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야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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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 히로시
(かみ((ひろ( | Hiroshi Kamiya


파일:kamiyahiroshi.jpg

출생
1975년 1월 28일 (49세)
치바현 마츠도시[1][2]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직업
성우, 가수
신체
167cm, 53kg[3]A형
가족
양친, 남동생
배우자 나카무라 히카루[4]
첫째 딸(2011년생), 자녀(2021년생)
양성소
아오니주쿠 도쿄교(제14기)
소속사
아오니 프로덕션(1994~현재)
레이블
Kiramune
활동 시기
성우1994년 ~ 현재
가수2009년 ~ 현재
별명
카밍[5], 요정[6], 호빵맨, 병장님[7] 히로C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공식 프로필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아티스트 프로필

1. 개요
2. 활동 내역
2.1. 이력
2.2. 연기
2.3. 비판
2.4. 여담
2.5. 기타 평가
3. 인간관계
4. 취미와 취향
5. 가수 활동
5.1. 노래
6. 음반 목록
6.1. 싱글
6.2. 인터넷 한정 싱글
6.3. 정규앨범
6.4. 미니앨범
7. 파생 캐릭터
8. 별명
9. 에피소드
9.1. 2006년의 사고
9.2. 결혼
9.2.1. 옹호
9.2.2. 비판
9.3. 기타
10. 수상 경력



1. 개요[편집]


일본의 남성 성우이자, 가수. 치바현 마츠도시 출신. 소속사는 아오니 프로덕션.


2. 활동 내역[편집]



2.1. 이력[편집]


고등학교 말 무렵 연극의 재미를 알고 친구들과 참가했던 대회에서 개인 연기상을 받은 후 연극의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연극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찾아 정보를 모으다가 낡은 가게의 연극 잡지에서 아오니 학원의 광고를 보고 아오니 양성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14기생으로 입학했지만[8] 들어간 후에야 '성우 연기를 배운다'는 사실을 깨닫는 바람에 3일만에 그만두려고 생각했는데 입학금을 내준 부모님께 면목이 없어서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불량 학생이어서 학생들이 수업 후에 하는 자유 연습에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9] 지금도 당시의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때 너는 엄청 못난 성격이었지'라는 말을 듣곤 한다.

처음으로 했던 일은 드라마 CD <삼국지>의 단역으로 베테랑들을 보면서야 자신의 착각을 깨달았다고. 카미야 왈, '좌절을 이른 시기에 해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고생하게 되죠'. 일견 양성소 → 성우 기획사 입사라는 루트가 쉬워 보일 수는 있지만 사실 오디션을 따로 보기 때문에 무지무지 어렵다. 여기에 카미야가 소속된 아오니 프로덕션은 일본 성우 업계를 대표하는 기획사 중 하나이다. 들어가려면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 하기에 매우 힘들다. Voice of Prince special 인터뷰에 의하면 데뷔 직후에는 연기를 잘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부끄러운 듯 평가했다.

내레이션쪽 일을 주욱 해오다가 2000년대 이후에야 애니메이션쪽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 탓에 데뷔 직후 무명까지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낮았던 기간이 무척 길었다. 거의 내레이션 전문으로 일을 해왔고 실제로 아오니 프로덕션의 샘플 보이스도 내레이션이다. 참고로 내레이션의 경우는 방송에 따라 생방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부담감 때문에 그 시절 종종 "생방송 중이고 내 차례가 코앞인데 대본이 없어!!" 하는 3악몽을 꾸기도 했다고 한다.

고교 졸업 직후 바로 성우 일로 뛰어들고 <디지몬 프론티어> 등을 비롯해 <허니와 클로버>를 계기로 인지도가 오르기 시작한 탓에 어쩐지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호시 소이치로 등보다 한참 후배인 것으로 오인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994년 데뷔로 경력으로 치면 호시와 비슷한 셈이다. 본인은 2006년도만 해도 "에- 아직 와카테(신인 성우)에 끼는 거 아냐?" 하고 우기고 있었다. 사실 호시보다 데뷔는 비슷한데 활동이 늦은 탓에 무척 위화감이 느껴진다.[10] 참고로 카미야가 연상인 호시를 부르는 호칭은 '호시군'이다.

대다수의 성우들이 그렇지만 막 데뷔한 초기 시절에는 돈벌이가 거의 안 돼서 스튜디오까지 나가는 교통비가 벌이보다 더 들었을 정도였다. 카드 만들지 않겠냐고 권유해 억지로 카드 신청서를 썼는데 며칠 후 "댁은 수입이 없으니까 안됩니다."라는 거절의 편지가 날아오기도 했다고 하며 심지어 마루이[11]에서도 거절당한 적이 있다. 이때는 아오니 프로덕션 회사 위치가 확인이 안 돼서였다고는 하지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나머지 2시간 가량 입씨름해서 카드 발급을 간신히 허용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2005년 <허니와 클로버>의 타케모토 유타 역부터 어느 정도 주목을 받게 된다. 그 이전에도 애니메이션 활동은 알음알음 하고 있었지만 타케모토와 같은 캐릭터를 맡았던 것은 처음으로, 카미야 본인도 이렇게 평범한 소년을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탓에 발탁됐을 때 무척이나 기뻐했다고. 여러모로 전환점이 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무척 소중히 여기는 모양으로 원작자 우미노 치카와도 친할 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애착을 자주 피력한다.

그렇게 무명생활을 청산하는 듯 했으나 2006년, 후술하는 교통사고가 터지게 되고, 그 탓에 당시 캐스팅이 내정되어 있었던 <기동전사 건담 SEED C.E.73 STARGAZER>의 주역 등은 전부 다른 성우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교통사고 사건 자체의 주목성도 상당했고, 재활 후 복귀하면서 맡은 <안녕 절망선생>에서 이름이 알려지며 인지도가 급상승. 그 여세를 몰아 각종 라디오의 대히트(<Dear Girl ~Stories~>와 <안녕 절망방송> 등이 있다.) 및 티에리아 아데 역 등으로 단번에 상종가로 치고 올라오게 된다. 사고를 계기로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바뀌었다고. 본인도 <안녕 절망선생>이 성우 인생 2기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가족 관계에는 자동차 딜러를 하는 남동생이 한 명 있고 카미야 본인과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한다. 자신의 얼굴은 어머니를 무척 닮았다고. 참고로 카미야 아키라와 성이 같아 아들이 아닌가 오해받는데 아니다. 한 때 이걸 가지고 아들이라고 장난한 적도 있었지만 첨언하면 성이 같은 걸 신경쓰고 있어서 친한 사이에게는 성보다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소심한 성격으로, 지각했는데 매니저가 현장에 자기 탓으로 돌리면 뭐라고 할 거냐는 질문에 "그 자리에서는 일단 사과하고 일합니다. 일이 우선이니까. 그리고 뭐... 끝나고 이야기해보겠지요.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하고 담담한 말투로 대꾸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만일 연인이 생기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잘 싸우지는 않을 것 같다, 싸우면 끝이겠지만."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남을 허용해주는 범위는 있지만 선을 넘어가면 티는 내지 않고 마음의 거리만 천만 년쯤 멀어지는 타입인 듯. <Dear Girl ~Stories~>를 진행하며 그런 이미지가 강해졌으나 본인 曰 '유리검'이라고. 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디오 등지에서 자기를 놀리는 네타가 나오면 대부분 무반응으로 "네네~" 하고 넘겨버리는 편이며 가끔 실수 내지 흥분했을 때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 뒤집어져버리는 때와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성우 어워드 수상 이후 '성우를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 어드바이스를'이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어드바이스 같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목표로 한 시점부터 당신들은 라이벌입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배틀 로얄인 성우 업계를 대놓고 표현한 코멘트다.

본인은 2007년 한 라디오에서 "자신의 피크는 여기서 끝으로 이제 내려갈 길만 남았다."라고 말했으나 성우 어워드 06회부터 최다득표상을 연이어 받았으며, 성우 어워드 10회까지 5년 연속 독점 수상으로 결국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현재도 애니메이션, 게임, 개인 음반, 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2. 연기[편집]


맑은 미성계 성우. 특유의 카랑카랑한 간드러진 느낌의 개성적인 목소리로 발음이 무척 정확하며 알아듣기 쉽다. 프리토크나 라디오에서도 똑부러진 발음으로 말하는 편. 남성치고는 가느다란 고음이지만, 톤을 낮추면 붕 뜬 느낌이면서도 미들로우톤인 독특한 목소리가 되어 하이톤 혹은 로우톤으로 양분화된 편인 성우계에서 상당히 각별한 위치에 있다. 다만 특색이 상당히 강한 음색인 만큼 어느 배역이든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편이라 목소리 변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연극부 출신인 만큼 연극체로 연기하는 편이며, 데뷔 초 내레이션 위주로 활동해서인지 캐릭터의 모놀로그(독백)을 낭독극이나 내레이션처럼 연기하는 경향이 있다.

데뷔 초에는 내레이션 전문 성우임에도 30번씩 재녹음하는 등 고초가 많았던 데다, 몇 안 되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의 더빙 활동에서도 연기가 불안한 편이었다. 하지만 혹독한 내레이션 현장에서 구르며 수련한 데다[12] 본인의 변한 마음가짐 등이 작용하면서 연기력이 상승한 케이스. 업계에서도 높은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미키 신이치로도 최근 늘어나기 시작한 아이돌 성우를 돌려 비판하며 "진심으로 진지하게 이 일에 임하는 후배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칭찬했다. 대선배 모리카와 토시유키도 내레이션을 잘 한다고 칭찬한 바가 있으며 이러한 발언들을 보면 선배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신보 아키유키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틀이 아닌 자연스러운 연극이 가능한 사람이라며 그를 높이 평가했고 실제로 자신이 감독직을 맡은 다수의 작품에 카미야를 캐스팅 중이다.(해당 항목 참조)

사족으로 연기력이 다소 급격하게 일신한 때가 후술하는 2006년의 사고 때와 묘하게 일치하는 탓에 일본어판 백괴사전에는 사고 이후 인조인간으로 개조되었다는 서술이 있다.

캐릭터 분석에 철저한 타입으로, 배역을 맡으면 해당 작품을 전부 구입해서 읽거나 플레이한다. 심지어 단행본으로 발행되지 않은 작품은 매주 주간 잡지의 연재분까지 사다 읽을만큼 열의가 대단하다고. 실제로 애니메이션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이 맡은 캐릭터 관련 질문을 받으면, 장황하게 캐릭터관을 늘어놓는 바람에 청취자가 보낸 엽서도 못 읽고 그 회가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러한 철저한 작품분석을 바탕으로 제작진측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고 받아 연기방향을 수정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는데, 작품의 퀄리티는 높히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업계인들이 매우 신뢰한다. 이점은 2019년 1월 14일에 방영된 NHK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 일의 방식(プロフェッショナル 仕事の流儀)』에서 확인 가능하다!

대표적인 배역 중 티에리아 아데, 이토시키 노조무, 아라라기 코요미, 사이키 쿠스오 등은 특유의 내레이션처럼 연기하는 것과 딱 맞아떨어지는 캐릭터로, 업계 및 팬층의 호평과 더불어 2000년대 중후반 카미야 히로시의 인기를 정상에 올려 놓게 한 주역이 되었다.

<듀라라라!!>에서는 악역오리하라 이자야 역을 맡아 특유의 어그로 유발 연기로 큰 반향을 얻었다. 명실상부 카미야의 최고 연기로 꼽히는 캐릭터로, 하나자와 카나오노 다이스케 등 함께 출연한 성우들이 '어떻게 그렇게 진짜로 짜증 나게 연기할 수 있느냐'며 각지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기타 토모카즈는 라디오에서 카미야를 칭찬하면서, '카미야 본인이 성실한 사람인 만큼,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이자야를 연기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많았던 것 같다'고 평했다.

<기동전사 건담 00> 드라마 CD의 MISSION-2306에서는 티에리아 아데의 여성 톤을 소화했으며 무리해서 올려내는 만큼 힘들긴 한 모양인지 다시는 시키지 말아달라고 장난스레 부탁했고, 그 영향인지 2시즌에서의 여성톤 연기는 다른 여성 성우가 맡았다. 카미야가 일단 연기한 후 그걸 바탕으로 비슷하게 다시 연기해냈다고 하는데, 카미야의 연기를 그대로 썼어도 별 위화감은 없었을 것 같다고 한다.

