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프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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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왕가 | 에르디아의 군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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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에르디아 제국
프리츠 왕조 (1003 B1 ~ 743년)
초대
초대 프리츠 왕
유미르 프리츠
제2–144대
프리츠 2~144세
제145대
칼 프리츠

파라디 섬 왕정
레이스 왕조 (743년 ~ 854년)
제1대
(제145대)

칼 프리츠
제2~6대
(제146~150대)

레이스 2~6세
제7대
(제151대)

레이스 7세
제8대
(제152대)

우리 레이스
제9대
(제153대)

프리다 레이스
제10대
(제154대)

로드 레이스
제11대
(제155대)

히스토리아 레이스


에르디아국
레이스 왕조 (854년 ~ ?)
제11대
(제155대)

히스토리아 레이스





칼 프리츠
カール・フリッツ
Karl Fritz
파일:Karl Fritz image 1.jpg
프로필
본명
칼 프리츠, 카를 프리츠
이명
시조의 거인 (始祖の巨人)
프리츠 왕
초대 레이스 왕
벽의 왕
레이스 1세
출생
불명
사망
751년, 파라디 섬
성별
남성
가족
조상: 프리츠 144세
후손: 레이스 7세

1. 개요
2. 진상
3. 평가
4. 임기 중 주요 사건



1. 개요[편집]


역대 시조의 거인 계승 소유자 일람
725년 ~ 738년

738년 ~ 751년

751년 ~ 764년
프리츠 144세

칼 프리츠

레이스 2세

파일:칼 프리츠 프로필.png
이사야마 하지메의 만화 《진격의 거인》의 등장인물. 고대 에르디아 제국의 제145대 왕이자, 파라디 섬 내부에서는 초대 레이스 왕으로 불리고 있다.

마레의 영웅인 헤로스타이버 가문에게 패배하고 파라디 섬으로 도망쳤다고 알려졌다. 고대 에르디아 제국의 만행에 고통받은 세계의 입장에선 에르디아인과 마찬가지로 멸시와 증오의 상징이다.


2. 진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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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낙원.png

애초에 에르디아인... 거인은 존재해서는 안 됐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바로 잡는 걸 받아들일 것입니다. 다만 언젠가 보복[1]

을 받을 때까지 벽 안의 세계에 다툼이 없는 잠깐 동안의 낙원을 향수하고 싶습니다. 부디 그것만은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칼 프리츠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


「거인 대전」을 끝낸 것은, 헤로스도, 타이버 가문도 아니었습니다. 거인 대전을 종결시키고 세계를 구한 것은, 프리츠 왕입니다.

빌리 타이버


칼 프리츠는 자신의 제국을 멸망시켰고 일부 백성을 데리고 파라디 섬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파라디 섬에 삼중 방벽을 건설한 후 백성, 에르디아 민족을 그 안에 거주하도록 정책했으며 시조의 힘으로 그들의 기억을 모두 지워 세계와 단절시켰다. 원작 99화에서 빌리 타이버가 연설 도중에 연극의 형식을 통해 밝힌 바로는, 에르디아 제국은 거인의 힘으로 주변의 적들을 모두 정리하자 자신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조의 거인을 계승하는 프리츠 왕가를 제외한 여덟 거인을 계승하는 가문들이 서로 결탁과 배신을 반복하면서 끝없이 피를 흘리는 짓을 해왔는데, 이것이 바로 '거인 대전'이라는 에르디아의 내전이었다.


파일:Tybur and Karl Fritz.jpg


거인 대전이 지속하던 시기, 145대 왕이었던 칼 프리츠는 그가 시조 거인을 계승하기 전부터 조국의 잔인한 역사를 한탄했고, 동족끼리 내전을 벌이는 것에도 지쳤으며 그동안 짓눌려왔던 '마레'에 대해서도 가엾게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시조 거인을 계승한 후 전퇴의 거인을 보유한 타이버 가문과 결탁, 가상의 마레인 영웅 헤로스를 만드는 식으로 에르디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로 계획했다.

