시티
학력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재임 기간
제60대 대통령
1988년 12월 1일 ~ 1994년 11월 30일
서명
직업
정치인
국적
[[멕시코|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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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스페인|

스페인
display: none; display: 스페인"
행정구
]]
(2021~)
정당
경력
기획예산부 장관
제60대 멕시코 대통령 (1988 - 1994)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1988년 대통령 선거
5. 대통령
6. 퇴임 이후
7. 여담



1. 개요[편집]


멕시코의 정치인으로, 1988년부터 1994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인물.


2. 생애[편집]


멕시코시티에서 경제부 장관을 지낸 라울 살리나스 로사노의 아들로 태어났다. 3세 때인 1951년 집에서 식모로 일하던 마누엘라에게 총격을 가해 죽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의 충격이 컸는지 이후로 이 사건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 시절에는 제도혁명당의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동시에 승마를 하고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1971년 팬아메리칸 게임에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1970년대에는 미국하버드 대학교에서 유학했다. 관료 출신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아이에다가 미국 유학파라는 점은, 멕시코에서는 남다르게 여겨지는데 살리나스는 그러한 이 중 하나였다.


3. 정치 활동[편집]


이러한 출신 배경은 살리나스가 유능한 인재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1982년 새로 취임한 미겔 데 라 마드리드가 그를 방송예산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개시했다. 당시 나이가 단 34세였는데, 이러한 나이에 장관으로 오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뛰어난 수재였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다만 이러한 경험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살리나스는 국회의원을 한 번도 지낸 적이 없었는데, 이는 훗날 대통령이 되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애초에 정치세계에는 갈등과 비난, 공세 등이 비일비재하며 아무리 잘해도 적이 꼭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인데, 원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에 익숙하다보니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잘 아는 편이다. 그런데 관료 성향이 강했던 살리나스는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가 후에 대통령에 오르고도 각종 문제점을 야기하는 원인 중 하나라 되었다.

원내 경험이 있으면 그런 것들에 익숙해지는 것 뿐 아니라 일단 최소 4년 정도는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각 정당에 아는 얼굴이 생기고 인맥이 생기면서 원내정당들이 선을 넘어서서 함부로 대하는 일이 적어지는 일도 있다. 당장 어떤 정당 정권이든 상관없이 한국에서도 국회의원 출신인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일반인 출신 장관 후보자 청문회의 청문회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는것이 하나의 예다. 실제로 임기 내내 얼굴을 맞대고 협의를 하면서 사람 자체가 익숙해짐과 동시에 협상을 하면서 연결고리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 하지만 국회의원 경험이 없다면 그냥 타인이고 공격대상일 뿐이다.


4. 1988년 대통령 선거[편집]


1987년 10월 5일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 장관직을 사임했다. 곧바로 경선에 뛰어들어 제도혁명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는데, 이 때 나이가 단 40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연소 대통령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전에 대통령을 지낸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39세에 취임했기 때문. 여하튼 당시만 해도 제도혁명당의 1당 독주체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살리나스가 가볍게 낙승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제도혁명당이 우경화하면서 이에 반발한 진보/좌파 성향의 인사들이 탈당해 국민민주전선을 창당하면서 상황이 불안하게 흘러갔다. 사실 1982년 대선에서 국민행동당파블로 에밀리오 마데로 후보가 처음으로 15% 이상을 득표해 미미하게나마 불안조짐이 보이기도 했으나, 그래도 당시에는 제도혁명당이 가볍게 낙승했으므로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도혁명당에서 이탈한 세력들이 급격하게 몸을 불리면서, 일각에서는 60%는커녕 과반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민민주전선이 라사로의 아들인 콰우테목 카르데나스를 후보로 선출하면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원내 경험이 없는 순수 관료 출신인 살리나스는, 상원의원 출신에다가 미초아칸의 주지사를 지내 행정 경험이 풍부했던 콰우테목에 비해 불리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때문에 대선은 박빙으로 흘러갔다.

투표 결과 살리나스는 50.7%를 득표해 바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거꾸로 콰우테목은 31.1%만을 득표했다. 그러나 이 선거는 문제가 많았는데, 초기 개표에서는 콰우테목이 우세를 보였고 개표 중반까지도 이 기세가 이어졌는데 정권교체가 예고된다는 소식에 당황한 제도혁명당에서 의도적으로 정전을 시킨 후에 투표함 바꿔치기 전술을 통해서 자당 후보를 50%를 겨우 넘는 득표율로 당선을 확정지었다. 후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마드리드 대통령은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이 선거가 부정선거였음을 시인하고 당시에 사용되었던 투표용지는 1991년에 전부 소각했다고 밝혔다.