<청의 엑소시스트 시리즈>의 메피스토 펠레스, <부르잖아요, 아자젤 씨>의 벨제부브 유이치, <백곰 카페>의 황제펭귄 역 등에서는 기존에 해왔던 배역과는 전혀 다른 톤과 연기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노라가미>의 야토는 카미야 외엔 적임자가 없다고 할 만큼 큰 호평을 받았다.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으나 마토 신지처럼 찌질이 연기도 수준급이다. UBW TVA에서의 호연에 힘입어 캐릭터가 훨씬 더 찌질하게 나온다. 은영전 DNT에서 앤드류 포크 역을 맡았는데, 포크의 찌질함을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평이 많다.


2.3. 비판[편집]


연기력이나 발음의 정확성과 억양에는 호평에 이견이 없으나, 연극체로 연기하는 카미야 특성상 특유의 지나치게 정확한 발음이 '기계처럼 딱딱하고 정형화된 연기'가 되어버린다는 평이 있다. 문제는 여러가지 타입의 배역을 맡는데 이러한 정형화된 연기는 오히려 캐릭터마다 일관성 있게 들린다는 난점이 있다. 여기에 인식하기 쉬운 독특한 음색까지 더해서 배역에 녹아들지 않고 붕 뜨고 인위적이다는 비평이 꾸준히 존재한다.

캐릭터의 독백(모놀로그)을 내레이션처럼 연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라라기 코요미사이키 쿠스오같은 캐릭터에는 장점이지만, 타케모토 유타나츠메 타카시처럼 평범하고 착한 캐릭터 역에서는 오히려 단점이 된다. 특히 나츠메의 원래 톤 자체가 밝고 평범하다 보니 그와 대조적으로 모놀로그에서 급격히 낮아지고 감정을 죽인 내레이션 톤이 나오면 위화감이 심해진다. 드라마 CD나 기타 매체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특히 애니메이션 《나츠메 우인장》 3기 방영 당시에 이러한 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았다. 이는 데뷔 초부터 한동안 줄곧 내레이션 방면에서 활동했던 이력 때문일 가능성도 높다. 사실 시즌 초기때는 오히려 호평일색이었지만 3기부터는 카미야의 연기 스타일과 음색이 나츠메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조금씩 생겼으며 시즌이 거듭될수록 호불호가 강해지고 있다.[13] 본인 스스로도 데뷔시절부터 애니메이션 녹음에 참여하기는 했었지만, 기본적으로 내레이션 현장이 주력이었던 탓에 데뷔 10년이 넘은 더블오를 녹음하던 시기에도 솔직히 애니메이션 현장이 잘 적응이 되지 않았었다고 라디오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진격의 거인》의 리바이 역에서는 전에 없을 만큼 심한 미스캐스팅 논란이 일었다. 사실 이전에도 은근히 미스캐스팅 배역이 소소하게 있었으나 크게 부각된 적이 없었다가 리바이 역으로 처음으로 부각된 셈. 첫 캐스팅 발표 후 원작 팬들 사이에서 '카미야의 목소리가 매치가 되지 않는다', '좀 더 낮고 어두운 목소리를 상상했다'며 반대 의견이 많았는데, 방영 이후 또 다시 '리바이 치고는 목소리에 감정선이 너무 드러난다'며 비판을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라디오 《카지와 시모노의 나아가라, 전파병단》에서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본인은 리바이를 냉철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연기했더니 음향감독으로부터 그건 틀렸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특히 결벽증이 있는 리바이가 피투성이가 된 부하의 손을 잡는 유명한 장면에서는 감정을 완전히 겉으로 드러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진격의 거인》의 녹음 현장은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음향감독의 지시가 엄격하기로 유명하고, 다른 출연 성우들 또한 관련 인터뷰나 라디오 등지에서 이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엄격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음향감독이 참여하지 않는 게임 수록이 있었는데, 그 지시가 없으니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을 지경이었다고. 종영된지 한참 후에야 해명하는 바람에 화제성이 식긴 했지만, 라디오 방송 이후 해당 배역에 관한 연기력 논란은 '지시에 따른 거였다'는 점을 수긍하는 방향으로 사그라들었다. 다만 그래도 '원작과 이미지가 다르다'는 의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리바이라는 캐릭터의 캐릭터성이 정립되며 리바이는 카미야 히로시의 대표작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화제작 《쿠로코의 농구》의 아카시 세이주로를 연기할 때는 발매되는 매체마다 톤이나 감정 묘사의 정도에 일관성이 없어 비판을 샀다. 그러나 미디어 믹스가 전개되는 와중에도 원작에서 계속 새로운 게 밝혀진데다, 그것도 모자라 예전에 붙은 설정이 뒤늦게 변경 및 삭제되는 등 시시각각 바뀌는 바람에 연기의 갈피를 잡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녹음에 앞서 원작자나 제작 측으로부터 어떠한 배경설명이나 사전 자료도 제공받지 못했는지, 라디오에서 '너무 밝혀진 게 없어서 정보를 얻기 위해 매주 잡지 연재분을 보고 있다', '곧 출연 분량이 생길 텐데 어쩌나 걱정하고 있다'라고 토로했을 정도. 익숙해지니까 괜찮다는 반응도 있지만, <쿠로코의 농구>가 주연은 물론이고 조연과 단역 캐릭터까지 초월캐스팅으로 유명하다보니 니지무라 슈조와 더불어 아쉬운 캐스팅이라는 평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카시 역에 다른 성우를 떠올린다고 하면 딱히 떠오르는 성우만, 카미야가 적격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여담으로 미스캐스팅이라고 비판받은 작품중에 진격의 거인과 쿠로코의 농구는 음향감독이 미마 마사후미로 같다(..) 카미야 본인에게도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스캐스팅은 누구보다도 음향감독을 필두로 제작진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흔히 연기파라고 불리는 성우들도 누구나 어느 정도 연기에 기복은 존재하고, 미스캐스팅이라고 비판 받는 캐릭 역시 존재하는 편.

요컨데 타고난 성우로서의 기본기와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음색이 독특하고 변조 음역대가 좁은데 연기 스타일의 고착화로 인해 미키 신이치로, 코야스 타케히토, 타카야마 미나미처럼 좁은 목소리 변화폭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채워넣는 스타일로 발전하지 못한 성우라고 할 수 있다.[14] 연기력으로 호평받은 작품도 있어서 마냥 발연기 성우로 단정지을 순 없지만, 그 호평받은 연기들이 기가 쎄고 성깔있는 캐릭터, 츳코미 담당 캐릭터, 독백(모놀로그)이 많은 캐릭터에만 몰려 있어 결코 연기폭이 넓다고 할 수 없다.


2.4. 여담[편집]


BL계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 하였는데 그 중 상당 수 작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을 우려한 듯, 시리즈 외에 신작 출연이 전무하다.

장르 특성상 적을 순 없지만 카미야가 출연한 BL 드라마CD들 중에는 성덕이라면 익히 알법한 유명작들이 많고 이 CD들이 하나같이 판매량면에서 대박을 쳤다.[15] 그 한 예로 2015년 2월에 발매한 모 BL드라마 CD(유사 코지, 카미야 히로시 주연)는 오리콘 데일리 차트 5위에 올랐으며[16] 그 주 위클리 차트에 랭크인, 판매량 3,300장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장르 특성상 파악되지 않는 판매 루트의 물량까지 고려하면 그야말로 초대박을 친 셈. 특히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드라마CD업계의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점을 생각했을 때 더더욱 놀라운 판매량이다.

주로 겹치는 해외 성우로는 한국의 정재헌, 김영선, 엄상현등하고 겹치는 편이며 북미의 매튜 머서하고 겹치는 편이다.


2.5. 기타 평가[편집]


자기관리가 매우 뛰어나다. 라디오 등지에서 기믹으로 잡는 가벼운 이미지, 높은 인기를 누리는데, 원래 이 사람은 워커홀릭이다. 물론 업계 전반에 소문이 쫙 퍼졌고, 오노 다이스케는 2011년 4월 방송된 Say You Young!에서 대놓고 "카미야 히로시는 일을 좋아한다."고 실토했다. <Dear Girl ~Stories~> 4화에선 골든 위크를 민폐라고 칭했을 정도다. 그 집에서 놀고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고 불안해진다고. 반쯤은 농담이겠지만 이쯤 되면 워커홀릭도 병이지만 그만큼 자기가 참여하는 작품에 일 관련으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스태프나 작가들과도 두루두루 친하다.

"성우 카미야 히로시", "인간 카미야 히로시"를 따로 본다고 본인이 증언했다. 쉽게 말해서 카미야 히로시는 공사구분이 엄격하다. 주위 성우들이 집에 찾아갔다거나 하는 얘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얼핏 오픈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막상 파고 들어보면 정말 간단한 것 외에는 뒷소문 같은 게 없다. 옛날 얘기도 일 관련해서 성우가 된 계기 등에 대해서는 언급해도 사생활에 관해서는 밝혀진 게 없는 편이다. 이게 '보이는게 다라서'인지 아니면 '너무 많이 숨겨서'인지는 알 수 없으므로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일 관련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한편 공식적으로 작품에 관한 코멘트를 할 때는 절대로 연기자의 선을 넘지 않는다. 작품에 대해 자기 해석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언급시에 백이면 백 반드시 '개인적으로는'이라든가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등의 실드를 처음부터 치고 들어간다. 이러한 점은 비단 스폰서와 관련된 발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Dear Girl ~Stories~>의 두리안 시식 편에서는 그 지옥 같은 맛을 경험하고도 "맛있지 않아(美味しくない)!"라고 했을 뿐 끝까지 '맛없다(不味い)'고는 하지 않는 등 그래서 니코니코동화에 투고된 관련 영상의 코멘트에는 "끝까지 맛없다곤 안 하네." 등의 내용이 발견되기도. 말 한 마디를 해도 무척 조심스럽게 한다. 다만 일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 다른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은근, 아니 상당히 입이 거칠 때도 있다. 업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배역을 놓고 동료들과 경쟁하는 구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나카무라 유이치 등에게 죽었음 좋겠다고 한다던지, 선배 성우들이 안 돌아가신다고 한다던지. 물론 굉장히 친한 사이로 농담처럼 한 말이니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말을 상냥하게 한다고는 보기 힘든 부분. 동료들도 이 녀석은 말을 세게 한다고 언급하는 편이다.

<안녕 절망방송>에서는 유독 발음이 꼬이는데 팬들은 '혀를 깨문다'는 뜻의 일본어 관용어구 (舌を)噛む('(시타오)카무'라고 발음)를 빌려와 噛み屋 浩史(발음은 풀네임과 동일하며 굳이 해석하면 혀 깨물기의 달인 히로시)라는 별명 아닌 별명으로 놀리고 있다. 와세다대학의 절망방송 특별편에서는 이토시키 노조무의 오프닝 멘트 중에서 "어차피 이벤트 끝나면 인터넷 거대 게시판에 카미야 쿠우키(噛みや空気, '발음 씹는 데다 공기마냥 존재감 없음'이라는 뜻)라느니 올릴 거잖아요!"라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3. 인간관계[편집]


동료 성우들 사이에서 친분 관계가 좋다. 선배들에게는 깍듯하고 후배들에게는 친절하다.[17] 일명 남자성우들의 아이돌.[18] 대인관계가 서글서글하고 게임 관련으로 엄청 강하며 시모네타에도 능한 터라 이래저래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업계인에게 대략적인 이미지는 '좋은 사람' 내지 '다정한(優しい) 사람'. 여성 성우들에게도 친절한 사람으로 평판이 좋다. 다만 도쿄 엔카운트에서 스기타 토모카즈가 밝힌 바에 의하면 여성 성우로들에겐 연애 대상으로서의 인기는 영 아닌 모양이라며 절망. 그것에 대해 제법 신경 쓰고 있다는 듯.[19] 단 남성 성우들에게는 경력과 나이를 불문하고 인기가 많다. 카미야의 자택은 이미 일부 남성 성우들의 집회소 비슷하게 변질된 상태며 오노사카 마사야의 증언에 의하면 녹음 현장에서 친근하게 음담패설을 건네는 모습 때문에 남성 성우에게만 인기가 많다고 한다.