파일:빌리타이버 연설 칼프리츠.png
칼 프리츠의 이러한 민족말살 계획으로 거인 대전과 함께 1800년 역사의 에르디아 제국은 멸망하였으며, 진격과 시조를 제외한 일곱 거인과 세계의 패권은 마레 제국으로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다. 칼 프리츠는 통솔 가능한 범위 내의 에르디아 백성만을 데리고 파라디 섬까지 강제 이주시킨 후 방벽의 문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안식을 위협하면 수천만의 거인으로 보복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사상, 즉 세상의 평화와 에르디아가 지금까지 마레 등 다른 나라들에 저질러왔던 짓에 대해 속죄한다는 명분으로 이 속죄를 후손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부전의 맹세를 만들고[2] 이를 시조 거인의 후대 계승자들에게 전승했다. 그래서 여태까지의 레이스 왕가 내 시조의 거인 계승자들은 계승 이전 자신의 사상과는 무관하게 이 '부전의 조약'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칼의 사상을 수긍하게 되어버린 것이다.[3] 결국, 파라디 섬 방벽 내부의 거인들은 여태껏 움직이지 않았고, 마레도 다른 나라들도 공격받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나라에 학대받아온 마레의 해방을 원했으며, 마레가 에르디아가 저질러온 짓에 대해 보복한다면 설령 시조의 거인을 뺏으려 해도, 에르디아의 멸망을 원한다고 해도 받아들인다고 여겼다. 그는 그것이 에르디아가 쌓아온 죄에 대해 속죄하는 방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보복을 받을 때까지, 벽 안의 세계에서 다툼이 없는 잠깐의 낙원[4]을 향수하고 싶다, 그것만은 용서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빌리 타이버가 밝히고 시조 거인을 탈취한 엘런을 대놓고 디스한 덕분에, 작중에서 파라디 섬 위협론을 믿어왔던 사람들에겐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극적 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3. 평가[편집]


더 이상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 왕은 왕이 아니다. 반드시 찾아내서 겁쟁이 왕으로부터 시조를 탈환하는 거다.

엘런 크루거


그래서 또다시 국민들을 속이자고? 레이스 왕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들을 벽 안에서 사육하자는 건가?

도트 픽시스[5]


진격의 거인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인 동시에, 스스로가 지키고자 한 세계가 초토화되는 최악의 근간을 남기고 만 암군이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인물의 특이성은 보통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지닌 인물이 창작물에서 대개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부정적인 암군으로 그려졌다는 데 있다.

물론 주인공 엘런 일행이 소속된 파라디 섬이란 관점을 떠나 빌리 타이버가 공표한 칼 프리츠가 그 막강한 에르디아 제국 군사력의 핵심 기반인 거인의 힘을 스스로 구속한 채 섬에 걸어 들어갔다는 진실을 감안해 보면 에르디아를 제외한 전 세계 즉 인류에게 있어서는 살신성인의 구원자라고 볼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 그의 '부전의 조약' 때문에 파라디 섬 내부에서 거인들이 대거 움직여서 마레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공격을 가하는 일이 100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으니, 세계의 처지에선 매우 고마운 인물. 그러나 정반대로 동포 에르디아인에겐 과거 조상의 죄악이란 미명 아래 제대로 된 진실도 모른 채 말 그대로 민족의 죽음을 강요한 최악의 암군이자 매국노로 비칠 수 있는 인물이다. 책임을 짊어질 이유가 없는 후손들은 선조가 행해온 일에 대한 '속죄'라는 명분으로 세계로부터 모든 멸시와 증오를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

자국의 이익을 초월한 그의 행동이 에르디아라는 거인 제국으로부터 인류를 해방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에르디아국의 왕으로서는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우선하지 않았으니 암군이지만, 한 사람의 인간 혹은 인류 전체를 통틀어서 보면 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벗어나 거인의 지배로부터 인류를 해방했다. 그러나 그의 '무저항주의 평화정책'으로 인해 마레 제국이라는 새로운 패권주의 국가가 등장하였으며, 결국 역사는 되풀이되어 증오의 연쇄가 또다시 시작되었다.[6]

칼 프리츠 그는 분명 세계 평화라는 이상을 원했겠지만 자신의 민족이 저지른 죄악을 심판받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멸망으로 몰아붙였으며, 결국 실험적인 위험한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감내해야 하는 자신의 백성의 목소리는 묵살한 채, 그들을 반강제적으로 복종시켜 대를 위해 희생하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의 이상을 털어놨다면 다른 인류와 에르디아인들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자괴감이 심했다 할지라도 모든 백성을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의 처지에서 자기 의사만으로 자기 국가, 자기 민족을 '멸족해야 마땅한 민족'이라고 판단해버리고 그들 모두를 다짜고짜 위기로 몰아넣을 자격은 없을 것이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따위의 정치적 사상을 떠나서 인간이라는 개인의 측면으로 봐도 칼 프리츠를 마냥 선량한 인도주의자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굳이 변론을 한다면 이건 왕정 시대로 설정된 본작 시대 자체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실제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국민의 주권이 본격적으로 부각돼서 지배계층이 이를 무시하기 힘든 수준까지 발전한 건 부르주아 혁명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왕의 의사가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기에 백성 개개인의 인권·주권·자유의사 등은 별 신경 안 썼을 수도 있다. 게다가 칼 프리츠가 독단적인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항상 보이듯 집단 이기주의가 발동하면 민주주의란 미명하에서도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건 아니기에[7] 칼 프리츠가 그 당시 시대 상황이나 여론에 절망하고 있었다면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게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은 아니다. 게다가 그에겐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시간도 '13년'이란 어찌 보면 상당히 짧은 기간밖에 없었다.

