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하인츠 슈넬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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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하인츠 슈넬링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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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Ballond'or
수상
요제프 마소푸스트
2위
에우제비우
3위
카를하인츠 슈넬링어




독일의 前 축구선수


파일:Karl-Heinz Schnellinger.jpg

이름
카를하인츠 슈넬링거
Karl-Heinz Schnellinger

출생
1939년 3월 31일 (84세)
독일국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뒤렌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신체조건
180cm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1] / 은퇴)
소속
선수
1. FC 쾰른 (1958~1963)
AC 만토바 (1963~1964)
AS 로마 (1964~1965)
AC 밀란 (1965~1974)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1974~1975)
국가대표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7경기 1골 (서독 / 1958~1971)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1. 개요[편집]


1960년대에 활약했던 독일축구선수이다. 현역 시절 본 포지션은 레프트백스위퍼였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슈넬링어는 1958년, 1. FC 쾰른에 입단한다.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이미 국대에도 데뷔한 대형 유망주인지라 쾰른에서도 곧바로 주전을 꿰찼다. 그 후 점점 실력을 더 발전해나가다가 1961-62시즌 마침내 기량이 만개하면서 팀은 독일 챔피언십에 우승하였고, 슈넬링어는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유망주가 아닌, 월드 클래스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이 후 1963년에 슈넬링어는 쾰른을 떠나 다른 팀으로 이적을 했는데, 국내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렸고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중하위권이던 AC 만토바로 옮긴다. 1963-64 시즌 33경기 2골이라는 활약을 펼쳤지만, 팀은 강등권 경쟁을 펼쳤으며 한시즌만에 AS 로마로 이적한다. 다만 로마에서는 25경기 1골로 전시즌보다 덜한 활약과 함께 팀도 그저 그런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자, 로마에서 조차 1시즌만에 자리를 옮긴다. 그리하여 뛰게 된 세리에 A팀은 AC 밀란이였다. 밀란에서는 9시즌을 뛰면서 세리에 A의 탑급 수비수로 활약하였고, 1968-69 시즌에 유로피언 컵 결승전에서 풀타임을 뛰며 AFC 아약스를 4:1로 꺾는데 공헌을 하였다. 1974년, 35살이되며 노쇠화되던 그는 선수 말년을 조국의 팀인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에서 보내게되며, 거기서 은퇴를 하였다. 은퇴 후 전성기를 보냈던 밀라노로 다시 이사가서 현재까지 살고 있다.


2.2. 국가대표[편집]


1958년, 슈넬링어는 19살이라는 나이에 그것도 프로 입단전에 국가대표에 소집되었고 소련과의 친선전으로 데뷔를 이룬다. 슈넬링어는 1958년 월드컵, 1962년 월드컵, 1966년 월드컵, 1970년 월드컵에 전부 참가하였다. 특히 슈넬링어는 마지막 월드컵에서 마지막 불꽃을 불사질렀는데, 당시 준결승전에서 서독은 이탈리아를 만났고 두 팀은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이탈리아가 서독을 4-3으로 제압하고 결승행을 확정지었다. 전반 8분 만에 선제골을 넣어 경기 내내 이탈리아가 리드했고, 교체 카드를 다 쓴 상황에서 베켄바워가 부상을 당해 독일의 패색이 짙었지만, 경기 종료까지 1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슈넬링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A매치 득점으로 동점을 만들어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연장전 초반에 역전에 성공해 기적이 일어나는가 싶었지만, 독일은 8강전 때도 연장전을 치렀고 베켄바워가 부상을 달고 뛰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탈리아의 동점골과 재역전골, 독일의 동점골, 이탈리아의 결승골이 이어지며 3-4로 석패했다. 극적인 동점 이후 연장전에서만 5골이 터진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가장 많이 지목된다.

슈넬링어가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자 이탈리아 선수들이 "너 대회 끝나고 이탈리아로 돌아올 생각 하지 말아라"라며 이를 갈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연장전에서 패배하며 그런 일은 없었고 슈넬링어는 1974년까지 AC 밀란에서 활약했다.[2] 이탈리아는 연장전에서의 체력소모 때문인지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1-4로 대패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 4번이나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에 참가 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가 현역이던 시절에 서독은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본선에 가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국가대표에서 은퇴 한 후, 1년이 지나 열린 유로 대회에 서독은 처음으로 참가하였고, 바로 우승해버린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일반적으로 레프트백으로 많이 뛰었지만 센터백이나 스위퍼와 수비형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던 당대의 명수비수이다. 그 시기 기준으로 준수한 180cm의 키와 상당히 빠른 발, 튼튼한 피지컬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며, 튼튼한 수비력에 더해 좋은 공격력까지 갖췄던 탑클래스 레프트백으로, 동시기의 자친토 파케티니우통 산토스 등의 역대급 풀백들과 비교되던 환상적인 선수였다.


4. 여담[편집]


2022년 12월 12일, 헤르만 누버가 향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1958년 월드컵에 참여한 서독 선수 중 최후의 생존자이다.[3]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1. FC 쾰른
    • 독일 챔피언십[4]: 1962




5.2. 개인 수상[편집]



[1] 레프트백, 스위퍼[2] 여담으로, 소속팀의 국가를 상대로 월드컵에서 득점을 한 선수는 슈넬링어가 최초이다.[3] 다만, 누버 선수는 명단에만 있었고 스쿼드 멤버들과 같이 스웨덴으로 이동하지는 않았다.[4] 분데스리가 출범 전, 1부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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