게임동료로 맺어진 친구 사이 중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나카무라 유이치, 스기타 토모카즈, 오노 다이스케, 야스모토 히로키[20][21] 등이 있지만 그 외에도 오키아유 료타로, 오노사카 마사야, 사카구치 다이스케, 나카이 카즈야 등은 같은 회사 소속으로 함께 진행하는 라디오만 들어봐도 무척 친한 사이로 보인다.[22]

오노 다이스케와는 라디오를 같이 진행하게 되면서 친해졌다. 2007년부터 함께 진행 중인 <Dear Girl ~Stories~>는 벌써 10년차에 돌입. 라디오 하기 전까지만 해도 꽤 서먹서먹한 사이였다고 한다. 후술하는 사고 때 찾아갈 용기가 안 나서 병문안도 못 갔다고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로 안 친했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동료에게서나 팬들 사이에서나 아예 콤비 취급을 받고 있는 중. 특히 <Dear Girl ~Stories~> 4주년 이벤트 이후로는 카미야의 츤데레 이미지가 세워진 방송답지 않게 서로를 주저없이 아이카타[23]라고 칭하는 등 매우 친밀해진 모습이다. <듀라라라!!>의 이벤트 중에는 둘이서 죽이 맞아 개드립을 날리다가 나카무라 유이치로부터 "니들 질 나쁜 라디오 작작 좀 해!"라고 태클이 들어오기도 하고 아오니 프로덕션의 선배들과 카미야가 함께 진행하는 라디오에서는 카미야가 뻘짓을 하자 오노사카 마사야가 "너 언제 그렇게 바보가 됐냐?! 오노군이야? 너 그 녀석 만나고부터 완전 바보가 다 됐어!" 하고 웃음 반으로 면박을 주기도 하는 등 제대로 업계 공인이다.

'성별을 신경 안 쓰는 친구'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사이토 치와신타니 료코랑은 평범하게 이야기하고 야한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팬심으로 보는 성우 앞에서는 시선도 마주치기 힘들다고 한다. 사이토에게는 '오라버니'라고 불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크 대담 중 "오라버니는 내가 속 다 비치는 네글리제 같은 것만 입고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에요?"라고 묻자 "안 추워? 어디 아프진 않아? 하고 먼저 물어볼래."라고 꿈도 로망도 없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이토하고는 한 때 2ch에서 오랫동안 커플설 루머가 꾸준히 있었는데, 그녀가 2013년에 일반인 남성과 결혼하면서 완전히 루머가 되었다.

카네다 토모코와는 함께 패미통의 소개 방송을 진행했는데 그 느낌이 아무리 봐도 남동생과 형. 소리도 버럭버럭 질러대고 밀치기도 한다. 발렌타인 데이에 엄청난 양의 초콜렛을 받았으면서 카네다가 그 초콜릿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듣자 "데스크에 카네토모가 초콜릿 집어가려고 하면 죽이라고 말해놨어요."라고 시원시원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팬심으로 대하는 네야 미치코에 대한 동경 어린 발언과 비교하면 눈물 날 지경. 기동전사 건담 00에서 제일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가 시린 바흐티얄인데 그 이유를 "네야 씨니까, 문답무용,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당당히 외쳤다.

<안녕 절망선생>에는 히라노 아야를 제외한 위의 동경하는 성우들이 모두 출연했다.

핸드폰 메일을 굉장히 꾸준히 잘 쓰는 타입이라 인맥관리가 잘 되는 모양이다. 생일 같은 것도 다 입력해놔서 알림이 되어있다고. 그래서 오키아유 료타로의 2007년 생일날 가장 처음 문자를 보내주기도 했다.

<Dear Girl ~Stories~> 초기 오노와 피차 서먹하던 시기 핸드폰 문자로 "나도 혼자였으면 힘들었을 텐데 오노군이랑 함께라서 다행이야, 잘해보자." 하는 메세지를 보내 오노를 감동시키기도 했다고. 신타니의 라이브 이후에도 신타니가 비슷한 메일을 받았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꼬박꼬박 잘 보내주는 성격으로 보인다. 본인이 그렇게 좋다고 노래를 부르는 타니이 아스카, 미즈키 나나, 히라노 아야 등등 인기 성우의 핸드폰 번호도 알고 있지만 친분이 없는 사이는 쑥스러워서 잘 연락하지 못한다고 한다.

인기 있고 싶어서 아이폰을 샀다고 <おしゃべりやってま~す。木曜日> 193화에서 고백. 목표는 오카리나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아이폰으로 오카리나를 불거나 해외에서 누군가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하면서 인기 있는 남자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던 모양 같은데 방송 중 실제로 다운받아서 연주를 시도했다가 대차게 실패했다.

오카리나만이 아니어도 평소 담당 라디오에서 툭하면 하는 소리가 "인기 있는 남자가 되고 싶어!!"였다. 이에 야후 지식인에 "카미야씨가 인기 있는 남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팬의 질문이 올라오고 "카미야씨가 인기 없을 리가 없잖아요, 충분히 인기남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답변이 추천을 받아 선택 되기도 했다. 본인은 이 소식을 알고 "내가 인기남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인기 없습니다!!"라고 절규했다. 사실 평소에 라디오 등지에서 끊임없이 이런 식의 독신 어필을 해대는 바람에 유독 팬들이 여자 관련 소문에 민감한 편이다.[24]

다만 2012년 무렵에 들어서는 이 인기없는 남자 기믹을 활용하지 않는다. <Dear Girl ~Stories~>에서 오노가 수영복 입은 여자를 구경하러 바다에 가자고 하자 "요새 인기있고 싶다는 말 안 한지 오래됐잖아? 그냥 사진 보는 걸로 충분한 것 같아."라고 발언했으며 오노는 이 아저씨가 시들고 있다며 슬퍼했다.

사석에서 시모네타에 강한 듯하나 오샤모쿠를 제외한 타 방송에서는 잘 입에 담지 않는다. 단, 나왔을 경우 뒤로 빼지는 않는다. 라디오 오샤모쿠(おしゃべりやってま~す。木曜日)의 경우 함께 진행하는 오노사카가 정말 앞뒤 가리지 않는 시모네타를 남발하는데도 함께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일하고 있다는 걸 언제나 인식하고 있는 듯이 발언하고 위험한 네타를 건드리면서도 기분 나쁠 선은 넘지 않는 등 완급 조절을 잘해서 이래저래 자기 관리는 확실히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와시로 미유키는 카미야 히로시를 '카미야니'(카미야 오빠)라고 부른다. 바케모노가타리 아토가타리에서 사이토 치와와 이야기 하는 도중에 많이 쓰인다.# 다른 이벤트 등에서도 그런 호칭을 많이 사용한다.


4. 취미와 취향[편집]


친분 관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좌우지간 게임 오타쿠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평범하게 게임을 해왔다고 한다. 절망방송에 게임친구 스기타가 출연했을 때 90년대부터 최신을 아우르는 각종 게임 네타를 쏟아내며 40분 내내 게임 네타로 방송을 진행했다.[25] <Dear Girl ~Stories~>의 2011년 성탄제에서는 여러 명의 성우 지망생들 앞에서 갑자기 '경험'이라는 한자가 기억이 안 나서 쓰지 못하게 되자 나중에 "어릴 때부터 온갖 RPG 게임을 해오며 경험치라는 한자를 봐왔던 저로서는 당연히 쓸 수 있는 한자였지만~" 식으로 변명하기도 했다.

제이드 이벤트한국을 찾아왔을 때도 함께온 기획사 선배 미도리카와 히카루와 호텔에서 <몬스터 헌터>만 줄창 해댔다. 이후 이벤트장에서도 선배 오노사카와 <몬스터 헌터>를 하고 있는 사진이 나왔다. 또한 예전 게임기 및 컨트롤러들이 상자에 쌓인 채 집에 잔뜩 남아있고 매달 패미통을 꼭 산다고 한다.

몬헌 관련으로는 패미통 TV에서 온라인 몬헌을 실제로 플레이해볼 때 홍보차 온 게임기획자와 더불어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일하는 중인데도 드물게 푹 빠진 기색을 보여줘서 게임 오타쿠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취했다.

<아마가미> 발매 후엔 처음엔 시큰둥하다가 가면 갈수록 빠져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니코니코 동화에는 <아마가미> 관련 발언을 정리한 동영상도 있다. 한창 인기가 있던 시점에 신나게 게임 홍보를 해줘서 기어코 제작사인 엔터브레인에서 선물로 타이틀을 줬다. 참고로 이 받은 타이틀은 오노에게 전해졌고 결과는 이하생략. 덧붙여 <안녕 절망방송>의 퍼스널리티이자 친구인 신타니가 히로인 중 한명이었기에 더더욱 영향력이 강했다. (이에 스기타 토모카즈나 테라시마 타쿠마도 한 몫 했다.)

미연시 쪽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고 고개를 갸웃거렸으나[26] <아마가미> 이후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러브 플러스>로 빠져들었다. 절찬 공략 중인 여친님은 네네상. 쑥스러워서 밖에서는 당연히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집에서 또한 들릴까 말까한 크기로 더듬더듬 고백 대사를 말하면서 고양이 눈치까지 본다는 모양이다. 이노우에 마리나가 한껏 즐기면서 남자다운 목소리로 고백 대사를 읊어주는 것에 비해서 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아마가미>와 마찬가지로 <Dear Girl ~Stories~>에 퍼뜨려서 오노도 신명나게 플레이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스태프도 빠졌고 협찬인 아스키 미디어 웍스 사람들도 플레이 중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소프트 한두 개를 받는 게 아니라 홍보대사가 되어도 될 것같다. 여성팬들도 카미야를 따라 플레이하는 판국이니 여친님은 가방 속에 소지하고 다니는 모양이며 머리스타일은 지금의 네네상 그대로 OK를 했다.

나카무라에게 가려져 희미해진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건덕후이기도 하다. <건담에 타는 것이 꿈>이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집에 전 사이즈의 버체 건프라를 갖고 있으며 또한 <Dear Girl ~Stories~>에서 오노에게 생일선물로 당시 구하기 어려웠던 MG 유니콘 건프라를 받게 되자 평소 툴툴대던 태도는 어디 가고 "굉장해- 진짜 고마워." 등을 연발했다. 건담 오타쿠인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로 레이 내지는 후루야 토오루의 성대모사가 능하다. 가로드 란로랑 세아크의 오디션도 봤다.

특촬물 쪽에도 상당히 빠삭한 모양. 스즈무라 켄이치와 함께 특촬전문 라디오 방송 가면라지렌쟈를 진행중인데 자타공인 특덕인 스즈무라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의 특덕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2017년 신작 슈퍼 전대 시리즈우주전대 큐레인저의 사령관 캐릭터인 쇼 론포 성우로 출연하게 되었다.

러시안 블루종의 고양이 냥코센세(야옹선생)을 키우고 있으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주변에 정평이 나있다. 모 프리토크 시디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오노가 "여자친구가 고양이를 싫어한다면 어느 쪽을 택할 거에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정도. 이에 "애초부터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랑은 사귀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답했다.[27] 주인공을 맡은 애니메이션 <나츠메 우인장>에서 주인공 나츠메의 파트너로 냥코센세(야옹 선생)라는 이름의 요괴(본명은 마다라)가 등장하지만 고양이 냥코센세의 명명과는 상관이 없다. 단, <나츠메 우인장>이라는 만화를 알게 된 것은 팬이 "냥코센세와 같은 이름의 고양이가 나오는 만화가 있어요."라고 권해줘서였다고 한다. 평소 냥코센세의 말을 흉내내는데(ex: "냥코선생, 배고파?"라고 묻고 "배고파냐~"라고 스스로 답변하는 식.) 이 말투를 <파니포니 대쉬>의 녹음현장에서 그대로 구현했더니 고양이신 역을 맡게 되었다고 절망방송에서 말했다.