빌리 타이버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에르디아 제국은 1000년이 넘도록 다른 국가와 그 국민을 위협하고 억압하여 노예로 만든 악마의 제국이었고, 그랬기에 에르디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증오와 원망을 받았다. 현실의 남미 아즈텍 제국이 주변 부족들에게 인신공양을 비롯한 각종 억압 정책으로 만악의 근원 취급받아, 되레 침략자인 스페인군에 일조한 것과 흡사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칼 프리츠는 이러한 패권주의 역사에 대하여 엄청난 회한과 자괴감에 짓눌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만행한 것이다.

다만 그것 역시 하나의 가정일 뿐으로, 역시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8] 자신의 의사만으로 자국 백성의 주권과 자유의사를 무시한 채 기억 조작으로 그들을 속박한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상당수 에르디아인 가족들은 파라디 섬과 파라디 섬 외곽의 장소들에 뿔뿔이 흩어졌고[9] 증오의 인과관계 아래에 종국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섬으로 이주한 에르디아인들은 방벽 너머로 건너오는 (과거 마레에 있었던 동포 에르디아인들이 변한) 거인들에게 공격당하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마레에 남겨진 에르디아인들은 본토에서 험한 멸시와 배척을 당하며[10] 자신들의 버려진 처지를 한탄하고 방벽 너머의 동포 에르디아인들을 원망하게 되었고 마레에게 세뇌당한 채로 지내야만 했다. 이런 고통의 역사를 보면 칼 프리츠는 자신의 선택 때문에 애꿎은 후손들까지 힘들게 했다.[11]

게다가 칼 프리츠의 파라디 섬 내부의 에르디아인들을 향해 대물림한 압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레이스 가문이 대대로 부전의 맹세를 각인받아 시행한 방벽과 거인의 존재로 분란없는 사회를 구축한다는 이념 하에 중앙헌병단 등의 존재를 통해 자행한 기술 억제 및 진실 은폐의 만행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칼 프리츠의 방안에서 나온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해 보면 칼 프리츠가 백성을 데리고 방벽 안으로 이주했을 때 방벽 밖의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넓은 영토에서 자급자족을 하는 방법'도 필요에 의해서 지워 없앴을 가능성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것이 방벽 안으로 건너간 에르디아 사람들은 직전까진 모두 파라디 섬을 따위로 취급할 정도로 넓은 땅인 대륙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며, 그들은 거인을 적극 활용하는 수준의 문명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좁은 땅도 아니고 넓은 땅을 쓰는 법을 아예 모른다는 것과 그걸 모르는 세월이 너무나 긴 것 역시 말이 안 된다. 설령 조상이 몰랐다 해도 세대를 거듭해서 후손들이 살아남을 정도라면 후손들은 조상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간 능력이 나아져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칼 프리츠와 그 후대 왕들이 행해왔을 기억조작건과 연관 지어질 경우, 왕가가 시조 거인을 통해 얻는 기억 조작을 비롯한 정신 조작 능력으로 최소한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만 필요한 국민의 개척·개간 능력 수준을 유지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밖과 비교하면 유독 문명 발달이 더뎠을지도 모른다. 당장 벽 밖의 마레 제국만 해도 산업혁명이 이루어져 비행선, 사진기 등 놀라울 정도로 문명이 발전해 제1~2차 세계대전 전간기 무렵의 문명수준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반해, 정작 파라디 섬 사람들은 아무리 문명 수준을 높게 잡는다 쳐도 전간기 이전의 문명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를 보면 칼 프리츠가 파라디 섬의 에르디아인들에게 미친 해악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덕분에 진실을 아는 레이스 가문 내부에서조차 이런 칼 프리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비록 부전의 조약에 입각한 칼 프리츠의 이상에 입각한 정책은 펼쳤지만 이는 그저 세뇌에 의한 것이고, 시조를 계승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초대 왕의 의지에 지지 않겠다는 결의를 드러낼 정도였다. 부전의 조약에 입각한 계승자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는 가문 내 풍조 속에서 이런 의견이 후계자에게 공공연히 나올 정도였으니 레이스 가문에 있어서도 칼 프리츠는 그저 사라졌으면 하는 망령에 지나지 않았다.[12] 진실을 알게 된 방벽 내부의 민중에게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결국 전 세계의 에르디아인에게 있어 칼 프리츠는 반드시 타파해야 할 저주스러운 적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 엘런 예거지크 예거와 함께 아버지 그리샤 예거의 기억을 돌아보면서 그리샤가 레이스 일가와 마주했던 그 날의 기억을 보는 순간인데, 부전의 조약의 세뇌에 의해 죄로부터 도망쳐서 안 되며 멸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프리다 레이스를 엘런 예거는 그야말로 죽일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 시점의 엘런은 거인들도 같은 에르디아인이었고 벽 밖의 세계도 결국 똑같은 인간들이 있을 뿐이라는 내면적 성숙과 함께 땅울림에 대해서도 극도로 고뇌하고 있었는데, 프리다가 말하는 칼 프리츠의 논리는 그런 엘런에게조차 초창기 거인에 대한 분노로 타오르던 시절을 방불케 하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칼 프리츠가 만든 방벽의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싸워오고 고군분투했던 엘런에게 있어, 칼 프리츠의 자멸적인 논리는 그저 망발이자 망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13]

