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닌그라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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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주
Калининградская област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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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
주장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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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
칼리닌그라드
시간대
UTC+2[1]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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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18,624명 (2021년)
인구 밀도
67.4명/㎢
면적
15,125km
주가
칼리닌그라드주 찬가
종교

GDRP

1인당 GDRP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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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사
안톤 알리하노프
주의회


29석 / 40석



6석 / 40석



2석 / 40석



2석 / 40석



1석 / 40석


설립
1946년
ISO 3166
RU-KGD
공식 사이트
파일:칼리닌그라드 주장.svg

1. 개요
2. 러시아의 월경지
3. 인구
4. 분리주의
5. 정치
6. 기타



1. 개요[편집]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의 주(州) 중 하나이다. 주도(州都)는 칼리닌그라드 시다. 칼리닌그라드 주가 독일령이던 시절 동프로이센 주의 북부 지역에 해당된다.

나치 독일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중남부는 폴란드에, 북부는 소련에 각각 할양되었다. 본래 소련 본토와 이어져 있었으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발트 3국이 독립하면서 러시아의 월경지로 남게 되었다. 러시아와 폴란드의 국경이 존재한다.

현재 러시아 해군에 속한 발트함대가 칼리닌그라드 주 발티스크[1]에 주둔하고 있다. 이 곳을 상실하면 러시아 정부로서는 발트해에 해군력을 투사할 방법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요충지이다.[2]

또한 특이하게도 주도 칼리닌그라드의 북쪽 시가지를 포함한 넓은 지역이 사실은 이다.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그바르데이스크에서 강이 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3]


2. 러시아의 월경지[편집]


칼리닌그라드는 원래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독일 영토였지만 2차 세계 대전으로 소련에 합병된 후, 소비에트 중앙위원회 지도자인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따 칼리닌그라드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폴란드리투아니아EU 가입 후 칼리닌그라드를 놓고 러시아와 EU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다.

칼리닌그라드의 인접국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2004년 EU에 가입해서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월경지가 되었고 이 지역 주민에 대한 비자 발급 문제가 러시아와 EU간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러시아의 한 주(州)로 본토와 떨어져 발트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칼리닌그라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갇혀 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칼리닌그라드는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가 독립하면서 본토로부터 단절되었는데, 이 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의 영토를 경유해야 한다.

소련 해체 직후에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따로 조치를 취해 줘서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은 비자를 안 받아도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를 경유해 러시아 본토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나라가 2004년 EU에 가입해 역외국가에 대해서 비자를 요구하는 솅겐조약의 적용을 받게 되면서 문제가 골치아파졌다. 솅겐 지역과 러시아는 예나 지금이나 상호 무비자가 적용되지 않아 칼리닌그라드와 러시아 본토 주민들은 왕래할 때마다 경유 국가인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의 입국 비자를 받아야만 하게 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EU 가입 뒤에도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에 대한 통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EU는 불법 입국자와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서 비자 발급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러시아는 솅겐조약이 적용될 경우 까다로운 출입국 과정과 비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칼리닌그라드 주민과 경유 화물의 흐름이 사실상 차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려해서 의무적 비자 발급에 반대했다.

당시 이 문제를 취재한 “모스크바 타임즈”에 의하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을 넘나들며 담배보드카로 200%의 이윤을 남기며 장사하고 있던 이 지역의 수많은 상인들과 칼리닌그라드를 경유하고 있던 수입차 업자들에게 곤란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또한 같은 보도에 따르면 2001년 8백여 만 명의 사람들이 칼리닌그라드 국경을 오갔지만,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비자 발급제가 도입될 경우, 매년 각각의 영사관에서 5만 명과 15만 명의 비자 발급만이 준비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게다가 당시 칼리닌그라드 주 정부에서는 95만 칼리닌그라드 주민의 4분의 1 이상이 아직도 여전히 소지하고 있는 구 소련 여권을 대체할 수 있는 국제 여권이 무엇보다 시급해진다고 밝혀서 혼란까지 예상되고 있었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가 발트해로 진출하는 출구인 동시에 연간 수백여 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출입하는 요충지이기도 해 자유로운 출입이 필수적이다. 러시아 측으로서는 최소한 무비자 여행 및 3개월 동안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는 협의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었다.

유럽연합과 협상 당시 러시아 정부 측의 무비자 허용 요구 이유에는 자유로운 교류에 대한 필요성 외에도 본토에서 완전히 격리된 칼리닌그라드의 유럽연합으로의 통합 움직임이 가속화되리라는 정치적 우려 또한 있었다. 반면 유럽연합은 국경 방어에 소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법 이민·마약 거래·자동차 도난과 밀수 등 각종 범법 행위를 우려하며 비자 발급이 불가피함을 내세웠다. 이에 러시아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정하고 2001년부터 강력한 국경 통제를 위해 새로운 법률안들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럽연합 측의 “새로운 비자 체계는 요금 면에서 더 싸고, 발급 절차도 기존보다 간편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며, 또한 옵션으로 장기간의 복수비자와 혁신적인 플라스틱 신분증 제도 등을 제공할 것”이라는 절충안에도 한동안 러시아는 비자 발급 의무화 요구에 부동자세였다. 푸틴 대통령도 칼리닌그라드의 자유통행권 보장을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당시 러시아 국가두마 의원 드미트리 로고진도 “일부 리투아니아 보수 정당에서 칼리닌그라드를 유럽에 편입시키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는 비록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자세”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칼리닌그라드의 유럽연합으로의 통합 움직임 가능성을 우려했다. 협상 당시 칼리닌그라드 주지사 라디미르 예고로프는 칼리닌그라드 내에서도 옛 영토인 독일로 복귀하자는 분리주의 정서가 나타나고 있는 데 대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5만 명이나 되는 소련군 병사들이 이곳에서 희생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며 여론 수습에 나섰다.