목소리에 상당히 페티시를 가지고 있다. 관련 질문에서 한결같이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으며 성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페티시를 가지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발언했으나 직업상 좋은 목소리를 항상 들으며 살기 때문에 기준 자체가 올라갔다고 생각하는 모양.[28]

일단 가슴을 좋아하는 것 같다. <듀라라라!!> 이벤트에서 하나자와 카나가 "정말로 가슴 안 좋아하시는 거 맞죠?"라고 질문하자 입을 다물어 버린다거나 "여성의 가슴은 A컵이든 B컵이든 상관없이 다 소중하다고요, 저는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같은 발언을 남기는 등 이쯤 되면 그걸 듣고 있는 신타니도 대인배다.[29] 오죽하면 절망방송에선 일본 가슴당의 국회의원 컨셉으로 기획을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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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내용은 가슴이 어쩌고 하는 발언을 선거유세마냥 녹음해다가 트럭으로 모처를 도는 것이었으며 이후 방송분에서 회상할 때 특정 스태프가 지속적으로 그러한 기획을 낸다느니 투덜거리며 떡밥으로 써먹는 걸 보면 당시엔 그저 대본에 쓰여진 것을 읽은 듯 하지만 결국 절망방송 이벤트에서는 본인이 직접 띠 두르고 나와서 연설하고 말았다. 아무튼 이러한 가슴 애호 피력은 <Dear Girl ~Stories~>나 <듣고 있어요, 아자젤 씨> 등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발언했다.

여름을 좋아하고 겨울을 싫어한다고 상당히 여러 차례에 걸쳐 얘기했다. "낮이 짧아지는 게 쓸쓸해서 싫다."고 하는데 겨울이 오는 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가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봄도 화분증 탓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은 활기찬 느낌이 들어서 좋아한다. 실제로 라디오 등지에서 여름이 끝나가는 9월만 되면 눈에 띄게 텐션이 내려간다.

Kiramune 틀을 보면 예상할 수 있겠지만 좋아하는 색은 보라색이다. 빨간색도 좋아한다고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맡은 캐릭터는 빨간색, 보라색 관련 캐릭터보다는 파란색 관련 캐릭터가 훨씬 더 많다.

블랙 선더라는 이름의 과자를 좋아해서 주변에 뿌리고 다닌 결과 팬들이 이 과자를 찾아 먹는 현상이 발생했다. 심지어 이게 발전해 <Dear Girl ~Stories~>에서는 블랙 선더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DG선더라는 과자가 출시되었다. 싫어하는 음식으로는 항상 건포도를 꼽는데 단 건지 신 건지 알 수 없는 맛에 그 진득거리는 듯한 느낌이 애매해서 먹을 수는 있는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음식은 별로 가리지 않는 편이라는데 성우여행사에 어서오세요 2에서는 중국 취두부뱀탕을, 2.5에서는 한국의 갈비탕[30]이나 거의 제대로 먹지 못하고 패배했다.[31] 모두 외국인이 먹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음식이긴 하지만 외국 음식은 별로 맞지 않는 모양. 2013년 말 들어서는 어째선지 닥터 페퍼를 열심히 영업 중이다.

2010년 흰색 아이폰 3GS아이팟 나노 2세대를 사용 중이었으나 2011년 들어서 아이폰4로 갈아탔다. 아이폰 구입 이후부터 2014년 현재까지 앱스토어의 MomentDiary(일본명 순간일기)라는 메모장 어플리케이션에 그날 그날 겪은 일을 적어서 라디오 등에서 네타로 쓰지만 위험한 내용이 많아 정작 방송에서 말할 수 있는 건 몇 개 안 되는 듯. 어플리케이션 소개. 급기야는 아이패드2도 구입했다. 2012년 들어서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공인했으나 기종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Dear Girl ~Stories~> 263화에서 Siri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아이폰4s도 사용 중인 듯. 2012년 10월 28일 방송된 <Dear Girl ~Stories~> 288화에서는 아이폰 5도 구입했다고 밝혔다. 2014년 10월 10일 송신된 오샤고를 보면 아이폰 6 또한 구입한 듯하다. 물론 그 후에 아이폰 6s도 구입하였다. 스즈무라 켄이치와 마찬가지로 애플에서 메일이 와서 눌러봤더니 이미 예약이 되있었다며 자기는 잘못한게 없다는 반응의 카미야 히로시에게 오노사카 마사야는 그런 사기가 어디있냐고 쓰지도 않을거면 사지 말라고 혼을 냈다. 참고로 오샤고 송신당시 밝혀진 카미야 히로시의 6S 이용 용도는 네코아쯔메 전용 기기. 그 후 아이패드 프로도 샀다고 한다. 대본을 볼 때나 자료를 검색할 때 좋을 거라 생각해서 예약했다고 하는데, 물론 그것도 길어야 하루, 짧으면 두세시간정도 즐겁고 말거 아니냐며 또 그런 걸 샀다고 오노사카 마사야에게 혼났다.

2012년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핸드폰은 HTC ONE으로 추정된다. DGA에 의하면 현재는 아이폰 사용자라는 것 같다.
(2014. 10. 11 MBS 아니메 페스티벌, 히라타 히로아키 트위터) 파일:attachment/카미야 히로시/Example.jpg
(HTC One 후면부) 파일:attachment/카미야 히로시/E-.jpg

애차는 폭스바겐비틀 살사 레드. 한 눈에 반해 샀다고 한다. 하지만 연비가 너무 나빠서 "기름 넣어줬으니까 대신 쪼금 달려주지 뭐..." 하는 느낌으로 탄다고 한다.


5. 가수 활동[편집]



5.1. 노래[편집]


일단 본인은 노래하는 것을 싫어한다. 사적으로 노래방에 가본 지 몇 년이 됐다는 듯.[32] 어쨌든 성우인 탓에 캐릭터송 등은 충실하게 부르고 있지만 실력이...여성팬들 사이에서 '오그라들지만 멋있어'로 유명한 키라 마사노부의 캐릭터송 'metamorphose'의 니코니코 동영상을 보면 "카미야씨, CD 낸댔는데..."라는 다소 서글퍼보이는 팬의 코멘트도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고만고만한 편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예전에 비해 실력이 부쩍 늘었다. 보통 노래 부를 때 톤이 달라지기 쉽기 마련이지만 카미야의 경우는 의식하지 않으면 매우 낮아진다. 나츠메의 경우 한껏 신경 써서 가늘게 뽑은 반면 티에리아는 묵직하게 낮춰 불러서 같은 사람이 부른 건가 싶어질 정도.

하지만 역시 인기 성우 이다보니 음반 판매는 호조. 티에리아의 캐릭터송 음반은 인기에 힘입어 오리콘차트 1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직후 8위까지 순위가 올라갔다.

결국 2009년 8월 26일. 미니앨범 「맑은 날(ハレノヒ)」 발매. 하레노히는 앨범 타이틀이고 PV곡은 'My Diary'. 메이킹 영상에 따르면 약 3분짜리 노래를 녹음하는 데 4시간 걸렸다. 음반 디렉터 말에 따르면 성우로 15년 이상 일해온 사람이다보니 보통 사람이면 발음이 자연스럽게 사그러질 부분까지 모조리 발음해 버려서 그 부분을 수정하는 데에만 굉장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일종의 직업병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의 코멘트는 "'노래 히로시' 시작했습니다! 올해 최대의 충격을 당신에게...!(「歌浩史」始めました! 今年最大級の衝撃をアナタに...!)" 최대의 감동도 최대의 즐거움도 아닌 최대의 '충격'인 게 카미야답다는 평.

이 코멘트는 이후 똑같이 카미야 히로시가 솔로로 부른 <참·안녕 절망선생> 2번째 엔딩곡 '암암심중상사상애(暗闇心中相思相愛, 어두운 가운데 마음 속으로 서로를 그리고 사랑함)'의 <안녕 절망방송> 내 CF에서 패러디 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래 히로시' 시작했습니다! 올해 최대의 절망을 당신에게...! 8월 26일 <참·안녕 절망선생> 엔딩곡 '암암심중상사상애', '맑은 날'의 그늘에 숨어 스리슬쩍 발매됩니다".

발매 결과는 암암심중상사상애가 오리콘 데일리 26위, 하레노히가 데일리 8위, 위클리 9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 Kiramune이라는 음악 레이블에 참여하게 된다. 이 레이블에서 개최하는 키라뮨 페스티벌에서 하레노히 싱글에 있는 노래를 하게 되는데 활동을 하면서 줄곧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것에 상당히 압박을 느낀 모양으로[33] 결국 이후로도 싱글과 앨범 등을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또한 레이블 내에서 이리노 미유와 함께 KAmiYU라는 유닛으로 활동 중이다.

한편 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음반 활동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상당한데 카미야가 첫 싱글 my diary를 발매하기 전부터 음반활동에 대한 조심스러움을 표출한 것이 사실이고 이후 지속되는 활동 중에도 그러한 자신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태세를 취하는 빈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특정 캐릭터의 캐릭터송이라면 연기하는 기분으로 당연히 하겠지만 개인 명의의 음악 활동은 성우의 활동 범위가 아니라는 것. 본인이 예를 들기를 '축구선수홈런을 친 경우'라고. 애초에 성우의 음반 활동 자체가 최근 성우계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성우의 아이돌화, 엔터테이너화와 아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는 분야이고 업계에서 제법 베테랑에 속하는 카미야 또한 이러한 풍토에 대해 마냥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노사카도 카미야의 싱글 발매 소식을 듣자 "너 원래 그런 거 안 하는 녀석이었잖아!" 하며 배신감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Kiramune이 소속된 곳 자체[34]가 카미야가 주로 관계되어있는 스폰서와 상당히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판매량 또한 상당하기에 좀처럼 발을 빼지 못하는 듯 하다.[35][36] 심지어는 라디오에서 자신의 앨범을 홍보하는 것조차 약간 꺼릴 정도다. 처세술이 좋다는 언급이 위에 잔뜩 쓰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지간히 싫은지 본인 명의의 음반에 대한 화제가 나올 때마다 "팬들의 반응은 감사하긴 하지만 좀...네..." 식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본인의 대응과 Kiramune의 판매 상술(점포별 특전과 호화판 출시 등)이 겹쳐 팬들 사이에서는 음반 출시 소식만 들리면 걱정과 우려의 반응이 쏟아졌다. 애초에 아무리 노래실력이 많이 발전했다고는 해도 전문적인 훈련을 한 프로 가수가 아닌 만큼 가창력에도 부족함이 많다. 일단 나오니까 사긴 산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팬임에도 아예 듣지조차 않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37]

꽤 시일이 지난 후 초반의 부정적인 태도에 비해 본인의 반응도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했다. 자신이 1년 동안 소속 레이블 kiramune의 라이브 날엔 전력을 다해서 빛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머지 364일은 대충 산다고. 2000년대 중반까지 불거졌던 부정적 인식과는 달리 이제는 성우의 음반활동 자체가 큰 거부감 없이 업계 전반에 만연해지기도 했고, 음반활동을 지지해주는 팬을 위해서 계속 활동하는 사이 나름대로 애착을 가지게 된듯하며 음반흥보와 노래 부르는걸 예전보다 싫어하지 않는듯 하다. 2015년 7월 29일 8월 26일 2개월 연속 미니앨범 발매와 동시에 2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갈아 치웠으며 2015년 9월 5, 6일 이틀간 마쿠하리 멧세 이벤트 홀에서 첫 단독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현재 남성 성우들중 오리콘차트 역대 순위에서 카미야가 1위를 기록하는 등 싱글, 앨범 모두 오리콘 TOP10에 진입을 했으며 다섯번째 미니앨범 ハレロク(하레로쿠)가 오리콘 데일리차트 1위를 하게되었고[38] 남성성우 솔로 앨범 최초로 오리콘 위클리차트 2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39]

2016년 6월 1일 첫 솔로 콘서트 1st Live "ハレヨン→5&6" LIVE DVD를 발매했다. 발매 당일에는 오리콘 DVD 차트 순위에는 안 보이다가 발매 4일만인 6월 5일 오리콘 데일리 DVD 차트 1위를 했다. 6월 8일 8,184장으로 오리콘 DVD 위클리차트 1위와 오리콘 DVD+BD 위클리차트 2위를 기록했다. 2015년 9월 첫 단독 라이브 콘서트에 이어 2016년 9월 3, 4일 이틀동안 두번째 첫 단독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2017년 10월 11일에 발매한 6번째 싱글 神様コネクション이 오리콘 위클리차트 3위를 기록했는데 싱글, 앨범 모두 TOP3에 진입 한것은 남성 성우로서는 최고 기록이다.