게다가 이런 에르디아인들의 입장을 배제하고 단순히 세계-인류 전체 및 에르디아인 근절이란 관점에서 본다 해도 칼 프리츠의 선택은 결코 긍정적이지 못했는데, 에르디아인을 파라디 섬 내부에 봉인한답시고 만든 방벽은 만약 시조의 계승자가 다른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최강최악의 무기라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한 장치가 바로 부전의 조약이었지만, 그 시조가 왕가의 혈통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탈취될 경우 제한적인 조건일 지라도 그 방벽을 비롯한 시조의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고 실제로 그렇게 된 만큼 칼 프리츠는 세계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최악의 유산을 남기고 만 것이나 다름없다.[14] 그가 아홉 거인 중 여덟을 남긴 마레의 타락이나 에르디아국의 파라디 섬 쇄국화로 열악한 처지에 내몰린 에르디아인들을 향한 세계의 인류의 뿌리 깊고 일방적인 혐오 정서가 형성되었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칼 프리츠가 단기적으로는 세계를 평화를 구현했어도 장기적으로는 에르디아인과 전 세계에 해악을 끼치게 된 건 그의 정책이 에르디아인의 사멸만 바라본 채 잠깐의 낙원의 향수라는 지나치게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벽으로 서로 단절된 에르디아인과 세계가 각자 어떤 변화를 겪을지 먼 미래를 전혀 생각 못한 채 그저 거인의 힘의 배제만 내다본 채 방벽이란 극단적인 최악의 봉인까지 택했고, 결국 양자 모두 부전의 조약에 입각한 시조의 봉인 갖고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만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같은 에르디아인의 근절과 그 때까지의 낙원의 구축이란 동일한 목적을 지닌 지크 예거가 도리어 훨씬 체계적이고 확실한 비전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지크는 시조가 아닌 아홉 거인 중 하나의 계승자에 불과한 와중에서도 이런 비전을 떠올렸던 반면 칼 프리츠는 시조의 거인이란 에르디아인 전체에 있어서는 신이라 할 만한 힘을 지니고도 이런 단기적인 선택에 머물렀다는 걸 감안하면 그냥 시야 자체가 극단적으로 근시안적인 걸 넘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단적으로 시조의 거인의 계승자인 칼 프리츠가 거인내전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잠적이 아니라 시조의 거인이 나머지 여덟 거인을 먹어치우는 게 더 확실했다.[15] 벽을 구축한 거인들로만 발동한 땅울림의 위력을 생각해봐도 에르디아 제국의 국력은 시조의 거인이 절대적인 비중을 갖고 있었으니 자율성을 가진 나머지 여덟 거인들을 배제하고 '유미르의 백성'이 아니라 '왕가'만이 거인의 힘을 독점한다면 에르디아 국민들의 선민사상도 통제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시조의 거인이 모든 힘을 독점해도 계승자의 자아까지 뒤틀어버리는 부전의 조약의 강제성을 생각하면 '다른 민족을 탄압하지 말라'고 각인하면 에르디아 제국은 야만성을 탈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택한 건 대리자를 내세운 숙청과 역사조작, 업보를 모두 백성과 후손에게 떠넘긴 도피였으니 양심적인 인간성보다 책임회피의 성격이 강하게 보인다.