비록 부정선거로 이기긴 했으나 개표 초반까지 야당 후보가 우세했던 것은 멕시코에서 엄청난 일이었고 부정선거로 엄청난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또한 부정선거로 이겼다해도 야당이 하원 500명 가운데 238명을 차지하여 이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야당의 눈치를 봐야했다. 이것이 이후 선거개혁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야권의 세가 넓어지는 계기도 되었다.


5. 대통령[편집]


재임 초 살리나스는 경제 전문가로서 국부에 가까울 정도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선거 전부터 미국NAFTA 협정을 체결할 것을 공약했고, 이를 바탕으로 임기 말인 1994년 1월 1일 미국과 FTA를 정식으로 체결한다.

그런데 이게 독이 되고 말았다. 당초 살리나스는 이 협정이 멕시코 경제에 플러스 요소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된 것. 안 그래도 제도혁명당이라는 단 하나의 정당이 60년 이상을 장기집권하면서 그로 인한 악습들이 지속되어 왔는데, 나프타는 여기에 결정타를 가하고 만 것이다.

결국 전국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살리나스 정권은 급격하게 레임덕이 걸리고 말았다. 애초부터 턱걸이 과반 득표로 당선된 것만으로도 살리나스 정권은 정통성이 매우 취약했으며, 이런 상황에서 커다란 실책을 벌였으니, 정권 붕괴는 시간 문제였다.

또한 수많은 멕시코 국영 기업들을 민영화하였는데, 정경유착으로 헐값에 인수 받아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만이 이득을 보았다. 대표적으로 카를로스 슬림도 이때 국영기업을 인수 받아 빌게이츠와 세계 최고의 부자 1위를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살리나스 대통령은 퇴임후에도 그들에게 돈 받아먹으며 아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민영화의 사례중에서도 최악의 사례.

연임 제한으로 1994년에 물러났지만, 국가 혼란 사태가 발생하면서, 후임자로 내정되어 있던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후보가 선거 유세 중 의문의 암살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2] 다급해진 제도혁명당은 콜로시오의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에르네스토 세디요를 새로운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고 콜로시오 사건의 동정표가 겹쳐 세디요를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48.7%밖에 득표하지 못해 처음으로 과반 득표에 실패한다. 그리고 제도혁명당은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6. 퇴임 이후[편집]


일단 제도혁명당이 가까스로 정권은 연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살리나스는 집권 당시의 실책이 발목이 잡히면서, 결국 해외로 망명해야만 했다.

세디요 정권이 말기에 접어들면서 귀국했지만, 이는 새로 출간한 저서를 발표하려는 차원이었다. 게다가 저서를 통해 세디요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잘했다는 뉘앙스 때문에,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며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2000년 국민행동당비센테 폭스가 집권하면서, 72년의 제도혁명당 정권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2021년 스페인 국적을 취득하여 최근에는 마드리드에서 거주하고 있다. 2022년 6월에는 마드리드의 한 멕시코 식당에서 셰프와 함께 찍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는데, 몇 년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한 달 뒤 루이스 에체베리아가 100세로 사망하면서 생존한 전직 멕시코 대통령 중 가장 오래 전에 재임한 인물이 되었다. 다만 그들 중에서 최고령은 아니다. 최고령은 1942년생인 비센테 폭스이다.

7. 여담[편집]


  •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9월 25~27일 멕시코에 방문하였고 정상회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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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에 방영된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모습


  • 퇴임 후 세계무역기구 초대 총재 자리를 노렸으나 퇴임 후에 터진 각종 부패 혐의로 결국 낙마, 그리하여 WTO 초대 총재는 레나토 루지에로 이탈리아 상무장관이 지명되었다. 당시 한국은 김철수 당시 상공자원부 장관을 WTO 총재 후보로 내세웠지만 이미 지명도부터 앞의 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던지라 김철수 장관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아시아권에서조차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3]

  • 미드 나르코스: 멕시코 시즌2편에 등장한다. 어렸을 적 식모 살해사건은 고의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으나 여기선 고의로 그려진다.

  • 대통령 시절인 40대 때도 대머리인데, 최근 사진을 보면 남아있는 뒷머리도 싹 밀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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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이후 이 사건과 관련해 페데리코 베니테스 경찰서장을 비롯한 15명이 의문의 살해를 당했다고 한다. 2018년 멕시코 정부는 콜로시오 암살 사건 파일을 일반에 공개했다.[3] 당시 김철수 장관을 WTO 총재 후보로 입후보시킨 게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실패에 따른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김영삼 문민정부의 의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