2022년 12월 21일 11년만에 정규 2집을 appside를 발매하여 오리콘 위클리차트 11위를 기록했다.


6. 음반 목록[편집]


자세한 정보는 카미야 히로시/음반 목록 참고.
음악 레이블 Kiramune


6.1. 싱글[편집]


발매일
타이틀
순위
2010년 12월 15일
For myself
6위
2011년 4월 6일
虹色蝶々
9위
2012년 10월 31일
Such a beautiful affair
5위
2014년 1월 29일
START AGAIN
10위
2016년 2월 24일
Danger Heaven?
8위
2017년 10월 11일
神様コネクション
3위
2021년 3월 24일
BRAND NEW WAY
6위
2023년 8월 23일
ワヲ!
12위


6.2. 인터넷 한정 싱글[편집]


발매일
타이틀
2017년 2월 15일
イズムリズム


6.3. 정규앨범[편집]


발매일
타이틀
순위
2011년 12월 14일
ハレゾラ
7위
2022년 12월 21일
appside
11위


6.4. 미니앨범[편집]


발매일
타이틀
순위
2009년 8월 26일
ハレノヒ
9위
2013년 4월 10일
ハレイロ
5위
2014년 8월 27일
ハレヨン
4위
2015년 7월 29일
ハレゴウ
5위
2015년 8월 26일
ハレロク
2위[40]
2016년 8월 24일
Theater
4위
2018년 11월 21일
TOY BOX[41]
6위
2019년 12월 25일
CUE
9위
2020년 4월 22일
TP
6위


7. 파생 캐릭터[편집]


첫번째 앨범부터 지금까지 곡 출시마다 PV를 내고 있는데 이 타이틀곡의 PV들이 하나같이 아이돌같은 포스를 자랑한다. 카미야에게 아이돌 성우라는 이명이 붙은 것은 2007년 이전이지만 특히 For Myself 이후로는 PV 아이돌이라는 명칭이 공인되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성우업계 최초로 '우타히로시'라는 파생 캐릭터(?)마저 생긴다.[42]

2차 창작 계열에서는 PV의 이미지대로 요리 잘 하고 청소 잘 하는 요정(!). 비슷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중이며 이명은 妻C(아내+히로C). 처음에는 For myself에서 따온 '셀프'가 정착 중이었으나 한 번 파생 캐릭터가 나온 이후로는 PV가 나올 때마다 곡명을 붙인 각각 다른 캐릭터가 나오고 있는 실정.

DGS에서의 발언에 의해 본인도 파생 캐릭터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오노에게 우타히로시라고 불린다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줬으며 급기야는 여성향 만화잡지 실프에 연재중인 <Dear Girl ~Stories~> 히비키의 2011년 8월 연재분에까지 등장, 그야말로 충격+웃음을 안겨줬다.


8. 별명[편집]


한국 팬들 한정으로 '카밍'.[43]이라는 호칭이 자주 쓰인다. 하지만 본토와 다른 팬들 사이의 호칭이 다들 그렇듯 일부 커뮤니티에서 정착된 호칭이다. 가장 일반적인 건 역시 카미야상.

일본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별명은 라디오 DGS에서 공모해 오노 다이스케와 짝을 맞춘 '히로C'. 니코니코 동화에서 카미야가 나오면 CCCCC... 식으로 탄막을 치는 것이 암묵의 약속처럼 퍼져 있다. 그외에는 인기에 비해 별명이 많지 않아서, 대개는 그냥 '카미야상'이라고 불린다.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 난감한 폐쇄형 사이트에서는 대명사를 쓰기보다는 그냥 이니셜을 따서 kmy(hrc)로 지칭.

신인시절 이노우에 키쿠코로부터 滑り台ちゅるりん(스베리다이츄루링/미끄럼틀 미끄덩)이라는 별명을 얻어 지금도 이노우에는 츄루링이라고 가끔 부른다.

사고 이전에 모리카와가 '피로시'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고 모리카와는 여전히 피로시라고 부른다. 그러나 마츠키 미유가 처음으로 퍼뜨린 '카미양그'라는 별명이 존재하는데 본인은 정말 싫어한다. 혹시 만난다면 괜히 기분 나쁘게 만들지 말자.

이 외에도 절망방송에서 나온 잇-시 아시아 넘버원 등이 있다.[44]

다만 어느 것 하나도 완전히 정착하진 않고 대부분의 팬들은 그냥 카미야상이라고 부른다. 본인은 대선배인 카미야 아키라 때문에라도 성보다는 이름 쪽을 불러줬으면 하는 눈치지만. <Dear Girl ~Stories~>에서 나온 히로C가 제일 많이 퍼진건 이 때문인 듯.

남성향 18금에는 阿仁谷浩樹(아니야 히로키), 여성향 18금에는 神田浩介(칸다 코스케)라는 가명으로 출연한다.


9. 에피소드[편집]



9.1. 2006년의 사고[편집]


2006년 8월 7일[45] 아주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당시 소속사인 아오니 프로덕션에서는 사고에 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고, 카미야 본인도 방송이나 인터뷰 등에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구체적인 정황은 알 수 없으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트럭과 충돌했다고 한다.[46] 사고 후 며칠간은 의식불명 상태가 지속되었고, 일시적으로 심정지까지 일어난데다(!) 부모님은 의사로부터 포기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제대로 의식을 회복하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고[47], 의식을 찾은 이후에도 6개월 동안 입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의식 회복 이후 엄청난 회복력으로 2개월 만에 퇴원했다. 이 때 뼈가 를 뚫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산다고 해도 직업 특성상 두 번 다시 성우는 하지 못할 거라는 말까지 들었는데[48], 빡센 재활과정을 거치고 완치판정을 받고 복귀했다.

야스모토 히로키블로그에 따르면 사고 후 실려가면서 "일하러 가야 돼..."라고 중얼거렸다고. 2개월만에 퇴원한 회복력에는 저 집념으로부터 기원했는지도. 어쨌든 입원해있는 동안 동료 성우인 미도리카와 히카루, 이시카와 히데오, 오키아유 료타로 등 블로그에는 걱정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더욱이 사고 이틀 전에 성우 스즈오키 히로타카가 향년 56세로 숨지고 말았다. 혼란하던 차라 성우 팬들에게는 악몽의 8월로 불렸을 정도. 스즈오키의 명복을 비는 글과 카미야를 걱정하는 글이 혼선을 빚어서 사망 확정인게 아닌가 하는 설도 떠돌았을 정도였다. 당시 걱정하는 팬들의 반응은 장난이 아니어서 아오니에 사건 보고가 올라온 직후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하였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한 이후 천 마리의 학이라든가 여러가지 선물이 쏟아져서 담당이 아닌 간호사들까지 구경 왔을 정도였다고.

의식 회복 이후 한동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다친 것 때문에 자신의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본인은 입원해있는 동안 "차라리 그때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고 좌절했다고 <B.B.B> 라디오에서 발언했다. 복귀 이후 기뻐해주는 동료들을 보며 간신히 나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코멘트. ICU 증후군[49]까지 겪었을 정도였다니 아무튼 심한 사고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사고가 알려지면서 그를 걱정하는 시선이 많이 모이고 본인도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이 사고도 여러모로 그에게 전환점이 되어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재활 기간 동안 그가 출연한 작품을 여러 성우가 대역했는데 그 예로 <기동전사 건담 SEED C.E.73 STARGAZER>의 샤무스 코저 역을 미야노 마모루가 대신 맡았다. 이외에 <허니와 클로버> 2기의 후반부 타케모토 유타의 대역이 노지마 켄지[50]가 되기도 한다. (이후 DVD에서는 추가 녹음을 통해 카미야 버전도 함께 수록되었다.) 주역을 맡을 예정이던 애니메이션 <B.B.B>는 사쿠라이 타카히로가 대역을 맡았다.

복귀를 알린 최초의 프로그램은 <B.B.B> 라디오 방송이었으며 회식 자리에도 나갔다. 라디오에서 "본편에는 나오지도 않았는데."라고 반 웃음기로 발언. <B.B.B> 출연진이며 <허니와 클로버>에서 함께 출연했던 타카하시 미카코는 회식자리에서 그를 보는 순간 울어버렸다고. 친분 탓인지 복귀 직후 타카하시가 진행하는 <미카코@파요파요>에도 출연했다.

사고 이후 박로미로부터 받은 십자가 목걸이를 계속 하고 다니고 노지마 히로후미가 준 부적을 항상 지니고 있다. 몇 년 지난 지금은 스타일링에 따라서 목걸이는 보이지 않게 목 안쪽에 걸거나 아니면 따로 갖고 다니거나 하기도 하는 모양.

<허니와 클로버> 이후 애니메이션 <B.B.B> 주역에 캐스팅 되고 건담 아스트레이의 조역으로 뽑히는 등 조금씩 발을 넓혀가나 싶었는데, 이 때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교통사고를 당해 저 두 작품에는 출연하지 못했다. 사고 경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내용은 아니나 대개 이렇게 알려져 있다.


9.2. 결혼[편집]


2016년 7월 12일 일본의 주간지 FLASH에서 카미야가 결혼 했다는 사실을 특종으로 보도했다. 아내는 만화가 나카무라 히카루라고 하며, 이미 결혼한지 제법 세월이 지난터라 5살 난 딸이 있다고.

보도 직후 소속사인 아오니 프로덕션에서는 '소속 연기자의 사생활 부분에 대해서 회사에서는 언급하기 힘들다' 라며 위의 교통사고건과 마찬가지로 노코멘트 방침을 고수했다.

이후 7월 17일 DGS 오프닝 시간을 빌려 다음과 같이 공표했다. 스태프, 스폰서의 허락을 받고 원래 오프닝을 자르고 다시 새로 녹음했다고 한다.

[코멘트 펼치기・접기]
원문

さて今日はまずはですね、僕、神谷浩史からリスナーのみなさんにお話ししたいことがありまして、

実は今回のラジオのオープニングを録り直してお届けしております。

えー、察しのいい方はお分かりかと思いますが、

今週発売になった写真週刊誌の方にですね、僕のプライベートに関する記事が掲載されました。

その事に関してご心配をおかけしたり中にはお心を痛めていらっしゃる方がいらっしゃりしたら、

まずはお詫び申し上げます。すみません。

いつもの軽口を許していただけるなら、

あの写真もっといい写真はなかったのかっていうことなんでけれども、

えー、普段ね、まああのー、声優雑誌なんかで見かける

メイクした上に修正しただいた僕に似ても似つかない

まあー、いつもの冴えないおっさんのほうが僕は見慣れてるんですけども、

それ見たら僕がプライベートなんて見せたくもないし、

喋りたくもないっていうのなんとなくわかっていたただけると思うんです。

今回ですね、思いもよらない所からそのプライベートにスポットを当てられてしまいまして、

僕としても驚いております。

僕には、品行方正ではないかもしれないし、みなさんには誇れるものではないかもしれないですけども、

プライベートというものが存在しています。

でも、僕にとっては守るべきプライベートです。

そのプライベートという土台の上に

みなさんが知っている声優の神谷浩史は存在しています。

僕個人の考え方として、プライベートをお仕事やエンターテイメントにはなるべく持込まない、

そして自分がやりたいと思うことよりも、みなさんに楽しんでもらうことを優先する。

あとは嘘はならべくつきたくない、みたいな

そういった漠然とはありますが強いポリシーがあります。

声優という職業上、自分の名前で人前に立ったりとか、ラジオなんかで発言するときも、

常に作品やキャラクターを背負っているという自負が、

そういうポリシーを持つに至った要因であることは間違いないと思いなす。

イベントなんかに足を運んでくださったりとか、

あるいはテレビ・ラジオ等にこうチャンネルを合わせてくださってる皆さんに、

その時間を楽しんでいただくことが僕にとって1番重要なことだと考えています。

その場にそぐわない行動は極力慎むということなんだと認識していただければと思うんです。

その弊害としまして、プライベートが介入する隙間がなくなって

ご報告するタイミングを逸したまま現在に至ったことが、

今回の事態を招いた一員だと思っています。

ですが、そういうポリシーを理解してくださってるスタッフと一緒に

全力でエンターテイメントに向き合ってきた結果が、

先日のEXPOなどに繋がっているんだと思います。

なのでこれからもそのポリシーを持ってみなさんに楽しんでいただける時間をご提供できるよう、

正しくエンターテイメントというものに向き合っていきたいと思っていますので、

引き続き、マイクを通じて全力でパフォーマンスすることをお許しいただければという方に思います。

僕個人として、発音する場、ブログやツイッターなどもやっていないこともあり、

今回文化放送並びにスポンサーの了承を得た上で今回お時間をいただきました。

CMが明けた瞬間からね、いつもの楽しい放送をお届けすることを約束しますので、

引き続きいつものようにお付き合いいただけたら幸いです!