그렇게 에르디아인만 사라지게 하여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게 한답시고 뒷날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이고 단기적인 수를 쓴 칼 프리츠의 선택은 결국 그가 지키고자 했던 세계가 무려 80% 가량이 자신이 고안한 방법인 땅울림에 초토화되는, 차라리 거인 대전이 지속되는 것만 못한 최악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가 말한 잠깐의 낙원을 향수한 뒤의 멸망은 파라디 섬이 아니라 칼 프리츠가 지키고자 했던 세계에게 돌아간 꼴이 되었다. 작품 전체에 걸친 결과론적으로 보면 에르디아인이나 세계에나 단기적인 평화를 대가로 파멸을 안겨주고 만 무책임한 암군.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칼 프리츠의 독선에 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와 칼 프리츠의 이상을 산산조각낸 엘런 예거 또한 그가 지키고자 한 104기 동료 세대들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만 파라디 섬에 평화를 안겨다줬을 뿐, 뒷날 원인 불명의 전쟁으로 파라디 섬이 멸망하게 되면서 어떻게 보면 칼 프리츠가 말한 잠깐의 낙원의 향수 후의 멸망을 구현하고 말았다는 것이다.[16]

하지만 그럼에도 칼 프리츠의 이상의 구현을 부정한다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엘런의 목에 결합된 채로 목 뼈로 위장되어 있었던 대지의 악마는 참수당해도 살아남아 있었고 엘런의 잠든 나무 밑에 기생해 꿋꿋이 살아남아 끝내 다시 거인의 힘이 다시 부활하여 시조 거인의 힘을 손에 넣을 것으로 추정되는 에르디아인 소년병과 그 외의 살아남은 에르디아인 후손들이 그 소년을 중심으로 뭉쳐서 고향을 멸망시킨 적군에 대한 복수심으로 다시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계기가 되어 2천 년 전부터 이어온 비극의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어 사실상 칼 프리츠의 이상은 철저하게 부정당하고 흔적조차 남김없이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제2 제3의 엘런 예거나 그 이상의 인물이 나올수 있다는 암시를 하는 동시에 서로의 성향과 지키고자 했던 대상이 정반대라는 걸 제외하면 이 둘의 행보는 놀랍도록 동일한 셈이다.

어찌 보면 칼 프리츠나 엘런 예거는 아무리 초월적인 힘을 있다고 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며, 어떤 이유로든 그를 무시하고 후대를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독선을 자행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파국을 불러 일으킨다는 교훈을 선사하는 반면교사들이라 할 수 있다.

사족으로 이런 칼 프리츠의 노선은 진격의 거인 안티들 사이에서 이 작품이 우익 혹은 일본의 피해자 행세가 들어갔다는 주장의 근거로 곧잘 써먹히곤 했다. 방벽과 부전의 조약이 현 일본의 평화헌법을, 칼 프리츠 본인은 2차 대전에서 일본 항복 문서에 서명한 히로히토 천황을 비롯한 반전파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 다만 이렇게 파라디 섬 내부의 에르디아인들이 칼 프리츠에 의해 세계의 기억을 빼앗은 것에 대해서는 지크 예거와 그리샤 예거 모두가 관점은 정반대일지언정[17]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했던 만큼, 칼 프리츠는 도리어 국민들에게 일본 제국의 죄악에 대해 감추기 급급한 현 일본 정치권을 빗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18]


4. 임기 중 주요 사건[편집]