결국 칼리닌그라드 주의 특수 상황을 감안해달라는 러시아와 난색을 보이는 유럽연합의 협상은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 본토까지 육로로 이동할 때 간이 통행증을 발급받는 조건으로 합의되었다. 비자와 간이 통행증은 발급 난이도와 수수료에 차이가 있다. 비자는 말 그대로 다른 EU 국가들로 가는 비자와 동일하게 취급되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발급을 못 받을 수도 있으나, 간이 통행증은 육로로 24시간(철도로 6시간) 내에 통과한다는 조건으로 발급을 쉽게 내 준다. 수수료도 일반 육로용은 5유로, 철도 통과 전용은 무료이며 육로용 간이 통행증은 리투아니아 대사관을 방문해야 하지만 철도용 간이 통행증은 기차표 예약과 동시에 신청할 수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진 이후, 러시아군이 퇴각한 지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각종 잔혹행위가 잇따라 확인되면서 2022년 4월 4일, 칼리닌그라드와 접경한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4개 국가는 러시아벨라루스와 통하는 모든 국경과 통신선을 48~72시간 안에 차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조치로 인해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주는 해로와 공로를 제외하고는 본토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서 특히 수바우키 회랑 차단에 적극적인 리투아니아에 대해 보복이 있을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는 상태다.
칼리닌그라드 - 본토 간 열차는 계속 운행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리투아니아 내 여객취급을 중단하고 통과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3. 인구[편집]


2018년 기준 인구 994,599명(2018)이며, 러시아인이 86.4%로 대부분이다. 그 밖에 우크라이나인(3.7%), 벨라루스인(3.6%), 리투아니아인(1.1%), 아르메니아인(1.0%), 독일인(0.8%) 등이 거주하고 있다. 본래 칼리닌그라드 주민 다수는 독일인이었지만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 이들은 피난, 강제추방, 보복성 학살 등 소련의 제노사이드로 대부분 이곳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를 러시아인 이주민이 채워 현대에 이른다. 추방을 피해 숨은 독일인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독일계가 살고 있지만 전체 인구대비 비중은 0.8%에 불과하다. 비중은 미미하지만 독일인 마을이 남아있고 지금도 독일어성씨와 독일어 구어를 보전하고 있다. 이 마을 거주민 대다수가 독일 융커 귀족의 후손인데 그들은 과거 동프로이센 주민으로서 대를 이어 끝까지 이곳에 사는 것을 신념으로 여긴다.# 전후 재산을 잃고[4] 국적도 바뀌었지만 독일 성씨와 독일어라는 정체성언어만 남은 셈이다.

4. 분리주의[편집]


안 그래도 주변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었고 월경지로 고립되자 아예 칼리닌그라드 주가 독일로 복귀하거나 독립을 하든가, 아니면 적어도 자치권을 받기 원하는 움직임이 작게나마 있었다. 칼리닌그라드 주가 소국으로 독립하거나 홍콩처럼 특별 행정구가 되어 유럽연합이나 솅겐조약에 가입하길 원하는 것이다.

