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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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제1차 카를로스파 전쟁(1833~1840)
3.2. 제2차 카를로스파 전쟁(1846~1849)
3.3. 제3차 카를로스파 전쟁(1872~1876)



1. 개요[편집]



파일:스페인 제국 국기.svg

카를로스파의 상징으로 쓰였던 부르고뉴의 십자가
카를로스파 전쟁은 19세기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련의 내전과정을 말한다. 1차 부터 3차까지 19세기에 벌어졌으나 20세기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도 제4차 카를로스파 전쟁이라고 보기도 한다.

2. 배경[편집]


1833년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페르난도 7세가 사망하자 그의 후비였던 양시칠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슬하의 두 딸 중 장녀인 3살의 이사벨 2세를 왕위에 옹립하고 본인은 섭정을 하여 사실상 스페인의 실질적 권력자가 되었다. 이에 카를로스 4세의 차남이자 페르난도 7세의 동생인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를 왕위에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고, 이를 주장하며 카를로스를 왕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 바로 카를로스파였다. 카를로스파와 대척점에 있던 파벌은 이사벨 2세를 지지했던 이사벨파였고 이들은 주로 자유민주주의자들 이었다. 카를로스 파벌은 살리카법을 복구시켜 여성의 왕위계승을 금지하고 강력한 전제군주제시대의 회귀를 원했다. 이후 이사벨파와 카를로스파의 갈등이 심해져 카를로스파 전쟁(내지는 내전)이 발발되었다.

3. 전개[편집]



3.1. 제1차 카를로스파 전쟁(1833~1840)[편집]


카를로스 4세의 차남이던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자칭 카를로스 5세)를 왕위에 올리고자 카를로스파들이 일으킨 내전. 주요 전투지는 카를로스파의 본진인 카탈루냐, 발렌시아 등지였다. 카를로스파가 패배하여 몰리나 백작을 왕위에 옹립시키려는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고 이사벨 2세의 시대가 계속 이어졌다.

3.2. 제2차 카를로스파 전쟁(1846~1849)[편집]


카를로스파의 이사벨 2세를 몰아내고 카를로스 데 몰리나 백작의 아들 '카를로스 데 몬테롤린 백작(자칭 카를로스 6세)'을 왕위에 옹립하기 위한 시도로 발발한 내전이다. 전장은 카탈루냐였고 이번에도 패배하여 이사벨파 라몬 마리아 나바에스 데 발렌시아 공작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3.3. 제3차 카를로스파 전쟁(1872~1876)[편집]


1858년, 자유주의자 장군의 쿠데타로 이사벨 2세가 폐위된 뒤 해외로 추방당하자 스페인 의회는 다음 국왕으로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차남 아오스타 공작 아마데오를 옹립했다. 1872년에 선거에서 카를로스파 의원들이 폭행을 당하자 의회에서 왕위를 되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카를로스 데 마드리드 공작(자칭 카를로스 7세)'이 무력 궐기하여 내전이 개시되었다. 아마데오의 다음 국왕인 알폰소 12세에 의해 진압되었다.


3.4. 스페인 내전[편집]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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