칼 프리츠의 임기 중 주요 사건
년도
내용
년도 미상
지하도시 건설 착공, 월 교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중단됨.
738년
고대 에르디아 제국의 왕으로 즉위.
743년
파라디 섬으로 에르디아 백성을 이주시킴. 에르디아 이산가족 발생.
743년
고대 에르디아 제국 종말. '거인 대전' 종결. '파라디 왕국' 건국.
743년
일부 타인종 일족을 제외한 파라디 섬 에르디아인의 기억이 상실됨.
744년
1기 훈련병단 결성, 훈련 시작[19]
740년대
아커만 일족동양 일족 박해 시작. 아커만 일족의 수장 사망.
751년
이후 시조의 거인 왕가 계승자들을 "부전의 조약"으로 세뇌하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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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의 보복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 시조 계승자들은 부전의 조약으로 그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다른 국가가 자신들의 안식을 위협하든, 민족을 멸망시키든 그저 방벽 안에서 지켜보라는 것.[3] 우리 레이스가 그 대표적이 예다.[4] 파라디 섬. 파라디의 철자를 고려해볼 경우 파라다이스에서 이 섬의 이름을 따왔을 가능성이 높다.[5] 그리샤 예거가 남긴 기록을 통해 벽 밖의 인류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공표할 경우 일어날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한 표현. 파라디 섬 내부의 에르디아인들의 칼 프리츠에 대한 인식을 대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6] 현실에서도 제국주의와 같은 사상이 등장하고 온 국민이 그걸 지지하며 광기에 휩쓸리던 인류의 역사를 보면, 현실이 그렇듯 칼 프리츠가 한탄하던 진격의 거인 세계관의 역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인의 힘이나 에르디아인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다. 거인의 힘은 그저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었을 뿐, 칼 프리츠는 그걸 깨닫지 못하고 그저 '거인의 힘이 사라지면 인류가 평화롭게 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7] 사실 민주주의 체제는 정책적으로 국가에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기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다소 비효율적인면을 감안하더라도 국가의 권력을 온 국민들에게 분산시킴으로써 히틀러나 마오쩌둥, 스탈린 같은 재앙적인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위한 견제 수단에 가깝다. 드물긴 해도 독재자가 정말로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인물일 경우엔 오히려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훨씬 효율적이다.[8] 그런데 아커만, 동방일족이 프리츠 왕가에 반기를 들어 이후 탄압받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찌 되었든 반발세력은 반드시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이 반발한 것이 다른 민족을 탄압하면서까지 누리던 자신들의 영화를 뺏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백성에게 최후엔 죽음조차 강요하는 왕의 사상에 반발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9] 아즈마비토 가문쇼군의 자식도 이렇게 히즈루국의 본가 가족과 헤어진 경우이다.[10] 마레인들이 일단 에르디아인들을 대놓고 하대하고, 수용소에 갇혀서 살아야 하며 소년병으로 차출되고, 마레 대신 일반 징병제에도 징병 된다.[11] 빌리 타이버는 '원죄 때문에 마레인들이 에르디아인을 핍박해도 자신의 가문은 방관해왔지만, 마레인 역시 결국은 과거의 에르디아인들처럼 되어가는 것 같다'고 테오 마가트에게 간접 디스를 하기도 했다.[12] 당장 유일하게 부전의 맹세 없이도 칼 프리츠의 사상에 동조하는 듯한 묘사가 있었던 로드 레이스도 사실 칼 프리츠의 사상에 차례차례 굴복한 주변인을 보며 자신도 같이 굴복한 거지 진심으로 그의 사상이 옳다고 믿고 동조하게 된 것이 아니다.[13] 이후 엘런이 어린애를 죽일 수 없다며 좌절하는 그리샤를 극도로 압박해 레이스 일가를 몰살시키게 만든 것은 시조의 거인의 탈취가 가장 큰 이유에서였지만, 이런 칼 프리츠에 대한 분노도 큰 동기로 보인다.[14] 방벽 내부의 초대형 거인들의 수십 만 대군들이 아니라 한다면 시조의 거인 단독으로 무지성 거인들을 양산하는 조치를 취한다 해도 땅울림 정도의 절대적인 위력은 나오기 힘들다.[15] 진격의 거인 등 변수가 존재하지만 해당 정보가 없는 시조의 거인을 가진 입장에서는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다.[16] 그나마 애니판에서는 원작보다 더 먼 미래에 원인불명의 전쟁으로 파라디 섬이 멸망하면서 칼 프리츠의 방식보다는 평화가 더 오래갔다.[17] 지크는 죄업의 기억이 사라졌기에 몇 번이고 과오를 범한다며 불쌍하고 어리석다는 시선이었고, 그리샤는 당신들 레이스 왕가에게 선조의 죄악의 기억을 빼앗겨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거인에게 먹히는 게 뭐가 속죄냐며 파라디 섬의 에르디아인의 핍박받는 상황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었다.[18] 사실 히로히토는 2차대전 반전파가 아닌 주도적인 강경파였으며, 일본의 평화헌법 또한 히로히토가 평화주의자여서가 아닌 패전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의 현실에 굳이 연결짓자면 과거사 부정과 자국민 세뇌 및 은폐같은 비판점들밖에 남지 않는 셈.[19] 자세한 것은 훈련병단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