번역

오늘은 일단 저 카미야 히로시로부터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사실은 이번 오프닝은 새로 녹음하여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에,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미 아실거라 생각됩니다만,

이번주에 발행된 사진 주간지 쪽에서 제 프라이빗에 대한 사진이 게재되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걱정해주시거나 마음 아파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먼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항상 (라디오에서) 하는 가벼운 말투를 용납해주신다면,

저 사진, 좀 더 좋은 사진은 없었던 건가~ 하는게 말이죠~ 뭐 평소에 성우 잡지 같은 데에서 보시는

메이크업을 받고 보정을 한 제 모습과는 닮은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뭐 그런 언제나의 볼품없는 아저씨, 뭐 저는 항상 봐서 익숙한 얼굴인데 말이죠.

에~ 그걸 보신다면 제가 프라이빗에 대해서는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는 부분도 이해해주실거라고는 생각합니다.

이번에 생각지도 못했던 곳[1]

에서 프라이빗에 대해 밝혀져서, 저도 놀라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품행방정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여러분께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프라이빗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지켜야할 프라이빗 입니다.

그 프라이빗이라는 토대 위에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성우 카미야 히로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프라이빗을 일이나 엔터테인먼트에 가능한 끌어들이지 않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것 보다도, 여러분이 즐겨주실 수 있는 것을 우선시하는,

그리고 거짓말은 가능한 하고 싶지 않다는

그러한 막연하기는 하지만, 견고한 지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우라는 직업상, 자신의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거나, 라디오 같은 곳에서 발언할 때에도

항상 작품이나 캐릭터를 등에 업고 서있다는 자부심이

그런 방침을 가지게 된 요인이라는 것엔 틀림없습니다.

이벤트 등에 발걸음을 옮겨주시거나, 혹은 TV나 라디오 등에 채널을 돌려주시는 여러분께

그 시간을 즐겨주시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장소에 걸맞지 않은 언행은 가급적 삼가도록 하고 있는 것이라 인식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폐해로서, 프라이빗가 개입할 수 있는 틈이 없어져가고,

보고 드릴 타이밍을 놓친 채로 현재에 이르렀다고 하는 점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침을 이해 해주시는 스탭분들과 함께 전력으로 엔터테인먼트에 힘쓴 결과가

일전의 EXPO 등으로 이어져온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그런 방침을 가지고, 여러분이 즐기실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드릴 수 있도록

똑바로 엔터테인먼트라는 것과 마주해가려고 하오니

계속해서, 마이크를 통해서 전력으로 퍼포먼스 하는 것을 용납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장소도, 블로그나 트위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있어서

이번 문화방송, 그리고 스폰서의 양해를 얻은 후에 이번 발언 시간을 받았습니다.

CM이 끝난 순간부터 평소대로의 즐거운 방송을 전해드릴 것을 약속드리니

계속해서 평소대로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잡지에서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을 팬들에 대한 사과가 대부분이고, 결혼설에 관해선 이래저래 말을 돌려가면서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으나 특별히 부정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인정한 셈이 되었다. 아내라는 설이 유력한 나카무라 히카루는 몇 년 전 결혼과 출산을 했다는 사실을 공식으로 밝힌 적이 있는데, 보도후 남편이 카미야란 사실에 대해선 일체 무반응으로 대응해 부부관계라는 사실이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후 자신이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이나 오프라인 이벤트때 결혼과 육아에 관한 주제가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듯 대화에 참여하는 것도 피하고 가만히 있는데, 아마도 결혼과 관련된 요소에 관해 엮여서 추가적인 루머가 생기는 걸 굉장히 경계하는듯.


9.2.1. 옹호[편집]


옹호하는 팬들은 '축하한다', '조금 걱정했었는데 결혼을 했었다니 다행이다', '카미야상이 행복하다면 뭐든 좋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개중에는 라디오 등지에서 카미야의 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줬으면 한다는 팬들도 있다.

상기 서술한 라디오 발언에 대해서는, 약간의 농담도 섞인 가벼운 분위기 속의 발언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됐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카미야 홀로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도 아닐 뿐 더러[51], 카미야의 발언에서도 볼 수 있듯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작품', 그리고 '캐릭터'라는 짐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성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사적인 일에 대해 말을 꺼내기 위해 원래 녹음해놓았던 라디오의 오프닝 토크까지 재녹음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스태프들과 스폰서에게 있어서 굉장히 민폐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오프닝 재녹음으로 인해 카미야와 같이 진행을 하는 오노에게도 미안한 일이 될 수 있는, 한마디로 섣불리 부탁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다. 이런 일은 일본 방송 관련 업계에서는 평소 신뢰도가 없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를 잘 알고있는 팬들에게서는 본인도 많이 힘들텐데도 그렇게까지 해서 해당 건에 대해서 입을 열어준 카미야에게 고맙다는 반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비단 카미야 뿐 아니라 현재 일본 성우들이 연애나 결혼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성우계의 풍토를 비판하는 팬들도 있다. 사실 카미야가 결혼 사실에 관해 명확하게 답을 못하는 건 현 일본 성우계의 이런저런 사정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 팬들도 많다. 일본에선 프로성우들을 한 명의 멀티 엔터테이너로 보기 때문에 더빙&내레이션 같은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개인음반을 발매해 대형 콘서트를 연다거나 모델일 겸업, 아예 지상파 방송에 적극 출연할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한국으로 치면 인기 연예인 혹은 아이돌과 비슷한 위치에서 활동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데, 당연히 이런류의 활동은 개인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면 개인이 이미지에 영향이 갈 수 있는데다 지지기반인 팬들이 떨어져 나갈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숨기는게 어찌보면 당연하다.

남성 성우는 여성 성우와 비교해 보았을때 어디까지나 비교적 타격이 크지는 않지만, 팬덤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는 화제인 것은 변함이 없다. 결혼, 더 나아가서는 출산이라는 축복받아야 할 일이 일본 성우계에서는 감춰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카미야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족 + 본업인 성우활동을 지키기 위해 개인사를 숨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는 의견이 나옴과 동시에, 어떻게 보면 '성우'라는 직업의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 지금처럼 이렇게 아이돌 시장처럼 변질 되어버린 성우계를 비판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9.2.2. 비판[편집]


이대로라면 고독사하게 생겼어요.

나츠메우인장 신・가을의 장 라디오 13회(2011.12.26)

정황상 이미 결혼을 하여 배우자도 딸도 있던 시기.


이미 몇년 전에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대중들 앞에서 독신 어필을 하는 거짓말을 쳐왔다. 결혼을 한것이나, 결혼을 비공표하고 있었기에 비판을 받는 것이 아닌, 결혼을 했음에도 노총각 행세를 하다가 대외적으로 "사실은 결혼-심지어 4살 딸이 있다"고 밝혀져서 더 논란이 커진것. 어느 나라의 예능계에서도 이런 일은 좀처럼 없다.[52]또한 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결혼을 한것만으로 비판하는 것처럼 보여지게 만들어 악질적인 수준.[53] 상기 옹호글 역시 '성우의 결혼'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 거짓말을 친 카미야 히로시를 옹호하지는 않고 있다. 또한 저 옹호가 무색하게 2010년대 후반부터 일본 성우계는 당당하게 결혼을 공표하는 편.

한때 루머로 결혼해서 애가 있다라는 속설이 떠돌았는데, 데뷔 초기 무렵 참여한 작품의 프리토크에서 선배와 주고 받은 대화가 와전을 거듭해서 그런 상태가 되었다. 대화는 대충 "(막 떠들다가)우와, 그러다 저 잘못되면 책임질 거예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임마, (나는) 아이랑 아내가 있다고.", "아하하하, 그렇게 말해도 돼요?" 정도. 한 마디로 1인칭이 생략되며 선배가 자기는 가족이 있다고 한 발언이 저리 되었다. 당시 카미야는 20대였으므로 독신의 비율이 연예계보다 훨씬 높은 성우계 풍토를 생각하면 더더욱 있을 것 같지 않고, 후에 인지도가 높아지며 독신이라 공언하지는 않았으나, 라디오에서 미래 아내에 대한 환상을 쏟아낸다든가 있지도 않은 딸로 망상하다가 딸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거나 연애관을 이야기한다든가, 자기는 여자 성우들한테 인기가 없어서 슬프다고 토로하는 식으로 독신 어필을 해왔다. 이 때문에 성우 팬덤에서는 카미야 히로시는 당연히 독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일부 안티들만 독신 코스프레 한다고 까는 정도였다.

사실 성우 팬덤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아하는 성우가 이성관계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좋은 상대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팬덤문화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특히 숨기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연애나 결혼사실을 공지한 성우들의 경우엔 팬덤에서 오히려 인정하고 확실히 축복해주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스즈무라 켄이치+사카모토 마아야 부부의 결혼 발표, 카지 유우키타케타츠 아야나, 혹은 미야노 마모루의 속도위반 결혼사실 공개, 하나자와 카나 & 오노 켄쇼 커플[54]이 있는데, 이들은 따로 영상이나 개인 sns를 통해서 상대방과 팬 모두를 향해 예의를 갖춰 정식으로 진지하게 발표했다는 점에서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 카미야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미야노 마모루의 경우 결혼발표를 했을 당시인 2008년에는 성우의 결혼을 이렇게 축복해주는 분위기가 아니었을뿐더러 젊고 잘나가는 인기 남자 성우로서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그만큼 결혼 발표가 더욱 어려웠을 텐데도 먼저 자신의 입으로 전후 사정을 자세하게 공지하고 조심스럽게 입장을 표명한 부분이 높게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속도위반 등 카미야보다 비난받을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신뢰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선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숨겼던 것이 확실히 팬들로서는 실망스러운 부분.

상술했듯이 소수에서는 카미야가 어려운 상황에서 결혼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으나 그에 못지않게 비판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비판의 가장 큰 주된 이유는, 정황상 이미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2011년 이후로도 줄곧 "여자들한테 인기 많고 싶다.", "글래머에 동안인 여자가 좋다.", "반드시 아이돌과 결혼해 보이겠다.", "자기는 성우다 보니 여자와 잘 때 목소리 좋은 사람이 있으면 녹음하고 싶다", "고독사 할 것 같다", "집에 가면 외롭다" 등등 독신 코스프레를 해온 점.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이 사실은 결혼한 애 아빠라고 밝혀졌을 때 팬들의 의견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 제쳐놓고 결혼이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숨기고 아내와 딸을 오랜 시간 없는 사람 만든 것 자체가 다소 이기적인 행위로 보여진다.

또한 '가능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폴리시'라는 코멘트가 지금까지의 발언과 모순되기 때문에 빈축을 사고 있다. 가뜩이나 사실상 결혼을 한게 확실시 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모순된 언동, 결혼이나 아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고 둥리뭉실 넘어가는 점도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더군다나 팬들이 그런 폴리시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내세운 기준이다.

