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베르 고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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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hyberPassPakistan.jpg
오늘날 카이베르 고개의 풍경. 현재는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이 지나는 길목이 되었다.

1. 개요
2. 배경
3. 전투 경과
4. 결과



1. 개요[편집]


카이베르 고개 전투(Battle of Khyber Pass)는 카이베르 고개에서 1738년 11월 후반에 일어난 전투이며, 나디르 샤무굴 제국으로 향하는 길을 열기위한 전투였다. 무굴 제국의 충신이었던 카불 지역의 총독[1]이 카이베르 고개를 틀어막고 최대한 버티려 했었다.


2. 배경[편집]


나디르 샤는 길자이 반란 세력 관련 문제로 무굴 제국과 갈등을 빚은 바 있으며, 더불어 무굴 제국의 내부분열 소식을 접하고는 본격적으로 침입하였다. 당시 나디르 샤는 힌두쿠시 산맥을 거쳐 남하하여 펀자브 지역으로 갈 생각이었으며, 힌두쿠시 산맥을 넘는 과정에서 카불 총독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카불 총독은 무굴 제국 조정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재량껏 수비를 하고자 하였으며, 일단 비용 부족으로 카불 지역을 버리고 군대를 정비하였다.


3. 전투 경과[편집]


파일:800px-Kheibar_pass_1.jpg
카이베르 고개 전투의 배치도. 붉은색이 카불 총독의 무굴 제국군, 점선이 나디르 샤의 우회로, 일반 선이 나스랄라의 압박 루트다.

카불 총독은 2만명의 병사를 카이베르 고개에 배치하였는데, 아마도 좁은 길목을 이용하여 최대한 유리하게 수비할 생각이었던것 같았다. 아무리 나디르 샤가 이끄는 최강의 페르시아군이라 해도 좁은 길목을 틀어막고 버티는 방어선을 정공법으로 뚫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2]

나디르 샤는 병력을 둘로 나누었으며, 나쉬롤라에게 12000명의 병력을 주어 무굴 제국군의 전방을 계속 압박하여 시선을 끌게 하였고, 나디르 샤 본인은 경기병 1만명을 이끌고 미리 찾아놨던 남쪽 우회로를 통해 무굴 제국군의 후방을 치고자 하였다.

사전에 카이베르 고개 주변에 있는 마을이나 이름모를 부족들은 전부 나디르 샤의 작업과 뇌물로 인해 입을 닫아버렸으며, 덕분에 나디르 샤의 우회기동은 무굴 제국군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나디르 샤는 하루동안의 이동 끝에 무굴 제국군 후위의 남부지역에 다다랐으며, 이후 잽싸게 북상하여 무굴 제국군의 후방을 강타하여 혼란에 빠뜨려버렸다.

결국 예상치 못한 기습을 맞은 무굴 제국군은 무너졌으며, 카불 총독은 도망쳤으며 일부 장교들은 붙잡히고 말았다.


4. 결과[편집]


카이베르 고개 전투의 결과로 무굴 제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으며, 나디르 샤는 본격적으로 인도 원정에 착수하게 되었다. 전투의 규모는 비교적 작았으나, 나디르 샤의 뛰어난 전술적 기동을 엿볼 수 있는 전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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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카불 총독이 페샤와르 지역의 총독도 겸했다고 전해진다.[2] 황산벌 전투에서 김유신 장군이 개고생한 이유를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