1993년에는 발트공화당(Балтийская республиканская партия)이라는 정당(러시아어 홈페이지 / 영어 블로그)이 생겨서 칼리닌그라드 주를 발트 공화국으로 변경하고 칼리닌그라드 시를 쾨니히스베르크로 복구시킬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일단 발트공화당은 발트 공화국을 러시아 내 자치 공화국으로서 출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지만 독립국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와 유럽연합 간의 대립이 더 첨예해지면서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도 음양으로 분리주의 운동을 더 강하게 억누르는 조치를 취했다. 2003년 러시아 내 과반의 연방 구성체에 지역 조직을 두어야 하고 최소 1만 명의 당원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는 새로운 정당법이 발효됨에 따라 현재는 법외정당으로 전락했다. 딱 봐도 분리주의 정당이 생기는 것을 봉쇄하려고 이런 법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2001~2004년경 러시아계 주민들의 자발적인 독일로의 병합 운동 및 쾨니히스베르크 명칭 복귀 운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현재도 이런 운동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 링크한 발트공화당의 영문 블로그만 봐도 계속 활동가들이 투옥됐다는 소식이 올라온다. 여담으로 현지 분리주의자들은 독립국 또는 자치 지역의 깃발로 구 동프로이센 주 깃발[5]에 동프로이센 검정 독수리 문장을 결합한 깃발이나 프로이센 국기, 그리고 구 쾨니히스베르크 시의 깃발 등을 상징물로 쓴다#. 프로이센의 검정 독수리 문장과 대동소이하다. 칼리닌그라드의 분리주의자들은 보통 왕관이나 검 등을 일체 안 그리고 오로지 검정 독수리만 방패에 그려진 문장을 선호하는데 자신들은 프로이센 왕가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 극히 일부만 독일계 러시아인이고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쓰는 러시아계임에도 철저히 러시아와 연계된 상징을 거부하고 전부 옛 독일·프로이센과 관련된 상징을 사용한다. 러시아와 관련된 상징이 아예 안 쓰이는 건 아닌데, 러시아 국기 위에 NATO 휘장을 덧댄 걸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아예 독일로 망명하여 러시아계 독일인이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로서도 이 지역이 전략상 요충지인데다 우크라이나일본과의 영토 분쟁에 불리해질 선례를 남길 수도 없는 처지이다. 칼리닌그라드는 스칸디나비아 지역과 중부 유럽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으며, 부동항이라는 장점이 있기에 러시아 해군의 발트 함대는 모항을 이곳에 두고 있다.
여러가지로 힘들어서 옛날 국제연맹 산하 단치히 자유시 같은 UN 산하 신탁통치를 받는 국제 발트 자유시로 만들어달라는 움직임도 있다. 유럽의 국제 자유시로 만들고 러시아가 세관, 경찰 등 치안을 맡는 식으로 간섭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그런데 UN에는 러시아상임이사국이라서 어려운 상태다. 국제연맹은 총회 만장일치 시스템이었지만 UN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더 우선이라 이래저래 힘들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유럽연합에 대한 인기가 동유럽에서 크게 사그라들면서 마찬가지로 칼리닌그라드에서도 그나마 있던 분리주의 정서가 더욱 시들해졌다. 분리주의 정서가 커지냐 작아지냐를 떠나서 현지 거주 독일인은 여전히 인구 대비 극소수에 불과하며 분리주의 정서는 다수 민의를 대변했던 적이 없고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스스로 칼리닌그라드를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 분리주의 정서가 있다지만 현지에 남아있는 독일인 주민 또한 이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게다가 독일 또한 칼리닌그라드 일대에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을 늘리고 싶어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영토에 대한 미련은 버린 상태이다. 왜냐하면 독일은 NATOEU의 일원으로서 유럽을 또 다시 반갈죽으로 만들 수 있는 영토 분쟁을 일으킬 수도 없고 일으켜서도 안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독일은 칼리닌그라드에 영사관까지 두었는데, 자국 영토로 생각하는 타국 영토에 영사관을 두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기도 하다. 따라서 러시아가 자발적으로 할양하거나 반강제로 할양당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에서 분리되기는 어려우며 특히 1990년대 초에 독일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 상실한 구 영토들을 모두 현재 속한 국가의 영토로 인정할 것을 천명했기 때문에 독일에 재합병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다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과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재제와 고립이 심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우러 전 이후에 이 지역 내에서 군사적, 경제적 고립이 심화된 러시아로부터 분리독립하자는 분리주의 여론이 다시금 일어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5. 정치[편집]


러시아의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 지역의 투표와 개표가 제일 마지막으로 끝난다. 러시아의 선거는 11개로 나뉜 시간대를 가진 광활한 영토로 인하여 그 과정이 길기로 유명하다. 투표개표가 제일 먼저 이루어지는 곳은 미국과 국경을 마주한 최동단 추코트카베링 해협 지역의 선박에서 이루어지는 선상투표.

유럽연합과 러시아와는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폴란드는 칼리닌그라드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한해서 폴란드 국경지대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게 허용해 준 적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있었다.


6. 기타[편집]


폴란드볼 애니메이션 유튜버 Kaliningrad General의 프로필 컨트리볼은 주기를 딴것이다. 깨알같은 역사 반영으로 피켈하우베도 쓰고 있다.

2022년 9월, 체코에서 '주민투표에서 98%의 득표를 얻어, 칼리닌그라드 주가 체코의 월경지인 크랄로베츠 주로 편입되었다'라는 인터넷 밈이 퍼졌다.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를 풍자한 밈으로, 왜 하필 체코냐면 독일령 시절 명칭인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이름이 지금의 체코에 해당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 오타카르 2세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기 때문. 크랄로베츠도 쾨니히스베르크의 체코어 명칭이다.

[1] 독일어로는 필라우(Pillau).[2] 발트해의 러시아 도시로 칼리닌그라드 외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부속섬 크론시타트도 있지만, 발트해 동쪽 끝단의 핀란드 만 안쪽에 있어서 발트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며 주기적으로 얼어붙는다.[3] 아라뱃길 완공 후의 김포시와 비슷한 환경이다.[4] 그러나 동독에 편입된 지역의 융커들도 토지개혁으로 토지 재산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다.[5] 가로로 검정색과 흰색을 칠한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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