더불어 '성우 카미야 히로시와 인간 카미야 히로시를 분리해서 봐줬으면 한다'는 멘트[55] 또한 '팬들을 공사 구분을 못하는 바보' 취급을 했으며, 그럼 설마 팬들이 평상시 라디오에서 떠드는 내용조차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 성우 카미야 히로시라는 것을 당연하게 인지해야 하는 것이냐며, 자신의 행동을 교묘하게 합리화하면서 오히려 팬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팬덤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성우라는 직업이 캐릭터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엔터테이너로서의 성격이 강해진데다가 본인 역시 그런 활동에 따른 인기에 힘입어 지금의 커리어를 쌓게 되었음에도 팬이라는 존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무리 밝은 분위기의 라디오에서 입장표명을 했다지만 그가 취한 농담하듯 가벼운 말투는 멘붕 온 팬들에게 한번 더 충격을 줬으며, 그가 농담조로 말할 때 옆에서 어색하게 웃어주던 공동 진행자 오노 다이스케는 무슨 죄냐며 오노 다이스케의 일부 팬들마저 카미야 히로시에게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 서술했듯 DGS는 두 사람의 라디오이며, 카미야 히로시의 개인적인 구설수로 시간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고개를 숙여야 할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카미야 히로시의 결혼발표 건은 '결혼' 그 자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이전부터 해왔던 시모네타성 발언과 이후 입장표명에서 보여준 태도가 문제시 되어 커진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본인도 이점을 아는지 결혼설이 터진 이후엔 독신이나 이성관련 주제로 농담을 하거나 직접적인 언급을 하는 걸 피하고 있다.

결국 카미야 히로시는 이후 성우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항상 역대급 결혼 병크로 끌올되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남자성우의 사생활 논란으로 인해 오히려 재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카미야는 선녀였다는 반응이 늘어나고 있다. 적어도 불륜처럼 반사회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기 때문. 특히나 오카모토 노부히코, 사쿠라이 타카히로가 대중들에겐 결혼 사실을 숨기고 뒤에서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카미야가 나았다는 의견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9.3. 기타[편집]


  • 아시아 최고 인기 성우

이 호칭은 성우전문 엔터테인먼트 제이드 보이스(http://www.jade-voice.com/)에서 주최한 한국 팬미팅 이벤트의 소개 문구가 '아시아 최고의 성우'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미도리카와의 소개 문구는 '새하얀 파도보다도 부드러운 목소리'. 오노사카가 진행하는 라디오 오샤모쿠(おしゃ木)에서 소개된 이후 일파만파로 퍼져 놀림 반 장난 반으로 정착되었다. 신타니와 함께 진행하는 <안녕 절망방송>의 DJ CD 4편에서는 아예 CD 자켓에도 이 네타가 사용되었다. 참고로 절망선생 잡지 연재분 본편에도 이 네타가 등장, 카미야 본인을 절망시켰다.

덧붙여 오노와 진행하는 <Dear Girl ~Stories~>에서 오노가 이 네타를 꺼내려고 하자 "이미 한바퀴 다 돌았거든?" 하며 냉철하게 거절. 오샤모쿠(おしゃ木) 168, 169회에 미도리카와하고 진행했을 때에는 반쯤 포기한 목소리로 '아시아 최고 인기 성우 카미야 히로시입니다'라고 대본을 읽었다. 또한 마크로스 프론티어 라디오에서도 게스트였던 코니시 카츠유키가 신나서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네타로 등장. 이로서 그가 당시 진행을 맡고 있던 네 개의 방송-절망방송, DGS, 오샤모쿠, 마크로스F-모두에 이 네타가 등장했다.

카미야 히로시 올나잇 니폰이라는 방송에서는 카미야 히로시는 정말 아시아 넘버원인가를 주제로 아키하바라, 시부야, 한국의 명동, 홍대앞의 북새통 등에서 카미야 히로시의 사진을 보여주고 누군지 맞추는 코너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인터뷰 대상이 된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모두 스와베 준이치라고 말해 카미야는 아시아 넘버 2가 되고 말았다. 스와베 본인도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누군가 투고를 하는 바람에 자신의 넘버원 등극을 알고 있다.

  • 아키나 사태

저 아키나는 세 손가락에 꼽힌다는 인기를 자랑하는 일본의 그라비아 아이돌 미나미 아키나를 말한다. 아시아로 놀림받는 게 간신히 잠잠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사건이 터졌다. 개요를 설명하면 건담 더블오 2기 선행 시사회장에 미나미 아키나가 밀레이나 바스티 코스프레를 하고 찾아왔다. 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게스트로 왔다.

함께온 코미디 계열 탤런트가 "그 코스프레 복장, 보여준다면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어?"라고 질문하자 아키나는 "아, 그러면 티에리아가 좋으니까 티에리아에게"라고 답변했다. 이에 탤런트는 "차라리 사귀어버리지 그래?"라고 장난스레 끼어들었고 티에리아의 성우인 카미야도 분위기에 맞추어 "아, 사귀어주십시오,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알렐루야 역의 요시노 히로유키가 "만 번 죽어 마땅하다(반시니 아타이스루, 티에리아의 명대사)"라고 받아치고 화기애애하게 웃는 분위기 속에 끝나는 했다.

그리고 일본의 찌라시 언론들은 다음날 '아키나 건담 시사회장에서 공개 구혼, 깨끗하게 거절'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일제히 기사를 실었다. 아키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음에도 "머리스타일이 달라서 싫어요."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멋대로 추가되었고, 개중에는 저 죽어 마땅하다가 티에리아의 대사임을 모르고 '사형선고'로 실어버린 기사도 있었다고 한다. 인기 아이돌이 얽힌 사태이니만큼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기사가 일본 야후 메인에 등장하고 그날 탤런트 검색어 2위에 카미야 히로시가 등극, 그 날 하루간 2ch의 카미야 안티 스레가 3개 늘어나는 등 하여간 굉장한 사태가 되어버렸다.

단지 본디 이쪽 계열인 팬들 입장에서 보면 나비날갯짓이 폭풍우로 소개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지라 "고작 그 정도를 가지고 이렇게 부풀리다니." 하는 식의 어이없어하는 반응이 강했고 아키나 팬들도 처음에는 흥분했다가 사건 개요를 찾아보고서 언론 설레발임을 알았는지 조용히 넘어가는 추세였다.

그러나 괴롭히는 메일을 쓰는 것은 일상이요, 대놓고 짓궂은 메일을 쓰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는 <절망방송>의 절망 리스너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야후 댓글에서도 심심치 않게 "야호, 절망방송에 네타로 보내야지!"라는 내용의 글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역시나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약 3백통에 가까운 메일이 날아왔다. 다들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네타거리로 당분간 여기저기 등장. 여러가지로 정말 지못미. 본인은 가타부타 말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라디오 등에서 이 화제가 나오자 "매스컴은 무서우니까 조심."이라고 푸념 섞어 발언했다.

절망방송의 스미마센 코너, 마크로스의 젠트라디어 코너 등에서 네타로 회자되었으며 오샤모쿠, <Dear Girl ~Stories~>에서도 관련 화제가 나왔다. 지못미.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토마츠 하루카는 또 한동안 공격에 시달렸다. 다행히 이 등쌀은 얼마 안 가서 가라앉았다.

  • 전국구 방송 출연

후지TV의 메자마시 프로그램에서 카미야의 <Dear Girl ~Stories~> 착신 보이스를 아침 알림음으로 쓰고 있는 여성 게스트가 등장, 이 착신 보이스에 대한 설명으로 카미야의 사진과 설명이 화면에 흘러 급기야 전국구 방송을 탔다. 본인은 "유명해지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건 아닌데..."라고 다소 씁쓸한 코멘트를 남겼다. 아키나 사태에 이어서 두번째 '매스컴은 무서워' 사태였다.

덤으로 이때 아오니 프로필 사진이 환골탈태 하기 이전의 일반인 포스를 내뿜던 사진이라 팬들은 "아오니, 사진 좀 바꿔." 하고 절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그 사진이 걸려있다가 2009년에 들어서야 바뀌었다.

  • 발렌타인 초콜릿

08년 한창 상종가를 달리는 때에 오샤모쿠에서 오노사카가 초콜렛 개수의 내기를 걸었다. 거기서 카미야 앞으로 날아온 초콜렛 개수는 502개. 본인은 매니저가 적당히 "300개, 아니 400개, 아니 500개, 아 두 개 더들어왔대요. 502개."라고 해서 그 숫자가 돼버린 거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다음 09년, 오샤모쿠 정식 집계를 통한 카미야 히로시가 받은 초콜릿 개수는 647개. 과연 상종가를 달리는 성우.였으며 이후 꼴찌한 탓에 완전히 짜게 식어버려 풀이 죽은 오노사카에게 내내 허둥거리면서 "에 우연이에요." 같은 발언을 하다가 "제 인생의 피크에요 오노사카씨!" 하고 노선 변경하기도 했다. 이후 업계 내에서 받은 이야기하는 두 사람 앞에서 동료들에게서는 전혀 받지 못했다며 완전 차게 굳었으나 끝에 가서는 신타니에게 하나 받았다고 실토했다. 정말 신타니에게서만 받았는지는 불명이다.


<Dear Girl ~Stories~> 1월 31일 148(?)회 방영분. 이 방송은 카미야의 생일날 탄생제를 치르는데 이는 대부분 카미야 히로시를 괴롭히는 방송으로 끝난다. 역대 전적을 보면 메이드 복장을 한 오노가 집에 쳐들어오거나 "여자 소개시켜줄게!! 스즈미야 하루히에서 주역을 연기!! 내놓은 음반은 오리콘 랭킹에 등재! 인기도 대단한 일약스타!!"라고 한 끝에 스기타 토모코와 소개팅 시켜주거나. 사전에 카미야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는 것이 포인트였으며 그리고 2010년 1월 30일(147회), 역시나 아무것도 씌여있지 않은 대본만을 받은 카미야는 탄생제 녹음에 들어간다. 오늘 방송의 포인트는 "미연시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인 카미야에게 리얼판 <도키메키 메모리얼> 플레이를 시켜주겠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들으면 안다는 미인이라며 눈까지 가리고 기다리게 한 끝에 나타난 것은 하만 칸 마네킹. 보이스 첨가. 할 말을 잃은 카미야 앞에서 하만 칸 마네킹"카미야 히로시, 이런 속물이!!"라고 외쳤으며 사카키바라 요시코의 협력을 얻어 목소리만은 리얼이었다.

Z건담의 홍보협력을 해주기로 하는 협약끝에 따온 목소리라고 하는데 그 수는 51개. 시종일관 뻣뻣하게 긴장해 한 번 보인 적도 없는 얼굴로 하만 칸을 상대한 끝에 차인 카미야는 이후 모든 건담 시리즈 최고의 히로인은 하만 칸이라는 공식 선언을 날렸다. 자기 이력서에 써놓는다나 뭐라나. 건담을 보며 자라온 건덕으로서 정말 성공한 셈. 방송 이후 그 음원들을 개인적으로 받아 아이팟에 넣고 다니는데 노래를 듣던 중 갑자기 "이 속물이!!"라는 대사가 튀어나와서 놀란다고 한다. 하만 칸에게 차이는 카미야 히로시(Dear Girl ~Stories~ 147화) 약 10분즈음부터 그 대사를 들을수 있다.

2013년 말에 있었던 Dear Girl ~Stories~의 이벤트, Dear Boy 축제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해 3지선다로 호감도를 팍팍 올려가며 관객:3번!3번!! 호감도를 올릴 때 마다 하만 칸에게 가까이 당겨 앉으며 좋은 분위기로 흘러가 마지막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하만 칸에게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계속 좋아했다며 고백하지만 역시나 차였다. 그리고 카미야 본인은 이벤트 후반부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여자로 하만 칸을 뽑고 좌절했다.

  • 도호쿠 대지진

도호쿠 대지진 당시 오노사카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 지진 발생 후 대피하던 중 건물이 크게 흔들려 책상 쪽으로 넘어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팔을 부딪혀 타박상을 입었고 한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그 뒤 다행히도 무사히 귀환했다고 한다. 트위터나 블로그를 하지 않는 탓에 팬사이트 등지에서 생존 확인에 대해 걱정하는 글이 쏟아졌으나, 오노사카가 트위터에 별 일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알려 생존 확인되었다. 엄청난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경험도 있기에 팬들은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하며 대개의 반응은 "제발 트위터 좀 해주세요!" 루머라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트위터의 시스템 등에 대해 묘하게 자세히 안다는 이유로 비공개 계정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떠돌지만 낭설이다. <Dear Girl ~Stories~>에서 SNS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택시에서 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좋아하는 것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파일:attachment/카미야 히로시/kyouryugerkenichikun.jpg
영상
<수전전대 쿄류저> 제작진은 엔딩에서 나오는 댄스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추거나 아이들이 단독으로 엔딩 댄스를 추는 영상 등을 시청자들이 투고하여 선정된 사람들의 영상을 엔딩과 함께 방송해준다. 이 엔딩 댄스를 스즈무라 켄이치와 함께 촬영해 토에이에 투고했는데 그게 방송을 탔다. 밑에 뜨는 자막은 켄이치군과 히로시군(38)씨.

대전격투게임이 한참 인기였던 시절 김갑환반월참을 할수있을까?라는 생각에 시도하다가 역시 잘 하지 못해서 김갑환과 태권도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2022년 8월 8일 코로나에 걸렸다. 현재는 완치


10. 수상 경력[편집]


날짜
시상식
수상 부분
2007년
제 2회 성우 어워드
남우조연상[56]
『 논코와 노비타의 아니메 스크럼블 』제 17회 아니메 그랑프리
최우수 남성 성우상
2008년
제 3회 성우 어워드
남우주연상, 퍼스널리티상
2009년
『 논코와 노비타의 아니메 스크럼블 』제 19회 아니메 그랑프리
최우수 남성 성우상
2010년
도쿄 국제 아니메페어 2010 제9회 도쿄 아니메 어워드
성우상 수상
2011년
제 6회 성우 어워드
최다득표상
2012년
제 7회 성우 어워드
2013년
제 8회 성우 어워드
2014년
제 9회 성우 어워드
최다득표상, 퍼스널리티상[57]
2015년
제 10회 성우 어워드
최다득표상[58]
2018년
제 13회 성우 어워드
MVS (Most Valuable Seiyu)
2019년
제 14회 성우 어워드
MVS (Most Valuable Seiyu)


11. 출연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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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분에 일본의 각 지역을 모에화한 大和彼氏(야마토카레시)에서 관동 역할을 맡았다. 참고로 어릴 때 자란 곳, 그러니까 고향이라고 평소에 칭하는 곳은 이바라키현인데 태어난 곳 자체는 치바현이라 무심코 출생 프로필에 치바현이라고 잘못 적었더니 그게 그대로 정착됐다는 모양.[2] 정확히는 이바라키현 우시쿠시이다. DGS 23화에서 오노디가 우시쿠 대불 보고 싶다!! 하자 카밍이 거기 내 고향인데? 장래에는 우시쿠대불에 묻히겠지라고 언급했다.[3] 마르기도 말랐지만 체격 자체가 정말 작아서 언뜻 보면 굴곡없는 빈유 여성의 몸매같기도. 실제로 레이디 S도 소화 가능하며, 오노 다이스케가 너무 말라서 걱정되니 살 좀 찌우라고 했다. <Dear Girl ~Stories~> 248화에서 말하길 겨울엔 살쪄서 54kg라고 한다. 체력 단련과 건강을 위하여 계속 실내 사이클 운동을 한 결과, 제법 보기 좋은 체형이 되었다. 2016년 현재는 마찬가지로 겨울에 살이 쪄서 58~59kg의 정상 체중이 되었다.[4] 결혼 사실이 밝혀진건 2016년.[5] 한국 한정.[6] 한국 한정.[7] 한국 한정.[8] 참고로 이나다 테츠 & 탄게 사쿠라와 동기.[9] 연기생들은 연기 공부를 할 장소가 적기 때문에 배우는 것 외에도 모여서 연습하는 경우가 많다.[10] 위키피디아 상으론 호시가 93년, 카미야가 94년 데뷔이다.[11] 일본의 거대 상점이며 한국이마트 정도로 보면 된다.[12] 일본의 내레이션 현장은 생방송으로 긴 문장을 정확히 읽어야 하는 탓에 대단히 엄격하다. 그런 만큼 원고의 내용이나 읽는 방법 등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배운 점이 많다고 한다. (2008년 A&G 아카데미 주최 토크 이벤트에서)[13] 특히 5기부터는 10대 중반의 청소년인 나츠메한테서 간혹 중후한 느낌의 톤이 나오는 등 작위적인 느낌이 한층 강해졌다. 전반적으로 시즌 초기에 비해 인위적으로 꾸며낸 톤이라는 느낌이 든다. 다만 이건 카미야가 1975년생이다보니 목소리를 잘 유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젠 감성 표현이 예전같지 않아서 생긴 현상이다. 물론 10대 청소년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40대-50대 성우들은 많지만, 목소리와는 별개로 감성까지 잘 유지하는 경우는 의외로 정말 드물고 사실 성우들도 은근히 힘겨워한다. 아무리 목소리를 젊게 잘 보존했다고 해도 성우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담당하는 캐릭터 연령대가 올라가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14] 미키 신이치로, 코야스 타케히토, 타카야마 미나미는 카미야 못지 않게 개성이 강한 음색에 변조폭도 좁지만 호흡과 어조의 높낮이를 조절해 배역마다 세부적으로 다르게 표현해내는 식으로 단점을 커버한다. 이에 비해 카미야는 목소리의 높낮이는 다르게 표현하나 연극체로 연기하는 특성상 상황에 따라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어 한계가 있다.[15] 일반적으로 BL 드라마CD는 1,000장을 넘으면 히트작으로 간주한다.(특히 만화 원작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대박작이다) 그 중 신급이라 할 수 있는 5,000장 라인의 BLCD라고 하면 <돈이 없어>와 더불어 카미야가 미키 신이치로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 카미야가 오노 다이스케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 등을 꼽을 수 있다는 카더라가 있다.[16] 다행히 쟈켓이미지는 뜨지 않았다.[17] 와카테(젊은 성우) 시절 실수할 때 괜찮다며 따뜻하게 대해주는 선배들을 보며 본인도 그런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18] DGS에서 오노 다이스케가 카미야의 별명 중에 하나로 언급했다.[19] 그러나 훗날 결혼한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었다.[20] 이 다섯 멤버는 <Dear Girl ~Stories~>에서 DG5라는 유닛으로 묶여있다.[21] 참고로 나카무라 유이치, 오노 다이스케, 카미야 히로시는 성우일로 만난 것보다 스기타 토모카즈의 게임 동료소개로 먼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지대전을 즐기는 사람이라며 스기타가 소개를 해줘서 넷이 서로 알게 되었다고.#[22] 나카이 카즈야와는 우주전대 큐레인저에 전대전사로 동반출연했다.[23] 相方; 파트너나 짝 등의 의미.[24] 때문에 <Dear Girl ~Stories~>의 카미야 자택 방송에서 뜨개질 관련 서적이 발견되었을 때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상당했다. 본인은 궁금해서 샀다고 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여자 물건이라느니, 진짜 궁금해서 샀을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등이 있었다.[25] 어지간한 매니아도 알아듣기 힘들었다는 반응. 급기야는 공동 진행자인 신타니가 병풍으로 전락하자 보다 못한 스탭들이 컨닝 페이퍼로 멘트를 적어서 보여줬으나 심지어 읽기조차 못했다. 여러모로 지못미.[26] 실제로 게임 네타는 중2 시절 했을 법한 고전 롤플레잉 및 각종 격투 게임이나 콘솔, 건담 등에 치중되어 있다.[27] 오노는 카미야와 같이 하는 라디오에서 고양이보다 개파(派)라고 단언했지만, 카미야의 시큰둥한 반응에 허둥지둥 변명을 할 만큼 애묘가이다.[28] <듣고 있어요, 아자젤 씨> 38화에서 자세히 들어볼 수 있다.[29] 신타니 료코의 별명 중 'D코'가 있다. 항목 참조.[30] 이때 나온 갈비탕은 우리가 흔히 아는 담백한 맛의 갈비탕이 아닌 고추가루를 듬뿍 집어넣은 엄청 매운 갈비탕이었다. 참고로 그 갈비탕은 국내에 TV 전파를 탄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31] 바로 옆에 있던 히로하시 료는 맛있다고 먹었다.[32] 이는 2011년 9월 DGS 기획으로 스탭들과 노래방에 가면서 깨졌다.[33] 라디오 등지에서 "항상 똑같은 노래만 할 수 없으니까..." 식으로 발언하였다.[34] 반다이 비주얼과 란티스 산하 레이블이다. 서브컬쳐계의 한 중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폰서.[35] 한국의 걸그룹 카라의 새로운 싱글이 오리콘 차트에서 2위 대비 두 배 가까운 판매량으로 1위를 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이 2위가 바로 카미야 히로시의 첫 앨범이었다.[36] 애니메이션 관련 타이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남자 성우 판매량에서 손에 꼽힌다.[37] 하지만 이것은 본토 팬층의 일부 반응이고 국내 팬들의 반응은 일관적으로 긍정·호의적이다. 라디오 등의 매체에 본토만큼 접할 기회가 없고 팬계 자체가 좁고 폐쇄적이라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기 힘들어서 그런걸로 보인다.[38] 남성 성우들중 싱글로 오리콘 데일리 1위는 미야노 마모루가 있고 앨범에는 이리노 미유가 있다.[39] 여성성우 오리콘 위클리차트 최초 2위는 미즈키 나나의 12번째 싱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A's 의 오프닝 ETERNAL BLAZE다.[40] 남성성우 솔로 최초 오리콘 위클리 TOP3에 랭크인[41] 마후마후 작곡의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42] 하레노히 앨범 발매 당시 "'노래 히로시' 시작했습니다~"로 홍보한 것이 계기.[43] 한국 팬들은 별명을 붙일 때 이름 끝에 ㅇ를 붙여서 만드는 경향이 있다. 토리밍, 미도링, 모리링 등. 예외로는 탓층욧칭이 있으며 이 둘의 별명은 본토 팬들과 한국 팬들 양국 공통 별명.[44]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아지아라고 불린다.[45] 카미야가 주인공을 맡은 애니메이션 제 1화 수록날이었다고 한다.[46] 이 사건 소식을 전해들은 절친 스기타 토모카즈는 큰 충격을 받고 오토바이 타기를 그만뒀다.[47] 그 한 달 간의 기억은 없고 눈을 떴을 때는 침대 위였다고 한다.[48] 목소리와 폐활량은 아주 밀접적인 관계가 있다. 만약 폐에 이상이 생겨 복식호흡 등 발성에 필요한 기본적인 스킬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성우 활동이 불가능.[49] 집중치료실에 오래 있을 경우 환각/환청 등을 듣게 되는 정신병 증세의 하나. 집중 치료실에서 벗어나면 자연히 치료된다. 중환자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참고[50] 참고로 노지마 켄지는 <Kanon>의 쿠제 역도 대역을 맡았다.[51]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해가는 라디오인 DGS의 특성상, 가라앉은 분위기로 관련 일을 언급했다면 다음 파트로 넘어갈 때 진행이 굉장히 애매해지며, 이는 공동 진행자인 오노에게도 큰 실례가 될 수 있다.[52] 우리나라에서는 윰댕이 비슷한 예시이며 당연히 만만치 않게 논란이 되었다.[53] 실제로 일본 국내에서 이 일이 한 방송에서 다뤄진적 있으나 그때의 헤드라인이 '카미야 히로시, 기혼보도에 사죄'여서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극성팬들이 결혼으로 난리로 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보도 사진마저 진격의 거인 시사회때 양복을 입은 사진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결혼때문에 기자회견까지 열어 팬들에게 사죄해야 하냐고 오해하며 애꿏은 팬들을 질타하는 글도 있었다.[54] 특히 이들은 처음으로 성우 커플이 공식석상에서 연애사실을 발표하고 인정한 사례로, 이들 이후 성우들의 연애나 결혼 사실 발표가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평도 있다.[55] 이 발언으로 인해 카미야 히로시는 '성우 카미야 히로시'를 줄인 '성카'라는 별명이 잠시 생기기도 했다.[56] 오노 다이스케와 공동 수상[57] 오노 다이스케와 공동 수상[58] 5년 연속, 명예의 전당 입성했으며 11회부터는 수상에서 제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